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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쉬지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여야...
2017년 04월 18일 17시 21분  조회:2077  추천:0  작성자: 죽림

6. 사랑 시는 삶의 길 찾기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대상을 향하여 쉬지 않고 움직인다,
어떤 때는 식물의 뿌리가 물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듯이 꽃나무 줄기가 햇빛을 향해 방향을 틀듯이 그렇게 움직인다. 그러나 어떤 때는 회오리바람처럼 한 곳을 향해 불어 가기도 하고 폭포를 만난 물줄기처럼 급하게 아래를 향해 떨어지기도 한다.
사랑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쉬지 않고 움직인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던지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사랑하는 그 대상을 ‘향하여’,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향한 움직임이며 자신을 위한 움직임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개 자기 얼굴을 그려 놓는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본 얼굴, 가장 낯익은 얼굴 형상이 곧 자기 얼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도 자기가 가장 친숙하게 생각해 오던 모습, 가장 마음에 드는 얼굴과 마음을 채워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인 경우가 있는데 그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의 반영일 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반쪽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뒤집어 놓고 보면 내 똑같은 모습의 반영이라는 얘기와 같다. 사랑하는 자기의 반쪽을 찾아 나서는 어른을 위한 동화 속의 이야기나 영어에서 아내를 ‘My Deer Better Half'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뜻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이란 결국 자기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요 다르게 말하면 그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또 다른 자기 존재를 확인해 가는 과정은 그리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 없이 고통 받고 상처 받는 일을 되풀이 해 가며 이루어진다.

분홍 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 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 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안도현 「분홍지우개」중에서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썼다가 지운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랑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 아직 서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설레면서 썼던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지운다.
그래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살아난다. 생각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나 사랑하다가도 그런 과정을 거친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지워 버려야 한다는 생각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불면의 밤과 번뇌의 시간을 갖는다.
스탕달이『연애론』에서 이야기한 제1 결정작용과 제2 결정작용 그런 것을 수 없이 되풀이한다. 마지막으로 그 생각의 끝까지 없애려고 눈을 감아 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지워 버리면서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리고 말 것 같은 느낌. 사랑은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결국 내가 사랑 받으며 살아 있다는 자기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운다’는 말과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 질 것 같다’는 말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지워 버릴 수 없다는 바람, 즉 문학 용어로 소망적 사고(Withful Thinking)의 표현이다.
그것은 마치 「가시리」에서 ‘셜온 님 보내옵노니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하고 표현할 때처럼 서러운 것은 남아 있는 자기 자신이요 떠나는 님이 아닌데 님도 자기처럼 서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긴 소망적 발언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유명한 시 「또 기다리는 편지」도 마찬가지다.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 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 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정호승「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다리는 고통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 행복한 법이다. 사랑하는 일이 더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물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보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이 더 행복하다고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은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망적 표현일 것이다. 
이 시속에서 말하는 시적 화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아주 외로운 모습으로 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 부풀어오르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다. 저녁 해 질 때부터 시작하여 잠든 세상 밖에서 새벽 달 빈 길에 뜰 때까지 밤을 새운다. 
사랑 때문에 밤을 새워 괴로워한 그는 지금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운다. 저무는 섬처럼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외롭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자기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해마다 첫눈이 내릴 때면 다시 눈 같은 그리움으로 생각나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울면서 외롭게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의 모습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채로 혼자 외로워하고, 울고,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정호승 시인의 시적 자아는 급기야 이런 처절한 사랑의 고백에까지 이른다.

