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http://www.zoglo.net/blog/f_waiguo01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97 ]

37    Ⅴ. 흐름의 미학 댓글:  조회:3393  추천:71  2008-10-25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Ⅴ. 흐름의 미학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부총장 다음날(셋째날) 아침 우리 일행들은 일찌감치 일어나 장백폭포로 산행을 나갔다. 한 여름이지만, 높은 산중의 새벽공기라 그런지 차가왔다.심호흡을 하면 폐부 깊이 스며드는 공기가 너무나 신선하고 청정했다.폭포쪽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노천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피어오르는 김이 백자작 고목들 사이로 새벽안개처럼 퍼지면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드는것 같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폭포에서 흘러  내리는 물길 위로 길이가 50m 정도 되는 철제 다리가 가로 놓여 있다. 모양은 볼품이 없지만,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철교 위에 서서, 장백폭포에서 쏟아진 물결이 하얀 거품을 물고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빠른 속도로 흘러내려가는 모양을 바라본다. 한참동안 그렇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물의 흐름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물은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동안  '흐름'에 대한 생각을 별로 심각하게 해 본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 장백의 흐름이 나를 철학적인 명상에 빠져 들도록 만든다.백자작과 물푸레나무들이 한데 엉켜 우거져 있는 산길을 15분정도 더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장백폭포가 한눈에 가득 들어오면서 시야가 탁 트였다. 장백폭포의 위용을 말로 어찌 다 표현할까!멀리서보면 긴 하얀 천이 움직이지 않는 그림처럼 산비탈 허공에 걸려 있는듯 했는데, 가까이와서 보니 천지에서 흘러넘치는 물의 양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물안개를 피우며 낙차하는 그 웅대한 힘의 위력이 온 산천을 진동시키는 듯하다. 일행들이 이쪽저쪽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들이다.나는 흘러가는 물가의 바위위에 올라서서 마치 돌부처처럼 허공을 바라본다.은연중에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만물은 본디 자연으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속성을 갖고 있지 않는가?오늘 아침 따라 인간의 존재를 자연의 일부로 해석하고 싶은 생각이 뭉클 솟는다. 물의 흐름은 자연의 흐름이리라.그래서 만물은 흐르고, 나도 그 속에서 함께 흐른다. 이 흐름의 미학속에 나를 침잠시켜보니 내가 곧 물이요 물은 나의 의식의 흐름이 되어 나를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도록 만들어 주었다.젊은 날, 일주일이 멀다하고 산행을 즐길 때 내가 던진 화두중에 가장 멋있다고 느껴진 말이 "산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라는 말이었다.오늘 이제 물의 흐름에 잠겨보니 물 또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흐르는 흐름속에 존재함을 깨닫는다.다만 물이 산과 다른것은, 산맥은 정지된 상태의 흐름으로 여러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물길은 물이 물을 당기고 밀치며 한 방향으로 이어져 흘러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그래서 낙화유수라고 했던가,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고, 한길 낮은 곳으로 흐르는 그 겸허한 흐름속에 물의 실존이 살아 있는것 같다.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실존을 느끼며, 돌부처처럼 서서 허공을 바라보던 나는 일순 역사도 이와같아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수도 있지만, 또한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이 솟구쳤다.아, 그렇다.인간은 자연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 역사존재이기도하다.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시간과 공간의 교직으로 짜여지는 역사의 흐름속에 살아가는 현존재가 바로 우리들의 지금 이 모습이다.그래서 인간은 자연과 역사를 함유하는 존재이며, 또한 자연과 역사를 관통하는 흐름의 미학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의식의 틀이 될 것같다.만물은 흐른다. 자연도 흐르고 역사도 흐른다.이 흐름을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는게 기독교 신앙이다.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자연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그날 아침, 백두산 장백폭포 앞에서 자연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다시한번 깊은 감격을 맛보았다. 장백폭포를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 온 일행들은 곧바로 온천탕으로 가서 목욕을 했다.멀리 내몽고와 신장 지역에서 온 분들이 온천을 너무나 좋아했다.조찬을 든 다음, 우리들은 짐을 챙겨 경내 셔틀버스를 타고 백두산 산정으로 올라가기 위해 짚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정류장으로 갔다.백두산 산문(山門) 바깥에 있는 숙박시설을 이용했던 중국인 관광객들과 연길에서 새벽 일찍 출발하여 온 한국인 관광객들이 상당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열두명이라 여섯명씩 타는 짚차 두 대에 알맞게 분승했다.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고 쾌청했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서 천지 등정을 하기에는 최상의 날씨였다.백두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산복도로는 험하고 가파르다.길이 꼬불꼬불 거릴 뿐만 아니라 경사도가 있어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지 않으면 차를 운행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일행들은 찝차가 거칠게 커브를 돌때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산기슭에서부터 산정에 오르는 고도에 따라 식물군의 분포가 확실히 차이가 났다.와이프(박재숙:원예학 박사)의 말에 따르면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관목류와 지피식물은  천연의 보고라고 할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고 희귀성이 있다고 한다.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른다. 중국 정부는 이 산을 몇 년전에 중국 10대 명산중의 하나로 편입시켰으며, UN에 보고하여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받았다.그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관리하던 장백산 관광지 관리운영권을 길림성으로 이관시킨 후 대대적인 관광지 개발 사업을 벌려 인근 백산시에 공항을 건설하고 도로 및 철도를 연결했을 뿐 아니라 교통 요충지인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유럽풍의 리조트형  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켜, 중국내 주요기관들과 부유층의 여름휴가 별장지로 사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이 일은 이 지역에 투자해왔던 한국 기업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또한 연변조선족자치주에도 관광재정 수익면에서 많은 손실을 안겨주기도 해 말썽을 빚고 있기도 하다.짚차가 백두산 산정 가까이 올라서면 오래전에 중국 정부에서 세운 기상관측소가 나타난다. 그리고 최근에 기상관측소 앞에 국경 및 관광지 관리 임무를 띈 행정 건물이 하나 더 들어서 있는것을 볼 수 있다. 그 건물 벽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祖国利益 高於一切"중국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글이다.짚차에서 내리자 「민박회」일행들은 모두 뛰어 오르듯 산정으로 올라갔다.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천문봉 정상에 올라선 그들의 눈에 드러난 천지(天池)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한 폭의 신비스러운 영상화면을 보는것과 같았다. 분화구 전체를 에메랄드색 유리판으로 덮어 놓은 듯 푸르고 맑은 빛을 띄며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뜰수없을 만큼 눈 부시다. 마치 구름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그대로 천지에 빠져있는 듯 한 현상이다.일행들은 온갖 폼을 취하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12명 전원 단체 사진을 관광지 전속 사진사에게 돈을 주고 파노라마형으로 찍었다. 현장에서 바로 인화된 사진을 한 장씩 받아 들고 일행들이 떠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너무나 행복해졌다.하늘도 푸르고 천지도 푸르고 내 마음도 푸르다.또한「민박회」로 모인 소수민족들이 하나의 꿈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너무나 푸르고 순진하다. 누가 우리의 이 푸른 꿈을 막을 것인가?무엇이 우리의 이 순수한 우정의 관계를 왜곡 시킬것인가?천지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푸른 물길을 마음에 새기며, 내 가슴 속 깊은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뜨거운 열정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본다. 시작도 끝도 없이 솟아오르고 흘러내리는 천지의 열정을 내 가슴에 담는다.존재하는 삶의 가치로서 이 보다 더 깊고 뜨거운 흐름의 미학이 어디 있을까?영겁의 세월을 통하여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가 내 의식의 흐름 속에 하나의 메모리 칩으로 압축되는 듯 한 감을 느낀다.깊은 영혼의 호흡을 통해 깨닫는 천지(天池)의 속성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천지(天池)는 곧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기와 욕망을 담은 자궁이요. 장백폭포는 배꼽이 되어 긴 탯줄을 대지위에 드리운 채 만물을 소성케하는 강(江)의 시작이 되는 그런 형상이다.천지(天池)를 바라보면서, 그 천지(天池)를 통해 하늘과 땅과 천지만물(天地萬物)의 흐름을 체감하는 영적 기쁨은 마치 생명의 근원에 몰입할 때 경험하는 카타르시스와 같았다.장백폭포가 쏟아낸 긴 흐름도 결국은 천지(天池)라는 물 근원이 있음으로 가능하리라.우리 인생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의 흐름도 결국은 창조주의 배꼽으로부터 솟아난 생명의 물줄기를 따라 이합집산하며 여기까지 흘러온게 틀림없다. '전쟁과 평화라는 이름의 쌍두마차'를 타고 여기까지 달려 온 인류 역사의 본질은 한마디로 흐름의 미학을 따라 존재하는 삶의 궤적이라고 할 만하다.천지와 장백폭포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낀 역사적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그것은 자연의 이치와도 상통하는 순환론적 섭리에 의한 인간 집단의 욕망과 투쟁하는 삶의 흐름이었다.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안도현 만보진에 있는 조선족 민속촌(홍기촌)을 구경했다.마을 입구에는 조선족 출신으로서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을 다루는 최고기관인 정협회의 주임이신 리덕수 선생께서 쓴 '중국조선족제일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민속마을의 규모는 작지만 촌민 생활구, 민속 거주구, 민속 활동구, 민속 음식 제작구 등으로 구역을 나눠 특징있게 시설을 배치 해 놓았다.민박회 일행들은 특히 조선족 촌민들의 거주 생활과 음식 제작 부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어떤이는 북방식 주거 형태인 마루짱 밑 부엌구조가 신기해 보였는지 직접 마루짱을 열고 들어가 가마솥 뚜껑을 들어 보기도 했다.건물들은 모두 단층 기와집으로 단장되어 있고, 지붕에는 태양열수기가 장치 되어있으며, 수세식 변소와 함께 주방에는 프로판 가스도 연결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옥수수, 해바라기, 배추, 고추, 가지, 파, 황두(콩), 깻잎 등의 작물이 자라고 있고, 빨간 꽃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린 분꽃이 화단에 심겨져 있다.건물 벽에 군데군데「福」자와 함께 벽화형태로 민속그림이 그려져 있고, 마을 중앙에 있는 행정기관의 현관에 "신농촌 신면모, 신농민 신생활"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보인다. 한마디로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같은 신 농촌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길을 따라 마을 뒤쪽으로 가보니 향도원(香稻園)이라는 이름의 수전(水田)농사 시범지구가 있었다.2,000평 정도의 규모로 지당(池塘)을 조성 해 놓고, 사방으로 목재 데크 통로를 배치하여 관광객들이 물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수초와 벼농사를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내몽고와 신장지역에서 온 몇 사람들은 '벼'를 난생 처음 본다고 하면서 물에서 열매 맺는 수전 농사에 대해 매우 신기해했다.그들은 여태껏 밭작물(한전) 밖에는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손춘일 원장께서 조선족 사회가 중국에 미친 영향 가운데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수전 농사를 개척, 보급한 일이었고, 특히 이곳 연변과 길림을 중심으로 벼농사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동백미'라 하여 청나라 황실에만 독점적으로 공급했음을 설명 해 주었다.나는 손 원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편 이런 생각에 잠겼다.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송화강의 발원이 되어 대지를 비옥케하는 생명수가 된 듯, 수전 농사를 통하여 이 땅에 새로운 생산성의 흐름을 개척한 한민족 이주민들이야말로 이 땅을 변화시킨, 새로운 역사를 창출한 선구자들이지 않는가!여기서 생산된 '동백미'가 청나라 황실을 먹이고 키우는 소재(素材)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중국을 움직이고 천하를 호령하도록 만들었다면, 이는 곧 자연과 역사를 하나의 필연적인 순환 구조속에서 일체화시킨 흐름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겠는가하는 엉뚱한(?) 생각마져 들었다.이러한 엉뚱한 생각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미학으로 발전하여 시대사의 흐름을 주도한 사례가 적지 않음을 깨닫으면서 천천히 향도원(香稻園)을 떠났다.예를 들면, 헤겔의 변증법과 '역사철학'이 그랬으며, 물질이 정신의 기초가 되어 생산성을 이끌어 냄으로서 프로레타리아 노동자 계급이 권력의 기초가 되도록 길을 열어준 칼 막스의 공산주의 이념이 바로 이와같은 생각의 흐름을 통해 배태된 결실이 아니었던가!그 열매가 우리를 더러는 행복의 식탁으로 데려가주기도 했고, 또한 더러는 불행과 고통의 밭으로 끌고 갈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우리는 자연과 역사의 교접을 통해 새로운 인류사회의 흐름을 발견하는 지혜를 터득해야만 할 것 같다.이것이 흐름의 미학이 갖는 과제가 아니겠는가!「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Ⅰ. 민박회Ⅱ. 경희궁의 밤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Ⅴ. 흐름의 미학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36    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 댓글:  조회:3221  추천:72  2008-10-19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부총장 TV 화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막식 공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해 보라면, 그것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억제할 수 없는 충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중국 고대문명부터 현대까지의 5000년 역사, 그리고 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사회가 추구해야 할 평화의 메시지를 탁월한 상상력과 첨단 기술력으로 압축하여 재현한 능력도 놀랍거니와 이합집산하는 군무를 통하여 인해전술식 조직력을 과시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힘과 이미지를 형상화 시켜나가는 관경을 보고 있노라니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오리엔탈 쇼크'라고 할 만한 이 거대한 응집된 기상의 폭발력은 장차 중국과 세계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는 무엇이며, 북경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행동과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텐데, 그 답은 무엇일까?이제 중국은 중국만의 중국이 아니라 세계를 이끌어 갈만한 능력을 갖춘 강대국으로서 세계로부터 존경과 책임을 동시에 지게 될 것이다.더 많은 책임이 수반된 가운데 대외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가야할 의무가 생긴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군사 분야를 빼고는 경제·다자외교·문화 등 대부분의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대등한 세력임을 자임하고 나설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의 향후 행보가 매우 궁금해진다.지금까지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가 성행해 왔다면 앞으로는 중국식 스탠다드를 고집해 국제 관계의 준거 틀(Norm)을 새롭게 짜려는 의도를 드러낼지도 모른다.북경올림픽의 앰블럼을 한자의 여러 서체 중 하나인 전서체(篆書体)를 기반으로 도안 한 것은 주최국으로서의 재량이라고 할 만하다.그러나 개막식 선수입장 순서를 알파벳 순서로 하지 않고 각 국가의 이름을 중국 간자체의 획수 순서로 배열한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보인다.전 세계 문자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합리적인 문자로 한글을 꼽았던 영국의 다큐멘터리 작가 존 맨은 19세기까지 전 세계 정보량의 90%를 한자가 점유하고 있었으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그 90%를 알파벳 문자가 점하게 됐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중국이 북경올림픽을 통해 한자를 부각시키는 이유가 혹시 영어에 빼앗긴 글로벌 패권을 되찾기 위한 도전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이와같이 5000년 역사의 문화력과 급부상한 경제 및 외교력을 기반으로 하여 장차 군사력에 까지 세계 최대강국의 위치에 도전하려는 패권의식이 발동한다면, 그때 이 잠깬 사자를 제어 할 국가가 지구촌안에서 미국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그렇다면 결국(오래전부터 예상해 왔던 바와 같이) 미국은 중국을 향후 최대의 적대국가로 지목할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세계전략을 펴 자국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일에 최대한 역점을 두는 쪽으로 국가정책을 추진해 나갈것이다.그때 한국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사이에서 과연 어떤 대안을 갖고 자신의 안보와 국가발전정책을 구사해 나갈것인가?평화와 화합을 내 세운 경이로운 개막식 광경의 이면에서 13억 중국인들이 과시하고 있는 이 거대한 국력의 제의(祭儀)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곧 저 힘이 우리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과연 우리는 홀로 설수나 있을는지 하는 염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기세등등한 중화 민족주의의 자존심을 거드리지 않으면서 그들과 함께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개막식 후반 선수 입장식 때 등장한 한국과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환호하던 마음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다.한참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춘일 원장께서 술을 한잔 권해 왔다.나는 탁자 위에 놓인 맥주잔을 들고 여러 사람들과 건배를 한 후 갈증이 나서 연거푸 두잔이나 들이마셨다. 선수 입장식이 끝난 후 자크 로게 IOC위원장의 인사말과 후진타오 주석의 대회 개최선포가 있은 다음 마침내 체조 스타 리닝(李寧)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공중을 날아오르면서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광경이 TV화면에 클로즈업 되자, 새 둥지 모양의 냐오차오 스타디움은 그야말로 터져 나갈듯한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내 마음속에도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성화는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였던 그리스의 아테네를 출발하여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 지역 여러 국가를 돌아 북경에까지 왔다. 어쩌면 이 성화봉송의 길은 세계역사의 진로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역사학을 다루는 관점 가운데 섭리사관이 있다. 기독교 사상이 기초가 된 이 역사관은 세계 복음화의 물결이 서진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중동지역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시작된 그리스도 복음의 물결이 지중해와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그 후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 미국에까지 이른 이 물결은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고 일본과 한국을 거쳐 드디어 중국 대륙에 까지 전파되었다.1964년 동경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북경올림픽, 이런 순서로 20년을 주기로 순차적으로 밀려온 올림픽의 물결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파고를 넘고 미·소 양대진영의 냉전의 벽을 넘어 마침내 공존과 상생을 목표로 새로운 화합의 복음을 지향하는 세계역사의 서진화 현상을 상징하는 예표가 될 만하다.그리고 이제 북경올림픽 이후의 중국의 변화가 자못 궁금하다. 중국의 변화는 곧 세계의 변화이다. 세계 역사의 흐름은 중국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물결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 중국의 변화가 이끄는 새로운 역사의 흐름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성화가 점화되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상념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동안 꿈꾸어 왔던 동아시아 공동체 사역의 역사의식과 이를 이끌어 갈 만한 시대정신을 「민박회」소수민족 엘리트들과의 대화 가운데 소통하고 있는 "和"자의 의미속에서 새 길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에 갑자기 기름을 끼얻는듯한 흥분이 일어났다.그것은 장이모우 감독이 중국 지도부와 함께 협의해서 만든 전략적인 의도로서의 작품(和)이 아니라, 2000년 전부터 하나님의 섭리아래 진행되어 왔던 서진화 역사의 분기점에서 나타난 참된 평화로서의 "和"임을 깨닫는 충격이었다.만일 중국이 이번 북경올림픽 대회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의 대외정책을 국제사회가 요청하고 기대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면 이는 세계역사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제대로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후변화에서 안보,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파트너십이 꼭 필요하다."이는 북경올림픽을 보고 느낀 중국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가 한 말이다. 북경올림픽이 끝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른바 '중국 끌어들이기(China Engagement)에 쏠릴 전망이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경올림픽 참석 직전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을 (국제 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대통령 취임 전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차별화할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가 어떤 것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이라고 대답했던적이 있다. 아무튼 이제 중국은 싫던 좋던 국제사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그것은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 안보, 교역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문제 해결 및 해외의 사회공헌 활동, 시장체제의 개방과 자유민주주의 확대 등 다양한 현안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이에 성공하려면 경제력, 문화력, 군사력에 더해 윤리적인 중국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는게 지배적인 국제여론이다. 중국의 변화는 바로 이와같은 도덕적 리더십 확립을 핵심과제로 삼을 때 비로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올림픽 이후의 과제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여론과 주장은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만하다. 기원 후 2000년간 서진화 현상을 띄면서 흘러 온 역사 변천의 물결이, 2008 북경올림픽을 통하여 중국이 세계역사 흐름의 중심지로 부상함으로써 마침내 "和"의 의미를 21세기 국제사회의 도덕적 리더십의 핵심가치로 승화시켜 나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졌다.생각이 여기에 까지 이르자 마음속으로 중국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염(念)이 새롭게 깊어짐을 느꼈다.1978년 개혁 개방이 시작된지 꼭 30년만에 열린 이번 북경올림픽은, 그동안 30년간 고생해 온 중국인들의 어깨를 펴게하고 그 노고를 치하하는 자축의 파티장으로 존중해 줘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으로부터 100년간의 침탈을 받았던 쓰라린 역사를 딛고 일어선 중국은 이제 동서양 세계역사 흐름의 가장 중요한 합류지점으로 그 입지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이해 하는것이 옳을 것 같다.다만, 한당(漢唐)시대 이후 1000년만에 다시 세계속에 재등장하는 중화민족 부흥(팍스 시니카)의 드라마는 중국이 중국만을 위해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세계를 섬기며, 세계를 위한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21세기 정신의 표상임을 증명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다.그래서 마침내 북경올림픽이 추구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 이러한 희망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캐치 플래이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래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우며 독특한 경기장" 이라고 찬사를 보낸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의 평가와같이, 중국은 이제 평화를 상징하는 새 둥지 모양의 냐오차오(鳥巢)스타디움을 통해 로마제국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역사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천년의 꿈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와 긴장감이 마음속에 잦아들어 왔다.그리고 나와 함께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에 참가한 「민박회」회원들도 이심전심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소통과 협력, 우정과 헌신의 능력으로 움트는 새로운 '공동체 자유주의' 의식을 품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3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개막식의 전모를 시청하는 동안, 한방에 둘러모인 일행들과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애환과 여망을 감지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중국과 세계역사를 향한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을 시작하는 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했다."오! 하나님 이 길이 당신이 원하시는 길입니까?중국을 통해 중국을 넘어서야 할 길은 어디로 열려있나요. 