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그때 그 사람] - 뼛속까지 영화인...
2019년 11월 19일 00시 01분  조회:2903  추천:0  작성자: 죽림
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뼛속까지 영화인 신상옥 감독

신 감독 촬영 준비 중 낭떠러지 추락
“에이, 앵글 좋았는데…” 아쉬워해

김승호·김진규·최무룡 제치고
‘연산군’ 주연 발탁 스타 만들어줘
은막 떠나자 “왜 일찍 관뒀나” 타박
영화 ‘강화도령’(1963)에서 다 죽어가는 철종(신영균)에게 복녀(최은희)가 입으로 물을 먹이는 장면. 신영균씨는 신상옥 감독이 보는 앞에서 그의 부인인 최은희씨와 입 맞추는 연기를 하는 게 곤혹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영화 캡처]
“우리 좋은 작품 하나, 다시 한번 멋지게 해봅시다.” 

천국에 가서 신상옥 감독을 만나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그의 아내이자 동지인 최은희씨와도 약속한 일이다. 최씨가 투병 중일 때 “살아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자고, 셋이 다시 뭉쳐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맘껏 만들자”고 얘기했다. 그 첫 번 작품은 신 감독이 평생의 대작으로 기획한 ‘징기스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신영균은 수도꼭지” 내 연기 늘 칭찬

신 감독은 말년에 병환으로 고생하다 2006년 세상을 떴다. 장례식은 ‘대한민국 영화계장’으로 진행됐고 내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영결식 때는 공군 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모두가 ‘빨간 마후라’를 불렀다. 수도 없이 부른 노래지만 그토록 슬프게 들린 적은 없었다. 

신 감독이 저세상으로 가기 한두 달 전쯤 내 제주 집에 온 적이 있다. 하루 이틀 머물러 보고는 풍광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다시 서울로 떠나던 날 그가 부탁 하나를 해왔다. 

“나 여기서 좀 쉬게 해줘. ‘징기스칸’ 콘티를 여기서 끝내야겠어.” 

“예, 언제든 오십시오. 우리 마지막 작품 같이 하십시다.” 

우리는 그렇게 단단히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곧 보따리 싸서 다시 오겠다던 신 감독과 그렇게 영영 이별을 하게 될 줄을…. 

내 인생의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단연 신 감독이 1순위다. 나를 영화계에 발 들이도록 한 건 ‘과부’(1960)의 조긍하 감독이지만,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건 신 감독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영화사인 ‘신필름’을 이끌고 있었는데 잘나가는 배우들도 그와 일하고 싶어 경쟁을 했다. 특히 ‘연산군’(1961)은 김승호·김진규·최무룡 등 당시 최정상 스타들이 서로 주연을 맡고 싶어 했는데 신 감독이 “이건 신영균이 딱이다”며 아직 충무로 신출내기인 나를 점지했다. 연극 무대에서 다진 나만의 폭발력을 주목한 것 같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신 감독은 정말 영화를 위해서 태어나 영화만을 위해 산 사람이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는 빛을 좇는 불나방이 됐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졌다. 

신상옥 감독은 카메라가 돌면 물불을 안가렸다. 북한산에서 영화 ‘강화도령’을 찍다가 7~8m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했다. [중앙포토]
한번은 ‘강화도령’(1963)을 찍을 때였다. 신 감독은 카메라 앵글을 잡으려고 북한산 암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했다. 한쪽 눈을 감고 루페(렌즈)를 보며 앞으로 가다가 한순간 이끼 낀 곳을 헛디뎠는지 7~8m 아래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낭떠러지 아래 가시넝쿨이 있어 목숨을 건졌다. 팔이 좀 긁히고 뒷주머니에 있던 선글라스가 박살 나는 정도로 끝이 났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정작 그는 아픈 내색도 않고 “에이, 앵글 좋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나도 그렇고 당시 배우들은 신 감독을 참 좋아했다. 그는 무엇보다 연기자를 카메라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았다. 동선을 정해두고 몇 발짝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게 아니라 연기자가 자유롭게 자기 감정을 맘껏 표출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움직여줬다. 물론 맘에 드는 장면이 나오지 않으면 거침없이 ‘컷’ ‘NG’를 외쳤다. 

신 감독, 사망 두 달 전까지 작품 몰두

그때는 영화 필름이 비싸서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도 ‘이만하면 됐습니다’ 하는 감독들이 많았는데 신 감독은 달랐다. 남들은 필름을 한 3만~4만 자 쓴다면 신 감독은 7만~8만 자씩 썼다. 사업 하다 궁지에 몰렸을 때 빚쟁이들이 촬영장까지 찾아와 옆에 서 있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않았다. 세트장에 고급 가구나 집기가 필요하면 자신의 집에서 쓰던 걸 가져와 망가뜨리는 경우도 많아 부인 최은희씨가 종종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양반은 진짜 뼛속까지 영화인이구나’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신 감독 앞에서 최은희씨와 입술이 맞닿는 연기를 하느라 진땀 뺐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강화도령’에서 최은희씨가 물 한 모금을 자기 입안에 넣어 다 죽어가는 내게 먹이려 하는 장면이 있다. 남편인 신 감독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지켜보고 있으니 나는 왠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입술을 정면으로 포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가 약간 비뚤어지게 고개를 돌리면 신 감독은 어김없이 컷을 외쳤다. “물을 입속에 넣어야지 왜 옆에 다 흘리나. 제대로 해!”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야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신 감독은 사랑하는 여인보다 영화를 더 우위에 두는 사람 같았다. 

