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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 압록강반에서
량안 풍경
압록강은 두 기슭이 서로 마주보는 풍경
이쪽은 저쪽 저쪽은 이쪽
강줄기따라 풍경들이 줄을 이었다.
하나의 젖줄물고 태여난 그 날부터
한 강물 마시며 함께 커온 풍경
때론 세월쫓아 물결은 높고 낮지만
같은 강 사이둔 두 풍경 서로가 외면한적은 없다
외면할래야 외면할수 없는 풍경
좋든 궂든 화려하든 초라하든 2위동체가 되여
지금까지 굽이굽이 압록강을 누벼왔다
허지만 새월따라 그 모습 너무 달리하면
강의 무게조차 어느 한쪽으로 푹
기을어질가 두렵구나
외곬 “진달래”
압록강 철교 아래 펼쳐진 유보도
심심찮게 볼수 있는 우리 민족 치마저고리
그 옷 몸에 두르고 왁자지끌 떠들며 사진 찍는 모습 .
누구는 난생 처음 입어보는지 그리 좋아 깔갈
누가 내놓은 아이디어인가?
압록강에오면 치마저고리가 인기끌것을
강건너는 바로 치마저고리 고향이여서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호감도 이목도 끌수있고
압록강을 다녀간 좋은 기념이 되겠다.
하여 내 흐믓한 기분으로
늘어가는 “우리민족”녀인들을 바라보다가
불쑥 강건너를 눈여겨보니 그곳은 아니구나
남에게만 즐거움 주자고
곱게만든 치마저고리 아니거늘
이런 날은 다투듯 강 이쪽저쪽
모두가 진달래꽃밭이였으면
압록강 물새들
이른 아침 압록강반에 이르니
때마침 하야니 물새떼들
내 서 있는 기슭에 내려와 앉는다
이쪽의 물새들 벌써 저쪽에 날아갔다 돌아 오는것이냐?
저쪽의 물새들이 이쪽으로 훨훨 날아온것이냐?
주둥이 길죽하고 점잖은 압록강의 물새들은
이쪽 저쪽 와 살아도 자유롭다
하고싶은 말 또한 자유로워
저쪽에 가서는 여기 말 하고
이곳에 와서는 저쪽 말 하고
오늘도 우죽부죽 어깨 드러낸 바위우에
비릿한 입술 쓱쓱 닦으며 저희들끼리
주고 받는 말
내 비록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도
나는 안다,본대로 들은 대로
너희들이 지금 압록강에서 주고 받는 말엔
조금도 거짓마저 없으리란걸…
강건너 사는 까치둥지
거룡인양 압록강을 날아넘은
대교아래 유보도에서
강물을 거슬려 동쪽으로 걷다보면
아직도 이쪽은 도시인데
저쪽은 어느덧 도시가 끝나고
허허로운 들판 마을 하나가 불쑥 드러난다
동구밖엔 외로운 나무 한 그루
나무우엔 달랑 까치둥지 하나
기쁜소식 전해주는
길조가 사는 나무라서 그대로 두었는가
까치들 몇마리 아침부터 즐거움을 물어나르네
까악깍 ㅡ내 고향 동구밖에서 보던
그 까치들과 다를바없건만
저들은 조선에 살아서 조선의 까치들
그러나 통행증이 필요없어
얼마든지 강을 넘어 올수있지만
말못하는 저들에게도 나라사랑 고향사랑 따로 있는가?
