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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올바른 시어의 선택에 신경써야...
2017년 08월 17일 02시 50분  조회:1785  추천:0  작성자: 죽림

올바른 시어의 선택을 위하여 / 강인한 



요즘 들어 영화다운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기억에 남는 여운 있는 영화가 드물다. 그래도 작년에 본 <식스 센스>가 제일 나은 것 같다.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무렵 반전의 묘미를 가장 잘 살린 영화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나는 단연 <식스 센스>를 들고 싶다. 내내 공포 심리 영화로 일관하다가 일순간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바꿔 놓는 인도 출신 젊은 감독의 연출 역량은 탁월한 것이었다. 
그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마이크'가 떠오른다. 배우의 대사를 동시 녹음하기 위한 마이크가 화면에 비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소년이 공부하는 교실의 천장 가까이 내려온 마이크가 보이고, 심리학자 브루스 윌리스가 침대에 누운 소년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마이크가 화면에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글로 치자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편집이 소홀했다는 증거이다. 그 사소한 '옥에 티'가 지금도 내 마음에 걸린다. 예술 작품이 어디 절대적으로 완벽할 수야 있을까마는 적어도 눈에 거슬리는 아쉬운 대목을 그냥 지나치는 건 철저한 장인정신(匠人精神)에 어긋난다. 



어린 시절에 배운 두 편의 동요를 생각해 본다. 
윤석중 선생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①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모이자. 

②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지금은 ①이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로 
②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으로 고쳐져서 노래로 불리고 있다. 

"학교 종이 땡땡 친다."에서 '치다'는 타동사이다. 
타동사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학교 종을'이라고 해야 맞고, '학교 종이'라는 주어를 앞에 내세워야 한다면 '땡땡 울린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고쳐졌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대로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두 번째 동요에서 '담배 먹고 맴맴'을 '달래 먹고 맴맴'으로 고친 것에 대해서 나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동요가 쓰여진 시기가 1940년대쯤이 아닐까. 아기를 혼자 집에 놔두고 어른들이 외출한 그 심심하고 지루한 한나절을 견디다 못해 아기는 이것저것 장난감을 찾아보지만 그 시절엔 적당한 놀잇감이나 간식거리가 없었다. 
나귀를 타고 장에 가야 하는 가난한 시골집이라 아기는 부엌도 기웃거려 보고, 사랑방도 기웃거려 본다. 부엌에서 풋고추를 발견한 아기는 냉큼 그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아, 매워라. 퉤퉤. 또 사랑에 건너가서 아기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맛있게 피우는 쌈지 담배― 곰방대나 기다란 담뱃대에 꾹꾹 눌러 담아 피우는 그것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아기는 거친 쌈지 담배를 무심코 입에 넣어본다. 에이 쓰고 매워라. 퉤퉤. 작자는 이와 같이 귀엽고 장난스러운 장면을 그 노래에서 그려내었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그냥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동요를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담배'가 그만 '달래'로 바뀌어버렸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린이가 어른 몰래 흡연하고 매워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한 어느 근엄한 교육학자의 고지식한 편견이 그렇게 고쳐 부르게 하였을 것 같다. 하지만 '달래'라는 봄나물을 혼자 집어먹고 맵다고 한다는 발상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봄나물이란 것이 밑반찬으로 항상 부엌에 마련돼 있다는 전제가 우습고 또한 고추와 맞먹을 정도로 과연 달래가 매운 것일까. 단순히 원작의 '담배'와 '달래'의 어감이 비슷한 데서 무책임하게 고쳤다는 혐의를 벗을 길이 없다. 

물론 담배란 피우는 것이지, 먹는 건 아니다. 항용 담배 피우는 일을 담배 먹는다고 일상적 대화에서는 허용된다 치더라도 그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나라 청소년의 흡연 문제를 염려하는 차원에서의 충정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차라리 '마늘 먹고 맴맴'으로 고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도 뜻 있을 것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 속의 서정적 자아는 김소월이라는 남성이 아니라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시어들도 여성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우리다,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눈물, 흘리우리다. 
어느 강의실에서 김종길 시인은 이 시의 전반적인 여성적 어조 및 분위기를 말하면서 딱 한 개의 시어 '죽어도'가 쌀 속의 뉘처럼 몹시 거슬린다고 지적하였다. '죽어도'라는 결사 항쟁(決死抗爭) 식의 표현은 지극히 남성적이며 표독한 어김을 풍긴다는 연유에서였다. 소월이 못내 다정다감한 듯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독한 일면도 간직하고 있었음은 그의 음독 자살에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여성적인 어휘들 속에 낀 이 '죽어도'를 어떻게 시 전체의 흐름을 다치지 않으면서 여성적 어휘로 대체할 수는 없을는지. 
김소월 시의 연구에 단연 뛰어난 업적을 보인 오하근씨의 저서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찾아서 나는 '허투로, 다말고'라는 독특한 소월의 어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투로'는 "아무렇지 않게 되는 대로", '다말고'는 "'모두 다 말고'에서 '모두'가 생략된 말이며, 다 그만두고"라는 뜻으로 밝혀져 있다. 덧붙여, 연구의 결과가 아직도 미지수라 할 시어 '즈려밟고'를 오하근씨는 "지레 밟다. 지리밟다. 발 밑에 있는 것을 힘주어 밟다."라고 밝혀 놓고 있는데 그 앞의 가벼운 동작의 표현인 '사뿐히'라는 말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힘주어 밟다"는 의미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움을 떨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진달래꽃>의 끝 연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다말고/ 허투로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로 맺었더라면 '죽어도'의 서릿발 치는 느낌이 곱게 가셔지면서 시의 여성적 분위기를 일관되게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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