같은 ‘평산 신씨’라서인지 우리는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신 감독은 “연기 지도를 안 해도 쓸 수 있는 배우 중 하나”라고 나를 치켜세우곤 했다. 한번은 촬영장을 찾은 내 아내에게 이런 말도 했다. “신영균은 수도꼭지예요. 우는 장면에서 10번 NG가 나면 다시 찍어도 10번을 다 진짜 울어요.” 무뚝뚝한 신 감독치고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신 감독은 100% 영화인이었다. 70년대 후반 내가 은막을 떠난 이후 나는 그의 불만 섞인 타박을 들어야 했다. 그는 “신영균에게 흠이 있다면 배우를 일찍 그만둔 거야”라며 아쉬워했다. 늙으면 늙은 대로, 노망이 들면 노망이 든 대로 배우의 생명은 길고 길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욕심 같아선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멋진 영화를 남기고 싶지만, 신 감독이 없으니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717 ... 2019-10-09 0 3134
2716 [타산지석] - "한글"로 세상과 소통, 포용하며 열어가기를... 2019-10-09 0 3743
2715 [그것이 알고싶다] - "한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 2019-10-09 0 3651
2714 [록색문학평화주의者]-"特문화재보호", 特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0-08 0 3615
2713 [그것이 알고싶다] - 올해 "노벨문학상" 中國 소설가 殘雪??? 2019-10-07 0 3318
2712 [그것이 알고싶다] - 올해 "노벨문학상" 10일 "폭발"... 2019-10-07 0 3303
2711 [그것이 알고싶다] - 올해 "노벨문학상" 2명 中 녀성?... 2019-10-07 0 3493
271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特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0-07 0 3206
270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온난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19-09-28 0 3248
2708 [요것조것] - " 25초영화제" 2019-09-26 0 3716
2707 [축구의 멋] - 메시 = 6 2019-09-25 0 3650
270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온난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19-09-25 0 3549
2705 [그것이 알고싶다] - 초립방체 = 신개선문 2019-09-16 0 5322
2704 [그것이 알고싶다] - "노벨문학상" 2019-09-15 0 4242
270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음식쓰레기처리", 남의 일이 아니다... 2019-09-15 0 3564
2702 4년간 = 개 "본본" 2019-09-14 0 3458
2701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2019-09-14 0 3156
270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온난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19-09-08 0 3936
2699 [세계는 지금] - "오염수전쟁"... 2019-09-05 0 3688
2698 [문단+인] - 시와 무형문화유산과 시인과... 2019-08-31 0 3734
2697 [문단소식] - 최기자 "밤꾀꼬리" 되여 시를 읊조리다... 2019-08-29 0 3419
2696 [동네방네] - 100세 = 수필집 2019-08-20 0 3869
2695 [그것이 알고싶다] - 수컷 = 임신... 2019-08-13 0 3984
2694 [그것이 알고싶다] - "0" ... 2019-08-13 0 4207
2693 [타산지석] - "굼벵이 부부"... 2019-08-10 0 3759
2692 [세상만사] - 10년전... 2019-08-10 0 3489
2691 [타산지석] - 우리 각 곳에서의 쓰레기는 언제면... 2019-08-04 0 3622
2690 [그때 그시절] - 베옷은 말한다... 2019-08-04 0 3713
2689 [회초리] - 민족언어문자생태는 실천이다... 2019-08-04 0 2997
2688 [세상만사] - 368g =1% ... 2019-08-04 0 3221
2687 [세상만사] - 비행기가 착륙하는걸 보러 가자... 2019-07-19 0 3476
2686 [문단+교정] - 시조의 향기 물씬... "두만강시조" 풍성... 2019-07-19 0 3311
2685 [공유합시다] - 100년 + 련꽃씨 = 련꽃 2019-07-18 0 3502
2684 [그것이 알고싶다] - "훈민정음"이란?... 2019-07-17 0 4332
268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 귀속방전 계속 되는가... 2019-07-17 0 3251
268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 "문화재" 역시 "문화재"... 2019-07-17 0 3259
268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의 귀속을 량심에게 묻다... 2019-07-17 0 3037
268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처리", 남의 일이 아니다... 2019-07-17 0 2965
267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와 량심과 그리고... 2019-07-17 0 3332
267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9-07-17 0 3234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