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아프다. 우리 시대의 시가 이래 저래 여러모로 너무나도 아프다. 그런데 이러한 병페적인 시의 치유를 목적으로 근근히 짧디짧은 몇년사이 파격적인 화려한 변신을 꿈꿔왔고 또한 근래에 보기 드문 성과를 이룩한 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작년 이맘때쯤 장백산잡지사에 포스트모더니즘시 7수를 발표한적이 있고 올해 200만 중국조선족을 대표하여 호미곶문학상에서 본상을 수상한 김철호시인님이시다. 필자가 보건대 김철호시인만큼 적극적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해왔고 또한 그 거창한 행로에 걸맞게 주렁주렁한 성과를 이룩한 시인은 극히 드문줄로 안다. 아니 미안하지만 대낮에 등불을 켜둘고 찾아헤매도 결코 몇이 안되는줄로 알고 있다. 시에서의 화려한 변신이나 파격적인 변화를 두고서 평론가들은 한단계 더 높여 도약, 혹은 비약이 크다거나 의경【意境】이 새롭다고 표현한다. 필자가 보건대 시의 핵심은 이제 더는 조촐한 이미지와 이미지즘의 강박적인 조합, 구조주의적인 서두, 발전, 내용, 결과 그 따분한 의경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폭넓게 령혼과 사상, 더 나아가서는 확고한 리념과 개인주의【主义】적인 품격과 풍격, 관용과 포용에 있는듯 하다。례를 들면 시체에 아무리 좋은 수의를 입혀봐야 결국 시체이듯이 시에서의 시인의 언행은 곧바로 그 시인의 풍격이 되기도 한다. 알기 쉽게 바꾸어 말하자면 아무리 겉이 화려하더라도 곃국 사상이 없는 시들은 시체에 불과하다는 그런 말이기도 한다. 며칠전 남방에 출장중, 리상학주필님의 전화를 받고서 조금도 주저없이 청탁을 흔쾌히 받아드릴수 있었던 용기는 아무래도 김철호시인님은 평소 필자가 좋아하고 내심 나름대로 무척 따르고싶었던 그런 시인님이였기때문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근작시 8수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창발적 경향의 한 특징
고궁
해시계의 음특한 그림자가
몸을 뻗어 담장에 기여오른다
굵고 주름 깊은 고목이
나이테에 묶여 숨을 헐떡인다
개미떼들이 백두봉을 지고왔다
개미떼들이 고비사막 날라왔다
붉은 물결
붉은 구호
발자국에 고인 붉은 구토물의 납함
천년을 살아 피를 먹은 거인
쿵쿵쿵
쿵쿵쿵
걷는다
광장엔 황금의 금자탑이 있다
걷는다
쿵쿵쿵
쿵쿵쿵
만년후에도
살질 거인
…
<<고궁>> 전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시들은 단일성, 동일성의 원리에만 의존하여 구성되여 왔다. 현재의 시들도 대부분이 그러하다.이를테면 꽃이면 꽃, 들이면 들, 별이면 별 ㅡ 더 상세히 례를 들면 대상, 주제, 내용, 정서, 기타 등등 모두가 동일성 원리에 의거하여 발상되여 왔었고 효과면에서도 지나치게 단일성을 강조해온것이 사실이다. 헌데 여기서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창발적 경향의 한 특징과 불쑥 맞닥뜨리게 되며 킨넬이 말했듯이 <<계속해서 깊이 깊이 파고 들어가노라면 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며 하나의 동물일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더욱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노라면 너는 아예 풀잎이거나 한그루의 나무일수도 있을것이다…>>와 마찬가지로 심상[心相]시에서의 의식과 무의식을 훌쩍 뛰여넘어 또한 인간적인것을 굳이 무나뜨리려는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레 자연과 결부시켜 새롭게 령혼과 사상을 탄생시키려 하는 하나의 개인주의 표현방식을 즐감하게 된다. /해시계의 음특한 그림자가/몸을 뻗어 담장에 기여오른다/에서 쉽게 살펴볼수 있는것이 곧바로 한점의 오차도 용허치 않는 해시계의 작용이며 시제가 <<고궁>>이고보니 눈앞에 자연스레 펼쳐지는 첫번째 그림이 곧바로 <<이제는 해 질 무렵>>, 높다란 담장을 슬금슬금 기여오르려고 아득바득 몸부림치는 아직은 가물가물한 어느 조그마한 그늘의 작은 모습이다. 