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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단편소설
바이러스
장학규
1
애란이는 불안하게 출입문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당금이라도 문이 벌컥 열리며 민혜가 불쑥 들어설 것 같았지만 두시간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리쓸며 기다려도 벌써 와야 할 민혜는 돌아올 줄 몰랐다.
텔레비죤에서는 한창 무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방송하고 있었다. 그게 구경 어떤 바이러스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전염성이 강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병인 것만은 분명해졌다.
(기집애, 하필이면 이런 비상시기에 나갈 건 뭐람?)
경자년 설날을 눈앞에 두고 집안이 부산해지기는 순전히 사춘기에 들어선 딸 민혜때문이였다.
지난해 부터 민혜는 자잘한 일에도 바락바락 대들었고 시도떄도 없이 애수에 잠겨서 울상을 짓군 했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르면서 처녀티를 나타내기 시작한 얼굴에 그늘이 질 때면 애란이는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자신의 얼굴보다 더 안타까웠다. 그보다도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라면서 억울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던 자기도 이 정도로 성장통을 겪은 거 같지는 않았다. 아니, 아예 선장통이란 게 있었던지도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지금 세월에 무엇이 부족한가 말이다.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고 가지고 싶은 걸 달라는대로 사주는데도 만족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엄마, 사람 사는게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그러면 다 되는 거야?!”
민혜는 그럴 때마다 딴세상 사람을 보는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럼, 그런 걸 내놓고 또 뭐가 있지?”
“대화가 안돼! 아무튼 할 말이 없어.”
민혜는 은근히 엄마를 낮잡아보는 어투로 종알거리더니 창밖에서 뿌리를 잃고 떠도는 희뿌연 구름덩이만 멍하니 내다보았다.
애란이는 딸애의 그 태도가 정말 싫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모를 무시하는 건 그렇다치고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지구 말세가 닥친 것처럼 이마살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몰골은 정말 보아주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뭐 어쨌다고 이러냐구?”
“나 아빠 말 듣고 세계명작을 본게 영 후회돼. 명작이란게 대개 다 비극으로 끝나고 주인공들의 운명이 비참하고 그렇잖아.”
민혜는 동에 닿지 않는 말을 지껄이고서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를 건너다보면서 또다시 후하고 땅이 꺼져갈듯 한숨을 내쉬였다. 항상 이랬다. 주제를 따라 가는게 아니라 곁가지로 삐져가면서도 꼭 지기가 옳다고 아득바득 우겨대군 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아버지이란 사람은 뭐가 그리 좋은지 컴퓨터를 보면서 킬킬 웃고 있었다. 민혜야. 이걸 봐. 유태인들은 말이야. 애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테이블 우에 세워두고 안아줄 것처럼 팔을 벌리고 유혹한단다. 음, 애들은 당연히 부모를 믿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들지, 그때 부모가 슬쩍 옆으로 피한대. 당연히 애는 땅에 떨어져 된통을 당하는 거지, 그때로부터 아무리 얼려도 다시는 안기지 않는단다. 세상에 믿을 건 오로지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교육을 그렇게 생생하게 시킨단다.
그럴 거면 왜 낳아서 키우냐구? 낳자마자 정글에 버려서 원시인, 야만인 만들어버리면 더 멋지잖아.
딸애가 사정없이 내쏘았다.
애란이도 덩달아 남편을 흘겨보았다.
“애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데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있어서 힘이 빠져있고 작은 일도 감당하기 힘들어하고 있어 보입니다.
퍼그나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심리상담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김씨 성의 심리상담사는 우아한 자세로 앉아서 기품있게 말했었다.
심리상담사까지 찾아가기는 우연한 일때문이였다. 하루는 민혜가 온밤을 부시럭거리면서 잠을 자지 않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부산하게 집에 비치해둔 감기약을 찾아서 먹였으나 별로 효험을 보지 못하는 대신 점심 즈음부터는 코물까지 질질 짜기 시작했다. 이대로 더 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싫다는 애를 끌고 가까운 가도병원으로 갔다. 류행성감기라면서 링겔을 맞으면 된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애의 팔목에 침을 찌르려던 의사가 초풍할 지경으로 놀라는 것이였다.
“아니, 이게 뭐냐?”
“아무것도 아니예요. 긁히웠어요.”
민혜가 급히 옷소매를 내리면서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팔목에 서너줄 길게 지나간 상처가 유표하게 애란이의 눈에 들어왔다. 그건 첫눈에도 인위적으로 긁은 것이란 걸 보아낼 수 있었다.
