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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이헨도르프는 위대한 독일 낭만주의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1807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첫 번째 시집을 펴내고 낭만주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1813년 프로이센 해방전쟁이 터지자 용병대에 입대해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 전쟁 후 1831년부터 베를린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이시기에 <시>와 같이 자연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표현한 작품들이 민요로서 인기를 얻었으며 이는 슈만·멘델스존·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826년에는 낭만주의 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어느 무위도식자의 생활에서>를 발표했다. 1844년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공무원직에서 물러나 독일 문학사를 집필했고 스페인 작품도 여러 편 번역했다.
위대한 독일 낭만주의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슐레지엔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07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여기에서 첫번째 시집을 펴내고 낭만주의 문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1809~10년 베를린에서 공부를 계속하던 중 독일 낭만주의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1813년 프로이센 해방전쟁이 터지자 뤼초 용병대에 입대하여 나폴레옹과 맞서 싸웠다.
중편소설 〈뒤란데 성 Das Schloss Dürande〉(1837)과 서사시 〈로베르트와 기스카르 Robert und Guiscard〉(1855)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등장한다. 아이헨도르프 가문을 몰락시키고 루보비츠 성을 파괴한 나폴레옹 전쟁은 그의 시에 보이는 과거에 대한 향수의 원천이 되었다. 이 전쟁 동안 그는 가장 중요한 산문작품 2편을 썼다. 낭만주의 장편소설 〈예감과 현재 Ahnung und Gegenwart〉(1819)는 정치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도덕적 타락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치료보다 정신적인 치료가 절실함을 보여준다. 〈대리석 조상의 이야기 Novellen des Marmorbilds〉(1819)는 초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데, 아이헨도르프는 이 작품을 동화라고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단치히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프로이센의 공무원으로 일했고, 1831년 이후에는 베를린에서 일했다. 〈시 Gedichte〉(1837)와 같은 이 시기의 시들, 특히 자연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표현한 시들은 민요로서 인기를 얻었고, 슈만, 멘델스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826년에는 그의 가장 중요한 산문 작품인 〈어느 무위도식자의 생활에서 Aus dem Leben eines Taugenichts〉를 발표했다.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 작품은 낭만주의 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1844년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공무원직에서 물러나 독일 문학사를 출판했고 스페인 작가의 작품도 여러 편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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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카를 베네딕트 폰 아이헨도르프 남작
(Joseph Karl Benedikt Freiherr von Eichendorff,
1788년 3월 10일 ~ 1857년 11월 26일)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
후기낭만주의에 속하는 시인이며, 슐레겐의 귀족 출신으로 가톨릭 교도이다. 대학에서 법률을 배우면서 슐레겔, 브렌타노 등의 낭만주의자들과 교제를 가졌다. 대 나폴레옹 전쟁에서는 국방군으로 가담하였으며 1844년까지 상급관리로서 근무하였다. 그의 서정시는 다른 낭만파 시인에 비해 기교가 덜하며, 민요로부터 영향을 받은 간명하고 소박한 격조 (格調) 로, 부르기 쉬운 음악적 어구로 되어 있다. 〈월야(月夜)〉, 〈망가진 반지〉등 그의 시는 많은 작곡가에 의해 가곡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한 온화한 기독교의 신앙을 노래한 것도 많다. 산문으로는 〈명랑한 방랑아〉(1826년) 가 대표작이다. 자유롭고 몽상적인 방랑을 계속하면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밀가루 상점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자연에 대한 낙천적 애정을 노래하는 이 작품은 낭만주의 문학 중에서 청춘 문학의 대표작이다. 또 장편소설 《예감과 현재》(1815년)는 교양소설의 한가지로서 청년의 정신적 성장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달과 시와 노래 -
슈만(Robert Svhumann:1810-1856)은 1840년 사랑하는 여인 클라라(Clara)와 결혼하였다. 9월 12일, 라이프치히 쇠네펠트(Leipzig-Schoenefeld)에 있는 전승 기념교회(Ged chtniskirche)에서였다.
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해에 그는 168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 중에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1788-1857)의 시로 만든 가곡집 <리더스크라이스:Liederkreis, op.39>가 있었다. 리더스크라이스는 '노래의 원(圓)', 즉 연가곡집을 뜻하는데, 슈만은 이 명칭의 연가곡을 두 벌 지었다.
사랑하는 클라라, 나는 이상하리만큼 많은 노래를 작곡하였습니다. 나는 밤에 우는 저 꾀꼬리처럼 죽을 때까지 계속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시인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맞추어 12곡의 가곡을 썼습니다.
시인 아이헨도르프는 슐레지엔(Schlesien) 출신으로 할레(Halle)와 하이델부르크(Heidelburg)에서 철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거기서 괴레스(J.Goeres), 아르님(B.Arnim), 브렌타노(C.Brentano) 등 낭만파 작가들과 교류했다.