작은 자를 사용하여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복음의 진리를 위해 이 소수민족들을 사용하지 않으시렵니까, 이들을 통하여 중국과 세계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길을 예비하여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Ⅰ. 민박회Ⅱ. 경희궁의 밤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Ⅴ. 흐름의 미학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35    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댓글:  조회:3277  추천:72  2008-10-14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둘째날 아침 조반을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임대버스를 타고 서둘러서 연변대학으로 갔다. 9시부터 민족연구원 회의실에서 학술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우리 소식을 듣고 인문사회학 전공자들이 몇 분 회의에 동참했다. 전신자 교수께서 사회를 맡았고, 나의 인사말에 이어 손춘일 박사(민족연구원 원장)께서 기조연설을 해 주셨다.그는 연변대학 출신으로 한국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형 인물이다.손 원장의 발표는 연변대학 개황, 조선족의 동북지역 이주사, 조선족의 공헌(항일 투쟁운동, 수전 개발 등), 최근‘동북진흥전략’에 따른 두만강유역 개발 전망에 대한 내용을 주로 했다.연이어 토론에 들어갔다.여러 사람들이 민족문화계승과 발전에 대하여 의견을 발표했으며, 사안에 따라 질의, 답변하는 형식으로 특별한 순서없이 토론을 진행했다.토론을 하다보니 언어학 전공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민족언어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시대 조류에 적응하는 국제공용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내몽골 대학에서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문적인 몽골족어 교육과 중국어 교육을 병행실시하고 있는데 비해, 연변대학에서는 조선어학부외에는 모두 중국어로만 강의를 하고 있는점이 지적됐다.북경 우전대학 같은데서는 소수민족을 위하여 전문적인 예비학과가 설치되어 있어서 지역별로 우수학생을 선발, 중국어 교육을 시킨 후 일정 수준이 되면 전공분야에 배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학점을 취득하고 졸업하면 출신지역으로 돌아가게 해서 분야별로 취업토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예컨대, 위구르족들은 위구르어만 알았지 중국어는 잘 모르므로 1~2년간 예비학과에서 중국어를 공부시킨 후 전공학과에 배치한다고 했다. 그런 반면에 조선족 사회에서는 인구 분산과 함께 중,소학교가 많이 폐지되고 있으며, 또 중국어 교육에 비해 조선어(한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변대학 같은데서는 조선족 학생들의 신입생 초생(입학전형)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지적이 계속 언급되었다. 이 점은 졸저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에서도 동일하게 지적한 내용인데, 장차 조선족사회의 발전과 진로를 감안할 때 중국어 교육과 더불어 조선어 교육을 보강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될 단계라고 판단된다.결론적으로, 정보화, 국제화 시대에 적응하는 소수민족들의 인재 육성방안은 기본적으로 자체 민족언어를 일정 수준까지 학습해야하고 거기에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같은 국제 공용어까지 겸비한 인물로 키워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결론이 났다.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는 이와같은 언어 교육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학습하는 것이 그들 사회의 자체 역량을 키우고 세계화시대 현실에 대처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2시간 가량 진행 된 좌담회를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연변대학내 주요 시설을 잠시 둘러본 후 곧장 연길시 북산가에 있는 연변과기대로 향했다.공식적으로는 「연변대학과학기술학원」이지만, 흔히 연변과기대로 약칭해서 쓴다.본 대학은 중국 안에서 외국인이 설립․운영하고 있는, 캠퍼스가 있는 유일한 중외합작 대학이며, 학교 안에 있는 화장터를 개조해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특별한 대학이기도 하다.특히 이곳은 조선족 공동묘지였던 곳이다.과거 죽음의 땅이 이제는 중국 안에서 가장 앞서가는 인재를 키우는 생명의 땅으로 변화되었다고 해서 우리들은 이곳을‘기적의 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00여명이 넘는 13개국 출신의 교직원들이 모두 자비량으로 봉사하면서 학생들을 섬기고 지역사회 발전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민박회」 일행들은 내가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고, 또 대학 설립 정신과 운영방침이 특별한 국제대학이라서 평소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가, 직접 학교를 방문하게 되니 느낀바가 컷던가보다.시간이 없어서 버스를 탄 채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설명을 해 주었지만, 나의 설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듣고 메모까지 했다.대학 정문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마친 후, 우리는 곧장 하남(河南) 모아산 기슭에 있는 뉴코어 식당으로 갔다.원래 배밭이었던 곳을 야외 레스토랑으로 꾸민 아주 격조가 있고 연길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한식당이었다.여러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모임이라서 그런지, 특히 여성 멤버들은 음식이 하나하나 나올때마다 사진을 찍고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냐고 종업원들에게 꼬치꼬치 묻곤했다.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하늘은 쾌청하고 공기가 너무나 맑았다.일행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욱 고맙게 생각되었다.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제 백두산 행이다.백두산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그동안 일반적으로 주로 이용했던 길은 안도현 돈화를 거쳐서 가는 길이다. 도로 포장이 잘 되어있고 노선이 완만하여 이용도가 높았다. 그러나 소요시간이 버스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코스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용정, 화룡을 거쳐서 두만강을 따라 가는 산복도로가 전 구간 포장 작업을 완료해서 개통 되었다고 한다. 이 길은 도로세 부담이 크지만 지름길이어서 주행 시간이 3시간 반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갈 때는 용정, 화룡 코스로 가고 돌아올 때는 안도, 돈화를 거쳐서 오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백두산 가는 일행들의 표정은 마치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들 같았다.그동안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다가 일년만에 다시 한곳에 모여 여행을 떠나니 모두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버스가 백두산 산문(山門)입구에 도착할때까지 끊임없이 얘기하고 웃고 떠들며 손뼉치곤 했다.산문 입구에서 우리가 타고 왔던 임대버스는 입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공용주차장으로 돌아갔고, 일행들은 입장권을 구입한 후 경내 셔틀버스로 갈아탔다.2년전부터 백두산 관광지 관리운영권이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이관되었다. 관광지 시설과 경내 환경이 많이 정비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 한국에서 투자했던 시설들이 불법적으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하여 지금 법적 소송 중에 걸려 있는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숙박시설이 우리가 투숙 할 예정인 천상관광호텔이다.이 호텔은 한국의 참빛그룹(眞光集団)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위치가 백두산 장백폭포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다.자연 분출되는 유황온천수로 난방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우리 일행들이 천상관광호텔에 짐을 푼 것은 저녁 6시경이었다. 우선 온천부터하고 저녁 식사를 빨리 마치기로 했다.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막되는 북경올림픽을 백두산에서 맞이하게 된 「민박회」일행들은 모두가 구름에 떠 있는듯한 표정이다.다들 온천수가 너무 좋다고 야단들이다. 내몽골자치구나 신장자치구에서 온 분들이 특히 그랬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기온도 낮엔 뜨거웠지만 산상에 오르니 선선하고 상쾌했다.건물 바깥에 있는 야외용 노상 온천탕에 둘러앉아 멀리 장백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함께, 용암이 흘러 생긴 가파른 계곡 위 푸른 하늘에 하얀 반달이 걸려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온천 후 활기에 넘치는 모습으로 남녀노소 12명이 한상에 둘러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다만, 한창 시즌인데 올림픽 때문인지 아니면 천지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지난달 폭우에 무너져 내려 당국이 등산로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 관광객들이 별로 없어서 한산 할 정도였다.그래서 우리들은 더욱 오붓하게 만찬을 즐겼다.술은 나중에 올림픽 개막식 구경을 하면서 마시기로 하여, 간단히 식사만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얼마있지 않아 우리 일행들은 특별히 예약해 둔, 이 호텔에서 가장 넓은 단체용 온돌방으로 집합했다.방안 한 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미리 준비해 온 맥주와 음료수, 과자, 안주거리 등을 벌려 놓았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의자들을 모아보니 12명이 모두 앉을 수 있는 숫자가 되었다. 장시간 앉아 있으려면 의자가 없이는 매우 불편한데 마침 부족함없이 준비되었다.이제 모든게 준비 완료 되었다.2008 북경올림픽 개막을 앞둔 호기심과 열기는 어디 북경 냐오차오 스타디움 뿐이겠는가!백두산 천상호텔 온돌방에서 맞는 「민박회」의 올림픽 개막식은 어쩌면 문자 그대로 '백두천상'에서 벌리는 잊지못할 소수민족 올림픽 잔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드디어 북경올림픽이 개막되었다.1908년 한 중국인이 올림픽 개최 희망을 피력한지 꼭 100년만에 ‘중국 100년의 꿈’이 꽃피는 순간이었다.개막식 직전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VIP석에 입장하면서 장내 분위기는 뜨겁게 고조되었다.8시 정각에 개막식이 시작되어 중국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이 이어지자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중국 관중은 물론이고 행사를 진행하던 경기장의 자원봉사자들까지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온돌방에서 50인치 TV를 통해 개막식을 보던 「민박회」일행들도 56개 민족의 어린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중국 국기를 들고 나오는 장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국기인 오성홍기가 하늘 높이 게양되자 모두 일어나 숙연한 모습으로 경례를 표했다.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전 세계 8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했으며, 또한 204개 국가와 지역, 그리고 1만 500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해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선수가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모두 3부로 나눠진 개막식은 오륜기 등장 등 예식행사와 예술공연, 마지막으로 각국 선수단 입장,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등 관계자들의 인사말,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개최 선포, 성화 점화 순으로 진행됐다.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올림픽 주제가는 영국의 뮤지컬 가수 세라 브라이트먼(48,女)과 중국의 국민가수 류환(劉歡,45)이 각각 영어와 중국어로‘You and Me'를 불렀다.특히 개막식의 마지막 순서인 성화 점화가 하이라이트였는데, 그동안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21개국과 중국 국내 등 13만7000km를 달려온 성화가 최종주자인 체조 스타 리닝(李寧,45)에 의해 점화대에서 불이 밝혀지는 순간 냐오차오 스타디움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 절정에 달했다.이날 지구촌을 하나의 꿈과 감동의 열기 속으로 몰아넣은 개막식에는 3만발의 불꽃이 터져 나와 대회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며, 예술 공연의 진행 순서가 하나씩 바뀔때마다 관중들은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며 열렬히 환호했다.13억 인민들의 꿈을 담아 7년간 준비한 끝에 펼친 대 역사드라마, 장이모우 감독의 화려한 행위예술이 선보인 개막식 광경은 중화 부흥을 알리는 지상최대의 ‘올림픽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민박회」일행들은 특히 인문사회, 문화, 언어학 부문 전공자들이 많아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첨단 IT기술, 현란한 색조의 조명예술과 입체적인 공간연출 기법 등에 접목시켜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개막식 공연을 꾸민데 대해 극도의 찬사를 보냈다.길이 70m짜리 전자 스크린 위에서 춤을 추면서 그린 그림이 하늘로 올라가는가 하면, 중국의 고대 복장과 춤을 통해 종이와 인쇄, 화약, 나침반 등 중국의 4대 발명품을 표현할때는 다들 기가 차다는 듯 숨을 죽이며 TV박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러다가 3000명의 예술단이 그려내는, 입체로 표현 된 한자들이 변환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어울릴 화(和)’자를 떠 올릴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이 “和”자는 공자께서 강조했던 ‘화위귀(和爲貴)’를 가리키는 글자이기도 하고, 후진타오 주석의 정치이념인 ‘화해(和諧)’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평화(平和)’를 상징하는 글자이기도 할 테다.“오늘밤 북경의 역사는 새로 쓰여진다. 중국은 이제 세계를 품는다.”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8월 8일자 조간신문 사설에 나온 글이다.중국은 개막식 공연을 통해 과연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하는가?그들이 품고 있는 비전은 도대체 무엇인가?잠자는 시자와 같았던 대륙의 혼을 깨우고, 13억 인구를 굴기(崛起, 떨쳐 일어남)의 도장으로 이끌어가는 기본 정신이 바로 ‘和’이었던가!200여년전,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중국?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 잠에서 깨면 귀찮아질 테니까”천하를 호령했던 ‘강한성당(强漢盛唐, 강한 한나라와 성세의 당나라)’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중국의 기대가 엿보인다.그들은 어쩌면‘다시 일어서는 중국의 모습’을 세계 앞에 펼쳐보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이것이 패권 추구를 뜻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잠자던 사자가 깨면 사자(중국)가 조련사(서구열강)를 물수도 있다. 사자가 조련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조련사는 알지만 사자는 정작 모른다. 그러나 사자가 그 사실을 알아버렸는데도 조련사가 예전처럼 사자를 길들이려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질문이 가능하다.이는 내가 묻는 질문이 아니다.10여년전 중국 신세대 지식인들이 탐독했던 초베스트셀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에서 내 뱉은 경고성 질문이다.나는 이 질문을 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차례 「민박회」 회원들에게 화두로 던져봤다.그들의 대답을 종합해보면, 중국은 결코 패권 국가로 발전하지는 않을것이란 기대가 있었다.북경올림픽 개막식에 담긴 기본이념은 한마디로 “和”를 뜻한다는게 중론이었다. 서영 박사는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중국이 개막식 공연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한 내용은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문화대국으로서의 위용을 보임으로서 대 내외적으로 새로운 중국 부흥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문화의 기본은 “和”에 있으며, 이것은 진시황 이후 2000년간 중국 역사를 이어온 맥이라고 설명했다.중국 현 지도부가 대외정책을 화평발전에 두고 있는것도 중국의 발전에 있어서 이 “和”의 윤리체제가 정립되지 못하면 중국은 또 한차례의 세계 냉전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렇게 되면 중국의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와 EU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전략이라고 답변했다.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이러한 의도를 세계인들로 하여금 아무런 의심없이, 왜곡됨이 없이 받아드릴 수 있도록 만들것인가?중앙민족대학에서 만족어를 전공했던 고와 박사가 힌트를 주었다. 그는 몽골족이지만 만족어를 전공했고 지금 중앙민족대학 중국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 언어연구소에서 만족어를 가르치고 있는 재원이다.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중국 55개 소수민족은 메이저 그룹인 한족과 더불어 대 가정 국가를 이루고 있는 주요 자원입니다. 중국 내 56개 민족의 화합이야말로 중국 체제의 키워드입니다. 중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 지구촌 사회에서 중국처럼 화합을 중시하는 나라는 없을것입니다. ‘和’자는 국제관계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가체제 유지를 위한 대내 정책의 핵심기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지만 만일 세계인들이 중국의 이와같은 화평정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국제관계의 분쟁과 시비를 해소하는 방책으로 활용한다면 지구촌 전체의 화합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나는 전신자 교수가 통역해 주는 내용을 차분히 마음에 새기면서 중국 소수민족 정책에 대한 소수민족 엘리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렇다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진화의 악순환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중국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의 나라인가? 내 마음속에 일말의 의문이 일어났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체제안에서 지역편차와 민족 성향의 다양성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화평(和平)정책을 기조로 삼는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었다.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만일 중국 지도부가 일방적인 국가권력으로 통합체제를 유지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권과 민족 단위의 자결 의식을 최대한 고양시키면서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자유주의’ 체제로 대 가정 국가를 통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가져봤다.「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Ⅰ. 민박회Ⅱ. 경희궁의 밤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Ⅴ. 흐름의 미학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34    Ⅱ. 경희궁의 밤 댓글:  조회:3467  추천:106  2008-09-25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Ⅱ. 경희궁의 밤   12시경 연길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이상열 사장(전 연길기독실업인회 회장)과 함께 “장사부 삼계탕”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숙소인 덕명(德銘)호텔로 갔다. 전신자 교수와 민박회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일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 후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풀었다.이번 캠프에는 모두 12명이 참석하였다. 그 중 2명은 일행의 자녀들이었으며, 부부조가 2팀(서영 교수 부부, 전신자 교수 부부)이었다. 우리 민박회 일행들은 전신자 교수 내외가 초청하는 저녁 만찬 시까지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타 지역에서 온 일행들이 모두 시내구경을 나갔고, 나는 방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그러나 내 성미에 어디 그냥 쉴 수가 있겠는가.곧 바로 백두산 가는 일정 외에 연길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만나볼 사람들의 명단을 짜고, 전화로 미리 스케줄을 잡아 나갔다.우선 오늘 오후에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할 분으로 최후택 교수(연변대)가 연락이 되었다. 30분이 지나지 않아 그가 호텔 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지난해에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을 집필할 때 조선족 이민사 관련 자료 및 통계자료를 수집하여 번역 해 주신 분이며, 또한 나중에 중문판 (제목: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을 낼 때 1차 기초 번역을 맡아주신 분으로 내게는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분이시다. 최후택 교수께서 오셔서 방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서울 회사의 이수정 비서로부터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회장님, 박영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동북아시대와 조선족」책자가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2008년 기초학문 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축하해요”라는 내용이었다.그 소식을 듣자 나는 갑자기 벅찬 감격을 느끼고 최후택 교수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참으로 공교롭게도, 책을 저술할 때 나의 파트너가 되어 자료수집과 번역일을 맡아 주셨던 장본인을 만나는 시간에 이런 기쁜 소식을 받게 되다니...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최 교수도 아이처럼 맑은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축하의 인사말을 전해 왔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에 박영사의 안종만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지금 심사중인데, 며칠 있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테니 기다려 보라는 전갈이었다. 나는 반신반의 했으나, 그 결과를 오늘 비서가 보내온 문자메세지로 확인한 것이다.나는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다.특히 오늘 연길에 와서 소수민족 학자들의 모임인 「민박회」 행사를 갖는 첫날에 이런 기쁜 소식을 듣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심정이었다.최 교수께서 돌아가고 난 다음 나는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눈을 감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갑자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르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동안 18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연변과기대 사역을 통하여 만나고 교제했던 많은 중국인들 특히, 조선족 지도자와 청년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졸저「동북아시대와 조선족」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을 써 놓은 게 기억난다.“1990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만 16년이 넘는 세월동안‘연변’땅을 드나들면서, 그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연변과학기술대학의 동역자들과 사랑하는 조선동족들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저자는 감히 이들을‘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선구자들’이라고 부른다.”이건 내 진심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조선족 사회를 이 시대의 독특한 창의적인 집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질과 문화적 특질을 실감있게 깨닫고 있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걸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그들은 한반도 분단을 뛰어넘어 동북아사회를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거듭나게 하는 일에 유용한 중간 매체역할을 할 수 있는 선구자적 집단이라고 믿어진다.참고로, 지난해 일본 구마모토市에서 열린 “ 제7회 환황해 경제·기술교류회의 ”에 갔을 때, 나는 한 분과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본적이 있었다. 1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그룹, 2가지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그룹, 그리고 3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그룹을 별도로 구별하여 자리 이동하도록 했더니 그때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1가지 언어 또는 2가지 언어 사용자 그룹으로 모였는데, 유독 3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은 모두 조선족 출신의 일본 유학생들과 취업인력들이었음이 밝혀졌다. 나는 그때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른다.그 많은 한국인들, 일본인들, 중국인들 가운데 3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두 조선족 출신이라니!이건 얼마나 대견스럽고 훌륭한 일인가!내가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을 통해서 깨닫게 된 역사의식은 양대 국가사이에 끼여있는 변경 소수민족의 이중문화 형성과 문화적 특질이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는 초국가적 탈(脫)중심화 현상의 용도로 유익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동북아 지역의 조선족 사회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이중문화 구조의 촉매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그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얻은 나의 최종 결론이었다. 가슴 벅찬 감격속에서 한참을 묵상기도하며 앉아있는데 누가 방문을 노크했다.얼굴에 번진 눈물을 닦고 방문을 열어보니 전신자 교수가 복도에 서 있었다.방에 들어오라고 해서, 3박 4일간의 프로그램 일정과 경비에 대해 다시한번 의논했다. 그런데 전 선생께서 자꾸만 내 표정을 살펴보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묻는다.나는 자초지종을 얘기 해 주었다.그도 너무나 기뻐하면서, 오늘 저녁 만찬에서 공식적으로 축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는 이런 일은 「민박회」를 위해서도 큰 경사라고 말 하면서 방을 나갔다.시내 나갔던 사람들이 다 돌아오자, 우리 일행들은 전신자 교수의 부군되시는 손춘일 교수의 자가용차와 택시 2대에 분승하여 저녁 만찬 장소인 「경희궁」으로 갔다.「경희궁」은 조선족 000사장이 경영하는 대표적인 조선족 한정식 집이었다.이번 「민박회」 모임에 참석한 소수민족들의 면모는 이렇다.몽골족 : 우런 박사(女, 내몽고사범대학 민속학 사회학원 교수),          고와 박사(女, 중앙민족대학 중국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 교수)         애리(고와 박사의 딸, 소학교 4학년),          진영충 박사(女, 내몽고민족대학 몽고학학원 교수)장족 : 기진옥 박사(男, 중앙민족대 민족학 사회학학원 교수)한족 : 서영 박사(男, 내몽고대학 예술학원 교수)다워얼족 : 우언퉈야(서영박사의 부인)위구르족 : 장궈웬 박사 (女, 북경 우전대학 민족교육학원 교수)           완호탠(장궈웬 박사의 아들, 중학교 3학년)조선족 : 전신자 박사(女, 연변대 사회학과 교수)         손춘일 박사(男, 연변대 민족연구원 원장, 전신자 교수의 부군)한국인 : 이승률 박사(男,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도합 일곱 족속이 모였으며, 아이들까지 합쳐 12명이 이번 모임의 일행들이었다.