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世界 색점선
한때 장차 미술을 전공할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문학을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지만, - 마 광 수 -
《정신보다는 육체에,
전시회 2009 마광수展 청담동 갤러리아순수(4월)
2009 마광수展 용인 수지 아트센터순수(5월) |
▲ (사진 = 장해순 기자) ⓒ2011 CNBNEWS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포르노그래피 작가’ ‘외설 교수’ 마광수… 그를 따라다니는 무수한 빨간 딱지들.
그런 마광수가
20년간 자신을 둘러싼 숱한 가십과 색안경을 걷어내고
'소년 광수'로 돌아가 동심을 노래한다.
산토리니서울에서 마광수의 개인전 ‘소년, 광수’가 열렸다.
올해로는 첫 전시이지만 벌써 그가 아홉 번째 선보이는 그림 전시회다.
선정성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글만큼, 그동안
그의 그림 역시 ‘포르노그래피’라는 꼬리표를 달 만큼 뜨겁고 자극적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예전 작품과는
너무 상반된 느낌으로 ‘소년의 동심’을 담아냈다.
‘광마’ 마광수가 아닌 ‘소년’ 광수의 모습으로 그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동심이 꾸는 꿈, ‘포르노’
기존에 그가 선보인 ‘마광수다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번 작품에 대해
그는 오히려 ‘다르지 않음’을 설명했다.
“저는 글을 쓸 때도 ‘야(野)한 것’에 중점을 두지만 그림을 그릴 때
역시 ‘야한 것’에 중점을 둡니다. 야하다는 것이 무조건 선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타고난 자연의 성정(性精)에 솔직함을뜻하는 거죠.”
마광수의 작품에서 ‘야(野)’는 곧 동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본연에 순응하는 것. 그것은 때로 ‘야한’ 포르노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성경대로라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기 이전 아담과 이브가 갖고 있던
심리 상태라고 할 수 있겠죠. 도덕과 윤리를 뛰어넘는 순수
한 본능의 세계, 그런 세계가 곧 야한 세계요, 야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성범죄율의 10배에 달하는 한국에 대해 그는 ‘성의 자유가 없으니
삐뚤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한국의 닫힌 성문화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그의 작품 속에 ‘야’는 결국 순수한 본연의 결정체,
발가벗은 ‘동심’으로부터 꾸는 꿈 인 것이다.
▲ 그녀의 만도린, 2011 ⓒ2011 CNBNEWS
▲ 광마의 꿈, 2010 ⓒ2011 CNBNEWS
춤추듯 노래하듯, 캔버스에 담아내는 즉흥연주곡
글과 함께 어우러지는 마광수의 그림은 ‘문인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어떤 그림은 ‘그림’ 자체가 강조되기도,
또 어떤 것은 ‘글’이 더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문인인 그의 그림에 글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이처럼 그림과 글은 그의 화폭 위에서 분방하게 어우러진다.
이는 계획된 구상과 정형화된 규칙, 방법 속에 일궈지는 것이 아닌,
‘붓 가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이라는 증거다.
그의 그림은 모두 ‘그때그때 마다의’ 즉흥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글이 먼저, 또 다른 작품에서는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는 것은
그가 일체의 구애 없이, 그저 손 가는대로 단번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냈음을 보여 준다.
재료에서도 제한이 없다. 그의 작품을 담아낸 종이나 채색 재료 모두 일상적이고
가벼운 느낌이다. 마치 동네 어귀의 문방구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재료들 말이다.
▲ 육교에서, 2011 ⓒ2011 CNBNEWS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큰 것’ ‘비싸 보이는 것’을 좋아하죠.
문학에서만 봐도 '대작주의'라고 해야 하나요?
무조건 크면 작품이 좋고 비싸다고 생각하니까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단출한 종이 위에 소박하게 그려낸 그림이면 '저렴한 그림'이라는
인식이 참 웃긴 거죠.”
