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시인은 나비와 함께 해협을 건너갈줄 알아야...
2017년 05월 23일 00시 24분  조회:3590  추천:0  작성자: 죽림
일본 명시 모음
 
 개여뀌풀 / 니시와키 쥰사부로우
 
 
개여뀌풀이 피어났다
흙탕길에서 방황하는
새로운 신곡의 처음
 
*개여뀌풀이 피어 있는 흙탕길에서 방황하면서도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없다. 흙탕길은 일본 사회, 가련한 개여뀌풀 때문에 거기서 탈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뇌는 더욱 심각해지게 마련이고, "신곡
의 처음"이라는 말과 같은 비유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니시와키 쥰사부로우(1894~?): 언어의 일상적인 의미와 그 조립을
                                  배제함으로써 특이한 이미지를 구
                                  성하는 시를 주장하였다.
                                  "시와 시론"의 새로운 문학 운동을 전
                                  개한 초현실주의 시인이다.
                       시집: <나그네 돌아오지 않다><근대의 우화>등 
 
  / 니시와키 쥰사부로우
 
 
남쪽 바람에 부드러운 여신이 찾아왔다
청동을 적시고 분수를 적시고
제비 배와 황금의 머리카락을 적시고
물살을 안고 모래를 쓰다듬고 물고기를 마셨다
살짝 사원과 욕장과 극장을 적시고
이 백금의 현금(鉉琴)이 흩어진 것 같은
여신의 혀는 살짝
내 혀를 적셨다
 
* 처녀시집 <암바르발리아>에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인 Amburvalia는
그리스어로 추수제(秋收祭)를 뜻한다.
 저자는 일찌기 화가를 지망했던 일이 있는데 이 시에는 그 회화적 기질이 있
고,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답게 이미지스트로서의 시풍을 형
성하고 있다.
*작자의 말: "회화적이면서 이미지 그 자체를 단순히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고 싶
              은 시를 쓰고 싶다. 그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시의 내용이다.
              그 이미지는 우리를 신비적인 것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것을 시의
              아름다움이라 하자, 시의 작품은 이미지로 끝난다"
 
별과 마른  / 쓰보이 시게지
 
별과 마른 풀이 대화하였다
조용한 한밤중
내 주위에만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쩐지 외로와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려 할 때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마른 풀 속을 찾아보았지만
별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아침
눈을 뜨자
무거운 돌이 하나
마음 속에 떨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날마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돌은 언제 별이 되랴
돌은 언제 별이 되랴
 
* 제1행 "별이 마른 풀과 대화하였다"는 구절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상(理想)으로서의 평화를 바라고 있는 작자 자신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제3행 "내 주위에만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작자의 전쟁 현실에 대한 위화감
          과 저항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작자는 자신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전쟁의 공기에 대한 위화감을 위화감으로 의식하다는 것
          은 소극적이기는 해도 전쟁에 대한 저항감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나의 전쟁 경험의 중요한 한 측면이었다"
  제2연 끝의 "돌은 언제 별이 되랴"는 패배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계속하여 살
          기 위한 이상과 희망을 발견하려 하는 작자의 삶의 자세의 신조를 토로한
          것이며, 저항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쓰보이 시게지(1897~1975): 개인 잡지 <출발>을 간행하였고, 오카모토 쥰, 하기
                                  와라 교오타로우 등과 시잡지 <적과 흑>을 간행하였
                                  다. 저항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시집: <전쟁의 눈> <노령의 시초> 등이 있다.
 
탄생일 / 안자이 후유에
 
나는 나비를 핀으로 벽에 꽂았습니다 - 더 움직이지 못한다
행복도 이와 같이.
 
식탁에는 리본을 맨 가축이 가축의 모양을.
병에는 물이 병의 모양을.
슈미즈 속에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 특히 끝 줄은 그녀의 곡선미를 그대로 나타내어 격조 높은 관능미를 표출하고 있다.
  작자가 만주 땅에서 지은 시.
 
 
 / 안자이 후유에
 
나비 한 마리 달단 해협을 건너갔다.
 
*달단: 종족(몽골족)이름
* 이시는 작자로 하여금 이미지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결정해 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한가로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시이다. "달단해협"이란 말이 동양적인
  냄새를 풍겨 주고 있으며, 철새가 떼를 지어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나비 한 마리" 해협을 건너간다고 하는 데서 우아하면서도 용감한 평화의
  사절을 연상하게 한다.
  작자는 <자전(自傳)>에서 "만주에 건너가 산 지가 열 다섯 해, 공간의
  아름다움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고, 지체 하나를 상실하고도 멈출 줄 모르는 속 
  력에의 대쉬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안자이 후유에(1896~1965): 한 단어에서 연상을 계속하여 발전시켜 한
                                  편의 소설을 구성할 수 있는 심상주의자이다
                                  선명한 이미지로 짧은 시를 쓴 이미지스트이다.
                       시집: <군함 마리> <대학의 휴가> <달단해협과 나비> 등.
 
새벽 / 요시다 잇수이
 
 
누에는 잠잔다
그림자 하얗다
산들의 머나먼 바람소리
선을 그은 언덕의 새벽
 
* 이 시는 먼 지평선의 희게 밝아져 오는 새벽의 이미지를 노래하고 있다.
   현실이라 생각해도 좋고, 환상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시가 수록된 제1시집 <바다의 성모>(1926) 후기에
   "동경과 추억, 동화의 감상적인 꿈 많던 날의 서정시"라고 적혀 있다.
 
어머니 / 요시다 잇수이
 
아아 아름다운 거리
항상 멀리 사라져 가는 풍경---
슬픔의 저쪽, 어머니를 향해
더듬으며 치는 한밤중의 피아니시모
 
* 처녀시집 <바다의 성모> 에 수록, 조금씩 멀어져서 희미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요시다 잇수이(1898~1973): 초기에 섬세하고 화려한 낭만적 시풍을 지녔으나.
                                                  점차 내면적 사색을 강조하여 고전적 완성미를 추
                                                  구했다. 동인지 <시와 시론> <신시론>에서 활동.
시집: <바다의 성모> <고원(故園)의 서(書)> <미래자> <흑조 회귀(黑鳥回歸)> 등
 
조선 / 마루야마 카오루
 
 
 언제부터인지 아가씨는 달리고 있었다. 아가씨 뒤에 귀신이 쫓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뛰면서 머리빗을 뽑아 던졌다. 빗은 귀신 사이에 험한 세모의 산이 되었다. 귀신은 그 산 뒤에 가리워졌다. 그 사이에 아가씨는 멀리 달아났다.
 이윽고 산꼭대기에서 귀신이 달려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아가씨는 따라 잡히게 되었다. 아가씨는 허리에 찬 주머니를 던졌다. 주머니는 연꽃 피어 있는 못이 되었다. 귀신은 그 건너편에서 흙탕에 빠지며 힘들게 건너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가씨는 다시 귀신을 멀리 떼어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신은 다시 따라왔다. 아가씨는 이번에는 한쪽 신발을 벗어 던졌다. 신발은 귀신의 코에 가 맞고, 거꾸로 떨어져 낭떨어지로 변했다. 귀신은 투덜거리며 조심조심 낭떨어지를 기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사이에 그녀는 조금 달아났다.
 끈질기게 귀신은 다시 따라잡으려 했다. 아가씨는 저고리의 푸른 고름을 뜯어 던졌다. 그것은 큰 강이 되었다. 귀신이 뗏목을 찾는 사이에 아가씨는 조금 달아났다.
 이야기 도중에 어르신네가 찾았다. 한씨는 긴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는 서둘러 사랑방에서 나갔다.
 그로부터 서른 해가 흘렀다. 어린 내 기억이 거니는 그 나라 지표(地表)에는 아가씨가 울면서 던진 것들의 흔적이 있다. 늑골(肋骨) 같은 들판 길에는 풀 없는 바위산이 환상저럼 앞을 막고, 늪에는 물이 말라 진흙이 타고 있었다. 까마귀는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에서 울고, 돌 뒤로부터 늑대라는 이리는 하품하듯 목청을 울리면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도 계속 국토 어디에선가 아가씨는 달리고 있다.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버리고 벌거숭이로 외치면서 달리고 있다. 귀신은 계속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려 한다,
 어느 해의 가장 불행한 순간 그녀는 마지막 부분을 가린 천조각을 던지고 슬프게 땅에 엎드렸다. 천조각은 바람에 펄럭거리며 가까운 강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물이 되었다. 기슭에 넘쳐 뚝을 무너뜨리고 홍수가 되어 들을 메꾸었다. 배추밭을 메꾸었다. 소와 말을 메꾸고, 유교의 애곡소리 서린 둥근 무덤을 메꾸었다. 무수한 인가는 물 위에 떠 표류하고, 지붕 위에서 손을 흔들며 이 세상에 결별을 고하는 선들을 싣고 바다로 흘러갔다.
 
