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의 하나가 바로 내면의 관찰을 거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마음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많은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수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다.
영웅은 천하를 다스리지만 성인은 자신을 다스린다는 말이 있다.
명상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신을 다스릴줄 아는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이며 마음은 어떤것들로 구성되였는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물질적인 연구만 있었지 마음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것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알수가 없다. 현대에 와서 심리학이 발전하였다하지만 현대의 심리학은 근근이 인간의 표면적인 활동을 분석해서 그 내부를 추측할뿐이다. 이렇듯 유치한 과학?을 기반으로 한 현대의 교육자체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니 현대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우리들은 당연히 마음이라하면 의혹에 싸여있을뿐이다. ....사실 현대의 과학은 고대의 철학에서 발전하였으며 고대의 철학은 종교에서 기원된것이다. 다시말해서 종교는 인간의 근본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만큼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를 많이 제기하였다. 그래서 인간이 마음에 문제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공허한 느낌이 들면 종교를 찾게 된다. . 다른 한 방면 현대과학이 현대인의 정신적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깐 현대인은 종교를 찾게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 사회가 종교가 필요한 가장 큰 원인일것이다. ....
주제와 상관없는 말은 적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종교가운데서 인간의 마음을 가장 투철하게 그리고 가장 옳바르게 해석한것은 불교밖에 더 없다. 그래서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마음을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가?
불교에서의 마음이란
"대상을 알아차리는것이 곧 마음이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
여기서 주시해야 할 단어는 대상인데 "
대상이 없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것이 기본 전제이다. 그 대상이란 곧 색 성 향 미 촉 법 (色聲香味觸法)6가지이다. 때문에 마음이란 곧 알아차리는 역할을 하는것이 마음이며 알고 있는 그자체가 곧 마음인것이다.
동시에 이 마음은 한순간에 일어났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으로 찰나생 찰나멸이라고 한다. 그것은 영원한것이 아닌 무상한것의 연속이며 무언가 실체가 있다고 말할수 없기때문에 무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상으로부터 일어나는 많은 마음은 이롭지못한 악하고 해로운것이 많은데 이 해로운 마음들이 수시로 일어나서 탐욕을 부리고 화를 내고 어리석으며 집착하면서 우리를 괴롭힌다. 이러한 수없는 마음들이 폭포의 물처럼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라지니 불교에서는 차라리 흐름(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한 찰나에 8만4천번뇌가 들어있다고 말하는데 조금의 과장도 없다.
이들은 너무나 빠르게 상속하기 때문에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그 자체를 분간하기 어려우며 특정된 교육과 체계적인 명상수행을 거치지 않고서는 전혀 알길이 없다. 보통사람들은 마음을 알수가 없으며 언어라는 불투명한 개념에 속히우면서 마음의 표면현상인 헛것에 얼리워 칠정육욕에 감싸여 울고 불고, 코물 눈물이 범벅이되여 살아간다. 혹자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불교는 그것을 고통이라 한다. 불교명상은 바로 우리에게 매찰나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대상을 인식하는가 하는 전부 과정과 현상을 분석하고 꿰뚫어 보게 해주며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그 방법을 직접 활용하여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물,심의 여러 현상을 인식 확인할수가 있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날수가 있는것이다.
초기경전의 아비담마(법)에서는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물으는 한순간에만해도 마음은 14가지 역할을 하면서 일어나고 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14가지 역할을 하는 마음들을 다시 일어나는 곳을 따져 분류하면 89가지(더 세밀하게 분석하면 121가지)마음이 존재한다고 한다.
마음은 또 선한것과 불선한것 그리고 단순히 작용만하는것(無記) 등등으로도 분류하여 54가지를 나눌수 있는데 여기서는 간단한 몇개만 골라 해석하련다.
