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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혼례
2012년 09월 22일 15시 10분  조회:4982  추천:0  작성자: 회장
 
 
Traditional Marriage 문화특집으로 가기

 

유래와 의미  |  결혼식 전  |  전통 혼례  |  결혼식 후  |  결혼 의복

우리나라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은 두 개인이 합친다는 의미보다 두 가족이 결합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종종 대례라 부르고 모든 친척, 이웃, 친구, 직장 동료들이 참석합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를 담고 있어, 한 쌍의 짝을 짓는 일에서부터 결혼식 후의 의식행사에 이르기까지, 실제 결혼과 연관된 예식과 부대 행사는 장기간 공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전문 결혼 중매인이 신랑 신부 후보들을 짝을 지워주는데 어떤 경우에는 신랑신부가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점쟁이에게 두 사람의 궁합을 본다든지 하면서 다방면의 검토를 거쳐 결혼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조혼제도가 일반화되어 15세 전후에 결혼을 시켰으며 종종 여자가 남자보다 몇 살 더 많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랑은 보통 결혼식을 위해 신부의 집으로 가서 결혼식을 거행 후 3일 동안 신부집에서 머문 후 신랑집으로 데려갑니다. 실제 결혼식은 수없이 절을 하고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위로 이어지는 의식의 연속입니다.

전통 결혼식의 몇몇 양태는 유지하고 있기는 해도, 대부분 현대의 결혼식은 전통 한국 혼례식보다 서양 결혼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많은 민속 마을이나 박물관에서는 살아있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전통 혼례식을 거행합니다.

 


의혼(議婚)
자식의 훌륭한 배우자를 고르는 일은 주로 중매쟁이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중매쟁이는 그 지방 미혼 남녀의 사회적 지위, 교육 정도, 가문의 전통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필요한 집에 서비스를 하였습니다. 중매쟁이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상대를 골라 서로의 부모가 만나도록 주선을 합니다. 이 때 부모들은 상대 신랑 신부 후보를 봅니다만 정작 당사자끼리는 이 때까지 서로 볼 수 없습니다. 신랑후보 집에서 신부후보 집으로 정식 청혼서를 보내면 신부후보 측 부모가 결혼 여부를 결정합니다.

납채(納采)

saju 청혼이 받아들여지면, 신랑후보 집에서 사주(四柱)를 준비해서 신부후보 집으로 보내는데, 사주는 신랑후보의 음력 생년월일과 생시를 적은 것입니다. 가로 40cm, 세로 90cm의 흰 종이 중앙에 사주를 적고 다섯 번 접어 흰 봉투에 넣습니다. 봉투를 봉하지 않고 대나무 가지로 싸서 청실, 홍실 매듭으로 묶었습니다. 그 위에 안 쪽은 붉은 천, 바깥쪽은 푸른 천으로 된 사주보로 쌌습니다. 사주의 정보를 토대로 신부후보 측에서 통상 점쟁이와 상의해 결혼 길일을 잡습니다.

신부후보 집에서 혼례일을 적어 신랑후보 집으로 보내는 것을 연길(涓吉)이라 하는데, 이 때 신랑후보의 신체 치수도 묻습니다.

납폐(納幣)
결혼 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와 그 가족들에게 상자 속에 선물을 넣어 보내는데 이를 ‘함’이라 합니다. 을 전달하는 사람을 ‘함진애비’라 하는데 보통 신랑의 친한 친구 중 한사람이 맡으며 친구 몇 명이 동행하여 신부집 앞에서 “함 사시오”라고 외치면서 함이 도착했음을 알립니다. 신부집에서는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기 위해 봉채떡과 주안상을 준비합니다. 함을 전달하는 일이 신부 부모들에게 함을 파는 형태로 변하면서 갖은 심술을 부려 신랑 친구들의 최대행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최근에는 간혹 이 무리들이 매우 거친 행동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여 밤새 술값으로 다 날려 물의가 되기도 합니다.)

에는 통상 검은 비단으로 싼 혼서(婚書), 채단(采緞), 혼수(婚需) 3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혼서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보내는 목적(결혼)이 적혀 있는데 이는 신부가 오로지 일부종사(一夫從事)할 것을 상징하며 신부는 이 문서를 영원히 보관하여야하며 신부가 죽었을 때 같이 묻습니다. 채단은 청색과 홍색의 신부 치마감입니다. 청색 비단은 홍실로 싸고 홍색 비단은 청실로 쌌습니다. 이 두 색은
음양의 원리를 뜻합니다. 혼수는 신랑의 부모가 신부에게 주는 패물들을 일컫습니다.

 


드디어 혼례 날이 되면, 양가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혼례식 광경을 보기 위해 다 모입니다. 혼례의 여러 복잡한 절차는 각각 깊은 의미와 상징성이 있습니다.