* 이 시는 1937년 6월호 <개조(改造)> 발표되었고, 뒷날 <물상(物象) 시집>에 수록되었다.
*마루야마 카오루(1899~1974): 시 동인지 <시와 시론> <사계(四季)>를 중심으로 신시 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집: <돛-램프-갈매기> <북극> <청춘부재> 등
 
 
 / 마루야마 카오루
 
선장이 럼주를 마시고 있다.
마시면서 무엇인가 노래하고 있다.
노래는 목쉬어 천천히 활차(滑車)가 돛줄에 돌 듯이 슬프다.
갈매기가 날개 소리를 죽이고 노의 어스름에서 속삭이고 갔다.
이윽고 하구에 달이 솟아 오르리라.
 
선장의 가슴도 붉은 럼주의 만조(滿潮)가 되었다.
그 흐름 밑에
오늘 저녁도 문신을 한 닻이 푸르게 흔들거리고 있다.
 
* 활차: 줄을 걸어서 회전할 수 있게 만든 홈이 파인 바퀴
* 육지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은 가지고 있으면서 끝내 배 이외의 세계에서는
  살지 못하고 다시금 배에 돌아온 선장의 굴절된 상심(傷心)이 묘사되어 있다.
 
 
분수 / 마루야마 카오루
 
학은 날려고 하는 순간, 솟구치는 물방울에
  목이 관통되고 말았다.
그 이후 뒤를 보며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하고 있다.
 
* 처녀시집 <물-램프-갈매기>에 수록됨. 날려고 하는 몸짓을 한 채 결박된 분수의 학-
  그것은 뜻을 품고있지만 생활 때문에 꼼짝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작자는 명문인 토오쿄오 대학 국문과를 중퇴하고 직업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다. <사계(四季)> 동인인 그는 <시와 시론>의 신시 운동의 영향을 받아 어두운 생
  활에서 터득한 허무감과 고독감을 물상(物象)을 초월하여 무게 있는 시를 썼다.
  작자의 말: "<시와 시론>운동은 시의 연못의 흐린 물을 높은 창공까지 물방울로 반짝이게
              하는 분수의 역할을 하였다."
 
 
아름다운 상념(想念) / 마루야마 카오루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과 같이
낮하늘에도 별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상념처럼
기이하게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나는 산에 살면서 왜 그런지 이따금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산 속 깊이 들어가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면 실제로
숲과 태양이 잠겨 있는 물 밑에서
무수한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눈에 보여온다
 
* 눈에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감추어져 있다. 평상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현상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순수해질 때 그 본질을 직감
  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은 깊은 산의 호수에서 한낮에 별을 보고 있다.
 
 
불리(不利) 속에서 / 마루야마 카오루
 
청춘은 머리가 너무 자랐다
청춘은 때로 더럽혀져 있다
청춘은 말을 더듬거릴 뿐이다
청춘은 구두 밑창에 못이 나와 있다
 (뉘우침의 아픈 못이)
청춘은 호주머니가 구멍 뚫렸다
청춘은 팔이 불타고 있다
또한 그 위에
청춘은
청춘은
청춘은
이상의 불리함 속에
청춘은 청춘임을 모르고 있다
 
* 청춘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아쉬움 및 향수를 노래한 것으로서, 지나가 버린
  자기의 청춘을 아쉬어하며 현재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없
  는 애정을 쏟고 있다.
  작자의 말: "시에 붙들려 지나온 나의 어느 시대에 과연 청춘이 있었는가---
               지나가 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뿐이다."
 
 
광업 / 마루야마 카오루
 
인간은 처음에 쇠 한 조각을 손으로 만들었다
그 쇠조각으로 쇠를 단련하고
쇠보다 더욱 강한 강철을 만들었다
 
오늘날 부드러운 사람의 손은 쇠를 단련하지 못한다
쇠는 불에 용해시켜 쇠로 두들겨야 한다
하지만 쇠를 달구는 화로도 내려치는 망치도
바로 쇠 그 자체인 것이다
 
쇠를 만드는 쇠가 먼저인가
만들어지는 쇠가 먼저인가
아서라 사람은 처음 쇠 한 조각을 손으로 만들었다
 
옛날 인간의 지헤는 나무를 부벼 불을 일으키고
손으로 손을 깨뜨리는 석기를 갈고
석기와 불로써 돌을 깨뜨리는 쇠를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의 손을 펴고 태양을 향해 쳐들었다
그러자 펼쳐진 손가락 사이에서
아프게 피를 뿜는 무수한 먼 조상의 손바닥이 겹쳐 보였다
그것들은 곧 초록과 보라색 불꽃을 튕기며
톱니바퀴처럼 덜컹덜컹 돌기 시작하였다
 
*작자의 말: "나는 자신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강한 경향을 찾아보게 된다.
               그것은 물상에 대한 어떤 뜻대로 안 되는 추구욕과 그것에 대한 향수의
               정서이다."
               작자는 처녀시집 이후 7,8년 동안 계속된 허무와 고독의 생활에 벗어나
               현실에의 접근과 인간 존재의 강한 긍정을 보여 주고 있다.
 
 
미래에 / 마루야마 카오루
 
아버지가 말했다
보아라 이 그림을
썰매가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을
늑대떼가 뒤쫓고 있는 것을
몰이꾼은 필사로 토나카이에게 채찍질하고
나그네는 뒤돌아서 짐짝 사이로부터
계속해서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지금 총부리에서 빨간 불이 번쩍이는 것을
 
이들이 말했다
한 마리가 맞아 쓰러졌어요
아아 다른 한 마리가 덤벼들었으나
그것도 피에 젖어 쓰러졌어요
밤이여요 끝없는 광야가 눈에 묻혀 있어요
하지만 나그네는 쫓아갈 수 없을까요
썰매는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 거일까요
 
아버지가 말했다
이리하여 밤이 새게 될 때까지
어제의 뉘우침을 하나하나 사살하여
시간처럼 내일을 향해 달려 가는 것이다
이윽고 태양이 떠오르는 앞길에
미래의 거리는 빛나며 나타난다
보아라
언덕 위 하늘이 이미 환해지고 있다
 
* 이 시는 아버지가 그림책을 펴서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향해 좀더 깊은 인생적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허들 경기 / 키타가와 후유히코
 
 
다가오는 벽과 같은 허들, 펄쩍 뛰는 그녀들.
조금씩 쳐져 있기는 해도 같은 자세의 그녀들.
허들은 다리 아래 있다 쭉 뻗은 앞 다리,
  한 다리에 맡기는 기수와 같이.
멋진 유연스러움이다. "속력의 융단"을 깔면서 간다.
손가락에 닿는 한 조각 구름.
 
