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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규
동이는 허우허우 돌밭길을 걸어나갔다. 어깨에 걸친 낚시장비가 당장 미끌어 떨어질듯 안스럽다.
저 앞으로 조그마하게 옴츠러든 웬 녀인이 손에 비닐주머니를 들고 힘겹게 바위돌 사이를 헤집고 나가고있었다. 우에는 자잘한 분홍꽃 무늬의 저고리를 입고 밑에는 검정색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아래우 전혀 대칭이 되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것을 보니 매일 같이 이 바다가에서 게나 다슬기 또는 바지락 따위를 줏는 주변 동네 아낙네가 분명했다.
동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낚시장비를 추슬렸다. 스스로 듣기에도 숨결이 거칠고 무거워온다.
해변가는 대개 모래톱으로 이루어졌을것이라는 멋스러운 감동을 보기 좋게 산산쪼각내버린것은 청도라는 해변도시에 와서야 생긴 일이다. 그전에는 바다옆에 이렇게 험한 바위돌들이 널려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한 20년이 되어오는 셈이다.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면 그저 아찔하기만 하다.
난생 처음 바다란 것을 보고 또 난생 처음 바다가에 널려진 바위돌틈사이로 신기한듯 팬티바람으로 넘나들다가 급작스레 덮치는 파도에 밀려 허망 나뒹군 적이 있었다. 머리가 뗑해나고 손바닥이 여기 저기 긁히워 나갔다. 젊은 혈기에서였던지 자존심이 무척 상했었다. 한쪽 발과 손을 큼직한 바위에 뻗치고 집체같이 덮쳐오는 파도를 다시 한번 맞받았다. 별 저항 없이 동이는 가볍게 훌쩍 들리워서 자리를 떠버렸고 파도는 동이를 그대로 바위에 던져버린후 파도는 몰방울로 으깨여져 유유히 흘러나갔다. 동이는 그제야 바다가 물방울로가 아니라 주체하기 어려운 마귀와 같은 힘과 파워로 이루어졌다는걸 새삼스레 뼈 저리게 느낄수가 있었다.
동이는 항상 자신이 세개의 분신이 되어 있는것을 느끼고 끔쩍끔쩍 놀란다. 무일푼의 백수로부터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점잖은 기업가의 형상은 동이의 가장 잘 알려진 모습이었다. 가끔은 오기가 발동해 무모한 일에 발을 적셨다가 한방 크게 당하고도 반성없이 또다시 도전을 일삼는 모습은 동이의 다른 캐릭터였다. 그리고 점차 이 두 분신사이를 넘나들며 흐뭇했다 방황했다 호방했다 후회했다를 번복하는 회수를 늘이면서 새로운 분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0월 중순의 청도의 아침 해살은 미안한줄도 모르고 그저 따갑기만 하다. 여기저기에 바다 해빛에 그을려 시꺼매진 장정들이 심드렁하게 갯바위낚시질에 여념이 없었다.
동이는 될수록 사람들과 멀찍히 떨어진 바위돌우에 찾아올라갔다. 얼결에 보니 아까 그 비례를 잃은듯한 녀인이 바지락 주이는 념두에도 없다는듯 저쪽 바위우에 주저앉아 바다너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바지락을 캐느라고 저쪽 갯벌에서 적잖이 뭉갰는지 흙으로 얼룩덜룩해진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발밑의 투명한 바다물속에 우럭 여러 마리가 시름없이 헤어다니는것이 보였다. 동이는 미끼를 끼우고 낚시질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동이가 낚시에 재미를 들인것은 8년전의 일이었다. 10여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사업을 한답시고 해운업을 벌렸을 무렵이었다. 고객이라고 처음 찾아온 사람은 생각밖에도 조선족이었다. 동북의 교하란 고장에서 청도의 해군에 입대했다가 장교로 퇴역하고 무역업에 뛰여든 송씨 성의 사나이였다. 그는 해군에 몸담았던 경력만큼 바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고 그래서인지 “명수 1호”로 명명된 낚시전용선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동이는 조깅낚시 또는 선상낚시란것을 접하게 되었다.
