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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님, 력사앞에서 님의 "문단유사" 알아보기
2017년 09월 21일 02시 48분  조회:2198  추천:0  작성자: 죽림
5일 자살한 논쟁적 작가 마광수(66)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소년 출세’한 시인이었다. 윤동주의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9년 불과 스물 여덟살 때 홍익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1984년부터 모교인 연세대 강단에 섰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로 ‘외설 논란’이 시작됐지만, 법(法)이 그에게 수갑을 채운 것은 ‘즐거운 사라’(1991)가 출간된 이듬해인 1992년이었다.

‘사건의 출연자’는 화려했다. 당시 수사를 지시한 건 현승종 국무총리, 담당 검사는 서울지검 특수2부 김진태 검사(검찰총장 역임)였다. 마씨의 변론은 김대중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가 맡았고, 음란성을 판단한 감정인으로 쟁쟁한 이름들이 나왔다. 92년 1심 법원은 마 교수에게 음란한 문서 제조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다. 마씨는 항소했지만, 2심·3심에서 번번히 기각되면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었다.

‘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 그는 교단과 문단에서 ‘유랑’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대중은 ‘정말 그 책이 그렇게 문제가 있었나’ ‘음란물의 잣대는 무엇이었나’ 같은 의문을 품으며 20여년 전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내로남불? 재조명되는 안경환 감정서
이 궁금증 때문에 ‘추억 강제 소환’된 사람이 재판 감정인 중 한 명이었던 안경환 서울대 교수다. 안씨는 ‘법과 문학’ 강좌를 담당하는 서울대 법대 교수 자격으로 2심 재판에서 “즐거운 사라는 음란물이 맞다”는 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마광수 교수 사건 2심 감정인들의 의견.
안씨는 감정서에서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없는 ‘법적 폐기물’에 불과하다”고 마씨 소설을 평가했다. 이태동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도 “(마씨에 대한) 인간적 비애와 연민을 느낀다”며 “(감정서를 내기까지)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고뇌를 겪었다”고 서술한 뒤, “마씨가 작품의 주제를 성 해방과 인간의 자아탐색이라고 하는 건 불량상품을 과대포장하기 위한 ‘어거지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감정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안경환 교수의 감정서가 주목받는 것은 시간이 흘러 안 교수가 20여년 전 마광수 교수와 비슷하게 ‘책’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무부장관 후보에 올랐던 안씨는 지난해 출간한 책 ‘남자란 무엇인가’에서 여성 비하적 표현을 써 ‘성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자유 의지를 가진 여성(사라) 관점에서 성과 인간의 해방을 다룬 ‘즐거운 사라’와는 달리, ‘남자란 무엇인가’는 “남자로 태어나 엄청난 특권을 누린 세대이지만 남자답게 사는게 너무 힘들었다”고 하는 남성(안 교수)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책이다.

“모든 남성은 강간범이 될 수 있다” “난교는 남자의 생래적 특징이다” “젊은 여자는 정신병자만 아니라면 거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구걸하느니 당당하게 매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위 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술자리에는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한다. 정 없으면 장모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일부 표현이 논란이 되자 안씨는 “종합적인 내용을 읽어본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시대착오적인 남성들 행태에 경종을 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성 사회의 대변혁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기술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책 논란에 이어 안 교수는 과거 상대 여성의 의사에 반해 도장을 위조, ‘강제 혼인 신고’를 했다가 ‘혼인 무효 소송’까지 당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안 교수는 혼인 신고 문제에 대해선 “20대 중반에 벌어졌던 일로 당시 나만의 이기심에 눈이 멀어 사랑했던 사람과 가족에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위였다”고 사과했다.

<디테일추적>은 1994년 안경환 교수가 법원에 제출한 감정서를 입수, 감정 내용 전문을 공개한다. 안 교수가 감정서에 인용한 ‘즐거운 사라’의 성묘사도 일부 실었다.
성 표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와 안경환의 '남자란 무엇인가'. /조선일보DB
#감정내용
문1. 이 작품 중 성에 관한 묘사와 서술이 그 정도와 수법에 있어서 노골적이고 상세한가?
감정결론: 그렇다.

