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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詩碑)에 또 시비(是非)를 걸어보다...
2017년 10월 17일 01시 29분  조회:2664  추천:0  작성자: 죽림
 

문인들의 기념비는 당사자에게나 그 문인을 배출한 고장에나 참으로 자랑스러운 조형물이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전국적으로 문인들의 기념비 건립이 유행처럼 번져서, 최근에는 살아있는 문인들의 기념비도 심심찮게 건립되는 추세다. 기념관이나 문학관은 비용도 많이 들고 보기에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생가나 동네 입구, 또는 모교 교정에 간소한 기념비 하나쯤 세우는 건 보기에도 정겨울 듯하다. 우리 고향 문경에도 김시종 시조시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文名을 드날리는 분이 여럿 계실텐데 기념비는 세웠는지…

 

 

문인들의 기념비 가운데는 시비(詩碑)가 압도적으로 많다. 기념비에 관한 한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등은 완전히 찬밥이다. 시비에는 앞면이나 뒷면에 그 시인의 대표시를 새기는데, 글자 수가 많은 소설 수필 평론 등은 다 새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고 보니 시 낭송회는 들어봤어도 소설 수필 평론 낭송회는 들어본 적이 없으며, 시화전(詩畵展)에는 참석해봤어도 소설화전 수필화전 평론화전은 가본 적이 없다. 소설 낭송회에 가서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장편소설 한 권을 다 들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우리나라 시비의 효시는 1948년 대구 달성공원에 건립된 이상화(1901~1943) 시인의 시비다. 이상화는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대표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왜정치하의 젊은이들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시킨 웅혼한 정신을 담고 있다. 그는 대구 수성못 언덕에서 수성들판을 내려다보며 이 시를 지었는데, 현재는 수성못 언덕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상화의 동생 이상백은 우리나라 사회학계의 선구자로서 서울대학교에 사회학과를 창설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IOC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1100여 기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책에는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시비가 건립된 시인은 박목월로 전국에 모두 16기가 건립되어 있고, 뒤를 이어 한용운 김소월 조지훈 유치환 정지용 이은상 서정주 윤동주……순으로 복수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박목월의 시비는 내가 본 것만도 16기가 넘는다. 대전에서 계룡산 동학사 가는 길가에는 <나그네>라는 주막이 있는데, 그 집 화단에도 주인이 화강암에 새긴 박목월의 아담한 시비를 세워놓았다. 책에서 언급한 시비 숫자는 아마도 문단에 등록된 공식 시비만을 집계한 모양이다.

 

 

 

 

 

기념비를 조성하는 장소로는 생가, 연고지, 모교 또는 재직한 학교,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 출생지나 거주지의 공원, 묘지 등 다양하다. 박목월이나 김소월처럼 전국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은 연고가 없는 곳에도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전국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에는 강소천 마해송 방정환 윤극영 이원수 등 아동문학가들의 기념비가 있고, 대구에 있는 시비공원에는 이름에 걸맞게 무려 35인의 시비가 모여 있다. 시비공원에는 시인들의 육필원고를 입수하여 그 필체대로 시비를 새겼다니 탁월한 발상이라 하겠다.

 

 

                               

 

 

실적도 없는 생존 문인의 시비가 우후죽순처럼 조성되는 현상도 문단의 우려를 사고 있다. 돈푼이나 있는 작가는 겨우 한두 편의 작품만 발표하고도 제 돈으로 여기저기 문학비를 세운다니, 문인의 가치를 싸잡아 깍아내리는 짓이다. 시비에 새기는 시도 생각해볼 문제다. 어딜 가나 김소월의 시비에는 <진달래>만 새기고 박목월의 시비에는 <나그네>만 새기는 것도 문제지만, 대표작이 아닌 시를 아무렇게나 골라 새기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그 작가를 대표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장소와 연고에 맞는 작품을 신중하게 골라서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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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에 새겨서 세운 돌, 이것을 비석(碑石)이라고 한다. 이렇게 비석에 새긴 글자는 금석문의 하나로, 또는 역사적인 자료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이 되었는데 한나라
이전에는 자연형의 돌에 새긴 각석(刻石)이 있었으나 정방형으로 돌을 다듬어 새긴 정식의 비는 한나라시대 묘비에서 발달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비는 글자를 돌에 그대로 새긴 갈(碣)이 있고, 일정한 형태로 돌을 다듬어 글자를 새긴 비(碑)가 있다. 비의 모양은 몸체인 사각기둥 모양의 비신(碑身)이 있고, 머리 갓 부분인 뿔 없는 용을 조각한 이수(螭首)가 있고, 비석을 기반으로 받치는 거북모양의 귀부(龜趺)가 있다. 비신의 앞, 겉면을 비양(碑陽), 뒷면을 비음(碑陰)이라고 하고, 새겨진 글을 명(銘), 비음부분에 새겨진 글을 음기(陰記) 또는 비음이라고 한다.