“사람이 왜서 사는지 모르겠어. 멋대가리 하나도 없단말야.”
민혜는 막무가내인듯 혼자소리로 중얼댔다.
애란이는 흠칫 놀랐으나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았다. 의사한테 부모의 무심함과 무책임함을 그대로 들킨 것도 부끄러웠지만 그보다 괜히 애를 더 자극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앞서서였다.
집으로 돌아온 애란이는 슬그머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안으로 닫아걸고 멀리 고향병원에서 의사로 있는 동창한테 전화를 걸어 민혜의 상태를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놀랄 필요 없어.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흔히 있는 현상이야. 한번 심리상담을 해보는게 좋을 거 같아. 애한테 뭔가 부모와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어.”
며칠 후 기회를 찾아 민혜와 스치는 말처럼 심리상담 한번 해볼가 얘기했더니 별로 거부하지 않았다. 아마 자기도 뭔가 터놓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였다.
민혜는 처음 만나는 상담사와 친구라도 되는듯 무람없이 말을 주고 받았다. 상담사가 엄마는 피해달라고 해서 애란이는 부근의 커피숍으로 기신기신 찾아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예쁘장한 마담이 지겨워할 정도로 시시껄렁한 화제를 두시간가량 주절댔다. 상담사가 전화 와서 상담실에 돌아가니 민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잠간 나가 있으라고 내보냈어요. 애가 자신보다 옆사람들의 감정을 더 많이 배려하는 착한 아이라서 혼자서 잘 참고 견디다가 이젠 마음의 그릇이 꽉 차서 한계가 온듯 합니다. 그릇을 좀씩 비워야 될 것 같습니다.
분노, 억울함 등 감정들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감정들을 상심한 기분으로 대체해서 표현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잠이 안 올 때면 온통 상심한 감정에 휩싸여서 혼자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일단 애가 무슨 얘기를 하든 평가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동조하면서 잘 들어만 주세요. 그러면 아이가 믿고 다 분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야 홀가분하게 원상태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죠?
부모의 립장에서는 애한테 무엇이나 다 준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선택적이거나 강압적 또는 주관적으로 안겨준게 더 많은 거 같습니다. 보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밀어부쳤거나 아니면 학교서 꼭 갖추라고 요구한 걸 만족시킨 것에 불과한지도 몰라요. 실제로 애 스스로는 자기가 요구하는 건 거의 묵살되였다고 합니다. 애가 가지고 싶어하는 걸 주세요. 그게 애와 심리적으로 소통하는 길입니다.
그날 저녁 민혜는 시뚝해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혀에 뼈가 들어간게 확연히 알렸다. 심리상담사로부터 기를 전달받은 모양이였다. 고양이를 사려면 얼마쯤 드냐고 물었더니 반나절 인터넷을 뒤진 후 가장 싼 것이 800원이라고 가볍게 말했다. 아빠가 평소처럼 랭소적인 멘트를 날리려는 걸 애란이가 눈짓으로 말리고 선선히 그러라고 허락했다. 너무 쉽게 답복해서인지 민혜는 한동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다가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하고 불시에 흥분을 걷잡지 못하고 하늘이 낮다고 퐁퐁 뛰였다.
“얼굴에 마스크라도 걸어라. 천박해보인다.”
남편은 여전히 달통되지 않는지 민혜를 흘기며 빈정댔다.
민혜는 이날 아침 엄마한테서 돈을 받아 인터넷으로 주문한 고양이를 가지러 나갔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2
민혜가 안고 돌아온 것은 오렌지 고양이였다. 순오렌지색이였는데 몸에 옅은 흰색 줄무늬들이 줄줄히 늘어서있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자주 보던 고양이의 모습이였다. 생각보다 많이 컸고 살져 있었다. 낯선 집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서인지 고양이는 박스 속에서도 불안하게 고개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오후 두시가 지나서였다. 민혜는 한반의 친구 둘을 불러서 함께 애완동물가게에 갔고 거기서 고양이 사육에 관한 지식과 위생상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고양이 사료와 분변통들을 두루 사다보니 점심때가 되였다고 했다. 방학 후 여러날만에 만난 친구들은 헤여지기 아쉬워 칼국수 한사발씩 더치페이로 사먹고 오다보니 늦었다고 변명했다. 민혜는 긴 말을 하면서도 전혀 얹치는 법이 없었다.
