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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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희망의 역사』8 (이승률17) 댓글:  조회:2897  추천:87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Ⅷ. 일본야쿠르트(주)에서 운영하는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은 개장된 지가 30년이 넘는 골프장이다. 클럽하우스 시설은 낡고 규모가 작아서 시대에 뒤쳐져 보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LPGA를 개최할 정도로 이곳 큐슈지역에서는 전통적인 명문 골프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우리 일행들이 도착하자 골프장 사장과 지배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준비해간 선물(한국산 인삼 엑기스)을 증정해드린 후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한국야쿠르트(주)에서 오랫동안 대표이사를 역임하셨던 이은선 회장께서, 1969년에 일본야쿠르트(주)와의 기술제휴를 통해서 합작 설립한 한국야쿠르트(주)의 발전사를 자세히 소개해주셨다. 그동안 꾸준히 지속되어온 양사간의 변함없는 우정과 성실한 동반자관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유를 발효시켜서 만든 야쿠르트처럼 우리 한일간 역사발전에도 지속적인 우정과 동반자의식을 발효시키는 신물질(?)과 같은 어떤 새로운 대안을 하나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운딩을 하는 동안 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온화한 날씨에 푸르고 맑은 하늘이 참으로 쾌청했다. 그동안 왼쪽 어깨의 통증(2년 전부터 회전낭대파열이 생겨서 지금까지 큰 고생을 하고 있다)으로 오랫동안 골프를 못했는데, 이번 큐슈 여행에서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경기 내용이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그날따라 유난히 타구가 벙커에 많이 들어가서 애를 먹은 점이다. 18홀 코스에서 12번이나 벙커에 들어갔으니, 같이 라운딩을 하던 이인혁 회장께서 “이 부총장은 왜 그리 벙커를 좋아하시오”라고 놀릴 정도였다. 공이 자꾸 벙커에 빠지자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한 핵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씨름을 해왔던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북경에서 극적인 타협을 보게 되어 앞으로 북미간․중미간․남북간․북일간에 상당한 수준의 해빙무드가 조성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2.13 공동성명은 골프로 치자면 벙커에 빠진 공을 쳐서 겨우 페 어웨이로 옮겨 놓은 상태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우선 기분은 좋지만 앞에 여전히 험난한 코스를 남겨두고 있지 않는가? 러프와 해저드와 OB라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벙커도 여기 저기 남아 있어서 또다시 모래밭에 공을 처박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이와 같이 험난한 코스의 절반도 돌지 못한 상태에서 당사국들이 내기 게임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그런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골프장을 계속 라운딩하면서 나는 벙커에 공이 빠질 때마다 6자회담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각국의 협상 당국자들이 상호간에 얼마나 힘든 게임을 벌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제 북경 6자회담이 이루어놓은 2.13 공동성명은 동북아정세에 따뜻한 새봄을 예비해준 셈이다. 동토의 대지에도 조만간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주변국가와 세계 앞에 평화의 잔치를 베풀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추구하는 평화는 진정 어떤 평화인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어쩌면 2.13 해빙의 급물살에 덤벙대다가 대한민국이 저 멀리 떠내려가는 위험한 비극의 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코스 이동을 하다가 문득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골프장 곳곳에 새봄을 알리는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자연의 새 봄이야말로 인위적으로 가꾸는 한반도 해빙의 봄과는 사뭇 다르리라. 특히 산기슭 후미진 곳에 내가 좋아하는 매화가 피어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푸른 잎 사이로 많은 꽃을 달고 있는 나무는 역시 동백이었다. 겨우내 계속 피는 동백의 붉은 꽃잎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 곁에 외롭게 서있는 매화나무의 잔가지에 피어있는 작고 흰 꽃잎의 품격이 내 마음에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찬 눈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일지매(一枝梅)의 고아한 기상, 그 아름다운 절개(節槪)의 미(美)를 감탄하는 마음이야 한일간에 공통된 감성이 아니겠는가! 복숭아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여기저기 우뚝 서있는 목련과 벚나무의 가지에 이제 막 꽃망울이 맺히고 있는 모습 또한 귀하게 보였다. 봄에 나뭇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누가 마술을 부리는 듯하다. 생명이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저마다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자유롭게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다. 자연의 개체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명도 이러하리라. (생각이 자꾸 비약하는지 모르지만) 이번 큐슈 여행은 본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자유와 평화의 꿈을 일깨워주는 멋진 여행으로 인식된다. 오후 일찍 라운딩을 마친 우리 일행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두 군데 명소를 구경하러 다녔다. 먼저 간 곳은 -----에 있는 「龜의 尾」라는 상표를 내걸고 정종을 만드는 술도가였다. 한 집안에서 290년간 대대로 이어왔다고 한다. 전통의 미학이 예술처럼 느껴지는 명문주가였다. 소문난 그대로 술의 종류가 다양했고 (종류마다 조금씩 맛을 봤는데) 맛과 향기도 뛰어났다. 두 번째로 옮겨간 곳은 ------에 있는 쇼핑센터였다. 대규모 할인매장으로 실용적인 상품들이 많았다. 함께 쇼핑하는 중에 이은선 회장께서 또 한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이 물가가 10년 전과 똑같아. 그만큼 일본의 과거 물가가 비쌌고 거품이 많았다는 증거야. 그러다가 버블현상이 붕괴되면서 경기침체가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고생 끝에 이룬, 기초가 잘 다져진 기반같아. 이런 기반 위에서 경제가 다시 발전한다면 결코 우리가 따라잡지 못할지도 몰라.” 아내가 「패션 안경」을 하나 고르려고 하자 종업원이 아내의 시력과 얼굴형에 맞춰 열 개도 넘는 안경테를 꺼내놓고 재료와 타입에 대해서 하나씩 자세히 설명해준 후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도록 끝까지 친절하게 잘 처리해주었다. 아까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마친 후 캐디가 골프백 정리를 할 때 골프채 14개를 다 꺼내놓고 하나씩 끝까지 정성스럽게 닦아주던 모습이 연상된다. 마무리 공정이 뛰어난 일본 제조기술산업의 특성이 온 국민들의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는 듯 했다. 새삼스럽게 일본인들의 「친절과 정성」에 대해 실감나는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언젠가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미국인 장군이 독일인 참모를 데리고 일본인 사병을 지휘하는 군대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약한 군대는, 중국인 장군이 일본인 참모를 데리고 이탈리아인 사병을 지휘하는 군대이다” 각 국가의 국민성을 잘 반영한 말로 들렸는데, 세계 최강 군대의 일본인 사병은 이해가 되나, 세계 최약 군대의 일본인 참모는 이해가 잘 안되었다. 아마도 중국인은 조직적인 리더십이 부족하고 일본의 참모진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맹종만 했지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융통성 있는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것 같고, 이탈리아인은 다들 개성이 강해서 제멋대로 놀기 때문에 통솔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정도로 해석해볼 수밖에 없었다. 또 얼마 전에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님 설교 테이프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본인이 과거에 화장품회사 외판원 시절을 거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배운 바로, 일본 여성들은 기초화장에 충실한 반면에 한국 여성들은 색조화장술이 뛰어나며, 미국 여성들은 얼굴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머리카락, 손톱, 발톱관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였다. 외국에 나오면 자국과 타국을 비교하는 얘기를 자주하게 된다. 일행들이 쇼핑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아내가 최근에 사회교육(SERI CEO 강좌)을 통해서 배운 얘기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한중일 3국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일본은 섬나라이고 영국을 성장모델로 삼았으며, 매우 보수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정밀분야 생산력에 강하다. 한국은 반도국가이고, 이태리와 기질 및 성향이 비슷하며, 매우 진보적이고 융통성과 창의적인 응용기술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중국은 대륙국가로서 미국과 같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용광로와 같고 융화적이고 다양성이 뛰어나며 응집력이 강하다. 특히 한국인의 기질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스피드가 빠른 반면에 조급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성에 민감한 반면에 변화기복이 심하고, 신명이 있어서 흥이 많아 응원문화가 발달했으며, 남에게 지기 싫어하거나 또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과거에는 체면문화, 오늘날에는 성형문화가 횡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지는 놈은 죽어야하고, 못난 여자는 여자도 아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지경까지 되었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일행들은 나의 특별한(?) 제안을 받아들여 현해탄을 끼고 있는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했다. 푸른 송림과 검은 암석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해안으로 현해탄의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현해탄을 가깝게 접해본 우리 일행들은 기분이 동(動)해서 모두 대포라도 한잔 하자는 의견이었다. 혹시나 선술집 같은 게 있나 해서 바닷가 근처 동네를 여기저기 찾아다녀 봤지만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술파는 집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 부근에서 가장 이름 있는 항(港)이 카네자키 항(KANEZAKI PORT)인줄을 알게 되었다. 릴낚시를 하는 어부들이 주로 어업활동을 하는 조그만 항구였다. 북동쪽으로 세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작고 평온하기 짝이 없는 아름다운 항구였다. 내 생각 같아서는 혼자 남아서 배를 빌려 타고 저 멀리 바다 안으로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일행들을 감안해서 꾹 참았다. 되돌아오는 해안 길이 점차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왠지 내 마음에 찡한 슬픔이 밀려왔다. 푸른 송림이 우거져 있는 절벽 아래 해안선을 따라 검은 암석을 때리며 하얗게 울부짖고 있는 현해탄의 파도가, 떠도는 재일동포들의 한을 노래하고 있는 듯해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저 길을 뚫자. 저 현해탄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어 역사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재일동포들의 인생에 쌓인 한을 풀어드리자. 죽은 혼령들조차도 마음껏 자유롭게 고국을 드나들 수 있도록 대로를 열어보자. 거기에 한일간 역사발전의 새 길을 열어보자. 동북아시대 국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기획하여 상호간에 새 시대의 희망을 창출하는 기적의 새 날을 열어보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넘실대는 현해탄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서 신음을 토하듯 이와 같이 다짐했다. (계속)
16    『희망의 역사』7 (이승률16) 댓글:  조회:2613  추천:88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Ⅶ. 셋째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대로 곧장 온천장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나는 실내탕보다 건물 바깥에 만들어놓은 연못형의 옥외탕(‘岩風呂’)을 더 많이 애용했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서서히 밝아오는 새 하늘의 여명을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폐부 깊숙이 시원한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없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때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묵상에 한번 빠져보라! 새벽에 옥외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용하기도 하려니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은 묵상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아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때 느끼는 특별한 인식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표피적인 감각 즉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부를 보고 느끼는 정도의 감각이 아니라, 물속에 잠복되어 있어서 그 깊이와 부피를 알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힘의 세계에 이르는 인지능력을 체득하게 해준다. 그날 아침 나는 30분이 넘도록 반신욕을 하면서 조용히 묵상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 특별한 인식을 통하여 자아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능력을 훈련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온천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아랫배(단전)에 힘을 모으고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땀을 줄줄 흘리듯) 하나씩 정리해나가다 보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평소에 잘 깨닫지 못했던) 영적 기운이 온천수처럼 뜨겁게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새로운 영적 기운은 강력하고 순수하며 몰아적인 힘을 증대시키면서 자신의 폐쇄적인 아집의 틀을 뛰어넘도록 만드는, 무소부재에 가까운 소통의 감흥을 불러일으켜준다. 이것을 나는 개체의 한계를 벗어나 자타를 함께 공유하는 대아(大我)의 경지라고 부르고 싶다. 이 대아의 경지를 통해 우리는 자타의 존재가치를 더욱 확장해서 이해하게 되고, 마침내 “인류 공동선”이라고 부를만한 보편적인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습득하게 된다.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한동안 새벽 묵상의 재미에 빠져있던 나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환하게 밝아진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옅은 구름이 새의 깃털처럼 표표히 떠있는 광경이다. 오늘도 날씨가 무척 좋겠다는 감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염원을 가져보았다. 우리 한중일 3국간에도 국민적 감성 즉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의 기복을 통하여 쌓여진 민족의식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한 통합적인 학습의 훈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서로 소아병적인 민족감정을 앞세워 끝없는 소모전을 펴면서 적대시하기만 해야 하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하겠다. 