비의 종류에는 능에 세우는 능비, 묘에 세우는 묘비,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 그 외로 순수비, 기념비 등이 있고, 최근에는 시비, 노래비 등이 있다. 이러한 비에 쓰인 문장들은 대체로 한자를 많이 썼으나 최근에는 한글을 많이 쓰게 되었다. 최근의 한글비문은 다양한 서체의 발달로 과거 궁체 일변도에서 한글 판본체나 활자체를 많이 쓰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글씨는 금석문으로의 가치를 고려해서 대체로 수준 높은 명필가의 필적을 많이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한글서체의 변천사적 연구에서 비문의 서체는 대단한 가치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한글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많은 한글비석이 건립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한자비문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세운 한글비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조선시대에 건립한 한글 비문 두 가지를 밝히고,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50여 년간 전국에 걸쳐 건비한 문학비, 시비, 노래비 등 한글비석을 대상으로 비석의 형태, 비문 내용과 서체적 특징, 조형미 등을 시도별로 나누어 밝혀보고자 한다.

 

 

2. 조선 시대 한글 비석
 

1. 양주 영비

최초의 한글 비문으로 밝혀진 것은 현재 서울 노원구 하계동 산 12-2(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일명 영비(靈碑)이다. 양주(楊州) 영비각자(靈碑刻字)라고도 하는 이 비는 조선 초기 중종31년(1536년)에 세운 한문으로 새긴 묘비의 측면에 경고성 한글 문장을 새긴 것이다. 이 비문이 있는 묘는 중종 시기에 조광조의 제자이며 학자로 승지(정3품)를 지낸 성주인(星州人) 묵재(墨齋) 이문건(李文楗 : 1494-1567)의 부모인 윤탁(允濯)부부(부인-고령신씨)를 합장한 것이다.
비문을 “靈碑” 라고 한자로 적고 그 아래에 세로로 다음과 같은 한글 문장을 옛 서체로 음각을 하였다.

「녕 비라 거운 사 ㅣ화를 니브리라 이 글모 사려 알위노라」

이 말은 이 비문은 ‘신령한 비이므로 파손하면 화를 입게되니 손대지 말라’ 라고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남긴 경고문이다.
이 비문 글씨는 한글 비문 중 최초의 것이며 한글 반포 직후의 상원사 권선문(1464년) 필사체와 비슷하다. 이 비문은 이문건이 짓고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비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27호(1974년지정)로 크기는 높이가 175cm, 폭 80cm이며 본래의 위치에서 20여m 떨어진 공원에 옮겨 비각을 세워 안치(1998년)하였다.

 
2. 포천 인흥군 묘계비

1685년에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에 세워진 인흥군 묘계비는 조선 시대 선조의 제12왕자 인흥군(仁興君) 영(瑛)의 묘의 남쪽으로 250m 떨어진 묘역진입로 주변의 경작지에 서 있는 한글 비석이다. 인흥군의 본래의 비가 아니고 묘지 경계에 세워 묘역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한자를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려고 세운 경고문 형식의 금표라고 볼 수 있는 비석이다. 금석학적인 가치가 있는 이 비의 북면 하단에 20자 5행으로 한글 고어체로 새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비가극히녕검니심도사람이거오디말라」

풀이 : 이 비가 극히 영검하니(영묘한 위력이 있으니) 생심도(어떠한 생각으로라도) 사람이 거오하지(거만스럽게 낮추어 보지) 말라.

 
 
 

 

 

3. 현대 한글 비석
 

1. 서울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서울지역의 한글 또는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쓴 시비로는 박목월, 김수영, 오상순, 윤동주, 김소월 등의 것이 있고, 문학비로는 강소천, 이원수, 방정환, 이상, 윤극영 등의 것이 있으며, 시조비로는 정몽주, 한용운 등의 것이 있다. 또 노래비로 윤선도의 오우가비도 있다. 이러한 비석들의 규모는 대부분 상하로 긴 전통적인 옛 비석보다는 자연석이나 가로로 긴 사각형 모양의 비가 많이 있다. 이 비석을 건립한 장소는 출생지, 근무지, 생거지, 대학, 또는 공원이나 대로 가장자리에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비석의 문자는 한글과 한자를 부분 배자 한 경우, 한자와 한글을 혼서한 경우, 순수 한글로만 각을 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문장의 서체로는 한글은 직접 필사한 판본체가 많고, 한자는 대체로 비문 제목에 사용했는데 전서체와 예서체로 나타냈고, 특수한 경우에는 한글 활자체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전체 문장의 문자 배자는 세로쓰기보다는 가로쓰기를 많이 했고, 문자의 조각은 음각을 많이 했으나 양각을 한 것도 나타난다.