 
*작가의 말: "영화라고 하는 것을 이미지하는 시나리오가 새로운 서사시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아야 한다."
*허들을 뛰어넘어 달리고 있는 여자 선수의 유연하고 탄력 있는 동작의 아름다움
 을 노래하고 있다.
*키타가와 후유히코(1900~?): 구어시를 부정하고 선명한 이미지의 시를 썼다.
                                 초현실주의의 산문시 운동을 일으킨 그는 <시와
                                 시학>의 멤버로 활약하였다.
                  시집: <검온기(檢溫器)와 꽃> <전쟁> <실험실> 등.
 
 중의  / 키타가와 후유히코
 
 
암벽 위에서 화초가 흐트러진다. 그 중 꽃 한 송이. 항구가
   축소한다. 마침내 초록색 반점. 아아 이별.
 
 
*전송객으로 혼잡스런 부두, 거기 섞여 있는 그녀의 모습, 점차 멀어져 가는 항구 도시,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 광경이다.
  "화초가 흐트러진다. 그 중 한 송이"는 근경(近景), "항구가 축소한다"는 중경(中景),
  "초록색 반점"은 원경(遠景)이다. 점점 멀어져가는 육지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는
   선명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작자의 말: "나의 경우는 이미지즘을 주장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시의 어조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언어의 울림에 관하여 신경을 쓰면서 시를 써 왔다. 단지 시론으
              로 말하지 않을 따름이다."
 
풍경 / 키타가와 후유히코
 
 
푸른 하늘 아래에 집오리가 떠 있다.
콘크리트 벽에 세워져 있는 쇠 사다리는 그림자보다도 희박하다.
다이나모처럼 회전하는 태양, 태양, 아아 태양.
 
 
*다이나모: dynamoto. 회전기. 전동기와 발전기의 동작을 조합한 변환장치.
*작자는 1920년대 전위 시인으로 활약했는데, 이 시는 전위파 작품들 중 가장 높
  이 평가되고 있다.
  작자는 한여름날의 한낮에 공장이 오염시키는 운하 가에 서서 자본주의적인 활기찬
  풍경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을 보고 있다.
  이 시를 유화에 비긴다면 액자를 파열시킬 정도의 생명감이 넘치는 풍경이다.
 
신호 / 미요시 타쯔지
 
 
오두막 물방아, 떨기 속에 한 그루 동백
새로 난 수레바퀴 자국에 나비가 내린다. 그것은
방향을 돌리면서
고요한 날개의 억양으로 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건널목이여, 여기는---나는 그 자리에 선다.
 
*작자는 제1시집 <측량선>을 간행한 뒤 건강을 해쳐 온천에서 요양생활을 보낸 적이 있다.
 이 시는 그때의 작품이다. 이 시속의 계절은 이른 봄, 산책에 나선 작자는 물레방앗간 뒷길
 에 이르러 봄 소식을 알리는 나비가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미요시 타쯔지(1900~1964): 일본 전통시를 계승하면서, 보들레르와 프란시즈 잠의 영향에
                                  의한 새로운 서정시를 개척하였다. 일본 현대시를 고전적 완
                                  성에까지 승화시켰다고 평가되고 있다.
                시집: <측량선> <남창집(南窓集)> <한화집(閒花集)> 등이 있다.
 
 
아베마리아 / 미요시 타쯔지
 
 
나는 서둘러 십자를 긋는다
낙엽 쌓인 가슴, 오솔길의 안쪽에.
 
아베마리아, 마리아시여,
밤이 오면 저는 기차를 타야 합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요.
 
내 손수건은 새것이다.
하지만 내 눈물은 이미 낡았다.
 
--다시금 만날 날은 없으련가
--다시금 만날 날은 아마 없겠지.
 
 
섬돌  / 미요시 타쯔지
 
 
아아 꽃잎은 흐르고
아가씨에게 꽃잎은 흐르고
아가씨들은 소근거리며 걷나니
한가로운 신발 소리 하늘에 흐르고
이따금 눈을 들고서는
맑게 갠 사원의 봄을 지나가도다
사원의 기와는 이끼 끼어 푸르고
처마 모서리에는
풍경이 꼼짝 않고 매달려 있고
외로이
내 몸의 그림자 섬돌 위에 지느니
 
유모차 / 미요시 타쯔지
 
 
어머니 -
여리게 정겨운 것이 내리고 있나니
수국의 꽃잎 같은 것이 흩날리나니
끝없는 가로수 그림자 따라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있어라
 
때는 해거름
어머니 내 유모차를 미시라
눈물에 젖은 석양을 향하여
휘청휘청 내 유모차를 미시라
 
붉은 술이 달린 비로드 모자를
싸늘한이마에 쓰게 할지니
간 길 서두는 새의 무리 따라
계절도 하늘을 건너고 있다
 
여리게 정겨운 것이 내리고 있나니
수국의 꽃잎 같은 것이 흩날리는 길
어머니 나는 알고 있나니
이 길은 멀고 멀어 끝없는 길
 
*붉은 술이 달린 모자를 쓰고, 유모차에 태워서 어머니가 밀어 주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림움을 노래하고 있다.
 
 
아침에 꿈꾸다 / 미요시 타쯔지
 
 
어딘지도 모를 산마을에
쉴 새 없이 벚꽃이 지고 있음을
색깔 여린 벚꽃이 쉴 새 없이 비스듬히 지고 있음을
아침에 꿈꾸다
벚꽃은 계속해서 팔락팔락 지고 있음을
팔락팔락 꽃잎은 고요히 숨쉬며
바람에 흩어져 흘러 가고 있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그 꽃은 두 잎 세 잎 떨어짐을
벚꽃이 이렇듯 하염없이 지는 것을 꿈꾸었다
아침의 꿈
눈에 분명하게
또한 물보다도 미끄럽게
마음에 스며 잊을 수 없어라
특히 이것은
모기장 안에서 싸늘하게
뺨에 느끼는
스산한 가을날의 아침이기에
꿈에서 깨어 나는 슬퍼하노니
왜 그런지 모르나 먼먼 날의
탄식이니 한옛날의
끝의 유산이어라
 
*작자는 공습을 피하여 시골에 소개해 있다가 일본의 패전을 겪게 되었다.
 일본 전통 시가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현대 시인으로서, 그는 전통적 운
 율인 5음과 7음을 자유롭게 구사하여 미묘한 리듬을 자아내고, 선명한 이미
 지를 묘사하고 있고, 일본어가 지닌 아름다움을 발휘하고 있다.
 패전의 아침, 꿈속에서 벚꽃(일본의 국화)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일본의 전통적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바다는 푸르리라 / 미요시 타쯔지
 
 
마른 풀밭이라 푸르름은 드물고
드문 푸름도 서리로 아파하는 한낮
사람 있어라 무엇을 보는 것일까
옷무늬 퇴색했고 소매 없는 옷 걸치고 어깨를 웅크리고
  바닷물에 탄 목 언저리는 살이 쪘고 주름투성이어라
노인이라 머리는 희게 새었네라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나도 여기서 그곳을 바라보았으나
아무 것도 없어라 단지 마른 풀과 마른 모래뿐이어라
노래가 사라지고 만 그 뒤로는 마음 붙일 만한 것 사라졌나니
날개쳐 하늘을 나는 것도 끊어진 시대여라
바라보며 자세히 보니 희미롭지만 마른 풀 사이로
분명히 보이는 것은
-- 오랑캐꽃
줄기 높이 뻗고 피어 있어라
잊은 꽃 잊혀진 꽃이련가
새봄의 선구자임을 그 누가 알랴
한 송이뿐인가 했더니 외롭지 않아라
그 옆에 피었네라 둘둘 셋셋 다섯
내게 기쁜 사실을 가르쳐 주었나니
어부 노인장
소매 없는 노인은 어디 갔는지 모습조차 사라졌어라
저쪽 나무 아래 돌부처는 서 있고
바다는 푸르러라
 