이런 현실에서 ‘팔릴만한 작품’을 그리고자 했다면
그 역시 ‘비싸 보이는’ 재료들로 그림을 무장했을까?
‘돈 벌자고 그림 그리는 것이 아니다’는
마광수는 물질적인 것을 기대해서 ‘크고’ ‘빛 좋은’ 것들을 담아내지 않는다.
이처럼 소박하고 일상적인 그의 재료들은 그가 말하는
‘동심’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듯하다.
물질적인 것이라든가 그 어떤 구애 없이 그저 ‘마음으로 좋아 그리는 그림’인 것이다.
글 쓰는 마광수든, 그림 그리는 마광수든
“소설이 중노동인데 비해 미술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그려지죠.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참 어렵더라구요.
아이디어가 잡히고 나면 즉흥적으로 즐겁게 그려 나갑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마광수.
글만큼이나 그림에도 애착이 큰 그는 오는 8 월에도 삼청동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그 어떤 매체의 모습으로든,
세상을 향해 그가 던지는 여과 없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닫힌 마음을 열고 그의 진심어린 동심을 느껴 볼 수 있다.
“저도 이제는 재평가 받고 긴 세월 동안 받은 ‘왕따’의 설움을 면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나 마광수를 무조건 ‘변태’라고들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모국에서의 이런 시선이 서글픕니다. 오히려 타국인 일본은
저의 문학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데 말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런 색안경
을 거둬내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외설’이 아닌, ‘소년 광수’의 동심을 통해서요.”
이선유 기자
마광수 개인전 <소년, 광수> :
|
|
마광수, "야(野)함이란 순수한 본성에 가깝죠"주간한국 2011-02-24 <소년 광수> 주제로 개인전.......문인화 형식의 50여 작품 선보여 마광수 교수에 관한 대부분의 인터뷰 기사는그의 투덜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지나온 길 을 돌이켜보면 당연하다. 억압과 압제의 시기였던 군사독재 정부 이후 찾아온 문민정부도 '성 (性)'이라는 테마 앞에서는 서슬 퍼런 칼을 휘둘렀다. 그 칼에 다친 사람 중 가장 큰 희생자가 바로 마광수 교수다. 1990년대 대부분을 '표현의 자유' 라는 가치를 위해 검찰과 싸운 그는 오랜 싸움 끝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2000년대 이후에도 마찬가지. 언론과 학계는 다원주의의 도래, 문화 민주주의 등 문화 패러다 임의 변화를 외쳤지만, 성에 대한 인식은 이런 급변하는 흐름에서 빠져 있었다. '마광수'라는 이름이 아직도 1990년대에 씌워진 외설 작가의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할 말이 많다. 하고 싶지만 다 못한 말들을 글로 써왔다. 그가 글로만 그 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그, <소년 광수> 미술 전시회는 문학적 재능 못지않게 그림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드러냈다. 대학 진학 시에도 미대를 지원하려고 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자신의 그림들을 모아 개인전을 연다. 2011년 2월 18일부터 갤러리 <산토리 니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마광수 교수의 작품 약 50여 점을 모았다. 작품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소년 광수'. 우리가 알고 있는 마광수가 아닌, 그 안에 있 는 근원적인 마광수의 자아가 담긴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전시가 처음은 아니다. 24년지기인 서양화가 이목일 화백과 함께 <에로틱 아트 4인전>, <우정의 2인전> 등을 여는가 하면, 1994년에는 개인전도 열었다. 이후 서울과 미국에 서 수차례 전시회를 연 그는 글과 그림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에로티시즘을 설파해왔다. 하지만 동심을 다룬 만큼, 이번 전시 <소년, 광수>에서 우리가 알던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의 전도사 마광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득 소년 시절의 마광수가 궁금해진다. "어릴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어요. 힘센 놈들한테 얻어맞고 돈 뜯기며 당하고 살았죠. 나는 폭력에 약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내가 계속 주장하는 것도 탐미적 평화주의죠." 모든 아이들의 권장도서인 <삼국지>를 그는 무척 싫어했다. 대신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금병 매>. 그는 얼마 전에 <금병매> 완역판이 나왔는데 역시나 잘 안 팔린다며 우리 사회의 경색적인 풍토를 지적한다. "문학에서 자꾸 교훈을 찾으려고 해요. 