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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풍경 62
62. 중국 4대 고도 뤄양: 뤄양목단갑천하(洛阳牡丹甲天下)
한국인들에게 뤄양(洛陽-낙양)은 낯선 도시일지도 모른다. 쟝제이스(蔣介石-장개석)의 옛 소굴인 난징, 진시황이 누워있는 시안 보다는 친절감이 덜 하다. 하지만 중국 쏘오린스(少林寺-소림사)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할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의 무협영화가 호황을 누렸고 지금은 무협채널이 흥행되고 있다. 더욱이 소림사’는 인도 달마 고승이 수련한 곳으로, 또 소림 13명 무승(武僧)이 당나라 황제 이세민을 구한 전설적인 이야기, 또 ‘소림사’ 세 글자는 강희 황제의 친필이어서 소림사는 해외에 높은 명성을 날리고 있다. 소림사에서 관광버스로 2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달리면 곧 뤄양이다.
뤄양은 낙수 양지쪽에 있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화하문명의 주요 발상지로서 중국고대 부희, 여와, 황제, 요순, 하우 등 신화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770년 저우핑(周平-주평)왕이 낙읍(洛邑)으로 천도를 시작하여 선후 13개 조대가 이곳에 수도를 앉히고 장장 1500 여 년을 이어왔으며 수당이후에는 인구가 100만을 넘었고 사방납공 백국내조(四方纳贡,百国来朝)-사방에서 납공하고 백국에서 찾아오다. - 의 성세를 이루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목단은 측천무후의 위염에 눌리지 않고 겨울날 종일 피어있었기에 뤄양으로 ‘유배살이’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목단은 오늘날 중국의 국화이다. 문학대가 구양수가 쓴 《뤄양목단기(洛阳牡丹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단에 대한 전문서적이다.
뤄양은 무측황후가 유일하게 오랫동안 거주한 곳이다. 황제에 등극한 후 수도를 뤄양으로 정하였고 가무를 각별히 즐겼던 무측황후는 ‘10만’ 궁중악대를 조직하여 매일 대명황궁에서 연습하였고 놀이 갈 때는 수많은 대신과 10만 궁중악대를 거느리고 아침 일찍 대명황국에서 떠나 천하제일루-리징먼(儷景門-려경문)에 올라 가무를 감상하며 뤄양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문인묵객들이 잇따라 시를 쓰고 부를 지어 리징먼은 뤄양의 제일경관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 CCTV에서는 ‘대명황궁’이란 역사드라마도 방영하였다.
뤄양에는 중국 3대 석고 중 하나인 용문석고(龙门石窟)가 있다. 뤄양시 남쪽 13킬로미터의 아하 양안에 위치하고 있다. 북위 쇼원띠(孝文帝-효문제) 때(기원 493년)에 뤄양으로 천도하면서 건설하기 시작하여 서위, 동위, 북제, 수, 당, 5대, 송, 명 등 조대를 뛰어넘어 장장 500년에 걸쳐 이하 양안 절벽에 2000 여개 감실과 10만 여 조각상을 만들었다. 2000년 11월 용문석고는 ‘세계문화유산명록’에 등재되었다.
중국 제일의 고대 사원 백마사(白马寺) 역시 크게 알려지고 있다, 세계 유명한 불사,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 관방에서 차린 제일 사원으로서 불교계로부터 사원(释源), 조정(祖庭)으로 높이 불러지고 있다. 한명제의 명을 받고 67년 불경, 불상을 서역에서 가져왔으며 68년 한명왕은 뤄양 융먼(雍门-옹문) 밖에 승원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불경, 불상을 가져올 때의 백마의 노고를 기념하여 승원을 백마사라고 이름 지었다. 백마사는 부지 200 여 무이다.
뤄양의 고대무덤박물관은 세계 최대 규모이며 ‘마사종성’ 등 뤄양 팔경은 풍격이 각이하고 수려하다.
그리고 삼국지의 관운장의 수급을 묻은 뤄양삼국유적도 흥미진진하다.
위나라 쇼원띠(孝文帝-효문제) 장릉, 쇈우띠(宣武帝-선무제)경릉, 쇼밍띠(孝明帝-효명제)정릉, 쇼좡띠(孝庄帝-효장제) 정릉 등 4명 황릉이 있는 뤄양, 중국 최고의 고도로 고색고향(古色古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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