애란이는 자기 할 말만 뚜뚜뚜 내뱉고 돌아서서 냉큼 고양이를 안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민혜의 등뒤에 대고 종주먹을 휘둘러댔다. 조걸 그저 어쩌래? 에휴 때려놓을 수도 없고. 어쩌면 좋을가 저걸 그저.
사실 애란이도 남편 못지 않게 동물을 싫어하고 있었다. 남편은 어렸을 때 개한테 한번 물린 후 모든 동물과 멀리하게 되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민혜는 강아지를 욕심냈었지만 번마다 아빠의 단호한 거절을 받았다. 딸애가 달라는 거라면 심장도 빼줄 거 같은 남편은 유독 강아지한테만은 엄청 거부감이 심했고 알레르기가 있었다. 강아지라는 소리만 들어도 펄쩍 뛰였고 애의 고집을 꺾기 어려울 때면 어른답지 못하게 푹 기절해 넘어가는 퍼포먼스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도 민혜가 칭얼대면 고양이란 동물에 대해 설명하면서 은근히 그쪽으로 애의 관심을 유도하군 했다. 글쎄 콩나물 비빔밥과 숙주나물비빔밥이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애란이는 슬그머니 화가 동했다. 따져보면 이번에 민혜가 첫마디에 고양이를 지목한 것도 어쩌면 아빠가 장기간 세뇌를 시킨 결과일 것이다. 애완동물은 거개가 비슷했다. 강아지는 안되고 고양이는 괜찮다는 론리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남편은 타고난 사기군캐릭터가 분명했다. 그런데도 민혜는 거기에 홀딱 넘어가버린 것이다.
하필이면 왜 고양이였는지 애란이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였다. 운명의 조롱이라고 밀어부치기에는 좀 억지스럽긴 했으나 썩 달갑지 않은 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애란이가 어렸을 적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웠었다. 하얀 색의 고양이였는데 지금처럼 특식밥이 없이 그대로 막 풀어놓고 키웠었다. 산에 들에 헛간에 들락거리면서 쥐를 잡아먹고 살았었다. 가끔 그것도 집이라고 찾아와 발목에 매달릴 때면 먹다남은 밥덩이에 고기뼈 따위들을 던져주면 맛갈스레 먹군 했다.
산골마을에는 저녁만 되면 마땅히 놀거리가 거의 없었다. 해가 긴 여름에도 일곱시만 되면 주변 산들이 무서운 짐승마냥 시꺼멓게 둔갑했고 나무잎들이 바람에 으스스 소름 돋치는 소리를 내군 했었다. 어른들도 밤에는 마을밖에 나가기를 저어하던 그 시절 애란이에게는 고양이가 든든한 친구였다.
애란이네는 고양이 외에도 똥개 한마리도 키우고 있었다. 어느날 엄마가 동네에 놀러나갔다가 친구네 집 개가 새끼 여섯마리를 낳았다면서 하나 달라고 사정해서 겨우 얻어온 것이였다. 아버지는 강아지에 대해 특별히 애정을 쏟아부었다. 고양이가 옆에 오면 발로 툭 걷어차면서도 강아지는 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들어서 어깨에 올리군 했다.
“빨리 커. 올해말 쯤이면 잡아먹을 수 있겠지.”
아버지의 목적은 거기에 가 있었다. 한줌이 되나마나한 강아지가 아버지의 눈에는 맛난 료리감이였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해 말이 지나서 이듬해 초봄에 강아지는 아버지에 의해 도살되여 바로 자기가 자란 집에서 아버지 친구들의 배속으로 골고루 들어가 소화되였다.
그날 술상은 자정까지 이어졌고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 후 얼근하게 취한 아버지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여 누운채 비자루 살을 꺾어서 이발을 뚜지며 애란이의 품에 안겨 자고 있는 고양이에게 주절주절거렸다.
“올 여름엔 네 차례다. 알았어?”
잠결이였지만 애란이는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어린 가슴에 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날 애란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자기 절로 알아서 돌아오겠지 하고 무심하게 지나쳤겠지만 먼저번 비몽사몽간에 아버지가 하던 말이 떠올라 집안팎을 샅샅히 뒤졌다. 그래도 고양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 집에 돌아오니 엄마의 눈치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엄마는 애란이와 눈길을 마주치기 저어했고 무슨 말인가 할듯 말듯 하다가 입을 다물군 했다.