각자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통합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국가 간 개체의 한계와 속성을 뛰어 넘어 ‘인류라는 큰 틀’의 경지를 통해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각국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굴, 확장해나가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가야 할 때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화시대의 국제협력 흐름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와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 동북아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사명이요 그 의무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반성과 함께 그동안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구상해왔던, 한중일 3국간에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대안(an alternative plan for new dream society)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것은,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을 기초로 하여 동북아지역 철도 및 도로망을 대폭 확충하고, 동시에 동북아 물류시스템의 국제통합모델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의견이다. (*한미FTA협상이 지금 금년 3월말 시한부로 한미 양국간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나는 한미FTA가 성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의 한명인데, 이 협상이 성사될 경우 그 파급효과로 한중FTA․한일FTA협상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한국이 국제유통시장의 교차점이 되어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의 새로운 한마당을 여는 기회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이러한 대안이 채택되어 각 민족, 각 국가 간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불신과 불화의 벽을 허물고 한중일 3국간에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드는, 성숙한 자기인식의 인지능력을 학습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다면 동북아 3국은 지금까지 과거사에 묶여 있었던 질곡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자국 중심의 냉전적 사고와 단절된 역사의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과 ‘함께하는 정신’으로 공동선(共同善)의 대로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이 길은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묵혀 있었던 각국의 현안문제들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번영의 기회를 맞도록 해줄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마치 한국 속담에 있는 것처럼 ‘도랑치고 가재잡는 식’의 입체적인 역사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서 우리 동북아지역에 희망의 새 시대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길은 일본의 속담에 ‘힘든 일이 당신을 보배로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 모두를 21세기 국제사회의 정련된 보배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온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얽매고 있던 관습과 아집의 사슬들이 하나씩 둘씩 풀려가는 듯한 감을 느끼면서, 이런 깊이 있는 자기성찰의 생각과 함께 “이것은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라는 결단의 확신이 생기자 나는 그만 주체할 수 없는 심경이 되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온 힘을 다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리쳐 기도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한일 해저터널과 함께 동북아에 새로운 교통의 대로를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대로에 연접되어 있는 모든 묵은 땅을 기경하게 해 주시고, 나아가 한중일 3국이 한마당의 판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침내 이 동북아 연합의 기초 위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거듭나는 새로운 희망의 역사, 꿈의 실크로드를 완성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런 기도를 하면서 영적으로 주어지는 무한한 기쁨의 힘을 느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완성해주고 있다는 감을 느끼게 되자 나의 마음은 하늘의 깃털구름처럼 가벼워졌다. 온천을 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이런 환희의 감정과 함께 승화되어, 마치 이 일이 당장 이루어진 듯한 환상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밝아 오는 새 하늘이 점점 더 푸른색을 띄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빛의 감성이 내 영혼 깊숙한 곳까지 비쳐 오는듯한 느낌이다. 한중일 3국 국민들 가슴 속에도 내가 느끼는 이와 같은 자기 인식에 대한 객관적 인지능력의 훈련이 숙달되어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껴안아주며 새로운 융합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공동체 의식이 하루 빨리 확산되기를 희망하면서 새벽 온천을 마쳤다. (계속)
15    『희망의 역사』6 (이승률15) 댓글:  조회:2686  추천:87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Ⅵ.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히 온천을 마친 다음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내 중국식당으로 갔다. 이제 막 만찬을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이시이 회장과의 담론을 요약하여 설명해 드린 후, 2008년 북경올림픽을 빌미로 삼아 “도쿄에서 런던까지” 연결되는 대륙간 철도운행 프로젝트를 한번 추진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행들이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이 꼭 성사되어서 장차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과 동북아 FTA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씀을 여러 분들이 해 주셨다. 만찬이 진행되면서 우리들은 그동안 자신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듣고 보고 느낀 점을 기탄없이 쏟아내며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 중 귀담아들어서 기억해둔 이야기 몇 가지를 적어보면 이렇다. 이은선 회장 : “여기서 한 시간쯤 가면 이쓰까라고 하는 조그만 도시가 있는데, 이곳은 일제치하 때 조선인들이 많이 징용당해 와서 일한 곳이야. 무연탄, 석탄을 캐는 탄광지역인데, 그때 캐낸 양이 산을 이룰 만큼 고생들이 심했다고 하지. 그때 징용 온 사람들을 보국대라고 불렀는데, 주로 군수산업이나 물자공급을 위해 노역했던 분들이야. 그때 그분들의 후예들이 집단적으로 정착해서 사는 마을이 이쓰까야. 지금도 조선인 3세․4세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많이 살고 있어. 그런데 내가 정말 더 마음 아파하는 것은, 조선인 3세․4세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 문제야.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야. 도대체 자기들이 누구인지, 또 누구여야 하는지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고 있는 실정이야. 최근에 일본 정부가 출산율 감소를 줄이기 위해 재일동포들에게 귀화를 독려하고 있고, 또 교육과 취업조건을 완화시켜 주어서 청년들이 많이 귀화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작 일본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도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도 많아.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없어. 일부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이 한국 정부에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게 어디 쉽게 허용되겠어? 그냥 외국인 취급이나 하고 말지 뭐. 또 한국에 유학 온 재일동포 학생들을 봐. 그들을 일본학생 취급을 하면서 무관심하게 버려두고 냉대하는 실정이니 이래서야 어디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볼 수 있겠나” 이인혁 회장 : “오늘 골프장에서 몇 홀인지는 모르지만, 그린 뒤 언덕 잔디밭에 푸른 물감을 먹인 것 보셨지요. 제초제와 성장활성제를 섞어서 뿌렸겠지만, 사실 난 원래 축산과 출신이 아니고 공대 섬유과 출신입니다. 축산을 해서 돈을 버니까 다들 내가 축산과 출신인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옛날에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일본 친구로부터 옷감에 칼라 먹이는 기술을 도입해서 돈을 약간 벌었어요. 그때 번 돈을 갖고 나중에 축산업을 하는 기초자금을 만든 셈이지요.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생명공학연구소는 일본과 기술제휴해서 연구하는 게 많습니다. DNA분야 연구를 보면 일본 기술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는 게 사실이고, 또 그런 기술을 잘 이용해야 큰돈을 벌 수 있겠지요.” 김경철 회장 : “나는 1975년부터 78년까지 중앙일보 동경특파원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때 이병철 회장님께서 일본에 오시면 가끔 수행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삼성그룹을 키워 오신 비사(秘史)를 조금씩 얘기 듣곤 했는데, 말씀하실 때마다 일본과의 신의를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하셨어요. 사실 삼성이 큰걸 보면 거의 일본을 벤치마킹 한 것 아닙니까? 지금은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삼성을 배우려고 야단들이지만... 70년대에 용인 자연농원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랬어요. 재벌기업이 땅장사 한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비난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그때 그만한 땅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서울근교에서 1시간권 안에 그런 큰 휴식공간을 만들 수 있겠어요? 그때 이 회장님께서는 한국에 자연농원 같은 게 적어도 세 군데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시 근로자들이 주말에 휴식을 취하거나 놀러갈 데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한마디로 선견지명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언젠가는 또 연초에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문안을 갔더니, 어제 수술하셨다고 하신 분이 침상에 꼿꼿이 몸을 세우고 앉아서 운기조식하고 계시는 모습을 봤어요.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해오신 분이지요. 그때 회장님께서 저보고 이렇게 느닷없이 물으시더군요. 김군, 요즘 북한 정세가 어떤가? 문제는 없는가? 나라가 잘되고 회사가 잘되려면 우선 북한 문제가 안정이 돼야해. 북한이 시끄러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역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은 전체를 크게 보시더라고요.”   안광우 회장 :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있다가 신한투자신탁 사장으로 갔을 때 일이지요. 제가 제일 먼저 신경 쓴 게 예절교육이었어요. 일본에 있는 은행 본사에 출장와보면, 이 분들의 손님 대하는 모습이 꼭 머슴이 상전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냥 90도 넘게 허리를 굽혀 몇 번씩이나 절하면서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는데, 제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도 투자신탁의 직원들과 임원들까지 무조건 손님을 보면 90도 절하기 운동을 했었지요. 나중에 그게 회사 실적을 올리는 데 큰 효과를 봤어요. 사실, 앞에서 이인혁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한국이 일본에 비해 20년은 뒤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기술이나 조직관리 면에서 우리가 배울 게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요새 우리가 IT, 반도체, 그리고 조선이나 제철, 자동차 부문에서 조금 잘나가고 있으니까 그냥 기고만장해서 야단인데, 보세요. 일본이 이제 그동안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부흥단계로 들어서면 아마도 무섭게 발전할 겁니다. 우리 한국기업들 분발해야 해요. 지금 핵문제, 남북문제로 시끄러운데 이거 잘 대비해야 해요.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정부는 수치놀음이나 하고 기업들은 분식회계나 하고 있으면 되겠어요? 이 부총장께서 늘 걱정하듯이 중국의 동북공정만 해도 그래요. 동북공정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리 정부와 기업이 더 경쟁력 있는 사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뿐만 아니라 이제 몇 년 안가서 중국의 발전 속도에 눌려 꼼짝 못할 때가 와요. 진짜 우리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어요.” 남상해 회장 : “제가 옛날에 소방관협회 회장을 할 때였어요. 일본에서는 경찰보다 소방관을 더 우대하고 최고 대접을 해줘요. 지진이 많은 나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회질서는 안정이 되어 있지만 자연질서는 언제 지진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위급한 사태가 나면 소방관이 제일 먼저 달려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소방관을 최우대 해주는가 봐요. 그래서 저도 큰 대접을 받았지요. 행사장에서 테이프커팅 할 때나 연설, 또 차량이동 할 때도 제 차가 제일 먼저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가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서 훈장이나 표창장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인줄 일본사람들도 아는가 보지요(웃음). 그게 아니라, 실제로 소방관을 그렇게 소중하게 대접해주는 사회입니다. 위급할 때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제가 그때 일본에 갔을 때 놀란 게, 하루는 비가 와서 접어서 쓰는 우산을 하나 샀었는데, 그게 고급우산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비싼 걸 샀겠어요. 그런데 제가 호텔에 그냥 두고 나온 우산을, 아, 글쎄 그걸 호텔 측에서 공항까지 호텔 직원이 직접 와서 전달해주는 게 아닙니까? 그것도, 체크아웃을 할 때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호텔 지배인의 편지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이게 일본이에요. 그때 저, 일본, 참 많이 배웠어요.” 우리 일행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본과 맺은 개인의 특별한 인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만찬 회식이 끝난 후 나는 시간이 꽤 늦었지만 곧바로 객실로 돌아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1층에 있는 중정(中庭)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면서 “오늘, 참 기분 좋다. 멋진 날이야. 당신, 오늘 더 멋있어 보이는데?”라고 속삭여주었다. 아내가 내 품에 안겨오면서 “아냐, 당신이 더 멋져요. 당신, 정말, 고마워요.”라고 하면서 금세 눈물방울이라도 떨어뜨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때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았다. 아, 한마디 칭찬과 스킨십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가깝게 있다고 소홀히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정을 표시하며 스킨십을 해줄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우리 한일간부터, 또 남북한과 한중일 3국 간에도 이런 국가간 스킨십, 기업간 스킨십, 개인간 스킨십이 평소에 자주 있어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친밀해지고 융통성 있는 생각과 우정으로 선린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가져보았다. 특히 각국 지도자들 간에 서로 자주 만나서 격려하고 칭찬하며 껴안아주는 태도를 보인다면 각국 국민들이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 감동이 되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계속)