불선한 마음 즉 악하고 해로운 마음은 우리에게 수많은 고통을 가져다주는데 그 근본은 3독이라고 일컫는 탐진치(貪嗔痴)에 기본을 두고 있다. 이 탐진치 3독에서 탐과 진(성냄)은 서로 공존못하는데 한 마음에서 동시에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탐과 진에는 모두 어리석음이 잠재되여있지만 때론 어리석음이 탐과 진과 관계없이 일어나기때문에 세가지를 단독으로 근본단위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탐에 뿌리를 둔 마음은 8가지가 있고 진(성냄)에 뿌리를 둔 마음은 2가지, 치(어리석음)에 뿌리를 둔 마음도 2가지 이렇게 불선한 마음을 12가지로 나눈다.
특히 성냄에 뿌리를 둔 마음은 두가지인데 "
불만족이 함께 하고, 분노와 결합되고,자극 없는 마음 하나" 와 "
불만족이 함께 하고, 분노와 결합되고,자극 있는 마음 하나" 이다.
이를 간단히 분석하면 성냄에 뿌리를 둔 이 두가지 마음의 공통점은 모두 불만족인데 "분노란 바로 대상에대한 불만족으로 일어난다"로 해석할수있다.
그러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내가 왜 화를 내느냐를 알고자 하면 어느 대상에 대하여 불만족하는가를 사색하면 금방 화의 원인을 찾을수가 있다. 그리고 12연기법의 이론을 겹쳐 명상하다보면 곧장 화의 뿌리를 뽑을수가 있다. 여기서의 불만족에는 낙담,우울,실의,고뇌,슬픔,비통등등의 뜻을 포함한다.
다음 어리석음에 뿌리를 박은 마음도 두가지로 나누는데 "
평온이 함께 하고, 의심과 결합된 마음 하나"와 "
평온이 함께 하고, 들뜸과 결합된 마음 하나"이다.
이 두마음의 공통점은 평온이고 다른점은 의심과 들뜸이다. 여기서 평온이란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중립적인 상태를 가리키는데 어리석음이 있을때는 즐거움과 고통스러운 이 두가지 느낌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어리석음의 근본 원인인 의심과 들뜸(혼란,흥분)이 일어날때는 상대에 대하여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못한다.
의심이란 모르기때문에 의심이 일어나는 것이고 불안이란 역시 모종 사물에대해 알수가 없기때문에 불안해나고 무서워나고 공포가 일어나는 것이다. 12연기법에 따르면 모른다는 것은 무명이며 무명은 곧 어리석음이다. 바로 이 무명인 어리석음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고통의 뿌리가되며 수많은 번뇌를 갖다주는 원흉이된다. 이 어리석음은 바로 오직 지혜로만 대치할수밖에 없다.
불교명상의 근본 목적은 지혜를 개발하는것이라해도 무방하겠다.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바로 이상과 같은 여러가지 마음을 직접 자신의 몸에서 느껴야 하며 한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그 마음들을 분석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가에 따라 우리의 명상공부의 심도를 알수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알수가 없으며 많이 배우고 많이 듣고 많이 사유를 해야만 그 실마리를 찾을수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도 이 방면의 전문가인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체계적고 활용적인 명상공부를 할수있는것이다.
끝으로 "오늘의 명상" 한구절 올리며 글을 맺힌다.
명상은 그대가 그것과 마주칠 때 가장 경이로운 것이라고 여길만한 어떤 것이다.
나는 그 속으로 직접 들어 갈 수는 있으나,
내가 그것에 대하여 묘사한다고 해서,
그 묘사하는 대상이 그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대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봄으로 부터 배워야 한다.
어떤 책도, 어떤 스승도 이에 대하여 가르쳐 줄수가 없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아라.
영적인 조직에도 참여하지 말아라.
이모든 것을 스스로 자신으로 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믿기 어려운 놀랄 만한 것들을 마음이 찾아 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분리가 없어야 하고,
그래서 무한한 안정성, 신속성, 기동성이 있어야 한다.
그와같은 마음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기 때문에 삶은 아주 다른 의미를 갖는다.
- 지두 크리스나무리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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