그 그늘이 있었기에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고궁의 모습은 더욱 고색찬연한것이 아닐가도 싶다 . 다음 / 굵고 주름 깊은 고목이 / 나이테에 묶여 숨을 헐떡인다 /에서 어느사이 <<담장>>에서 <<고목>>으로 모습이 되바뀌운 고궁의 모습은 이제 아름찬 나이테에 저절로 숨이 차 헐떡이기도 한다. 허나 그 모습은 비참한 결과가 아니라 어딘가 긍지에 찬 모습이기도 하다 . 이렇듯 거창하고 주렁진 성과들은 어디에서 오게 됐을가? 제3절 /개미떼들이 백두봉을 지고왔다 /개미떼들이 고비사막 날라왔다/에서와 제 4절/ 붉은 물결 /붉은 구호/에서 눈여겨 살펴볼수 있다싶이 이 세상 한낱 미물인 개미떼들마저 어기영차 어김없이 이곳으로 지고온 그 백두봉과 그 고비사막에서는 현란하게 눈이 부신 그 력사의 그 한 장면을 백문불여일견이라고 피부로 직접 부딪치고 엿볼수 있도록 시인은 독자 배려적으로 조심스레 설정해놓으듯 싶다. 이러한 배려심이 있었기에 /발자국에 고인 붉은 구토물의 납함/천년을 살아 피를 먹은 거인/에서 발자국에 고인 력사는 구토물마저 결국 붉은색일수밖에 없으며 또한 아우성도 아닌 이 세상의 납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더욱 뚜럿하게 상징시킨듯 싶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밝고 조금 어눌한 그늘속에서 싱싱한 피를 꿀꺽꿀꺽 삼켜가며 배불리 먹고 천년을 살아온 <<거인>>이였기에 / 쿵쿵쿵 / 쿵쿵쿵 / 걷는다 / 광장엔 황금의 금자탑이 있다 / 걷는다 / 쿵쿵쿵 / 쿵쿵쿵 / 만년후에도 / 살질 거인/…/에서 다시금 조심스레 살펴 볼수있는것은 황금금자탑도 무색할 / 만년후에도 / 살질 거인/…/은 여기서 다선을 목적으로 단순한 한두개의 이미지나 이미지즘의 라렬이 아니라 특정된 한 사물에 공간과 시공【时空】을 아예 훌쩍 뛰여넘으려는 풍격, 품격, 인격, 그리고 사상, 력사, 언행, 령혼을 시인의 재치있는 솜씨로 아낌없이 투영시켜놓은듯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시는 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차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가 뚜렷이 한눈에 잘 엿보여 필자로서는 마치 한편의 방대한 시리즈를 읽는듯한 그러한 느낌에 저도몰래 감탄을 련발하게 된다. 포스트모던 시가운데서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던것이 곧바로 고백시이다. 뢰트키, 로월, 플라스, 섹스톤, 베리만 등이 모더니즘의 전통을 무너뜨렸던것은 브레슬린이 지적한대로 <<예술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의 상징적, 신화적, 추상적인 질서들을 추구하는 미학을 버려야 했기때문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다, 이 시를 알아보기 쉽게 옮겨놓으면 다음과 같다. /이제는 해질무렵/천년의 고궁에서/느티나무 한그루/닭살같은 나이테 세여가며/ 가쁜 숨 거창하게 몰아쉰다/바람이 어제날 전설을 시로 읊는다/구름이 경이로운 력사를 념불로 중얼중얼 외운다/구토물의 납함속에 어지럽게 깨여나는 고요한 발자국소리/천년의 거인이 쿵쿵쿵 걷는다/쿵쿵쿵 심장이 다시 힘있게 뛴다/광장에는 항금의 금자탑이 아직 우뚝 서있다/젊고 싱싱한 피를 동이채로 떠 마시고/이제 만년을 더욱 거뜬히 서있을/동방의 거인이여/
