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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살어리민박
2014년 08월 31일 21시 45분  조회:893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살  어  리  민  박


장학규

 


세번째 날

띵동 띵동
초인종소리가 시끄럽다.
“민대리, 나가 문 좀 열어줍소. 아까 그 한국사람이 온 모양입꾸마.”
뚱보아줌마의 북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에서는 무엇을 씻는 모양으로 수도물소리가 요란하다.
봉수는 아쉬운듯 보던 책을 침대머리에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을 거쳐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따기 바쁘게 웬 거쿨진 사나이가 큰 트렁크 하나를 힘겹게 끌고 들어섰다. 옅은 노란색의 중고 파카를 입은 모습이 그대로 영락한 떠돌이였다. 고맙다는 인사대신 불만부터 내뿜었다.
“여가 대체 민박 맞는겨? 사람 마중도 안 할라카고 초인종 울려도 몇십분만에 나오고 도무지 서비스가 되여있지 안하져.”
뚱보아줌마가 어느새 달려나와 손님의 트렁크를 받아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바깥주인이 출장중이라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쪽 방입니다.”
봉수는 꿔온 보리자루처럼 한옆에서 서성거리다가 싱거워져 부시시 방으로 돌아왔다. 책을 다시 집어들었으나 글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3일전 봉수가 처음 살어리민박을 찾아왔을때도 주인인 뚱보아줌마는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었다.
“바깥주인이 출장중이라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쪽 방입니다.”
뚱보아줌마가 둘변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면 틀림없이 저 말을 대뇌에 록음하여 오는 사람마다에 되풀이 하는게 분명했다.
12월 중순의 청도는 저녁 다섯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진다. 전등을 켜기 귀찮아 침대에 그대로 구겨져있던 봉수가 어슴푸레 잠들무렵 누군가 노크도 없이 스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제 새로 입주한 연길 김씨였다.
“오늘 아무데도 안 나갔소?”
“잠간 회사 갔다 왔네요.”
면목 익힌지 고작 하루밖에 안된 김씨는 오랜 지인인양 맨발바람을 한채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오늘 또 사람 한내 들어왔재?”
“한국사람이라데요. 예쉰 넘어 되어보였어요.”
“아, 거 ‘요’ 없애버리므 안되우? 신경질날라 하우.”
“글므 어떻게 해?”
“딱 그렇게 하지, 아예 야자하자. 나이두 비슷한데.”
“글까?”
“저 한국넘은 뭐하는 넘이라니?”
그때 뚱보아줌마가 맞춤하게 식사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가 많이 배고팠던 모양으로 미처 대답을 들을념도 않고 후다닥 일어나 앞서나갔다. 사십대 후반인 김씨는 동작도 퍼그나 민첩했다. 봉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나갔다. 터덜터덜한 김씨가 별로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다.
벌써 음식상이 차려져있었다. 봉수의 요구대로 뚱보아줌마가 두부를 듬뿍 넣고 청국장을 끓였다. 점심에 귀국을 눈앞에 둔 한사장과 깡술을 한병씩 퍼먹고 속이 볶여 죽는줄 알았다. 한사장이 어렵고 힘들고 또 불쌍한건 잘 알지만 봉수 자신도 살길이 막힌건 피차일반이였다. 벌써 거의 일년째 로임 한푼 받지 못하고 지내왔다.
새로 온 한국손님은 어느새 식탁에 마주앉아있었다. 김씨가 먼저 한국손님의 마주켠에 턱하고 앉았고 봉수는 머뭇거리다가 김씨의 아래쪽에 다가가 앉았다. 앉으면서 힐끔 김씨를 건너보니 예상했던대로 김씨가 뚱보아줌마한테서 국사발을 받아든채로 한국손님을 째지게 건너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슴까?”
“한국요.”
“한국 어딘가 말입지비.”
“부산요.”