경희궁 식당에 들어서자 타민족 출신 회원들은 식당 내부 인테리어와 한식 가구, 비품, 방석, 의복 등의 디자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었다. 특히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던 서영 박사가 가장 깊이 매료당한 것 같았다.‘경희궁의 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우리 일행들의 요청에 따라 순서대로 나오는 한정식의 재료와 만드는 조리법등을 종업원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술은 맥주와 고량주 두 가지를 각자가 편한대로 마시기로 했다.전신자 교수가 좌중의 대화와 놀이를 주도해 나갔다.그는 상이 다 차려지자 술잔을 채운다음 이렇게 인사했다.“오늘 이 민박회 자리는, 이 회장님께서 뒷받침해 주시지 않으셨으면 할 수 없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축하 할 일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저술하신 동북아시대와 조선족 책이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사회과학부문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같이 이 회장님을 위해 축하합시다. 건배”각자 돌아가면서 건배사와 함께 축하 인사를 해 주었고, 어떤이는 축하 노래와 함께 춤도 춰 주었다.특히 몽골족 고와 박사와 그의 딸 애리가 서로 마주보며 추는 몽골 민족춤은 일품이었다. 그러다가 전신자 교수가 다시 정색을 하며 일어나서 연설을 하듯 진지하게 말했다.“사실은 오늘 이 회장님께서는 이 자리에 오시지 못할 뻔 했습니다. 내일 열리는 북경 올림픽의 개막식에 참석할 수 있는 입장권 두 장이 당첨됐는데, 그걸 민박회 모임에 참석하시기 위해 중국사회과학원에 있는 이문 박사에게 선물로 보내드리고, 자신은 오늘 여기에 오신 겁니다. 우리 모두 이 회장님의 사랑과 우정에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건배합시다. 건배”일행들은 전 선생의 이 말에 크게 감동이 되었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 졌다. 그리고는 연신 또 내게 와서 잔을 채우며 감사한 뜻을 표했다.특히 서영 박사가 일행을 대표하여 신의를 지키는 아름다운 정신이라는 내용의 인사말을 하면서 건배 제창이 있었다.그리고는 경극 '적벽가'의 한 소절을 불러 주었다. 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화답했다.“나는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면서, 마음을 합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대는 바로 공존과 상생의 시대입니다. 이웃과 이웃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이 사랑의 능력이야말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될겁니다. 민박회는 이와같은 일에 인생을 나누는 동지들이 될겁니다. 우리들의 사랑과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건배!”나는 그날 밤 크게 대취하였다.너무 기분이 좋았고, 또 의미있는 모임인지라 그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어디 그게 나뿐만이었겠는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한껏 부풀어 고무풍선처럼 충만해 있었다.고아 박사의 딸 애리가 연신 자리를 돌아다니며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귀여웠다. 또 같이 따라온 장궈웬 박사의 아들 완호탠은 그때그때마다 스냅을 찍는 사진사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그런데 내가 그날 크게 실수(?)를 한 게 있다. 술과 식사가 어느정도 진행되자 분위기가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가는것 같아서 남아있는 맥주와 고량주를 활용하여 폭탄주를 만들어 한잔씩 차례대로 돌렸다.타 민족인 그들은 숙맥이어서 그런지 여태껏 폭탄주를 한번도 마셔본적도 없고, 얘기 들어본바도 없다고 했다.나는 시범을 보여줬다.맥주 글라스에 7할정도 술을 담은 후 고량주를 채운 작은 잔을 퐁당 빠뜨리는 방법으로 폭탄주를 제조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샷으로 마신 후 머리위에서 딸랑 딸랑 소리내며 잔을 다 비웠다는 확인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런 후 내가 자리에 앉는 동시에 옆사람이(미리 제조해 둔 잔을 들고)일어나서 내가 했던 것처럼 잔을 비우고 딸랑딸랑 소리까지 낸 뒤 다시 자기 자리에 앉도록 가르쳤다. 소위 말하는 파도타기를 가르친것이다. 이 “ 파도타기 폭탄주”를 세바퀴정도 돌리자 나를 제외한 9명의 어른들이 모두 다 혼비백산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한 모습이 되었다. 그들은 맛이 어떠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독하면서 맛있고, 재미있다고 대답했다.“한국이 짧은 기간안에 세계에서 12위권 경제대국이 되고, 또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게 바로 이 폭탄주 위력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폭탄주야 말로 세상을 이기는 비밀병기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좌중이 떠나갈 듯 웃었다.경희궁의 밤은 이렇게 위대한 사랑의 핵폭탄(?)을 터뜨리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흥겹게 깊어갔다.그것도 일곱 족속들이 모인 사뭇 이질적인 자리일 수 있었지만 우리들은 결국 하나가 되었다. 하나됨의 역사의식은 이렇게 소통하는 사랑의 능력으로 꽃피우는 우정의 한마당,“파도타기 폭탄주”와 같은 아름다운 헌신의 연합정신이 아니겠는가!아, 이 귀하고 감칠맛 나는 화합주를 한껏 마시고 싶어진다.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Ⅰ. 민박회Ⅱ. 경희궁의 밤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Ⅴ. 흐름의 미학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33    Ⅰ. 민박회 댓글:  조회:2631  추천:77  2008-09-21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Ⅰ. 민박회   북경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1990년 10월 초, 북경에서 우연한 기회에 한분의 크리스챤 지도자(김진경 총장님)을 만나 뵙고 난 이후 그의 교육 이념에 감동되어 연변과학기술 대학 사역에 동참 해 온지 올해로 만 18년에 이른다.내 인생의 후반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사역 기간을 통하여 중국 인민과 조선족 사회를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된 것을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값지고 행복한 일로 생각한다.그런 가운데 김 총장님의 권면과 집사람의 내조에 힘입어 북경에 있는 중앙민족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한것이 2003년 9월이었다.나는 기업인이었고 더군다나 5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었지만, 오랜 기간동안 연변과기대를 통해서 면학 분위기를 익히고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주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으로 배움의 길을 택하게 된 셈이다.중앙민족대학 사회학학원은 민족학계와 사회학계로 분류된다.나는 민족학계 부문을 전공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과 변경지역 이중문화 형성 및 변천과정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 가운데 특히 중국 동북지역에 입주한 한민족 이민들의 토지 개척사로부터 항일 독립투쟁 및 중국 공민(조선족)으로의 전환, 1978년 개혁개방 후 국내 대도시 진출 및 해외 노무 진출에 따른 조선족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붕괴현상에 이르는 일련의 사회문화 변천과정을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동북아 정세의 시대 변화에 따라 단련되고 축적된 조선족 사회의 문화적 특질을 오늘날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적응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열린 민족주의 차원에서의 접근을 연구 테마로 삼게 된 것이다.그 결과로 「동북아 국제협력시대 조선족사회문화기능 연구」 라는 제목의 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졸업 1년 후인 2007년 가을에,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이라는 단행본을 한국의 학술전문출판사인 「박영사」에서 출판하게 되었다.또한 이 책이 금년 3월에 중국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의 감수를 거쳐 세계지식출판사에서  중문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나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족 사회를 위해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다.나는 감히 이 저서를 내 인생을 통하여 얻은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열매라고 여기며, 책이 출판되기까지 도와주고 협조해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런 가운데 각별히 잊지 못할 특수집단(?)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민박회」다. 「민박회」란 중앙민족대학 박사학위 동학회를 줄여서 쓰는 말이다. 2006년도 졸업 민족학계 동기생들이 약 15명 정도 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소수민족 출신들이며, 소수민족 언어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일부 한족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지방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교수 및 연구 활동을 해온 삼십대 후반에서 오십대까지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중국 학계에도 해외 유학파들의 귀국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그동안 석사 자격만 갖고도 교수 생활을 해왔던 인력들이 교수 직책을 계속 유지하려면 박사 학위를 받아야한다는 규정이 생겨서 어렵사리 파견근무 형태로 북경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된 사람들이다.나는 이들과의 만남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나는 항상 누구를 만나던 상대방(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롭고 가치있는, 창의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을 좋아했다.나는 학위 중에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던 소수민족 엘리트들과의 만남을 무위로 돌리는게 너무나 아깝게 생각되어 졸업시즌이 가까워 졌을때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었던 동기생인 전신자 교수께 한 가지 안을 건의했다. 즉, 2006년 민족학계 졸업동기생 모임을 조직하여 1년에 한번씩 이라도 여름방학 기간을 활용하여 소수민족들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을 순회여행하면서 토론회도 갖고 서로의 연구실적을 나누어 갖는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제안은 곧 전원일치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내가 연장자이고 또 제안자라는 이유로 「민박회」회장으로 추대되었다.내몽고 대학 예술학원 교수인 서영(徐英)박사가 부회장이 되었고, 연변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있는 전신자(全信子) 박사가 총무로 봉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졸업생 중 친밀도가 높고 연락이 쉽게 잘 되는 12명 정도가 「민박회」회원으로 참여했다.이런 결과로 지난해 2007년 7월말 여름방학 시즌에 내몽고 자치구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에서 제1회 「민박회」 세미나를 가진바가 있고, 올해는 8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연변조선족 자치주 연길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그래서 나는 지난 8월 7일. 평소에는 연변과기대 일로 자주 다니는 길이었지만 이 날은 특별히 「민박회」모임을 위하여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연길로 가게 되었다.그리고 이날부터 시작된 3박 4일간의 여정을 통하여 세계역사의 새로운 흐름을 깨닫는, 역사의식의 전환과 변곡점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Ⅰ. 민박회Ⅱ. 경희궁의 밤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Ⅴ. 흐름의 미학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32    두만강유역개발사업과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댓글:  조회:4858  추천:80  2008-09-02
『두만강유역개발사업과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1. 두만강유역개발사업의 목적과 현황 1) 목적 두만강 하류 지역의 개발은 1990년 초, 중국의 훈춘 개발계획이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개발계획이 발표되고, 그러한 개발사업이 UNDP의 동북아 지역사업 중 최우선 과제로 지정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두만강유역 개발계획(TRADP)은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등 5개국의 참여하에 UNDP의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중단기적으로는 이 지역의 교역과 투자를 촉진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교통 및 물류 수송망을 구축하여 물류 ․관광․제조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어 왔다. 2) 현황 초기 본 사업은 두만강 접경국가들 간의 토지출자와 공동관리를 전제로 한 중심도시를 건설하고 각국의 자원과 자본 및 기술력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무역과 물류중심지로서의 변화를 꾀하였으나 1995년 말을 기점으로 중심도시 건설계획은 철회되고 그 대신 북한(나진․선봉지역), 중국(훈춘지역), 러시아(블라디보스톡․나훗카 지역)등 접경 3국이 독자적으로 개발되는 경제특구들 간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나 현재 두만강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특구들 간의 연계사업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사회 간접자본의 부족이나 다자간 협력체제의 부정적 속성, 국제협력에 관한 경험부족, 접경 국가들 간의 법적, 제도적 장치의 미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 동북아 경제협력체 성립의 필요성과 조건 1) 필요성 이와 같이 동북아 접경국가 간 에너지, 물류, 철도 및 환경 등 구체적 경제협력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문에서 국가 간 협력의 제도화 및 실질적 성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그러나 지역주의 블록(Block)화가 점점 더 가속되어가고 있는 21세기 현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동북아 지역에서의 국제협력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그리고 이와같은 협력사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각국의 막대한 예산 및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뚜렷한 목표가 요구된다. 또한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역내 국가 간에 이를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확실한 논거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구상부터 완성단계까지 구체적 협력사업에 대해 국가 간에 협의하고 이견을 조율하며 유사시 공동대처 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매커니즘의 구조적 실체를 필자는 동북아경제협력체로 상정해 보고자 한다.특히 장기간 부진상태에 머물러 있는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포괄적인 대안으로 접경국가간 경제특구형 자유무역협정(FTA)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경제협력체 발전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조건 그동안 동북아 역내 국가간의 경제체제의 차이, 경제발전단계의 격차, 과거사문제의 잔재, 영토분쟁 및 중․일간 경쟁관계 등의 장애요인으로 인해 동북아지역에서의 경제협력은 FTA와 같은 공식적 경제통합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가운데 일반적인 기능적 통합의 진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그러나 지역주의가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동북아지역만 예외일수는 없을 것이다.2007년 7월 현재 GATT, WTO에 보고되어 발효 중인 지역무역협정수가 205건에 달했고, 앞으로도 그 숫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또한 EU는 회원국 수가 27개국으로 증가하였고 미주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전 미주 국가 중  34개국이 미주자유무역지역(FTAA)을 추진 중이다.이와같이 머지않아 대륙 차원의 양대 무역 블록(Block)의 출현이 예견되는 가운데, 세계인구의 1/4, 세계경제의 1/5를 점유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은 세계주요 경제 지역중 지역 차원의 무역협정이 없는 유일한 지역으로 남아있다.이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동북아 역내 국가간에 지속가능한 다자무역협정 체제를 이끌어 낼만한 지역을 살펴보면 중국, 러시아, 한반도가 접경지역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만강유역 개발계획지가 단연코 가장 유력한 후보지임을 알 수 있다.따라서 필자는 오늘 열리고 있는 UNDP 연길국제회의를 통하여 장기간 침체되어 왔던 TRADP를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방안으로 ‘접경국가간 경제특구형 자유무역협정(FTA)’을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의 법적, 제도적 기본 장치로 제안하고자 한다. 3.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을 위한 동북아경제협력체 기초방안 1)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의 핵심과제 2020년은 APEC 보고르 선언의 목표연도이며, 현재 모색되고 있는 동북아 및 동아시아 FTA의 완성 연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또한 현 시점에서 두만강유역개발사업을 위한 장기목표의 시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북아경제협력체는 유럽경제공동체(EU)와는 확연히 다르고, 2020년 이전에 동북아 국가들이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기구에 주권의 일부를 이양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외관세를 단일화하는 관세동맹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따라서 2020년을 목표로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을 핵심으로 하는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을 위한‘접경국가간 경제특구형 자유무역협정(FTA)’은 우선적으로 관세, 비관세 폐지를 통한 대다수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부문의 자유화, 무역․투자의 원활화 및 개발 협력, 기술협력을 포함한 상호호혜주의 시장경제협력에 치중해야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개발 방안을 기초로 하여 접경국가간 두만강유역 자유무역지대 형성을 추진 할 수 있다면 이는 곧 동북아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결성되는 최초의 자유무역 국제협력의 제도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이것이 또한 UNDP가 지원하는 TRADP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켜나가는 창의적인 대안이 되리라고 믿는다. 2)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의 새로운 이정표 1992년 두만강유역개발을 위해 UNDP 지원하에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이 참여한 TRADP가 출범한지 3년 후인 1995년 12월에 「5개국 위원회 협정」을 체결하였다.그러나 이 위원회(Consultative Commission)는 2005년 말로 특별한 성과없이 10년간의 사업기간을 만료했다.그 후 2005년 9월 제8차 회의 시 동 협정을 10년간 연장하고 TRADP를 GTI(Greater Tumen Initative)체제로  전환키로 합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그리고 GTI 제9차 5개국 위원회에서 선정한 「GTI신규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교통(①동북아 페리 루트 국경 인프라 ②자루비노항 현대화 ③몽골-중국간 철도 타당성 평가 ④훈춘-마하리노 철도운행  재개 ⑤중국-북한 국경의 중국 도로·항만 활용), 에너지(⑥GTI 에너지 역량 구축), 관광(⑦GTI 관광산업 역량 구축), 투자(⑧TRADP 회원국 관료 시장경제교육), 환경(⑨월경성 환경영향 평가 및 환경기준 표준화, ⑩두만강 수자원 보호 타당성 평가) 등이다.이와 같은 5개 부문 10개 항목의 신규 프로젝트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TRADP에 참여하는 5개 국가들이 접경 3국인 중국·러시아·북한(※남북한 경제공동체 성립을 전제로 함)을 중심으로 경제특구형 자유무역지대를 우선적으로 성사시키도록 협력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이 5개국 위원회를 확대하여 그동안 북한 핵문제 타결을 위해 추진되어 왔던 6자회담 당사국들을 복합적으로 참여시키는 ‘동북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기구’(중․러․남․북한, 몽골 및 일본․미국  7개국)를  발족하여 명실공히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동북아 역내 이해 당사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창의적인 국제자유무역지대를 결성하게 된다면, 이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장애요인으로 침체일로에 빠져 있었던 TRADP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는 돌파구를 마련함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발전적 원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을 실현하기 위한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 동북진흥전략’이라는 거시적 구상아래 두만강유역 국제협력 개발계획을 추진해온 중국으로 하여금 새로운 국가 균형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도록 만들 것이다.왜냐면, 중국 중앙정부와 동북 3성의 지방정부는 그동안 동북지역 개발을 위한 대외 개방의 확대, 주변 국가와의 경제협력 강화 및 변경무역의 발전을 목표로 두만강유역의 교통․물류․유통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기 때문이다. 즉, ‘도로․항만․구역 일체화’프로젝트를 통해 동북 3성과 북한을 한데 묶는 개발전략을 추진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필자는 이런 모든 정황들을 합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장기 개발계획으로 두만강 하류지역 일대를‘두만강유역 국제환경생태공원도시’로 기획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과제로 등장한‘기후변화협약’의 상징적인 국제협력 프로젝트로 추진 할 것을 제안한다.최근 발표된 북․러 국경 재획정 협상(동아일보 2008.8.9 기사참조)에 의하면 중국이 동해 통행권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이 일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따라서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두만강 하류 신항만 건설과 함께 풍력 및 태양광을 이용한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스템을 도입하고, 또한 접경국가 국민들의 자유왕래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들이 누구나 제한없이 출입하고 소통 할 수 있는 ‘Free Trade Green Zone’을 조성한다면 이는 GTI 제 9차 5개국위원회에서 선정한 「GTI 신규 프로젝트」를 연합하는, 교통․에너지․관광․ 투자․환경사업을 총체적으로 선도하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의 새로운 이정표가 이 지역 발전에 신성장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마침내 동북아경제협력체 결성을 이루는 창의적인 대안이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이승률(李承律) 박사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주해:1) 이학규, 「동북아경제권과 두만강유역개발」, 산업연구원 중국반장, 1992년2) 백성호,「UNDP의 두만강유역 개발사업」, (주)동춘항운 대표이사, 2008년3) 이창재,「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2007년4)上同5) 이창재,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2007년6)「GTI 신규프로젝트」재정경제부 대변인, 2006년7) 이승률,「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 연변과기대 부총장, 세계지식출판사, 2008년8) 원동욱,「북·중간 두만강지역 국제협력개발사업의 현황과 전망」,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2007년
31    Ⅹ. 미래를 기다리며 댓글:  조회:2827  추천:121  2008-07-22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Ⅹ. 미래를 기다리며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나는 장시간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둘이서 함께 손을 잡으면 따뜻한 온기와 함께 사랑의 기운이 전달되는 감을 느끼는데, 이 느낌이 사람을 매우 기분 좋게 해준다.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온 뒤에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10분경이었다. 항공편 안내판을 살펴 보았다. 미국 아틀렌타에서 들어오는 KAL비행기가 예정보다 50분가량 일찍 도착한다는 사인이 뜨고 있었다. 그렇다면 4시 30분경에 도착할 예정이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졌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손자를 만나본다는 기대와 감격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출국장 옆 대기석에 한참을 앉아 있는데, 둘째 아들(동헌)의 장인, 장모되시는 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전갈을 받고 서둘러서 오신 것이다. 오늘 드디어 둘째 며느리(김수현)가 세 살된 손자(준호)를 데리고 오는 날이다. 2년전에 아이가 첫 돌 되기전에 오하이오 컬럼버스에 있는 아들집을 방문했을때 잠시 안아보고는 그동안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손자다. 둘째 아들은 포항공대(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5년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유학을 가서 나노 물리학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며느리는 한국에서 의상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에 가서 패션디자인 학부를 다시 공부한 후 지금 아베크롬비(ABERCROMBIE)라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 비자 갱신을 하기위해 한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아들과 며느리의 휴가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며느리가 먼저 아이를 데리고 왔다가 열흘 후에 혼자 돌아가면, 아들은 5월초에 와서 2주정도 있다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갈 계획이다. 내겐 2남 1녀의 자식들이 있다.큰 아들(동엽)은 연세대 의대(신경외과)를 졸업했으며, 군복무를 마친 다음 금년 3월부터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펠로우로 근무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서 벌써 1남(준혁),1녀(지민)를 두고 있다. 큰 며느리(강민정)는 이전에 외국계 증권회사 여러 곳(쟈뎅 플레밍, 도이치 방크, 도쿄 미쓰비씨)에서 어널리스트로 일 하다가 지금은 셋째 아이를 가져 집에서 쉬고 있다. 막내 여식(현주)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갔다가 코넬공대에서 토목(Civil Engineering)을, 석사과정에서 CM(Construction Management)을 전공했으며 , 지난해 연말 귀국하여 지금 SK건설에 입사하여 근무 중이다. 이 2남 1녀 자식들을 생각하면 늘 고맙게 여겨진다. 자녀들이 모두 착실하고 건전하며 밝고 명랑하게 잘 자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또 일찍부터 교회를 나가 믿음도 좋아서 나는 이들을 내 ‘믿음의 선배’로 깍듯이 섬기고 있다. 특히 둘째 아들(동헌)의 전공분야는 나노보다 한 단계 더 미시적인 마이너스 10승 단위인 엥스트롬(Angstrom)이다. 최근 그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의 기본성질 가운데 자기력을 일으키는 Spin과 Spin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 논문(“Seeing and Manipulating Spin-Spin Interactions at the Single Atomic Level ")을 발표하여 오하이오 주립대 컴패티션에서 2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제 그의 아들이자 나의 둘째 손자인 준호가 드디어 서울에 오는 것이다!집에서 아이와 함께 스킨십을 한답시고 잠 잘때도 웃통을 벗고 아이를 안고 자는 둘째 아들이다. 자기 자식을 키워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했는데, 나는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내 심정을 알아주기보다 그들의 자식을 잘 키워주는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마침 우리가 중국에서 돌아온 비행기 시간과 미국에서 며느리가 들어오는 비행기의 도착시간이 거의 1시간 반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않아, 우리 내외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둘째 며느리와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을 만났을 때, 눈물이 나도록 반갑고 고마운 그 심정은 이제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손자는 나의 미래다. 내가 손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미래는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수년전에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께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美EIA상을 탄 다음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메아리쳐 온다.“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그렇다. 손자는 나에게 있어서 ‘새롭게 창조하는 미래상’을 준비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미래를 꿈꾸며 살아왔고, 또한 미래를 나에게로 끌어당기며 일하려고 노력해왔다. 언젠가 나의 손자들은 나의 꿈과 미래를 창조적으로 실현해 줄 것을 믿는다. 3박 4일간의 북경 여행을 돌아보며 쓴 이글의 내용이 앞으로 어떻게 진전되고 실현될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손자를 기다리듯 나의 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꿈꾸며 기다릴 것이다. 새롭게 창조되는 미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꿈꾸며 기다릴 것이다.“오, 원더풀 데이”3박 4일간 여정의 마지막 시간에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양 손자를 가슴에 안고 속으로 터뜨린 일성이 바로 이 말이다. 그 외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되어 뜨거운 눈물을 주룩 흘렸다. 이 눈물은 오염된 공기를 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북경의 인공비가 아니라, 존재를 향한 나의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의 눈물이었다.(끝)