“엄마, 고양이 봤어?”
“으…글쎄…”
“글쎄가 뭐야? 아버지가 고양이 잡아먹었지? ”
“아니, 아직 먹지 못했어. 에그에그 벌써 죽었겠지…”
엄마가 가리키는 곳을 살펴보니 앞마당에 갓 파서 다시 메운 구덩이가 보였다. 판지 꽤 오란듯 흙이 벌써 깡깡 말라 주변의 흙색이랑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약간 솟아 올라온데다가 발로 밟은 흔적만 없었어도 그게 되파묻은 구덩이라는 걸 알 수 없었다. 꺼꾸로 말하면 그 구덩이는 다시 메운지 반나절은 넘어된다는 증거였다.
애란이는 허둥지둥 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꽛꽛하게 굳어지기 시작한 땅은 손자국만 낼뿐 파지지 않았다. 애란이가 애간장이 나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엄마가 눈치 채고 헛간으로 달려가더니 삽을 들고 나왔다. 모녀간이 달려들어 50센치 정도 파들어가니 마대 한자루가 드러났다. 마대 속은 조용했다. 아차 잘못되였구나. 속이 철렁하여 급히 아구리를 풀고 들여다보려는데 불시에 하얀 연기 같은 것이 솟아나왔다.
“어마나!”
자루를 풀던 애란이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한발 뒤에 서서 바라보던 엄마는 어느새 저만치 도망가 있었다.
사납게 튕겨나온 연기가 애란이의 눈앞에서 주춤 멈춰섰다. 고양이였다. 반나절 땅속에 파묻혀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애란이는 두손 모아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고양이는 어린 주인을 잠간 바라보며 꼬리를 한번 흔들고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애란이는 이 평생 다시는 고양이를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갑자기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슬픔이 가슴 한가득 슴며들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틑날 아침 고양이가 다시 집을 찾아온 것이다. 애란이의 품을 파고드는 고양이를 아버지가 냉큼 꼬리를 잡아 나꾸어챘다. 와락 달려들 것 같던 고양이는 그러나 고스란히 잡혀갔다. 쥐를 잡던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버지를 긁어놓고 도망가기를 애란이는 바라고 바랐지만 고양이는 주인 앞에서는 영원히 약자라는 걸 애란이는 알리 없었다.
그렇게 잡혀간 고양이는 이번에는 애란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다시 마대 속에 들어갔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 마대 속에는 불을 지피고 남은 재가 가득 들어있었다. 고양이가 악을 쓸수록 재가루가 날려 고양이는 마침내 질식해 죽고 말았다.
그날 밤 아버지의 친구들은 또다시 고양이가 뛰놀던 구들에서 술상을 차렸다. 화제는 자연히 고양이 사냥에 관한 것이였다. 아버지네는 흥미진진하게 고양이 고기에 술잔을 기울이면서 별의별 기이한 살상법들을 서로 나누었다. 자루에 담아 돌로 물 속에 하루종일 눌러두었는데도 죽지 않더라는둥, 쇠줄로 목을 감아서 나무에 걸어놓고 반나절 트럼프를 놀고 올려다보니 그때까지도 허둥대더라는둥 하여튼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애란이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남편처럼 모든 동물을 싫어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고양이만은 마음 속으로부터 거부감이 생겼다. 아니, 안쓰러웠다. 고양이만 눈에 띄우면 조건반사적으로 땅 속에 파묻혔던 고양이가 마대 속에서 튕겨나오던 장면이 우렷히 머리에 떠올랐고 재가 가득 들어찬 마대 속에서 몇시간동안 발버둥치던 모습이 클로즈업되여 눈앞에 나타나군 했다. 거기에 아버지 친구들이 주고받던 고양이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들이 귀전에 들려 몸서리가 쳐졌다. 민혜가 사춘기를 앓지만 않았어도, 그것도 손목을 긁을 정도로 심한 상태가 아니였다면 애란이는 두번 다시 고양이를 집에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딸애의 방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애란이는 발뼘발뼘 다가가 문을 조용히 밀고 틈새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민혜가 고양이를 안은 채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문소리를 들었는지 머리를 쳐들었다.
“고양이 이름이 뭐지?”
“아직 없어.”
애란이도 저 옛날 고향의 고양이가 이름이 뭐였던지 기억에 없었다. 아마 그 시절에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모모”하고 불렀을 것이다.