그냥 외로운 저 나무에 기대여 사네
오래인 가난속에서도
“내 나라가 제일좋아”
노래하며 사는 사람들처럼…
아,그래서인가 나에겐 저 까치들 깃을 내린 나무가
외롭게 그어놓은 하나의 감탄부호같다
만나고 싶다
압록강반에 서면 가보고싶다
새처럼 훨훨 날아가서
저 땅에 두 발 내려놓고
누구라도 만나고싶다
한번도 만난적 없지만 켤코 낯설지 않을
더구나 같은 평안도라서 말이 잘 통할
아무리 어쩌구저쩌구해도 저 곳엔
나와 한피 나눈 형제들이 살고있지 않느냐
하여 저 땅은 그 누가 머라해도
우리 외면할수 없는 땅 더구나
혐오하거나 미워해선 안될 사람들
좋은 술과 안주와 선물 가지고 가서
“반갑습니다!”노래와 더불어
“헝님,적은이 ㅡ” 구면처럼 나누며
머지 않아 쨍 ㅡ하고 해뜰날 있으니
ㅡ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우라고
시린 마음 작은 위안이고싶다 2013,5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강효삼선배님의 압록강시초에 부치는 편지
허인
인디언 속담에 이런 구절이 있다.<<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과불기연(果不其然)이라고 북방시단의 원로시인이며 사실주의 창작거장이신 강효삼선배님이 또 하나의 력작 [시초 압록강반에서]를 완성시켰다. 로요지마력 일구견인심(路遥知马力 日久见人心)ㅡ 먼길을 달리는 말은 마침내 그 힘을 알게 하고 오랜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 준다는 뜻이다. 명심보감에 있는 한 구절이다. 왜서인지 이 말이 강효삼선배님에게 꼭 알맞을것만 같아서 여기에 잠시 적어둔다. 한마디로 이번에 보내온 강효삼선배님의 <<압록강시초>>를 한번 또 한번 읽어보면서 필자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지금 <<무엇을 잊었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깊은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타민족이라면 어쩌면 그냥 무심하게 바라 보았을수도 있었을 브로마이드(放大相片)된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풍경을 스톱모션(静止长镜头)으로 정확하게 잘 보여준 <<량안 풍경>>,그리고 반세기 넘게 끊어진 압록강 철교아래 유보도에서 타민족 녀성들이 우리 민족 녀성들의 전통 의상인 치마저고리를 몸에 살짝 두르고서 깔깔대며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깊은 회의(回意)를 느끼게 하는 <<외곬 “진달래”>>,이쪽은 중국, 저쪽은 조선ㅡ엄연히 국경으로 나뉘여져 있는 량안을 날마다 거침없이 자유로이 오가는 물새떼들을 바라보면서 보이콧(排斥)이나 브레이크도 없이 단 하나 진실이라는 넓은 아량으로 한치 깊이 가슴속을 다시 한번 새삼스레 재여보게 하는 <<압록강 물새들>>, 그리고 나라사랑 고향사랑에 강 건너 동구밖에 허름한 둥지를 틀고 길조로 살아가고 있는 강 저쪽 까치들의 까치둥지를 시인의 독특한 시각으로 센스있게 커다란 하나의 감탄부호를 련상시킨 <<강 건너 까치둥지>>,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부르면 언제던지 한 걸음에 마주 달려가 서로를 얼싸안고 구수한 함경도 ,평안도 사투리로 끈임없이 동족애를 나누고 싶어지게 하는 <<만나고 싶다>>에서는 동포애, 민족애, 혈육의 깊은 정을 미움과 대칭되는 사랑으로 더 많이 표현하고 있는듯 싶다 그럼 여기서 우리 다 함께 강효삼선배님의 <<시초 압록강반에서>>를 조심스레 살펴보며서 가도록 하자
