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노인 고독사(孤獨死)
일본에선 해마다 1만명 넘게 목욕탕에서 익사한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홀로 살다 이렇게 죽으면 며칠씩 모른 채 지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욕조 익사’를 막는 장치들이 등장했다. ‘오사카가스’라는 회사는 물을 감지하는 센서가 달린 목걸이를 내놓았다. 목걸이가 20초 이상 물에 잠겨 움직이지 않으면 경고음을 울린다. 가족 없는 노인이면 동사무소나 복지센터로 비상신호를 보낸다.
▶일본 고베시는 가스 사용량으로 독거(獨居) 노인의 안부를 챙긴다. 노인이 아침에 가스레인지를 켜면 사용정보가 무선시스템을 통해 복지단체나 가족에게 전달된다. 사용량이 ‘0’이면 복지단체에서 집으로 전화를 건다. 벨이 30차례 울려도 받지 않으면 구조대가 달려간다. 고베엔 독거노인들의 가스 사용을 24시간 점검하는 복지센터가 75곳이나 된다. 1995년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노인이 유난히 많아서다.
▶지켜보는 이 없이 홀로 죽는 ‘고독사(孤獨死)’가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된 건 1970년대다.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도시 노인들의 쓸쓸한 죽음이 부쩍 언론을 탔다. 지난해 도쿄에서만 2714명이 그렇게 세상을 떴다. 주검이 발견되기까지 평균 일주일이 걸렸다. 6%는 한 달 넘어서야 발견됐다. 60~70세 자식이 80~90세 부모를 돌보는 ‘노노(老老) 개호(介護)’도 많아 늙은 자식이 먼저 가면 부모가 도리없이 뒤따른다.
▶올해 초 폭설이 내린 충남 어느 마을에서 칠순 할머니가 장독대 눈을 치우려다 지붕에서 무너져내린 눈더미에 깔렸다. 할머니는 숨진 채 7일을 묻혀 있었다. 서울서 달려온 아들은 온 동네를 헤매다 뒷마당에 쌓인 눈 30㎝ 아래서 아끼던 털모자를 쓴 채 얼어버린 어머니를 발견했다. 도시에선 단칸방에서 홀로 죽어 한참 뒤 발견되는 노인들 얘기가 일본 못지않게 줄을 잇는다.
▶우리나라 고령인구가 느는 속도는 총인구 증가속도보다 13배나 빠르다고 어제 통계청이 발표했다. 독거노인은 1998년 49만명에서 2005년 83만명으로 불어났다. 노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홀로 산다. 대부분 빈곤층이지만 그나마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는 경우는 4분의 1밖에 안 된다. 자식에 짐 될까 혼자 고단한 삶을 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아직 사회안전망의 그물코가 성긴 우리에게 ‘방치된 죽음’은 일본보다 더 심각하고, 그래서 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홀로 살다 홀로 죽는 일본인, 내일 우리들의 모습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일본' 특집은 독자를 으스스하게 만든다. 일본에선 사망 후 4일 이상 지나 발견되는 고독사가 한 해 1만5600명에 달하고, 죽어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無)연고 사망자가 3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쿄에선 죽는 이 10명 가운데 3명은 이른바 직장(直葬),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가고 있다. 현재 일본 30대 남성 10명 가운데 3명, 여성 10명 중 2명은 50대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할 거라고도 한다. 결국 일본은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울타리'가 약해지고, 급속하게 진행된 저출산·고령화로 돌봐줄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다 해도 20년 경기침체로 부모를 보살필 경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 구성 비율은 일본을 10~15년 차이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다. 오늘 일본의 스산한 모습이 내일의 우리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일본은 지난 20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기업 매출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고, 그것이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작년 일본의 226개 백화점 가운데 매출이 늘어난 건 3곳뿐이었다. 어린이 인구(0~14세)가 1990년 2248만명에서 작년엔 1648만명으로 줄면서 제과점 파산이 속출했다. 청년실업이 늘어나면서 1990년 780만대였던 신차 판매가 2009년 488만대로 감소했다. 금융자산의 75%(1125조엔·약 1경5000조원)를 가진 노인들은 여생이 불안하다며 갈수록 지갑을 닫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
젊은이들 성격도 변했고 이에 따라 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직장도 학교도 안 다니면서 하릴 없이 시간을 죽이는 니트족, 뚜렷한 일자리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터족이 늘면서 자기 체념을 뜻하는 '하류지향(下流指向)'이란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다. 30~34세의 직장인 가운데 결혼한 비율은 정규직 60%, 비정규직 30%, 프리터 17%다. 일자리가 불안한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이것이 다시 저출산과 경기침체를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1996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08년부터는 총인구 자체가 감소했다. 우리도 2017년 생산연령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201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이 1990년 1489만명에서 2010년 2941만명(전체 1억2800만명의 22.9%)으로 늘었다. 지난해 우리의 노인 인구는 535만명이었는데, 2030년엔 1180만명(전체 4860만명의 24.3%)이 된다.