둘은 목구멍에 중풍이 온듯 단마디 명창으로 주고받았다. 대체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지 도무지 갈판을 잡을수 없었다. 그러나 봉수가 손에 땀을 쥐고 걱정했던것과는 달리 두사람은 그뒤로 손발이 척척 잘도 맞아나갔다.
“장사 나왔슴까?”
“무쟈 좋은 물건 갖고 나왔당께. 거 성씨 뭐라카노?”
“경주 김씨임다.”
“우리 같은 신라 왕족 아이가. 갱상돈데 와 함갱도 말씨를 쓰노?”
“본만 경주지 내사 조상팔대까지두 함경도지므.”
“까지껏 관등성명을 치와뿌리고 나하구 퍼뜩 물건이나 팔아보지 않겠나?”
진한 사투리를 쓰면서도 둘은 용케도 서로 알아듣고 있었다.
원래 밥을 빨리 먹는 봉수는 그들이 인사수작을 하는 사이에 밥 한그릇을 뚝딱 깨끗이 비우고 거실로 나왔다. 티비를 켰으나 식당에서 두사람이 어찌나 고아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지 도무지 티비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방으로 들어오는데 뚱보아줌마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따라들어왔다.
“민대리, 오늘 어떻게 마무리하셨슴둥?”
“공장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구…한사장은 나더러 넘겨받겠는가구 하는데 모르겠어요. 며칠 더 기다려보구 가불을 결정해야겠어요.”
뚱보아줌마는 달다시다 아무말 없이 우물쭈물하더니 용기를 낸듯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 래일 동북에서 부부 한쌍이 와서 사흘 정도 있게 되는데 그동안 김씨랑 한방 쓰면 안되겠슴두? 돈 좀 적게 받던가 할게.”
“글쎄…저야 뭐…김씨가 어떻게…”
“저 새워이 걱정은 맙소. 우리 고향 사람입꾸마. 일년에도 열번 넘어 들락거리는데므. 그럼 그렇게 하는걸로 알겠슴다.”
뚱보아줌마가 미꾸라지처럼 사라진뒤에도 봉수는 입을 하 벌린채로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뭉글뭉글 살집이 좋은거 내놓고는 별로 볼데 없는 뚱보아줌마이지만 그녀한테 빠지면 출구가 전혀 없다는것을 새삼스레 체험했다.


네번째 날

뚱보아줌마는 장 보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낯선 남녀 한쌍이 거실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고있었다. 삼십대인듯한 남자는 얼굴이 사내답게 둥글넙죽한 대신 부자연스럽게 쏘파에 기대있었고 바싹 마른 녀자가 몸에 비싼 퍼코트를 걸친채 오히려 대범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사실 12월도 중턱까지 달려왔지만 바깥온도는 아직도 령상에서 맴돌고있는 청도에서 파코트는 좀 이른 차림이였다.
봉수는 하루종일 액세사리회사에 나가 풀이 한껏 꺾인 한국인 한사장과 함께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중이였다. 오늘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 대문에 큰종이로 공장을 양도한다는 포고를 써붙였고 찌라시도 숱해 날리고 상업신문의 한쪽 구석에도 광고를 냈지만 찾는 사람이 없었다. 전사장은 기어코 공장을 팔아 빚을 다 갚고 떠날거라며 우겼다. 야반도주가 이슈가 된 마당에 봉수는 그런 사장을 차마 그냥 내버려둘수 없었다. 10여년을 쭉 중국측 대리로 있으면서 봉수는 한사장과 호흡을 잘 맞추어왔었다. 그 한사장이 쪽박 찬것은 어쩔수 없다쳐도 개털까지 되는건 정말 보고있을수 없었다.
방에는 어느새 연길 김씨의 짐들이 들여져있었다. 뚱보아줌마가 갖다놓은게 틀림없었다. 짐이라 해봤자 큼직한 멜가방 하나에 옷견지 몇개였다. 그대로 안쪽 침대에 내버려졌는데 퀴퀴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제야 방마다 호텔처럼 침대 두개씩 들여놓은 리유를 알것 같았다.