/압록강은 두 기슭이 서로 마주보는 풍경/이쪽은 저쪽 저쪽은 이쪽/ 강줄기따라 풍경들이 줄 지어 서 있다./에서 우리 모두 쉽게 살펴볼수 있는것은 이 시는 압록강이라는 특정된 무대에서 부킹된 절대적인 령역과 다소 디자인이 된듯한 시인의 간결한 시어들로 여기서 서로가 서로를 만날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고자 한것 같다. 그러하기때문에 그 뒤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믿고 따를수가 있도록 /하나의 젖줄물고 태여난 그 날부터/한 강물 마시며 함께 커온 풍경/은 또한 경험적이고 존재적이고 어쩌면 독자적인 보편성으로 /때론 세월쫓아 물결은 높고 낮지만 /같은 강 사이둔 두 풍경 서로가 서로를 한번도 외면한적이 없다/외면할래야 외면할수 없는 풍경/좋든 궂든 화려하든 초라하든 2위동체가 되여/ 지금까지 굽이굽이 압록강을 끊임없이 누벼왔다/로 상세하게 획분되면서 모노톤이 아닌 마인드컨트롤로 재테크해가면서 결코 둘로 나눌래야 나뉠수조차 없는 나는 너 ㅡ 너는 나 ㅡ오직 하나임을 특별히 각인시켰고 또한 그 모든 실재를 애써 절멸시켜 가려는것이 아니라 더욱 강력하게 형상의 이미지로 전환시켰으며 /허지만 세월따라 그 모습 너무 달리하면/ 강의 무게조차 어느 한쪽으로 푹 /기을어질가 두렵구나/로 왠지 모를 착잡한 심정으로 허니문(新婚)의 대문을 아쉽게 살짝 닫으면서도 한숨이 새여나갈수 있는 곳을 슬며시 열어놓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사색의 긴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맴돌아치게 한다.
일찍 미셜 푸코는 [말과 사물]이라는 저서에서 <<구조주의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적 지식에 대해 깨어 있고 불안한 의식이다.>>고 설파한적이 있다.또한 메를로 퐁티도 다음과 같이 상당히 장래성이 있는 전망을 우리들에게 일찍 제시한적이 있다.<<리성의 령역을 넓혀서 우리의 자신, 그리고 우리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존재하고 있는 리성 이외의 령역, 즉 리성 이전의, 그리고 리성을 넘어서는 세계를 새롭게 리해할수 있도록 우리는 다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이처럼 본격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모더니즘(현대사상), 다다이즘(허무주의), 모미즘(모친중심주의), 리얼리즘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이데올리기식의 자기성찰이나 직감적인 화려한 관찰이 아니라 더욱 객관적인 현실, 즉 도덕적인 삶을 초월하려는 상상력의 넓은 세계에 똑같은 관점을 두기도 하며 또한 자률성의 공통된 세계라는 립장에 와서는 결국 하나의 외적 현실적인 재난들을 정신력으로 극복해보려는 각근한 노력이기도 하다.
꼼꼼히 살펴보면 강효삼선배님의 경우 60-70년대 초기의 시작품들은 제한된 삶을 풀뿌리 인생으로 나름대로 꿋꿋이 살아오면서 탈현실적인 리념속에서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고독과 삶, 랑만과 슬픔, 즉 흔히 말하는 희로애락을 정석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랑만적인 서정,서사를 서술적으로 완성시킨 작품들이 많은듯 하며 80년대 중엽부터 2000년 중엽까지는 민들레, 진달래 등등 서민적이고도 예리한 시인의 독특한 시각으로 인문주의적인 휴머니즘, 즉 동포애, 동족애, 민족애를 집요하게 파헤쳐가면서 이 땅에 감사해 하고 이웃에 감사해 하며 고향에 감사해 하고 꿋꿋이 산재지구 백의동포로 태여난것조차 감사해 하며 향토적이고 철리적인 시들을 많이 완성시켰으며 현재는 년장자다운 너그러움과 그 푸근함으로 포용(包容)과 관용(宽容)의 철학을 체험과 언어연구의 조직자로서 시 창작에 더 많은 정신력을 각인시키고 있는듯 싶다.