어린이 대공원에는 비 제목과 내용을 한글판본체로 쓴 강소천(1915-1963) 문학비(닭)와 방정환(1899-1931) 문학비(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이원수(1911-1981) 문학비(고향의 봄) 가 건립되어 있다.

남산에는 전체 제목은 한자예서로 내용은 한글판본체로 자연스런 모양의 돌에 음각을 한 김소월(1902-1935) 시비(산유화),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제목은 한자예서, 내용은 일반 필기체로 나타낸 김수영(1921-1968) 시비(풀)가 있다. 학교 구내에 세운 비문으로는 한양대학교 교정에 세운 제목은 한자 전서체, 내용은 산도화를 한글판본체로 나타낸 박목월(1917-1978) 시비(산도화), 연세대학교 교정에 제목을 한글판본체로 조각하여 나타낸 윤동주(1917-1945) 시비(죽는날), 동국대학교 교정에 제목은 한자, 내용은 한글로 음각을 한 이안눌(1571-1637) 시단, 송파구 보성고등학교 교정에 제목(이상문학비)은 한자예서체, 내용은 한글워드서체(안상수체)로 오석에 음각을 한 이상(1910-1937) 문학비(오감도) 등이 있다.

도봉구 수유리에 제목은 한자, 내용은 한글 판본·예서체로 육면체돌에 음각을 깊게 한 오상순(1898-1693) 시비(방랑의 마음), 윤극영의 반달문학비, 옛 서울대학교 자리에 한글판본체로 나타낸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비가 있다.

삼청동 공원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조각한 정몽주(1337-1392) 고전 시조비(이몸이)와 파고다 공원에 1967년에 건립한 한용운의 시조비(시조3수)가 있다.

그 외에 공원, 교정, 대형건물, 유적지 등에 조병화, 김현승, 최남선, 윤곤강, 김기림, 김종길 등의 한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조각한 기념비, 시비, 문학비 등이 세워져 있다.

 
 
 

 

 

2. 경기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경기도내의 시비나 문학비는 각 시군에 산재하여 있다. 비석의 종류는 묘비, 문학비, 기념비, 시조비, 추모비 등 다양한 편이다. 시비로는 파주시에 황진이, 김종문, 김광섭, 고양시에 노천명, 광주시에 허난설헌, 용인시에 정몽주, 이하윤, 안성군에 조병화, 화성시에 홍사용 등의 시를 조각한 비가 있고, 문학비로는 파주시에 주요섭, 과천시에 차천로, 시흥시에 이상노, 한정동, 양주시에 박종화, 이수광, 남양주시에 이광수, 여주군에 유주현, 이색 등의 비가 세워졌다.

또 부천시에 변영노 기념비, 포천에 양사언 시조비, 안산시에 오상원 추모비, 남양주시에 이광수 기념비, 용인에 정몽주 시조비 등 연고지에 여러 종류의 한글 또는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비석을 세웠다.
시비, 문학비는 비석의 형태가 다양하고 기념비나 시조비는 상하가 긴 전통적인 형태로 만들었으며, 글씨의 서체는, 제목은 한자의 경우 예서체와 전서체, 한글인 경우 판본체가 많다. 그리고 문장 내용을 쓴 서체는 판본체가 가장 많고, 궁체와 작가의 친필체도 있다.

몇 가지 시비의 건립장소와 서체 등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김기팔(1937-?) 방송인의 방송비는 1993년에 파주시 조리면 장곡 2리 휴게소 입구에 한글판본체로 음각하여 현대적 느낌이 나는 조형물로 만들어 세웠고, 김동리(1913-1995) 묘비에 “김동리 찬” 이란 제목으로 서정주 글과 김충현 글씨로 전통적인 비석으로 만들어 광주시 오포면 신현 2리에 세웠다.

노천명(1911-1957) 시비(고별)는 김충현 글씨로 새겨서 고양시 벽제면 가톨릭묘역에 세웠고, 박종화(1901-1981) 문학비는 양주군 장흥면 부곡1리에 김구용 글씨로 새겨서 세웠으며 변영노(1897-1961) 기념비는 부천시 원미동 23통에 제목은 한자로, 문장은 “논개”를 한글 판본체로 사각형 오석(검은 색의 비석 재료 돌)에 새겨 세웠다.