30    Ⅸ. 창조적인 대안 댓글:  조회:2996  추천:100  2008-07-18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Ⅸ. 창조적인 대안간밤에 비가 그치는가 했더니 북경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보슬비가 내렸다. 만개했던 목련의 하얀 잎들이 땅에 떨어져 빗물에 젖어있는 모습이, 마치 금새 사라진 영화(榮華)의 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에 서글픔이 묻어났다. 전신자 교수와 우리 내외는 조찬을 마친 후 서둘러서 체크아웃을 했다.얼마있지 않아 연변과기대 북경 주재원인 박혜명 비서가 승용차를 갖고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호텔로 찾아왔다. 전 교수는 오늘 연길로 갔다가 일주일 후 다시 또 북경에 나와야 된다고 했다. 북경대, 한국 극동문제연구소, 조선사회과학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세미나 준비를 돕기 위해 평양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와같이 국제세미나를 기획하고 조정하는 중개 역할을 벌써 10년이 넘도록 진행해 오고있다. “ 전 선생이 없으면 아예 회의가 성립되지 않겠구먼” 특히 중국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할 경우, 거의 대부분의 준비 작업을 조선족 엘리트들이 주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여성인력으로서는 전신자 교수가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평가 받고 있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전 교수를 차에서 내려주고 우리들은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북경대에서 4환로를 거쳐 서우두(首都)공항으로 접속되는 도시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도로 위에 횡으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제한속도 표지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주행속도를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차선에 따라 구별해 놓은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편도 3차선인 공항로를, 1차선 주행속도 120-90㎞, 2차선 100-80㎞, 3차선 100-60㎞로 구별해 놓은 것이다. 중국인들의 실용정신과 유연성이 크게 돋보이는 교통규칙이었다. 사소한 일 같아 보이지만,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한국의 고속도로에도 한번 적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올림픽을 잘 치르기 위해 여러면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박 비서가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온 비가 사실은 인공 비였다고 알려주었다. 황사가 심할때나 대기오염치가 아주 높을때는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가끔 강제 강우를 실시한다고 했다. 나는 최근에, 올림픽 출전이 결정된 외국 선수들이 해외전지 훈련장소로 개최지인 중국을 택하지 않고 한국 제주도에 많이 와서 연습하는 이유가 바로 공기 청정도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어서 그 얘기가 실감나게 들렸다. 박 비서는 날씨가 덥고 비가 올지도 모르는 8월에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 중국정부의 처사에 대해 매우 못 마땅한 심경을 토로했다.“북경 날씨가 봄은 짧고 가을이 긴게 특징이예요. 9월 중순부터 10월의 북경 날씨는 하늘도 청명하고 공기가 아주 좋아요. 기온도 덥지 않고, 그땐 비도 거의 안와요. 1990년 북경 아시아게임도 10월초에 했었는데 10월 8일이나 또는 중국 국가 성립일인 10월1일 같은 날 개막식을 하면 오죽 좋겠어요?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에 개막식을 한다고 하니, 중국 사람들이 아무리 8자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싶어요.”8자의 중국식 발음이 ‘빠’로 발성되는데, 이 말은 ‘ (대박이)터진다’를 뜻하는  発(發)와 같은 발음으로 들린다. 그래서 8자는 곧 부(富)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어, 최근 중국 사람들이 8자가 많이 들어가는 차량 번호와 핸드폰 번호를 구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물질만능주의와 주술적인 미신행위가 합쳐진 천민자본주의 형태의 사회풍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와같은 풍조를 민간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부당국에서 조차 용인하고 조장하는 듯한 분위기여서, 중국은 문자 그대로 용이 지배하는 미신대국인가 싶을 정도이다.나는 중국이란 나라가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에 거의 다 왔을 때 전신자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조금 전에 이문 박사의 연락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사회” 출판발행죄담회가 국가기관에 알려지면서 ‘정협보(전국정치협상회의 관보)’에서 특별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는 소식이다. 나는 속으로“내가 뭐 특별난 사람도 아닌데...”하면서도 웬지 기분이 좋아졌다.사람이 남으로부터 인정 받는다는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중국에 있어서 “전국정치협상회의”는 중국을 중국답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최고도의 정치기술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중국 주요기관의 언론매체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점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때 얼핏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단어가 바로‘협상’이란 단어였다.“협상이란 무엇인가?”나는‘협상’이란 용어를 무척 중시한다. 특히 5년전에 「Win-Win Paradigm」이란 책을 발간한 이후 가장 중요시 해왔던 전문 용어가 바로 ‘협상’이었다. (최근에 들어와 내가 줄 곧 강조하고 있는) 상생과 협동과 융합을 지향하는 통합윤리 시대에 즈음하여‘협상’이라는 용어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Key Word가 되고 있다. 표현이 좀 지날칠지 모르지만,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를 빼 놓고는) 이 세상만사가 다‘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요즘 세상은‘협상’의 성공여부가 시장경제에서의 승패를 가늠하는 지렛대로 평가되고 있다. 모임에 가서 가끔 농담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이 세상에서 타협이 안 되는 두 부류가 있다. 그건 누구일까요?”다들 이러쿵저러쿵 대답을 늘어놓지만 맞추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나는 천연스럽게 씩 웃고는 이렇게 대답한다.“하나는 테러집단이고, 다른 한 부류는 교수들이지요.”사람들이 왁자지껄 웃는다. 사실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테러단체와 교수사회는 독선적이고 자기중심논리에 강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란 나라는 자고로 이 지구촌 사회에서‘협상’을 가장 잘해온 국가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것이 정복과 지배논리를 위한‘협상’이란점이 오늘날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상생논리의 협상론과 그 개념이 다를뿐이다. 아무튼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同化시키는 탁월한 협상의 능력을 갖춘 민족이 바로 중화민족인 것이다. .... ...... ...양쪽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창의적인 대안(creative option)’이 아니겠는가. 좋은 협상가란 상대의 요구(position)가 아닌 욕구(interest)에 초점을 맞춘 후 나와 상대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께서 좋은 협상가가 되어서 세계를 그들의 품안에 끌어안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평화대국의 지도자들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나는 비로소 며칠 전 서우두(首都)공항의 제 3터미널에 첫발을 딛고 북경에 입경했을 때 느꼈던, 중국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복합된, 자존심을 긁는 묘한 굴욕감 같은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마음에 차 올랐다. 비로소 중국을 대응하고 경쟁할만한 용기와 지략이 생겨났다. 그것은 결국 중국과 한국의 욕구(interest)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상생논리의 협상 즉, ‘창의적인 대안’을 찾아내서 그것을 선제공격하듯 과감하게 제안하고 베팅(betting)하는 ‘우정있는 설복의 능력’임을 깨닫게 되었다. 제 3터미널 신청사에 도착한 후 박혜명 비서를 돌려보내고 나서 우리 내외는 여유있게 출국 수속을 밟았다.그러고나서 옷가게에 들려 손자들(준혁, 준호)과 손녀(지민)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세 아이에게 똑같은 디자인의 2008년 북경올림픽 휘장과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구입했다. 아이들의 옷을 고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북경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는 중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 발전을 위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 일은 21세기 세계역사를 ‘삼족정립론’의 기초위에서 새롭게 구성하는 대 서사시의 서막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꿈꾸고 희망한다.”* 본문은 편집자의 부득이한 삭제편집으로 상하문맥이 통하지 않는부분이 생겨 해독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필자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관리자
29    Ⅷ. 함께하는 정신 댓글:  조회:2885  추천:100  2008-07-12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Ⅷ. 함께하는 정신만찬을 끝낸 후 나는 가까운 지인 몇 분들을 모시고 勺園호텔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2차 모임(뒷풀이)을 가졌다. 송성유 교수(북경대), 황유복 교수(중앙민족대), 전신자 교수(연변대), 미국에서 온 김유경 사장, 아내 박재숙, 나 그리고 ‘中央人民广播电台(CNR:China National Radio)'의 이영실 기자가 동행했다.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셨던 황유복 교수께서 CNR 인터뷰를 하도록 배려해 주셨다. 커피숍이 시끄러워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자가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기자는 우선 내가 어떻게해서 연변과기대 설립과 운영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만 17년이 넘도록 학교 사역에 종사해 오셨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인터뷰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김진경 총장(연변과기대)께서 책을 추천하면서 쓴 글의 내용을 요약해 줌으로서 그 답변으로 삼았다. (* 참고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추천사’전문을 게재한다.)『 내가 이승률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북경 아시안게임 직전인 1990년 10월 초순이었다. 당시 나는 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에 중국 젊은이들을 위한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던 때였다. 국가지도자의 아들을 만나 대학 설립에 필요한 조언을 구하고자 갔던 자리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조경·토목 및 골프장 건설사업을 주로 해온 기업인으로, 얼마 있지 않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질 것을 알고 산둥성 칭다오에 국제골프장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왔던 참이었다. 약속이 중첩된 것을 알자 그는 내게 먼저 대화하도록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나는 국가지도자(楊尙昆)의 아들에게 앞으로 중국이 발전하려면 과학기술 부문에 주력해야 될 것이며 국제화교육을 통해 인재를 배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대학을 세우려고 하니 당신이 좀 나서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승률회장은 나의 이런 말을 옆에서 경청하면서 내심 무엇인가 크게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다. 회의가 끝나고 헤어질 무렵에 그는 내게 다가와서, 추진하고 계시는 일이 너무 귀하다고 격려하면서 서울에 나가게 되면 꼭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말을 단순한 인사말 정도로 듣고 잊어버렸으나, 그 후 열흘 쯤 지나 내가 서울 사무실(연변과기대 후원회)에 볼일이 있어 갔을 때, 그는 나를 다시 찾아와 대학설립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 후 그는 중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오직 한마음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에 필요한 인재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교육 사업에 투신하여 지금까지 만 16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와 더불어 함께 일하고 있다.그는 내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때 김 총장님과의 만남이 제 인생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자라나는 중국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총장님과 교수님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것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고귀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저는, 섬김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면서 한걸음씩 정진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보람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나날이 오늘의 저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부족한 사람을 총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늦은 나이이지만 중국에서 학위를 하게 된 것도 다 이와 같은 섭리의 결과가 아닐까요? 민족을 사랑하고, 연변과기대를 섬기고, 지역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도와보겠다고 애쓴 노력과 신념이 오늘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준 힘이었다고 믿습니다.”그렇다. 그는 참으로 순수하고 강인한 심령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개척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성품과 가치관이 없었다면, 오늘 어떻게 이와 같은 저작이 가능했겠는가? 나는 실로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코자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박사학위 논문을 보강하여 완성도가 높은 전문서적으로 출간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상스럽다. 그리고 조선족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경륜을 갖고 한·중 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라는 큰 틀을 통해서 조선족들이 국제사회에 나가 실력 있는 중개자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현황을 분석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제시한 점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이 책은 본교의 대외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산학협력과 대학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가운데, 바쁜 시간의 틈을 내어 오랫동안 성실히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집필된 저서로서 그의 노력과 결실이 더욱 값지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올해 개교 1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학교에 주어진 귀한 영예이며, 나아가 동북아 국제협력의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많은 중국 지식인들과 한국의 전문분야 관계자들에게 주어지는 큰 선물이 되리라고 믿는다.이승률부총장과 함께 해온 지난 16년간의 시간은 한마디로 선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믿음과 우정의 결합을 통해 드러나는 참된 소망의 세월이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길을 계속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다시한번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의 출간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강호제현에 추천하는 바이다.』이영실 기자는 또 질문했다. “이 박사님께서는 조선족사회를 중시하고 또 매우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계시는데, 저도 조선족의 일원이지만 과연 조선족들이 그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나는 그를 한참 빤히 쳐다보다가 잉크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는 신간서적(“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을 뒤적거려 가면서, 조선족 사회의 형성과 조선족 문화의 특성, 개혁 개방 후 한중 경제협력과 주변국가 진출에 대한 현황, 그리고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에 즈음하는 조선족 사회의 문화기능과 미래 진로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 등을 제시하면서 조선족 사회가 갖고 있는 복합문화적 자질과 특성이 이 시대가 추구하고 있는 통합윤리를 위해 얼마나 긴요하고 적합한 기능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족 사회의 잠재력을 교육과 인재양성을 통해‘집단지성’으로 승화시켜나간다면 그 누구보다 훌륭한‘21세기 동북아 맨’이 될 수 있다고 힘써 답변해 주었다. 이 기자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과연 누가 중국 안에서 소수민족인 자신들을 위해 이런 비젼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하는 감동의 빛이 스쳐지나는 것을 보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이 기자는 조선족 젊은 세대를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을 한가지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나는 「희망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동북아의 미래는 동북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중·일 삼국이 새로운 공동체적 대안을 갖고 서로 벽을 허물고 상생, 협동, 융합의 신문명 시대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그 흡인력이 아세안을 이끌고(3+Asian),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동을 규합하는 Fusion Power가 되어서 마침내 ‘아시아 합중국(*중앙일보 2007년 12월 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해외칼럼“아시아 합중국을 꿈꾸며”참조)’에까지 이르는 새로운 역사창조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조선족 청년들은 이와같은 희망의 역사관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중·일 삼국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매체집단이 되어 자신들의 선조가 처해왔던 변경 소수민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광활한 새 시대의 「블루 오션」으로 나아 갈 준비를 하라. 그곳에 Future Vision의 새 길이 있다. I can do 정신, 즉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그 길로 나아가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을 끝마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커피숍으로 내려갔더니,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이 중국차를 마시며 조용히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와 이영실 기자도 함께 끼어들어서 얘기하다보니 인원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남녀 두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여성들은 주로 중국의 음식문화, 소수민족의 생활관습의 차이와 자녀교육 쪽으로 얘기하는 것 같았고, 남자들 셋은 어찌어찌 얘기하다보니 결국 또 남북문제와 동북아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로 접어들고 말았다. 황유복 교수께서(어제 3월27일에 있었던)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의 남측당국자들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후 대남 협박을 가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도 궁금해 했지만, 이에 대응하는 북측 태도와 대남전략에 대해서 더 많은 궁금증을 나타내셨다. 내가 중국에 온 뒤 터진 사건이라 전말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동안 관망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던 북한이 드디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물리적인 실력행사를 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황 교수님께서는 이런 일로 인해 평양과기대의 건축과 개교 준비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어린 질문을 하셨다. 나는 평소에 가졌던 경험과 신념을 토대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 드렸다. 평양과기대는 단순한 남·북간의 교류협력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국건설기업이 도급을 맡아 공사를 하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 출신의 우수인력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조야에서도 미국 시민권자인 김진경 총장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모럴 서포터(Moral support)를 하고 있는 등 국제대학으로서의 기능과 명분을 고루 갖춘 대학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갈등구조를 뛰어넘는 치외법권적 교육특구란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나는 하버드 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의 이론을 인용하여 앞으로 남북간 문제가 국가차원의 당국자들끼리는 Hard Power 개념의 갈등과 협상을 반복하며 대치상태로 계속 치달을지 모르지만, 이럴수록 교육, 문화, 경제, 기술 등을 내용으로 하는 Soft Power의 교류협력이 NGO단체 또는 민간기업들에 의해 여러 분야에  걸쳐 꾸준히 소통되는 기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줬다. 이렇게 되는것이 남북간 뿐만 아니라 북미간, 북중간, 중미간, 북일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핵문제에만 급급하고 있는 6자회담의 추이도 결국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Hard Power와 Soft Power의 포괄적인 협력 차원에까지 이를 때 비로소 해결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대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너무 과열된감이 없지않아 나는 남북문제를 풀기위해서라도 동북아공동체 협의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필요가 있다면서, 화제를 북경대 송성유 교수께서 평소 주장해 왔던 ‘삼족정립론’으로 돌렸다. ‘삼족정립론’이라 함은, 좁게는 중·한·일 3국이, 넓게는 미주(미국중심),EU,동아시아(중국중심)가 문자 그대로 삼족이 정립된 상태와 같이 국제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세계 평화발전과 상호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였다.이 논리는 중국 안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차츰 국제협력의 필요성과 다자안보체제를 지향하는 국제질서의 향방을 고려할 때 상당한 수준까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범용론(凡庸論)이 되리라 판단된다.평소 과묵했던 송 교수께서 이‘삼족정립론’을 논할때는 특유의 쾌걸형 웃음소리와 함께 안공(眼孔)이 활짝 열리는 표정을 짓곤한다. 산동성 출신인 이 분은 나와 전신자 교수 앞에서 가끔 ‘나도 조선족이 될 뻔 했던 사람’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만큼 정서적으로 한반도 사람과 닮았고 또 한국인을 좋아하셨다. 몇 년전에 소위 ‘동북공정’으로 세상이 시끄러울때, 송 교수님께서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기사가 크게 보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당시‘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중국고구려사」를 펴내고 그 연구에 2002년부터 3조원을 투입하여 한중간에 소위 "동북공정"으로 시끄러울 때 중국 주류 사학자인 송 교수께서는‘역사 당시 환경에서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고구려는 낙랑, 대방, 현도, 요동군까지 자신들의 치하로 삼았다.”고 논술하여 한국의 입장을 비호하는 듯한 견해를 밝혔다. 이 바람에 중국 안에서 비난과 위협을 받은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역사는 역사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역사에 개입되는 민족주의나 정치적 의도를 배격한, 참으로 진실된 정통주의 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신 분이다.우리들의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옆에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고 있던 여성들이 이젠 커피숍 마감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일어나자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시간이 밤 10시가 휠씬 지난것을 알았다. 우리들은 송 교수님의 건의대로 여러 가지 동북아 국제학술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을 한마디로 “함께하는 정신”이라 정해 놓고 이를 기념하는 책을 공동집필하자는 의견의 일치를 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협의는 사실 5년전에 내가 전신자 교수로부터 송 교수님을 처음 소개 받았던 자리에서 교배주를 들면서 약속했던 일인데 그동안 각자 여러 권의 저술을 냈지만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반성어린 재 건의였다. 나는 지난해 발족한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통해서 한·중·일 삼국의 관계구조를 공존과 상생의 통합윤리를 바탕으로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초국가주의 연합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이 공동집필서를 써 볼 생각이다. 커피숍을 떠나,  勺園호텔의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서, 와이프와 함께 손을 잡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온 종일 출판좌담회 일로 바쁘고 긴장했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심경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흐린 날씨의 검은 하늘에 별이 보일리 없지만 내 가슴속에는 별이 떠 올랐다. 임마누엘 칸트에게는 순수이성을 지향하는 도덕률의 별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 속에 떠오르는 별은 꿈과 우정을 노래하는 희망의 별이었다.이런 날을 두고 “원더풀 데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못난 바보가 어디 있으랴, 북경대의 밤은 깊어가고, 아내를 품은 나의 사랑도 깊어간다. 가슴으로 더 없이 아름다운 별을 헤아리는 밤이었다. (계속)