내 이제 죽어서도 증오의 죄는 없다 
내 이제 죽어서도 그리움의 죄는 없다
나는 언제나 너를 죽이고 싶었으나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싶었다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는 있어도 
나를 위해 내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다
                   ---정호승「나의 길」중에서

이런 마음 상태에 이를 정도로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얼마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리워했으면 그리움의 죄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다림의 죄 사랑의 죄는 없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한 목숨 다하도록 사랑한 것일까. 거기다가 죽어서도 증오가 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사랑했다면.
사랑 때문에 죽이고 싶어지는 마음. 그러나 사실은 그 마음보다 더 크게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나를 위해 내 목숨을 구할 수는 없어도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는 있는’사랑을 했으므로 ‘내 이제 죽어서도 사랑의 죄는 없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가는 길이 ‘사랑의 길’ 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랑했으면서도 끝끝내 채워지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그 아득한 거리를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좁혀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대가 한 자락 강물로 내 마음을 적시는 동안 끝없이 우는 밤으로 날을 지새우던 나는 들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밤마다 울지 않으려고 괴로워하는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래오래 별을 바라본 것은 반짝이는 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내가 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헬 수 없는 우리들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상의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길들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뜨는 아침부터 노을지는 저녁까지 이 길 위로 사람들이 쉬지 않고 오가는 것은 그대에게 가는 길이 들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랍니다.
                              ---안도현 「그대에게 가는 길」

이 시의 화자는 ‘끝없이 우는 밤으로 날을 지새우던 들판’ 처럼 황량하게 있다. 지상에서의 사랑의 아픔 때문에 처음엔 별을 바라다본다. 그러면서 ‘헬 수 없는 우리들의 아득한 거리’를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지상에 크고 작은 길들 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 길을 낸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사랑은 길 찾기’라는 것과 또 하나는 ‘그 길은 하늘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관념이나 이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과 다름 아닐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 속에 사랑의 끝도 있고 시작도 있는 것이다. 헤어짐도 있고 만남도 있으며 다시 만나야 한다는 믿음도 별 속에서가 아니라 사람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가 아니고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 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정호승 「강변 역에서」중에서

이 말은 기다림의 전 과정을 통해 결국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랑하며 사는 전 과정이 곧 삶의 전 과정이며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몸부림 그 자체는 결국 우리 삶의 길 찾기인 것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우리 삶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대가 한 자락 강물로 내 마음을 적시는 동안 끝없이 우는 밤으로 날을 지새우던 나는 들판’이었지만 ‘그대에게 가는 길’은 ‘들판’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외롭고 황량한 내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들판’. 그러나 그대에게 가는 길도 바로 그 들판 어딘가에 있다는 이 말은 사랑의 길은 곧 내 자신의 삶 속에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캄캄한 어둠을 지나 밝은 모습으로, 싸늘한 들판을 걸어 따뜻한 체온으로 다가가는 그런 사랑을 하게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해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 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 다오
.............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 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 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중에서

사랑이 긴 고통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을 ‘맑은 사람’‘금방 헹구어 낸 햇살 같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면 사랑의 고통은 아름다운 고통이다.
거기다가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 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 질 수 있다면’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여 그들의 사랑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구멍난 삶을 기워내는 일이 된다면 사랑은 구원이다.
그리고 서로의 개인적인 구원에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의 사랑으로 새날이 밝아 오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나아간다면 사랑은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생명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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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1958∼ )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안 그냐.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잔 혔다 지랄놈의 농사는 지먼 뭣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파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종이에 꾹꾹 눌러 쓴 낯익은 글씨에 벌써 딸은 와락 그리움이 치밀 테다. 어머니만의 말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편지에 어머니의 모습과 목소리가 아른거리리. 삭신은 꾹꾹 쑤시고 마음은 질컥거리고, 그래서 사는 게 팍팍하단다. 하나 있는 아들이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고 딸에게 일러바치며, 그리움과 외로움과 서운함을 알뜰히 전하신다. 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각별하신 듯하다. 그만큼 살갑고 미더운 딸이 수녀 종신서원을 했으니, 알지 못할 세계로 가버린 듯 가슴이 휑하실 테다. 보고자파라, 내 딸! 편지로 미루어 시원시원한 성격인 어머니시지만 눈 밑 주름 고랑을 타고 ‘달구똥(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셨을 테다. 그 마음 감추고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라신다. 아,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복사꽃!

곡식을 거둘 때도 자식 생각, 복사꽃이 피어도 자식 생각.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이 생기면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일래라. 길지 않은 시에 홀로 농촌을 지키는 노인이며 한 집안의 서사가 담겨 있다. 구어체 편지 형식의 맛깔스러운 사투리가 시를 생생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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