해안에서 100킬로 정도 떨어진 먼 바다로 몇시간동안 나가서 장애물이 거의 없는 뻘 지역에서 대형 우럭을 노리는 낚시질은 정말 신났다. 수심이 깊고 사용하는 추의 무게와 낚여 올라오는 대형우럭때문에 일반 스피닝릴이나 장구통릴로는 많은 어려움이 따라 주로 전동릴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해안가에서도 우럭은 역시 낚을수 있다는것을 그 즈음에 알게 되였다. 우럭은 회유성 어류가 아니라 사시장철 갯바위나 방파제 주위와 먼바다의 좌초된 배에서 서식하는 토착 어종이라 쉽게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강한 탐식성 육식어종이여서 먹이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므로 낚기도 쉬웠다.
우럭은 그리고 맛도 일미였다. 갯바위낚시에 걸려드는 우럭은 대개 어른 엄지만큼 굵직한것이였다. 낚아올린채로 그 자리에서 껍질을 발라 초장에 찍어먹으면 말그대로 두사람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였다.
그런데 생각처럼 오늘은 고기가 잘 물리지 않았다. 퍼그나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에 물빛마저 푸르고 맑았으나 당장 막 무리지어 성급하게 걸려들것 같던 우럭은 커녕 숭어, 도다리류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겨우 우럭 둬마리 건지고 동이는 기진맥진해버려 처음으로 낚시대에서 눈길을 떼고 건너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때 마침 이쪽으로 힐끔 돌아보는 옷맵시가 대칭이 깨진 그 녀인과 눈길이 마주쳤다. 녀인은 그때까지도 석노인마냥 굳어진듯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낡은 옷차림과는 달리 깨끗한 얼굴에 오관이 마춤마춤하게 박혀있었다. 다듬고 나서면 꽤나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거 같았다.
느닷없이 그녀가 결코 당지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치면서 동이는 처음으로 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먼길을 달려온 흔적이 력력했고 허기에 찬 표정이 뚜렷했다. 손에 보물마냥 꼭 잡혀있는 흰색 비닐주머니에는 다슬기같은 물건이 여럿 담겨있었다. 녀인은 인차 눈길을 바다쪽으로 돌렸고 머쓱해진 동이도 손팔을 통해 전달해오는 스릴을 느끼며 황급히 낚시를 들어올렸다. 제법 보아줄만한 우럭 한마리가 올라왔다. 조심스레 고기를 그물망에 넣어두고 다시 낚시를 던지니 기다렸다는듯 자그마한 우럭 한마리가 또 걸려나왔다.
송사장과 도킹되면서 동이는 한결 신심이 백배했다. 동이 인생에 시동이 걸린것도 그 무렵이였다. 한국 사장이 흘려주는 콩고물을 받아먹던 동이는 송사장과 거래하면서 세상에 타고난 종자란게 따로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터득했다.
이제는 수도 없이 돌리고 돌린 레코트판이다. 스팸메일 같은 과거로 무조건 삭제하고프기만 한 아픈 기억이다.
따져보면 동이는 타이밍이 귀똥차게 좋지 않았다. 대수 중학교 정도 다닌 넘도 청도에 오자마자 척 대리 자리를 차지하던 세월이였지만 대학을 졸업한 동이는 달반 넘어 취직이 되지 않다가 그것도 직업소개소 덕분에 진성이라는 제조업회사에 현장관리로 들어갔다. 슬리퍼를 생산하여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한국회사였다.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듣기 좋게 말하면 블루칼라였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식사전에 작업 준비를 해야 하고 저녁 여섯시에 직원들이 퇴근한다음 뒷거두매까지 말끔히 해야 했으며 저녁 식사후에는 하루 생산량 및 불량품을 체크하고보면 새벽닭이 회치는 시간이였다. 하루 한시 동반 입사한 미스터 양은 사나흘 지나서부터 시도때도 없이 줄줄 코피를 흘리군 했다.
무엇보다 동이를 참기 어렵게 했던것은 남씨 성을 가진 사장이였다. 예순이 넘은 령감태기가 어디서 정력이 그렇게 넘쳐나는지 식전 새벽부터 고함을 지르면서 3층 숙사에서 달리듯 내려오군 했다. 아직 늦잠에 익숙한 동이네들은 처음에는 괜히 그 고함소리에 놀라서 부랴부랴 옷들을 걸치고 현장에 우르르 달려나갔다. 혹시 무슨 잘못된 일이 있을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사장은 동이네들이 놀라서 낯이 흙빛이 되는게 재미있어서였다. 그리고 어둑어둑한 새벽녁에 일자로 줄을 세워놓고 사훈을 외게 하는게 신나는 모양이였다. 사장은 매일이다싶이 하루에도 열두번 넘어 고함을 질렀고 그때마다 동이네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어쩔줄 몰랐다.
