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에대해서
예부터 금기(禁忌)는 어느 나라나 있었다. 금기는 중국어로 '기휘(忌諱)'라고 한다. '기(忌)'와 '휘(諱)'라는 두 글자는 금문에까지 나오는 말로서 모두 '금기하다'거나 '두려워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금기는 천벌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공포심리에서부터 기인된 것으로 스스로를 단속하여 재앙을 피하려고 했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영원한공포 생존수단에서비롯된금기
고전 저서나 현존하는 야만부락의 일부 풍속 또는 일부 소수민족의 습속으로 볼 때 적지 않은 금기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생존의 수요이다. 이러한 생존수요의 박탈은 인생의 가장 큰 재앙이 되었다. 사람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음식이 없으면 굶어 죽게 된다. 그들은 오직 신령을 침범하지 않는 다면 신령은 그들을 굶어 죽지 않도록 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냥꾼들은 산신령을 숭배하고 물고기를 낚는 사람들은 수령신을 숭배하며 농사꾼들은 오곡신령을 숭배하면서 신들을 침범하는 일은 금물이라고 여기게 된다.
나시족
늪에서 여자들이나 아이들의 기저귀를 씻는 것을 금기하고 있다. 용왕신을 범할까 두려워서이다. 산에서 방목을 할 때 절대 산기슭에 있는 돌이나 불을 지폈던 자리에 소변을 보지 않는다. 돌신령을 건드릴까 두려워서이다.
독룡족
집사람이 사냥하러 가거나 종자를 심으러 나가는 날에는 손님이 오는 것을 꺼려했다. 짐승을 잡지 못하거나 심은 종자가 싹이 트지 않을 걱정에서다.
노족
사냥을 가서 한족말이나 다른 민족 말을 하는 것을 금기하였다. 벼랑신이 노족말이나 장족 말밖에 알아들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른 족말을 하면 그들에게 사냥한 짐승을 주지 않는다고 여겼다.
조상숭배
장례식의 수의에는 옷깃이 없고 단추가 없어야 하는데, 중국말로 옷깃을 뜻하는 링즈(領子)는 '자식을 데리고 간다.'라는 뜻으로, 단추를 뜻하는 글자는 '자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는 결국 죽은 사람이 산사람을 데려가는 것, 즉 죽음을 두려워한 것에서 온 것이다. 노인이 죽으면 이름이나 호와 같은 글자를 말하는 것을 금기한다. 고대에서 임금이 죽어도 이를 행했었다. 심한 경우에는 아버지의 이름에 '악(岳)'자가 있으면 평생 음악을 듣지 않거나 '고(高)'자가 있으면 떡이나 과자(''는 발음이 같은 gao)조차도 먹지 아니하였다.
주문왕이 이른바 '이름을 말하면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주문왕은 고인을 생각하면 살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는데 그것은 고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슬퍼지고 이름만 들으면 생전의 일이 생각나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을 부르고 기억해야 마땅하지만 죽은 후에는 친하던 사람들도 악귀로 변한다고 여겼다. 이는 역시 죽음을 멀리해야 할 존재로 인식한 것에서 온 것이라 할 수있다.
혼인과임신의금기
약탈혼인의 발생
혼인이라는 婚자는 '계집 녀(女)'자 변에 '어두울 혼(昏)'자로 이루어졌는데,이는 어두운 밤에 장가를 든다는 의미이다.
『주역(周易)』에 이에 관한 작품이 있음
屯如 如 머뭇거리네.
乘馬班如 네 필의 말이 배회하네.
匪寇 비적이 아니라.
婚 혼인하는 사람들이로다.
乘馬班如 네 필의 말이 배회하고.
泣血漣如 여자는 흐느껴 우는 구나.
고대의 혼인수단이 강도와 별차이가 없는데 이는 약탈혼의 증거를 보여주는 예이다.
見豕負途 흙투성이 돼지를 보고
載鬼一車 귀신을 가득 태운 차가 보이니
先張之弧 화실을 당기려다
後說(脫)之弧 그냥 두었노라
匪寇 실은 비적이 아니라
婚 혼인하는 사람들이었노라
'초를 켜고 말에게 길을 비추다'라는 말이 『의례』에서 나오는데 이는 밤에 신부를 맞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약탈혼은 없어졌지만 약탈혼의 흔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부락사이의 접촉이 빈번하지 않았던 인류사회에서 근친상간은 거의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공포는 열성인자의 양성이였고, 문화적의미에서는 가정관념이 생기고 나서 '난륜'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약탈혼으로 말미암아 우수한 유전자를 취하는 것이다.