친영(親迎)

전통적으로 혼례식은 신부의 집에서 치러졌습니다. 신랑은 통상 조랑말을 타고, 그의 하객이나 종들은 걸어서 신부의 집 혹은 혼례식장으로 갔습니다. 하객들은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만 신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엄숙한 표정으로 있어야만 했습니다.

전안례(奠雁禮:기러기를 드리는 예)
나무 기러기를 든 기럭아비의 인도로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갑니다. 신부집에 도착하여 기럭아비가 신랑에게 기러기를 주면 신랑은 기러기를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장모에게 두 번 절하면 장모는 기러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살아 있는 실제 기러기를 드렸다고 함.)

교배례(交拜禮)
wedding table 종종 이 때 처음으로 신랑 신부가 서로를 보게됩니다. 신랑 신부 각각 2명의 동료가 이 절차 내내 도와줍니다. 우선, 신랑이 혼례탁자 동쪽으로 걸어가면, 신부가 서쪽으로 갑니다. 신랑을 돕는 사람들이 신랑을 위해 멍석을 깔면, 신부를 돕는 사람들도 동일하게 합니다. 그러면 신랑 신부는 혼례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봅니다.

신랑 신부를 돕는 사람들이 신랑 신부의 손을 씻어 줍니다. 손을 씻기는 의미는 혼례를 위해 신랑 신부를 정갈히 한다는 상징입니다. 동료의 도움을 받아 신부가 먼저 신랑에게 2번 절하면 역시 동료의 도움을 받으면서 신랑이 한 번 절합니다. 다시 신부가 신랑에게 2번 절하고 신랑이 신부에게 한 번 절합니다. 무릎을 꿇고 서로 마주보는 것으로 이 절차가 끝납니다. 절을 하는 의미는 서로에 대한 허락의 약속입니다.

합근례
이 절차는 지역적인 차이로 2가지의 변종이 있습니다. 한가지는 동료들이 술잔을 신랑 신부에게 전달해주면서 신랑 신부가 같은 술잔으로 마시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신랑 신부가 표주박의 각각 반쪽으로 마시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새로운 부부의 인연과 조화를 상징합니다. 게다가 표주박의 각각의 반쪽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그 반쪽이 합쳐져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의 표주박이듯이 신랑 신부도 각각은 반쪽이며 합쳐졌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선, 신랑을 위하여 조그만 잔에 술을 따르면 신랑이 술을 마십니다. 다시 신부에게 한 잔 따르면 신부는 입술만 축이거나 마시는 척만 합니다. 그러면 술을 다시 신랑에게 따라주고 신랑이 재차 마십니다. 신부에게 다시 따르면 신부는 재차 입술만 축이거나 마시는 척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가 함께 3번 절합니다: 부모에게 한 번, 조상에게 한 번, 하객들에게 한번.

 

 

폐백(幣帛)
혼례식이 끝나면 곧장 신부는 시부모를 만납니다. 이 절차는 안방에 병풍을 치고 하는데 신랑 아버지가 동편에 앉고, 어머니가 서편에 앉습니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4번 절하여 시댁과 시댁의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충절의 뜻을 표합니다. 이 때 시부모에게 간단한 음식을 올리는데 이를 폐백이라 합니다.

           

 

신방
신랑 신부는 신부집에서 이 날을 위해서 특별히 치장한 방에 머물게 되는데, 과거엔 방 밖에는 친지와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방 문의 한지를 뚫어 방안의 광경을 몰래 구경합니다. 표면상으로는 신부가 낭패하여 도망가지 않을까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종종 신랑이 신부보다 어렸기 때문에 무었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어린 부부가 어울리는 것을 돕기 위해 양가의 몸종들이 혼례복의 맨 겉옷을 벗기고, 신부의 몸종이 신랑의 저고리를 벗기면 신랑의 몸종이 신부의 저고리를 벗겼습니다. 몸종들이 자리를 피해주면 신부가 부탁을 안 해도 신랑이 신부의 나머지 옷을 벗겼습니다.

 

우귀(于歸)
3일 후에 신랑 신부는 신랑 부모의 집으로 갑니다. 신랑은 자신이 타고 온 조랑말을 타고 가고 신부는 신랑의 몸종들이 가마에 태워 데려갑니다. 신랑 부모 집에 다다르면 마을 이웃들이 행렬에 따라왔을지도 모르는 모든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빨간 콩, 목화씨, 소금을 뿌렸습니다.