“이젠 고양이도 사주었으니 공부 좀 해야잖아. 핸드폰은 그만 보고.”
“엄마, 나 이제 집에 들어온지 1초야. 숨도 돌리게 하지 않고 다그쳐?”
“너 약속을 몇번째 깨고 있어? 지금이 고중입학을 앞둔 대목인데 1초라도 아껴야지.”
“엄마 1초가 얼마 긴지 알아? 선생님이 입을 여는 순간 1초가 흘러가. 그 1초에 뭐한단 말이야?”
애란이는 억이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딸애는 개념을 이렇게 호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번날에도 아침에 머리를 감고 엄마더러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달라고 요구했다. 마침 아침 식사상을 차리던 애란이는 무심하게 스스로 말리라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딸애가 대번에 드라이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낳을 때 내 등뒤에도 손 하나 만들어놓지. 어떻게 저절로 말린단 말야. 머리가 기름기 번지르해서 어떻게 학교에 가. 오늘 학교 못간다고 청가해줘.
막무가내란 말은 이런 경우가 적격일 것이다. 민혜는 항상 이 세상과 공멸할 그런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파리도 고기다 하면 고기가 되는 것이고 조류다 하면 조류로 되는 억지를 과시하고 있었다.
3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상치 않았다. 사스때처럼 사람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발원지 무한시가 도시봉쇄라는 급처방을 내렸다. 시내 공공뻐스, 지하철, 카페리, 장거리뻐스 운행을 중단한 것은 물론 공항이나 기차역도 무한시를 떠나는 통로를 잠시 닫아버렸다.
얼굴이 천박하지 않더라도 마스크를 걸게 된 상황이 바야흐로 닥친 것이다.
려행업을 하는 애란이는 이 징조가 얼마나 무서운 후과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스때도 그랬고 조류독감때도 그랬다. 돈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냐 하는 문제였다.
특히 인터넷에서 “박쥐 먹는 미녀”라는 동영상을 본 후 애란이는 상황이 예상외로 심각하다는 예감을 느꼈다. 왕몽운이라는 녀성 블로그가 2016년 6월에 올린 이 동영상은 누리꾼들에 의해 맞춤하게 끌려나와 조림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왕몽운은 태평양의 섬나라인 팔라우에서 료리된 검은색 박쥐의 날개를 펼쳐보이기도 했다. 박쥐탕을 먹고나서는 카메라를 향해 “고기가 아주 질기기는 하지만 엄청 맛있네요”하고 말할 때는 막 구토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에도 사스때처럼 박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때도 박쥐의 사스 바이러스가 사향 고양이를 통해 옮겨졌을지도 모른다는게 일반적인 인식이였다. 이번에는 무한의 재래시장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지목된 대나무 쥐나 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애란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차를 몰고 슈퍼에 가서 먹거리를 한아름 사왔다. 남편과 둘이서도 모자라 싫다고 뻗치는 딸애를 우격다짐으로 끌고 주차장에서 식품들을 날라올렸다.
민혜는 여전히 그 식이 장식이였다. 고양이를 가져오기 전에도 만화복장을 사내라고 졸랐다. 다 큰 녀자애가 만화복장 입고 어떻게 거리에 나서냐고 따지니 만화축제때 입으면 되는게 아니냐고 자기쪽에서 당당히 맞섰다. 1년에 한두차례밖에 없는 만화축제에 가려고 수백원씩 하는 옷을 사입을 필요가 뭐냐고, 그 돈이면 평상복을 사고도 학용품 돈이 나온다고 설복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침 일찍 일어나고 사기진작하는 것을 조건으로 온라인에서 만화복장을 주문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뿐이였다. 이틀도 가지 못해 점심때가 되도록 기상할념을 하지 않았다. 꺠울랴 치면 방학때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한다고 야료를 부렸다. 매일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서 저녁 열시까지 공부했는데 어쩌다 방학이 되여 잠 좀 자는게 무슨 죄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였다. 애란이는 되려 애가 안쓰러워 못이기는 척 물러났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열두시가 넘어서 마지못해 일어나서도 꼴기없는 모습이였다. 세수를 할념도 하지 않았고 구미가 없다고 밥을 안먹는다고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러면 공부라도 하라고 하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입을 삐죽거리고 다시 벌렁 침대에 드러누워버렸다.
이거 약속한 거랑 다르잖아. 신용이 없이 앞으로 어떻게 세상에 나설 거냐?