14    『희망의 역사』5 (이승률14) 댓글:  조회:2493  추천:104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Ⅴ. 숙소인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이시이 회장께서 상담을 마칠 즈음에 난색을 표하며 마지막으로 확인해주신 말씀을 줄곧 음미해 보았다. “이 박사님, 설사 북한이 길을 열어주어 남북한 철도가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는 곧바로 자신이 먼저 단호하게 답변을 했다. “그건 북한이 저지른 납치사건입니다. 이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 정부에서는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북한을 경유하여 중국으로 여행하는 길을 막을 것입니다. 십중팔구 그렇게 할 것입니다.” “아니, 이시이 회장님. 납치문제가 아베 총리의 국내정치용 이슈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할지라도, 아무렴 북경 올림픽기간 동안에는 여행을 허락하겠지요. 물론 올림픽 전에 이미 그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되겠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래서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로 납치문제가 해결되면 일본은 미국에 뒤따라가는 형식으로 북일정상회담과 수교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민 모두가 완전히 납득할 만한 수준에까지 이르러야만 북한을 용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국민 모두가 완전히’라는 말이 또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일본 국민들은 언제까지 집단주의체제에 매여 있으려고 하는가.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납치 문제에 대해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뉴스평론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또한 일본 아소 외상이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에 1엔도 원조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일국 외상의 발언으로는 너무 경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와 아소 외상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태도로 책임을 물으면서도, 정작 일본인들 자신에 의해 강제동원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며 ‘허구’라느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등의 망언을 서슴없이 뱉어내고 있는데, 과연 일본의 국가적 양심은 남아 있는가? 심지어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종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 일본군과 일본 관리들이 관여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발언(소위 “고노” 담화)조차도 재검토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데, 이것이 과연 선진대국의 리더로서 취할 태도인가를 묻고 싶다. 만일 아베 총리가 계속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미국 의회에서나 언론에서도 이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차제에 아베 총리 및 일본 정부는 폐쇄적인 집단논리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왕따당하거나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회장님, 저는 이시이 회장님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북경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아시아대륙과 유럽을 연결해서 세계 최장의 철도여행을 계획한다는 일은 앞으로 일본의 대륙진출과 함께 동북아 평화체제를 이끌어 낼만한 세계적인 이슈인데, 이걸 마다하고 일본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은 도무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 “아니 그럼 일본 정부에서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인 납치사건이 일본으로서는 매우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진로의 발돋움을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이런 정도의 한계는 벗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이시이 회장은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륙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나라 사람들은 자기 논리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 박사님께서 우리 일본을 더 잘 이해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섬나라 사람들이라고해서 꼭 그렇겠는가? 대륙의 울타리에 갇혀 대국의 그늘 밑에 속국처럼 지내왔던 많은 소수민족 국가들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 한반도의 과거 역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독립된 공간에서 대양을 향해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란 섬나라 사람들이 더 개방적이고 우호적으로 교류협력하기 쉬운 사람들일 수 있지 않은가. 개인이나 집단도 결국은 생각하기 나름인데, 일본이 진정으로 일본답기 위해서는 일본을 뛰어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겐까이 로얄호텔까지 타고 오는 택시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념을 정리해 보면서 앞으로 나도 일본과 일본인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겠구나 하는 반성을 가졌다. 갑자기, 이시이 회장이 곁에 있으면 “당신 멋져” 이렇게 외쳐주고 싶은 충동이 뭉클 일어났다. (계속)
13    『희망의 역사』4 (이승률13) 댓글:  조회:2373  추천:96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Ⅳ. 나는 이시이 회장으로부터 2000년도에 있었던 11개 국가간 장거리 철도여행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와 더불어 최근에 호조를 보이고 있는 부산-후쿠오카 간 쾌속선 사업의 결과로 한일 간에 1일 생활문화권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기발하고 거대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시이 회장님, 저는 중국 정부가 2008년 북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투자와 정책적 배려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이 그동안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부의 반대와 고위급회담의 정치적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직도 불통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건데, 이제 보십시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초긴장 상태였던 북미관계도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의 합의를 계기로 새로운 협상의 길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부시 정부가 그동안 완강히 거부해왔던 북미간 직접대화의 길을 스스로 자청해서 터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태도 변화에 힘입어 다시 밀월관계를 회복해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2008년 북경올림픽을 잘만 준비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올림픽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국제평화무드의 축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미소 양대진영의 화해를 이끌어 낸 탈 냉전적 평화의 축제였다면, 2008년 북경올림픽은 북미 간의 긴장해소뿐만 아니라 남북한 공존 및 6자회담 당사국들 간의 동북아 국제협력시대를 이끌어내는 기념비적인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하나의 선린공동체로 연결하는 세계 최대의 평화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자꾸 들어요. 이를 위한 저의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이시이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2000년도 일본-네덜란드 간 국제교류행사를 좀 더 크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선, 영국 런던에서 출발하는 떼제베 열차가 파리(프랑스), 브뤼셀(벨기에)을 거쳐 암스텔담역(네덜란드)까지 오면 거기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여 베를린(독일), 프라하(체코), 바르샤바(폴란드), 모스크바(러시아), 이르쿠츠크(러시아), 울란바토르(몽골)를 거쳐 중국 북경역에 도착하는 A구간 노선을 정해봅시다. 다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는 신칸센 열차가 오사카를 거쳐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거기서 후쿠오카-부산 간 쾌속선으로 갈아타고 부산항에 내린 후 부산역에서 KTX열차를 타고 출발하여 서울역까지 와서 다시 일반 열차로 갈아탄 후 개성, 평양, 신의주를 지나 단동, 심양을 거쳐 북경역에 이르는 B구간 노선을 정해봅시다. 북경 올림픽 참관을 위해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유럽, 러시아 참관단과 일본 도쿄에서 출발한 일본, 남북한 참관단들이 북경역에서 서로 함께 상봉한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이 만남은 얼마나 통쾌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입맞춤이 되겠습니까? 또한 이 북경 올림픽 기간 동안 유럽인들은 B구간을 이용하여 한반도와 일본을 방문하고, 또한 동북아 인사들은 A구간을 활용하여 러시아와 유럽까지 방문단을 구성하여 상호 내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도쿄에서 런던까지” 이어지는 꿈의 철도 여행을 기획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한일간 해저터널이 건설되지 못해 아직은 후쿠오카-부산 간에는 쾌속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그 길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국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인데, 아마도 북경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북한도 선심을 쓸 것이고 또한 중국의 후진타오 정부도 국제사회에 주변국가와의 ‘평화발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한에게 이의 성사를 종용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의 끝(영국)에서 아시아 대륙의 끝(일본)으로 이어지는 이 평화 철도 운행계획이 결코 헛된 꿈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은 대안을 양국 정부의 전문기관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제안해볼 뜻을 지금 가져봅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아태연구소를 통하여 중국 지도부에게 이 대안을 건의해 볼 생각이며, 또한 한국의 통일부 및 건설교통부(주무기관 : 한국철도공사)와 북한의 민화협을 통하여 북한 지도부에게 이 대안을 건의해 볼 생각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저희 연변과기대에서 자매학교로 건설해온 평양과기대가 올해 9월 5일부로 개교할 예정인데, 이 평양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을 성실하게 건의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제대학으로서의 통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이시이 회장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새로운 희망의 길을 내다보는 듯, 감동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비전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 같다. 오늘 잠시 틈을 내어 콜택시를 타고 ‘미션벨리’에서 ‘니씨데쓰 그랜드호텔’로 달려왔지만, 기실 그렇게 와서도 이와 같이 유익한 대화를 나누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냥 만나보고 싶었고 공동관심사에 대해 약간의 의견을 나누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도우사, 우리는 서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꿈의 세계 ―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동북아 연합의 꿈과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것이 어찌하여 하필이면 일제 치하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던 한국의 국경일 3.1절을 기념하는 날에 생겨진 일인가? 또한 이것이 어찌하여 하필이면 그 옛날 1860년대 개화기 때 일본 명치유신을 성공시킨 부국강병론자들을 대거 배출시킨 큐슈 땅에서 생겨진 일이란 말인가? 이런 특별한 감동을 느끼면서 본인은, 우리 한국인들도 이제는 3.1절을 일제시대 기미독립만세 사건이라는 과거사 속의 한 장르로만 계속 기억할 것이 아니라, 21세기 탈냉전, 탈이념 국제협력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국제시민으로서, 한중일 3국이 “삼자가 하나” 되듯 한 몸으로 거듭나는 공동체 역사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기념일로 이해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는 큐슈를 계속 한 개의 「섬」으로만 남겨놓지 말고, 한반도와 직결되는 교통인프라(해저터널)를 건설하여 서로가 하나의 생활문화공동체를 이룸으로서 명실공히 큐슈지역의 인재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사무라이式 사고체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신천지, 평화의 신세계를 향해 새로운 개화의 꿈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한반도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유익한 길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구상도 생긴다. 아, 무엇이 과연 우리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희망을 이끌어가는 역사의 진로인가? (계속)
12    『희망의 역사』3 (이승률12) 댓글:  조회:2252  추천:88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Ⅲ. 일본의 큐슈지방은 면적이 네덜란드와 비슷하고 소득수준(GDP)도 비슷해서 여러 면에서 비교대상이 될 만하다. 역사적으로도 1860년대 일본 개화기 때 큐슈지역이 일본열도 가운데서 가장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때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교류가 가장 빈번했으며, 나가사키 항이 그 대표적인 무역항이었다. 당시 도쿄를 중심으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하여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앞세워 일본 천황을 실질적인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삼고, 부국강병론과 함께 「탈아입구(脫亞入歐)」설을 주창하며 명치유신(明治維新)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대의 위업을 이룬 인물들의 대부분 출신 지역이 큐슈지방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7세기부터 오랜 기간 동안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무역을 통하여 축적된 선진문명의 지식과 기술과 부와 자산이 그들 개화파의 입지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때 형성된 부국강병을 위한 중상주의 정경유착 정책과 군국주의적 국수주의가 마침내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일본제국사 흥망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경유착과 국수주의적 전통이 지금까지도 일본 정치와 국론을 지배하고 있는 힘의 근간이 되고 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나는 이런 상식을 기초로 하여 이시이 회장께서 들려주신 유럽-아시아 대륙간 철도대장정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경청하였다. 1980년대 말 일본 국철이 민영화된 이후 큐슈철도공사와 네덜란드 철도국간에 더욱 밀접한 교류가 있었는데, 마침 2000년도가 양국간 교류 400주년이 되는 해 임을 상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양국 철도관계자들이 모여 큰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9월과 10월 사이에 네덜란드 행정수도인 덴하그(영어로는 The Hague)에서 출발한 열차가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지역(사마르칸트, 타쉬켄트, 알마티, 키르키스탄 수도 등)을 거쳐 중국 북경역에 도착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실행하게 되었다. 도합 11개 국가를 거치면서 24일간이나 걸린 이 철도여행은 침대칸이 딸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였으며, 여행 참가인원은 일본인 60명, 네덜란드인 40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이 기념행사는 개인이 200만엔(¥)의 경비를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5:1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유럽, 중국(표준궤)과 러시아, CIS국가(광궤) 간에 철로 폭이 달라 도중에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이 국제간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무난히 성공시킨 양국 철도청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했으나, 그 다음해인 2001년도에 영국에서 열차테러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큐슈철도공사의 자문역으로 이 행사에 깊이 관여했던 이시이 회장은 지금까지 중단되어있는 일본-네덜란드 간 철도교류업무를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 후 틈만 나면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에 관한 여론을 주의 깊게 관찰해온 그는, 일본 열도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신 실크로드 철도 대장정”을 한 번도 잊지 않고 꿈꾸면서 지내왔노라고 회고하였다. 미간에 못다한 꿈을 그리는 노장의 연민에 가득 찬 감정이 일순 지나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좀 굳은 표정으로 상대방을 직시하자 그는 금세 분위기를 바꿔 유쾌하게 웃으면서, 최근 후쿠오카와 부산 간에 운행되고 있는 쾌속선(제트포일)사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큐슈 철도청장직을 퇴임한 후 곧바로 이 쾌속선 항운사의 초대 사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1987년 당시 초기에 배 한척으로 시작했던 쾌속선 사업이 이제는 본격화되어 7척의 배가 매일 8회 왕복 운행하는 황금노선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몹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시이 회장의 말을 빌리면, 부산과 후쿠오카는 이미 1일 생활권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부산 여성들이 후쿠오카 텐진(天神)에 떼 지어 쇼핑하러 몰려오고, 후쿠오카 직장인들도 생일이 되면 아침 8시에 출발, 2시간 50분 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점심때 갈비를 먹고 오후에는 쇼핑한 후 자갈치 시장이나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코스가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덧붙여 그는 한일간에 해저터널이 건설되어 철도와 차량이 자유왕래하기 전까지는 부산-후쿠오카 구간에서는 비행기보다 오히려 쾌속선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년간 60만명 수준의 여객이 이용했으며, 이제 몇 년 안가서 100만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시이 회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부산과 후쿠오카 간, 아니 한국과 일본의 지역 항만도시 간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1일 생활문화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사실에 그저 놀랍기만 했다. 또한 동북아연합의 새 시대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조짐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많은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다. 부산과 후쿠오카 간의 이 항로는 옛날 고대인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이용했던 ‘도래인(渡來人)’들의 항로가 아니었던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의 길목에서 부산-후쿠오카 간의 항로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잇는 첩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 나는 깊은 감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면 이 길이 언젠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일본 열도와 한반도 전체가 한 몸이 되어 국가간 통합시장경제공동체로 거듭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감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그리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어떠한 역사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계속)