동성불혼설
앞에서 알아 보았듯이, 고대에서 이어져온 우성에 대한 관점때문에 이러한 동성불혼설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녀가 동성이면 후손이 번성하지 못하노라.' (『좌전(左傳)』,「희공(僖公)23년」)
동성이면 제사를 같이 지내게 되는데 여기에는 연합의 뜻이 있다. 때문에 성씨로 묶고 가르지 않으며 먹을 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똑같이 지낸다. 따라서 백 세대가 지나도 혼인은 하지 못한다. 이것이 원만한 이치라 하겠다.(『공자기어(孔子家語)』)
신비한 것이 금기가 된다
괴이한현상과공포
옛 사람들은 알 수 는 자연 현상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세월이 나감에 따라 어느 도 현상들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고, 공포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근원을 알 수 는 금기들이 있는데, 어떠한 방법을 다하여서라도 그것과 거리를 두게 된다. 원래부터 신비한 것은 금기였고, 줄곧 금기하다 보니 더욱 신비해진 것이다. 수해 은 경우 알 수 없는 자연의 재해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알 수 없는 초월한 존재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여러 신들을 만들게 된 이다.
동물의신비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써,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맹금류의 날카로운 발톱과 날 수 있는 능력, 육식동물들의 강인한 이빨, 뱀의 재생성 등은 고대인들의 두려움과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에는 수성과 인성의 합일화된 모습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후에 많은 자연현상들의 이해와 동물들을 제압할 능력을 갖게 됨으로써, 이러한 동물들의 신비화는 점차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금기는예와교육을형성하게된다. 금기와예, 그리고교육
고대로 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금기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이를 더 체계적으로 제어 할 수 있게 된 방편이 예의다. 질서의 확립과 규제로 인하여 안전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존수단의 전수와 문화의 전수적 측면에서 교육은 이러한 예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더 나아가 확실한 금기의 경계를 위해 서로에게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금기로인해생겨난문학
문학작품에서 비판의 힘은 기성 질서에 대한 파괴로부터 나온다. 사회 규제를 위해서는 수많은 금기들이 필요했는데,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이런 금기들을 범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금병매』에서 나오는 결말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문학작품에서 이룸이었는데, 이는 인간의 욕망을 문학에서 이루어 만족시키려는 것이 된다.
금기와숭배의관계
두려움이 금기를 생성하였고, 두려움에 대한 경외심과 여러가지 측면들이 숭배를 낳게 되었다. 금기는 언제나 넘어서지 못할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넘어가보고 싶은 욕망의 한계선이 된 것이다. 숭배는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반영이 된 셈이다. 현대에서는 수많은 알 수 없는 현상들을 과학적인 근거하에 규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역시 두려움을 없애려는 행위로 이해 할 수 있다.
해음(諧音)
중국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준수하는 금기나 길상(吉祥)을 추구하는 선호(選好)의 풍속은 종류가 너무 많아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다. 같은 내용의 풍속들이라 해도, 지역과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들을 띠고 있다. 일단 불행과 관련된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는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국인들의 기본 금기 사항이며,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 단어들과 발음이 같아서 불행한 의미가 연상되는 각종 사물이나 행위도 금기시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해음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A와 B 두글자가 서로 다르지만 같거나 유사한 발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A를 이야기 하지만 동시에 B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문화에서의해음
중국은 고대로부터 농경생활을 해왔으며, 오곡의 풍성함은 모든 이들의 바람이었다. 숭상하는 길상물 중에는 풍성함을 기원하는 바람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용이 이러한 존재들 중의 하나이다. 물고기 또한 물과 비를 관장하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왔다. 『산해경』에서는 물고기를 홍수를 일으키고 가뭄을 가져오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물고기는 곧 오곡의 풍성함으로 직결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생선은'어(魚,yu)'라고 하는데, 이 발음은 '여유 있다' 혹은 '풍족히 남다'는 뜻의 '여(餘,yu)'의 발음과 같다.
중국인들이 생선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항상 풍족함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식사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 혹은 명절날이나 축하연에서 생선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춘절에 생선요리를 먹는 것은 필수코스인데, 이날은 특별이 잉어를 먹는다고 한다. '이(鯉)'의 발음이 '이익 된다'는 이(利,li)'와 같아서 새해에도 좋은 일이 있으라는 의미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복숭아를 먹음으로써 장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노인들의 생일잔치에는 장수면(長壽麵)이외에 복숭아가 필수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날 등장하는 복숭아는 장수한다는 수(壽)를 붙여서 특히 '수도(壽桃)'라고 부른다. 계절적 영향으로 복숭아가 나지 않을 때에는 밀가루나 쌀가루로 만든 복숭아 모양을 한 '수도'를 준비한다.