양사언(1517-1584) 시조비는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 금수정에 1989년 한글 예서체로 자연석에 새겨 세웠고, 정몽주(1337-1392) 단심가비, 즉 시조비(이몸이....)는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그의 묘역 부근에 한문부분은 예서체로, 한글부분은 판본체로 자연석에 음각을 하여 세웠다. 오상원(1930-1985) 추모비는 한자와 한글판본체로 “증인”을 안산시 옛 향교 터에 세웠고, 이광수 기념비는 양주시 광릉 세조 묘역 아래에 “춘원 이광수 기념비” 라고 김기승 글씨체로 전통적인 비석에 새겨 세웠다.

이하윤(1906-1974) 시비는 용인 한국민속촌에 蓮圃詩碑라는 한자 제목으로 내용은 “물레방아” 시를 한글 판본체로 조각하여 세웠고, 조병화(1921-) 시비는 친필의 필기체로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문화마을에 세웠다. 주요섭(1902-1972) 문학비는 1984년에 파주 탄현면 법흥리 기독교묘지에 한글판본체로, 홍사용 시비는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에 한글 판본체로, 황진이 시비는 1982년에 파주 임진각에 6수의 시조를 한글로 조각하여 건립하였다.

 
 

 

 

3. 강원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강원도 지역의 한글 시비나 문학비는 다른 시도에 비해 적게 건립된 편이다. 시비로는 화천군에 이태극, 평창군에 이효석, 인제군에 한용운, 강릉시에 정철, 허엽, 허균, 허낭설헌, 신사암당, 김동명 등의 것이 있고, 시조비로는 영월군에 김삿갓과 왕방연 등의 대표작을 조각한 것들이 있다. 강원도에는 다른 시도에 비해 작가위주의 비석보다는 지방의 문학적 특색을 기념하기 위한 비문이 건립되었는데 정선군의 정선아리랑, 아우라지비가 대표적인 예이다. 김동명(1900-1966 ) 시비(파초)는 제목을 한자로 문장을 한글 궁서체 비슷하게 나타내어 강릉 미노리와 주문진사이의 시비공원에 건립했고, 허균의 스승 이달의 시비는 1983년에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문장을 한문부분과 한글부분으로 나누어 조각하여 건립하였으며, 이태극(1913- )시비는 화천군 길동면 구만리고개 파로호 부근에 “산딸기” 시를 한글판본체로 새겨서 세웠다. 한용운의 시비는 인제군 백담사 경내에 “나룻배와 행인” 한글 궁체와 유사한 서체로 새겨 세웠고, 허난설헌과 허균의 남매 시비는 강릉 초당동(교육연수원입구)에 한문과 한글로 조각하여 세웠다.

김유정 문학비는 춘천시 의암호 의암댐 인암리에 세웠고, 왕방연 시조비는 제목은 자연석에 한글판본체로, 내용은 사각형의 오석에 조각하여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 선착장에 세웠으며. 정철의 시비는 “관동별곡”을 조각하여 강릉 경포대와 삼척 죽석루에 세웠다.

지방의 특색을 살린 아우라지 노래비는 정선군 북면 유천리 여랑5리에 제목은 한글판본체로, 내용은 한글궁체로 새겨 세웠고, 정선아리랑 민요비는 1977년에 정선군 정선읍 봉양7리 비봉산 입구에 전통적인 비석에 한글판본체로 새겨 세웠다.

 
 
 

 

 

4. 대전ㆍ충남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대전광역시에는 비석이 많지 않아 충청남도와 같이 묶어서 살펴보았다. 대전광역시에는 시비로 건립한 것에는 한성기, 박용래, 김관식, 한용운, 이덕영, 정훈 등의 것이 있고, 서산시에 윤곤강, 부여군에 김시습, 신동엽, 홍사준, 천안시에 심훈, 윤동주, 이상화, 이육사, 홍대용, 공주시에 임현도, 정한모, 논산군에 김관식 등의 것이 있다. 문학비로는 서산시에 민태원, 홍성군에 한용운, 이달, 김동욱, 부여군에 무왕 등이 것이 있다. 기념비로는 한용운, “관촌수필” “흥타령” 등이 있다.

충남지역은 시비를 많이 건립하였는데 독립 기념관에는 한용운 어록비를 포함하여 40여 개가 있고, 각 시·군의 공원, 사찰, 고개 등에 많이 건립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시습 매월당 시비는 부여군 부여읍에, 심훈 시비는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와 필경사 산길에, 윤곤강(1911-1950)의 시비(나비)는 서산시 읍내동 서산문화회관에, 이달(1561-1618)시비는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남산공원에, 이덕영 시비는 대덕구 미호동 신탄진 대청댐에 각각 한글 일반체나 판본체로 조각하여 세웠다.

