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지 않아 다가오는 6.1국제아동절을 맞으면서 아무리 일상이 다망하더라도 이 한 달만은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돌려야 하지 않을가?
우리 민족의 젊은 세대의 가정을 살펴 보면 거의 매일이다싶이 아침이면 이런 <<전쟁>>이 벌어진다.
<<엄마 오늘 하루만 학원 안가면 안돼요?>>하고 련휴일을 맞아 어린 자식이 사정사정한다. 하지만 나젊은 엄마는 매정하게 오늘도 아침일찍 아이를 과외에로 내몰았다. 그 리유는 당당하였다. 오늘의 고생은 모두 그 애들의 래일의 참행복을 위해서란다. 오늘 하루 더 고생하면 래일이 더 보장이 있는거란다.
자식은 문을 박차고 나가며 잔뜩 불만이다. 쾅-문닫기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입에서도 <<어휴 불쌍한거>> 한탄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다.
련휴일이라 필경 쉬는 날인건만 휴식일이라도 늦잠 한번 잘수 없는 불쌍한 내 새끼, 학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소학교에 들어가서도 휴식일 한번 제대로 놀아보지 못했던것 같다. 영어과외, 수학과외다 거기에 또 피아노를 배우고 그림그리기를 배우고... 멀고 먼 미래의 성공을 위해 아들애는 팽이처럼 돌아쳐야 했다. 어느덧 소학교 6학년, 그의 동년도 다 가고 있는것이다.
지금와서 우리들의 동년을 뒤돌아보면 지금 애들에 비해 먹을거리나 입을거리는 비할수도 없었다. 장난감들도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고무줄넘기, 공기놀이 그리고 전쟁놀이다, 숨박꼭질이다, 반두질이다 아무 곳에서나 마음껏 뛰놀수 있었다. 함께 놀아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더없이 즐거웠던것이다. 필경 우리들의 동년은 구차하였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부담이 없이 즐겁고 자유로웠다.
이처럼 우리 동년을 떠올려봐도 사실 공부보다도 놀음이 더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오늘날의 애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애들의 동년은 배우고 또 배우는것외 무엇이 더 기억이 남을가?
부모로서 애들에게서 동년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것이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또 어떡하랴? 다른 애들은 이것저것 다 배우는데 우리애만 놀게 할 수는 없잖는가? 그러다가 나중에 커서 아무것도 할수 없을 때 결국엔 부모만 원망하지 않겠는가? 옛날 우리부모들은 조건이 안돼서 자식한테 신경을 못썼다면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키우면서 남에게 뒤질수는 없는거잖는가?
그렇다면 이런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을 받으며 우리 애들은 구경 얼마나 행복할가? <<오늘의 고생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거란다>> 하는 것은 부모들이 항상 입에 달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진정 오늘날 동년의 행복을 희생했어도 이 애들의 미래에 행복이 보장되는걸가?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자식을 룡으로 키우고 다른 집 자식들보다 더 잘 키우려는 부모님들의 치렬한 경쟁의식속에서 애들은 너무 이르게 부모들이 정한 성공모식의 틀에 매여 성장하게 된다. 댓 살이 되기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고대 당시, 송시를 외우고 외국어를 배우고 소학교에 입학하면 글짓기다 올림픽수학이다 바삐 돌아쳐야 한다.
“발묘조장(拔苗助长)”이란 성구가 있다. 한 어리석은 농부가 자기 집의 밭 곡식이 이웃집것보다 못한것을 보다 못해 빨리 자라라고 한포기 한포기 잡아당겨놓았는데 결국 모두 말라죽고말았다고 한다. 우리에게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조기교육이 되려 아이를 망치게 한다고 타이르는 옳바른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저명한 아동교육학자 변기원박사는 그의 저서 《두뇌야 놀자》에서 “아이의 두뇌와 마음은 단계적으로 성장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래서 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발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력설하고있다. 신체의 변화는 목을 들고 몸을 뒤집고 서고 걷는 등 눈에 확연히 보인다. 하지만 두뇌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기때문에 단계적으로 발달하고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기에 아이의 변화를 정확히 관찰하는것이 필수적이다. 옆집 아이에 비해 말을 빨리 배우는것에 기뻐할것이 아니라 아이의 발달단계가 말할줄 아는가 하는것을 확인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와 주변의 또래 아이를 비교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자기 아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말을 늦게 하거나 표현력이 못하다면 걱정이 커지고 마음이 조급해 단순하게 그것만 치료한다. 혹은 다른 애들보다 더 훌륭하게 키우려는 욕심에서 조기교육에 몰입하면서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무시하고 요구를 높인다. 이런 조급성은 절대 금물이다.
“아이는 아이로 보아야 한다. 대자연은 아동이 성인으로 되기전에 아동다울것을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이 순서를 혼란시킨다면 너무 조숙한 열매를 따게 될것이다.” 프랑스의 걸출한 계몽사상가, 교육가 루쏘가 부모들에게 한 경고이다.
활발하고 단순하고 구속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는것이 바로 아이들의 천성이다. 하기에 부모들은 맹목적인 조기교육으로 아이를 급히 성숙시키려 하면서 채 익지 않은 과일을 너무 일찍 따려고 덤빌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점차적으로 건실하게 키우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것이다. 두뇌발달단계를 무시하고 아이들의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어른들의 욕심으로 어른들의 방식에 따라 진행하는 조기교육, 맹목교육은 아이의 발달장애를 일으키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교육의 중심에는 부모의 기대가 아니라 아이다운 아이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한창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진정 행복한 동년을 선물하자면 우리 부모들부터 어떤 자세가 필요할가? 역시 심사숙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연변일보 201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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