11    『희망의 역사』2 (이승률11) 댓글:  조회:2522  추천:123  2007-04-21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Ⅱ. 둘째 날, 3월 1일의 새 아침이 밝아왔다. 겐까이 로얄호텔의 창문으로 현해탄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맞는 3.1절 국경일의 아침햇살이 유난히 밝고 환하다. 하늘도 푸르고 현해탄의 물결도 푸르다. 덩달아 내 마음도 푸르러진다. 우리 일행들은 오전 중에 인근에 있는 「미션벨리 칸츄리클럽」으로 가서 라운딩을 했다. 신설된 지 얼마 안 되는 골프장으로 지형지세가 아름답고 난이도가 골고루 갖춰져 있어서 세련미가 돋보이는 골프장이었다. 나는 라운딩을 마치는 대로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미리 불러놓은 콜택시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 중심지에 있는 「니씨데쓰 그랜드호텔」로 달려갔다. 오후 4시에 이시이 요시타카(石井幸孝)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분은 나가사키현(縣) 출신으로서 큐슈지방 철도청 청장을 역임하셨으며, 정년퇴임 후에도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의 회장으로 계시면서 한일간 FTA성사를 위한 민간경제협력 및 항만교류업무에 열중해 오신 국제통 지식인이시다. 작년 가을, 대전에 있는 「한국테크노마트(사)」의 김철우 이사장을 통해서 소개받은 뒤, 한국에 출장오셨을 때 서울에서 만나본 후 이번이 두 번째 상면하는 자리이다.(*참고로 김철우 이사장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설립할 때 박태준 회장을 도와 기술담당 부사장을 지내셨던 분으로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2세이다. 동경대 금속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를 마친 후 재일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경대 교수가 되신 제철분야의 석학이시다. 그는 포항제철을 퇴임하신 후 한국의 후학들을 위해 자비로 한국테크노마트라는 사단법인을 세워 일본의 선진기술을 한국에 이전, 육성, 지원하는 일과 함께,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을 도와 한중일 3국간 환황해권 총장회의를 개최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으신 분이다) 그랜드호텔 커피숍에서 이시이 회장을 반갑게 만난 나는 (평소 버릇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시간을 정해놓고 바로 본격적인 실무 상담에 들어갔다. 통역은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박용득 선생(재일조선인 3세)께서 맡아 주셨다. 이 분은 앞으로도 계속 본인과 이시이 회장 간에 진행될 민간교류업무의 통역 및 행정을 지원해주실 분이다. 나는 성급하게 이시이 회장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한달 전에 일어로 번역해서 보내준 졸저 “동북아 연합의 꿈”에 대한 본인의 소견과 평가를 듣고자 하는 질문이다.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내 책에서 주장하는,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모델 창출방안 즉 한중일 3국을 ‘한몸’으로 연결․입체화 시키는 상호주의 관계구조를 높이 평가했고, 또한 이 일을 잘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통인프라로서 한일간 해저터널 및 철도연계망을 확장해 나가는 일이 매우 긴요하다고 동의해주었다. 더불어 이시이 회장께서는 이와 같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과 재정계획 및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북아 3국 간에 관련분야 인사들의 심도 깊은 교제와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례적인 포럼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2000년도에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큐슈 철도공사가 중심이 되어 시행했던, 네덜란드 덴 하그로부터 중국 북경에 이르는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각 국가 간 노선도를 직접 그려가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계속)
10    『희망의 역사』1 (이승률10) 댓글:  조회:2933  추천:133  2007-04-21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Ⅰ. 해변을 따라 길게 펼쳐진 송림의 숲 너머로 푸른 현해탄이 바라다 보이는 겐까이 로얄호텔(玄海ロイヤルホテル) ― 2년 만에 다시 찾아와 여장을 푼 것은 지난 2월 28일 저녁 무렵이었다. 1997년 봄 학기,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최고경영자과정)에 입학했던 3기 3조 동문들이 그동안 10년 가까이 소그룹 친교모임을 계속해 왔는데, 올해 3월 3일이 10주년 창립기념일이 되는 날이다. 3월 3일에 개학했고 또 3기 3조로 모인다고 해서 “삼삼회”라 이름을 지은 이 모임을 나는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이 모임의 초대 회장은, 재임 당시 한국야쿠르트(주)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셨고 지금은 고문으로 남아 한일간 관계 업무를 측면 지원하고 계시는 이은선 회장이시다. 재작년에는 설날(春節) 연휴를 틈타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이은선 회장을 단장으로 모시고, 일본 야쿠르트(주)에서 운영하는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을 친선 방문하여 운동을 하면서 며칠간 휴가를 보내고자 3박 4일 일정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2년 마다 한 번씩 오기로 했으며, 올해는 부부조 세 커플과 싱글 네 명이 참가하여 모두 10명이다. 부부조로는 “삼삼회”의 현 회장직을 맡고 있는 본인(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내외와 한국 축산업의 선두주자인 (주)선진의 이인혁 회장 내외, 그리고 신한투자신탁 대표이사를 거쳐 지금 국영기관인 한국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으로 계시는 안광우 회장 내외가 참석했다. 싱글조로는 앞에서 소개한 이은선 회장과 1970년대 중앙일보 일본특파원 출신으로 전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셨던 김경철 회장, 한국 요식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최근에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서울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하림각」의 대표 남상해 회장(저서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그리고 부인께서 갑자기 병이 나셔서 참석치 못해 대리인 자격으로 합류한 이은선 회장의 아들 이주원 사장(진원코리아 대표) 등이다. 첫날 저녁 무렵 여장을 푼 우리 일행들은 호텔 대욕장(大浴場)에서 온천을 한 후 남녀 모두 실내복 차림으로 식당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만찬을 즐겼다. 방문단 단장이신 이은선 회장께서 먼저 최근에 유행하는 건배사라고 소개하면서 한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당신 멋져” 내용인 즉,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져 주면서 살자 라는 말의 첫 머리 글자를 합성해서 만든 건배사다. 우리는 연신 상대방에게 “당신 멋져”를 외쳐 주면서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모든 한국적 현실의 갈등구조와 시비상황을 떠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아내에게 “당신 멋져”라고 속삭여 주었다. 아내는 기분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끝말이 좋단다. 져 주면서 살자 라는 말의 뜻이 그녀가 평생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한을 풀어준 듯하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우리 한국이 일본을 이기고자 한다면, 질곡과 같은 과거사와 민족주의 감정의 늪을 뛰어 넘어 진정으로 극일하는 길은 어쩌면 “져 주면서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져 주면서 함께 공존하고 상생하는 길이 한일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동북아 평화체제의 새 길을 열어가는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되새기면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평안하고 행복한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계속)
9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이승률9) 댓글:  조회:4859  추천:115  2007-04-05
                          『한동대와 연변과기대』                                                        이승률Ⅰ지난주 토요일 아침(5/14), 조간 신문을 읽다가 참으로 기분 좋은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금활동을 벌여서, 모교의 김영길 총장에게 업무용 승용차 한 대를 구입해 전달했다는 기사다.지난 3월초 한 졸업생이 김 총장의 차량이 무려 32만㎞를 달린 노후차량(1997년식)임을 우연히 발견하고 동문들에게 '총장님께 새 차 사드리기 운동'을 제의하면서 시작된 일이다.이 캠페인은 동문회 홈페이지를 통해 졸업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재학생까지 동참하면서 모금운동이 급물살을 탔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졸업생 한 명이 자사에서 신형 '그랜저TG' 출시를 앞두고 1호차 주인공을 찾고 있으며, 그 주인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정보를 전해주었다.모금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만에 4백 여명의 졸업생이 동참, 2천5백여만원의 기금을 마련하게 되자, 현대자동차 측에서도 이런 감동적인 소식을 접하고 차량가격 일부를 선뜻 지원하면서 마침내 김 총장이 '그랜저TG 1호차'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새 차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사랑하는 총장님! 32만㎞부터는 저희와 함께 달려요"모금운동에 참여한 한동대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한마음으로 부르짖는 함성이, 한동 ― 한국의 동쪽 바다를 넘어 세계를 향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듯한 감격을 느낀 토요일 아침이었다.Ⅱ한동대를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소중한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내가 김영길 총장을 처음 만난 것은, 한동대 개교와 함께 첫 입학식(1995. 3. 7)을 치른 지 얼마 안되는 8월 중순, 한 여름날 불볕이 내리쬐는 학교 교정에서다.그전에 신문기사와 강연테이프를 통해서 한동대 설립과정에 있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 기적에 가까운 신입생모집의 비화, 그리고 본인의 신앙간증 등을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당시 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여름방학철을 이용하여 실시하는 「전국 순복음실업인수련대회」의 기획팀장으로 봉사할 때였다. 나는 경주보문단지에서 열린 2박3일간의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특별한 기획행사를 하나 준비했다. 수련대회 이틀째 되는 날,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1천명에 가까운 순복음실업인들을 버스에 편승시켜, 오전에 먼저 포항제철을 견학한 후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북쪽 동해안 산지에 위치해있는 한동대를 찾아가는, 일종의 성지(?)방문행사였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한동대는 기독정신으로 세운 민족대학이다. 이제 갓 심어진 어린 나무다. 어렵게 어렵게 일으킨 하나님의 대학이다. 기왕에 우리가 경주까지 왔으니, 이 대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찾아가서 격려하고 한마음으로 기도해드리는  것은 마땅히 할만한 일이다"그때 나는 호텔 측과 협의하여, 호텔에서 먹어야 할 점심을 취소하고 그 비용을 헌금(장학금 천만원)으로 대체, 학교에 기증키로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점심은 학교측에서 도시락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협조를 구했다. 또한 나는 개인적으로, 본 대학이 장차 한국과 세계를 덮는 푸른 의(義)의 나무로 자라나 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우리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30년생 느티나무 한 그루를 기증해서, 대학본관 앞 화단에 기념식수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해두었다. 이 모든 기획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와 여건을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었다.그 날, 한동대에 도착한 우리들은, 8월 한낮의 뜨거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정문에서 우리 일행들을 맞이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김영길 총장과 학교 관계자들을 반갑게 만났다. 우리들은 악수했고 또 서로 얼싸안았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해후였다.그 후 한동대학이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큰 나무가 자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마음속으로 늘 동역하는 심정으로 중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후에도 김영길 총장을 미국 시카고 코스타(KOSTA:한국유학생수양회), 기독교연합행사, 간증집회, 그리고 산학협력 및 대학발전을 위한 학술세미나 등에서 여러 번 만나 교분을 나누었지만, 십년 전 그때 8월 중순 한낮의 첫 만남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한동대를 생각하기만 하면, 정오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기쁨으로 내 마음속에 되새겨지는 얼굴들이 있다. 동해바다가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지의 버려진 땅, 그 황량한 허허벌판의 광야 위에 기적의 상아탑을 일으켜 세운 한동대 사람들의 얼굴 ― 김영길 총장 내외분과 복음주의 교수진들, 그리고 연변과기대 교환학생으로 다녀간 수많은 청년학생들의 새벽이슬 같은 얼굴들이 내 마음속에 주마등처럼 되새겨진다.아,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또한 이들은 얼마나 소중한 나의 형제들인가!Ⅲ나의 인생 후반전을 위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대표적 사건 하나를 들라치면, 서슴없이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과의 만남을 들고 싶다.나는 그를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직전인 10월초, 베이징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그와의 만남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나의 기독교 입문에 대해 약간 설명해드리는 것이 전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나는 1990년 1월초,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오산리금식기도원」에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것이 신앙생활을 하게된 첫걸음이 되었다. 