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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왜...
2019년 09월 17일 00시 04분  조회:2719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나
2019년9월16일 

 

영화 '동주' 스틸컷(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용정시에서는 길가에 우뚝 솟은 웅장한 바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그 유명한 '선바위'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사격훈련을 한 곳으로도 알려졌다
 

선바위가 내려다보는 마을이 있으니 바로 '명동촌'이다. 이곳은 북간도 한인 문화의 발상지로 불리운다. 북간도로 옮겨와 새로운 터전을 다졌던 한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까닭이다. 

명동촌은 한국 근대사에서 눈에 띌 만큼 모범적인 공동체로 평가된다. 이곳은 민족교육의 산실이었고 이상적인 기독교 신앙촌이었다. 명동촌에서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신분의식을 타파하고 평등주의와 같은 시대정신을 꽃피웠다. 바로 이곳 명동촌에서 시인 윤동주(1917~1945)가 태어났다.

한반도에서 북간도로 넘어와 명동촌을 터전으로 다진 1세대에 이어 등장한, 윤동주가 포함된 명동촌 2세대는 부모들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 특히나 당대 독립운동가들이 일궈낸 승리의 기쁨은 물론 패배의 아픔까지 모두 듣고 자란 그들은, 민족 의식과 기독교 사상이 결합한 교육을 받으면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몸에 익히고 자랐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의 삶과 사상을 압축해 놓은 듯한 '서시'는 분명 이러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리라.

◇ "윤동주가 생각했던 하늘…관념 아니라 뚜렷한 의미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여느 명동촌 집안처럼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와 기독교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지식을 쌓고 삶의 태도를 다졌다. '십자가'와 같은 그의 시에서는 희생과 헌신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기독교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윤동주는 1936년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시, 시, 산문 등을 발표하면서 시집 간행의 꿈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러나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돼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치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시인으로서 윤동주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는 극에 달한 일제의 탄압 탓에 한국어 사용과 창작이 금지됐던 시기다. 1941년 윤동주가 우리말 시집 출간을 추진하다가 무산된 데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결국 그의 사후인 1948년, 어렵사리 보존된 육필 원고가 친지들의 도움으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태어났다. 널리 알려진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등 윤동주의 생을 대변하는 시들은 그렇게 빛을 봤다.

익히 알려졌듯이 윤동주 시에는 '하늘'이 자주 등장한다. 윤동주 연구에 천착해 온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는 윤동주의 하늘을 크게 세 가지 의미로 풀이한다.
 

그 첫 번째는 '맹자'에 나오는 하늘이다. 김 교수는 "윤동주의 하늘이 나오는 '서시' 문장을 주의해 봐야 한다"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문장은 '맹자'에 나오는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을 번역한 문장"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의미는 '자아성찰의 대상'으로서 하늘이다. "(윤동주 시) '자화상'의 '우물'이나 '참회록'의 '거울'처럼 하늘은 자신을 반성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의미가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김 교수는 "윤동주가 생각했던 하늘은 관념이 아니라, '맹자의 하늘' '자아성찰의 하늘' '기독교의 하늘'로 뚜렷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 "윤동주 정신,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우쳐 줘"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시인 윤동주는 자신이 발 붙인 시대, 그리고 그 험한 시대를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을 향했던 두 눈과 가슴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남긴 시들은 그 뚜렷한 증거다.

김응교 교수는 "윤동주 '서시'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가 가리키는 대상은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로 뚜렷하다"며 "윤동주의 '오줌싸개 지도' 속 부모가 없는 아이들, '병원'의 환자, '해바라기 얼굴'의 여공, 산문 '종시'에서 복선 철도 노동자에 대한 묘사 등이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동주의 작품에서는 동시대를 산 노동자들의 모습도 세 차례 등장한다"며 "윤동주는 그렇게 현실적인 고민을 했다. 그의 '하늘'이 '경천애인' '민심'으로 읽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윤동주의 시는 치열한 자아성찰을 담고 있다. 김 교수 표현을 빌리면 윤동주는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서시'를 두고도 김 교수는 "결국 윤동주 정신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우쳐 준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그는 "모든 언론, 논문이 윤동주를 '자아성찰' 안에 가두고 있다"며 "윤동주는 그야말로 혁명의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김 교수는 윤동주 시의 구절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시 '십자가' 중에서),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시 '간' 중에서) 등을 들었다.