더욱 깊이있게 파 헤쳐보면 강효삼선배님은 시 창작에서 많은 경우 의경(意境)창출과 변조적인 조응들을 특히 현실이라는 삶의 질박한 터전에서 시간적, 공간적 ,객관적, 등 여러가지 복잡다단한 질서들로 수없이 되풀이해 가면서 어쩌면 남들 보기에는 너무나도 볼품이 없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민들레, 진달래 등등 풀뿌리 인생을 작게는 동족애, 크게는 민족애로 승화시켜놓고 그릇된것은 제때에 귀띔을 해주려 하고 옳바른것은 두 손 들어 찬미해가면서 다른 시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 볼수조차 없는 겨레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열정이 많은 경우 시적인 소재가 되여 리사이클링 드라마가 다시금 연출되는듯한 그러한 특징이 있다. 시란 애초부터 대상에 대한 극진히 간결하면서도 서정, 서사적인 진술이 아니라 자유자재한 직유와 은유를 더불어 자신을 극단속으로 내던질수 있도록 허용된 용감한 감정운동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래에 강효삼선배님의 근작시들을 다시 함께 더 살펴보도록 하자
/압록강 철교 아래 펼쳐진 유보도/ 심심찮게 볼수 있는 우리 민족 치마저고리/ 그 옷 몸에 두르고 왁자지끌 떠들며 사진 찍는 모습 /. 누구는 난생 처음 입어보는지 그리 좋아 깔갈/누가 내놓은 아이디어인가?/ 압록강에 오면 치마저고리가 인기끌것을 /강건너는 바로 치마저고리 고향이여서/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호감도 이목도 끌수있고/압록강을 다녀간 좋은 기념이 되겠다./하여 내 흐믓한 기분으로/ 늘어가는 “우리민족”녀인들을 바라보다가/불쑥 강건너를 눈여겨보니 그곳은 아니구나 /남에게만 즐거움 주자고/ 곱게 만든 치마저고리 아니거늘/ 이런 날은 다투듯 강 이쪽저쪽/ 모두가 진달래꽃밭이였으면/ <<외곬 진달래 >> 전문이다.이 시는 더 이상의 그 어떤 해설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오늘날 분명 내것이면서도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 비릿한 감동과 갈등, 이 시는 구상이나 창작방향이 어떻게 변화되였든간에 끈기있게 시인 자신의 옳바른 독백을 줄곧 행복한 고민과 조금은 어눌하고 침착한 고민으로 심도 있게 두 갈래로 진행시켜 어쩌면 시인이 이 작품에 쏟은 로고가 도덕적 훈육에 바친 로고 그 이상의 것일거라고 필자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찍 강효삼선배님은 <<나에게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회고록에서 <<나의 대부분 시는 고향상실에 대한 비환과 그에 대한 극복 의지이다. <실향민>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고향이라는 의미는 곧바로 민족의 의미이기도 하며 자연회귀의 간절한 바램이기도 하다>>고 설파하신적이 있다. 그 결속구에서 강효삼선배님은 ㅡ나에게 있어서 문학은 열번 넘어지면 스무번을 더 일어서게 하는 내 신념의 쌍지팽이이다. 어쩌면 문학은 나에게 있어서 항상 시발점에 불과하다. 시인에게 있어서 창작이란 곧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데 한편의 글이 완성되여 발표된다는것은 또 하나의 자신을 탄생시켜 더 넓은 사회로 내보내는것과 같다ㅡ고 가슴에 쾅쾅 와닿는 말들을 하신적이 있다. 이렇듯 시에 대한 남다른 집념과 각오가 있었기에 이번에 완성시킨 <<압록강 시초>>들은 가히 력작이 아니라고 누구 하나 감히 나서서 반박할수 없을것 같다.
이른 아침 압록강반에 이르니
때마침 하야니 물새떼들
내 서 있는 기슭에 내려와 앉는다
이쪽의 물새들 벌써 저쪽에 날아갔다 돌아 오는것이냐?
저쪽의 물새들이 이쪽으로 훨훨 날아온것이냐?