누군 이렇고 싶어 이래? 나절로도 어쩔 수 없단 말이야. 다 말라가는 풀더러 계속 그러면 죽을 거니 뿌리를 깊이 박고 수분을 빨아들이라고 말한들 소용이 있어?
애란이는 말문이 막혀 종주먹을 들고 그저 이거이거 하다가 제풀에 손을 내려버렸다.
설날도 집안 분위기가 부산했다. 민혜를 기다리느라고 두 부부간은 배를 곯으면서 점심때까지 기다렸다. 일년을 시작하는 첫날이라는 개념도 그랬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빠진 밥상이 너무 싱거웠기 때문이였다.
목덜미를 잡아 일으킬가?
좀 더 자게 냄두세요. 조만간 일어나겠지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자꾸 방치해도 되는 겨?
남편은 정말로 딸애의 머리채를 잡아챌 것처럼 민혜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문이 열리기 바쁘게 민혜 대신 고양이가 뛰쳐나왔다. 열흘이 되도록 딸의 침대밑에 숨어서 지내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구석쪽으로 에돌아서 식탁밑으로 기여들었다. 귤빛 털을 약간 곤두세우고 줄무늬가 확 눈에 띄우는 꼬리는 바닥밑으로 질질 끌고 있었다. 처음에는 식탁밑에 그대로 주저 앉아 석쉼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차차 애란이한테로 다가오면서 머리로 발을 쓱쓱 비벼댔다.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애란이는 화들짝 놀라 발을 옆으로 뺐다가 고양이가 다시 머리를 박아오자 그대로 내버렸다. 고양이가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는 장면은 어렸을 때부터 익히 보아왔었다. 재가 가득 든 마대에 박혀서 질식해 죽어 아버지네 배 속의 기름기로 변해버린 고향의 그 고양이도 그랬었다. 오렌지가 아닌 화이트였지만 고양이의 재롱 수완은 대체로 비슷했던 것이다. 그 귀여운 것이, 박쥐처럼 질긴 것이 왜 인간의 배 속에 들어가야 하는지 아직도 골드바흐의 추측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랬다. 야생동물을 즐겨 먹는 중국인들의 류별난 음식문화가 이런 대형 전염병 유행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하긴 가족 같이 지내오던 사육 짐승도 인정사정없이 마구 도살하는 인간들이 자기네와 연분이라군 전혀 없는 야생동물에 련민을 가질리 만무하지 않는가.
덕분에 설련휴가 2월 2일까지 연장되였다. 애란이는 괜히 흥분되여 그 소식을 민혜한테 전했다가 즉시로 반격당했다.
그게 보통 백성이랑 무슨 상관이래. 사람은 369등으로 나뉘여져 있구 대부분 백성은 연휴랑 상관이 없단말야. 하루 놀면 하루 수입이 없어. 인간세상은 배 나온 사람들이 어리석은 인간들을 세뇌시켜 부려먹는 론리가 아니구 뭐야.
4
청도서도 확진 환자가 생겨났다. 위쳇 모멘트부터 시작해 각 채팅방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잇따라 마스크가 동이 났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배추 한포기에 80원씩 판다는 루머가 퍼졌다.
애란이는 피씩 웃었다. 아무튼 미리 준비해둔게 다행이였다. 계획적으로 먹으면 보름쯤은 넉넉하게 넘길 수 있었다.
려행사를 하면서 사스와 조류독감 시절을 겪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겪으면서도 아무런 마련도 하지 않아 그때 된통을 당했었다. 선무당이 사람을 죽인다고 어디서 얻어들은 것은 있어 만나는 사람마다 마늘을 많이 먹고 어쩌구를 재미로 지껄이군 했었다. 그러다가 먹거리가 떨어져 가까운 슈퍼에 달려가보니 필요한 물품들은 거개가 바닥이 났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세월을 넘겼던지 지금도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마늘을 물에 끓여 마시면 예방 가능하다는 토방법이 떠돌았다. 그러면서 마스크가 여벌이 없으면 알콜로 소독하여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서로 알려주고 있었다.
더욱 기 막히는 소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마스크를 주어다가 씻고 소독하여 다시 파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였다. 세상에! 이 인간들을 그저 어쩄으면 좋단 말인가?!
애란이는 자신이 이 며칠 하루에도 수십번씩 앞뒤가 끊겨진 감탄어인 이거이거 그저그저를 주절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딸아이에 대해서도 그랬고 지어 말없이 눈치를 흘끔흘끔 보면서 다가서는 고양이에 대해서도 본능적으로 혀를 끌끌 차군 했다.