그 후 교회 내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에서 봉사하게 되었으며, 거기서 만난 분들과 함께 그 해 6월 중순, 북경을 거쳐 연길, 백두산, 심양을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그때 내가 정보를 얻은 것이 바로 중국에서의 골프장 사업이었다. (당시 우리회사는 골프장 조경공사에 주력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경우 북경과 상해 두 지역에서만 일본인들이 설립한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었다)아직 한중수교 전이었지만, 골프장건설사업은 장기간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수교 전에 일찍 추진하는 것이 선점효과가 있을 것 같아 나는 주변 건설업자들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이 일을 추진할 뜻을 세웠다.내가 대표가 되어 그 해 7월부터 매월 한번씩 세 차례에 걸쳐 청도(靑島)시를 방문해 중국측 관리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관광개발지역 내 골프장으로 허가 난 땅(18홀 규모)을 적정가격으로 매입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런 일(국제협상)을 처음 취급하는 청도시 책임자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배짱(?)을 부리는 탓에 도저히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때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었던 양상곤 주석의 아들 양소명이란 분을 만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북경 인터내셔널 호텔로 갔다. 그때가 북경아시안게임 직전인 1990년 10월초였다. 약속장소에 간 나는 또 다른 한 분의 한국인 ― 나보다 훨씬 더 연배가 많은 한국분이 계신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이중으로 약속된 것을 깨닫고 그 분에게 먼저 말씀을 하시라고 권해드린 후 옆에서 경청하게 되었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저는 미국시민권자이지만 원래는 한국 출신입니다. 영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고 그 후 미국으로 이민가서 20년 넘게 생활하는 동안, 대학교수도 됐고 또 기업도 운영해서 미국 사회에서는 비교적 크게 성공을 한 편입니다. 그 후 1986년도에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북경에 와있는 동안, 우리 동족들이 사는 연길, 길림, 장춘, 할빈지역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보니 조선족들이 그들의 고유한 말과 글은 지키고 있는데 고등교육기관이 없어서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에 있는 재산을 팔아와서 연길에 기술전문대학을 하나 세우려고 하니, 당신 부친께서 국가권력자이시므로 내가 하는 일을 협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중국에 돈벌러 온 것도 아니고,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 투자하러 온 것도 아닙니다. 나는 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중국에 선진교육을 전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교육을 통해서 중국을 돕고 우리 동족을 깨우치는 일에 봉사하고 싶어서 대학을 세우려고 하는 겁니다. 선생께서 나를 한번 도와주세요"그 때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다.나는 곁에서 그 말씀을 듣는 중에 얼마나 놀라고 감동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이런 숭고한 뜻을 갖고 아무 대가없이 자신의 인생과 재산을 남을 위해 내놓는 사람이 있다니! 그분이 바로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이시다.나는 중국에 개인사업을 하러 갔다가 김진경 총장을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그때 한 사람의 크리스천 지도자를 만나면서 그 만남을 통해 내 인생의 후반전을 180도 터닝(Turning)시키는 기회를 맞게된 셈이다.돌이켜보면 그때 이후 나의 생애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게되었다.  지금까지 만 15년 동안, 그 길에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분과 함께 오직 '푯대를 향하여' 순수한 봉사의 길로 매진해왔다.매장풍습이 있는 조선족들의 공동묘지였으나, 나중에 공산사회가 되면서 화장제도로 바뀐 후 쓸모없는 곳으로 버려져 있던 죽음의 땅 ― 그 연길시 북산가 언덕 위 삼십만평의 땅 위에 세워진 연변과기대는 이제 중국의 발전과 조선족들의 희망과 동북아시대의 미래를 거듭나게 만드는 생명의 땅으로 변화되어 우리들 눈앞에 우뚝 서있다.이와 같은 거듭남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때 그 북경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주신 은혜와 사랑의 선물임을 확신한다.아! 이 일은 내게 얼마나 빛나는 행복인가!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사역인가!Ⅳ각 대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학교소개가 있고, 거기에는 반드시 총장인사말씀이 있다. 이 메시지는 그 대학의 교육이념과 목표, 실천강령 등이 함축되어 있어서 대학의 진로와 성격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먼저 한동대 김영길 총장의 메시지를 들어보자."한동대학교는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세계적 철강 산업의 중심인 포항에서 국제적 시야(Global Horizons)를 품고 1995년 개교하였습니다. 한동대의 개교 시점은 인터넷(WWW)의 상용화로 인류가 지식정보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때이며, 또한 경제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효되어 글로벌 경제가 가동되는 해 이기도 합니다.한동대학교는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서 개교하면서,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와 글로벌시대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교육 커리큘럼과 국제적 시민의 인성교육, 특히 무감독 양심시험으로 대표되는 정직성 교육을 처음 실시하여 '21세기형, 새로운 대학 모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한동대학교는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국내외에서 한동 캠퍼스에 몰려왔고, 정직하고 유능한 교수 및 직원들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이와 같이 한동대는 기독교 신앙교육(Faith)을 기반으로 국제화교육(Global Leadership), 전문성교육(Academic Excellence), 인성교육(Honesty)에 치중하는 특성화 교육체계를 잘 발전시켜온 대학으로 평판이 높다.올해 겨우 7회째 졸업생을 배출한 짧은 연륜의 지방대학에 불과하지만, 그 교육성과는 실로 대단하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실시하는 교육개혁추진우수대학으로 매년 선정되어왔으며, 정보통신부 IT장비지원사업선정대학이기도 하다.또한 그동안 세계 90여개의 대학과 교류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대표적 사례 : 연변과기대)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40여개국으로부터 500명에 이르는 해외유학생들을 유치했으며, 삼성전자, LG전자, 한국IBM 등 '최고수준급'의 기업에 대거 입사하는 등 졸업생중 취업률이 80%를 상회하는 경이로운 실적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2002년 3월에, 아시아 최초 미국식 로스쿨로 개원한 국제법률대학원(International Law School)은 3년제 과정으로, 지난 12월 2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들 중에 2명이 미국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한동대는, 한국의 지방대학이라는 약점을 딛고 오히려 세계화시대의 전문인 지도자양성에 성공한 진보적인 기독교육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이제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보자.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은 중국에서 외국인이 설립한 유일한 4년제 사립대학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중국의 신교육정책에 따른 100大 중점대학육성계획에 포함되어 그 지명도를 높여왔으며, 최근에는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 등과 같이 신입생 1차 선발대학에 지정됨으로서 속칭 일류대학이 되어있다. 올해 들어 개교 13주년, 졸업생 배출 9회에 불과한 신생대학이, 그것도 중국 변방 소도시의 황량한 공동묘지 터 위에 세워진 이 대학이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해왔길래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게 되었을까?누구는 이 대학을 가리켜 기적의 동산, '미러클 캠퍼스(Miracle Campus)'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연변과기대의 성장요인은 과연 무엇인가?이제 그 핵심인물인 김진경 총장의 인사말씀을 들어보자."연변과기대는 세계화•현대화•미래화로 나아가는 21세기 중국 교육의 개혁개방 정신에 따라 1992년 산생(産生)된 중국 최초의 중외합작대학입니다.진리•평화•사랑의 교육 이념 아래, 뜻을 함께 하는 꿈과 Vision을 품은 전 세계 13개국에서 모여든 300여명의 교직원들이, 정직한 인격과 최고의 지식을 갖춘 전문인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학생들을 자식같이 사랑하며 성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의-협력-봉사의 실천 강령을 따라 국제 사회의 경쟁력을 지닌 창의형, 쓸모형, 인격형 인재를 양성하여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 대학의 교육 기본입니다.따라서 우리 연변과기대는 전공 지식과 응용력을 겸비하며 건전한 인성과 사회성,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안목과 세계적인 비전을 갖추어, 다가오는 시대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나갈 각 분야의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공과 전산의 실무지식을 구비하고, 의사소통에 필요한 다중 언어(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를 통해 중국의 급속한 기술발전과 개방적 산업 환경속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미국, 독일 등 세계 100여개 대학, 연구소 및 기업과 자매결연관계를 맺고 활발한 교류협력을 하고 있으며 매 학기 100여명의 학생들이 교환학생 및 유학생 또는 기업연수생으로 해외로 파견되고 상호 방문하는 등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미국, 유럽 등의 여러 나라에서 본 대학을 후원하는 후원회가 결성되어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우리 대학을 위해 헌신하며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을 통한 동북아 시대의 미래 일꾼들을 키워내는 뜻있는 사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연변과기대의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높은 뜻에 부름을 받아 기쁨으로 동역하는 대학, 그것이 연변과기대의 정신입니다. 이 대학은 바로 여러분들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세기 꿈과 비전이 있는 대학, 사랑과 소망과 기쁨이 있는 대학...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미래를 함께 가꾸어 갑시다."참고로 말하자면, 이 대학의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한국 교계와 미국 교민사회에서 지원하는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교학 및 연구분야는 자원봉사로 참여한 수많은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급속히 발전•확대되어왔다. 이와 같은 기부문화와 자원봉사정신이 함께 꽃피운 연변과기대는, 공산사회의 폐쇄적인 기존교육체계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아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21세기 동북아시아의 국제교류 및 협력을 이끌어 가는 신사고•신기술교육의 시범학교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연변과기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학교 캠퍼스를 둘러보는 가운데 우선 학생들이 친절하고 인사성이 있으며 명랑하고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 반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리고 대화를 해보면 국제사회 즉 시장경제자본주의체제에 대해 충분히 오픈 마인드(Open Mind)되어있고, 또한 세계정보에 매우 익숙해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학생들(구성비 : 조선족 80%, 한족 17%, 고려인 및 기타 3%)이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캠퍼스 공용어인 3개국어(중국어, 한국어, 영어)에 능숙하고 컴퓨터 응용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집단 ― 따라서 취업률 100%를 자랑하는 명문대학으로 발전해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다.이와 같은 교육성과를 보고 북한 지도부가 평양에도 연변과기대와 같은 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여 한국의 통일부 사업승인(2001. 6. 5)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바로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아닌가?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도대체 어떻게 교육했길래 중국공산사회 안에서(자본주의국가출신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와 같은 혁명적인 대안학교가 가능하단 말인가?Ⅴ이제 결론적으로 이 두 대학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온 공통적인 특질을 정리해볼 때다.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지난 토요일 아침(5/14), 조간신문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며칠동안 줄곧 이 문제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제 내 나름대로 그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깨우친 바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여섯가지 덕목(핵심가치)으로 요약해보고자 한다.1)탁월한 리더십김영길 총장 없는 한동대를 생각해 보라. 또 김진경 총장 없는 연변과기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상상하기만 해도 우스꽝스럽고 볼 모양이 없어질 것 같지 않은가? 그만큼 이 두 분이 끼친 영향력이 크다.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아무도 그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을 때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머리를 내저을 때에도 끝까지 이를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과 믿음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뜻을 현실에 투사하여 결행할 수 있었던 김영길 총장과 김진경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에 거의 100% 의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들에게는 부르심(Calling)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이 있었고, 빼어난 사명감과 열정으로 가득찼다. 꿈을 가졌고, 이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강인한 추진력과 헌신이 있었다. 앞을 내다보는 분별력과 미래가치를 위해 (리스크를 안고)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으며, 나아가 주위에 잠자고 있는 인력들을 일깨워 자신의 동역자로 삼는 선구자적인 능력도 갖췄다.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약점과 실수를 스스로 자인하는 인간적인 매력과 도덕성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남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용서와 화해의 포용력을 발휘해온 지도자들이기도 하다.이와 같은 믿음과 신념의 그루터기 위에서 끝가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끌어온 지도력이야말로,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강점으로 변환(變換)시킨 탁월한 리더십이 되어 오늘날의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를 성립시켜 왔다고 나는 단언한다.(2) 강한 비전 공동체김영길 총장과 김진경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추종하고 지지하는 동역자들(Fellowership)로 하여금 강한 비전공동체를 만들도록 이끌어갔다.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럽과 호주에서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많은 젊은 일꾼들이 사명감과 영감에 이끌려 한 명씩 두 명씩 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회와 KOSTA(한국유학생수양회)를 통해, 대학강단과 학회와 사회단체를 통해 선발되고 추천된 유능한 비져너리(Visionary)들이 끊이지 않고 포항으로 연길로 찾아왔다. 이들 뿐만 아니라 (나처럼) 어떤 경로로든 인생의 후반전을 좀 더 보람있고 의미있게 살아보겠다고 작정한 적지 않은 수의 장년층 인사들도 함께 뜻을 같이했다. 