김철호시인의 시는 자기 패러디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라는 점에서 상징주의 시와는 확연히 중요한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 아래에서 감성과 리성,의식과 무의식중의 발로에서 김철호시인은 어느곳에 더욱 비중을 두었는지 우리 다 함께 <<바다>>, <<설>>, <<일기>>를 조심스레 살펴보면서 가도록 하자
바다
묽은 재채기가 슬프다
말라버린 숨 하늘에 어둡고
덮쳐오는 고함 검푸르다
길고 긴 그림자 물에 꽂혀서
뿔뿔히 도망치는 비늘 꿰인다
일몰은 죽음이 아니다
서서히 오는 탄생은 어둠
새로운 생명이 숨어있다
설(雪)
ㅡ시라는 괴물
은혜간은 초설(初雪)
뼈다귀가 생기고
살이 붙고
피가 돌고
하더니
나무가지 꺾는다
길을 막는다
지붕을 허문다
바람과 동무해
하늘을 끌어내린다
입김으로 씻은
창안의 순한 눈(眼)들
폭력에 놀라 잃은 평화
일기
숨소리는 속으로 흐른다
생명은 공간에서 만나 서로를 끌어안는다
불타는 어제가 되돌아 온대도
력사는 다시 쓸수가 없다네
승자가 없는 영광 부끄럽다네
맹인가수가 노래부른다
한자깊이의 땅속에서
녹쓴 철갑모들이
해볕보기 싫다면서
삼질을 멈추라고 눈짓한다
이 세수 시의 공통점은 시인자체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더욱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조준이 된 랭철한 사유끝에 명중이 된 가장 인간적인 즉 인격적인 근로한 사상을 부여시켜 그 공명감이 더욱 큰듯싶다. <<바다>>의 경우 제일 마지막 세소절 /일몰은 죽음이 아니다/서서히 오는 탄생은 어둠/새로운 생명이 숨어있다/에서 시인은 어쩌면 예언에 가까운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의 지혜로운 자세로 포용의 자세를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설(雪)의 경우 첫련 /은혜같은 초설(初雪)/뼈다귀가 생기고/살이 붙고/피가 돌고/하더니/에서도 슬그머니 인격화를 완성시켜놓았으며 <<일기>>의 경우 제일 마지막 련에서도/한자깊이의 땅속에서/녹쓴 철갑모들이/해볕보기 싫다면서/삼질을 멈추라고 눈짓한다/로 인간대 인간, 인격대 인격, 사상으로 소통을 시도하려고 하는 그러한 지혜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 세수의 시 한수 한수가 모두 걸작이며 또한 이 세상 그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한점의 부끄럼조차 없을 훌륭한 우수작풀임은 틀림없을듯 하다.
삶 자체에 대한 우울한 반항과 기술복제적 인간에 대한 자각
이번에 발표된 김철호시인의 대부분 시들은 시에서의 새로운 문법을 나침판처럼 뚜렷하게 보여주는듯 싶다. 여기서 필자는 간단히 문법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히 문법의 범주로만 끝나는것이 결코 아니다. 즉 리성보다는 본능, 질서보다는 충동,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찬연한 그 세계,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전통적인 시문법을 사정없이 파괴함으로써 시인이 노리는것은 과연 무엇일가? 쉽게 말하면 시인은 시의 화자가 핏줄에 와닿는 초감각적인 리성적인 세계를 의식과 무의식적으로 피와 살, 령혼을 불어넣고 지혜롭게 노래하고 있는듯 싶다. 그러한 시니피앙들은 읽는이들 마음속의 커다란 흔들림과 함께 어쩌면 뼈속까지 오싹오싹해날 정도의 크나 큰 공명감과 함께 공감속의 그 짜릿짜릿한 전률들을 독자들에게 핫이슈로 선물하고 있는듯 싶다. 그럼 시니피앙이란 무엇인가? 소쉬르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언어기호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즉 흔히 말하는 소리심상이나 기표ㅡ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개념,혹은 기의]는 마치 동전의 앞뒤 관계처럼 짝을 이루면서 존재하는것이라고 여기에서 말을 해야 할것 같다.