봉수가 거실로 도로 나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서성이고있는데 때맞추어 핸드폰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뚱보아줌마였다.
“민대리, 지금 어디 있슴두?”
전화만으로도 귀가 멍멍해왔다.
“살어리에요.”
“그럼 얼른 쇼취대문까지 옵소. 이걸 들어다줘야겠으꾸마.”
봉수는 웬일인지도 모르고 솜 슬리퍼를 끌고 흔들흔들 4층 계단을 내려갔다. 아파트단지 정문까지 가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던지 저 앞에 뚱보아줌마가 량손에 비닐꾸러미를 한아름씩 꿰지고 두 걸음에 한번씩 쉬면서 오는것이 보였다. 봉수는 괜히 허둥대며 한달음에 다가가 뚱보아줌마의 손에서 물건들을 받아들었다. 뚱보아줌마가 몇개라도 남길줄 알았는데 손에 든 비닐꾸러미를 깡그리 넘겨주는것이였다.
“아이구 무거워 죽는줄 알았으꾸마.”
(원숭이 바나나 먹다가 설사하는 소리하고 계시네. 아니, 허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랑 비슷하네.)
봉수는 속으로 울화가 울컥 치밀었으나 그대로 참았다. 어차피 뚱보아줌마는 개념 탑재가 요상하게 된 사람이였다. 여러날 있으면서 보니 뚱보아줌마는 판도라상자처럼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속빈 강정 같을때도 있고 또 가끔은 내숭을 떨고 생을 깔때도 있었다. 아무튼 정신이 약간 가출된 상태가 아니고서는 뚱보아줌마와 보조를 같이한다는건 어림 반푼도 없었다.
“김씨랑 돌아왔슴두?”
“아니오. 한국분도 안들어오고요.”
“둘이 같이 나갔으꾸마. 무슨 생기발딱인지 하는걸 판다면서, 엊저녁 대포쟁이 둘이서 세상 장사 다 합더구마.”
“김씨랑 한고향 사람 아닙니까?”
“그런 셈이기는 합지.”
봉수는 아파트 밑에서 비닐주머니들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양손 손가락 마디가 쑤시듯 얼얼해왔다. 들여다보니 비닐주머니가 졸인 흔적이 굵고 깊게 파여있었다.
간신히 4층에 있는 민박까지 올라가 노크하니 기다렸다는듯 문이 열리며 새로 온 어리숙한 남자가 손을 내밀어 채소들을 받았다. 아마 그들이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기다렸던 모양이였다. 
저녁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국손님과 연길 김씨가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왔다. 한국손님은 술에 이겨내지 못하겠다는듯 방으로 곧바로 들어갔고 연길 김씨는 휘청이면서도 식탁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중키가 되나마나했지만 몸은 근육질로 단단하게 다져있었다.
“오늘 온다던 사람들이구마.”
“에.”
뚱보아줌마를 념두에 두고 묻는 어조였지만 젊은 남자가 덩달아 먼저 실오리같은 소리로 대답했다.
“어디서 왔소?”
“심양에요.”
이번에는 녀자가 앞질러 대답했다. 겨릅대처럼 말라있었지만 어딘가 날카로운데가 있었다. 남자를 재촉하여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무래도 부부간이 아닌거 같으꾸마.”
뚱보아줌마가 딴에는 톤을 낮추어 귀속말을 한다는게 집안이 다 웅웅거렸다.
“여자는 평안도치가 분명한데 남자는 길림쪽 사람 같슴다. 나이도 여자가 이상인거 같구 영 아이 맞슴다.”
“뭐할러 왔담두?”
“말로는 놀러 왔다는데 짐 숱해 들구온걸 보므 아무래도 청도서 숨어 살려고 작정한거 같슴다.”
이때 새 손님들의 방문이 와락 열리면서 말라괭이 녀자가 얼굴이 상기된채로 씽하니 나와 정수기에서 물 한컵을 뽑아 울컥울컥 들이키더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다시 방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밥 터먹구 할일두 없디.”