 
 / 미요시 타쯔지
 
 
타로우를 잠재우고 타로우의 지붕에 눈이 쌓인다
지로우를 잠재우고 지로우의 지붕에 눈이 쌓인다
 
* 어느 평자는 미요시 타쯔지를 가리켜 현대 시인 중 온갖 시법을 전부 다 시도해
본 시인이라고 하였다. 그 중에도 이 시는 짧은 작품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해독되
고 있는 명작이다. 2행으로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타로우"의 집과 "지로우"의 집,
이름을 우리 언어의 뉘앙스로 고치면 "일남이"의 집과 "이남이"의 집처럼 평범하면서
민화적인 전원의 집이 된다. 이런 농촌의 눈 오는 밤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물고기 / 타카하시 신키치
 
 
어느 곳에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곳은 바다나 강이나
그 외의 물 속도 아니었다
 
거기는
돌 속이었다
 
화석된 물고기는
돌과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등뼈만 남고
살은 사라진 상태였다
 
억 년 동안
돌의 평면은 보존되었으나
이윽고 그 선도 사라질 것이다
 
현상은 어디서나
뚝뚝 잘라진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움직여
헤엄치고 있다
 
*타카하시 신키치(1901~?): <다다이스트 신키치의 시>를 간행하여 파괴적인 다다이즘 시인
                                으로서 시단에 충격을 끼쳤다. 일본에 다다이즘을 도입한 그는
                                <역정(歷程)>동인이다.
              시집: <안개섬> <참새> <잔상(殘像)> 등.
 
 
 / 오카모토 
 
 
올라가니 산이었다
내려가니 골짜기였다
산에도 골짜기에도 눈이 있었다
하나님도 짐승도 만나지 않았다
 
 
 산의 아이 / 오카모토 
 
 
징기스칸의 후예 같은 얼굴을 한 산의 아이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무엇이라 소리쳤다
돌아보았더니
두 손을 쳐들어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산의 아이는 몇 살이 되어야 기차를 타게 될까
 
 
 세대 / 오카모토 
 
 
텅 빈 맥주집 한 구석에서
오십에 가까운 아버지와 25세 딸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나이보다는 젊게 보이는 아버지와
앳되게 보이는 딸이
컵을 부딪치고 마시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업으로
딸은 딸의 일로
여느 때는 거의 말을 나누지 못한다.
알고 있는 바는 두 사람 모두
전쟁이 없는 자유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일이다.
개와 고양이를 끔찍이도 사랑하고
얼마 전까지 인형을 안고 자던 딸.
 
딸이 선물한 라이터로 담배를 붙이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딸은 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밝고 앳된 눈동자 속에
아버지가 모르는 딸의 세계의 비밀이 있는 것일까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본의 어두운 바윗돌 밑에서 살아온 아버지,
아무리 어려운 생활에도 울음진 얼굴을 보인 일이 없는 딸.
다시 등골이 써늘해지는 충격을 느끼면서
두 세대가 고요히 맥주를 마시고 있다.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이다. 오카모토 쥰의 시는 선풍과 같이 격정에 휩싸인 것이 많지만,
이 작품에서 찾아보게 되는 것은 서정미 넘치는 서민적인 감각이다. 그러나 그속에는 역시 상황 비판이 스며 있다. 이 시는 작자의 초기 서정성이 깊이 마음 속에 잠겨있고, 다듬어진 언어에 의하여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 위기를 배경으로 부모의 정을 교묘히 스미게 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평명(平明)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산문에 가깝다. 구성은 극적인 수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찌기 작자가 영화 관계의 일에 종사한 때문일 것이다.
*오카모토 쥰(1901~1978): 전위 예술파 시에 공명하여, <적과 흑> <탄도(彈道)> <시 행동>등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시집: <방에서 아침으로> <벌받는 사람은 살아있다> <밤의 기관차> <허름한 깃발> 등.
 
다리 / 무라노 시로오
 
 
도취의 밤은
수천 군데의 상처에서
피를 뿜고 있다
 
그것이 운하에 흘러들어
질퍽하게 웅덩이져 있다
다리는 거기 걸려 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도
과거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단지 저쪽 기슭에서 이쪽 기슭에 걸려 있을 뿐이다
죽은 흐름을 건너서
두 개의 밤을 이어 주고 있을 뿐이다
 
밤이 깊어지면 그 위에
나이든 남자와 젊은 여자가 와서
서로 자신 없는 자세로
끌어안는 일도 있다
 
* 붉은 네온등이 비치고 환락의 배설물 오염되어 있는 운하에 충실된 과거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밝은 미래를 향한 것도 아닌 것처럼 아무 의미도 없이 단지 걸려 있는 "다리"는 찰나적이며
 관능적인 자극을 추구해 마지 않는 현대의 절망적 소비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자가의 말: "오늘의 시인은 인생을 넓게 이해하고 문명이 가르치는 문화의 의의를 이해하여 미
              친 세계게 저항해야 한다."
*무라노 시로오(1901~1975): 전통적 서정성을 배격하고, 객체에 따른 사고를 조형하고 표현
                                하는 즉물주의적 시를 썼다. <시와 시론>동인이다.
            시집: <덫> <체조 시집> <서정 비행> <추상의 성> <망양기(亡羊記)> <예술> 등
 
 
노래 / 무라노 시로오
 
 
꽃내음을 생각하는 것처럼
잠시 정다운 것이 내게로 온다
그것은 빛나는 나무들도 아니고
자매들도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혼란한 세게의 밑바닥에서
무엇을 그리워하는 감정일까
늙은 그루터기가 꽃피며
장미가 거기에서 향내를 풍기듯이
 
 
철봉 / 무라노 시로오
 
 
나는 지평선에 매달린다
손끝이 조금 걸렸다.
나는 세계에 매달려 있다.
근육만이 나의 신뢰이다.
나는 벌겋게 된다. 나는 수축된다.
발이 올라간다.
오오 나는 어디 가는가.
커다랗게 세계가 한 바퀴 돌고
나는 세계 위에 있다.
높은 곳에서의 부감(俯瞰)
아아 양 어깨에 유연한 구름.
 
*작자의 말: "여기에 묘사된 인간은 인생관적인 것에 젖은 통속적인 인간이
               아니다. 외계의 사물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구성하는 한 개의
               사물로서 냉정히 객관화된 것이다. 이것은 노이에 자하리히카
               이트(신즉물주의)의 이념적 근거가 되는 존재론적인 관점에 의한
               미학에의 실험이었다."
 
 
가을 / 무라노 시로오
 
 
레몬을 닮은 얼굴빛이
엷어져 가는 사람아
가랑비 속에서 밤의 어두움 속에서
그대의 순수는
나날이 새로와라
그리고 부용꽃은 단추처럼 싸늘하게
기침하는 그대의 가슴 위에서
 
 
밤의 내장(內臟) / 무라노 시로오
 
 
문장은 검게 용해되어
여기저기 웅덩이져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애매하고 어두운 밤을 걸어왔다
어느 거리 모서리에 오자
붉은 빛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고
그 아래서
중국 우동집 사람이 혼자서
자기의 간과 같은 것을 끓이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나의 인생 속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육친 가운데 누구와 닮았으니
아무리 해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부흥의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자기 생명을 삭제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팔아 먹고 연명
 하는 삶이라 할 성질의 것이었다.
 