설레임1
18층 빌딩에서
커다란 새 한마리가 뛰여내린다
콩크르트바닥과 만나춤추는 피아노파편들
명예란 공중루각이라고 소리친다
자판기 우에서 혈흔들이 날뛴다
불바람이 어슬렁거린다
스마폰이 사람들 얼굴을
뭉청뭉청 뜯어먹는다
머리없는 그림자들이 활처럼 휘여졌다
검은 새, 흰새들이 서로를 찾아 부르짖고
설레임 2
산은 파도를 멈추었다
산은 출렁이기를 그만두었다
황혼이 아닌데
벌써 어둠이 태머리를 땋고 있었다
찢어진 기와
물구나무선 미소
만족한 빛
도망친 숨…
산위에 산이요 산밑에 산이다
야호
백두의 큰 잔으로 동해물 푹 떠 음부에
뿌렸다
먼지 낀 먼지가 빛속으로 사라지다
우주를 삼킨 우주가 점속으로 들어가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조대, 어느 시대에서나ㅡ 시인의 사상의식은 항상 미래 지향적이였으며 또한 드레시(漂亮, 幽雅)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들을 창출, 랜덤하고도 더욱 디테일하게 드라이브코스(自驾游线路)를 스스로 구축해왔으며 더우기 새로운 언어조합속에서의 자률, 또한 지극히 러브 시(示好)한 이률배반속에서도 마스터피스(杰作)와 함께 항상 개혁이 동일시되여 왔었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미래 지향적인 행보는 오늘도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으며 또한 과감한 개혁의 리론과 그 기능을 불러오는 중요한 단서가 곧바로 시인의 더없이 정확한 의사전달로써 길게 설명자면 멘트(话语, 台词)가 필요없는 기획적인 자아도전과 저돌적인 돌파, 즉 새로운 시어창출과 함께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모로 독자들앞에서 검증 받아야 하는 그런 데스트가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어쩌면 련작시의 서두이고 시작일지도 모르는 <<설레임 1, 2>> 를 읽고나면 하이퍼시의 방향인 현실과 초월을 불쑥 머리속에 떠올리게 되며 데리다의 해체개념가운데서 <<모든 언어기호는 공간적 대립과 시간적 지연이라는 특성을 나타내기때문에 결국 현존이 아니라 흔적으로만 인식된다>>는 그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설레임 1>>에서 제 1련 /18층 빌딩에서/커다란 새 한마리가 뛰여내린다/콩크르트바닥과 만나 춤추는 피아노파편들/중에서 <<새>>와 <<피오노파편들>>은 언어기호학적인 척도에서 살펴보면 마음의 흔적들에 불과하며 그러하기때문에 <<18층 빌딩>>이라는 특정된 장소와 만났을때 자연스럽게 인격화를 완성하여 제2 단독련에서 <<명예란 공중루각이라고 소리친다>>로 그제야 사상을 납함할수 있었던것 같다. 다음 제 3련에서 / 자판기 우에서 혈흔들이 날뛴다 / 불바람이 어슬렁거린다 / 스마폰이 사람들 얼굴을 / 뭉청뭉청 뜯어먹는다 / 머리없는 그림자들이 활처럼 휘여졌다/에서 볼수 있는것은 그 어떤 외계인이나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곧바로 과거와 현실을 외계인이나 괴물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의 실제 모습들이며 결국 삶의 울타리는 너무 좁아 제일 마지막 련에서 /검은 새, 흰새들이 서로를 찾아 부르짖고/로 삶의 설레임은 부딪치고 부대끼며 가끔 아우성치더라도 흩어지면 죽고 모여야만 살수 있음을 설파한듯 하다. <<설레임 2 >> 역시 같은 도리로써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재밌는것은 /찢어진 기와/역시 /물구나무선 미소/로 인격화를 완성해가면서 진보적인 사상 즉 /만족한 빛/도망친 숨…/으로부터 민족적인 색채가 다분한 /백두의 큰 잔으로 동해물 푹 떠 음부/에 뿌렸다/를 견인해 내였으며 /먼지 낀 먼지가 빛속으로 사라지다/우주를 삼킨 우주가 점속으로 들어가다/로 세상사는 새옹지마와 같은것이며 그처럼 호한한 우주마저도 작다면 결국 한개의 점에 불과한것이다고 시인의 높은 경지를 종교도 철학도 아닌 사상과 령혼으로 지혜롭게 드러낸듯 하다. 아직 필자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정석으로, 또는 기초로 하여 단단히 밟고 더욱 높이 올라서려고 하는 기획적인 발전이지 결코 지극히 이률배반적이지는 않다는것이다. 그럼 우리 함께 김철호시인은 링크와 네트워크구축으로 어떻게 이미지즘을 완성해 가고 있는가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뇌출혈 1