작품의 말미에 부기한 <작가의 말>에서 피고인은 이 작품의 저술 목적을 ‘작가의 당위론적 세계관의 개입을 배제한’ 성의 사실적 묘사를 통한 리얼리즘의 추구에 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작가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성에 관한 묘사는 성을 주제로 하는 통상적인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묘사보다 그 정도와 수법에 있어서 상세하고 노골적이라고 판단됩니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사라는 최소한 여섯 사람의 이름이 밝혀진 특정 남성과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1대1의 남녀간의 성행위 뿐만 아니라 여성과의 동성애 장면, 남 1대 여2의 혼음, 그리고 자위행위의 장면도 등장합니다. 성행위의 태양도 오랄섹스, 항문섹스, 카섹스 등 다양합니다. 어느 경우에나 성행위의 묘사와 서술은 노골적이고 상세합니다.

예를 들어 오랄섹스의 장면 묘사를 보자면

『(중략) 나도 팬티를 벗어 던지고 치마를 위로 젓힌 다음 그에게 핥아달라고 했다.…그의 흐물흐물한 혀끝이 내 사타구니 사이를 미끌미끌 스치고 지나갔다.…김승태가 오로지 의무감에 넘쳐 내 ○○○○○를 혀끝으로 힘겹게 찾아 헤매는 게 안쓰러워 보이고 또 감질만 나서, 나는 손으로 그의 입술을 밀어버리고 다시금 ○○○를 향해 입을 벌리고서 엎어졌다. 혓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한참 핥아주고 나니까, 그제서야 드디어 쨀쨀쨀 정액이 흘러 나온다. 생각보다는 수압(水壓)이 별로였다. 나는 그것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받아 마셨다. 별로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171-172면)』

『나는 왠지 신경질이 나서 김승태의 윗도리까지 홀라당 다 벗겨버렸다. 그리고는 혓바닥에 잔뜩 힘을 주어 그의 배꼽에서부터 젖꼭지까지, 그리고 젖꼭지에서 모가지 언저리까지 날름날름 핥아 나갔다.…결국 그는 나를 발딱 젖혀 놓더니, 빳빳하게 선 ○○○를 앞장세우고 씨근씨근 돌진해왔다. (편집과정서 생략)… (176-177면) 』

『그는 미칠 듯이 핥아대다가 내 몸에 침을 뱉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몸 전체에 술을 붓고 핥아 먹기도 했다. (편집과정서 생략)… (293면) 』

이 밖에도 신원이 특정하지 않은 남자와의 성교 장면을 회상하거나 막연히 성행위를 상상하는 장면도 지극히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기철이의 ○○○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그 아래 매달린 ○○속의 방울 두 개를 내 손바닥 안에 넣고 살살 비벼본다. 그리고 말랑말랑한 ○○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톡톡 건드려도 본다.…어느새 그놈이 성을 낸다.…그 녀석은 몸 안의 살덩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좁은 터널 속을 이리저리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닌다. (33면) 』

주인공이 자위를 하는 장면의 묘사 또한 노골적이고 상세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나는 땅콩 서너 알을 질 속에다 집어넣고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보았다.…나는 불두덩 근처가 차츰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한 주먹의 땅콩을 ○ 속에다가 쑤셔 넣어본다. 꽉 찬 만복감, 아니 만질감(滿膣感) 같은 느낌이 항문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올라오는 것이 거 참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근사하다. 나는 다시 ○ 속에 꼭꼭 숨어있는 땅콩 알갱이들을 뾰족한 손톱 끝으로 한알 한알 빼내어 입에다 넣고 먹어본다. 처음에는 빼내기가 쉬웠지만 나중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깊숙이 박혀 있는 땅콩 알갱이를 빼내려고 손가락들을 집어넣고 휘저어 대다보니 정말로 저릿저릿 하면서도 그윽한 쾌감이 뼈 속 깊숙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손가락 동작을 아주 천천히 하여 ○ 속의 땅콩을 우아한 방법으로 수색해내기 시작했다. 얼근한 취기와 함께, 남자의 ○○○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싱거운 오르가즘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지속적인 오르가즘이 찾아왔다. (30면) 』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비록 성을 주제로한 문학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불필요하게 상세하고 노골적이라고 판단됩니다.

문2. 그러한 묘사와 서술이 이 사건 작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비중’의 의미를 계량적인 측면과 주제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두가지 측면에서 모두 이 작품에서 성행위의 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히 계량적인 측면에서 관찰하면 이 작품은 전체 본문 300면 정도(백지 간지 제외)의 분량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을 성행위의 묘사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행위의 묘사는 저술의 특정 부분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전반에 걸쳐 시종일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행위의 묘사를 제외한 나머지의 이야기의 전개는 본 감정인의 판단으로는 단지 성행위와 성행위 사이를 연결하는 접속어에 불과합니다. 