물론 사회 개조도 작가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칼럼만으로 충분한데, 왜 창작에서까지 그것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고흐의 서간집처럼 그림에 짧은 글을 넣는 문인화 형식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은 소박하지만 즉흥적인 드로잉과 강렬한 색채로 문학 세계와의 유사성을 증명한다. 글이 아닌 그림에서도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경지다. 이에 마 교수는 '글과 그림은 원래 통한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원래 '시(詩), 서(書), 화(畵)'는 문인들이 습득해야 할 분야였다는 이유다. 문단에서 그처럼 글과 그림을 자유롭게 다루는 작가는 이외수가 있다. 두 사람은 예전에 <4인의 에로틱 아트> 전에서 함께 전시를 한 적도 있다. 화가 마광수가 좋아하는 작가는 고흐와 천경자 화백. 듣고 보니 원색을 주로 쓰는 강렬한 색감 의 화풍에서 닮은 점이 있다. 또 그림뿐만 아니라 글솜씨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작가라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도 마 교수 일생의 주제인 '야함'은 여전히 나타나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벗은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마 교수는 그동안 '야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야(野)'자를 써서 '자연의 본성에 충실하다'라고 사용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야함이란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는 순수한 형태의 본성에 가깝다. 마 치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처럼 천진난만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마 교수는 이런 원래의 뜻이 오랫동안 '천박하다'라는 뉘앙스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예수님 말씀에도 '너희가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리니'라는 내용이 있습 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점차 '체면'을 차리게 돼서 그 순수한 야함을 잃어가는 것이죠." TV를 켜면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들이 짧은 옷을 입고 나와 엉덩이를 흔든다. 언론 은 이를 '삼촌 팬덤'으로 명명하기도 하고, 혹자는 '미성년 여성의 성 상품화'를 언급하며 신랄 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이 마광수라는 성의 아이콘을 넘어서는 성 전성시대 라는 점이다. 하지만 마 교수가 보기에 성은 여전히 억압받는 대상이다. "언젠가 KBS 사장이 걸그룹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겠다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G - 드래곤은 외설스러운 퍼포먼스를 했다고 비난을 받기까지 했죠. 이미 현실의 청소년들의 성 의식은 앞서 있는데 겨우 퍼포먼스 정도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는 이런 이상한 엄숙주의, 경건주의의 배후로 기독교를 지목한다. 처음에는 이게 유교 탓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근본주의 기독교가 지배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이처럼 성에 대해서라면 급진적인 의견을 피력한 탓에 그에 대한 인식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막론 하고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잡음은 그의 40 ~ 50대를 각종 소송으 로 보내게 했다. 어느덧 올해로 환갑이 된 마광수 교수. 일평생을 에로티시즘에 바쳐온 그가 느끼는 '노년의 에 로티시즘'은 어떨까.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하면 한풀 꺾일 만도 하지만, 그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인식은 한층 더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답한다. "예전에는 결혼은 선택이라고 주장했다면, 지금은 아예 결혼하지 말라고 제안해요. 지금도 이 혼율은 점점 치솟고 불륜, 별거 커플도 많아지는데, 결혼제도는 앞으로 50년 안에 무의미해질 겁니다. 장담합니다." '야함'에 대한 천착을 통해 자신만의 공고한 에로티시즘 세계를 구축해온 마광수 교수. 이번 전시를 통해 '야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야한 작가' 마광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그는 다음에는 '야함에 대한 동화'를 구상하고 있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에요. 야함을 동심에 대한 관점으로 쓰는 거죠. 그럼 걸리지도 않을 거고. 하하하~" ///[인터넷한국일보] 송준호 기자 사진=임재범 기자 |
>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