호랑이같은 남사장이 개구쟁이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대개 좋은 오더가 떨어졌거나 바이어한테 한바탕 칭찬을 받은 직전이었다. 그때면 작은 키만큼 작은 발에 특대 슬리퍼를 궤고 수백명 직원이 미싱작업을 하는 현장으로 개잡은 포수마냥 데뷔하여 여직원들의 궁둥이를 차주기도 했다. 채운 여직원들이 줄줄이 천쪼각을 붙인 테이프를 사장의 등뒤에 붙여놓았고 그걸 번연히 알고 있는 남사장은 그대로 현장을 한바퀴 돌면서 개그굿을 펼쳤다. 좀 담대하고 짓궂은 나이 먹은 여직원들은 아예 테이프모자를 만들어서 사장의 머리에 얹어주었고 남사장은 그대로 팔짱까지 지르고 미싱 라인사이의 좁은 복도에 갈라선 여직원들 사이를 비벼지나가기도 했다.
한족 여자애들은 버릇 한번 잘못 굳히면 이상제하도 없다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지나가는 어투로 귀띰했지만 오히려 동이네들이 직원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고 야단이였다.
한번은 한국에 두고 온 서른살 어린 마누라가 생남했다면서 갑작스레 현장에 뛰어오더니 열개 라인의 스위치를 몽땅 꺼버렸다. 그리고 동이를 시켜서 식당 아줌마 세명을 몽땅 현장으로 불러왔다. 그리고는 회사밖에 세워둔 수박트럭을 통채를 몰고 들어와 반나절 넘어 수박잔치를 벌렸었다. 그 일화가 청도의 아리비안나이트가 되였다.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미스터 양은 첫달 로임을 받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동이도 욱하는 충동을 겨우 참았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랬던가. 사람이 붙어있기 어려운 이런 곳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막에다 배 띄우기를 석삼년만에 남사장은 공장을 그 사이 배를 두번이나 슬그머니 불려놓은 한족 여직원의 오빠한테 넘겨주고 동이만 끌고 무역업에 올인했다. 하긴 동이외에는 거퍼 석달이상 일한 관리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나마 일본 바이어를 틀어쥔 덕분에 오다를 뿌리고 마진을 남기는 일은 무난했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우왕좌왕하다가 남사장은 동이더러 포워딩회사를 오픈하도록 하고 자기는 오다를 뿌리고 여직원 오빠는 제품을 생산하고 동이는 그것을 일본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물망태에 고기가 묵직하게 들 무렵에 바다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저만치 아득하게 밀려나갔다. 시계를 보니 금방 열시에 올인하고 있었다.
동이는 갯바위장화를 착석하고 바다물을 따라 느적느적 걸었다. 한 백미터 정도 나가니 물이 주춤 머물러 서는것이 육안으로도 얼핏 보였다. 동이는 갯바위낚시질로 맞춤한 높은 바위 덩이에 올라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그건 썩 전부터 눈여겨 본 자리였다. 밀물이 다시 밀려와도 바다물에 잠기지 않는 맨바위였다.
일단 담배쉼부터 하려고 주머니를 주섬주섬 더듬다가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니 아까 그 건너편 녀인이 휘청이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것이 보였다. 가냘픈 몸매는 바다바람에 당장 날려갈것 같았지만 한사코 기다싶이 하여 톺아오르더니 그중 가장 높은 바위우에 터벅 주저앉았다. 손에는 여전히 흰색비닐주머니가 들려있었는데 그사이 바지락도 여러 개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이동하면서 닥치는대로 주어담은 모양이였다. 동이와는 비스듬히 5~6미터 사이두고 있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도 녀인의 일거일동을 살펴볼수 있었다.