인차 방안에서 들으라는듯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안을 느낀 봉수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뒤를 이어 뚱보아줌마가 그릇들을 와락와락 거두기 시작했다. 연길 김씨는 봉수 뒤를 졸졸 따라들어오더니 자기 뒤털미를 옆사람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탁탁 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종일 돌아댕겼더니 아다마 왔다리갔다리한다.“
“무슨 말이지?”
“정신이 싹다 잃어진다는 말이다. 왜?”
“넌 같은 말 해도 아주 재수없게 한다. 그것도 재간이라면 재간이다.”
봉수는 시무룩이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그랬건 말건 김씨는 두렵게 큰 퉁방울 눈을 슴벅이며 주절대기 시작했다.
“저 한국넘 말이야. 와늘 좁쌀이더라. 택시 타므 인차 가겠는데 뻐스를 열서너번 갈아타구 댕기느라고 죽을 고생했다. 뭐 중국 뻐스 타는게 재밋댄다. 씨 거지같은게, 우티 입은거 봐라. 쫄딱 망해가지구 중국와서 한판 해먹을려구. 난 오면서 김치무깍지 다 됐는데 노톨이는 댕기는게 와늘 산산하겠구나.”
“어디루 그렇게 다녔는데?”
“저 양반이 생기발랄이라고 부르는 특허제품을 들구왔다구 해서 청도바닥에 있는 조선족, 한국사람들 가게란 가게는 다 댕겼다. 그런데 벌써 물건들이 다 있는거야. 좋기는 하더라. 신발냄새랑 제거하고 변소깐 소독하고 공기 바꾸구…그렇게 좋은걸 제만 아는것처럼. 벌써 시장에 쫙 깔렸는데 말이.”
아까 뚱보아줌마가 “생기발딱”이라고 해서 별 이상한 물건이 다 있다 하면서 갸우뚱했더니 원래 “생기발랄”이였다.
“그럼 장사 하나 깨졌구나.”
“네리 라이시에 가보기로 했다. 요새 석재가 돈벌이되는데 한국에 가져가 팔면 큰 돈 될거야.”
이틀 정도 겪어봐서 김씨가 뜬구름 잡는데는 챔피언감이란것을 대강 아는 봉수는 대꾸 한마디 없이 옷을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자식은 고무신짝에 붙은 껌처럼 질기기에 상대 않는게 좋았다. 아닌게 아니라 머쓱해진 김씨가 애궂은 담배를 연거퍼 두대 태우더니 부시시 방을 나갔다. 아마도 한국손님을 찾아가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굴리며 봉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여섯번째 날

심한 갈증에 눈을 뜨니 먼저 머리가 으깨지듯 아파왔다. 천정이 빙빙 돌면서 속이 메쓱거렸다. 간밤에 어떻게 민박에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다.
봉수는 벌벌 기다싶이 거실로 나와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아 꿀컥꿀컥 들이켰다. 연거퍼 세컵을 마시니 조여들었던 속이 조금 풀려지는 느낌이였다.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던 뚱보아줌마가 어느새 소리를 듣고 뭉툭한 목을 쭉 내밀며 물어왔다.
“밥 먹겠슴까? 지금 차리람두?”
“된장국 있습니까?”
“있재쿠. 아침에 해놓쿠 아무리 불러두 일어나야 말이지. 심양 젊은사람들이 덕분에 말뚱한 정신으로 해장 잘했슴다.”
뚱보아줌마는 말하는 속도만큼 일쏨씨도 무척 빨라 어느새 상우에 음식들이 가득 차려졌다. 봉수는 코를 벌름거리면서 식탁에 다가가 우선 장국부터 들어 한사발 쭉 들이켰다. 아까 먹은 냉수 세컵이 반발하는지 속이 출렁하더니 코구멍으로 물방울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뚱보아줌마가 눈치 챌가봐 슬그머니 화장실에 들어가 코를 씻고 나오는데 봉수를 보는 뚱보아줌마의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이 사람들 점심에두 안올라나?”