또한 작가 스스로가 천명하듯 이 작품은 ‘성’에 관한 것이고 문학적 기법에 있어 사실주의를 표방한다고 내세우는 만큼 성행위의 묘사가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문3. 그러한 묘사와 서술이 이 사건 작품 전체의 내용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작품에 표현된 사상 내지는 주제와 소설의 구성상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는가?
만약 이 작품을 예술적 가치를 보유한 문학작품으로 인정한다면 (달리 평가하는 감정인의 사견에 관해서는 후술하는 3. 감정인의 사견 참조) 이 작품의 주제는 성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자신도 이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의 해방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이기 때문에 성행위를 상세하고 노골적으로 묘사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작가는 ‘사실적 기법’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마치 성을 주제로 한 리얼리즘 작품은 필연적으로 성행위의 노골적이고도 상세한 묘사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실주의라고 번역되는 리얼리즘의 본질은 작가가 주장하는 듯한 현실의 복사 내지는 모사를 통해 당대의 정확하고도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소재 선택과 기법, 문제 등을 지칭하기는 하나 반드시 이러한 의미에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정확한 필력에 의해서도 현실의 정확한 모사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의 리얼리즘의 논의는 이러한 기계적인 현실 모사보다는 ‘현실의 전체 내지는 핵심’의 뜻으로 이해하여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성에 관한 현실의 전체 내지는 핵심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성행위에 관한 적나라한 묘사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피고인의 주장대로 성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성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하더라도 성을 다루는 문학작품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묘사의 기법이 통속성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이 점이 다른 주제를 다루는 작품과의 차이점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실험과 달리 성에 관한 실험은 엄격한 의미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성의 존재나 이에 관한 실험 자체는 인류사에 끊임없이 전개되어 온 것으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실험을 어떻게 공표하는가의 문제가 시대에 따라 제기되어 왔을 따름입니다. 성에 관한 사실적 묘사가 예술이 되느냐 아니면 음란물이 되느냐는 묘사의 기법이 통속성을 극복했느냐 여부(흔히 외국의 판결이 문제삼는 ‘승화시켰느냐’ 여부)에 의해 일응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의 성의 묘사는 이러한 통속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감정인의 판단입니다.

문4. 그러한 묘사와 서술에서 만약 자극이 유발된다면 이 작품에서 의도된 작가의 사상성과 작품의 예술성에 의해 어느 정도 완화된다고 평가하는가?
감정인의 소견으로는 음란성과 예술성은 법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호 배척되는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정인의 사견>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없는 음란물이라고 판정하기에 이 문항에 대한 답변을 생략합니다.

문5. 이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즉 작품 전체의 내용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의도된 작가의 사상성 내지는 주제는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객관적으로 독자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상성 내지는 주제는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객관적으로 독자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상성 내지는 주제와 다르다면 그것도 또한 무엇인가?
질문의 전반은 문항 3과 관련하여 답하였다고 생각됩니다. 되풀이하자면 성과 인간의 해방이 작가가 의도한 사상성 내지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의 후반에 관련하여 답하자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의 음란성에 주목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사실적 묘사’라는 명분 아래 성행위의 노골적인 묘사가 이어져 있고 독자는 작가가 의도했다고 표방하는 성과 인간의 해방이라는 사회적 내지는 철학적 주제보다는 성행위 그 자체의 사실적 묘사에 주목할 것입니다. 

작품의 군데군데 주인공의 가벼운 일상적 갈등이나 인간적 고뇌, 또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서술과 묘사가 등장하나 이러한 서술과 묘사는 작품 전체에 걸쳐 이어지는 성행위의 묘사를 위한 최소한의 스토리 내지는 본 주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삽화에 불과한 정도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자신이 밝힌대로 “일체의 도덕적 코멘트나 이른바 ‘전망의 제시’같은 것을 무시하고 헷갈리고 방황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아이덴티티 identity를 확립해 나가려고 애쓰는 한 여대생의 시각을 통해 전환기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를 조감해 보려”했다고 할지라도 통상적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가치관의 문제보다는 대상과 태양을 바꾸어가며 행하는 각양각색의 성행위의 묘사에 더욱 주목할 것이 분명합니다.

문6. 이 작품은 독자에게 성적 충동적 모방심을 자극시키고 성범죄를 유발하는 등 사회적 현실로서 위험을 가져 올 우려가 있는가?
답: 그럴 위험은 없다고 본다.