녀인은 엄청 힘들었던지 가뿐 숨을 톺고있었다. 본능적으로 숨소리를 따라 올려다보던 동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녀인이 주저앉은채로 돌쪼각으로 바지락을 까더니 날것 그대로 허겁지겁 입안으로 쓸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량미간에 박힌 검은 기미가 유난히 눈에 띄였다. 동이가 놀라고 의아한 눈빛으로 건너다보는것도 모른채 녀인은 손에 잡히는대로 바지락을 까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더니 더 이상 없던지 이번에는 다슬기를 까는 소리가 요란했다.
까딱까딱 바람에 실려 다슬기 까는 소리가 한결 다급해 보인다.
카악카악 사래기 들린 상태 역시 성급하다.
동이는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수 없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매치 안되는 옷차림은 물론 그 칙칙한 옷가지에서 풍겨나오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녀인의 입으로 흘러들어가는 바다 생물들의 버려진 허울까지 어느 하나도 그저 흘러지나가지 않았다. 도대체가 저 녀자의 정체는 무엇일가 몹시 궁금했다. 허술하게 지나치고 무시하기에는 저 눈빛이 너무 강인했다.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천쪼각에 감싸진 조그만 육체는 굳센 의지로 뭉쳐있었고 까아만 눈동자는 지적인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특히 량미간에 자리잡은 검은 기미는 동이를 동화와 같은 아득한 저 옛날로 이끌어갔다.
동이네 이웃에는 동이보다 두살 어린 쌍가매란 녀자애가 살고 있었다. 평소에 동이 뒤를 꼬리처럼 따라다녔던 쌍가매는 그러나 동이가 소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보기 흉한 량미간의 기미때문에 점차 동이한테 기피대상이 되였다. 동이는 반급 애들이 쌍가매 똥가매 하면서 놀리는것도 싫었고 점 점 돼지점 하는것도 짜증났다. 그래도 쌍가매는 쌍가매대로 눈치코치 없이 동이가 싫어하는것도 모르는양 잘도 따라다녔다.
그 시절에는 먹거리도 많이 모자랐다. 한창 뼈마디가 자라고 굵어지는 나이라 항상 뭔가 먹고 싶었다. 다행히 동이의 할배가 소대 우사간에서 소를 먹이고있어 동이는 틈틈이 콩기름을 짜고 나머지 찌꺼기를 다져서 만든 일명 두병이란것을 가끔 얻어먹군 했었다. 시커멓게 타고 단단한 두병이지만 먹고난후면 고소한 뒤맛도 있었다. 그래도 동네애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두병은 동이의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두병으로 힘센 넘을 회유하기도 하고 밉상인 넘에겐 검게 타기만 했지 제대로 익지 않은 두병을 주어 골탕을 먹이기도 했다.
쌍가매에게도 그런 약수를 쓴거 같았다. 두병을 한사발 다 먹어야 데리고 다닐것이라고 했더니 급병맞을 계집애가 넘어도 안가는 생두병을 억지고 넘기고 뒤가 막혀버린것이다. 배를 잡고 대굴대굴 딩굴며 울어대는데 동이는 어쩔줄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다. 그러다가 무작정 쌍가매를 끌고 변소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도 부끄럼을 알고 숨어야 한다는걸 알아서 변소로 찾아들어간것이지만 그게 자신이나 쌍가매에게 얼마나 큰 후환을 만들었는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변소에 숨어 들어가서 나무판자에 쌍가매를 훌쩍 올려세우고 바지를 끌러내리고 밑구멍에 손을 넣고 후비는데까지는 문제 없었다. 엄마가 쩍하면 그의 똥구녕을 후벼주었던것이다. 그런데 짖궂은 하나님은 동이에게도 선악과를 먹이기 시작한것이다. 눈길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쌍가매의 그곳으로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한번 두번 눈길을 주다가 똥구녕을 후비던 손으로 그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방정맞게 때맞춰 그곳을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급한 일을 보려고 변소문을 열었다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였다.
반동분자는 그 종자때부터 퇴페적이다. 빈농의 후대를 여우처럼 홀리는 반동분자들의 책동을 뿌리부터 잘라야 한다.
쌍가매는 지주성분을 가진 할아버지와 함께 매일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어느날 한밤중에 그 집식구들이 마을에서 소리없이 사라졌다. 그 뒤에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강넘어 저쪽 나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 나라에서는 맛있는 입밥에 소고기국을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동이는 쌍가매와 헤어졌고 세월이 흐르는동안 기억에서마저 잊어버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른데 없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시간은 오후 한시를 넘기고 있었다.