누구는 교수로, 누구는 직원으로, 누구는 후원자로, 누구는 중보자로 어떤 형태로든 그들은 그 속에서 배우고 자라는 학생들과 함께 거룩한 소망의 동역체 ― 꿈과 비전이 넘치는 신교육 공동체를 이루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지칠 줄 모르고 달려가는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활력(성장동력)은 바로 이와 같이 리더십과 펠로우십의 조화를 통해 나타나는, 강한 비전공동체 즉, 한몸으로 승화된 시너지(상승효과)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3) 신지식 열린교육지식정보화시대와 글로벌시대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대학이 적응해나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학생들로 하여금 천부적으로 주어진 개성과 재능을 잘 살려서,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유익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지극히 심플한 대안(실천방안)을 내놓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지식을 수혈하여 열린교육 시스템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단적인 예로, 한동대학의 무전공/무학과 입학제도는 기존의 대학개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교육방법이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미리부터 전공과 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입학 후 상당기간이 지난 후에 전공을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이와 더불어 복수전공제를 실시하여, 자신의 전공에 대한 심도깊은 전문성과 함께 인접학문에 대한 연관적인 지식을 습득해 나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개방적인 시스템도 아울러 장치했다. 연변과기대는 중국 대학교육제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전공/무학과 입학제도는 실행할 수가 없다. 그 대신 국제사회와의 폭넓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신지식을 유입하고 이를 중국현실에 맞게 적용시키는 과정에 특별히 다중언어습득훈련과 자발적이고 실무적인 부전공제도를 강화하여 연변과기대의 특질을 향상시키는 교육효과를 얻고 있다.'열린교육'은 지금껏 '닫혀있음'으로 인해 여러 병폐를 야기한 학교교육의 규정된 양식을 깨뜨림으로서 새로운 교육의 성과를 기대해보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모리슨(Morrision)과 같은 학자는 '열린 교육'을 인간의 개별화를 인정하고 독립심과 자유를 장려할 뿐만 아니라 학생에 대한 존중심을 보이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전형적인 학교 시스템을 재구조화(Reengineering)하는 교육방식이라고 정의했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저마다 갖고 있는 한계상황 즉 한국의 지방대학과 중국의 변방대학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지식정보화시대와 글로벌시대의 현실상황에 최대한 '시대공감'하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자유성과 천부적인 능력을 최적화(Optimization) 시키는 교육적 스팩(Spec)을 차곡차곡 쌓아온 특성화교육시스템에 성공한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4) 미래지향적인 창의성"국가 경쟁력은 지식에서 나오며, 지식은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학습에서 나온다"이 말은 '사이파이 커뮤니케이션스'社의 CEO 토드 사일러 박사가 몇 년 전에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초빙되어 왔을 때 연설했던 말의 한 대목이다.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하여 지금도 메모용 수첩의 첫 장에 적어놓고 수시로 펴 읽어보곤 한다.그리고 또 한사람의 어록을 추천하고자 한다. 최근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美EIA상을 탄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반도체총괄사장)이 그의 수상기념연설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다."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그렇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시행하고 있는 '신지식 열린교육'의 학습제도 및 교육방법은 결과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지향적인 창의성(내용 :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Positive Sum Game 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줌으로서 나아가 한국과 중국의 미래지향적인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는 미래가 있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가 있는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요청하는 것이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학생들이 바로 이와 같이 미래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인재들이 다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5) 헌신적인 삶의 모범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오늘날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수많은 동인(動因)들이 있겠다. 그 가운데 특히, 탁월한 리더십과 강한 비전공동체, 신지식 열린교육과 미래지향적인 창의성 등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성장요인들이다.그러나 이와 같은 요인들이 아무리 중요하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해도, 이 대학들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인 힘의 모멘트는 삶으로서의 헌신, 즉, 총장으로부터 모든 교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이 '헌신적인 삶의 모범'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확신한다.여러분들께 한번 물어보고 싶다.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인격은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 ―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소유와 재능과 여건과 목숨까지도 바쳐서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인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알고 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노래하며, 버려진 동해안의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그곳에 새로운 신천지가 임재할 수 있도록,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돌보는 일에 젊음을 불태워 왔던 수많은 유학파 엘리트들을 나는 알고 있다.한겨울에 영하 3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중국변방의 동토, 저 어둡고 황량한 공동묘지의 터 위에서, 개인의 명예와 안락함과 출세에 이르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남을 위해, 공의(公義)를 위해 헌신해왔던 수많은 연변과기대 교수들의 그 눈물 젖은 사랑의 행로를 나는 알고있다.어린 자식이 석탄가루 매연과 추위에 견디다못해 폐렴으로 쓰러져 있는데도, 집에서 급히 연락을 받고 뛰어나가 교통사고 난 학생을 들쳐업고 500m가 넘는 밤길을 넘어지며 걸어가서, 3일 동안이나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간호했던 한 교수의 고백을 들어보자."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입니다. 사랑은 죽은 생명까지도 살리는 유일한 능력입니다"이와 같은 모습으로 학교캠퍼스 안에서 학생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공부하고 뛰놀고 노래하며 생활하는 사이에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삶으로서의 헌신적인 모범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그들의 감성을 울리고 지성을 새롭게 하고, 영성을 깨우치게 한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마침내 이것이 연변과기대를 중국 안에서 선진적인 일류대학이 되게 했으며 또한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집단이 되도록 만든 궁극적인 핵심가치가 된 것이다.(6) 참된 제자훈련교수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참된 제자훈련일 것이다. 자신들이 힘들고 외롭고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제자들이 잘못되고 비뚤어지고 소외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 교수들도 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을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고 자랑한다.  개교 때부터 실시한 한동대의 무감독 양심시험은 이미 유명해진 일이다. 미래 세상을 바꾸는 지도자는 무엇보다 진실하고 정직해야 된다는 학교방침을 학생들도 잘 수행하고 있다. 실제적인 학습관리를 통하여 인성교육이 몸에 베도록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연변과기대에서도 ICM(Integrity Campus Movement)이라 하여 무감독시험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대안적 시범교육이 되고 있다. 이 무감독시험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처음에는 학생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많은 학생들이 정직하게 시험을 치렀으나 일부 학생들이 커닝하는 양심불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래 편지는 한 학생이 나중에 지도교수에게 반성문 형식으로 보낸 글이다.「양심」"전번 시험 때에는  여러 가지 고려가 많았습니다. 보고 쓰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고, 보지 않고 쓰려니 밑지는 것 같고, 결국에는 내 양심을 버리고 커닝을 하였습니다. 훌륭한 21세기의 리더를 키우는 우리 대학의 과학사 중간고사에 커닝을 하였습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양심과 정직성은 나의 손과 눈에 의하여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커닝을 하면서 전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끊임없는 내부 전쟁을 하였고, 시험지에 꽉 차게 적어놓은 답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주일을 힘들게 보냈습니다.그리고 오늘 너무도 민망하여 교수님의 얼굴을 도무지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읽으신 동학들의 글은 채찍이 되어 나의 마음을 후려쳤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 것마저도 나에게는 그렇게 큰 부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양심적으로 다시 채점하라는 말에 나는 내 인생의 1949년이 온 것만 같았습니다.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채점 해보니 49점이었습니다. 무려 23점이나 감점되었지만, 나의 정직을 찾았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동학들의 뉘우침과 성실한 고백을 듣고, 그렇게 열심히 양심 채점을 하는 동학들을 보면서 이번 무감독 시험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잃었던 양심을 되찾고, 정직의 중요성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연변과기대의 신입생으로서 기둥이 되어야 할 내가 우리 대학의 취지, 정직을 잃을 뻔한 가슴 아픈 교훈,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나의 성적을 위하여 양심을 버리는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양심을 되찾도록 이끌어 주신 교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H학생)"이와 같이 학생들은 흔들리면서 자란다. 도종환 시인이 지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있다. 1연만 인용해본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요즘 들어 연변과기대 교수들은 내게 이렇게 간증한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것이 훈련되고 습득이 되니까 이젠 학생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정직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참된 제자훈련은 바로 이와 같은 인성교육과 자율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통하여 드러난다. 정직운동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를 이끄는 도덕적인 리더십,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성, 그리고 지역과 세계를 섬기는 봉사활동을 통해 인간관계의 순도를 높여가는 참사랑의 섬김운동은,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교수들로 하여금 제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든 참된 제자훈련의 고귀한 성과들인 것이다.Ⅵ나는 내일이면 강원도 태백으로 가야한다. 쫓기면서 글을 쓴다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바쁜 중에 억지로 써온 「글」을 오늘밤에는 마감해야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나는 내일 「예수원」창립 40주년 기념행사에 간다. 그곳은 내 영혼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거기에 가면, 소중한 분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故 대천덕 신부의 아들인 벤 토레이 신부도 만나지만 그 어머니 현재인 할머니도 만나게 되고, 또한 공동체생활을 하는 수십 명의 형제들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마침내 한동대 김영길 총장도 만나게 되리라.벤 토레이 신부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새롭게 시작한 사역 ― 네 번째 강 프로젝트(북한학교)의 제1회 개강예배가 작년 1월에 있었는데, 그때 김영길 총장께서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예수원 40주년 창립행사에 김총장께서도 인사차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이다)올해 제2회 개강예배 때는 부족하지만 본인이 가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날 눈이 1m 이상이나 쌓였는데, 지금도 눈 덮인 예수원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벤 토레이 신부의 수행비서인 최요한 형제가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예수원이 있는 삼수령(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은 백두대간의 중앙에 위치합니다. 이제 또 하나의 강 ― 네 번째 강이 백두대간을 따라 북한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 강물은 북한의 헐벗은 땅을 적시고 생명을 되살리는 영적 회복의 물결이 될 것입니다. 그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리에 한동대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개마고원과 백두산을 넘어 만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정점에 연변과기대가 있습니다. 예수원에서 흘러내리는 이 네 번째 강물은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협력을 통하여 북한에 새로운 회복의 기운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김영길 총장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지만, 올해는 연변과기대 이 회장님을 모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이제 이 두 대학이 힘을 합쳐 북한을 돕고 민족을 되살리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평양과기대가 건축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평양과기대를 영적으로 떠받치는 두 기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터에 예수원의 네 번째 강물이 하수와 같이 흐르는 때를 꼭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리될 줄로 믿습니다."나는 이제 여기서 한동대와 연변과기대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지난주, 토요일 아침(5/14) 조간을 읽고서, 김영길 총장의 고물차를 신형 '그랜저TG'로 바꿔준 한동대 학생들의 소행(?)이 너무 보기에 좋아서, 이런저런 옛날 생각들 ― 십 년 전에 김영길 총장을 포항 교정에서 처음 만났고, 또한 15년 전 김진경 총장을 북경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을 되새기며 쓰기 시작한 글이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나는 진정으로 이 두 분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또한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모든 교직원들과 학생들을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인생의 후반전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역과 봉사의 기회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이제는 글을 마쳤으니 편히 잠들자. 그리고 내일이면 예수원에서 함박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소년같은 김영길 총장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리라.  그런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이 오면, 한반도 통일의 내일이 오면, 그 날에는 하수와 같이 흐르는 네 번째 강물에 뛰어들어 맘껏 헤엄치고 싶다.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삼수령의 발원지(예수원)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은어가 되어 흐르고 싶다. 그 내일이 꿈에 기다려진다.