중국의 남방에서는 귤(橘,ju)과 여지(枝,li zhi)라는 과일을 함께 베갯맡에 두었다가 춘절날 일어나서 먹는 풍속도 있는데, 두 과일의 발음이 '吉利(ji li)'와 유사하기 때문에,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각종기피음식들
후베이(湖北)지역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일반적으로 닭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금기가 있다. 기아(飢餓)가 연상되는 기(飢,ji)와 닭 계(鷄,ji)의 발음이 같아서 신령에게 불경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장쑤성일대에는 제사 때에는 콩을 쓰지 않는데, '콩 두(豆,dou)'는 '싸우다' '투쟁하다'라는 뜻의 투(鬪,dou)'와 같은 발음이기 때문이다. 이는 집안 자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쓰지않는다고 한다. 다만 콩으로 만든 음식 중에는 두부는 종종 쓰이는데, 두부(豆腐)' 부(腐,fu)'의 발음이 '부(富,fu)'혹은 '복(福,fu)'과 발음이 같아서 재운을 상징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사용되기도 한다.
재미있는여러가지풍습들
한식날 불을 사용하지 않는 금기에 대해서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충신이었던 개지추(介之推)를 추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 내용은 진나라 문공(文公)이 온갖 시련 끝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기 전 고초를 겪을 때 그에게 충성을 다한 개지추에 대해 날이 갈수록 소원해져 갔다. 개지는 괴로운 나머지 노모를 모시고 은둔해버렸다. 진문공은 살신성인의 충신인 개지추를 소홀히 대한 것에 대해 부끄러운 나머지 그를 다시 찾았으나 개지추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면산에 불을 지르면 효성이 지극한 그가 노모를 모시고 산에서 나오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3일간의 산불이 꺼진후 개지추는 노모를 부둥켜안고 불에 탄 채로 발견 되었다. 진문공은 개지추와 그의 노모를 후히 장사지내고 그가 사망한 이날에는 불을 금하고 차가운 음식을 먹도록 명하였다. 바로 이날이 청명절하루 전날이라 한다. 이후에도 개지추의 죽음을 기려 날음식을 먹을 지언정 불의 사용을 금하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신도(神茶)와 울루(鬱壘)는 본래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서,『산해경山海經』의 기재에 의하면 도삭산(度朔山)이라는 곳에 살던 형제였다. 이 산에는 매우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그 잎이 삼천 리에 걸쳐 뻗어 있었다고 한다. 그 복숭아 나무의 동북방에는 귀문이 있어서 귀신들은 이 문으로 드나들었다. 신도 형제는 이 문에서 지켜 서서는 악귀들을 만나기만 하면 이들을 갈대로 묶어서 호랑이에게 먹였다. 그래서 귀신들이 함부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삭산의 복숭아나무가 능히 귀신을 몰아내는 효엄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하여 복숭아나무 조각을 대문에 걸어 놓고는 그 위에 '신도' '울루' 두 영제의 이름을 써 넣어서 귀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귀신을 쫓는 내용의 주문을 써 넣었고, 그리하여 도부(桃符)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壓歲錢(혹은壓巾錢)'에도 고사가 있는데, 옛날 수(巾)라는 요괴가 있었다. 이 요괴는 설날 전날 밤만 되면 나타나서 아이들을 해치곤 하였다. 손으로 깊이 잠든 아이의 이마를 만지면 아이는 놀라 울면서 열이 오르곤 하였는데, 열이 가시면 원래 총명하던 아이도 바보 같은 아이로 변하였다. 어느 부부가 설날 전 날밤 붉은 실에 동전 8개를 꿰어서 아이의 베갯 맡에 두었다. 한밤중이 되자 과연 수란 요괴가 아이에게 접근하였다. 하지만 동전으로부터 갑자기 밝은 빛이 나오면서 수는 놀라 도망을 쳤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설날 전날 밤이 되면 같은 방법으로 동전을 잠자는 아이들의 베갯 맡에 두어서, 귀신의 장난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였다고 한다. 붉은 실에 꿰어 아이를 보호하는 이 동전들을 '壓歲錢(혹은壓巾錢)'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도 춘절 전날 밤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붉은 실에 꿰인 동전이나 지폐를 넣은 붉은 봉투를 주면서 축복의 덕담을 건네준다.'누른다'는 뜻의 '압(壓)'이라는 글자 그대로 이들 돈은 아이들의 베갯 맡에 눌려서 하룻밤을 지내며 새해의 도래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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