김 교수는 "윤동주처럼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냉철하고도 고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을 방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쪼개어 자기 능력껏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꼭 정치적 행위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살피는 사회 그 자체가 곧 혁명이라고 믿는다. 윤동주 시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혁명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면서 민족운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남다른 문화를 뿌리내리죠. 이는 당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해방 뒤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칩니다. 10월 17일 개봉을 앞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그곳 사람들의 숨겨진 가치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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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저항에 대해서

1. 들어가며......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 하면 굵직한 사건이나 인물들을 생각하게 된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이순신와 같은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이 이 세계속에서 살아있었는가? 
나는 여기서 생각한다. 
정말 그러한가? 
그 외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어느 먼 훗날 내가 이순신과 세종대왕 같은 인물이 되지 못하면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던 인간이 아닌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국 문학사속에서 위대하게 불려지고 있는 사람 중 윤동주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생각을 지행시켜 나가는 방향으로는 우리는 항상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있나를 먼저 답하고 그 다음 그러한 역사는 누가 만들어 낼 수 있나를 답할 것이다. 


2. 본론을 대신하여...... 

우리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과연 저항시인이였을까? 
우리의 인식이 잘못 된것은 아닐까? 
이러한 답을 위해 나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보는 견해와 그렇지 않은 견해 그리고 그 견해들을 절충한 견해를 살펴보려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를 저항시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그는 과연 이육사와 같은 저항시인인가? 


2.1. 저항시인으로 보는 견해 

우선 그를 저항 시인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대체로 그를 저항시인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가 처했던 시대적 특성과 역사적 상황때문인 것 같다. 
즉, 그가 살았던 일제 말기의 어둡고 혼탁한 시대적 배경과 광복을 6개월 앞둔 시기에서 그의 옥사는 그를 '저항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몫을 다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를 평가하는 견해를 보자. 
평론가 '백철'은 그의 「한국 신문학 발달사」(박영사, 1976, 재판)에서 '저항 문학의 광맥'으로서 윤동주의 시사적 위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는 릴케를 사숙했다는 천연의 서정 시인이며, 그 위에 이 시인을 성스럽게 만든 것이 바로 고난의 시대에도 엄연하게 서 있는 숭고한 민족 저항의 정신, 민족 운명을 혼자서 십자가로 짊어진 그 숭고한 모습인 것이다. 
...... 
그의 시구에서 우리는 '밤', '어둠', '외로움' 그리고 '괴로움' 또 '새벽', '아침', '봄' 이란 말귀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고난의 시대 저쪽으로 새벽과 봄의 풍경을 내다본 것이다. 
...... 
윤동주는 이런 순교적인 사명감에서 민족 저항의 시를 남몰래 썼던 것이다." 


국문학자 '정병욱'도 '일제하의 저항 문학의 맥락'으로 윤동주의 시에 문학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시사적 의미를 적고 있다. 

"이 10년 동안 우리의 뼈를 저리게 하는 그의 시는 조국의 문학사를 고치게 하였고, 조국의 문학을 세계적인 물줄기 속으로 이끌어 넣는데 자랑스런 힘이 되었다. 
독재와 억압의 도가니 속에서 가냘픈 육신에 의지한 항거의 정신, 아니 인간으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권리이며 재산인 자유를 지키고자 죽음을 걸고 싸운 레지스탕스의 문학이 어찌 유럽의 지성인들에게만 특권일 수 있었으랴!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숨막히는 현실 가운데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던' 동주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인이었기에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야 했다. 
아니 뼈를 꺽어골수에서 솟아난 수장으로 눈물 없는 통곡을 종이에 올린 그의 시는 진정 '슬픈 족속'의 혈서였다. 
'잎새에 이는 발에도 괴로워'하던 동주의 시혼은 '파아란 하늘'에서 독재와 억압의 거센 '바람에 스치'우며 조국과 자유를 밤새워 지키는 '별'을 노래하였다." 