 
시인의 조상(彫像) / 무라노 시로오
 
 
그것은 누구의 얼굴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마치 물 속과 같은
다른 세계에 놓여져 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신의 이름과 인간의 사랑
그러한 영혼의 취향도 말하지 않는다
죽기 위한 피가
풍경을 물들이고
의미를 잃은 직박구리새의 울음이 우주를 째는 날
그저 감탕나무 줄기에 얽히어
강렬하게
존재의 가을을 풍기는 것이다.
 
* 제2차 세계 대전 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에도 계속 핵실험은 행해지고 있었다.
  그 결과 지구의 대기는 오염되고 세계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 넣고 있다.
*작자의 말: "내가 단순히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현대를 성실하게 살려 한다면 이러한 현대의 사회적 현실의 표상은 당연히 나의 시의 중요한 테마가 되게 마련이다.
              나의 시 속에 현대의 고민이나 의혹 또는 사회적 저항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명랑한 소녀들 / 나카노 시게하루
 
 
내 마음은 슬픈데
넓은 운동장에는 흰 줄이 그어지고
명랑한 소녀들이 뛰놀고 있다
내 마음은 슬픈데
소녀들은 모두 토실토실 살쪄 있고
손발의 피부색은
희고 또는 연한 밤색이다
그 가녀린 뒤꿈치는
마치 사슴과도 같다
 
*서정성이 넘치는 이 시에서 노래되고 있는 것은 운동 선수인 소녀들이다.
 예민한 청춘의 감성이 스며 있다.
 작자의 초기 시들은 감상적인 면이 강하다. "내 마음은 슬픈데"로 시
 작되는 첫 줄의 어두운 내면에 외계의 밝은 운동 선수의 묘사를 대비시
 켜 약동하는 선수들의 선명한 이미지를 포착 부각시키는 대비법이 뛰
 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카노 사게하루(1902~?): 동인지 나상(裸像)을 간행하였고
                               시 소설 평론 등의 분야에서 활동.
            시집: <나카노 시게하루 시집>등
            소설: <배꽃>등
 
 
하얀 소녀  / 하루야마 유키오
 
 
하얀 소녀 하얀 소녀 하얀 소녀 하얀 소녀
하얀 소녀 하얀 소녀 하얀 소녀 하얀 소녀
 
 
*작자의 시에 이와 비슷한 제목 없는 시가 있다
 "언덕에 하얀 호텔이 있고 호텔에서 하얀 마차가 뛰어 나왔다. 마차에는
  하얀 프랑스인이 타고서 하얀 파이프 연기를 뻐끔뻐끔 뿜었는데 연기는 하
  늘에 올라가 하얀 구름 비행선과 충돌하였다. 하얀 구름 비행선은 둥실둥실
  커져서 하얀 마차를 추격했으나 하얀 마차는 하얀 프랑스인의 하얀 파이
  프 연기를 뿜으며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하루야마 유키오(1902~?)" 개인지 <사육제>와 동인지 <시와 시론>간행.
         시집: <달이 뜨는 거리> <식물의 단면> <실크&밀크>
        평론집: <시의 연구> <문학평론> <새로운 시론> 등
 
가을 밤의 회화 / 쿠사노 신페이
 
 
그래 춥구나
벌레가 운다
그래 벌레가 운다
곧 땅 속에 들어가야지
땅 속은 싫어
파리해졌구나
너도 무척 파리해졌구나
어디가 이렇게 죄어올까
배일까
배라면 죽고 말거야
죽고 싶지는 않아
춥구나
그래 벌레가 운다
 
*시집<제100 계급> 서두에 게재된 작자의 대표작 중 하나
*작자의 말: "이 시는 와세다의 쯔루마치마치를 걸어가다가 생각난 것으로서,
               나의 속에서 두마리 개구리의 회화인데 그것은 노트에 적기 전에
               완성되었다 그저 뒤에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
*이 시의 주제는 명확하다. 추의에 떨고 굶주림에 비틀거리며 서글픈 속에서도 이
  기고 살아가려는 의지를 일상어로 노래하고 있다.
*쿠사노 신페이(10903~?): 대륙적인 기질로 장대하고 우주적인 무한감을 교향악
                              적으로 구성하여 노래하는 호방한 시인이다.
                              동인지 <역정(歷程)을 창간하였다.
                 시집: <제100 계급> <내일은 맑은 날씨> <개구리> <후지산> 등
 
 
공간 / 쿠사노 신페이
 
 
니카라하(中原)여,
지구는 겨울이라 춥고 어둡다네.
 
그럼,
안녕히.
 
젊은 장미들 / 안도오 이치로오
 
 
미래에 뿜어 낼
불꽃의 형태를 누가 알겠는가
마노색(碼瑙色)* 투명한 가시에 숨은
젊은 장미들의 비밀
젊은 장미들의 제네레이션
약간 늙은 동산지기는
단지 외부의 세계를 방황할 뿐이다.
 

*시인은 실제로 장미 가꾸기를 즐겼으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장미를 가꾸기 시작한 것은 종전 후 3년째 되던 해인가 시작했으니까,
  이미 10년 가까이 된다. 토마토와 배추를 심던 곳에 어떤 다른 꽃을 심기로 하고
  서너 그루 심어 보았는데 병적이 되고 말아 오늘날에는 작은 마당이 좁을세라 40
  그루 이상이 서 있고, 또한 도로에 면한 담장에도 덩굴장미가 여러 겹 겹쳐 가지
  들이 얽혀있다.
*마노(瑪瑙): 보석의 한 가지. 여기서는 보라색을 띤 투명한 가시.
*안도오 이치로오(1907~1972): 시인이며 영문학자. 난해한 현대시 속에 정온(靜穩),
                                  청징(淸澄)한 시심을 노래하였다. <시와 시론>에
                                  발표한 그의 시는 '사상 이전' '고요한 불꽃' '포지션'
                                  '사랑에 관하여' '경험' '먼 여행' '펼친 손바닥' 등이 있다.
 
 
사랑에 관하여 / 안도오 이치로오
 
 
날마다 나와 더불어
내 속에서
하나의 열매가 익어 간다 -
그 내부에 숨어 있는
벌집의 꿀 창고처럼
정연한 짜임새
 (그것도 나와 함께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둥근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세계
금빛 명상과 새로운 관능을 부르는 냄새
열매는 점점 연해진다
어떤 때는 화려하게
너무나도 밝게
하늘 한가운데 걸리고
어떤 때는 고독의 무리(彙)를 두르고
땅 위에서 우러르는 나의 이마에
종기처럼 닿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열매의 무게를 달아 보지 않았다.
 
*이 시는 전체가 "사랑에 관하여"의 은유로 되어 있다. 시는 본질적으로 비유인데, 그 비유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긴박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은유이다. 작자가 계속 추구한 주제는 삶과 죽음 그리
 고 사랑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사랑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신설(新雪) / 안도오 이치로오
 
 
어느 한밤에
문득 긴 고통에서 놓여난 것처럼
주위가 조용해졌다
밑 모르는 피로를 달래는
새로운 잠이 찾아오면서
나는 보드라운 세계로 감싸여 갔다
그 속 깊은 품 안에
은빛 희미한 밝음이 스며 와
먼 하늘에서
모든 깨끗한 것들 위에
새하얀 수만 개의 깃이 떨어져 왔다
모든 문은 닫혀 있다
집 한가운데서
언제나 아름답게 타오르는 불이여
나는 거기서 투명한 청춘의 그림자를 보련다
나는 거기서 거치른 바다의 울림소리에 귀 기울린다
 