28    [서평] 동북아의 화합자 댓글:  조회:4344  추천:92  2008-07-10
동북아의 화합자 동북아의 국제합작이 곧 다가오는 시점에서 조선족사회의 주변적ㆍ복합적 문화는 더 큰 역할을 발휘할 것이다. 조선족은 그 문화적 기능을 충분히 이용하고 또 중국의 소수민족정책과 중국이 주변 나라와 친선 관계를 도모하는 유리한 기회를 이용하여 이미 한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수십 개 나라에서 양호한 발전을 가져왔다. 그들은 민간 교류의 방식을 통하여 경제, 문화 교류를 확대하고 있으며 동시에 북한과의 교류도 확대하고 있다. 비록 조선족사회와 동북아 각국 간의 교류가 단지 민간차원의 교류이지만, 그들은 중국과 주변 나라의 교류에서 열심히 중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더 큰 역할을 발휘할 것이다. 일찍이 맹자가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말한바가 있다. 뜻인 즉 "좋은 시기는 유리한 지형보다 못하고 유리한 지형은 사람의 화합보다 못하다. " 이는 곧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의 화합'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조선족 사회가 좋은 시기와 유리한 지형 및 사람의 화합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첫째, 조선족이 일본 침략 시기에 경험했던 정치적, 경제적 및 문화적 고통은 그들로 하여금 불굴의 의지와 그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 할 수 있는 강한 생존력을 가지게 하였다. 개혁개방의 시대에서 조선족의 이러한 의지와 능력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국제합작의 시대 조류에 순응하여, 적극적으로 세계화 및 지역화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획득하도록 했다. 둘째, 조선족사회는 지정학적으로 조선반도의 남북통일을 위해 기여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환동해(한국인이 말하는 동해 즉 일본해)경제합작구, 환황해. 발해만경제합작구, 중국 내륙자원경제합작구 및 러시아 연해주경제합작구가 서로 겹쳐지는 위치에 처해 있다. 이 지역은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기지로 발전될 것이며 동시에 동북아 국제물류의 요충지로 발전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조선족사회의 지역적 가치는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셋째, 조선족은 인정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우애롭다. 또한 남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희생 할지언정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미덕을 갖고 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배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연변의 특산물인 사과, 배처럼 문화적 융합력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으며 국내 기타 민족을 포용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발전 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조선족 특유의 감지력과 인지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문화가치와 경제력을 구축할 수 있다. 적의 양의 소금은 부패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리의 맛을 조절 할 수 있다. 비록 소금이 녹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여러 가지 요리의 맛을 한층 더해줄 수 있다. 조선족사회는 마치 소금처럼 국내외에서 아름다운 화합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좋은 시기와 유리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사회가 한ㆍ중ㆍ일 세 가지 언어문자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우세를 충분히 발휘하고, 동북아 국제합작 시대에서 평화롭고 번창한 내일을 맞이하면서 소금과 같은 조절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사람의 화합’이란 꽃을 활짝 피우는데 촉진적 역할을 한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조선족 사회의 성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와 공동으로 누릴 수 있는 정신적 재산으로도 남아 있을 것이다.    21세기 동북아 합작 및 <<동북아시대의 조선족 사회>> 출판발행 좌담회   "21세기 동북아합작 및 <<동북아시대의 조선족 사회>> 출판발행 좌담회"는 2008년 3월 28일 북경대학교 영걸교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회의는 북경대학교 동북아연구소에서 주최를 했고, 국내 40여명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참여하여 21세기 동북아 지역 합작이 대면한 문제와 도전, 조건과 기제 및 <<동북아시대의 조선족 사회>>의 학술적 가치와 현실적 의미에 대해 토론을 가졌다.   <<동북아시대의 조선족 사회>>는 한국 기업가 이승률이 2005년에 출판한 <<상생시대: 동북아 합작지역 발전 뉴 로드맵>>에 이어 내 놓은 또 한 권의 학술 저서이다. 이 책은 중국 조선족 사회와 문화의 형성 및 그 특징, 개혁개방 이후 중화민족 대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조선족 사회에서 발생한 심각한 변화, 조선족 사회가 중국이 조선반도 남북 쌍방과의 우호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과 남북한 관계의 조정 과정에서 일으키는 역할 등에 대한 연구ㆍ분석을 통해, 중국 조선족 사회는 자신의 주변적ㆍ복합적 문화 특징과 기능을 충분히 중시하고 발휘하는 것과 여러 가지  이익ㆍ모순ㆍ충돌의 적극적인 화합자와 중개인 역할을 통해, 동북아 지역합작 과정을 위해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앙민족대학교 법학박사 이승률은 현재 한국반도환경개발주식회사 이사장을 재임하고 있으며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교 교수와 부총장,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설립 기획단장, 북경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조선민족공동체네트워크 연우포럼 명예회장, 동북아 공동체 연구회이사장 등 직을 겸임하고 있다. 근 년래, 이승률 박사는 중한 우호친선 관계의 발전에 주력하고 있으며 학계와 상업계에서 개최되는 동북아 지역합작 관련 국제학술 회의에 자주 초청되어 여러 차례의 독창적이면서도 건설적 의미를 지닌 관점을 발표한 바가 있어 이론적 소양과 실천적 경험을 겸비한 동북아 문제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 동북아공동체연구회 이승률 회장님의 저서인 ‘동북아시대와 조선족’ (박영사/2007)이 중국에서 중국사회과학원(아태연구소)의 감수를 거쳐 세계지식출판사(외교부소속)에서 중문판으로 출간되였습니다. 출판기념회는 지난 3월 중국 북경에서  북경대학 동북아연구소의 주관으로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은 중문으로 출판된『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에 대한 서평으로서 중국의 주간지 "세계지식"에 실린 글입니다. -편자주
27    Ⅶ. 조선족 사회 대망론(待望論) 댓글:  조회:2992  추천:131  2008-07-09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Ⅶ. 조선족 사회 대망론 (待望論)3시간에 걸쳐 진행된 출판좌담회의 주요 맥락은 한마디로, 동북아 국제협력에 있어서 유능한 매체집단으로 등장한 조선족 사회를 보다 더 창의적이고 생산성있는 단계로 이끌어 내어 한·중간, 북·중간, 중·일간의 공동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일어와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 사회의 복합문화력을 장차 도래할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징검다리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육성하자는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중국의 교육문화 핵심기관인 북경대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토론되고 협의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민족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애’는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뿌리의식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감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닫힌 민족주의’가 결국 순수한 민족애로 끝나지 않고 악독한 국수주의로 변질되어 그 민족 자신을 멸망의 길로 이끈 사례들을 우리는 세계역사를 통해 뚜렷이 알고 있다. 독일의 파쇼집단이 그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내가 조선족사회에 관한 책을 쓰면서 줄곧 주장한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정신이었다. 즉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그리고 Positive Sum Game 에 임하는 정신자세와 태도였다.오늘날 국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세계화’와 ‘지역화(블럭화)’의 이중적 갈등구조를 풀어가는데는 「세계」와「지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기재(메커니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람의 지각과 상호관계 속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동북아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시 받을만한 집단 중에 하나가 바로 중국 조선족 사회란 것이다.150여년전, 조선조말기 탐관오리의 학정에 못 이겨 중국에 건너온 조선족 선조들의 농업 이민사를 한번 살펴보라. 그리고 그 이후 일제시대의 항일독립투쟁과 해방 후 중국공민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변경지역 폐쇄적인 사회 구조속에서 숱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지켜온 민족문화의 정수를 한번 맛보라. 이런 조선족 사회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과 한중수교(1992)에 힘입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도처로 뜨거운 용암처럼 분출되어 흘러가고 있는 도전의 역사 - 그 진취적인 개척의 기상을 다시한번 마음에 되새겨 보라. 이것이 바로 오늘날 조선족이라는 인간 군상을 통해 새겨보는 한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겠는가.이제 21세기는 소위 신문명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 와 있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트가 말하는 ‘탈(脫)중심화’현상이 보편화 되고 있으며, 각 국가간에는 중층성 다공화(重層性 多孔化)현상 (일본 와세다 대학의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郞)교수가 쓴 용어)이 나타나면서 민족국가적 경계의 개념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트랜스네셔널리즘(Transnationalism, 초국가주의)을 이념으로 초국가연합체(예:EU)를 지향하는 새로운 문명사회가 도래하고 있다.이와같은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나는 ‘코스모폴리탄 메트릭스’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요즘 중국과 일본사이에 ‘넛 크래커’처럼 끼어있는 한반도의 정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 일수록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략과 대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이런 (꿈같은) 생각을 많이 해본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남북분단과 중국 및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의 현실이 매우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경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국 및 일본을 포함한 주변 4대강국을 적극 대응하는 방안으로 북한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6자회담 당사국간의 합의를 기초로하여 북한을 불가침 중립화지역으로 선포하고, 이를 토대로 주변 4대강국들로 하여금 북한의 일정지역(신의주, 남포, 개성, 금강산, 원산, 청진, 나진 등)에 아일랜드 형 투자방식으로 무관세, 노비자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협력특구를 조성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런다음 UN(반기문 사무총장)과 협의하여,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독립국가(CIS)등 과거 공산권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에 설립했던 유럽개발은행(EBRD)와 같은 동북아개발은행(가칭)을 설립하여, 북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포함하는 전체 동북아 지역의 경제발전 및 정치안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초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남북한 당국에서도 「남북경제협력청」과 같은 특별기구를 신설하여 북한 전 지역을 대상으로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위한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가는것이 지금의 국제정세 흐름을 활용하고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이런 논의와 함께 중국과 일본을 한반도의 양쪽날개로 매달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을 병행 기획토록한다. 우선적으로 동북아FTA 및 통합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3통(통행, 통신, 통관)을 위한 교통인프라 건설에 치중하여, 1차적으로 한·일해저터널을 건설하여 TCR, TSR, TMR 등과 같은 기존 북방노선과 연계하는 한편, 2차적 대안으로 황해도(장산곶)-경기도(백령도)-산동성(위해)를 연결하는 한·중해저터널을 건설하여 한·중·일 3국이 합동으로 환황해 경제권을 개발, 세계적인 경제협력구역으로 발전시킴으로서 동북아 국제협력의 시너지를 갖고 오게 할 뿐 아니라,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이러한 경제공동체의 몸통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것이 또 하나의 창의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의를 자꾸 하다보면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중·일 3국간에 빚어왔던 과거사문제, 영토분쟁, 무역수지 역조 등과 같은 모든 현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On Stop Solution’을 갖추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나는 이것을 ‘도랑치고 가재잡기’식 전략이라고 부른다.만일 이러한 발상이 꿈이 아니고 실제상황으로 진전된다고 가정해볼 때, 이런 시대적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적이고 중간매체적인 역할을 감당해 줄 집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중국 조선족 사회가 바로 한·중·일 3국간의 이질문화와 남·북간의 갈등을 정화시키고 조정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매체집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아직은 비록 인구수가 적고 세가 약한 집단이지만, 장차 인재양성과 국제교류 등으로 왕성하게 거듭날 수 있다면 조선족 사회는 초국가주의 신문명시대를 준비하는 ‘코스모폴리탄 매트릭스’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이런 의미에서 나는 (책에서도 결론부문에 썼지만) 조선족 사회를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을 활성화시키고 맛깔스럽게 만드는 소금과 같은 집단이 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북경대「영걸교류중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행사는 이와같은 여망을 갖고 진행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성황리에 잘 마쳐졌다. 한족, 조선족, 한국인 등 세 부류가 모였으나 우리들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또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 한·중·일 3국간에도 모두 유익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저녁 6시경 좌담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비닐로 된 우의를 덮어 쓴 채 부근에 있는 구내 대형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함께 나누었다. 참석자들 중엔 멀리 LA에서 오신 김유경 사장도 끼어 있었다. 사업차 한국에 왔다가 북경에 볼 일도 있고 또 축하도 해줄 겸 겸사해서 왔노라고 했다. 너무나 반가왔다.이분은 미주「한국일보」의 칼럼니스트이며, 영어교육사업(campwww.com) 전문가이기도한데, 최근에 평양과기대 건립을 위해 자진해서 「Friends of PUST」라는 인터넷 모금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날 만찬자리에서 나는 식사도 맛있었지만, 술의 향기가 좋아서 오랜만에 대작을 즐겼다. 둥근 테이블을 돌려가면서 한상에 둘러 모여 식사를 하고 대작을 하게 되니 그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한마음 밥상 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중국에 올때마다 가장 부럽게 여긴것들 중에 하나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이런 둥근 테이블에 둘러 모여 격의없이 식사하고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중국식 민주주의이고 생활규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북아 3국이 하루 빨리 이렇게 한상에서 밥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업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면서 그날 만찬을 기분 좋게 즐겼다.(계속)
26    Ⅵ. 출판기념 좌담회 댓글:  조회:2571  추천:107  2008-07-08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Ⅵ. 출판기념 좌담회북경대 勺園호텔의 아침은 근엄할 정도로 조용했다. 하늘이 흐렸으나 군데군데 만개한 목련, 매화, 박태기, 개나리 등의 꽃나무들이 봄을 일깨워 주고 있는 듯 했다. 오전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쉬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점심시간에 이문 박사(중국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 주임교수)께서 오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그는 언제봐도 호쾌하고 늘 웃는 인상이다. 내가 2005년에 한국에서 「연우포럼」에 올린 글들을 모아 낸 책의 제목이 “윈윈 패러다임”이었다. 그 책을 “共生時代”란 제목으로 중문판을 내도록 결정적 역할을 해준 분이 이문 박사였다. 한·중·일 3국이 FTA(자유무역협정)및 통합시장으로 나아가는 공존과 상생의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자국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발전에 도움이 되고, 또한 이것이 중국 후진타오 정부가 추진하는 신 외교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될 것이라는 나의 주장을 높이 평가해준 결과였다. 이번 경우에도 중국 외교부 소속인 「세계지식출판사」에서 중국 변경 소수민족 가운데 매우 민감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는 조선족사회를 다룬 책자를 발간할 수 있도록 협조해준 일은 나로서는 평생 잊지못할 귀한 일로 여겨진다. 또한 이 책은, 그동안 17년간 조선족사회를 위해 사역해왔던 모든 노력을 집대성하는 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내겐 더없이 소중한 일로 인식된다. 나는 그날 점심시간에 이문 박사께서 출판사로부터 직접 갖고 온 책을 처음 받아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가슴이 부르르 떨리는 듯한 감동을 맛보았다.“원더풀 데이! 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가!”책을 쓴다는 일 자체도 그렇거니와, 일개 기업인으로서, 특히 외국에서 만학을 통해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는 점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대견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여기서 나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동안 자료수집과 번역 및 교정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후 3시부터 북경대 안에 있는 컨벤션센타, 즉「영걸교류중심」의 프레스홀(Press Hall)에서 북경대 동북아연구소가 주최하는 “21세기 동북아협력과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출판발행좌담회”가 열렸다.북경대 동북아연구소는 내가 중앙민족대학에서 학위를 시작했을 때, 전신자 교수께서 연구소 소장되시는 송성유 교수를 소개해준 뒤 객원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내 동북아 관련 중요 정책연구기관이다. 좌담회 식장에는 중국사회과학원, 북경대, 인민대, 중앙민족대 등에서 다년간 국제관계와 소수민족문제를 다뤄 온 전문학자들과 주요 기관장, 기자단, 축하객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 날 있었던 좌담회 관련 취재보도를 일부 인용함으로서 행사 진행성과를 대신코자한다. 『 “21세기동북아협력 및 <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 중문판 출판발행좌담회”가 3월 28일 북경대학 영걸교류센터 프레스 홀 (Press Hall)에서 열렸다. 북경대학 동북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번 좌담회에는 국내외 100여명 전문가 학자들이 참석, 21세기 동북아지역 협력이 직면한 문제와 도전, 조건과 메커니즘 및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의 학술적 가치와 현실적 의의에 대해 토론했다.<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는 한국의 사업가이며 연변과기대 부총장인 이승률박사가 2005년 <공생시대: 동북아협력지역발전 새 구도>를 출간한 이래 내놓은 또 한 부의 학술저서이다. <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는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의 도래를 대 배경으로 삼고 중국 조선족 사회와 문화의 형성과 특징 등을 상세히 규명하면서 개혁개방 이후 중화민족대가정의 구성원으로서의 조선족 사회에 일어난 심각한 변화, 조선족 사회가 중국의 발전과 한반도 남북간의 친선관계 및 협력에 미치는 역할에 대해 분석하면서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한반도와 중국의 변연에 위치해있는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200만여명 밖에 안되지만 한반도 문화와 중국 문화를 융합한 이중문화의 성격을 소유함으로써 이 두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소금과 같은 집단이라고 보았으며, 한중 관계의 발전과 남북한의 통일 및 동북아 국제협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개자인 동시에 아름다운 조해자로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중앙민족대학 법학박사이며 한국 반도환경개발㈜ 회장인 이승률박사는 중국 연변과기대 부총장을 맡고 있으며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기획단장, 북경대학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한민족공동체 네트워크인 연우포럼 명예회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이사장 등을 맡아 동북아의 결속과 미래발전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한 친선관계 발전에 진력하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동북아 전문가로 인정받아 기업초청 세미나, 국제학술대회 등에 관련 강의 및 토론 패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리문(李文)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는 북경대학 동북아연구소 송성유(宋成有)소장과 중앙민족대학 황유복교수의 기조연설에 이어 중국서부대개발위원회 최룡호 비서장, 중국국제과학평화촉진회 이현덕 부회장, 재중국한국인회 박제영 부회장 등이 축사를 했으며 세계지식출판사 특약주필 림창(林昶)교수가 세계지식출판사 축하편지를 낭독했다. 특히 이번 <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 중문판 출판은 중국의 세계지식출판사에서 국제문제총서 중 조선족 관련 서적으로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 소수변경민족(조선족) 사회를 다룬 책을 선정, 출판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   박복선 기자 (흑룡강신문) 』(계속)