시인의 의식이 그 시대적 환경이 암울하고 험난할수록 더욱 예리하고 투명한 일면을 가진다는 점-마치 밤하늘의 별이 초저녁에는 희미하게 빛을 발하다가도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더 청징하고 또렷하게 빛나는 것처럼-에서 그는 저항시인으로 규정될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를 저항시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제 그의 시가 저항시로서의 시사적 의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된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에 실린 '윤동주, 혹은 순결한 젊음'이라는 글의 일부를 소개한 후, 그의 저항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 

"윤동주는 이육사와 함께 식민지 후기의 저항시를 대표한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는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의 시들은 해방 후에 유시의 형태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속에 수록된다. 
그와 이육사가 다같이 저항시를 쓰고 옥사를 하였지만 이육사와 그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로 다른 체질의 시인이다. 
이육사가 마지막 벼랑끝까지 밀림 민족의 위기를 초인에 대한 기원으로 극복하여 하고 있는 데 비하여 윤동주는 초월적 세계에서 그 극복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다. 
이육사에게서는 그러므로 주자주의적 엄숙주의가 지배적이지만, 윤동주에게서는 그러한 서이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이육사와는 달리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다는 행복한 이점을 또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의 존재를 더욱 신화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 증거로는 8.15 이후에 부당하게 늙어 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용이 그의 시 앞에 '무릎을 꿇고' 분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 

그의 시는 그러나 그가 식민지 치하에서 옥사를 하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의 시는 한용운의 시가 슬픔을 이별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식민지 치하의 정서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 것과 같이, 식민지 치하의 가난과 슬픔을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극복하여 식민지 후기의 무질서한 질서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다. 
그의 부끄러움의 미학은 자신과 생활에 대한 애정 있는 관찰,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할 이념에 대한 순결한 신앙과 시의 형식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결과이다." 

이것은 동주의 시가 한용운.이육사 등의 시가 남긴 정신사적 가치를 승계한 저항시의 한 양상임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즉, 이육사의 초월의지로, 한용운의 시가 '이별의 미학'으로 일제하의 우리의 정서를 구축한데 비하여 윤동주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일제 말기의 무절제한 정서를 극복한 저항시의 한 양상이 되는 것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시적 저항성을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면서,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서시」를 인용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객관적 의미로서 그 부끄러움이 가리키는 대상과 성격을 확실하게 알 수 있 는 자료가 불충분하므로 '부끄러움의 미학'적 차원에서 이 시를 이해하는 것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다만 그가 일제 치하에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시인이었고, 그의 많은 글에서 민족적 가치관이 산견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시적 대상은 조국의 광복 혹은 민족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종종 그를 잘못 판단하게 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서시」나 그 외 다수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부끄러움과 그것에 대한 결백함, 깊이를 잴 수 없는 고뇌, 그리고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신념의 태도는 당시의 불행한 환경에서 많이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쨌든,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규정되는 그의 시는 이육사의 시와 함께 일제말의 우리 시 문학사에 저항시의 한 맥락으로 규정된다. 
앞에서 살펴 본 대로 그의 시를 그렇게 보는 것은 그가 살아간 시대적 배경과 그의 죽음이 옥사였다는 것, 유작형태로 그의 시가 발표되었다는 점등의 신비감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육사의 시와 윤동주의 시 사이에서 어떠한 공통점도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육사를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인정하면서도 같은 맥락에서 동주를 저항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육사는 '이기려는 저항' 이며 윤동주는 '지지않으려는 저항' 이라고 
하지만 이말도 결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저항과 윤동주를 평가하는 저항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면 거칠게 말하면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가 아니라는 말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험하게 말하자면 앞에서 인용한 모든 글들은 '지지않으려는 저항'이라는 말과 같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2.2. 저항시인이 아니라는 견해 