 
설해(雪解) / 안도오 이치로오
 
 
다시금 새로운 축제의 때가 왔구나
새하얗게 눈 덮인 들판 여기저기에
몇 줄기 시내가 드러난다
커다란 악보를 펼친 것처럼
어디서나 밝은 노래소리가 흘러 내린다
부드러운 옷의 스침소리를 내며
장농에서 꽃무늬의 드레스를 꺼낸다
기쁨에 겨운 젊은 사람아
그대가 가리키는 아지랭이 저쪽에
결혼 켸익의 눈부심 속에서
언덕은 달콤한 당의(糖衣)를 입고 있다
그리고 투명한 푸른 하늘에서
초록과 붉은색과 노란색 테입이 드리워져 있어
그 끝을 입에 물고
가지에서 가지로 노래하며 오가는 새들
먼 곳에서 주빈인 연인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동안이라도
깜빡깜빡 조는 하인도 있다
아아 다시금 새로운 축제의 때가 왔구나
 
*작자의 말: "이미지 그것 자체의 아름다움이 현대시의 큰 요소로 되어 있다
               이미지는 단순히 사상의 수단이나 매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 있어서 이미지 그 자체가 사상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사람에게 주는 애가 / 이토오 시즈오
 
 
태양은 아름답게 빛나고
또는 태양이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라며
손을 힘껏 마주 잡고
고요히 우리는 걸어갔다
우리들 안에서
스며나오는 깨끗함을 나는 믿는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은 설령
새들은 항상 변함없이 지저귀고
초목의 속삭임은 때를 탓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는 듣는다
우리의 의지의 자세로
그것들의 광대 무변한 찬가를
아아 나의 사람
빛나는 이 햇빛 속에 스며 있는
소리 없는 공허를
역연하게 찾아보는 눈의 발명이
무슨 소용 있으랴
그보다 인기 없는 산에 올라가
간절하게 희구된 태양으로 하여금
거의 죽은 호수 한쪽을 두루 비추게 하자
 
*처녀시집 <나의 사람에게 주는 애가>에 수록됨. 이 시집을 출판하면서 작자는
 "나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보냈다.
 "나의 시는 여러 가지 사실을 숨겨 두고 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만 유리코(百合子)씨는 어려울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까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면 이제 나의 시는 끝장입니다."
*작자의 말: "내가 시를 진짜로 써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릴케의 <신시집>을
                      읽고나서부터이다. 시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사고의 정확함
                      이 나로서도 어느 정도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토오 시즈오(1906~1953): 독일 낭만시에 의해 촉발된 강렬한 시 정신을 일본적으로 소화하여 밀도높게 노래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쿄오토 제국 대학 국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시집: <나의 사람에게 주는 애가> <여름꽃> <봄의 서두름> <반향(反響)> 등
 
 
마당의 매미 / 이토오 시즈오
 
 
여행길에서 돌아와 보니
이 마당에는 이 마당의 매미가 울고 있다
나는 어떤 시와 같은 것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어
종이를 폈더니
물과 같은 평명(平明)한 몇 줄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써진 것을 앞에 놓고
갑작스럽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전생에 대한 생각과
약간의 현기증이 동반된 구역질을 느끼며
매미 소리를 듣고 있었다
 
*피곤하기 때문에 도리어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마다의 매미 소리에 영원한 시간을 느끼고 있다.
 
 
광야의 노래 / 이토오 시즈오
 
 
내가 죽는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이어진 봉우리들의 몽상이여! 너의 흰 눈을
사라지게 말아라
숨막히는 희박한 이 광야에
사람들 모르는 샘을 지나서
항시 향긋한 나무 열매 열리는
숨겨진 장소를 지나
내가 씨 부린 꽃의 징조가
다가온 날 내 시체를 끄는 말로 하여금
이 이정표를 따라 돌아오게 하리라
아아 그리하여 나의 영원한 귀향을
고귀한 그대의 흰 빛으로 전송하고
나무 열매 빛나고 샘물은 웃고---
나의 아픈 꿈이여 그때야말로 마침내
쉬어야 하리!
 
북쪽 바다 / 나카하라 츄우야
 
 
바다에 있는 것은
그것은 언어가 아닙니다.
바다에 있는 것은
그것은 물결뿐.
흐린 북해의 하늘 아래
물결은 곳곳에서 이를 드러내고
하늘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끝날지 알 수 없는 저주.
바다에 있는 것은
그것은 언어가 아닙니다.
바다에 있는 것은
그것은 물결뿐.
 
 
*작가는 중학 시대(17세)부터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아,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방탕한 생활에 탐닉하였고, 10대 말기에는 이미 인생의 온갖 애환을 경험
 한 조숙-퇴폐의 시인이다.
 이 시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북쪽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인생이란 허무의
 심연(深淵)에 떠 있는 존재에 불과함을 노래하고 있다.
*니카하라 츄우야(1907~1937): 특히 랭보의 영향을 받아, 조숙함과 탐닉
                                    생활을 통한 사랑의 슬픔을 낮은 가락으로
                                    노래하였다. 퇴페와 허무의 시인으로 일컬
                                    어지는 그는 <사계(四季)>를 통해 시를 발
                                    표하였고 <기원(紀元)>의 동인이었다.
                       시집: <염소의 노래>가 있다.
 
 
한적(閑寂) / 나카하라 츄우야
 
 
아무 방문할 일도 없는
내 마음은 한적하다.
 
 그것은 일요일에 건너는 복도
 - 모두 들판에 가고 없다.
 
판자는 싸늘하게 빛나고
새는 마당에서 지저귀고 있다.
 
 꽉 잠그지 않은 수도의
 주둥이 물방울은 반짝이고--
 
땅은 장미빛, 하늘에는 종달새
하늘은 아름다운 4월입니다.
 
 아무 방문할 일도 없는
 내 마음은 한적하다.
 
 
흐린  / 나카하라 츄우야
 
 
어느 아침 나는 하늘 속에
검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펄럭펄럭 그것을 나부끼고 있었는데
소리는 안 들렸다 너무 높아서
더듬어 가 내리려고 했었지만
줄이 없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깃발은 펄럭펄럭 나부끼고 있을 뿐
하늘 깊숙한 곳에 날아가는 것 같이.
 
 
하나의 메르헨 / 니카하라 츄우야
 
 
가을 밤은 아주 멀리
조약돌만의 시내가 있어
거기에 해는 반짝반짝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해라고는 하지만 마치 규석(硅石)처럼
단단한 고체의 분말과 같아서
닿으면 사각사각
희미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조약돌 위에 한 마리 나비가 앉아
여리지만 또렷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나비가 사라지자 어느새
지금까지 흐르지 않던 강바닥에
물은 졸졸졸
졸졸졸 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메르헨marchen: 독일어로 동화, 환상적 이야기.
이 메르헨의 등장 인물이며 주역인 "나비"의 동작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비"의 동작은 오히려 의미없는 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
이다.
*규석:석영(石英)의 입상(粒狀)에 응집한 것으로 빛의 미립자에 비유되고 있다.
 
누이여 / 니카하라 츄우야
 
 
밤, 아름다운 혼은 울며,
- 그 여자는 정당했었는데 -
밤, 아름다는 혼은 울며,
이제는 죽어도 좋아--- 하는 것이었다
 
축축한 들의 검은 흙, 짧은 풀 위로
밤의 바람은 불며,
죽어도 좋아, 죽어도 좋아 하고
아름다운 혼은 우는 것이었다.
 