25    Ⅴ. CBCM 사역의 길 댓글:  조회:2949  추천:96  2008-07-08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Ⅴ. CBCM 사역의 길 아내가 오후 5시경 도착하는 비행기로 북경에 왔다. 몇 가지 볼일을 보기 위해 내가 하루 일찍 북경에 온 셈이다. 인민대학을 떠나 숙소인 쿤륜호텔에 돌아 와서 맡겨둔 짐을 찾은 후, 기다리고 있던 박혜명(연변과기대 북경주재원 비서)과 함께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로 갔다. 개항 첫날이었던 어제보다 입국수속이 훨씬 빨라져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숙소를 북경대 안에 있는 勺園(SHAO YEON)호텔로 예약해 두었는데, 가는 도중에(매주 목요일 저녁에 개최되는) 북경CBMC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왕징(望京)에 있는‘전주관’식당으로 먼저 갔다.오랫만에 모임에 참석해서 그런지 낯선 얼굴들이 많았다. 그러나 다들 반갑게 맞아 주었고, 금방 친숙해졌다. 한 믿음 안에서의 동역자라는 개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CBMC가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일거다. 중국에서 한인 CBMC가 공식적으로 처음 창립된 것은 1994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기독실업인회 서울영동지회의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연변과기대 재단이사로서 건축지원 업무를 위해 연길을 자주 왕래하던 가운데 그때 연길에 사업차 오신 한국분들과 교분을 쌓을 기회를 많이 가졌었다. 그때 만나던 분들을 중심으로‘기도회’모임을 시작한 것이 마침내‘연길한인CBMC 창립’이라는 대사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 기구는 명실공히 중국 최초의 기독실업인회로  공식 인정받았다.그 후 한인 CBMC는 청도, 북경, 천진, 심양, 상해, 단동, 대련, 마카오 등지로 확장되면서 현재 중국 전역에 40여개의 지회로 발전해 있다. 그리고 전장(前章)에서 밝힌 것과 같이 2000년에 들어와 중국인 청년기업가들을 인도하여 마침내 2001년에 중국 최초의 중국인 기독실업인회를 구성하게 되었고, 이후 각 대도시 지역을 거점으로 중국 전역에 20여개의 지회가 창립, 육성되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 복음을 전하자’라는 표어를 내걸고「성경공부와 기도회」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삼아 진행하고 있는 이 기독실업인회(CBMC) 사역은, 1930년대 미국 시카고 대 공항때 무너진 경제 잿더미 위에서 크리스챤 기업인들이 함께 손잡고 경제재건을 위해 일으킨 기도운동이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 후 이 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한국에는 6·25 동란 시 미 군사고문단 세실 힐(Cecil Hill)대령으로부터 당시 국회 부의장이셨던 황성주 박사에게 전수된 것이 오늘날 한국기독실업인회의 첫걸음이 된 것이다. 현재 이 기구는 세계 70여 개국으로 확장되어 국제 기독단체로는 가장 큰 단체들 중의 하나로 발전했으며, 한국CBMC는 열성적이며 진취적인 한국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세계CBMC 2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중국에 최초로 기독실업인회를 전래, 창립, 육성하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한 것을 개인적으로 큰 영예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나중에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2000년), 카작스탄(알마티,2000년), 터키(이스탄불,2001년)지역에까지 CBMC 실크로드 미션 벨트를 형성하도록 이끌어간 것을 무한 한 기쁨으로 여긴다. 이러한 CBMC 사역과 더불어 중앙아시아(CIS)와 연해주 지역에 있는 고려인 학생들을 매년 10여명씩 연변과기대에 유학 올 수 있도록 조치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잘한 일로 기억된다.아무튼 CBMC 사역은 연변과기대 사역과 더불어 내 인생 후반전에 있어서 두 개의 큰 기둥과 같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연고로 중국의 수도 북경에 있는 CBMC 회원들의 안부와 형편을 돌아보기 위해 그 날 저녁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공식 모임명은‘북경CBMC 아름다운 모임’이었다.「좋은 아침」이라는 월간 잡지를 발행하는 김구정 사장의 사회로 경건회가 시작되었으며 북경공업대학 건축학과 교수이신 김준봉 박사의 기도에 이어 상해에서 초빙 강사로 온 이경섭 중앙위원장께서 ‘나와 CBMC'라는 제목의 강의를 해주셨다.광고 시간에 우리 두 내외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인삿말과 더불어 12년전에 북경한인CBMC를 창립할 때의 경과 과정을 회고한 뒤, 특별히 북경에 있는 한인 CBMC회원들이 중국인 CBMC 지도자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Back To Jerusalem"을 향한 실크로드 미션에 힘을 모아 주기를 당부했다. 모임이 끝날 무렵에 연변대학의 전신자 교수께서 밤늦게 연길로부터 북경공항에 도착하여 우리가 있는‘전주관’식당으로 찾아왔다. 아내와 전교수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북경한인CBMC 회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한 뒤, 북경공업대의 김준봉 교수께서 우리 일행 세 사람을 북경대 안에 있는 勺園호텔까지 태워 주었다.김 교수는 연변과기대 건축학과 교수로 6년간 근무했던 나의 동료이다. 북경으로 사역지를 옮겨 북경공업대에서 건축학과 교수로 임용된 후 사스(SARS)가 창궐했던 2003년에 많은 사람들이 북경을 떠났지만 끝까지 남아서 불안에 떨고 있던 중국인들을 돌보며 용기 있는 사랑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영웅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 후 중국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도 여러 권 집필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연우(連友)포럼 회장으로서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의 선봉장 역할을 감당해 주고 있다.(* 연우포럼은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김연우 포럼장을 중심으로 시작된 인터넷 칼럼 공동체이다. 나는 김 포럼장을 도와 2003년 서울에서「연우포럼」을 창립한 이후 3년동안 초대 회장직을 수행했으며, 현재는 한국일보 임철순 주필이 2대 회장직을 맡고 있다.) 북경대 勺園호텔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 받은 후 우리 두 내외와 전신자 교수는 밤이 깊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었다. 특히 전 교수는 내게 은인과 같은 인물이다. 내가 연변과기대 사역을 하는 가운데 만학도로서 북경 중앙민족대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그때 지도교수이신 황유복 교수께서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나를 도와주라고 추천해 주신 분이 바로 전신자 교수이다. 전 교수는 인민대 박물관학과를 졸업한 후 연변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물관 주임교수로 오랜 기간 동안 봉직하다가 2003년에 중앙민족대 박사과정(민족학계)에 입학한 나의 동기생이었다. 나는 전 교수의 도움을 받아 레포트와 학위논문 자료를 준비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졸업 후에도 동북아 관련 국제세미나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이제 비로서 밝히지만)내일 북경대 「영걸교류중심」에서 최근 「세계지식출판사」에서 발간한 졸저“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출판기념좌담회가 있을 예정이다. 이 저서는 중앙민족대 학위논문을 기초로 하여 지난해 가을 출간했던 한글판 전문서적“동북아시대와 조선족(「박영사」발행)”이라는 책의 중문판에 해당된다. 전 교수께서는 이 중문판 출판기념좌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서부터 이 곳 북경까지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그의 남편되시는 손춘일 교수도 지금 연변대 민족연구원 원장으로 계시면서‘조선족 이주사’를 집대성한 인물로 학문적 성가를 이루신 분이다. 이 두분들과 우리 내외는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벽을 넘어 아름다운 우정의 관계를 지속해온, 집안 친척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전신자 교수를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 대화의 시간이 밤이 깊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날 하루는 내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원더풀 데이」였다.(계속)
24    Ⅳ. 새로운 동지들 댓글:  조회:3524  추천:128  2008-07-06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Ⅳ.  새로운 동지들 새벽 기도회를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북경에서 한국인들이 집중 거주(약 1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 왕징(望京)이란 곳으로 가서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나서 8시까지 숙소인 쿤륜(崑崙)호텔로 돌아왔다. 황사섭 원장은 지방 출장을 갔기 때문에 못 왔지만, 조찬 시간에 다른 또 한분의 조선족 목사님을 미리 초청해 두었었다. 김성(Daniel Jin)목사는 청화대 출신으로 자동제어 부문을 전공한 영재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2000년 여름이었다. (앞장에서 언급했던) 김설송 사장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청화대 학생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통해 만났었다. 특히 김성 목사는 나의 부탁을 받아들여 2000년 가을부터 중국인 청년기업인들을 규합하여 중국 최초로 중국인 기독실업인회(CBMC)를 구성하는 일에 기초역할을 맡아 주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전도사가 되었으며, 3년전에 미국  LA 풀러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가 1년전에 귀국한 후 현재 북경에서 도시부흥교회(CRC)를 담임하고 있다. 나는 그를 5년만에 만나보게 되었다. 대만 출신인 부인과 함께 온 그를 힘껏 끌어안아 줌으로써 나의 우정과 사랑을 한껏 표현했다. 두 내외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연변과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을 소개해 주었다. 식사 후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의 지나온 과정과 포부를 자세히 얘기들었다. 그의 꿈은 중국 청년들과 기업인들을 복음화하여 그들과 함께 ‘Back To Jerusalem’으로 나아가는 국제 선교사역이 목표였다. 사역의 푯대가 분명했고, 전략과 열정을 겸비한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실크로드 미션의 꿈을 위해 함께 동역할 것을 다짐하며 뜨거운 기도를 드렸다. 중국 여러 도시에 진출하여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 CBMC 인맥들과 현지 중국인 CBMC 인력들이 함께 뜻을 모아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 선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새 길이 열릴것만 같은 희망이 솟구쳤다.“원더풀 데이”란 말이 저절로 가슴속에 메아리친다. 김성 목사 내외가 돌아간 다음 나는 또 새로운 손님을 만났다. 한국인 여성법학자로서, 중국 인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마친 후 현재 인민대학 법학부에서 물권법과 지적재산권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는 김현경 교수였다. 11년째 북경에 살고 있다는 김 교수는 중국에 여행을 왔다가 인민대학에 정착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면서 중국이 마음에 들고 생활하기에 무척 편한 사회라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중국어도 능통해서, 내가 듣기로 한국인으로서 김 교수만큼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창했다. 점심 식사를 호텔 부근에 있는 ‘서라벌’식당으로 가서 하기로 했다. 김 교수가 한분을 더 초청해도 좋으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했다. 주 중국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정영옥 채구관(采購官)께서 식당으로 오셨다. 그 분은 원래 한국 조달청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국비로 중국인민대학에 유학와서 석사 공부를 마친 후 귀국했다가 얼마 전에 다시 주 중국 한국대사관으로 부임한 고위직 여성이었다. 나는 두 분의 뛰어난 커리어 우먼들을 모시고 점심을 먹는 행운을 가졌다. 그렇다고 내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미리 준비해간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브로셔를 내 놓고, 식사 도중 짬짬이 학교 홍보를 위해 열띤 강의(?)를 했다. 연변과기대의 실사구시적인 교학시스템, 교수들의 헌신, 학생들의 높은 학력수준, 정직운동과 인성교육 및 맞춤 실기교육, 졸업 후 해외 유학 장려, 중국 내 대도시 취업(100%) 현황, 조선족 사회에 미친 선한 영향력(등대와 같은 역할) 등에 대해서 설명했다. 또한 평양과기대 설립 허가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북한 내 교육 특구로서의 각별한 의미, 부족한 재정 가운데서도 한국교인들과 미국 교포사회가 꾸준히 지원해서 마침내 14개 건물이 준공단계에 들어가 있는 건축 현황, 그 동안 북한 미사일 발사 및 핵문제 등으로 남·북간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대학 건설현장은 별다른 지장 없이 진척되어 왔다는 무용담 같은 이야기. 그러나 EAR(반출금지품목승인시스템) 관련 업무가 처리되지 못해 컴퓨터, 서버, 인터넷 장비들이 북한 경내에 들어갈 수 없어 개학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소상히 설명해드렸다. 나중에는 연변조선족사회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중국 동북지역 진흥정책, 탈북자 문제와 6자회담의 진로, 한반도 통일정책을 위한 Soft Power 전략까지 거론하며 대화의 폭이 여러 방향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빠져 나가고 우리들만 남아 있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우리들도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영옥 채구관께서 한국대사관 근무지로 돌아간 후 나는 김현경 교수의 안내로 인민대학을 방문했다. 실은 지난해 10월 한국의 「박영사」에서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이라는 전문서적을 출판해 주었는데, 그 「박영사」의 오너이신 안종만 회장께서 내가 북경에 간다고 하니 꼭 가서 만나보라고 추천해 주셨던 분들이 바로 김현경 박사와 그의 스승인 한대원 교수다. 조선족 출신인 한대원 교수는 인민대학 법대의 부원장이며, 「일본법연구소」소장을 겸하고 있는 법학자로서 특히 「중국헌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중요인물이다. 그는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영어에 능통한 국제통 학자로서 저서가 한국에서도 「박영사」를 통하여 출간된바있다. 마침 인민대학을 방문했을 시간에 일본 학자들과 같이 학술세미나를 주재하고 있어서 부득이 별도의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지난해 쓴 책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을 선물로 남겨둔 채 학교를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우리 조선족 사회의 높은 역량과 성취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큰 자긍심을 느꼈다. 김현경 교수의 안내로 법대 도서관을 둘러본 후 그의 연구실에 가서 한 시간가량 대담을 나눴다. 나는 그 대화 가운데 또 하나의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작년 11월 1일부로 통일부에 사단법인 「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등록하고 회장으로 취임한 바 있다. 이 조직은‘21세기 동아시아 공동체’구현을 위한 대안으로, 한·중·일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이 연대하여 공동선을 찾아가고자 하는 R&D기관이다. 트랜스네셔널리즘(Transnationalism, 초국가주의)을 학문적 기반으로 삼고, 동북아 삼국을 접속하는 교통인프라 구축방안으로 한·일해저터널과 한·중해저터널을 연결시키는‘(가칭)동북아 대운하 건설계획’(TNT프로젝트:Tunnel & Tunnel)을 추진하여, 이 교통대로가 통과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통행 ,통신, 통관(물류 유통)이 자유로운 자유무역통합시장을 형성함으로써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새 길을 열어 보자고 하는 것이 본회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결속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동북아 삼국간의 법제를 비교연구하는 일은 이런 큰 계획을 성사 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야 중 하나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해왔는데 마침내 김현경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 해결책을 찾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의 헌법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보이고 있는 분들이 이석연 변호사(현 법제처장), 강경근 교수(숭실대), 정종섭 교수(서울대)등이 있다. 세분 다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중 강경근 교수는 본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있으면서 특히 일본 공법학자들과의 교류가 매우 깊으신 분이다. 강 교수께서는 내게, 중국 공법학자들과의 교류만 연결되면 명실공히 동북아공동체 차원에서의 법제 비교연구가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곤 했었다. 이제 그 적임자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김현경 교수의 스승인 한대원 교수야말로 바로 내가 찾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는 「중국헌법학회」 회장이면서 일본(어)에 능통한 「일본법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분이다. 동북아공동체 법제 비교연구를 풀어가기에는 가장 적합한 인물임에 틀림 없어렷다. “원더풀 데이” 김현경 교수와 대화하면서 나는 좀체 찾기 어려운 보물을 금방 쉽게 찾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김 교수가 우리 「동북아공동체연구회」의 중국 측 법제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나중에 한대원 교수께도 잘 말씀을 드려서 본회 자문역으로 참여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두 분의 이름을 불러보며 고(故) 김춘수 시인의「꽃」을 되새겨 보았다. 「 꽃 」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경북고 1학년 시절, 철없는 나이였지만 경북대 국문과 선배들 틈에 끼어 김춘수 시인의 강의를 들었고, 그 분의 집에도 몇 번 찾아가서 사사를 하는 등 시심에 심취했던 적이 기억에 새롭다. 그날따라 북경 하늘은 곧 비가 올 듯 찌푸린 날씨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더없이 쾌청했다. 「꽃」이 만발한 4월이 곧 다가오기 때문일까?(계속)
23    Ⅲ. 비상하는 특새 댓글:  조회:2618  추천:97  2008-07-06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Ⅲ. 비상하는 특새 지난밤 호텔 측에 새벽4시 모닝콜을 부탁해 놓았었다. 어제 저녁을 먹을 때 한 한국분으로부터, 내가 묵고 있는 쿤륜(崑崙)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21세기 한인교회」에서 20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5시부터 시작되는 새벽기도회에 늦지 않게 가려면 4시에는 일어나야 했었다. 따르릉 따르릉 하면서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기계음이 아닌) 청아한 젊은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더풀 데이” 딱 한마디 인삿말이었지만, 이 말은 듣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랄 정도로 기분이 상쾌해졌다.아, 얼마나 멋진 인사말인가! ‘굿모닝’이란 말은 지극히 의례적인 표현이다. ‘해피 데이’라는 말도 노래 제목이어서 그런지 자주 듣는 인삿말이었다. 그런데 “원더풀 데이”란 말은, 특히 새벽 모닝콜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는 이 인삿말이 너무 좋아서 갑자기 코가 벌름거릴 정도로 기분이 고조되었다.(* 3박 4일간의 북경 여행을 되돌아 볼 때, 이번 여행이 웬지 기분좋고 흐뭇했던것은 아마도 이 인삿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이 말이 좋게 느껴졌다.) 「북경 21세기 한인교회」는 21세기 호텔 건물 안에 있다. 5시 10분전에 도착하여 3층으로 올라가 대 예배실로 들어갔더니 상당히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어림잡아 보아도 오백명이상은 되어 보였다.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한국 유학생들이다. 이 교회는 전체 교인수가 약 3,000명 가량되는데 그 중 삼분의 일이 유학생들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찬양과 함께 기도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오늘의 말씀’을 전해주실 목사님이 등단하셨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 분은 서울에서 오신, 내가 너무도 잘 알고 가깝게 지내는 곽수광 목사님이 아닌가! 그는 내가 1995년부터 강사로 봉사해왔던 KOSTA(한국유학생회)의 총무목사이시며, 또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찬양사역자인 송정미 교수(숭실대)의 남편이기도 하다. 나는 「북경21세기 한인교회」의 특새(특별새벽)기도회에 갔다가 뜻밖에 평소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 동역자를 만나게 되자 저절로 입에서 “오, 원더풀 데이”란 말이 튀어 나온 것이다. 말씀과 합심기도가 끝나고 난 다음 개인기도 시간이 되자 (앞자리에 계셨던) 본 교회의 담임목사이신 박태윤 목사님과 부목사이신 김광성 목사님이 곽 목사와 함께 내가 앉아 있는 뒷자리로 다가오셨다. 실내가 컴컴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놀라게 해 주려고 말없이 다가가서 한분 한분씩 두 팔을 벌려 꽉 껴안았다. “아니 장로님, 장로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아니 웬일이라니! 나는 새벽기도회에 오면 안돼?!” “아니 서울에 계신분이 어떻게 여길....!” “ 곽 목사는 그럼 어떻게 여길 왔어” 곽 목사는 4월말에 있을 북경KOSTA의 준비를 위해 어제 밤 북경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들 네 사람은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얼싸안고 어린아이들처럼 볼을 부볐다. 한 믿음 안에서 동역자의 관계로 동고동락하는 일 만큼 더 아름답고 우정있는 만남은 없으리라. 곽 목사와는 벌써 14년째 KOSTA사역을 같이 동역하고 있으며, 박태윤 목사님과는 11년전에 북경에 와 있는 한국유학생들을 위해 처음 KOSTA를 결성할 때부터 함께 협력해왔던 분이시다. 또한 그 후 「21세기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북경CBMC(기독실업인회)를 조직하고 나중에 그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지역에 비즈니스 미션의 씨앗을 심는 사역을 같이 연대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이 날 새벽기도회에서의 만남은 너무나 귀하고 가슴 벅찬 (우연처럼 다가온)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짜 우린 특새들이네”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대며, 창공을 날개쳐 올라가는 비상하는 독수리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은총과 사명감의 열기가 가득 차오르는 감을 느꼈다. 참으로 멋진, 특별한 새벽의 만남이었다.(계속)
22    Ⅰ. 중화(中華)의 힘 댓글:  조회:2615  추천:84  2008-07-05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Ⅰ. 중화(中華)의 힘     중국 북경의 관문인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이 3월 26일 개항하여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내가 타고 들어간 아시아나 항공의 승객들은 한국인으로서는 제3터미널로 입경하는 첫 손님이 된 셈이다.(대한항공은 예전처럼 제2터미널을 계속 이용한다.)2004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던 제3터미널 신청사의 건축규모는 연면적 98만6,000㎡로 단일 터미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며, 인천공항의 1.5배가 된다. 홍콩 첵랍콕 공항을 설계했던 영국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이 터미널은 지붕에 황금빛 알루미늄 합금 금속판으로 만든 300여개의 채광창을 돌출시켜 놓았는데, 이 채광창을 열 경우 비늘을 세운 채 엎드려있는 용(龍)의 형상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언론들은 제3터미널 신청사를 “중화(中華)의 힘이 응축된 건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항공여객이 급증 할 것으로 보고 2010년 안에 북경 제2공항을 착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말 현재 147곳인 중국 전역의 공항을 2020년까지 244곳으로 늘려 100km마다 공항을 하나씩 건설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중국 경제의 발전상은 이제 항공부문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북경 올림픽을 정점으로 중국의 모든 국가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듯한 긴박감을 느끼며 제3 터미널의 광활한(?) 구조물 안으로 첫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최근 신청사 개장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내·외국인의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내·외국인이 내던 기존의 검역카드와 관세카드는 모두 사라졌으며, 내국인은 아예 출입국 신고 카드조차 없앴다고 한다. 한마디로 통제사회가 서비스 사회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중국의 변화는 국가 정치체제가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규제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의 관치행정 실정에 비해, 중국의 규제철폐 및 완화 속도는 적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군마처럼 빠르고 용감하다. 중국의 ‘한국 따라잡기’는 이제 태풍에 밀려온 파도가 방파제를 곧 덮칠듯한 기세로 육박하고 있는듯한 형국이다. 한국의 방파제는 중국이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붉은 파도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서우두(首都)공항의 제3터미널을 빠져 나오면서 내가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복합된, 자존심을 긁는 묘한 굴욕감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설송 사장(청화대 출신 조선족, 전 다산네트워크 중국지사장)의 차를 타고 호텔에 체크인 한 후, 곧 바로 찾아 간곳이 제10차 중국국제핵공업 전람회가 열리고 있는「북경 농업 전시회관」이었다. 중국핵공업총공사, 중국원자력학회, 북경시 상무국이 공동주최한 이 전람회에 GE, 웨스팅하우스 등 16개국 100개사 이상이 참여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전력과 한전수력원자력(이하‘한수원’), 두산중공업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가했다.나는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한국 에이전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설송 사장을 한전 관계자들에게 소개시켜서, 한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원전 수출 및 핵폐기물 처리기술 이전에 대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전람회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이번 전람회의‘한수원’측 실무책임자인 김현철 부장과 두산중공업의 중국 총대표인 김정수 상무이사를 만나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운영체계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15년에 걸쳐 한·중간 발전설비 기술교류를 위한 추진과정에 있었던 많은 애로점과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오늘날 온실가스 규제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발전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발전업체들이 원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은 이미 검증된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원전은 화력발전과 달리 이산화탄소(CO₂)등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데다 kw당 전력 생산비용이 39원으로 유연탄(42원), 가스(100원)에 비해 저렴하다. 이런 원전 산업의 시장성을 가늠할 때 기술력만을 놓고 보면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한국은 1970년대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천기술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20기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한국형 표준 모델인 OPR1000, 독자 모델인 APR1400 등을 만들어 왔다. 특히 기술자립도가 95%를 넘는 APR1400은 kw당 건설비가 2,000달러 수준으로 미국 등 경쟁 모델(3,000달러 수준)보다 30%이상 저렴하다.다만 원자로에 대한 원천기술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 수입국이 한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요구할 경우 일일이 (웨스팅하우스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국형 원전 수출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천기술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장차 경쟁 대상국이 될 한국의 발전업체에게 쉽게 허가를 해 주겠는가 하는 점이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국형 원전을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지목했다. 한국전력 등 국내발전업체들은 다음 달 터키정부가 발주할 예정인 원전 국제입찰에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독자 모델 ‘APR1400’으로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세계화 경제정책이 이 원전 수출사업을 통해 물꼬가 터지기를 마음 깊이 고대해 본다.또한 원천기술의 장벽 때문에 40여기의 원전 건설 물량이 준비되어있는 중국 발전산업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전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어찌 내가 국민 된 한사람으로서 그냥 죽치고 앉아있기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핵심 인물들을 만나 한판의 큰 게임이라도 벌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문제는, 충동은 크지만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한탄스러운 마음으로 제10차 중국국제핵공업전람회장을 떠날 때,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내 눈을 찌른다. ‘너는 무엇으로 중국을 대응할 것인가’라고 따갑게 쏘아부치는 것 같았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17년간이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그 만큼 중국을 잘 안다고 하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중국과 경쟁하려고 준비해 왔는가 하는 자책감이 일어났다.(계속)