오렌지 고양이는 올 때보다 살이 많이 올라있었다.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되지 않았는지 소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주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눈치만 보이면 머리부터 들이대며 자기를 예뻐해달라고 아양을 떨군 했다.
고양이는 애란이가 좋은지 아니면 만만한지 정작 자기를 사온 민혜는 놔두고 애란이의 주위만 뱅뱅 돌았다. 민혜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 외에는 여전히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태도였다. 밤늦게까지 방에 들어박혀 핸드폰을 뒤적였다. 그러다보니 고양이의 분변을 처리하는 일은 아빠에게 차려졌고 고양이와 놀아주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애란의 몫이 되였다.
새벽 두시쯤이 되면 고양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분변통을 긁어대군 했다. 그건 고양이가 배변을 했다는 암시였다. 고양이가 똥오줌을 누고는 그것을 파묻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싸락싸락 하는 소리는 10분쯤 이어졌는데 조용한 집안에서 무척 신경을 긁어댔다. 지금 세상은 고양이 밥이 따로, 똥오줌을 받는 통과 그것을 파묻는 알갱이를 따로 팔고 있었다.
애란이는 또다시 사람들의 식재료가 되던 그 시절의 동물들이 불쌍하고 미안했다. 사람들이 먹다 남은 것들을 아무거나 던져주면 받아먹고 자라면서도 순순히 맞아주고 먹혀준 그것들의 삶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도 세상을 잘 만나야 해. 못난 세월을 탓해야지 뭐 별도리가 있는가. 하다면 그때 살육된 동물들이 원귀가 되여 다시 인간에게 복수하는 거란 말인가?
애란이는 흠칫 놀라면서 발밑을 파고 드는 오렌지 고양이를 툭 차버렸다.
킥 하는 소리와 더불어 저쪽으로 피해간 고양이가 웬일인지 캑캑캑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바닥에 대면서 무엇에 케킨듯 캑캑캑거리다가 다시 목을 쳐들고 허공에 대고 칵칵거렸다.
“민혜야, 이 고양이 왜 이래?”
놀란 애란이가 소리치자 무관심인듯 아무 소리도 없던 민혜가 방에서 달려나왔다. 발로 고양이를 툭툭 건드려보더니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감기에 걸린 것 같대. 어린애 감기약을 사서 먹이면 된대.”
“그럼 아빠가 약국에 갔다올게. 물약을 말하는 거겠지?”
“아빠 그만둬. 지금 비상시기잖아. 고양이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돼?”
민혜의 얼굴에 걱정과 더불어 공포의 그늘이 어느새 자리잡았다. 주의해 살피지 않으면 쉽사리 보아낼 수 없는 반응이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반대로 삶에 대한 지향일 수 있었다. 애란이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딸애가 생에 대한 욕망이나 미련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삶이 싫지는 않다는 의지가 아닌가.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듯 하더니 서서히 생기가 돋아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다음 순간 애란이는 더 깊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차라리 내가 갔다 올게. 뭐 죽기보다 더 하겠어?”
민혜는 정말로 신을 찾아 신었다. 처음부터 두손두발 다 들어서 고양이 사는 걸 반대했던 아빠는 딸애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남편은 그렇게 독한 면이 있었다. 강대강으로 대들면 절대로 져주는 법이 없었다. 긴 세월을 그런 남편과 살아온 애란이는 남편한테 다가가 슬그머니 안아주었다.
“애를 저렇게 나가게 내버려두면 어째요? 죽어도 우리가 먼저 죽어야지. 우리 사는게 다 저 애때문이 아니예요?!”
마른 장작처럼 쉽게 터지는 남편은 온순한 양마냥 애란이가 챙겨주는 마스크를 고스란히 끼고 밖으로 어슬렁 나갔다. 민혜는 그러는 아빠가 리해되지 않는듯 물그러미 뒤모습만 바라보았다.
초이틑날부터 아파트단지가 전면 봉쇄되였다. 업주가 아닌 사람은 일률로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남편이 아파트단지를 벗어날 수 있을지 또 문여는 약국이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반시간이 좀 넘어 남편은 요구대로 어린애 감기약을 사왔다. 민혜는 신기한듯 집에 들어서는 아빠의 손에서 물약을 받아들었다.