기적소리 들린다
환승
탈선한 기차
시골에서 불던 바람이 도시로 왔다
눈빛이 깊다
투명한 사유는 더 려과될것 없다
파도의 섬모
두꺼운 기억
길 잃은 날개
각도가 삐뚤어진 명
새로운 바다
ㅡ바람아 미안하다
먼 곳에서 걸어오는 목소리
시간의 멀미가 멈추려나봐
탄생은 아픈것이다
뇌출혈 2
이 한수의 시를 위해
태풍은
먼 바다서 찾아왔다
살점을 뜯는 바람
밤바다는 더욱 크게 운다
돌아갈 길 필요없다고 한다
암수들이 부둥켜 안는다
콩크리트바닥에서 피아노가 탄생했다
피아니스트는 칠십년 묵은 할망구다
흰 머리카락들이 강선이 되여
땡땡 소리친다
음악이 나 봐라 얼굴 내밀었다가
너 죽는다 주먹질이다
석간신문이 벽돌장이 되여
웃는 얼굴에 가 박힌다
독자는 한명도 없다
<<뇌출혈 1>>의 경우 /기적소리 들린다/는 환각장애인들의 병적인 신호음을 간결함의 극치ㅡ즉 기적소리로 표현하여 그 묘미를 더해주고 있으며 /환승/탈선한 기차/시골에서 불던 바람이 도시로 왔다/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음을 하이브리드로 집결시킨듯 하다. /눈빛이 깊다/투명한 사유는 더 려과될것 없다/에서 살펴볼수 있는것은 삶의 우수(忧愁)이며 그 다음 /파도의 섬모/두꺼운 기억…/탄생은 아픈것이다/등등은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리해하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을듯 하다.<< 뇌출혈 2>>역시 기적소리가 한수의 시로 바뀌였을뿐 의식과 무의식만이 아닌 감각, 초감각적으로 령혼이 부르는대로 따라 읽노라면 리해하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을줄로 알고 있다. 재밌는것은 한수의 시로부터 시작하여 바람, 바다, 암수 , 콩크리트, 피아노, 할망구, /흰 머리카락들이 강선이 되여/땡땡 소리친다/음악이 나 봐라 얼굴 내밀었다가/너 죽는다 주먹질이다/석간신문이 벽돌장이 되여/웃는 얼굴에 가 박힌다/는 기 막힌 표현들이며 결구에서 /독자는 한명도 없다/역시 시제 뇌출혈과 미묘한 입맞춤을 하면서 싱싱한 사람이라면 마주서기가 저도몰래 아연해도록 머쓱하게 하는듯 싶다. 시행은 박자와 강약의 음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시인의 숨결로 이루어진다. 즉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무리하면서
이상으로 살펴본 김철호시인님의 근작시 8수에서는 포스트모더니스트다운 시인의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확고해진 창작자세와 점점히 맑은 령혼속에서 사상으로 무르익어가는 시인의 새로운 풍격, 품격, 그리고 아주 깔끔하게 새롭게 완성이 된 김철호주의가 피와 살, 얼과 넋이 하아얀 뼈짬으로 시퍼런 소금처럼 뚜렷이 엿보여 김시인의 초기의 정지용문학상 당선작 <<우리 모두 한올의 바람일수도 있다>>에서 볼수 있었던 정확한 목표조차 없이 갈팡질팡하였던 그런 분주하고 산만한 정서를 말끔히 떨쳐내여 읽는이들로 하여금 더욱 감탄을 련발케 하는듯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부정하는것도, 그렇다고 계승하는것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비판한다는 모순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끝으로 김철호시인님이 새로운 한해 더욱 큰 정진이 있으시길 두손 모아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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