동이는 낚시대를 거두고 물에 고여놓은 고기그물망태를 들어올렸다. 큼직한 우럭 10마리 정도 꺼내여 껍질 바르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옆에 모아두었던 우럭 껍질을 바다새들이 마음놓고 먹도록 멀찌감치 뿌려던지고 마른 나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해변에는 별라별 오가잡탕들이 다 있어서 땔감은 쉽사리 모아졌다.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나무꼬챙이에 꿰고 있는데 저쪽에 있던 녀인이 불시에 튀여일어나는것이 보였다. 집에 가려나보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꼬꾸라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는것이였다. 푹 꺼져들어간 눈은 탐욕으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동이는 눈인사로 함께 먹자고 요청했다. 녀인은 예상외로 고집스럽고 완강하게 거절했다. 동이는 별수 없다는듯 고기가 굽히는대로 입에 넣고 맛나게 먹었다. 참이슬 한병이 잠간사이에 배속에 들어갔다. 해나른해져서 더 굽기 싫어질 무렵에는 아예 날것채로 고추장에 찍어 입에 털어넣었다.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은 어떻게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녀인은 지쳤는지 더이상 이쪽을 보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웬일인지 동이는 괜히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그물망태에서 10여마리 꺼내 껍질을 바른후 누렇게 구웠다. 그리고 그 녀인과의 중간쯤 되는 거리에 가져다놓고 돌아섰다. 얼결에 보니 그 사이 녀인이 데꾼하게 뜬 눈으로 동이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건말건 동이는 휘적휘적 내려와 턱 퍼진 바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파아란 하늘에는 갈매기떼들이 유유작작 날으고 있었고 그 밑으로 우뚝 솟은 로산은 해상제1명산답게 기세당당했다. 언제가 로산에 자리잡은 태청궁에 출가나 할가부다 생각했다가 저절로 쓴웃음이 나갔다. 자기처럼 주육풍류에 절을대로 절은 중생을 도가 역시 거절할게 당연했던것이다.
머리뒤로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녀인이 고기 가질러 오는게 틀림없었다. 동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눈의 동이를 보면 녀인의 용기도 사라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오던 발걸음소리가 멈춰섰다. 한동안 아무런 기척도 없더니 다시 멀어져가는 발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동이는 괜히 큰일을 한듯 눈을 더 지긋이 감았다. 따가운 해빛이 눈까풀을 뚫고 들어와 눈안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황홀했다. 거기에 술기운이 더해져 몸이 둥둥 뜨는 기분이였다.
귀가에 느닷없이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파도가 바위를 덮치는 소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파도소리를 들어본것도 참 오래간만의 일이였다. 동이는 후다닥 놀라면서 뛰여일어났다.
어느새 잠이 흠뻑 들었던 모양이다.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물고기망태가 놓여있었고 주변은 온통 바다물로 둘러있었다. 동이가 잠든 사이에 밀물이 다시 밀려들어온것이다.
동이는 조건반사적으로 우쪽을 올려보았다. 녀인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말할것 없이 고기망태는 그녀가 건져서 갖다놓은게 분명했다.
동이는 씨익 웃었다. 그러자 그녀 역시 해말간 웃음으로 답례했다.
동이는 괜스레 궁둥이를 툭툭 털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손바닥만한 바위덩이우에 갇혀있었다. 해안가는 어느새 저만치에 밀려가 있었고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고기도 잡히지 않는다. 동이는 멜가방을 뒤적였다. 참이슬 한병이 걸려나왔고 생수 두병이 딸려나왔다. 잠시 담배 한대 뽑아서 깊게 서너모금 빨다가 그대로 바다에 던져버리고 다시 땔감을 모아보았다. 다행히 점심에 별로 피우지 않아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아직은 희미하나마 볼수 있어 여기저기 돌면서 불이 붙을만한 물건이면 무작적 걷어모았다. 저쪽의 녀인도 후다닥 일어나더니 주변을 돌면서 나무가지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바다는 해만 넘어가면 바로 어두워졌다. 녀인은 다가와 모은 나무가지들을 내려놓고는 소리없이 다시 물러갔다.