밤, 하늘은 높고 부는 바람 여린데
- 기도 외에 내가 할 것은 없었다---
 
 
*전 3연을 통해 "그 여자는 정당했다"고 하는 구체적인 사실은 제시
되어 있지 않다. 또한 왜 "이제는 죽어도 좋아"라고 하였는지도 "나"
이외에는 그대까지의 경과가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에는 틀림없이 사랑의 궁극적인 구체성이 제시되어 있다. 남자는 그저
기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말없는 노래 / 나카하라 츄우야
 
 
그것은 먼 곳에 있어도
나는 여기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는 공기도 희박하고 창백하여
파 뿌리처럼 가늘고 여리다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 된다
여기서 충분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처녀의 눈처럼 먼 곳을 보아서는 안 된다
분명하게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먼 저쪽에서 석양에 물들어 있었다
피리 소리처럼 긁으면서 연약하였다
그래도 그 쪽으로 달려 가서는 안 된다
분명하게 여기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그동안에 숨차던 것도 평정을 되찾고
분명하게 저쪽까지 갈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굴뚝 연기처럼
멀리 멀리 언제까지나 노을진 하늘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일상적인 비극 상황 속에서 창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이 시는 당연히
어떤 기도하는 마음이라든가 진혼(鎭魂)의 색채를 띄고 있다. 어느, 평
자의 말대로 시인은 "모름지기 인간 존재란 그 자체에도 심한 단절을
느끼고 있었다. 이 단절에의 가교가 그의 만년의 시작(詩作)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은 부채 / 쯔므라 노부오
   -일찌기 밀키 웨이라 불리던 소녀에게
 
아주 가까이 국경은 한 줄기 흰 물줄기
 
고원을 달리는 여름철 전차 창에서
 
당신은 작은 부채를 폈다.
 
 
*불과 3행의 짧은 시지만 산뜻하고 지적인 서정을 느끼게 해준다.  이 3행에
의해 시각적으로 광경을 포착하는 신선하고 예각적인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른바 모더니즘에 의한 청순함과 산문 정신을 담은 서정이 있다."밀키 웨이"
는 은하수를 이르는 말, 은하수처럼 신비한 소녀가 시인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쯔무라 노부오(1909~1914): <사계>와 <푸른 꽃>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와
                                소설, 아동문학도 발표하였다. 온화한 서구적인
                                지성으로 시를 쓴 그는 초기에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시집: <사랑하는 신의 노래> <아버지가 계신 마당> 등.
 
 
인사 / 아마노 타다시
 
 
아들은 며느리를 얻어
그 며느리는 푸른 눈을 하고
두툼한 프라이팬을 가방에 넣고서
Japanese in hurry
라는 작은 책을 끼고
코 끝만 빨갛게 햇빛에 탄 모습으로
오론제 호라는 큰 배에서
혼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마중한 것은
아들의 아비와 어미 두 사람
말없이 세 사람은 자동차에 타고
전철로 갈아 타고
다시 버스에 타고
거름 웅덩이와 대나무 숲과 전포와
스크램 공장이 줄지어 선 교외를 달려서
버스에서 내려
두부집 모퉁이를 지나
가락 국수집 앞 판자 다리를 건너
모퉁이 세 채 집 한가운데의
빡빡한 유리창문을 열고서
"들어와요"
하고 아비는 말했다.
낡은 다다미방 위에 단정하게 앉아
새하얀 무릎을 드러내 놓고
푸른 눈의 아가씨는 정중하게
일본식으로 인사하였다.
"여러분 안녕하셔요"
서둘러 부모들도
끄떡하고 인사하였다.
그리고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Jepanese in hurry: 속성(速成) 일본어, 빨리 익힌 일본어.
*전 1연으로 되어있는 평명한 작품이다. 모름지기 미국 유학을 가서 결혼한 것으로 추측되는
푸른 눈의 아가씨와 그 이국의 며느리를 맞는 "아들이 아비와 어미"의 곤혹스러운 만남이 그
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의도적인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고 유머스러운 소재와 표현으로
이루어져 잇다. 이와 같이 미소짓게 하는 만족감과 서민생활에 본격적으로 깃들어 있는 페
이소스를 자아내는 데 있어서  이 시인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이마노 타다시(1909~?): 유머와 페이소스가 감도는 평명(平明)한 시를 썼다.
                             그의 시정은 인간의 생사를 대상화하여 작품을 썼다. 
      시집: <돌과 표범 곁에서> <기타 수많은 동행인> 등
 
 
현애(懸崖) / 히시야마 슈우조오
 
 
 나는 21세, 나는 손에 빰을 땐다. 나는 귓밥에 손을 댄다.
나는 21세, 나는 이해하고 있다. 굶음은 단애, 시는 굶음이다.
 
 나는 13세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한 화가의 부인에게 입술
과 뺨을 빼앗겼다. 그리고 총명한 귀를. 나는 13세가 아니다.
과거의 성교(聖橋)를 일찌감치 건넜다. 저 작고 자기만 밝
게하고 있는 겨울을 태양을 향해, 등지고.
 
 나는 21세, 나는 온화함과 순종으로 한 좌석을 지나오고 있다.
나는 확신과 선견과 약간 큰 바람으로 시를 쓴다. 세계사의
일부를 쓴다. 그리고 결국 목을 죄는 저 단애의 시를. 365마리
의 비둘기와 장난치며 굶주리면서.
 
*제목인 '현애'는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로서 '단애'와 마찬가기 말이다.
제 2연의 '성교'는 거룩한 다리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고유명사로 하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희랍정교회의 성당이 있는데, 시인은 이 다리의 이미지
에서 순진했던 어린 날을 회상한다.
*히시야마 슈우조오(1909~1967): 지적인 서정과 조형으로 시단의 주목을 끌었다.
        시집:<현애> <황지(荒地)> <망향> <공포의 시대> 등.
 
오리 / 아이다 쯔나오
 
 
오리는 되지 말라고
그때
오리는 말했는가
 
노오
 
깃을 뜯고
털을 태워
고기를 튀겨 먹어 치운 우리들이
입맛을 다시면서
저녁 안개 피는 호수 가에서
떠나오려 했을 때이다
 
"좀 더 먹어
뼈까지 아삭아삭 먹어야지"
 
우리는 얼굴을 돌려
오리의 웃음과
빛나는 용골(龍骨)을 보았다
 
*작자의 말: "아버지는 말하자면 봉(가모)이었다. 바보 취급을 당하고 경멸되었다.
             '봉이 파를 가지고 왔다(일이 착착 잘 되어 간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술도 마시지 못하던 아버지,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내지 않고 일하러 나가시던 아버지.
벌어온 돈은 조금도 쓰지 못하고 억지로 저금을 해야 했다. 제대로 잡숫지도 못했다. 변
변치 못하다고 아내에게 꾸중을 들어야 했다.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자기는 바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열심히
일했다. 한 마디 불만도 말씀하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소박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 때문에 나는 '봉이 되지 말아라'하는 말을 받아서 '봉
이 되도 좋지 않은가'하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리는 속어로 만만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 곧 "봉"을 말한다.
*용골(龍骨)은 새의 가슴뼈 아래쪽, 중앙을 따라서 마치 배의 용골 비슷하고 불룩 튀어
나온 부분,
*아이다 쯔나오(1914~?): 제2차 대전 당시 중국 대륙을 유량하며 시작(詩作) 생활
                             을 했고, 종전 후 <역정(歷程)>의 동인이 되었다. 우화성이
                             짙고 잔혹한 이미지 속에 인간애를 노래했다.
            시집: <함호(鹹湖)> <광언(狂言)> <너> <유언> 등.
 