주둥이 길죽하고 점잖은 압록강의 물새들은
이쪽 저쪽 와 살아도 자유롭다
하고싶은 말 또한 자유로워
저쪽에 가서는 여기 말 하고
이곳에 와서는 저쪽 말 하고
오늘도 우죽부죽 어깨 드러낸 바위우에
비릿한 입술 쓱쓱 닦으며 저희들끼리
주고 받는 말
내 비록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도
나는 안다,본대로 들은 대로
너희들이 지금 압록강에서 주고 받는 말엔
조금도 거짓마저 없으리란걸…
어떤 책에선가 이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잠시 난다. <<시인은 미지의 것에 도달한다. 비록 자기 자신의 환영들을 끝내 리해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시인은 그것들을 직관한다. 시인은 전대미문의, 그리고 이름 붙일수 없는 사물들을 통한 거대한 비약과정에서 파멸해도 좋다. 왜냐하면 다른 무시무시한 계승자들이 나타나서 그 자신이 좌초해버린 저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하기때문이다>>. 꼭 짚어 무어라고 해명하기보다는 이 시는 질서정연하고 엄격한 양식에 따라 에러(失误)없이 솔로모션(慢动作)으로 구축된 신객관주의 모더니즘이 분명하다.또한 너무나도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기도 하다. 일찍 피카소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그림이란 파괴의 총합이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와 반대로 이 시는 예술적 상상력의 본질을 이미지로 총집합시킨 결정체인것 같다.필자가 보건대 이렇듯 시의 주체가 초개인적인 중립성으로 나아가는 길은 계속 쭈욱 이어져 가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여기에 이르러서 필자는 우리들에게 현대시란 무엇인가 고민해보지 않을수가 없다고 생각해 본다. 필자는 여기서 성급한 정의를 함부로 내리고 싶지도 않다.또한 그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되기때문이다. 다만 분명한건 굴레나 바퀴는 굴릴수록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가기 마련이다는것뿐이다.우리는 지금 전통과 현대의 아스라한 갈림길에 덩그랗게 서 있다.어쩌면 일보 전진도 일보 후퇴도 아닌 반 쇼크상태ㅡ어떤이들은 주정, 서정, 서사로 맥락을 이룬 우리네 백년 전통시를 이제는 한창 때 지난 것이라고 비웃는다. 또 어떤이들은 해체와 건너뛰기,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단절로 위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시를 사이비시로, 글장난에 불과하다고 손가락질을 해댄다.그렇다면 과연 우리 조선족시단의 백년 전통양식의 계승자이고 이슈가 될만한 새로운 정점은 도대체 무엇일가? 필자가 보건대 정답은 강효삼선배님처럼 제 갈길을 꿋꿋이 가면서 곁눈 한번 팔지 않는것이라고 생각된다.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문호 게오르게와 호프만슈탈같은 위대한 시인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필자로서는 그들에게라도 꼭 한번쯤은 속시원히 답변을 들어보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기도 하다.
/거룡인양 압록강을 날아넘은/ 대교아래 유보도에서/강물을 거슬려 동쪽으로 걷다보면/ 아직도 이쪽은 도시인데/저쪽은 어느덧 도시가 끝나고/허허로운 들판에 마을 하나가 불쑥 나타나네 /동구밖엔 외로운 나무 한 그루/그 나무가지우엔 달랑 까치둥지 하나/기쁜소식 전해주는/ 길조가 사는 나무라서 그대로 두었는가/까치들 몇마리 아침부터 즐거움을 물어나르네/까악깍 ㅡ내 고향 동구밖에서 보던/ 그 까치들과 다를바 없건만/ 저들은 조선에 살아서 조선의 까치들/그러나 통행증이 필요 없어/얼마든지 강을 넘어 올수 있지만/ 말 못하는 저들에게도 나라사랑 고향사랑 따로 있는가?/그냥 외로운 저 나무에 기대여 사네/ 오래인 가난속에서도/“내 나라가 제일 좋아”/노래하며 사는 사람들…/아,그래서인가 나에겐 저 까치들 깃을 내린 나무가/외롭게 그어놓은 하나의 감탄부호 같다/ <<강건너 사는 까치들의 까치둥지>>전문이다. 결코 풍자나 조소가 아닌 현실적인 직유, 그리고 비교를 메스로 시작된 이 시에는 결코 아이러니는 없다. 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활발한것은 사랑에 대칭되는 비판의식, 그러하기때문에 이 시는 읽을수록 왜서인지 가슴 한구석이 알짜지근해지고 숙연해지며 뜨거운 동포애ㅡ민족애에 착잡하기도 하다. 어쩌면 분명 남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이 시에서 너무나도 인상적인것은 곧 나무와 까치둥지를 하나의 커다란 감탄부호로 보았다는 로시인의 그 로련함에 저절로 감탄이 나갈뿐이다.
