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저명한 시인 륙유는 <<산서마을에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농가의 세주를 텁텁타 웃지 마라
풍년에 놀려 가니 가효도 푸짐터라.
산은 첩첩 물은 겹겹
갈길이 없나 하였더니
버들 푸르고 꽃핀곳에 또 한 마을 나타났네.
풍악소리 흥겨우니 춘사가 닥쳤는가
검박한 의복관대 옛풍이 여구토다.
한가한 날 달빛 안고 놀러 와도 된다시면
밤에도 지팽이 짚고 때없이 문 두드리리.
중국고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당나라 번영기라 시인은 산간벽지 농촌마을에서 아름다운 경치, 흥성거리는 명절의 풍경, 손님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순박하고 어진 심성을 그린듯,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장면에 시인의 무릉도원을 동경하는 념원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오늘날 두만강반의 중류지역에 이런 무릉도원이 있으니 바로 룡정시 삼합진 부유촌, 일명 하마래마을이라 할수 있다.
우선 하마래의 터전부터 살펴 보자. 그젯날에는 룡정시 소재지에서 남켠의 오봉산을 바라보면서 굽이굽이 아흔아홉구비의 오랑캐령을 넘어 80여리, 삼합진 소재지에서 두만강기슭을 따라 물길을 길잡이로 령마루를 서너개 넘는다. 말그대로 산이 첩첩 물이 겹겹 갈길이 없는가 하였는데 깊고깊은 산간벽지에 한 마을이 나타났다. 하마래마을이다.
<<하마래>>라는 촌명도 특이하다.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온된데 의하면 청나라 개국황제 누르하치가 군사를 이끌고 두만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부락에 들어가는데 하도 험준하고 가파로워서 부득불 말에서 내려 걸었다는데서 인기된 지명, 그때부터 이 고장을 글자그대로 하마래(下马来)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마래, 멀리 동남쪽으로 누르하치가 주둔해 있었다는 한왕산성을 한눈에 바라보며 천불지산의 남쪽기슭에 몸을 기대고 유유히 흘러가는 두만강에 시원하게 발을 잠근 이 고장은 예로부터 하늘을 쳐다보면서 송이를 뽑는 천혜의 명승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이 고장의 자연산송이는 일본이나 조선반도 그리고 운남, 사천 등지에서 자라는 송이와 다르고 더욱 특이하다. 일년 사계절이 분명하고 겨울에 깊게 얼었다가 녹는 비옥한 땅에서 돋아나는 이 고장 천불지산의 송이는 세계적으로도 질이 으뜸이라고 한다.
부유촌 당지부서기 리종국씨에 따르면 이런 으뜸송이를 하마래마을에서만 하루 평균 1톤이상 채집, 밭이 많은 집들에서는 하루 100킬로그람이상 채집한다고 한다. 지난해처럼 송이가 많이 돋는 해에는 년간 30톤이상 뽑을수 있는데 촌의 총수입은 500만원--600만원 될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면 부유촌에 100여 가구가 사는데 가구당 5--6만원의 순수입을 올린다는 얘기다.
하마래사람들은 바로 이 리종국서기가 있어 든든하단다. 이 리종국서기의 경력도 남다르다. 그는 대학생으로서 1980년대에 할빈대학을 졸업하고 밀산조중에서 교편을 잡다가 90년대에 하해하여 관내에 진출, 산전수전을 겪은후 고향에 돌아와 촌 주임으로 선거되였다. 그는 촌민들을 이끌고 열심히 일하여 집집마다 번듯한 벽돌기와집에서 살게 하였다. 수십만원 저금을 가지고 있는 집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새로 지은 널직한 촌정부청사 북쪽마당에는 인조잔디로 된 깨끗하고도 반듯한 문구장이 있다. 할 일없는 마을사람들이 매일 모이는 장소이기도 한 문구장에서 운동도 하지만 수시로 모여 세상만사를 나눈다. 비오는 날에는 넓직한 활동실에서 당구치고 화투 치고 썰썰하면 온 동네가 한 가마에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시원 컬컬 새노란 기름이 동동 뜨는 감주를 바가지로 퍼 마시면서 굿거리장단에 옹헤야를 부른다. 덩실덩실 도라지춤에 성수가 난다. 정녕 이들이야 말로 신선 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이미 50대에 진입한 리종국씨는 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성인남성이다. 촌민들의 친자식같은 시중군으로 되여 촌민들을 위해 앞뒤로 뛰여다니는 리종국씨의 로고에 <<말하자면 끝이 없습지비>>라고 하면서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이웃챙기기, 하마래마을의 미풍량속으로서 세세대대 이어 내려 온 로전통이다. 그어느 고장보다 특이하다. 그 일례로 송이밭에서 볼수 있다. 하마래사름들은 <<송이밭지경에 난 송이는 절대 뽑지 않는다.>>는 철같은 신조가 있는데 누구나 절대 범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천부지산에서는 산봉을 따라 혹은 골자기를 경계로 소나무에 붉은 칠을 한것도 있고 붉은 천을 매여 놓은것도 간혹가면서 볼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영호들이 나누어서 도급맡은 경계선이였다. 이런 경계선에서 곧바로 하마래의 인심을 읽을수 있었다. 참으로 감동적이였다. 살펴보면 송이밭지경에는 이미 피여난 송이도 있고 갓 움터나오는 송이도 있었지만 누구도 뽑지 않았다. 한 마을에 살면서 그곳에 돋은 송이때문에 서로 불쾌한 일이 생길가 호상 념려하는 마음으로 뽑지 않는다고 한다. 하마래의 사람들은 또 하나의 전통습관이 있는데 바로 서로 송이 뽑는 시간을 약정하것이다. 오늘 웃집에서 송이 뽑으러 오면 아래집에서는 래일 송이를 뽑는 방식으로 산에서 만나는것을 피한다고 한다.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는 마음에서 란다. 이런 미풍량속은 더불어사는 오늘 세상,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면서 더욱 고양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보급되여야 할것이다.
어찌 하마래마을 뿐이랴, 우리 연변에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실상 우리 연변은 그 어디나 무릉도원이다. 우리 중화의 땅 960만평방킬로메터의 광활한 신주대지에서 유일하게 련속 3차나 공기질이 가장 으뜸으로 평가된 청정지역이다. 그처럼 좋다는 해남도의 산야나, 중원지역의 항주, 무석도 무색하게 제치고 단연 첫손 꼽는 고장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마을에 리종국서기와 같은 그런 코기러기, 믿음직한 살림군이 있어 촌민들을 이끌고 있다. 화룡시 서성진의 진달래마을, 습근평총서기가 다녀가신 광동촌, 안도현 만보진의 장백산아래 첫 조선족민속홍기촌,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보라 저마다 자기특색의 무릉도원을 꾸려가고 있다.
하마래에 비낀 장미빗노을, 나아가 오늘날의 연변대지에 장미빛래일은 더욱 아름다울것이다.
연변일보 20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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