정한모의 시비는 공주시 계룡산 동학사입구에 이곤순이 쓴 한글판본체로, 정훈의 시비는 대전에서 금산으로 가는 만인산 머들령고개에 자연석에 네모진 오석을 붙여 “머들령”과 내용을 한글판본체로 조각했고, 기초석에는 “丁薰詩碑” 라고 예서체로 새겨 세웠다. 한성기 시비는 대전 문화동 시민회관 광장에 시 문장을 세모진 자연석에 한글판본체로 새겨 세웠다. 홍사준의 시비는 부여군 부여읍 국립 박물관에 한글 판본체로 새겨서 세웠다.

한용운의 시비는 홍성읍 성곡리 출생으로 홍성읍의 남산공원과 천안독립공원, 대전 중구 사정공원(판본체-조종국 글씨) 등 여러 곳에 세웠다. 천안 독립 기념관에는 한용운(어록비)을 비롯하여 이상화(빼앗긴...), 윤동주(서시), 심훈(그날이...), 이육사(광야) 시비 등 40여개의 시비나 어록비를 건립하였다.

천안 흥타령비와 홍대용(1731-1783)의 시비가 천안삼거리 공원에 한글판본체로 새겨져 세워졌고, 김동욱의 문학비는 홍성군 남산공원에 있으며, 관촌마을 표지석(이문구 소설-관촌수필 무대)은 보령의 특산물인 오석에 글씨가 새겨져 1995년에 보령시 대천역에 세워졌다.

 
 
 

 

 

5. 충북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충청북도에 건립된 시비는 충주시에 이상화, 박재륜, 권태응, 음성군에 구상, 옥천군에 정지용, 단양군에 신동문, 김삿갓, 보은군에 오장환, 영동군에 이영순, 구석봉, 권구현의 것이 있고, 문학비로는 음성군에 이무영, 권근, 진천군에 조영희, 조벽암, 청원군에 김기진, 제천시에 권섭 등의 것이 있다. 기념비나 표지석으로는 괴산군의 홍명희 고향 표지석, 보은군 우리 마을 자랑비 등이 있다.

박재륜(1910-)의 시비는 충주시 충주체육관 앞에, 권태응(1918-1951)의 시비(감자꽃)는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정지용의 시비는 옥천군 옥천읍 옥천체육공원에 각각 한글궁체 또는 한글판본체로 사각형이나 자연스러운 모양의 돌에 새겨 세웠다. 같은 영동군 출신인 구석봉, 이영순, 권구현의 시비는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국민관광단지에 한글판본체로 새겨 건립하였다. 권섭(1671-1749)의 문학비는 1993년에 제천시 신동공원에 “영삼별곡”을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김응현이 판본체로 새겨 세웠다. 또 권근(1352-1409)의 문학비는 “성대별곡”을 사각기둥모양의 오석에 음각하여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세웠다.

김기진(팔봉 1903-1985)의 문학비는 그의 고향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에 네모진 오석에 한글판본체로 조각하여 세웠고, 이무영의 문학비는 그의 고향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에 비제목은 한자로 음각을 했고, 내용은 여러 편의 오석에 한글 정자체로 조각을 하여 세웠다.

정철(1536-1593) 시비는 진천군 문백변 봉죽리 은골 송강사에 세웠고, 김병연(김삿갓) 유적비는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 한자예서와 한글판본체를 혼서한 김응현의 글씨로 새겨서 세웠다. 조선 시대 문인 김정(1486-1520)출생지를 기리기 위한 “우리마을 자랑비”는 보은군 보은읍 종곡리에 세웠다. 이 비의 형태는 머리와 몸통 부분은 전통적인 비석모양이고 좌대와 기초석은 현대적 멋을 나타낸 모양이다. 홍명희 고향 표지석은 네모진 사향면에 한글판본체로 조각하여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그의 고향마을에 세웠다.

 
 
 

 

 

6. 광주ㆍ전남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작가 연고지 또는 집단 시비 건립지역에 세운 시비 및 문학비와 노래비, 가비, 기념비, 안내비 등을 살펴보자. 시비로는 광주시에 김영랑, 박용철, 조지훈, 윤선도, 정충신, 이순신, 박상, 김덕령, 임제, 이동주, 김현승, 김삿갓 등의 것이 있고, 담양군에 정철, 나주시에 임제, 김혜성, 박성건, 해남군에 이동주, 구례군에 박목월 등 20개, 고흥군 한하운, 장흥군에 한승원, 이청준 등의 것이 있다. 문학비로는 목포시에 김현, 김진섭 등의 것이 있고, 노래비로는 목포시에 “목포의 노래” 고흥군에 목일신의 것이 있으며, 기념비로는 광주시에 “영호남 사랑과 우정의 기념비”가 있다.