/압록강반에 서면 가보고싶다/ 새처럼 훨훨 날아가서/ 저 땅에 두 발 내려놓고 /누구라도 만나고싶다/에서 이미 찾아 볼수 있다싶이 동포라면 누구라도 그러고 싶었을 다소 소박하고 경건한 심정을 시인은 <<만나고 싶다>>에서 시작부터 그대로 극대화시킨다. /한번도 만난적 없지만 켤코 낯설지 않을 /더구나 같은 평안도라서 말이 잘 통할/아무리 어쩌구저쩌구해도 저 곳엔/나와 한피 나눈 형제들이 살고있지 않느냐/이 세상에 혈육보다 더 무서운 정이 또 어디에 있으랴? 티격태격 다툼이 있더라도 떨어져 있으면 너무나도 보고싶고 만나면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져 주고 무작정 사랑을 주고픈것이 형육의 정이 아닐가? /하여 저 땅은 그 누가 머라해도/우리 외면할수 없는 땅ㅡ /혐오하거나 미워해선 안될 사람들/좋은 술과 안주와 선물 가지고 가서 /“반갑습니다!”노래와 더불어/“헝님,적은이 ㅡ” 구면처럼 나누며/ 머지 않아 쨍 ㅡ하고 해뜰날 있으니 ㅡ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우라고/시린 마음 작은 위안이고싶다/는 익숙한 느낌의 온기로 <<만나고싶다>>는 우리 모두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는것 같다.삶은 과정보다 어쩌면 세절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서 무엇을 이루려는 사람은 삶의 차원이 너무 다르지 않을수밖에 없다
<<진실한 작가란 곧 문학을 생명같이 여기는 사람들이다.생명처럼은 아닐지라도 나는 문학을 삶 전체로 생각한다.문학은 나에게 있어서 삶 그 자체이다.곧 내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끝없는 추고가 시다. 한수의 시를 두고 어쩌면 한평생을 고치고 고친다 해도 못 다 고칠것 같다. 시적 재능이 암담할수록 수개에 의미를 돋히고 싶다. 한수의 좋은 시를 쓴다는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짧은 생각은 길게 좁은 생각은 넓게 차가운것은 덥게 희미한것은 선명하게 또 하나의 세계를 정감과 리성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뜨거운 가슴이 랭각되는 날은 시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다.나이와 상관없이 시를 쓰는 날은 젊어 사는 날일게다.허나 한수의 시가 발표되면 나에게서 떠난다. 새로운것을 잉태하기 위하여 자리를 내는것이다. 나에게서 떠나간 시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독자들속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칠 못하다면 그 시는 죽은것이다.시가 살아 있는 비결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있는것, 나의 시는 도대체 독자들속에서 얼마나 살고 있을가? <시인은 시로 살아야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서는 안된다.>참으로 시속에 묻혀 사는 나는 매일 줄겁다…>> 마디 마디가 좋은 잠언들이라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끝으로 강효삼선배님이 새로운 한해에 더욱 많은 작품ㅡ 더욱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써내시길 부탁 드리면서 다시 한번 건강을 축원하고 싶다
2014년11월24일 심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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