봉수와 눈길이 마주치자 뚱보아줌마는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벌써 열한시가 가까와오고 있었다. 봉수는 말없이 된장국에 밥을 말아 우물우물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누구랑 그렇게 술 죽게 마셨슴까?”
“한사장하고요.”
“그 한사자이인지 뭔지 하는 사람 다 망했다면서?”
“망한건 아니고 여러가지로 수익이 맞지 않아서 일을 접으려는것뿐입니다. 결국 내가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한사장님은 한국서 오더를 밀어주고.”
“아이쿠, 안그래두 며칠 그렇게 따라댕기는거 보구 메캐대하게 그럴줄 알았슴다. 우리 동개비임다. 내 막말해두 일없지예? 한국사람 절대 불쌍하게 여기지 맙소. 돌아서면 인정사정없는 사람들임다.”
봉수는 가타부타 말없이 밥만 부지런히 입으로 퍼넣었다. 뚱보아줌마가 괜히 오버하는게 적잖이 속으로 마땅치 않았다. 지랄도 풍년이지, 내가 뭐 자선남비 들고 종치는 사람처럼 보이는가 하는 그런 불만과 오기가 함께 가슴 언저리에서 자리를 틀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둘이 막 서먹해지려는 찰나에 문이 벌컥 열리며 연길 김씨가  허둥지둥 뛰여들고 그 뒤를 따라 약속이나 한듯이 한국손님과 심양에서 온 부부인듯한 남녀가 차례로 줄줄 이어 물고기처럼 들어왔다. 잠간이나마 찬바람이 씽하고 집안을 훑어지나갔다.
“두사람이 그새 좋았겠다.”
술덤벙 물덤벙인 연길 김씨가 사냥개처럼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왁작 고아댔다. 무지막지한걸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모양으로 김씨는 항상 대방의 기분 같은것을 념두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네사람이 한데 들어옴두?”
뚱보아줌마는 김씨가 역겹다는듯 눈길은 말라괭이 심양여자한테 박으며 동네물음을 던졌다. 그걸 받은 사람은 의외로 한국손님이였다.
“이자 들오는데 이 친구랑 저쪽핀달이서 고구매 사먹는기라. 달라캐서 퍼뜩 하나 어더 묵구 오능기라.”
“뭐람두?”
뚱보아줌마가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봉수를 돌아다보았다.
“오다가 이분들이 고구마를 사먹는걸 보고 하나 얻어먹고 함께 들어온대요.”
“아이구 정신 다 해까닥해짐다.”
좌중에 불시에 웃음보가 터졌다. 누가 먼저라 할것없이 모두가 약정을 한듯 식탁에 빙 둘어앉았고 뚱보아줌마도 시키지 않았지만 제법 손놀림 빠르게 밥상을 다시 차렸다. 살어리민박에 든 손님들이 처음으로 점심상에 빠짐없이 모인것이다. 봉수는 새로 밥 한공기를 더 달라고 하여 받아들고 김씨에게 물었다.
“어제 아침에 나가서 이제 들어오는거지?”
“사람이 없어진것도 몰랐구나.”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지?”
“한마디로 조또맛데구다사이다.”
“왜?”
“그게 뭐꼬? 돌뎅이가 한국보다 비싸다 아이가. 대신 좋은 장사건 하나 봐두었능기라. 인지사 중국 실정 쪼매 알거 감슴더.”
귀를 곤두세우고 한국사람의 입만 쳐다보는 뚱보아줌마를 옆에 앉은 심양 녀자가 슬쩍 건드리더니 뭔가 소곤거렸다. 가지런히 앉은 함께 온 남자는 먼저날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진 얼굴이였다. 그런데도 한국손님은 뭐가 시원찮은지 볼 미여지는 소리를 내뱉었다.
“머스마가 와 이라노? 노박 지뿌둥말구 성들이랑 어울려 놀자 아이가.”
“그케하겠습니데이.”