현구례(見舅禮)
신랑 부모의 집에서 모든 신랑 가족들에게 신부를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폐백의 절차와 유사하지만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marriage clothes 현구례(見舅禮)
신랑 부모의 집에서 모든 신랑 가족들에게 신부를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폐백의 절차와 유사하지만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평민들은 축제나 특별한 날에는 밝고 화사한 옷을 입었지만 보통 때는 흰옷이나 감정이 절제된 옷을 입었습니다만, 결혼은 한 인간의 일생일대의 중대사이므로, 이 때만큼은 참석자들이 궁중 의상을 본뜬 의상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의상 외에도 의전용 사모(紗帽)를 했습니다. 신랑은 검은 모자를 썼으며 신부는 절차의 반이 지날 때까지 베일로 얼굴을 가렸으며 머리에는 비녀를 했습니다.(상세 정보는 문화특집의
전통 의복을 참조바랍니다.)

신부의 복장
원삼(圓衫)

신부는 정성스럽게 만든 외투를 입었는데 소매는 손을 완전히 가리도록 길게 했습니다. 당시 궁중의 왕족들의 의상과 유사한 옷으로, 원삼이라는 이 옷은 안 쪽은 푸른 비단으로, 바깥쪽은 붉은 비단으로 지었습니다. 원삼 의 앞뒤에는 부귀, 장수, 우아함을 나타내는 꽃들을 수놓았으며, 굽이치는 소매에는 청, 황, 적 등의 색동을 넣고 끝에는 손을 가리도록 흰 헝겊을 덧대었습니다.

wonsam and daedae 조선 시대에(1392-1910) 활옷을 대신해 원삼을 입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신부들이 따라했습니다. 공주는 녹색 옷을 입었으며, 넓은 소매에는 종종 4-5가지의 색동과 흰 헝겊을 덧대었습니다.

대대(大帶)
홍색 공단에 심을 넣어 만들어 금박 무늬를 찍은 것으로, 활옷이나 원삼을 입은 뒤 앞가슴께에 대대의 중앙이 오도록 대고 양쪽으로 돌려 뒤에서 묶어 늘어뜨립니다.

족두리
족두리는 몽고의 여자들이 외출시 사용하던 모자를 따른 것으로, 족두리는 이 보다 작아 모자라기보다 일종의 악세사리입니다. 왕족들은 칠보 족두리를 했습니다.

용잠과 댕기
yongjam and daenggi 신부의 머리카락은 뒤로 바싹 당겨 목 뒤에서 묶었는데, 묶은 머리 사이에 용잠을 찔렀습니다.( 용잠은 긴 비녀로 끝단부에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음.) 도투락댕기활옷이나 원삼을 입을 때에 화관이나 족두리에 맞춰 머리 뒤로 늘어뜨리는 큰 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자수와 칠보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말들었으며 지방에 따라서는 오색실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앞 댕기는 쪽 찐 비녀에 감아 드리움으로써 족두리나 화관에서 어깨를 거쳐 웃옷까지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꽃무늬를 금박으로 중앙과 양끝에 찍고 끝에는 구슬을 10개정도 꿰어 달았습니다.

당의와 화관
왕비, 공주 혹은 고위 관료의 부인들이 왕궁에서 간단한 행사를 할 때 입었던 옷이 당의입니다. 양반 집 규수들도 혼례 때는 당의를 예복으로 입었습니다. 당의는 통상 안쪽에 붉은 비단 바깥쪽에 녹색 비단을 사용했거나, 안쪽에 분홍색 바깥쪽에 자주색 비단을 사용했습니다. 당의는 소매가 좁고 끝단은 반달형입니다. 당의와 함께, 족두리와 유사하지만 훨씬 화려한 화관을 머리 장식용으로 썼습니다.

신랑의 복장
사모관대로 불리는 신랑의 복장은 조선 시대 궁중 최하위직 관료의 복장과 유사합니다. 복장의 색깔과 벨트의 장식은 궁중 관료체계의 계급을 상징합니다. 결혼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이므로 신랑은 궁중 관료가 아니더라도 이 복장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고위 관료들은 혼례식 때 다른 복장을 착용했습니다.)

바지와 저고리

바지는 헐렁한 바지가 통이 좁은 바지보다 마루에 앉기 훨씬 편하므로 다리통이 넓습니다. 대님이라는 끈으로 바지 밑단을 발목에 묶습니다. 바지끝단이 장화 위를 덮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고리는 당시 남자들의 전통적인 상의입니다. (여자용 저고리와 명칭이 같습니다.)

단령포(團領袍)
원래 단령포는 궁중 관료들의 평상복입니다. 통상 청색이나 적갈색으로 가슴 부분 중앙에 2마리의 홍학을 수놓았습니다. 신부의 대대처럼 허리에 각대를 하였습니다.

신발은 목화라고 하는 천으로 된 검은 장화를 신었으며, 머리에는 사모(紗帽)를(양옆에 장식 깃이 달려있는 가파른 모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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