밤은 바야흐로 깊어가고 파도는 점점 소름 끼치게 높아갔다. 아마도 어둠에 배겨내기 어려웠던지 녀인이 어느덧 눈앞까지 내려와 앉았다.
동이는 개의치 않고 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느끗하게 앉아서 그물망태기에서 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껍질을 바르는것도 귀찮아졌다.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금세 퍼져나갔다.
해변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동이는 썰물이 대강 언제쯤 나간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때까지 하다못해 불씨라도 쪼일려면 최대한 땔것을 아껴야 했다.
동이는 얼추 구워진 고기 한마리를 녀인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그김에 생수 한병과 참이슬병도 함께 나란히 놓아주었다. 녀인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고기를 냉큼 집어 입안에 넣고 씹더니 참이슬을 한모금 털어넣었다. 안주 먼저 먹고 술 먹는 사람은 동이는 처음 보았다. 녀인은 소주를 다시 동이앞으로 밀어놓더니 그제는 생수를 들고 한모금에 굽을 내버렸다. 동이도 술을 한모금 마시고 날고기채로 입에 넣고 씹다가 갑자기 집에 이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우리 말로 바위에 갇히게 된 사연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핸드폰을 닫다가 이상한 느낌에 녀인을 쳐다보니 녀인은 어느새 퉁방울처럼 둥그런 눈을 하고있었다. 우수가 가득하던 눈에서 겁기가 밀려나고 대신 믿음이 서서히 자리잡고 있었다. 녀인은 한걸음 더 다가앉았고 얼굴은 한결 펴지고 홍조가 떠올랐다. 녀인은 동이가 술병을 갖다놓기전에 두손으로 그대로 받았다. 그리고 저절로 그물망태에서 고기 한마리를 꺼내 껍질을 쭉 바르는것이였다. 무척 로련한 솜씨였다. 바다와 많이 익숙한 사람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술병을 주고 받았고 고기 안주는 스스로 자기몫을 해결했다. 가끔 녀인은 참이슬병을 불가에 갖다대고 설명서를 들여다보군 했다. 읽을줄 알고나 그러는지 동이로서도 판단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어눌한 무드속에서 참이슬 한병을 굽내고 사그라진 불더미를 마주하고 말없이 오래동안 마주앉아있었다. 시간이 응고된듯 했지만 웬일인지 지루한 감은 없었다.
녀인은 나이로 보아 동이와 비슷해보였지만 풍진세월을 겪을대로 겪은 사람마냥 많이 지쳐있었다. 동이는 그 만장같은 사연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것을 직감으로 느끼고있었다. 침묵이 그녀를 지탱해주는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밤은 깊어만 갔다. 해안쪽에서는 불빛이 대낮같이 밝아있었다. 엎어지면 코닿은 육지를 눈앞에 두고 그들은 갈수가 없다. 원래는 육지와 이어진 길이였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육지와 생지옥처럼 갈라지고 막혀졌다. 혹시 어느 파도 하나가 갑작스레 바위 전체를 덮쳐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다에 그대로 훌렁 나떨어질것이고 그다음 서로 살겠다고 대방을 끄잡고 실랭이하다가 함께 바다 깊숙히 침몰할것이다.. 시체는 얼마 안되여 주변 어부들로 인해 마춤하게 건져질거고 자칫 장례식이라도 치뤄주면 그 이상 호강이 없는거로 만족해야 할것이다. 물론 어부들은 그들 주머니속에 든 물건들을 몽땅 고스란히 털어내 냉큼 차지할건 분명하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탐욕스럽다. 인지초 성본선은 참 웃기는 말이다.
동이는 자기도 끔뻑 놀랄 정도로 흥 하고 코방귀 뀌고 주머니를 더듬어 돈지갑을 꺼냈다. 아무런 생각없이 잔돈만 내놓고 100원짜리 지페를 몽땅 꺼내여 헤어보았다. 1800원이였다. 그는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돈을 움켜쥔 손을 녀인앞으로 내밀었다. 어부들한테 멋대가리없이 바쳐질것이면 하다못해 잠간이라도 그녀한테 선심을 쓰고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듣는게 낫겠다는 충동이 그더러 그런 당돌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더욱 아이러니한것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동이를 지켜보던 녀인이 별로 주춤하는 멋도 없이 그대로 돈을 받아서 주머니 깊이 질러넣은것이다. 순간 동이는 자기가 환청같은 공간에 들어가있었다는걸 느꼈지만 다시 어떻게 돌이킬수는 없었다. 동이는 자조하듯 허글픈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하는 짓이 언제나 뻐스 떠난다음에 손드는 편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저 아득한 옛날의 쌍가매가 동시에 떠올랐다. 량미간의 검은 기미가 녀인과 묘하게 캡처되었다. 바로 그거였다.
