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가옥 1만채 파괴 등 바하마 쑥대밭으로 만든 허리케인 도리언
ㆍ더운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연료 삼아 초강력 힘 발휘
ㆍ1만km 떨어진 한반도, 온난화·산업화로 인근 해역 수온 증가
ㆍ바하마 바다와 유사한 기상 구조 작동…“한국도 안심 못해”
지난 2일 320여㎞ 상공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된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언’의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푸른 바다 위에 군데군데 검은 대륙이 눈에 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작은 창밖을 소용돌이 모양의 흰색 구름이 가득 채우고 있다. 지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의 두께는 두껍고 밀도는 촘촘하다. 지난 2일 지구 상공 320㎞ 지점을 돌던 ISS에서 촬영된 사진은 한때 위력이 5등급까지 올라간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언’의 모습이다. 허리케인의 위력은 1등급에서 5등급까지 구분되며 숫자가 클수록 강하다.
도리언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 일대에서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지난 1일 상륙 뒤 가옥이 1만 채 넘게 부서지며 인구 40만명의 작은 나라 바하마는 쑥대밭이 됐다. 사상자가 수십명 발생했지만 복구 과정에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리언이 가진 가공할 위력의 핵심은 바람이다. 최고 시속 297㎞의 바람을 내뿜은 것인데 이 정도 힘을 보인 허리케인은 육지에 상륙한 허리케인 기준으로 역대 3차례밖에 없었다는 게 미국 기상 당국의 설명이다. 도리언이 바하마 주변에서 이틀간 머물며 세력이 2등급까지 약화됐지만 플로리다 등 미국 남동부에선 주민 대피령과 공중이용시설 폐쇄 등 도리언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지난주 내내 부산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초강력 허리케인은 왜 지구에 나타났을까. 과학 매체 뉴사이언티스트 등 외신은 도리언이 발생해 이동한 대서양 일부의 표면 온도가 평소보다 1도 높았다고 지적했다. 허리케인이 생기고 위력을 유지하는 핵심은 더운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다. 허리케인은 바다에서 생기는 거대한 폭풍인데, 이런 힘을 유지하는 연료 역할을 하는 물질이 수증기인 것이다. 극지방에 가까운 차가운 바다에서는 허리케인이 안 생기는 이유다.
게다가 도리언이 할퀴고 지나간 지역의 해수면이 예년보다 0.2m 높아져 있었다는 점은 폭풍 해일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고 뉴사이언티스트는 지적했다. 해수면이 높다면 해안선 안쪽의 가옥 등 시설물을 파도가 덮칠 가능성도 커진다. 물이 가득 찬 컵은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물이 쉽게 흘러넘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도리언이 휩쓸고 간 대서양과 카리브해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허리케인 도리언이 단순히 1만㎞ 넘게 떨어진 먼 곳에서 벌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수온과 해수면 상승의 영향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5일 한반도에 상륙했던 태풍 차바는 바람의 세기가 최대 시속 203㎞에 이를 만큼 위력적이었다. 당시 차바의 풍속은 우리나라를 통과한 태풍 가운데 4번째로 강했다.
집도 공항도 항구도 모두 폐허로 허리케인 ‘도리언’이 강타하면서 피해를 입은 바하마의 모습. 가옥들이 파괴되면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위 사진), 마시 하버 공항은 물에 잠겼으며(가운데) 선착장에는 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바하마 | AFP·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태풍 차바가 한반도로 향하던 2016년 10월2일 바다 수온이 심상찮았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에 따르면 당시 동중국해 수온은 평년보다 3도 높았다. 동중국해는 태풍이 우리나라 남해 또는 서해로 진입하기 직전에 지나가는 일종의 관문이다. 높은 수온에서 다량 발생하는 수증기를 잔뜩 공급받으며 차바의 힘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차바가 한반도를 덮친 때는 시기상 가을이었다. 예년이라면 바다의 수온이 내려가 태풍이 우리나라 주변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바다가 가을답지 않게 따뜻한 상황이 이어졌다는 얘기다. 가을 태풍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태풍 콩레이가 지난해 10월6일을 전후해 한반도를 통과한 것이다. 당시에도 태풍의 탄생을 저지할 정도로 해수면 온도가 낮지 않다는 점이 학계에선 지적됐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해수면 온도 상승을 전 지구적인 동향으로 볼 수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한반도 주변의 수온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온난화로 인한 해류 흐름의 변화나 중국 등이 속한 동북아가 산업화되면서 나타나는 열원 증가가 수온 상승의 유력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생기는 해일 증가도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더운 바다에서는 차가운 바다보다 부피가 커지는 ‘열팽창’ 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열팽창이 생긴 바다는 덩치가 커져 해수면도 올라간다. 도리언이 강타한 바하마 인근 바다와 유사한 해수면 상승 현상이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생길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해수면이 높아지면 비교적 약한 태풍이 와도 해일이 해안을 덮치는 일이 더 자주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2016년 차바로 인해 생긴 해일로 해안가에 접한 아파트 단지인 부산 마린시티 일대가 침수된 건 일종의 전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ㆍ더운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연료 삼아 초강력 힘 발휘
ㆍ1만km 떨어진 한반도, 온난화·산업화로 인근 해역 수온 증가
ㆍ바하마 바다와 유사한 기상 구조 작동…“한국도 안심 못해”
지난 2일 320여㎞ 상공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된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언’의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푸른 바다 위에 군데군데 검은 대륙이 눈에 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작은 창밖을 소용돌이 모양의 흰색 구름이 가득 채우고 있다. 지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의 두께는 두껍고 밀도는 촘촘하다. 지난 2일 지구 상공 320㎞ 지점을 돌던 ISS에서 촬영된 사진은 한때 위력이 5등급까지 올라간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언’의 모습이다. 허리케인의 위력은 1등급에서 5등급까지 구분되며 숫자가 클수록 강하다.