이제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이 아니라는 견해를 한번 뒤적여 보자. 
시인 '오세영'은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인가?」(문학사상, 1976.4)에서 '윤동주 옥사 사건의 추상적 미화, 문학사적 저항성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의도적인 우상화, 오늘날 사회적 상황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저항시의 전형으로 미화시킬 필요성'등을 지적하여 윤동주의 시에 대한 저항적 의미에 회의를 나타낸 바 이다. 
또한, 그는 '윤동주의 시, 그것이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의 저항성에서 온 것이 아니면, 더구나 그의 시가 저항시일 수는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대체로, 그를 저항시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의 성격적인 특성과 저항운동의 실천성에 두는 경향이 많다. 
이에 대해 윤동주의 시가 저항시가 아니며 또한 그 자신도 저항인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힌 마광수 교수는 '그가 목숨을 걸고 일제에 저항한 증거는 시는 물론 그 밖에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윤동주는 차라리 순수시의 입장에서 파악되는 것이 그에대한 올바른 평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보지 않고 회의적 휴머니스트로 본다고 해서 그의 시적 가치가 깎여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시의 가치는 정치적.사회적 상황과 함께 생각할 수 없다'라고 역설하면서 '윤동주의 저항은 자기 내면과의 끊임없는 투쟁이었다'라고 시의 내면성과 자기 성찰에 관한 평을 내리고 있다. 


2.3. 그외의 견해 

이들의 견해가 아닌 다른 견해도 있다. 
그것은 저항이라는 개념을 세분화하여 놓은 것이다. 
평론가 '임헌영'은 '원래 저항이란 순수 예술의 한 속성이 된다'라고 밝히며, 「순수한 고뇌의 절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문학적 저항의 형태를 나누고 있다. 
첫째, 단체.비밀 결사 등 지원 운도에 직접 가담하는 경우 둘째, 일시적인 의무.지원등으로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경우 세째, 순수한 정서적인 저항이다. 
이 경우 윤동주는 셋째의 저항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김소월도 둘째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저항시인이라는 것은 윤동주 보다 김소월이 더 저항 시인인 것이다. 


3.결론을 대신하여...... 

이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저항시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귀착하게 된다. 
이에 나는 저항문학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았다. 
저항문학은 압제나 외국지배에 대항하여 싸우는 민족적 운동을 기반으로 생겨난 문학이라고 나와있다. 
이 말도 결국은 위에 있는 견해랑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보느냐 안보느냐는 우리들의 생각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사는 인식하는데로 생각되어지는 것이지 않은가? 
역사적인 인물도 나의 인식에 의해 어떠한 의미가 붙혀진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간혹 바보짓을 하는 아주 평범한-우리나라 역사책에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인간이다. 

이제 나는 미국의 역사책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의 책에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던 한 평범한 사람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그리고는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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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천진 제1회 개암채집절 개최
횡도촌에서 9월 3일까지 지속

2019-09-01 14:02:10

 
 

8월 31일, 연길시 조양천진 횡도촌은 개암을 따러 나선 시민들로 북적이였다. 이들은 저마다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개암나무에 매달려 개암을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개암은 시장에서 많이 사먹어 봤지만 개암나무를 직접 눈으로 보고 개암을 따기는 저도 처음입니다.”아이와 함께 개암을 뜯으러 왔다는 연길 시민 황녀사는 과일이랑 남새 채취는 여러가지 많이 해봤지만 견과류 채집은 처음이라 아이도 마냥 신기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연길시 정부와 선전부에서 주최하고 조양천진 정부에서 주관한 이번 제1회 조양천진 개암채집절은 향촌진흥을 실시하고 빈곤해탈에 조력하며 전역관광을 추진하는 중요한 조치로서 레저채집농업생태관을 구축하고 개암산업 브랜드를 육성하며 관광빈곤층부축을 실시하여 농촌 경제 성장을 이끄는데 적극적인 의의가 있다.  

 

2013년에 시작된 횡도촌 개암재배는 6년간의 노력끝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였다. 횡도촌은 ‘기지+합작사+농호’의 모식으로 개암산업을 부단히 발전시켰는데 현재 개암채집단지는 부지면적이 15헥타르에 달하고 개암 년간 생산량이 10만 킬로그람에 달하여 우리 주에도 비교적 규모가 큰 개암재배기지로 자리매김되였다. 또한 근 40명의 촌민들이 이 곳에서 장기적으로 일하면서 일년에 인당 1만여원의 수입을 올림으로써 촌민들의 치부에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횡동촌 촌민위원회 주임이며 개암채집단지 책임자인 손지군은 향후 개암심층가공에 공을 들여 개암기름, 개암쵸콜렛, 개암술 등 상품을 개발해 부동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고 판매경로를 확대함으로서 더욱 많은 촌민들의 치부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료해한데 따르면 이번 개암채집은 9월 3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윤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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