처음의 것에게 / 다치하라 도오조오
 
 
하찮은 땅의 이변(異變)은 그 흔적으로 재를 뿌린 이 마음에
계속해서
재는 슬픈 추억처럼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에 집들의 지붕에 자꾸 내렸다
 
그 밤에 달은 밝았고 나는 그 사람과
창에 기대어 말을 나누었다(이 창에 산의 모습이 보였다)
방 구석구석 협곡처럼 빛과
잘 울리는 웃음소리가 넘치고 있었다
 
-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나는 그 사람의 모기를 쫓는 손짓을 보며 저것은 모기를
잡으려 하는 것일까 하고 의아스러웠다
 
어느 날 봉우리에 재의 연기를 뿜기 시작한 것일까
화산 이야기와--또한 몇 날 밤은 과연 꿈에
그 밤에 배운 엘리자베트 이야기로 지새웠다
 
*작자의 말: "네 편지를 읽고 나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내가 하루도
              잊은 일이 없는 라인하르트 엘리자베트를 네가 읽는다니 말이다! 나는 어
느새 라인하르트가 되고, 엘리자베트는 이미 시집가고 말았다! 네가 내 속에 그 얼마
나 즐거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이랴. 매일밤 잊지 말고 읽어 주기 바란다!"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가 등장하는 시토롬의 <호반> 마지막은 '늙은이'라는 단장(短
章)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방안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계속해서 양손을 깍지낀 채 의자에 앉아 멍
청하게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앞에서는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짙은 저녁 어둠이 점
차 넓고 어두운 호반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어두운 물빛은 앞으로 앞으로 이어지고 점차 깊고
멀어지며, 그 마지막인 노인의 눈이 가닿지 않는 먼 곳에 흰 수련꽃 한 송이가 쓸쓸하게 넓
은 잎 사이에 떠 있었다."
*다치하라 도오조오(1914~1939):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인이며, 덧없는 청춘을 노래하다가
                                     젊은 나이로 죽은 청순한 서정 시인이다.
                                     <사계>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집: <훤초(萱草)에 부치다> <새벽과 저녁의 시> <우아한 노래> 등
 
 
제비의 노래 / 다치하라 도오조오
 
 
잿빛으로 너 홀로 내 꿈에 걸려 있는
먼 마을이여
 
그 무렵 짧은 하루 해는 파꽃과 왕골꽃을 피우고
염소가 울며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바닷가 거리의 아침 나절을 갈가마귀들은
떼지어 멀리 서로 부르며 가고 있는
정다운 아침으로 그득하였다-
 
들어 보아라 봄 하늘의 산과 산에
네가 알지 못하는 구름이 타고 있다 밝고 그리고
사라지면서
먼 마을이여
 
 
소담시(小譚詩) / 다치하라 도오조오
 
 
한 명은 불을 켤 수 있었다
그 곁에서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고요한 방이기 때문에 낮은 소리가
구석까지 잘 들렸다(모두는 듣고 있었다)
 
한 명은 불을 끌 수 있었다
그 곁에서 자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물레질하는 여자가 자장노래를 불러 들려 주었다
그것이 창 밖에까지 잘 들렸다(모두는 듣고 있었다)
 
몇 밤이고 몇 밤이고 마찬가지로 지나갔다---
바람이 소리치고 탑 위에서 수탉이 알렸다
-병사는 깃발을 들어라 나귀는 방울을 울려라!
 
그리고 아침이 왔다 정말 아침이 왔다
다시 밤이 왔다 다시 새로운 밤이 왔다
그 방은 텅 빈 채로 있었다
 
* 이 시에 대하여 "동화적 표현이면서 전쟁의 울림소리가 표현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 또 한편 "여름에 펼쳐진 청춘의 이야기"로서 후반은
  "슬픈 사랑"을 뜻한다고 본다.
 
 
잠의 유혹 / 다치하라 도오조오
 
 
잘 자요 얌전한 표정의 아가씨들
잘 자요 부드럽고 검은 머리를 매고
너의 배색머리에 호두색으로 켜진 촛대 주위에는
쾌활한 그 무엇이 남아 있다(세계에는 펄펄 함박눈)
 
나는 언제까지나 노래해 주리라
나는 어두운 창 밖에 그리고 창 안에
그리고 잠 안에 너희 꿈속에
그리고 되풀이하고 되풀이하여 노래해 주리라
 
모닥불처럼
바람처럼 별처럼
나의 소리는 한 가락마다 여기저기서---
 
그러면 너희는 하얀 사과꽃이 피고
작은 초록빛 열매를 맺고 그것이 빨갛게 빨리 익는 것을
짧은 동안에 자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 시는 제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6년에 발표되었다. 시인은 평화를 갈망하며
  생명 긍정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산나리 아가씨 / 다치하리 도오조오
 
 
슬픔은 아니었던 날의 흐르는 구름 아래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외웠다
그것은 하나의 꽃 이름이었다
그것은 노란색 연한 가냘픈 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다
무엇인가 알고 싶어 황홀한 상태였다
그리고 때때로 생각하기를 대체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했다
 
어제 바람에 울던 숲을 지나서 푸른 하늘에
향기로우며 쓸쓸한 빛 한가운데
그 떨기에 피어 있었다---그리고 오늘도 그 꽃은
 
생각 나름이나 뉘우침과 같이-
그러나 나는 너무 늙었다 젊은 몸으로
너를 후회 없이 떠나게 할 정도로
 
*작자의 말: "내 마음을 알 수 없이 되었다. 내 마음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
              이렇게 지나는 것은 좋은 것일까. 너는 분명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
도 분명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밖에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산나리가 꽃 피는 숲속에서 그 사람이 말하는 "산나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나,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헤어졌다. 젊은 나이면서 우리는 너무 늙어버렸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64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24 명시인 - 엘리어트 2015-03-18 0 2902
223 명시인 - 존 던 2015-03-18 0 3052
222 명시인 - 랭보 2015-03-18 0 3036
221 프랑스 명시인 - 빅토르 위고 2015-03-18 0 3627
220 명시인 - 알퐁스 드라마르틴 2015-03-18 0 3213
219 명시인 - 프란시스 잠 2015-03-18 0 3944
218 명시인 - 발레리 2015-03-18 0 2541
217 세계 시인 시모음 2015-03-18 0 3807
216 명시인 - 아폴리네르 2015-03-18 0 2682
215 삶은 짧고 문학은 길고... 2015-03-15 0 2596
214 4분 33초 ㄷ 2015-03-15 0 3440
213 4분 33초 ㄴ 2015-03-15 0 2779
212 4분 33초 2015-03-14 0 2437
211 명시인 - 프랑시스 퐁주 2015-03-12 0 3634
210 명시인 - 푸쉬킨 2015-03-08 0 2442
209 비 관련 시모음 2015-03-07 0 3098
208 보들레르 시모음 2015-03-07 0 3901
207 명시인 - 보들레르 2015-03-07 0 3376
206 릴케과 보들레르 2015-03-07 0 2693
205 푸쉬킨 시 한수 2015-03-04 0 2632
204 막스 자콥과 피카소 2015-03-04 3 2455
203 명시인 - 막스 자콥 2015-03-04 0 2634
202 윤동주 3형제 모두 시인 2015-03-02 0 2555
201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 작곡가 - 이시우 2015-03-02 0 2657
200 서정시 모음 2015-02-24 0 5590
199 백석 시 2015-02-24 0 2745
198 옛 시조 47수 2015-02-21 1 2662
197 시;- 난해시 2015-02-19 1 2392
196 명시인 - 김수영 2015-02-19 1 2326
195 문덕수 장시; <우체부> 2015-02-19 0 2590
194 하이퍼에서 종이냐 전자냐 2015-02-19 0 2448
193 명시인 - 정지용 2015-02-19 0 2440
192 봄맞이 시 모음 2015-02-19 0 2896
191 "새해" 시 모음 2015-02-19 0 2755
190 12월 시 모음 ㄷ 2015-02-19 0 2581
189 12월 시 모음 ㄴ 2015-02-19 0 3993
188 12월 시 모음 2015-02-19 0 2859
187 11월 시 모음 ㄹ 2015-02-19 1 2210
186 11월 시 모음 ㄷ 2015-02-19 0 2547
185 11월 시 모음 ㄴ 2015-02-19 0 2511
‹처음  이전 2 3 4 5 6 7 8 9 10 11 1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