보편적인 윤리의식과 충동적인 행동의 자제력을 보유한 독자라면 이 작품을 읽고 성범죄에의 충동을 느끼고 이를 실행에 옮길 위험은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이 작품에 묘사된 성행위로서 현행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는 단 한건 뿐, 배우자가 있는 김승태와의 성행위뿐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현행법상 간통죄에 해당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혼외정사는 모든 문학작품에서 지극히 일반적으로 다루는 이야기이며 통상적인 의미의 성범죄의 분류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둘째, 이 작품은 성의 해방을 주장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 간의 자유의사에 기한 합의에 의한 성행위만을 미화시킵니다. 폭력이나 기망 등 부자연스런 수단에 의한 성행위를 고무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혐오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사라는 일체의 성행위를 자신의 자유의사에 기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도 아래 행합니다. ‘학습의 실천’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작가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성의 해방, 그 중에서도 여성의 성적 해방은 여성이 자유로운 인격의 주체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고 충동적인 모방심리에 의해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의 행위를 현실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인물이 될지는 모르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7. 결론적으로 현재의 우리 사회를 기준으로 하여 그 작품 자체로서 통상적인 성인 독자로 하여금 성욕을 자극하여 흥분케 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건전한 성 풍속이나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다고 보는가?
‘통상적인 성인’ 독자의 개념은 지극히 모호합니다. 법이 규정하는 성인의 범위는 지극히 광범합니다. 연령만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성적 능력이 지극히 왕성한 갓 성년이 된 사람에서부터 육체적으로 성행위의 능력을 상실한 국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한 성별, 성경험, 종교적 성향 등에 따라 더욱 세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통념의 기준이 되는 ‘통상적인 성인’이란 실제로 특정할 수 없는 하나의 이념형입니다. 음란성에 관한 외국 법원의 판결도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주의 의무의 기준이 되는 ‘합리적인 인간’ 등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감정의 전제조건 (6), (7)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감정인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기초로 판단해 볼 때, 감정인이 예상할 수 있는 통상적인 성인 독자로 하여금 저급의 성욕을 자극하며, 성적 수치심 내지는 불쾌감을 조성한다고 판단합니다.

#감정인의_사견
(안경환 교수는 감정서에 사견을 따로 넣었다.)

감정인은 법리의 구성상 음란성과 예술성은 상호 배척되는 개념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 출판물이 ‘음란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가치가 있을 수 있다’라는 일반의 인식은 우리 법상의 법리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반의 인식을 법리로 수용하자면 개념상의 혼란이 초래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헌법 제 22조 제 1항은 명백히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음란물을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한다면 이에 대해서도 헌법적 차원의 보호를 부여해야 되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음란물은 헌법이 보호할 만한 예술적 가치가 결여된, 이를테면 법적 폐기물인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노골적이고 상세한 성행위의 묘사가 바로 음란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음란성’이라는 개념은 사실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실판단의 결과 도출된 ‘법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이 보호하는 예술 작품은 법적으로 음란하지 않는 작품에 한정됩니다.