광주시에 있는 비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병연(김삿갓)의 시비로 광주 북구 무등산 아래에 제목을 금강산(金剛山)이라고 한자로 쓰고 본문은 한문과 한글로 나누어 가로로 긴 사각형 오석에 새긴 것이 있고, 한쌍으로 세운 김영랑과 박용철의 시비는 광주시 남구 광주공원에 한글 판본체 글씨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사직공원에는 박봉우(조선의 창호지), 박상(시구), 김덕령(시조), 임제(시조) 등 옛 충절 문인들의 글과, 이동주(강강술래), 이수복(봄비) 등 현대 문인들의 다양한 형태의 비석과 서체의 한글 시비가 있다.

전남지역에 있는 비석은 대부분 각 시군 지역과 연고가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김영랑(1903-1950.김윤식) 시비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의 생가가 있는 강진군 강진읍 내에 한글 판본체로 가로로 긴 돌에 새겨져 있다. 소록도와 관련 있는 한하운(1920-1975) 시비(보리피리)가 고흥군 소록도중앙공원에 있고, 해남이 고향인 이동주의 시비(강강술래)가 해남군 삼산면에 있다. 김진섭(1903-1950)의 문학비가 목포시 남교동에 한글과 한자 혼서체로 새겨져 있고, 문일석의 노래비(목포의 눈물)가 목포시 유달산에 가로폭이 긴 네모꼴 오석에 한글궁체로 조각되어 있다. 조선 시대 문인인 백광홍(1522-1556)의 가비인 관서별곡을 장흥군 안양면 풍재고개에 세웠고, 정철(1536-1593)의 성상별곡을 자연석에 한글판본체로 조각하여 담양군 창평면 식영정에 세웠다. 구례군 화엄사 길에는 시의 동산을 조성하여 국내 저명시인 박목월, 김영랑, 김소월, 조병화 등 20인의 시비를 세웠고, 광주시 망월동 입구에는 “영호남 사랑과 우정의 기념비“를, 장흥군 장흥읍에는 장흥읍성 표지석을 한글 궁체로 조각하여 세웠다.

 
 

 

 

7. 전북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전주시를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에는 시비와 문학비가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에 편중되어 있고, 중부지역인 완주군, 김제시, 임실군, 순창군, 정읍시 등에는 아주 드문 것으로 나타난다.

한글로 조각하여 세운 시비로는 익산시에 이병기, 전주시에 이병기, 신석정, 김해강, 이철균, 부안군에 이매창, 신석정, 고창군에 서정주, 정읍시에 정극인, 남원시에 산의당김씨, 장수군에 변영로, 무주군에 공병호, 진안군에 삼의당부부, 이성계 등의 것이 있다. 문학비로는 무주군에 김환태, 군산시에 채만식 등이 있고, 노래비는 고창군에 신재효의 것이 있다. 따라서 전라북도에는 시비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해강(1903-1987)의 시비는 전주시 시민공원에, 변영노(1897-1961)의 시비(논개시비)는 장수군 장수리 의암사 입구에, 서정주의 시비(선운사가)는 전북 고창 선운사에, 신석정(1907-1974)의 시비(네 눈방울에서는)는 1975년에 전주시 시민공원에 건립하는 등 각각 다양한 형태의 돌에 한글의 여러 가지 서체로 조각하여 시비들이 건립되었다. 이병기(1891-1968) 시비(가람시비-별)는 생가가 있는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 동상(흉상)과 더불어 자연석에 한글예서체로 조각했고, 전주시 시민공원에는 가람시비라는 제목으로 가리개식 형태로 만든 오석에 조각을 하여 세웠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시비는 진안군 마이산 이산묘 부근에 속금산이라는 제목으로 한문부분과 한글부분으로 나누어 배자하여 세웠다. 조선초 학자 정극인(1401-1481)의 상춘곡 가사비는 정읍시 원촌마을 무성서원에 가로폭이 큰 네모진 오석에 비제목을 한자예서, 내용은 한자와 한글을 혼서한 서체로 조각하여 세웠다. 채만식(1902-1950)의 문학비는 군산시 월명동 월명공원에 비제목은 한자예서, 문장제목은 한자, 문장은 한글판본체로 쓴 강암 송성용 글씨로 조각하여 건립하였다.

정읍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정읍사비는 정읍시 내장사 길목에 비제목을 井邑詞碑라고하여 전서체로, 내용은 한글로 원형 오석에 조각을 하여 세웠다. 또 흥부의 출생지를 알리기 위해남원시 동면 성산리 마을 입구에는 “흥부마을-출생지”라는 제목의 큰 글자를 자연석에 음각하여 세웠다.