쌀쌀한 바다바람이 급작스레 불어왔다. 파도는 한결 사나워졌고 따라서 추위가 엄습해왔다. 바다가는 주야의 기온차가 엄청 심했다. 녀인은 오싹 몸을 떠는가싶더니 콜록콜록 기침을 가볍게 해댔다.
동이는 겉옷을 벗어 녀인에게 건넸다. 이상하게 녀인은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몸떨림이 육감으로도 전해졌다. 동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녀인 옆으로 다가가 옷을 그녀의 몸에 걸쳐주었다. 손을 허우적거리며 털어내던 그녀가 문뜩 거절을 멈추는가 싶더니 불시에 동이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왔다. 그때 유표하게 량미간에 자리잡은 검은 기미가 선하게 동이의 눈안에 들어왔다. 동이는 녀인을 밀쳐내는것도 잊은채 멍하니 그 기미만 들여다보았다.
녀인의 몸은 가늘게 떨고있었다. 허름한 옷속에 속절없이 감춰진 젖가슴은 생각밖에 무겁고 두터웠다. 아직은 생기가 남아있는 몽뚱이였다. 녀인은 동이의 품에 기댄채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렸다. 약간 젖힌 얼굴은 동이를 향해있었고 도톰하게 올라온 입술은 무엇인가를 갈구하는듯 싶었다.
동이는 한동안 굳어진듯 서있었다.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리솟은건 얼마후였다. 동이는 그것을 주체할 힘이 없었다. 녀인의 신음은 한결 급했고 몸은 금세라도 활활 타버릴듯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동이는 손을 녀인의 가슴우에 올리고 한웅큼 틀어잡았다. 알맞춤하게 크고 부드러웠다. 녀인은 손을 뻗쳐 동이의 벨트를 풀어내렸다. 바지가 무릎밑으로 스르르 흘러내려가고 찬바람이 휑하니 아래도리를 훓어지나갔다. 녀인의 손이 팬티속으로 들어오는 찰나 동이는 그대로 녀인을 바위우로 쓸어넘겼다.
동이는 자신의 분신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어쩌면 세 분신이 하나가 되여 그 자신이 되어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갈라져 제마끔 용을 쓸때는 미워나기도 했지만 가끔 한몸에서 뭉쳐서 힘을 발산할때는 대견하기도 했다.
내일이면 남사장이 한국에서 들어온다. 기를 잔뜩 살리고 안하무인식으로 노는 남사장이지만 귀여운데가 많기도 했다. 마냥 넘쳐나는 정력이 그 하나였다. 그와 어울리자면 잠을 미리 자두어야 하고 다리도 쉬여두어야 하고 특히 마음을 비워두어야 한다. 그렇게 맞추어가는것이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재미인듯싶기도 했다.
차고 딱딱한 바위바닥을 의식하고 동이가 눈을 떴을 때는 녀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금방 한바탕 일장춘몽을 꾸고 헤어나온 느낌이였다. 동이는 그것이 진정 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을에 춘몽이 어불성설이다. 동이는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고 행장을 챙겼다.
썰물이 밀려나간 뒤었다. 어두컴컴한 돌바위길은 걷기가 한결 불편했다. 동이는 허우허우 돌밭길을 걸어나갔다. 어깨에 걸친 낚시장비가 당장 미끌어 떨어질듯 안스럽다. 동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낚시장비를 추슬렸다. 스스로 듣기에도 숨결이 많이 거칠고 힘겹다.
저 멀리 어두움속에 조그마하게 옴츠러든 녀인이 힘겹게 바위돌 사이를 헤집고 나가고있는 모습이 환각인듯 어슴푸레 보이고있었다. 이제는 입은 옷색상이 전혀 보이지는 않지만 이 바다가에서 게나 다슬기 또는 바지락 따위를 줏는 주변 동네 아낙네는 아니란것이 분명해졌다.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쌍가매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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