머스마로 불리운게 많이 억울했던 모양으로 젊은 남자가 불시에 경상도 사투리로 대꾸했다. 순간 좌석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어리둥절하여 서로 물그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말라괭이 녀자가 손사래를 치면서 해석했다.
“오해마세요. 한국사람이 아니고 부산에서 여러해 있어서 경상도사투리를 잘해요.”
“성씨는 뭐요?”
 여직 기회가 없어 끼여들지 못했던 김씨가 물었다.
“신가예요.”
“청도에는 뭐할러 왔소?”
“말 나온김에 다 말하겠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일하다가 청도서 뭔가 해볼려고 왔습니다. 오늘 비슷한 밥집 자리 하나 봐두었습니다.”
이번에도 녀자가 앞질러 대답했다. 어느모로 봐도 반품이 유력한 품절녀이지만 오히려 남자가 많이 밀리고있었다. 봉수는 누가 A/S해달라고 부탁하는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하고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밥집이 뭠두?”
뚱보아줌마가 또 한번 머리를 갸우뚱했다.
“식당을 말합니다. 좋은 일이네요. 마침 잘되였어요. 내일 개 한마리 사올테니까 식당주인될 사람들이 한번 개탕 잘 끓여줘요. 잘하면 앞으로 계속 찾아갈테니까 수고 부탁해요.”
“걱정마시라요. 호박에 줄 그어봤자 수박이 되는게 아니니까 두고보시라요.”
“그럼 민박분들 내일 저녁 한분도 빠지지 마세요.”


마지막 날

연길 김씨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아침부터 거실로 주방으로 화장실로 쉴새 없이 쏘다니면서 온 민박집 손님들을 다 깨우더니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봉수와 함께 개를 사러간다고 따라나섰다. 란리라도 터졌으면 제일 좋아할 사람이였다. 아무튼 에너지가 온몸에 꼴똑 채워진 사람이였다.
한국손님은 지머루시장에 한번 가본다며 그들과 함께 따라나섰다가 버스를 갈아타려고 북역에서 내렸다. 채근도 하지 않았지만 저녁에 꼭 돌아온다고 자기절로 굳게 약속했다.
심양에서 왔다는 부부인듯한 남녀는 오늘 한번 더 “밥집” 주인과 담판해야 한다면서 그래도 점심전에는 민박에 돌아올것이라고 다짐했다.
봉수는 한사장도 청했다. 청했다기보다 내일부터 한사장은 “살어리민박”의 새로운 멤버가 되여야 할 판이였다. 봉수는 한사장과 바꾸어 공장에 주숙하면서 다시 가동할 준비를 해야 했다. 얼마 안되는 한사장의 부채를 봉수가 짊어지는대신 한사장은 공장이 정상 가동때까지  봉수를 도와주기로 했다. 여직껏 경영해온 거래처와 인맥,노하우로 얼마든지 이 위기를 이겨나갈수 있다고 봉수는 믿었다.
이촌시장에서 초벌로 검질된 개 한마리를 사서 김씨에게 먼저 들려서 민박에 보내고 봉수가 회사에 잠간 들렸다가 다시 민박에 돌아왔을때는 신씨라는 심양의 젊은 남자가 한창 땀을 벌벌 흘리며 각을 뜯고있었다. 칼질하는 솜씨가 례사 장난이 아니였다. 쓱쓱 각이 뜯겨나가 큰 소래에 담겨지는것을 보고 봉수는 입을 하 벌렸다. 선비같이 유연해보이는 몸매에서 어떻게 저런 파워가 나오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마누라인듯한 말라괭이 여자는 입질할때와는 달리 한옆에 팔짱을 찌르고 서서 구경만 하고있었다. 알고보니 총을 재우는 사람 따로 쏘는 사람 따로인 셈이였다.
불난 집에 오일 싸지른다고 그 난시판에도 생간으로 바이깔 한잔 하던 김씨에게 잡혀 억지로 한모금 마신 봉수는 아직은 별로 할 역할이 없어 거실 쏘파에 주춤 앉아있는 뚱보아줌마한테로 다가갔다.