 
 
 

 

 

8. 부산ㆍ경남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부산광역시의 시비는 공원에 집중적으로 건립하였다. 부산시 용두산 공원에 유치환, 최계락, 원광, 조향, 홍두표, 손중행, 박태문 정하보 등의 시비, 금강공원에 이주홍, 최계락, 이영도의 시비, 어린이대공원에 박목돈, 박화목, 김남조, 이황, 이형기, 박두진, 이은상, 윤선도, 노천명, 김소월 등의 시비, 동백공원에 최치원의 시비가 건립되었다.

경상남도에는 문인들의 연고지가 많아 시비, 문학비, 노래비, 기념비 등 다양한 비문들이 많이 건립되었다. 시비로는 진주시에 변영로, 이경순, 설창수, 사천시에 박재삼, 통영시에 유치환, 이순신, 마산시에 이원수, 이은상, 김수돈, 김용호, 정진업, 박재호, 김태홍, 이일래, 진해시에 김달진의 것이 있다. 문학비로는 함양군에 박지원, 하동군에 김필곤, 울산광역시에 오영수의 것이 있고, 노래비로는 울산시에 서덕출, “처용가”, 양산군에 이원수의 것이 있다. 부산시에 건립된 비문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와 서체로 이루어졌음을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시대 최치원의 시비를 동상, 유적비와 같이 해운대에 건립하였고, 이광수의 시조비를 “해운대에서”라는 제목으로 자연석에 조각하여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조각 건립하였다. 또 조선시대 학자 겸 수군이었던 노계 박인로(1561-1642) 문학비(선상탄 중에서)를 둥근 자연석에 새겨 부산 해운대 수영성에 세웠고, 수영부근에 정과정 시비를 네모진 돌에 새겨 세웠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는 유치환(1908-1967)의 시비(그리움)를 둥근 돌에 한글 예서체로, 최계락의 시비(바위)를 가로폭이 큰 오석에 한글 판본체와 궁체로, 유치환의 시비(바위)를 자연석에 한글예서체로 음각하여 세웠다. 어린이대공원에는 네모진 오석에 조각한 김정한 문학비, 자연석에 오우가를 조각한 윤선도의 시비와 김정한, 박화목, 김남조, 이황 등 여러 학자, 문인들의 시비가 건립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에는 변영로(1897-1961)의 논개시비가 1991년에 진주시 진주성 촉석문에, 설창수(1916-)의 시비(의랑 논개의 비)가 1954년에 진주시 진주성 촉석루에 한글 궁체로, 이경순(1905-1985) 시비(저언덕)는 1989년에 진주시 남강서편에 제목은 한자예서, 본문은 한글판본체로 자연석에 새겨 세웠다. 또 진주시 금산면에는 1996년에 “덕의 마을” 이란 제목의 한글 판본체(정문장 글씨)로 조각을 한 강희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유치환의 시비는 부산 수정가로 공원과 남도여상, 통영시 남망산공원 등 여러 곳에 세웠고, 이원수의 노래비(고향의 봄)도 양산군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과 마산시 산호공원에 세웠다.

이일래의 시비는 마산시 산호공원 시의 거리에 한글판본체로, 박재삼의 시비는 사천시 삼천포 노산공원에 오영수의 문학비(노고지리의 꿈)는 울산시 울산문화원에 각각 한글판본체로 조각하여 세웠다.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비(한산섬..)는 통영시 남망산 공원에 세웠다.

 
 
 

 

 

9. 대구ㆍ경북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대구와 경북지역은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한 곳으로 시비, 문학비, 기념비 등의 건립이 많은 편이다. 대구광역시의 시비로는 이상화, 이호우, 문학비로는 백기만의 것이 있고, 경북지역에는 시비로 경주시에 박목월, 고유섭, 이경록, 박종우, 유치환, 안동시에 우탁, 이육사, 상주시에 황오, 김천시에 정완영, 조위, 배병창, 군위군에 일연, 칠곡군에 조지훈, 장석모 등의 것이 있고, 문학비로는 청도군에 이호우, 영양군에 조지훈, 오일도의 것이 있으며, 시조비로는 문경시에 이우출, 포항시에 한흑구, 노래비에는 안동시에 이현보, 경주시에 박목월의 것이 있다.

대구지역의 시비를 보면 백기만(1901-1967)의 시비(산촌모경)는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에 비제목을 한자예서체 양각으로, 본문은 한글판본체로 오석에 음각을 해 세웠고, 이상화(1901-1943)의 시비(나의 침실로..)는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비제목 尙火詩碑는 한자전서체로 양각을 했고, 본문은 한글 일반필기체(친필)로 음각을 해 세웠다.