8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이승률8) 댓글:  조회:4485  추천:126  2007-04-02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이승률    이제 비로소 밝히지만,제가 간혹 글을 쓸 때 K兄이라고 불렀던 김연우 대표님.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 새해인사 겸해서 연우가족들에게 메일을 보내려고 잠시 묵상하는 가운데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한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들 중의 한분으로서 제게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분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새날동지회」라는 이름의 학생서클에 가입한 후 그 서클의 리더격인 대학생 선배를 따라(당시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로 계셨던) 선생님의 연구실과 댁을 몇 차례 찾아다니면서 문학수업(‘시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와 조용한 목소리로 일본유학시 처음 詩 공부 했을 때의 정황을 일러주시곤 했지요.   그때 선생님은 말씀을 마치실때마다 “사람은 순수해야 돼. 시도 순수해야 되지만 사람이 먼저 순수해야 돼”라는 말씀을 빠뜨리지 않고 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 ‘순수’라는 어휘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제 가슴 한구석에 옹달샘이 생겨나서 깨끗한 물이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듯한 감을 느꼈지요.    아무튼 세월은 흘러 선생님도 가셨고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내일모레면 60인데, 그래도 이토록 험악하고 혼탁한 세상을 살면서도 끝까지 마음 한구석에 ‘순수의 정’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때 그 선생님의 지도가 큰 영향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가운데 지난해 11월 말,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고 개포동에 있는 삼성의료원의 빈소에 달려갔을 때, 저는 그때 선생님의 영정 앞에 놓인 국화꽃을 바라보면서, 그분께서 남기시고 간 「꽃」이 저의 인생을 통하여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 남겨져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한번 선생님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을 느낀 바가 있습니다.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연우 대표님.   외람되지만, 제가 혹시 이렇게 한번 고쳐 써보면 어떨까요?   “내가 김연우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김연우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2002년 말, 집사람을 통하여 처음으로 김연우 대표님을 알게 되었고, 그 후 한달이 지나 김대표께서 한국을 떠나시면서 맡겨 놓은 과업 ― 「연우포럼」을 섬기면서 지금까지 3년 동안 연우의 꽃밭을 가꾸어 오는 가운데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왜냐구요? 세상에 하고 많은 사회단체와 모임이 있지만, 이토록 순수한 이념과 우정으로 연결된 Open Mind Community가 또 어디 있을까요?    사회의 세속적인 여러 가지 벽과 제약조건들 즉 연령, 직업, 성별, 소유, 학력, 정치이념, 지방색 등을 뛰어넘어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 지극히 소박하고 자유로운 관계로 On/Off line을 통하여 만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대화하는 모임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것이 진정한 「연우포럼」의 가치이고 정신적 파워(Power)라고 자부해 볼 때, 우리 「연우포럼」은 이 혼탁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귀한 청량음료 ―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사랑의 생명수와도 같은 그 무엇이 아닐까요?   김연우 대표님, 그리고 사랑하는 연우가족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 서로를 진정으로 위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꽃」들이 되고 싶습니다.   비정하고 이기적인 벽 속에 갇혀 사는 오늘날 현대인의 가슴에 벽을 허물고,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듯, 지혜와 사랑으로 連友하는 우리 「연우포럼」이야말로, 실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창조적인 의미체’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저무는 한 해를 앞두고, 그동안 포럼장으로 수고해오신 김 대표님께 진심으로 큰 감사를 드리며, 또한 함께 읽고, 쓰고, 만나고, 대화하며 동역해온 모든 연우가족들께도 다시 한번 깊은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순수의 정’으로 가득찬, 우리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한 사랑의 「꽃」을 함께  피우는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봅시다. 출세도 좋고 성공도 좋지만, 순수한 목적이 이끄는 의미있는 삶으로 거듭나는 그런 인생의‘후반전’을 한번 살아봅시다. 해가지는 오늘따라 왠지 김춘수 시인의 「꽃」이 그립고, 또한 그 「꽃」속에 숨어 있는 ‘순수의 정’이 너무 그리워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의 이 우정이 영원히 변치않을 것을 믿으며 건배!2005. 12. 30
7    [프롤로그-5]데라우치문고와 나의 아버지 댓글:  조회:2760  추천:78  2007-03-18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프롤로그-5]데라우치문고와 나의 아버지 이승률 연변과기대 부총장  2006년 5월 13일, 우면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예술의 전당은 마치 연두빛 치마폭을 몸에 두르고 한가롭게 가로 누워있는 듯했다. 눈부신 5월의 신록이 어느 때보다 싱그럽게 느껴졌던 그 날,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한없이 설레고 있었다. 당시 예술의 전당에선 경남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테라우치 문고> 유물들을 특별전시하면서 관련 학술세미나가 열리게 돼 있었다. 내가 종종걸음으로 달려간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김 용배 예술의 전당 사장이 개회사를 마치자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사람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었다. 유청장은 <테라우치 문고> 소장유물 환수는 그동안 성사된 해외유출유물 환수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으며 유물환수를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 순간 내 가슴 한 켠이 뭉클해져왔다. 유물 환수의 공로자 중 맨 먼저 거론되는 이름.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테라우치 문고>의 존재를 맨 먼저 확인하고 그 유물을 고국으로 되찾아오기까지 6년 여 동안이나 오직 한 마음으로 이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 이 종영, 그는 바로 돌아가신 내 선친이시다.   아버지께서 처음 <테라우치 문고>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건 1990년경이었다. 평생 교육공무원으로 일해오신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신 뒤 문중 종친회(고성 이씨)의 일을 맡아보고 계셨다. 자연히 문중관련 기록과 문건들을 정리하시게 됐는데, 우연히  1974년 9월호 <월간서예지>속에서 고려시대 송설체의 대가인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선생의 진적 중 2점이 <테라우치 문고>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조이신 행촌 선생의 글씨는 비명 등을 통해 더러 확인된 경우는 있으나, 진적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2점의 진적이 선조의 행적을 밝히는 데 중요한 문건이 되리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이 사실을 종친회에 알린 뒤, 종친회의 관심과 지원 속에 행촌 선생의 진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직후 일본으로 건너간 <테라우치 문고>의 소장유물이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어 애를 태우다가 7개월여 가 지난 뒤에야 겨우  <테라우치 문고> 유물들이 일본 야마구치 현에 있는 야마구치여자대학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는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아버지는 <데라우치 문고>와 조우하게 되었고, 그 만남은 이후 아버지의 후반 생애를 관통하는 전환점이 됐다. 원래 목적은 <테라우치 문고> 유물속에 행촌 이암선생의 진적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선조의 유품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학자와 시문(詩文)의 대가, 임진·병자 양란의 명장, 충신들의 육필시고가 수백 점이나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문화재강탈이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악했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드러난 실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 날 아버지가 받은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아버지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것은 그 억울하게 포로된 우리 유물을 어두운 이국의 창고 속에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 그리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인 국사편찬위원장 박 영석 위원장에게 알렸다. 깜짝 놀란 박위원장이 일본으로 달려갔다. 빛이라곤 전혀 들지 않는 어두운 창고 한 켠에서 백년 가까운 세월의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좀이 먹어들어간 흔적이 역력한 유물을 본 박 위원장은 ‘포로로 잡혀온 것도 억울한테 암까지 걸려 죽어가고 있다‘며 통탄해마지 않았다. 이후 박 위원장과 아버지는 이 유물 환수에 뜻을 같이 하고 국회 한일친선협회와 의원연맹 등을 통해 공식적인 반환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세계 역사상 과거에 약탈해 간 문화재를 본국에 반환한 예는 거의 없다. 때문에 반환작업은 처음부터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야마구치대학과 기증자인 테라우치가(家)를 설득하는 게 급선무였다. 한 두점이 아니라 천 점이 넘는 막대한 수량의 역사적, 문헌적 고증가치가 뛰어난 유물을 쉽게 내어줄 리가 없었다. 그런 즈음 결정적인 협력자가 나타났다. 바로 경남대학교였다. 당시 경남대학교는 개교 50주년(1996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의 환수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박재규 총장을 비롯해 학교 관계자들이 해외로 그 대상유물을 물색하러 다니던 중, <테라우치 문고>에 대해 듣고 민간교류차원에서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마침 경남대학교는 우리나라와 최단 거리에 위치한 야마구치대학과 학술교류를 추진하고 있던 중이기도 했다. 이리하여 경남대학교가 전면에 나서서 야마구치대학 측과 반환교섭을 진행했고, 그 결과 야마구치대학과 테라우치가는 조건없는 기증의사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1995년 11월 11일 기증각서 조인식을 하기로 했다. 몇 년간 노심초사하며 매진해온 환수작업이 거의 성공했다 싶었는데 급기야 염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유물환수단은 조인식을 하러 떠나면서 이 사실을 각 언론사에 알렸다. 사실 그동안 해외 유출 문화재가 공공기관끼리의 정식 기증절차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온 예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런 탓에 각 언론사에서 앞 다투어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는데 논조가 대부분 ‘총독 테라우치가 강탈한 약탈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야마구치대학과 테라우치가에서는 이 점을 가장 염려했었다. 그들이 선의로 그 유물을 내어준다 해도 그것이 한국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를 그들은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여지없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 기사를 본 야마구치대학과 테라우치가가 대경실색을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직후 양측에서는  ‘유물을 못 주겠다. 지금까지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내용을 통고해왔다.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환수단은 포기하지 않고 야마구치대학과 테라우치가를 상대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행히 ‘당일 오후 5시까지 ’강탈‘이 아닌 ’수집‘으로 바꾼 정정기사를 내 주면 협상에 응할 수 있다고 양보해왔다. 이후 환수단 측에서는 전화통을 붙잡고 주요언론사와 피말리는 입씨름을 했고, 그 결과로 한 신문사가 ‘경남대학교 총장의 말에 의하면 테라우치 총독이 수집, 일부 사가지고 갔던 유물’이라는 정정 기사를 짤막하게 써주었다. 환수단은 그 지면을 크게 확대해 야마구치대학과 일본 언론사에 보내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그렇게 극적인 기부증서 조인서약을 이루어냈고 마침내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인 1월 24일, 기증각서에 의거한 97종 134점이 경남대학교 인수인단의 손에 의해 고국으로 되돌아왔다.   나의 선친께서는 70세 되던 해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즈음에, 당신 생애가운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여쭤 보았다. 그러자 선친은 서슴없이 <테라우치 문고> 유물반환에 기여한 일이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선친이 <테라우치 문고> 속에서 선조 이암선생의 유품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학자와 시문(詩文)의 대가, 임진·병자 양란의 명장, 충신들의 육필시고가 잔뜩 소장되어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오셨을 때 좋아하시던 그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찍어온 사진들을 방바닥에 잔뜩 늘어놓고 밤새도록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껄껄 웃으시면서 기쁨에 겨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지금도 순수한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역사의 회복을 위하여 헌신했던 이름없는 한 민간인의 눈물어린 집념과 수고를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뜻 깊은 생애를 살다 가신 선친이 무척 자랑스럽다.