이규환 작, <마음의 보석상자>
가곡 <달밤:Mondnacht>은 <리더스크라이스>의 열 두 편 노래 중 다섯 번째 곡이다. 이 곡은 가곡집 중에서 낭만적인 서정성이 가장 돋보이는 곡으로, 슈만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연인과의 행복한 사랑을 기억하며 달밤을 거닐고 있는 청년의 정경이 아련하게 펼쳐지고 있다. 곡은 3/8박자, 마장조로, 독일어로 섬세하고 비밀스럽게(Zart, heimlich)라는 악상기호가 쓰여 있다. 6마디의 피아노 전주는 마치 달빛이 소리 없이 스미는 듯 은근하고 부드럽다. 노래가 시작되면 피아노의 왼손은 성악의 멜로디 라인을 한 마디 뒤쳐서 따라가고, 오른손은 잔잔한 16분 음표의 화음으로 미묘한 달빛의 떨림을 묘사해 낸다. 첫 가사에서 "마치 하늘과 땅에게 살며시 입을 맞추는 것처럼(Es war, als hatt' der Himmel Die Erde still gekueβt)"의 첫 대목에서 흐르는 고요한 달밤의 아련한 정취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알아채지 못할 순간에 노래 속으로 함몰되게 만든다. 소소한 달빛이 입맞춤처럼 대지를 적시니 자연은 달빛에 화답하고 사람은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hatt' der Himmel"라는 대목에서 하늘에 맞닿는 듯한 상승음이 인상적이다.
똑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며, "땅은 은은한 꽃빛 속에서 하늘을 꿈꾸네(Daß sie im Bluetenschimmer, Von ihm nun traeumen mueßt)"가 불려지는데, 이로써 하늘과 땅이 합일을 이룬다. 이 인상깊은 선율은 곡 전체를 휘감아 흐른다. 이 선율의 주 화음은 마장조-나장조-마장조(E-H-E)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결혼 모티브'라고도 한다.
가수(시적 화자)는 잠시 노래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의 달을 바라본다. 피아노 역시 리타르단도(Ritardando)의 머뭇거림으로 가수와 함께 하늘을 올려본다. 피아노의 오른 건반은 16분 음표 떨기마다 스타카토(Staccato)를 매겨나가며 그 보폭을 알려주고 있다.
조용히 다시 노래가 이어진다. 첫 번째 연(절)과 거의 비슷한 정조(情調)로 두 번째 연이 불려진다.
이 부분이 끝나면 간주가 없이 곧바로 세 번째 연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제 곡은 클라이막스로 나아간다. 서서히 음량이 커지다가 'Seele(영혼)'에서 한 차례, 'Fluegel(날개)'에서 또 한 차례 격앙(激昻)된다. 이 부분에서 피아노의 두 손은 서로의 음형을 바꾸며 "나래를 활짝 펼치고, 고요한 대지를 날았네(Weit ihre Fluegel aus, Flog durch die stillen Lande,)"라는 가사 내용처럼 비상(飛翔)하는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들뜬 감정이 사라진 후 곡은 첫 선율의 단아한 분위기로 돌아가 마치 집으로 가는 것처럼Als fl ge sie nach Haus.마쳐진다. 가수가 노래를 거둔 뒤에도 피아노는 8마디의 행보를 계속한다. 달빛은 은은하게 공기를 타고 흐르다가 저 산 너머로 조용히 사라진다.
지올콥스키(Gregor Ziolkowski) 작, <떨어진 달>(1999)
독일의 작곡가 슈만과 시인 아이헨도르프는 이 짧은 가곡을 통해 영원한 동경과 낭만의 상징인 달을 하늘에서 이탈(離脫)시켜 이 대지와 자연 속으로, 사람들의 마음 곁으로 다가서게 하고 있다. 이 충만한 낭만주의자들이 꿈꾸는 경지는 달과 지구,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는 세계, 신화의 광휘가 내리는 순수의 세상이었다. 우리는 본래 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틈에선가 달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회지의 마천루에 가려지고 가로등의 현란한 빛으로 바래졌다. 그렇게 우리는 달을 잃었고, 동심과 순정, 신화와 옛 이야기들을 잃고 살았다. 르네상스 작가 단테(Dante)는 그의 <신곡>의 천국편에서 달의 신 아폴로(Apollo)를 불러낸다. 크리스트교 신앙의 정수(精髓)인 이 책에서 그는 불경스럽게 그리스 신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에는 깊은 생각이 스며 있었다. 그는 신화 속의 달을 불러내어 당대 독자들에게 되돌려 주려 했다. 중세 이래로 달은 불경의 상징, 반신앙의 징조로 외면당했다. 그런 달의 오명을 단테가 문필의 힘으로 씻어 바로잡은 것이다.
소설가 김선우는 헤어져 있어야 하는 지구와 달의 숙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달은 우리 은하가 만들어질 때 어떤 연유로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 이 별의 일부였는지도 모릅니다. 지구와 한 몸이었던 달, 그래서 달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허락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구를 그리워하며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그리움, 그 안타까운 일렁임이 저토록 교교 한 빛의 너울로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기고 밤마다 그 물살 속에 달빛의 아이들을 산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철 작, <만월>
달은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의 명부이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의 고향이다. 이번 한가위에는 그 소중한 추억들을 달에 영상으로 비추어 보며 윤동주 시인처럼 옛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둘씩 되뇌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주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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