21    『희망의 역사』12 (이승률21) 댓글:  조회:3023  추천:93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Ⅻ. 나는 금년 5월 중순경에 하와이 출장 계획이 잡혀있다. 9월 5일 개교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소식을 교민사회에 전하고, 개교 준비에 필요한 교육기자재 지원업무와 교수인력 교류를 상담하기 위해 각계 기관과 하와이 대학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하와이 대학에서는 특별히 미래전략센터 소장인 짐 데이토(Jim Dator, 73세) 교수를 만나도록 약속이 되어있다. 그는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고 있으며, 1967년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협회’를 만들어 미래학(future study)이란 학문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한 선구자다. 그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방문 했을 때 “정보화사회 다음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해일이 밀려든다”고 단언했다.(chosun.com 1월 8일 기사 참조) 그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경제의 주력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핵심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드림 소사이어티에 진입한 세계 1호 국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한류(韓流)”라는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상품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짐 데이토 교수가 사용하는 전문용어들 가운데 이런 게 있다. 국민총생산(GNP) 대신에 국민총매력(GNC: Gross National Cool)이란 지표를 쓰자고 하는 제안이 그것이다. GNP가 한 나라 국민이 생산한 모든 상품가치의 합, 즉 물질(재화․서비스의 총생산)에 기준한 것이라면, GNC는 한 나라가 얼마나 쿨(cool, 매력적)한가에 의해 그 나라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이미지의 생산, 결합, 유통이 주 평가요소가 된다. 나는 짐 데이토 교수를 만나면, 동북아사회의 새로운 미래가치 창조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볼 작정이다. 그의 대답이 벌써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쩌면 우리 동북아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한 퓨전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퓨전(fusion)을 길게 늘여 쓰면 future vision이 된다. 동북아사회의 future vision을 ‘fusion’에 두고, 그 핵심역량을 ‘사랑’이라고 하는 이미지에 결부시켜 보자. “사랑으로 융합된 힘” 이것이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가치를 이끌어내는 이미지 파워(Image Power)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이미지 파워를 가진 신크래틱스 리더십(Syncretics Leadership : 갈등을 통합하는 리더십)들이 각국에서 왕성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과거사에 묶여있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천박한 패권의식의 한계(레드 오션)를 벗어나 국민들의 마인드 세트(Mind Set)를 개방적인 대아(大我)의 경지 ― 선린공동체의식으로 전환시켜 나감으로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해저 깊이 잠복되어 있던) 잠재능력과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합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이 융합된 지식과 힘을, 정치․경제․사회․산업․기술․과학․교육․문화 등 여러 부문에 적용하여 새로운 가치 개혁의 국제 클러스터(International Cluster)를 구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주창하는 ‘동북아 연합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우리를 「드림 소사이어티」로 향하게 하는 시대정신이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블루 오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역사」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한 몸의 공동체로 융합하고 연결하는 일은, 동양의 선진들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대동사회」로 진입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나는 신명을 다 바쳐 이 길을 예비하고 개척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사회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정보공동체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정보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국민총매력(GNC)의 이미지 파워가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제도와 생활양식을 통째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하는 신문명 시대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간에 기득권을 고집하며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는 정략배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묵은 관습의 껍질이 얼마나 누추하게 보이는지! 이제 그만 우리 새로워지자. 새로운 꿈과 이미지로 우리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 EU(유럽연합)의 통합정신을 본받아 우리 아시아권(圈)에서도 각 국가의 지도자들과 인재들이 서로 내면적 소통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기회를 만들어보자. 이를 위한 상징적 대안으로 나는 「2008년 북경올림픽 기념 평화철도 운행계획」을 적극 추진할 것이며, 그리고 이 계획이 성사되면 그때 아키히토 일황 가족들을 「평화철도」의 VIP로 정중히 초대코자 한다. 아키히토 일황과 나루히토 왕세자가 나란히 평화열차를 타고 한반도(남북한)를 거쳐 중국의 수도 북경역에 도착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 과거 「명치(明治)유신」시대였다면 정복자로, 지배자로, 허리에 총칼을 차고 근엄한 얼굴로 입성했을 일황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상황을 잘 분별하고 있는 아키히토 일황은 「명인(明仁)유신」의 화해자로, 섬기는 자로, 만면에 배려 깊은 사랑과 겸손과 양보의 미소를 띠며 평화의 사도로 그곳에 당도할 것이다. (*여기서 큰 고민이 생긴다. 1860년대 도쿠가와 막부 때 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과 조직력을 갖춘 일본의 현 집권당과 정부 관료들이 아키히토 일황의 「명인유신」을 인정하고 그 대열에 순순히 따라 나설지가 미지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미리 알고,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위해 창의적인 개혁의 길을 걸어가고자 꿈꾸는 인재들은 반드시 있으리라! 당시 「명치유신」을 일으킬 때는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경향에 따라 자국의 부국강병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지만(대표적 인물: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화폐 만엔권 도안 인물), 이제는 지구촌 정보사회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세계화 경향에 따라 통합적인 사고의 지도력으로 지역공동체 경제발전 및 집단 안보체제를 이끌어가야 할 시대이다. 꿈과 이미지와 사랑으로 융합하는 퓨전의 정신을 겸비한 신크래틱스(Syncretics) 리더들이 아키히토 일황을 모시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가치개혁을 이루어 나간다면, 이들이야말로 내가 제안한 「명인유신」의 비전을 실천하는 핵심역량의 인재집단이 될 것이다.) 나는 상상해본다. 평화열차를 타고 2008년 북경올림픽이 열리는 중국을 향해 나아갈 때, 한반도(남북한)를 통과하는 아키히토 일황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마도 그는 故 이수현 군을 마음속 깊이 추모하면서, 고인이 보여주었던 헌신과 희생의 정신, 그 사랑의 복음적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려고 노력할 것 같다. 일본을 상징하는 신분으로서 국제평화를 위해 故 이수현 군처럼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어 할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진정으로 그렇기만 하다면, 우린 일본을 용납해야 되지 않겠는가. 일국을 대표하는 왕의 신분으로,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과거사의 과오를 씻어내려고 한다면, 그 점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고 새 시대의 동역자로, 친구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나는 또 고민이 생긴다. 혹시 일부 한국인들이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상기하면서, “중국을 치려니 길을 비켜달라”고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征明假道)」론을 다시 들먹이며, 나를 민족의 반역자쯤으로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인 Open Mind & Network의 물결이,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치고 바다로 나아가듯, 우리를 진보적인 존재가치와 「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고 있음이 자명하지 않는가!) 이로서 일본은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씻고, (독일처럼) 주변국가들과 함께 손잡고 화해하며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거듭난 모습으로 세계 속에 부각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어야만,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주변국가들의 적대적 감정을 해소하고, (일본)스스로 가해자로서 느끼는 가책의 족쇄를 풀고 일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GNC(국민총매력) 강국으로서의  ‘새로운 일본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이 진정한 국제평화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 또한 동북아 평화발전의 새 길을 열어가는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북핵문제도 자연스럽게 고차적인 협상의 단계로 업그레이드(Up-Grade)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리고 평화발전정책을 국가발전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는 중국 후진타오 정부의 위상을 (경제대국에 이어) 외교 강국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획기적인 진보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30년 전에 일본을 방문했던 등소평 주석의 “열정”이 기억난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당시 등소평 주석은 신칸센을 타고 일본 주요도시 여러 곳을 탐방하면서 특히 일본의 과학기술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이 일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근대화를 이루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가. 어쩌면 2008년 북경올림픽에 참가할 아키히토 일황 일행들이 중국의 여러 도시를 탐방하면서 중국의 신경제개발지역과 신기술산업단지를 둘러볼 기회를 가진다면, 그 역시 중국의 저력과 장미빛 미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겠는가. 이 일이 또한 일본과의 새로운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는가. “일본의 이미지를 바꾸라” 비행기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의 내륙으로 진입하자 나는 조용히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지난 3박 4일 동안의 큐슈 여행을 통하여 듣고 보고 느낀 점을 감안하여,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에게 한마디 권면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보니,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 현해탄의 해저터널은, (내가 믿기로) 언젠가는 건설될 것이다. 아키히토 일황께서 그때까지 생존해계셔서 (지금은 후쿠오카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나 쾌속선을 타고 건너가지만) 언젠가 신칸센과 KTX 고속열차를 타고 현해탄의 해저터널을 건너 “도쿄에서 런던까지” 유람하는, 아름다운 「희망의 역사」를 실현하는 기회를 더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한일양국에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조선시대 한일간 교류의 첨병이었던 ‘조선통신사’가 다녔던 도시들을 주축으로 지역주민들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를 TV를 통해서 본 바가 있다. 예를 들면 나가사키, 야마구치 현(縣)과 시즈오카, 하코네 시(市) 등의 주민들은 부산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에 참석해 자기 지역 마쓰리(축제)행사를 선보이고, 또 부산 시민들은 쓰시마, 도쿄 등지를 찾아가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한다고 한다. 2000년에 있었던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 중의 하나로 실행되었던 대륙간 철도여행이, 나의 이번 큐슈여행을 통해 새로운 창의적 대안(‘도쿄에서 런던까지’)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올해 4월말 경에 열리게 될 한국․일본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하여 무엇인가 한일간에 새롭고 진취적인 가치개혁의 지평(地平)이 열렸으면 좋겠다. 비행시간 내내 깊은 묵상에 빠져있던 나는 목적지에 다 와 간다는 기내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눈을 떴다. 옆자리의 아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며 입국할 준비를 한다. “이번 여행, 참 좋았어요. 다음에 또 데려가줘요.” 아내로부터 큰 점수를 땄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한마디 응해주었다. “그래. 우리 늘 함께 다닙시다. 당신 멋져. 사랑해.” 아내가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다. 얼마 있지 않아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영종도에서 산동반도를 바라보는 쪽의 서해바다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현상 때문인가? 오늘따라 유난히 붉은 노을이 피를 토하듯 붉고, 그 아래 「레드 오션」으로 불리울만한 붉은 물결이 대륙풍 바람에 떠밀려 거세게 출렁대고 있었다. (끝)
20    『희망의 역사』11 (이승률20) 댓글:  조회:2819  추천:96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Ⅺ.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에서 삼삼회 창립10주년 기념행사를 마친 우리 일행들은 골프장과 일본야쿠르트사(社) 관계자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후쿠오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주말 서울행 여행객들이 많아져서 공항이 붐비고 또 요즘은 소지품 검사가 까다로워져서 출국수속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출국수속을  밟고 있는 동안 나는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에 근무하는 박용득(재일 조선인 3세) 사무국장께 전화를 했다. 이시이 회장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또한 우리가 함께 논의했던 2008년 북경올림픽기념 평화철도운행계획(“도쿄에서 런던까지”)을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끝까지 힘을 합쳐 나가자는 뜻을 다시 한번 진중히 전달해주기를 요청했다. “박 국장님,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낯설지가 않고 집안 친척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서로 돕고,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남 같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재일 조선인 3․4세들이 장차 이중국적을 갖고 한일간 관계 개선을 위해 퓨전반도체(*삼성전자에서 최근 개발한 신기술 제품)의 칩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출국 수속을 끝내고 쇼핑점에서 손자 녀석에게 줄 선물(과자류)을 고르고 있는데 한국에서 장거리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부산발전연구원에 있는 실무자 한 분이, 4월 말경에 있을 한일간 국제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해줄수 있겠는가 하는 문의를 해왔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해저터널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일본과 부산 지역 간의 교통물류 확대발전 방안을 토론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쾌히 승락했다.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마도 지난해 11월 초, 부산시청이 주최했던 제1회 국제한상세미나에 초청되어 가서 “동북아 물류중심도시로서 부산의 발전방안”을 발제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가 보다. 그때 부산시 관계자들과 전문인력 및 시민 청중들 앞에서  “부산(釜山)이 발전하려면 부산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일간에 해저터널을 뚫고, 거제도(巨濟島)와 쓰시마(對馬島)를 묶어 상호출자형 한일공동자유무역지대로 만들면서 부산 신항과 신국제공항을 연결하여 부산만 일대를「거부(巨釜) TRI PORT」로 육성하는 것이 21세기형 국제항만도시로서의 부산 발전방안이라고 본다. 이래야만 부산이 일본과의 역조를 뛰어넘고 뒤따라오는 중국과 상해 신항(新港)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아무튼,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이를 평가하여 한일간 국제세미나에 다시 발제자로 초청해주겠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세미나에서는 내가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한일간 해저터널건설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고 하지 않는가. 비행기 탑승시간이 됐다. 일행들은 기내 좌석에 앉자마자 대부분 눈을 감고 쉬는 모습이다. 며칠간 계속 운동을 했기 때문에 많이 피로했던 것 같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호텔 온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전에 힘을 모으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깊은 묵상에 빠져 들어갔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3박 4일간의 행적이 하나의 원형도표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떠오른다. 첫날 저녁, “당신 멋져”라는 건배 구호를 외치며 기분 좋게 출발했던 만찬 분위기. 다음날 오후, 바쁘게 콜택시를 타고 가서 만난 이시이 회장과의 뜻 깊은 대화 ― 일본과 네덜란드 교류 400주년을 기념하는 24일간의 대륙 철도여행, 부산․후쿠오카 간의 1일 생활 문화현상, 그리고 마침내 “도쿄에서 런던까지” 이어지는 북경올림픽 기념 평화철도계획에 대한 논의 등이 꿈결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셋째 날 아침, 새벽 온천에서 느낀 카타르시스의 경험과 말할 수없는 영적 기쁨의 힘, 그날 낮에 18홀을 돌면서 12번이나 벙커에 빠져 쩔쩔맸던 모습. 산기슭 언덕에 외롭게 피어있던 늙은 매화나무 가지의 작은 꽃잎들, 그리고 밤늦도록 “설중한매와 진달래”의 향기에 젖어 만취했던 저녁 만찬. 만찬 이후 온천장(옥외탕)에서 만난 신지 사장과의 대화 ― 故 이수현 군에 관한 영화 이야기, 아키히토 일황의 약속과 평화주의자로서의 이미지, 인시아드(INSEAD) 김위찬 교수의 「블루 오션 전략」복습, 그리고 마침내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명인 유신」의 제안 등이 천둥처럼 뇌리를 울린다. 마지막 날 아침, 카네자키 항에서 현해탄을 바라보며 올린 새벽기도, 함께 믿음의 고백을 나눈 부부애, 그리고 (어깨가 아파서) 마음을 비우고 몸의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을 한 결과 싱글에 가까운 실력(83타)을 회복한 마지막 라운딩. 이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파노라믹하게 망막에 떠오른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의식의 흐름이 굽이치는 강물처럼 뇌리 속을 엄습한다. 지난 5월 중순 (터키 에베소에서 열린) 유럽CBMC 대회를 가는 도중에 들렀던 두바이 지역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꿈꾸는 지도자가 나라를 살린다” 이 말은 두바이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를 일컫는 말이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사막과 바다에 세계 최고급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불세출의 인물이다. 단적인 예로 70㎞ 해안을 1,700㎞로 늘리는 기적을 연출했다. 바다를 메워 세계지도를 본떠 대형 공원을 만든 후, 해당 국가의 기업인들에게 휴양지로 팔아먹는 상술이다. 그는 정치지도자라기 보다는 유능한 CEO에 가까운 통치자다. 또 꿈을 팔아먹는 기가 막힌 천재가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社)의 빌 게이츠 회장은, 지난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IT전시회인 ‘CES 2007’의 기조연설을 통하여, MS(마이크로 소프트)가 수년간 공들여서 만든 신상품인 ‘가정용 윈도 비스타’를 소개하면서, 소비자들이 모든 종류의 컴퓨터와 준(MP3플레이어), X박스(게임기)뿐만 아니라, 이제는 거리에서도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전제품과 연결되는 ‘윈도 홈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각종 기기를 연결해서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연결된 경험(connected experiences)’이라고 표현하면서 “융합하고 연결하라, 꿈의 디지털 세상이 우리 곁에 펼쳐진다”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가전제품을 위시한 모든 하드웨어가 24시간 연결된 상태에서 생활하게될 신세계의 꿈을 팔아먹겠다는 내용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팔아먹을 것인가? 우리 동북아 3국에 ‘두바이의 기적’과 같은 일을 실현할 만한 대안은 없는가? 또 빌게이츠의 ‘꿈의 디지털 세상’과 같은 신기술상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다팔 수 있는 재능은 없는가? 우리 한중일 3국이 힘을 합하여, 이런 일을 감당할만한 창의적인 인재집단을 키워낼 수는 없을까? 지속적인 가치개혁과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을 한데 융합하고 연결하는, 동북아 블루 오션의 새로운 인프라 스트럭쳐(new  infrastructure)를 구축할만한 야심과 기개는 없는가? (계속)
19    『희망의 역사』10 (이승률19) 댓글:  조회:2977  추천:84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Ⅹ. 마지막 날(넷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카네자키 항으로 갔다. 지난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아내를 설득한 후 호텔 프론트에 내려가서 콜택시 하나를 (새벽에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부탁해 놓았었다. 현해탄을 바라보며, 직접 그 푸른 바다의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네자키 항은 호텔에서 차량 거리로 불과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항구는 아직 날이 깨지 않아 어둡고 조용했다. 선착장 입구의 주차장에 택시를 주차시켜 놓은 후 나와 아내는 일본인 운전기사의 안내로 부둣가로 다가갔다. 새벽 조업을 하기 위해 어부들 7-8명이 두 척의 고깃배를 드나들면서 출항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부둣가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비친 어부들의 표정이 조금은 긴장되어 보이는 기색이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숭고하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제공해줄 것인가. 택시기사에게 저들이 주로 어떤 고기를 잡느냐고 물어봤더니, 손수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아라까부’라는 고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큰 것은 1마리에 500¥까지 팔린다고 하면서, 해안으로부터 5~1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릴낚시로 조업을 한다고 했다. 출항준비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차츰 수평선 저 너머 멀리서부터 날이 밝아오는 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탁본을 뜰 때 나타나는 글자와 그림처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해탄의 새벽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이 현해탄의 해저에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항공과 해운으로만 운송되던 물류가 철도와 도로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서 빙산의 일각으로 교류하던 수준을 뛰어 넘어, 수면 속에 잠복되어 있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의 잠재능력을 총체적으로 시너지화 할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주십시오. 상품과 기술과 문화와 자금과 인력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교류협력 할 수 있는 자유무역의 새 길을 열어주십시오. 새 시대, 새로운 역사발전을 위한 대동맥의 통로를 열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과거사로부터 떠밀려온 한일간 레드 오션의 운명을 미래지향적인 블루 오션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변화시켜 주십시오. 서로의 장점을 나누어 가짐으로서, 서로의 강점과 비전을 창의적으로 융합함으로서 더 큰 진보를 이룩해가는 창조적인 가치개혁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블루 오션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동북아의 새로운 새벽을 깨우는 현해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먼동이 트는 바다를 응시하며, 뜨거운 울음을 삼키듯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아내가 곁에서 팔로 내 등을 감싸안은 채 함께 마음을 모아주었다. 하늘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항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 날이 열리는 현해탄의 푸른 파도가 더없이 정답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마침내 조업을 준비하던 고깃배 두 척이 선착장을 떠나 출항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손을 흔들어주며 그들의 하루 일과를 축복해주었다. 선착장에 오래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어 주차장으로 가서 택시를 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또 한번 이렇게 속삭였다. “나, 잘했지.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것 같아. 그리고 당신 멋져.” 예고 없이 새벽 일찍 요란(?)을 떨며 데리고 나온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해서 한 말이다. 