도리언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 일대에서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지난 1일 상륙 뒤 가옥이 1만 채 넘게 부서지며 인구 40만명의 작은 나라 바하마는 쑥대밭이 됐다. 사상자가 수십명 발생했지만 복구 과정에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리언이 가진 가공할 위력의 핵심은 바람이다. 최고 시속 297㎞의 바람을 내뿜은 것인데 이 정도 힘을 보인 허리케인은 육지에 상륙한 허리케인 기준으로 역대 3차례밖에 없었다는 게 미국 기상 당국의 설명이다. 도리언이 바하마 주변에서 이틀간 머물며 세력이 2등급까지 약화됐지만 플로리다 등 미국 남동부에선 주민 대피령과 공중이용시설 폐쇄 등 도리언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지난주 내내 부산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초강력 허리케인은 왜 지구에 나타났을까. 과학 매체 뉴사이언티스트 등 외신은 도리언이 발생해 이동한 대서양 일부의 표면 온도가 평소보다 1도 높았다고 지적했다. 허리케인이 생기고 위력을 유지하는 핵심은 더운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다. 허리케인은 바다에서 생기는 거대한 폭풍인데, 이런 힘을 유지하는 연료 역할을 하는 물질이 수증기인 것이다. 극지방에 가까운 차가운 바다에서는 허리케인이 안 생기는 이유다.
게다가 도리언이 할퀴고 지나간 지역의 해수면이 예년보다 0.2m 높아져 있었다는 점은 폭풍 해일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고 뉴사이언티스트는 지적했다. 해수면이 높다면 해안선 안쪽의 가옥 등 시설물을 파도가 덮칠 가능성도 커진다. 물이 가득 찬 컵은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물이 쉽게 흘러넘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도리언이 휩쓸고 간 대서양과 카리브해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허리케인 도리언이 단순히 1만㎞ 넘게 떨어진 먼 곳에서 벌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수온과 해수면 상승의 영향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5일 한반도에 상륙했던 태풍 차바는 바람의 세기가 최대 시속 203㎞에 이를 만큼 위력적이었다. 당시 차바의 풍속은 우리나라를 통과한 태풍 가운데 4번째로 강했다.
집도 공항도 항구도 모두 폐허로 허리케인 ‘도리언’이 강타하면서 피해를 입은 바하마의 모습. 가옥들이 파괴되면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위 사진), 마시 하버 공항은 물에 잠겼으며(가운데) 선착장에는 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바하마 | AFP·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태풍 차바가 한반도로 향하던 2016년 10월2일 바다 수온이 심상찮았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에 따르면 당시 동중국해 수온은 평년보다 3도 높았다. 동중국해는 태풍이 우리나라 남해 또는 서해로 진입하기 직전에 지나가는 일종의 관문이다. 높은 수온에서 다량 발생하는 수증기를 잔뜩 공급받으며 차바의 힘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차바가 한반도를 덮친 때는 시기상 가을이었다. 예년이라면 바다의 수온이 내려가 태풍이 우리나라 주변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바다가 가을답지 않게 따뜻한 상황이 이어졌다는 얘기다. 가을 태풍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태풍 콩레이가 지난해 10월6일을 전후해 한반도를 통과한 것이다. 당시에도 태풍의 탄생을 저지할 정도로 해수면 온도가 낮지 않다는 점이 학계에선 지적됐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해수면 온도 상승을 전 지구적인 동향으로 볼 수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한반도 주변의 수온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온난화로 인한 해류 흐름의 변화나 중국 등이 속한 동북아가 산업화되면서 나타나는 열원 증가가 수온 상승의 유력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생기는 해일 증가도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더운 바다에서는 차가운 바다보다 부피가 커지는 ‘열팽창’ 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열팽창이 생긴 바다는 덩치가 커져 해수면도 올라간다. 도리언이 강타한 바하마 인근 바다와 유사한 해수면 상승 현상이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생길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해수면이 높아지면 비교적 약한 태풍이 와도 해일이 해안을 덮치는 일이 더 자주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2016년 차바로 인해 생긴 해일로 해안가에 접한 아파트 단지인 부산 마린시티 일대가 침수된 건 일종의 전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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