일본의 경우 노인요양보험인 개호(介護)보험 지출액이 2000년 3조8000억엔에서 작년 7조9000억엔으로 2배 늘었다. 우리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작년 지급액이 2조5000억원이었는데 2030년엔 15조6000억원으로 6배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이런 식으로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면 잠재성장률은 현재 4.1%에서 2020년 1.9%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게 되면 작아진 파이를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다투는 계층 간, 직업 간, 세대 간 갈등은 더 심해진다.
저출산·고령화는 한 번 추세가 형성되면 되돌려놓기가 힘들다. 일본도 온갖 몸부림을 쳤지만 실패했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고착(固着)되기 전에 흐름을 돌려놓아야 한다. 지금 하늘을 찌를 기세로 부풀어 오르는 중국의 미래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가장 큰 요인도 중국의 급속한 노령화다. 역사상 저출산·고령화의 흐름에 떠밀려가면서도 번영을 누렸던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우리 정부는 저출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GDP의 0.7% 예산을 쓰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한폭탄의 뇌관(雷管)을 제거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예산이다. OECD 평균이 2.3%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장관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 대통령이 10년 후, 20년 후 나라의 운명을 바로 보고 역사적 문제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서럽지만 이게 내 팔자…", 홀로 죽음을 맞는 노인들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70살 이상 1인 가구 79만 세대
소외계층으로 갈수록 고독…마지막 순간 지켜보는 건 'TV'
지난 2월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의 다른 집에서 시신 2구가 같은 날 발견됐다. 숨진 박모(여·65)씨와 이모(남·52)씨는 모두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던 '1인 가구'였고, 고혈압 등의 지병을 앓고 있었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3일, 이씨는 7일 이상 숨진 채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형적인 '고독사(孤獨死)'다.
한국에서도 1인 가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외로운 죽음'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0~300 가구가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지만 이 공간에선 전통적인 '이웃'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노인·청년·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급격한 속도로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1인가구 수는 403만으로 전체 가구(1,733만 가구)의 23%에 달한다. 30년 전인 1980년에는 1인 가구의 비중이 4.8%에 불과했다. 1990년에는 9%, 2000년에는 15%로 늘었다. 30년 사이 5배로 늘어난 것이다.
1인가구 증가 속도는 정부의 예상치를 훨씬 넘는다. 2009년 말 통계청은 2030년이 돼야 1인 가구의 비율이 23%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정부의 예측보다 20년이나 빠르다.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유층과 비교해 소외계층으로 갈수록 사회적 네트워크가 약해지는 '인맥의 양극화 현상'이 한국에서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은 106만 명을 넘어섰으며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독거노인의 발생은 이들의 사회적 교류 단절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실제 연구자료를 보면 독거노인의 24% 정도가 한 달에 한 번도 가족과 연락하거나 만나지 못하는 등 사회적 고립 정도가 매우 크고, 이 때문에 독거노인 10명 중 3명 정도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서 홀로 사는 김유복(82) 할머니는 "자식이 6명이나 되지만 다들 벌어먹느라 바빠서 1년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며 "서운할 적도 많지만 다 내 팔자다. 이러다 혼자 죽는 건가 하는 걱정뿐이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정부는 전체 독거노인 중 약 18% 정도를 위험군에 속한 독거노인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2007년부터 '노인돌봄 기본사업'을 실시 중이다. 이 사업은 노인돌보미들이 일대일로 방문해 안전 확인하고 생활에 필요한 교육과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 부족 등으로 18% 중 14% 정도만 혜택을 누리고 있다. 나머지 4%는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지자체가 직접 나선 예도 있다. 경기도는 이웃에 혼자 사는 노인을 새마을부녀회원이 돌보는 '생활밀착형 홀몸노인돌봄 사업'을 11월 한 달간 시범 추진했다. 자원봉사자인 새마을 부녀회원이 이웃의 홀몸노인과 결연을 맺고 수시로 가정을 방문해 노인돌보미의 역할을 수행한다.
왕명순 미산면 새마을부녀회장은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고독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며 "그런 일도 방지하면서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고자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지난 10월 새마을부녀회원과 읍면동장을 대상으로 12차례 간담회를 개최해 사업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했으며, 새마을부녀회원 1300여명에 대해 8차례 사전교육을 실시했다. 64개 읍면동 새마을부녀회에서는 지난 1일부터 밑반찬, 생필품 등을 홀몸노인에게 지원하고 있다.
고순자 도 복지여성실장은 "내 이웃에 홀로 사는 노인을 돌봄으로 인해 '우리'라는 의식을 회복하고자 사업을 시작했다"며 "소외계층에 대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복지담당 공무원 모두가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남양주, 포천, 양주, 동두천, 가평, 연천 등 6개 시·군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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