아내는 처음에는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나”하는 투로 생각했지만, 막상 카네자키 항에 와서 현해탄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기도할 때는, 남편의 생각과 뜻이 자신에게도 전해져서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일체화되는 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히브리서 11장 1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하면,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바라는 바 꿈과 소망이 하나님 뜻 안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믿음이 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일간 해저터널」이 한일간의 관계개선과 동북아 평화발전의 공동선을 창출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하는 것을 면밀히 목도하고 싶어진다. 나는 택시 안에서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우리들의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면서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왔다.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그런지 아침 조찬이 더욱 맛있었다. 우리 삼삼회 일행들은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다음 어제 갔던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으로 다시 갔다. 36홀 골프장이라서, 어제와는 다른 코스로 라운딩을 했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스코어도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좋게 나왔다. 함께 라운딩을 했던 이은선 회장께서 칭찬을 해주셨다. “이 부총장은 몸이 불편하다 하면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을 비워서 그런가, 스윙 폼도 부드럽고 퍼팅 감각도 매우 안정되어 있어.” 이 말씀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안정되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라고 누군가 말해주던 것이 기억났다. 개인 간에, 단체 간에, 국가 간에도 이러한 절제의 미학과 능력이 잘 훈련되어서 각자의 컨디션을 안정되게 이끌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가 잘나서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깨가 몹시 아파서 어쩔 수없이 하프 스윙 정도로 한다는 게 마음을 비운 꼴이 되어 결과적으로 플레이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런 깨우침이 들자,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에 관한 일화가 다시 생각났다. 그는 일본 「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자로서, 일본인들이 뽑은 지난 1천년간의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흔히 일컬어지고 있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3가지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 : 11세에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다. 둘째 : 어릴 적부터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늘 건강을 조심하여 95세까지 장수(1894-1989)할 수 있었다. 셋째 :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한 후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배움에 겸손하게 되어 그 결과로 경영의 귀재(National 社,  Panasonic 社 운영)가 되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겸손히, 성실하게 정진해 나간다면, 그 아픔과 약점이 우리의 인생을, 기업을, 국가를 오히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터닝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얼마 전(EU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arkel)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방문하고 남긴 글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과오와 약점을 인정하고 주변국가와 함께 손잡고 화해의 길로 나선 독일 덕분에 지금 유럽은 국경도 허물고 각종 제도를 통일시켜 가면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나란히 2차대전의 전범국가였던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또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크게 각광 받는다. 반면에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을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고이즈미 전(前)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도 그랬거니와, 아베 현(現) 총리의 종군위안부 발언만 해도, 주변국가의 만류와 우려를 무시한 채 국제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고서야 누가 일본 총리의 리더십을 존중해 주겠는가? 도대체 무엇이 독일과 일본을 이렇게 차이나게 만드는가?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의 마지막 코스를 라운딩하면서 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과 독일의 경우를 교훈삼아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절제하는 미덕으로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자신의 아픔과 약점과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면서, 겸허하게 이웃과 벗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정신으로 공동선을 이루어 나간다면, 동북아 평화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블루 오션의 대로가 열리지 않겠는가? (계속)
18    『희망의 역사』9 (이승률18) 댓글:  조회:2751  추천:59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Ⅸ.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온 우리 일행들은 간단히 온천을 마친 다음 2층에 있는 일본식당 오토메(浜乙女)에 모여 큐슈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다. 조선인 3세(女)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름을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었지만, 우리를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평일에 한산했던 호텔이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이 오토메 식당도 손님들로 가득 찼다. 호텔 투숙객보다 일반 손님들이 더 많았고, 그들 대부분은 회식을 하기 위해 온 일본인 직장단체팀들이었다. 좌장격인 이은선 회장께서 저녁 만찬을 위해 내게 건배사를 해주기를 요청하셨다. 나는 현해탄 해안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소감을 잠시 이야기 한 후, 누구에게나 다 내일을 향한 꿈을 갖고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진달래’ 구호를 선창했다. “진정으로 달콤한 래일(내일)을 위하여” 술잔이 오고가면서 “위하여(與), 위하야(野), 위하세(世), 위하고(高)” 등등의 후렴이 계속 터져 나왔다. 오늘 술(정종)은 김경철 회장께서 만찬을 위하여 낮에 쇼핑할 때 준비해놓으신 것인데, 식당 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뒤 사용했다. 술병에 붙어 있는 상표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 「설중한매(雪中寒梅)」 홀연히 나는 오늘 낮에 라운딩을 하던 중에 보았던, 산기슭 후미진 곳에 외롭게 서있던 늙은 매화나무의 잔가지에 피어난 작은 꽃잎들을 다시 한번 망막에 떠올렸다. 새삼스레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뇌리 속으로 한가닥 영감의 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설중한매와 진달래」 어쩌면 이 두 가지 소재는 오늘날의 동북아 시대상황을 적절히 대변하는, 새봄을 알리는 첫 화신(花信)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끝나기 전, 아직도 눈이 덮여 있는 산골짜기에 찬바람을 맞으며 피어나는 매화의 꽃잎처럼, 지난 2월 13일 북경에서 타결된 6자회담의 공동성명은, 어쩌면 아직도 많은 의구심과 살벌한 탐색전이 남아 있는 한랭전선 속에 피어난, 새로운 협상과 해결책을 위한 작은 신호가 아니겠는가? 「악의 축」이라고까지 불리던 저 엄혹한 동토의 대지 위에도 새 봄의 꽃은 피려나? 「설중한매」의 향기에 취하여 술기운이 고조되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한번 건배사를 외쳤다. “진달래! 진정으로 달콤한 한반도의 내일을 위하여 건배!” 술기운 탓인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김소월(金素月)이 노래한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을 속으로 암송해봤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저렇게 아름다운 영변의 땅 속에 핵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재앙의 불씨가 숨겨져 있다니! “오, 하나님! 영변의 약산 진달래가 진정으로 달콤한 한반도의 내일을 위한 새봄의 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칠천만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즈려밟고 가도 좋을, 핵이 제거된 그 땅을 넘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달려갈 수 있도록 새 봄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 다시 한번 일본과 한반도와 중국이 실질적인 평화체제의 한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우리 모두를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십시오.” 「설중한매」의 향기에 취하고, 「진달래」의 감동에 취하여 그날 밤 나는 크게 만취하였다. 식당마감시간인 밤 10시가 지나서야 우리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들과 헤어진 후 나와 아내는 어제 밤처럼 또 중정에 나가 산책을 했다. 벤치에 앉아 아내를 내 가슴에 끌어안고 한참동안 잠자듯이 휴식을 취했다. 마음에 큰 위로와 행복이 넘쳐났다. 아내의 제안으로 우리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휴게실 안마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몸을 풀고 나서 또 온천을 했다. 우리 내외만큼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온천을 하면 심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크게 증대되는 것을 느낀다. 일본에 여행을 올 때마다, 일본에서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일본의 온천 문화다. 이 겐까이 로얄호텔의 온천장도 수질이 뛰어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애용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천장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또 옥외탕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옥외탕에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반신욕을 하면서  시원한 밤공기를 가슴 속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내뿜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술기운이 확 깨고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심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인간의 폐를 펼쳐 놓으면 정구장 크기만큼이나 된다고 한다. 호흡을 깊고 길게 하는 훈련은 폐활량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잠재된 정신력의 깊이를 확장하는데 매우 좋은 훈련이 된다. 이는 마치 깊은 샘에서 청량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얼마동안 심호흡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3․40대로 보이는 일본인 두 사람이 조용히 옥외탕 안으로 들어와 앉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심심하던 차에 그들 곁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미숙한 영어이지만, 웃으며 천천히 말을 건넸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영어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를 느끼고 도망치듯 피하는 게 예사인데, 두 사람 중 한 분이 다행히 영어를 잘 알고 있어서 나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의 이름은 신지 오야마, 나이는 38세, 원래 고향은 나라 현(縣)이었으나 지금은 나가사키 시(市)에서 살고 있고, 그곳에서 무역상을 하고 있으며 7살난 아들 한명이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다른 또 한 분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도서출판회사의 중역으로  있으며, 나이는 45세, 고향은 오사카 태생이고 이름은 나까무라 겐죠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밤에, 이번 큐슈여행 중 일본인들과의 만남 가운데 (이시이 회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여겨질 만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대화는 주로 신지 사장과 나누었으며, 30분 넘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신지 사장은, 내가 나가사키市를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도시라고 추켜세우고, 또한 네덜란드와 큐슈 간의 교류가 일본 근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가사키市 부근에 네덜란드 풍으로 건설한 신도시 「하우스텐보스」야말로 동서문화의 융합을 대표할만한 국제문화자산이라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자 기분이 좋았던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계속 싱글벙글거렸다. 이렇게 되자 그도 내게 친근감을 나타내며, 6년 전에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해놓고 숨진 한국인 유학생 故 이수현 군에 대해 칭찬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대뜸 이수현 군을 기리는 추모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되었는데, 그걸 봤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방영되지 않았다고 대답해줬다. 그러자 신지 사장은 요즘 일본 여성들 사이에 우상이 되어 있는 몇몇 한국 연예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들보다 이수현 군이 얼마나 더 훌륭한 사람인가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나는 일본 남성들이 한국 연예인 인기남들을 싫어하고 견제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성격이 매우 활달해 보이는 신지 사장은, 이수현 군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계속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지난 1월 26일, 故 이수현 군의 6주기를 맞아 한국과 일본이 합작해서 만든 추모영화 시사회에 일본 천황 부부가 참석한 사실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다는 뜻을 나타냈다. “It's great, It's great!" 신지 사장은 연거푸 이렇게 외치듯 말했다. 이수현 군의 선행도 훌륭하지만, 일본 천황이 이수현씨 부모와 5년 전에 한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매우 중시하는 어투였다. 그의 얼굴에 일본인 특유의 애국심이 번졌다. 나도 이수현 군에 대한 뉴스를 국내 언론을 통해서 여러 번 듣고 있어서 잘 알고 있던 터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약 한 달 전쯤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기억이 났다. “「너를 잊지 않을거야」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이날 오후 도쿄 일본 소방회관에서 공개됐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이수현씨가 숨진 이듬해 고인의 부모를 도쿄 왕궁으로 초청해 위로했다. 이때 이수현씨 추모영화가 만들어지면 시사회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신지 사장은 옥외탕의 물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그가 「나라」현 출신이라서 그의 선조가 혹시 백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인인 내게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본 천황이 한국 관련 민간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일본 황실이 한일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일황의 이런 행보가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일본 정부요인들이나 우파 집단에 대해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평소 일본인들이 황실의 근황에 대해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나는  지난 1월 중순경에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우정의 가교 콘서트 2007’이라는 행사에 일본의 나루히토(德仁)왕세자가 비올라 연주자로 직접 참여했다는 뉴스를 인터넷신문에서 본 바가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왕세자는 연주를 마친 뒤 무대에 올라가 “대단히 귀중한 경험을 얻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중․일 3국의 우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례적인 즉석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읽어서 기억하고 있다. 또한 (내가 알기로) 아키히토 천황이 2005년 6월 사이판 섬을 방문했을 때, 그 행사일정 첫 번째 순서로 한국평화기념탑을 참배한 바 있으며, 여러 차례 일제 군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를 사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또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세계 속에서 일본 황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하는 등 ‘평화주의자’로서의 인식을 높여주었다는 평가를 들은 기억이 났다. 신지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일본의 국민들이 아키히토(明仁) 일황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를 무척 존경하고 있으며, 또한 고이즈미 전(前)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서 군국주의 패권의식을 조장하려고 했던 사실에 대해 황실이 결코 동의하지 않았음을 (내게) 알려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지 사장과 그의 동료는, 끝으로, 이수현 군의 추모 영화제목을 인용하여 내게 “이 선생님, 저도 이 선생님을 잊지 않을 겁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넨 후 조용히 먼저 온천장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나는 한참동안 멍한 상태로 그냥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온 얼굴과 가슴에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어쩌면 아키히토 일황이 바라는 한중일 3국 간의 평화는 진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수현 군의 6주기에 참석하여 5년 전에 이군의 부모들과 약속했던 바를 지켰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든 심경적 진실이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단연코) 이수현 군이 보여주었던 희생적인 사랑의 능력이 일황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또 이러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이야말로 앞으로 이 시대 한중일 3국 간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았다. 이러한 ‘황실의 판단’은 나로 하여금 이번 큐슈여행을 통해 줄곧 생각해왔던 동북아시대 「희망의 역사」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수현 군이 우리에게 보여준 헌신과 희생의 정신, 그 사랑의 복음적 능력이 곧 우리 시대의 현안 문제를 풀어가는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나는 차제에 일본 황실과 일본 정부에 대해 감히 이와 같은 제안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최근에 세계경영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책이 하나 있다. 제목이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인 이 책은, 2005년 2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판사에서 발간된 이래 182개국에서 32개 언어로 번역되는 초(超)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자인 김위찬 교수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럽경영대학원(INSEAD) 석좌 교수로 있으며, 한국 출신이다. 이 책의 주제인 블루 오션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산업분야는 레드 오션(red ocean)과 블루 오션(blue ocean)의 두 가지 시장(市場)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드 오션은 유혈의 경쟁공간이자, 시장 참가자들이 제한된 포화(飽和)시장을 놓고 목을 조이는 출혈경쟁을 벌인다. 반면 블루 오션은 가치혁신을 통해 다시 창출된, 새로운 시장공간이다. 전혀 새로운 가치 도약을 통해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김위찬 교수는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늘 이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김위찬 교수는 그의 신실한 파트너인 마보안 교수(INSEAD)와 함께 지난 120년 동안 역사에 기록된 동서양의 혁신 사례를 조사해 보았는데, 그 결과 전략적 사고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전략적 사고에는 ‘환경 결정론’과 ‘재구축주의’의 두 가지 패러다임이 있다. 그리고 혁신에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후자 쪽이며, 그들은 가치혁신을 통해 환경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아예 환경자체를 새로 구축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경쟁으로 붉게 물든 유혈의 바다에서 벗어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신세계로 나아가는 전략 ― 블루 오션의 사고방식과 방법론을 먼저 체득하는 기업과 국가가 21세기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는 김위찬 교수의 「블루 오션 전략」을 여러 번 탐독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창조경영이야말로 이 시대의 화두이며, 나아가 한중일 3국 간에도 이와 같은 가치혁신의 창조적 대안을 적용해 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의인(義人) 이수현 군이 우리에게 남겨두고 간 진실은 무엇인가? 일본 천황이 5년 간을 기다리며 애써 지키려고 했던 그 약속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수현 군과 아키히토 일황의 영적 만남으로 나타나는 이 참된 사랑의 능력, 이 배려 깊은 사랑의 능력이야말로 앞으로 우리들의 과거사 속에 맴돌고 있던 레드 오션을 벗어나 미래의 푸른 바다 ― 블루 오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힘이요 그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근대화를 성공시킨 명치유신은, 그것을 주도한 인물들이 대부분 사무라이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이미 「레드 오션」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경쟁과 승부를 통해,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유혈의 권력투쟁 속에서 개인의 영달과 국가의 위업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로 그들은 일본을 세계 제2의 경제대국과 군사강국으로 만들었지만, 그들 자신의 속성 때문에 지금 벗어나기 힘든 한계 속에서 맴돌고 있다. 지난날에 있었던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과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도 일본은 패권의식과 국수주의적인 지배욕과 우익집단의 편견 때문에 군비를 재확충하고 기술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동북아 국제사회에 예기치 못한 심각한 갈등과 긴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김위찬 교수의 이 역설적인 메시지가 이 경우에도 명쾌하게 적중하리라고 본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다시 한번 선진국가로서의 진정한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국민의 마인드 세트를 블루 오션 형(型)으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시대 이래 인류가 지켜왔던 문명의 세계에는 다음 두 가지 가치론이 있다. 하나는 소유가치요, 다른 하나는 존재가치이다. 전자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에 이끌리는 가치요, 후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고, 만일 자기 욕심대로 살면 끝내 죽고 말 것이다. 선한 가치를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다시 살고,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결국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도덕적인 지상명령(至上命令)이 있다. 나는 (또 비약하는지 모르겠지만)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가운데, 이수현 군을 추모하는 영화 시사회에 오신, 아키히토(明仁) 일황께서 어쩌면 속으로 이렇게 조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수현씨, 나는 당신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대가 흘린 고귀한 희생의 피, 그 아름다운 사랑의 혼이 나를 감동시켰고 또 우리 일본 국민 전체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당신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일본이 다시 한번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나는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이수현씨, 나는 앞으로 이런 정신으로 내 생애를 다하기까지 한일간의 관계 개선과 동북아와 세계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면서, 새로운 국제평화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이 우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이 길을 지키며 걸어가겠소!” 다시 한번 나는 여기서 감히 제안한다. 만일 아키히토 일황께서 진심으로 그렇게 반성과 감사의 마음을 다해 이수현 군을 추모해주셨다면, 나는 그분의 연호(年號)를 좇아 이 2007년 1월 26일을,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과 용서와 화평의 감동이 넘치는 새로운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나아가는 “明仁유신의 첫 날”이라고 선포하고 싶어진다. 1867년 12월 9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이 떨어진 날로부터 시작된 명치(明治)유신의 항로가 사무라이 식(式) 무사도정신과 군국주의가 판을 쳤던 지배욕구의 소유가치에 물든「레드 오션」의 길이었다면, 이제 2007년 1월 26일,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영화로부터 시작한 “명인(明仁)유신”의 항로는 21세기 국제사회의 새로운 가치 창조 ― 즉, 쌍방간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면서 각자의 Identity와 Image를 창조적으로 극대화시켜나가는 희망찬 「블루 오션」의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야말로 마땅히 우리 동북아시대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이끌어나갈 「희망의 역사」가 되어줄 것이다. 땀을 비오듯 쏟으며, 단전호흡을 하는 자세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검푸른 하늘이 열려 있고, 거기 높은 하늘 위에 별들이 보석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계속)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