“나갈 때 들어올 때 모두 검열을 받았어. 그대로 죄인 취급이야 죄인.”
이틑날 새벽 두시쯤 화장실에서 또 고양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배변을 하고 파묻는 모양이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낮처럼 또다시 캐캑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사람의 기침소리 같은 그 소리가 몇분간이나 이어졌다.
이 난시판에 고양이까지 왜 저 지랄이여, 아, 짜증나.
참아요. 애 좋아하는 거잖아요. 심리상담사님도 애 요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라고 했잖아요. 내버려둡시다.
저게 심상찮단 말이야. 하필이면 지금 기침하고 저러지?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것도 고양이가 민혜방에서 같이 지내니 애가 더 걱정이야.
감기약 먹이면서 며칠 두고 관찰해보자요.
그날 낮에도 고양이는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종일 줄창 기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너시간만에 한번씩, 그것도 막 목이 막혀 죽겠다는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약을 두번세번 먹여도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도 고양이는 어김없이 변을 파묻으면서 기침을 꽤나 오래동안 해댔다. 이젠 애란이의 인내심도 한계점에 도달할 무렵이였다. 뜻밖에도 민혜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우리 고양이 내버리자.”
정색해서 내뱉는 말이 하루밤새에 어른이 된 어투였다.
말을 마친 민혜는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고양이를 안아서 출입문밖으로 내던졌다. 인차 고양이가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후에 문밖이 조용해졌다.
“아니, 너 그래도 괜찮겠어? 무슨 생각에 그런 결단을 내린 거야?”
“사람부터 살아야잖아. 우리가 죽고 고양이 홀로 살아선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 저게 살아남았다 해도 결국 굶어죽겠지 아마.”
“그러니까 말이야.”
민혜는 전번날보다 더 심각하고 엄숙한 모습이였다. 밝은 전등빛 아래서 흙빛이 된 얼굴이 보다 결연한 인상을 주었다
“나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잖아. 엄마랑 아빠랑 주고 받는 말을 다 들었어.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부모를 놔두고 왜 고양이한테 의지해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구나. 우리 민혜 요새 고민 많았구나. 그런데 말이지. 내 보기엔 고양이는 순 감기에 걸린게 틀림 없을 거 같아. 우리랑 두주일 거의 같이 있었잖아. 요즘 도는 병이라면 우리도 벌써 열이 났었어야지.”
애란이는 말을 하다말고 스스로 이마를 탁 치고 후다닥 뛰여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문밖에는 고양이가 없었다. 실망해서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였다.
아빠트단지내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보았지만 여전히 눈에 띄이지 않았다. 희붐히 밝아오는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애란이가 풀이 죽어 돌아서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
엄마, 빨리 돌아와, 청도에 벌써 10여건 확진환자가 나졌대. 그잘난 고양이가 다 뭐라고, 얼른 와!
엄마를 걱정하는 민혜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여 왔다.
알써!
애란이는 자기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칠념도 않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어귀 계단에서 오렌지 고양이와 오며가며 만날 줄이야. 이것 역시 연분이야. 손을 벌리니 고양이는 마침 기다렸다는듯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더이상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감기일뿐이야 감기일뿐이라고. 잘 치료해줄테니 우리 건강하게 살자구나.”
머리 속에는 옛날 시골의 동물과 아직도 도살이 감행되고 있는 정글 속의 동물들이 교차적으로 떠올랐다.
5
정월 초닷새날 민혜는 위쳇방을 통해 12킬로짜리 알콜 한통을 샀다. 재난 속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식지 않는다. 위쳇그룹들에서는 마스크에 알콜에 식품에 팔지 않는 것이 없었다.
민혜가 아빠더러 아빠트단지 북문에 나가면 물건을 갖다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나가보니 정말로 알콜을 배달하는 차량이 와있었다.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니 알콜을 이미 용도대로 혼합해놓았으니 오가는 사람이 다친 물건이면 무조건 뿜어서 소독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마스크도 쓴 다음 알콜을 뿜어서 건사했다가 다시 써도 된다고 말했다. 일단 믿기로 했다. 그건 동시에 민혜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엄마, 이십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있어?
있지, 미리 다 준비해두었으니깐.
그럼 됐어. 우리 2월 17일 부터 온라인 수업을 한대. 아마 그때까지도 학교에 갈 거 같지 못해.
민혜는 부지런히 집안을 오가면서 소형 분수병으로 알콜을 뿜어댔다.
<도라지> 2020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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