“저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 있을거예요. 그간 고마웠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고맙기는 무슨, 민박이란게 그런게 아님두? 나갔다 들어왔다…”
미리 눈치는 알았다는 어투였다. 그러면서도 뚱보아줌마의 눈에는 물기가 돋아난다. 요즘 사람들은 순결이 뭐 훈장이냐 그러지만 아직까지도 정에 메여 사는 뚱보아줌마가 코마루가 찡해나도록 고마웠다.
“하긴 그렇네요. 내일 우리 한사장이 저대신 들어올거예요.”
“이 민박 시작할때 고향 어른한테 이름 지어달랬더니 ‘살어리’라고 지어줍더구마. 살자구 왔다가 살자구 나가구 두루두루 살아지는 민박이 된다는 뜻이라 했슴다. 몇년 해보니 진짜 그렇습디다. 여기에 거지꼴하고 왔다가 나가서 뜨르르한 사장된 사람들 미처 셈을 다 못함다.”
저녁상은 예상외로 좀 일찍 시작되였다. 부글부글 끓는 개고기가 군침을 자꾸 자아내는 원인도 있었지만 한해가 곧 마무리되여가는 마당에 객지에서는 정말 쉽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때문이였다. 사람이 어울리면 술은 빠질수가 없다.
어느새 취기가 오른 연길 김씨가 봉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을 걸어왔다.
“사장이 된다면서? 니네 제품 나도 팔아줄게. 거 뭐라더라, 마진 많이 남겨달라.”
“고맙다.”
봉수는 눈길을 심양 신씨에게 돌렸다. 한솜씨 보이고 자신감이 많이 늘어난 신씨가 맞춤하게 잔을 부딪쳐왔다.
“앞으로 우리 밥집 자주 찾아줘요.”
“당연이지. 나보다 어리니까 말 낮춘다. 우린 중간말이 없어 미안타. 언제부터 할거니?”
“나도 건방지다는 소리 자꾸 들어요. 단김에 뿔 뽑는다구 바로 시작할려구요. 형님이 기계 돌리므 우리도 밥 할거예요.”
“알았다. 우선 우리 점심밥부터 하는걸로 하자. 회사에 식당이 없으니까.”
“어, 너 벌써 오더 딴거니? 난 일년 내내 헛돌아댕겼는데. 이 형하고 한잔 단단히 해야겠다.”
“우리 같이 들어요.”
연길 김씨에 이어 신씨의 여자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돋구는 바람에 술맛이 한결 달았다.
저쪽에서는 신라 왕족 후손이라는 한국 김씨와 한사장이 술잔 하나를 서로 주고 받으며 말을 나누고있었다.
“서울이랬캤나?”
“네.”
“나 부산 문디인디, 서울 깍쟁이 내한테 함 자피봐라…아, 그게 아니구…우짜든 이자뿌라.”
“알겠습니다.”
기고만장한 한국 김씨와 달리 한사장은 시종 흐트러짐이 없이 점잖게 받아주었다. 땀을 닦으며 쩔쩔매는 한사장이 안쓰러웠던지 뚱보아줌마가 술잔을 들고 다가가 두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한사장님, 민대리한테서 귀에 못 박히게 들었으꾸마. 좋은 사람이라구. 우리민박에서 마음 놓고 있습소. 우리민박 이름이 뭠두? 살어리민박임다. 며칠만 있으므 인차 살아남다.”
“무가 사라난다는깅가?”
“남자 몸에 살아날게 하나밖에 있음두?”
한국 김씨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지껄이는걸 연길 김씨가 바로 받아쳐서 좌석에 폭소가 터졌다. 무안해진 뚱보아줌마가 왕벌처럼 왕 고아댔다.
“우리 바깥주인이 출장갔다오므 새워이 살아나는것부터 잘라버려야겠슴다.”
“하하하”
“호호호”
“흐흐흐”
봉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틈을 타서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가치 꼬나물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일찍 어두워진 밤하늘에 쪼각달이 하얗게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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