특정 작품이 법적으로 음란하느냐의 여부는 법리상 아래의 세 가지 기준에 의해 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전체로 해당 출판물의 주체와 묘사가 작품을 접하는 동시대의 사회의 평균성인의 저속(低俗)한 성적 충동을 자극하고, 둘째, 성행위가 통상인에게 도의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방법에 의해 묘사되고 있고, 셋째, 작품이 전체적으로 보아 심각한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가치를 결여한다면 음란물에 해당한다고 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심사기준은 언론, 출판, 학문, 예술의 자유가 잘 보장되어 있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오랜 시일에 걸쳐 정립한 기준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판결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러한 법리를 적용하여 특정 출판물의 음란성 여부를 판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여 본 건 출판물 『즐거운 사라』를 판정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이 작품에 나타난 성행위의 묘사는 성에 관한 예술적인 묘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 작품으로부터 예술적 가치를 얻고 싶어 하는 독자는 끝까지 읽는 무익한 노력을 기꺼이 포기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성은 도시생활에서의 수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생활에 식용수와 세척용 상수도가 필수적인 만큼 상수도에서 효용을 다한 폐기수와 배설물을 처리할 하수도 또한 필요악입니다. 인간의 생활에도 후손의 창출과 사랑의 표현이라는 숭고한 기능의 성이 있듯이, 인간의 저급한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성 또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양자는 무대가 다르고 영역이 달라야 합니다. 도시계획의 요체는 상수도와 하수도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서로 혼화(混和)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듯이 성을 묘사하는 출판물도 각기 지정된 활동 영역 내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성에 관한 출판물도 그 형태와 내용에 따라 문학작품과 문학작품이 아닌 단순한 음란물들은 무대가 엄격히 구분되어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를 법적으로 먼저 경험한 많은 나라에서 ‘성인서적’ 또는 ‘포르노그라피’ 등속의 이름으로 분류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을 개설하는 등 예술작품과 음란물의 유통경로를 엄격히 분리합니다. 이를테면 성적 묘사에 관한 공식적인 하수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의 상수도와 하수도를 법적 구분을 하지 않고 공적으로는 하수도를 전면적으로 폐쇄하고 금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출판매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황색주간지’가 한 에입니다. 이러한 매체에 실린 글은 일반적으로 심각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독자는 거부감을 덜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매체를 선택한 독자는 스스로 ‘문학작품’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에 관한 묘사도 주로 저속한 성적 충동을 자극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소설 『즐거운 사라』에 나타난 성의 묘사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판단됩니다. 위의 비유에 입각하면 『즐거운 사라』는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 있어야 함이 마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상수도의 무대에서 막이 잘못 오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 작품에서 성행위 및 이와 관련된 대화의 묘사는 통상인에게 도덕적 수치감과 불쾌감을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본문 (1)에서 예시한 묘사는 정상적인 성인 독자의 건전한 성감정을 해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행위와 관련하여 군데군데 등장하는 “네 멘스를 받아서 거기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 (293면) 등속의 표현은 아이디어의 신규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감정인의 견해로는 이 작품은 적어도 현재의 기준으로는 법이 창작물로 보호해야 할 정도의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가치가 결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작품이 성을 노골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출판 시에는 시대에 뒤진 법의 제재를 받았으나 후일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에 비유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에밀 졸라의 『나나』, D.H. 로렌스의 『무지개』와 『채털리 부인의 사랑』,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 또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도 출판 당시에는 법의 규제를 받았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 이 작품에 대한 평가도 예술에 무지하고 시대에 뒤진 사람들의 우매한 고집이라고 매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성에 대한 비통념적인 묘사라는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법의 제재를 받은 것일 뿐, 작품의 문학적 가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음란물로 법의 제재를 받은 출판물의 절대다수는 후세에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고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법이 보호하는 문학적 가치가 있는 성의 묘사와 음란물에 불과한 성의 묘사와의 차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즐거운 사라』는 후세인들에 의해 선구적인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음란물에 불과하며, 혹시 다시 보는 독자가 있다면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 때문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법적 심사기준에 입각하여 본 감정인은 피고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는 헌법이 보호하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단순한 ‘음란물’에 해당한다고 판정하는 바입니다.

1994년 2월 3일
사건 93노446의 감정인
안경환

서울 형사지방법원 항소1부 귀중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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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수정 기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사망으로 그를 나락에 빠뜨린 작품 ‘즐거운 사라’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마광수 전 교수의 ‘즐거운 사라’는 음란문서 제작 배포란 이유로 판매금지됐고, 마광수 전 교수도 유죄를 받고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됐다.

 

‘즐거운 사라’를 담당한 검사는 김진태 전 검찰총장. ‘즐거운 사라’가 논란이 되자 당시 서울지검 수뇌부는 고심 끝에 특수2부 소속이던 김진태 당시 검사에게 수사를 지시했다. 김진태 검사가 1만여 권의 장서를 탐독할 정도로 인문학에 조예가 깊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김진태 검사는 처음에는 이 사건을 주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던 그는 책을 읽고 난 뒤에 "이건 문학이 아니다"며 사건을 맡았고 출판사 사장까지 구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 ‘이미 한 차례 제재를 받은 책을 출판해 처벌이 불가피하다’라는 강경론을 펴기까지 했다고.

무엇보다 여성관에 대한 논란 등 공직자 검증 무대에 올랐던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즐거운 사라’에 대해선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다. 그는 1994년 2월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제조 혐의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미달하는 음란물"이라는 감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성을 표현한 작품이라도 숭고한 문학작품이 상수도라면 인간의 저급한 본능만 충족시키는 음란물을 하수도에 비유할 수 있는데, '즐거운 사라'는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야 마땅한 작품”이라 힐난했다.

한편 ‘즐거운 사라’로 고난을 겪은 마광수 전 교수는 2011년 ‘돌아온 사라’를 펴냈다. 그를 '광수 아저씨'라 부르는 여대생과의 질펀한 육체적 관계를 노골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당시 마광수 전 교수는 “부디 단순한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이중적으로 점잔 빼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나의 화두는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다. 여기서 ‘자유’와 ‘방종’의 억지스런 구별은 무의미하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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