경북지역의 경주시에는 건천면 모량리 출신 박목월의 시비(달)가 보문단지 목월공원에 비제목은 朴木月詩碑라고 한자예서체로, 본문은 목월의 친필글씨로 조각하여 세웠고, 황성공원에도 그의 노래비가 있다. 유치환의 시비(석굴암대불)은 경주시 불국사 정문 옆 자연석에 비제목은 한자 전서체로, 내용은 한글 일반체로 자연석에 조각하여 세웠고, 이경록의 시비(사랑가)는 경주시 불국사 입구 우정의 동산에 사각형 돌에 한글 판본체로 조각하여 세웠다.

문경시에는 문경새재 민요비가 문경새재 제2관문에 자연석에 한글서체로 조각하여 세웠고, “산불됴심비”가 문경시 문경새재 제2관문 직전에 자연석 조선 후기 옛 한글체(지방문226호)로 세워있다. 안동 출신 이육사의 시비(청포도)가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 부근 생가터에 제목은 한자예서체로, 본문은 한글판본체로 써서 세웠다.

조선 시대 무관 박인로(1562-1642)의 노계가비가 영천시 도계서원에 비제목은 한자예서로, 문장은 한글과 한자를 혼서한 일반체로 조각하여 세웠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1206-1289)의 시비가 그가 있던 군위군 고로면 화북동 인각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호우(1912-1970)의 시비는 청도군 남성현 고개에 자연석에 한글판본체로 조각하여 세웠고, 정석모(1922-1987)의 시비(능금두벌꽃)는 칠곡군 지천면 신동 사양서원 부근 청구공원에 자연돌을 쌓고 네모난 오석을 붙인 조형물에 새겨 세웠다.

영양군 출신의 조지훈 시비(다부원중에서)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다부전적기념관에 한글 판본체로 새겨 세웠고, 그의 문학비는 생가가 있는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세워졌다.

 
10. 제주지역 문학비 비문 글씨

“시가 있는 동산”에 건립한 시비로 한하운시비, 오성찬시비, 노천명시비, 김영랑시비, 장윤우시비 등 54개의 국내 현대시인 시비가 있다.
 
 
 

 

 

4. 맺음말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한글비문은 조선 시대의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현대의 비문은 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의 한글비문은 일반적인 유적지, 전승지, 명승지, 건설공사지 등의 기념비나 안내비가 있고, 문인들의 시비, 문학비, 문학기념비 등이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문학비와 시비를 대상으로 비문의 서체, 비석구조물의 특징, 비문의 내용 등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조선 시대에 건립한 비문으로는 서울 중계동의 양주 영비, 경기도 포천의 인흥군 묘계비, 경상북도 문경의 산불조심비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양주 영비나 포천 묘계비는 본래의 비를 보호하기 위한 주의 경고문으로의 한글비이고, 산불조심비는 계몽 안내비로 정규적인 비석들이 아니다. 현대에 건립된 문학비, 시비, 노래비는 조선 시대나 일제시기에 태어난 학자, 문인, 무인등의 문학과 시를 알리는 비문으로 전국에 걸쳐 출생, 성장, 체류를 했던 연고지의 생가, 공원, 학교, 고개, 마을 입구 등에 건립했다. 

저명작가 일수록 비석이 여러 곳에 세워졌고, 대도시에 세워진 비석 중에는 주변 도(道)의 시군에 세워진 비석을 중복하여 세운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건립시기는 5, 60년대 보다는 70년대이후 최근에 건립한 비문이 많고 최근의 비문일수록 한글전용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비문의 주제목은 “ㅁㅁㅁ의 시비” 또는 “ㅁㅁㅁ의 문학비”라는 제목으로 한자의 경우는 전서체와 예서체로 썼고, 한글은 판본체로 나타냈다. 

비문의 내용은 시, 동시, 시조, 노랫말 등 짧은 글이 대부분이고, 이러한 글을 세로로 배자하여 한글판본체 또는 한글궁체로 음각으로 조각하였다. 비문의 형태는 자연스러운 모양도 가로폭이 조금 큰 사각형이 많으나 그 외로 원형을 비롯한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낸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상하폭이 긴 전통적인 직사각형의 돌에 새긴 비석은 적은 편이다.

 
참고문헌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엮음, 1996, 한국문학지도- 상하, 계몽사.
박병천 외, 예술의 전당 엮음, 1994, 조선시대 한글서예, 미진사.
예술의 전당, 1991, 한글서예변천전 도록, 예술의 전당.

함동선, 1997, 함동선의 문학비 답사기.

 

<집필자> 박병천 (인천교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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