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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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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배울 때 이전에 배운 지식들을 다 버리시ㅠ...
2017년 04월 30일 22시 34분  조회:2197  추천:0  작성자: 죽림

 

1.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詩를 쓰겠다고 찾아오는 분들을 만나면, 
"왜 시를 쓰려고 하십니까?" 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왜 시를 쓰려고 하십니까?" 詩人이 되시려고요? 그냥 시가 좋아서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어떤 대답이든 좋습니다. 정답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분명히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 말씀입니다. "詩人이 되기 위해서 시를 쓰지는 마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시인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냥 시가 좋아서 열심히 시를 짓고 공부하며 노력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활인보다 더 나은, 더 아름다운 존재는 없습니다. 먼저 생활인이 되십시오 
그리고 사람의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시인되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냐고요? 
사람의 삶을 사는 생활인이어야만 진실한 시를 지을 수 있고, 진실한 시만이 오랫동안 독자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생명이 있는 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교만으로 쓰는 시는 어느 순간에는 독자를 속일 수 있어도 그것은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력이 없습니다. 
많이 배워야 시를 지을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득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시, 사람의 냄새가 나는 시, 그런 시를 쓰려면 먼저 사람이, 생활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2. 이제까지 배워 알고 있는 지식은 버리십시오. 

해방 이후의 우리 나라 학교 교육은 모두 서구식 교육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나 나나 모두 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합리적, 타산적, 이성적이게 되어 조직적이고, 통일성을 추구하고, 논리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이제는 시를 공부하기 전에 버려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제까지 배운 것들을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만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여러분들 가정에 유리로 된 맥주 컵 있지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그 컵을 들고 "이게 뭡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맥주 컵", 아니면 "맥주 잔"이라고 대답하시겠지요. 다른 대답을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마 100이면 100 사람 거의 다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렇게 획일적인 교육을 받았고 그 고정 관념은 우리의 머리 속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그 고정 관념을 버리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봅시다. 그 유리컵은 유리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용기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유리컵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는 것입니다. 
물을 부었다면 물 컵이 되고 막걸리를 부었다면 막걸리 잔이 되고 또 사이다나 콜라를 부었다면 음료수 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컵을 보면 맥주 컵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교육에서 생활에서 비롯된 고정 관념 때문입니다. 그 고정 관념을 깨는 것이 교육받은 지식의 해체 작업입니다. 그리고 다시 나만의 눈으로 새롭게 대상을 보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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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촌 1길 ―임형신(1948∼ )

은사시나무 포자가 눈처럼 날리는 언덕에 희망촌이 있다 상계4동 배수지 아래 철거민들이 모여들어 사십 년 넘게 희망을 먹고 산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마다 만신들의 깃발이 펄럭이고 그 옆에 엉거주춤 태극기도 붙들어 매져 있다

기울어진 담벼락에 나팔꽃 씩씩거리며 올라간다
사금파리에 찔린 청도라지
독기를 뿜고 웃자라는
한 뼘의 마당
대낮은
텅 비어 있다

무허가 봉제 공장 사라지고 교회가 들어섰다 목공소 있던 자리 단청 고운 절도 하나 들어앉아 서로 마주보며 희망 한 줌씩 나누어 준다 겨우살이풀처럼 늘어져 있는 할머니들 등 뒤 며느리밥풀꽃도 기웃거리고

만신들의 깃발이 휘청거린다
오늘 또 무엇이 들어와서
어떤 희망 한 줌
뿌리고 가려나 

 

 


은빛 잎사귀들이 파르르 나부끼는 은사시나무 숲 아래에 작은 집들 올망졸망한 언덕. 버스 타고 지나가다 차창 너머로 보았다면 정감어린 동네라 느낄 수도 있을 테다. 어디서 보는가, 누가 보는가. 동네 내력을 잘 아는 이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을 고샅고샅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척박하다. 
 

 

‘골목마다 만신들의 깃발이 펄럭이고 그 옆에 엉거주춤 태극기도 붙들어 매져 있다’, ‘무허가 봉제 공장 사라지고 교회가 들어섰다 목공소 있던 자리 단청 고운 절도 하나 들어앉아 서로 마주보며 희망 한 줌씩 나누어 준다’. 곤고하나마 생활을 꾸려 나가게 해주던 일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교회와 절. 세상에 기댈 데 없는 사람들, 더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들 곳은 신의 가슴뿐이라는 걸까. 


종종 종교는 무지와 절망을 먹고 크는 듯하다. ‘철거민들이 모여들어 사십 년 넘게 희망을 먹고 사는’ ‘희망촌 1길’. 동네나 집 이름에 ‘희망’ ‘햇살’ ‘별빛’ 같은 이름이 붙으면 슬프다. 실상은 그 정반대라는 역설을 보여주는, 어린이처럼 무구한 꿈을 실낱처럼 붙들고 있는 이름…. 주민들이 다른 동네로 밥벌이 나가 ‘대낮은/텅 비어 있’는 희망촌 1길, ‘은사시나무 포자가 눈처럼 날리’고 ‘만신들의 깃발이 휘청거린다’. 세밀하고 적확한 사실적 묘사로 현실과 풍경을 꿰어내는 시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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