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없이 당신 앞에 주어진 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마치 적진 탈환을 위해 산화한 이름 없는 무명용사의 탑처럼 그는 역사의 뒤안길에 조용히 외롭게 서 계신 것이다. 그러나 자식 된 내 마음속에는, 그 분이 걸어가신 길의 흔적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어떤 위인이 걸어갔던 흔적보다도 더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그래서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내가 18년이 넘도록 아무 대가 없이 오직 민족사랑으로 연변과기대 사역을 위해 쫓아다니고, 또한 평양 과기대 건립을 위해 의로운 동역자를 찾고자 여기저기 동분서주하며 돌아다니는 동안에, 더러는 지치고 또한 남이 몰라준다 싶어 섭섭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내 마음이 외롭거나 슬프지 않은 것은, 나보다 더 외로운 길을 걸어 마침내 귀중한 내 민족의 유물을 되찾아 오신 아버지의 덕행과 겸손이 나에게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도 이제 환갑에 이르렀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인가? 나는 조국과 민족의 역사앞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연변과기대를 통해서 중국 조선족사회의 고난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애환 속에 묻혀 있는 「독립의지와 개척정신의 문고」라도 찾아 나설 것인가?아니면 평양과기대를 통해서 그 땅 속 깊이 붉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피와 눈물의 「혈류대하문고」라도 찾아 나설 것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지금 떠나고 있는가? 5월의 푸른 숲으로 난 길은 정녕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가? (2008.11월 수정고)  
6    『레나 마리아를 아시나요?』 댓글:  조회:4562  추천:114  2007-02-21
『35년전 양팔이 없는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가족이 모두 불행해질테니 보육원에 보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아기의 부모는 「비극」이 아닌 「축복」으로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아기는 전 세계의 팔다리 멀쩡한 사람들로부터 매일 수십 통의 감사편지를 받고 있다. “당신을 알게된 뒤 불행하던 내 인생이 환하게 바뀌었다.”는 편지를』 이 기사는 지난 2월 중순 「Best Album」발매기념으로 잠시 서울을 다녀간 스웨덴 출신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를 취재했던 조선일보 기자가 쓴 「글」의 일부이다. 「레나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었고, 왼쪽다리는 절반밖에 발달하지 않아 의족을 껴야 했으며, 유일하게 온전한 것은 오른쪽 다리뿐인 중증 장애인이다. 3살때부터 한쪽다리로 물장구를 치면서 배운 수영실력으로 세계 장애인 올림픽 수영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스톡홀름 국립음대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가스펠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그는 평상시 오른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기도 하고, 설거지․뜨개질․립스틱이나 패티큐어를 바르는 일도 왼발과 입을 동원해 척척해내는 신통한(?) 장애인이다. 또한 장애인용 차를 운전할때는 오른발로 핸들을 잡고, 왼발로 각종 기기를 눌러 작동시키는 만능에 가까운 묘기백출(?)의 장애인이다. 나는 지난 2월 9일,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높은뜻 숭의교회」의 주일예배에 초청가수로 온 「레나 마리아」를 그때 처음 만나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저는 행복해요. 저는 비록 팔이 없지만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태어났거든요.” 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미소를 띄고 우리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던 그를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도대체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리고 그 힘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Ⅱ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는 인간의 건강상태를 네가지 영역으로 분류하여 정의한 바가 있다. 신체적 건강/ 정신적(감각적) 건강/ 사회적 건강/ 명상적(영적) 건강 원래는 앞의 3가지 요소를 핵심과제로 채택하고, 이들간의 조화와 균형을 통하여 인간이정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또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2년 전부터 「WHO」는 여기에다 「명상적 건강」을 추가함으로써 인간의 영적 활동이 건강생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앞서 말한 3가지 건강상태가 모두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이「명상적 건강」없이는 인간은 어딘가 모르게 부족함을 느끼며 자신 또는 외부로부터의 억압과 피해의식으로 인해 「인격․정서․행동 및 건강상태」에 상당한 장애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뇌내혁명」의 저자로 유명한 「하루야마 시게오」라는 일본인 의사가 있다. 그는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했고,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접목한 치료와 건강지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제3의학 계열의 의학박사이다. 또한 그는 일본 「후생성」이 인정하는 건강스포츠 의사이자 「노동성」이 인정하는 산업스포츠 의사(THP)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주에 「인간개발연구원」의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가 내가 소속되어있는 한국기독실업인 단체의 한 모임에서 「뇌내혁명과 신앙」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한 적이있다. 그의 강의 내용의 핵심과 이론적 배경은 「WHO」가 근년에 발표한 「인간의 건강상태에 미치는 영적생활의 중요성」의 내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날 「하루야마 시게오」박사는 강의의 마지막 결론으로, 「Positive 발상을 이끌어내는좌우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즐거운 생각」과 「할수있다는 신념」의 명상술(영적 기공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목표가 가능하다고「Image Training」하는 것의 효과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그는 이 훈련이 숙달됨에 따라 혈액이 뇌내에 증강되고 「뇌내 모르핀」이 분비되며, 점차「뇌내 에너지」가 높아짐에 따라 마침내 영적 파워(Spiritual Power)가 뇌내혁명적으로 분출․생성되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의 적응력을 한껏 높이게 된다고말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우주(창조주의 세계)와 교감되는 「통합적 영성」, 즉 명상적 건강으로서의 포괄적인 창조능력이 배양된다고 말했다. 이 포괄적인 창조능력을 그는 「신앙의 힘」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힘」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건강을 최선의 상태로 이끌어가는 「신의 축복」이 된다고 설명했다. 과연 신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Ⅲ 오늘(4/20)은 다시 맞는 제23회 「장애인의 날」이다. 그러나 이를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신문과 TV들이 장애인들을 돕는 행사를 펼치고 처우개선을 위한 대책을 제시하는 등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복지기관들과 종교단체에서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와 재활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는 모습들을 TV뉴스로 보면서, 그들을 돕고 살릴 수 있는 길은 결국 「사랑과 희망의 나눔」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절실히 가져보았다. 그런 생각 끝에 나는 오늘 하나의 예기치 못한 감동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SBS」가 주최한 「장애인 희망의 마라톤 대회」를 시청하다가, 불현듯 두달 전에 만나보았던 「레나 마리아」가 하나밖에 없는 다리로 거대한 올챙이(?)처럼 물장구를치면서 열심히 수영하는 장면을 연상하고 그만 울어버린 사건(?)이다. 그것은 나에게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벅찬 환상(Fantasy)이였다. 그때 「레나 마리아」는 물이 흠뻑 젖은 수영복차림으로 내 앞으로 기어와 숨찬 목소리로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저는 참 행복해요. 보시다시피 저는 양팔도 없고 다리도 하나뿐이지만, 세상사람들에게남이 줄 수 없는 사랑을 나누어 드릴수가 있어요. 제가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불행한 사람도 희망에 가득찬 내일을 바라볼 수 있을거예요. 나는 결코 이런 나의 모습을 슬퍼하지 않아요. 그것은 나의 장애를 통하여 세상사람들에게 온전한 사랑과 희망을 전해 주시려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니까요.” 나는 그때 「레나 마리아」의 환상을 바라보면서,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분이 누구이며, 그리고 그분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나누어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명확한 깨달음」을 가졌다. 그것은 며칠 전 「하루야마 시게오」박사가 강의했던 「신앙의 힘」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힘」의 정체는 「신의 축복」으로부터 오는 영적 파워(Spiritual Power)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랑과 희망의 에너지」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WHO」가 제4영역의 건강항목으로 추가한, 「명상적 건강」을 통하여 생성되는 창조적인 신념의 능력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고 「Vision」이었다. (*참고로 하루야마 시게오 박사는 크리스챤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 우리들에게「뇌내혁명과 신앙」을 강연하면서 일반 크리스챤보다도 더욱 충실하게 「신과의 만남」을 통해 나타나는 기도와 명상의 위력 즉 「신앙의 힘」을 강조하고 있어서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Ⅳ 「레나 마리아」 신체적 결함과 정신적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온갖 멸시와 편견과 냉대의 장애물을 뛰어넘고, 오히려 그 「약함」을 「강함」으로 변화시킴으로서팔다리 멀쩡한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이 놀라운 힘의 주인공 「레나 마리아」. 그는 진정 나를 또 한번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위대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나는 진실로 「레나 마리아」를 「사랑과 희망의 물근원」으로 삼아 거기로부터 「세상을 이기는 힘」의 생수를 퍼 올리듯, 늘 「즐거운 생각」과 「할수있다는 신념」을이끌어내는 훌륭한 제자가 되도록 노력할것을 다짐해 본다. 그리고 또한 주어진 불행을 「비극」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으로 믿고, 장애인 자식 ― 그것도 가장 처참한 몰골의 기형아 자식을 키워낸 그 장하고 교훈적인 믿음의 「레나 마리아」의 부모들을 나의 영적 동반자로 섬기고 싶다.그리하여 마침내 “사랑과 희망의 나눔으로 지속되는 영적 파워(Spiritual Power)”가 바로「신앙의 원리」임을 깨닫고, 나는 이 「장애인의 날」의 꼭지점에 서서 다시 한번 「모든 장애로부터의 부활」을 꿈꾸어 본다. 「신과의 만남」속에서, 그가 주시는 「환상적인 영적 축복」의 능력이 기도와 명상을 통해 나의 삶에 전폭적으로 임해지기를스스로 기원해 본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늘 ― 공교롭게도 「장애인의 날」에 겹쳐 「부활절」이기도 한 오늘, 이 영광스러운 축제의 날에 나의 영혼이 「레나 마리아」와 함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높이높이 「부활의 기쁨」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 한국땅에도 제2, 제3의 「레나 마리아」가 자라나 주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앞으로 언제라도 장애인과 그들을 돌보고 있는 부모나 보호자들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레나 마리아를 아시나요?」 그리고 나는 그들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이렇게 대답해줄 것이다. 「네, 잘 알지요. 그는 자신의 장애를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분이지요. 비록 두 날개가 없고 다리가 하나뿐이어서 하늘로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대신 땅에 거하면서 자신의 일생을 바쳐 타인을 섬기도록 소명을 받은,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시는 장애천사이지요」라고... 「레나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축복을! 영원한 사랑과 희망의 능력을! 부활의 기쁨을!
5    이승률(李承律) 프로필 댓글:  조회:5686  추천:92  2006-09-04
이승률(李承律) 프로필-------------------------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 부총장한국 반도환경개발 회장ban1117@chollian.net경북고,동국대 철학과 졸업/同 대학원 석사중국 연변대학 정치학부 석사/중국 중앙민족대학 박사78~85년 종합환경계획연구소 대표86년~現在 반도환경개발(주) 회장02년~現在 월드투자파 트너스 대표이사,(주)랜드뷰 회장91년~現在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이사98년~現在 연변과학기술대학 겸임교수01년~現在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기획단장01년~現在 몽골 녹색농업기술센타(GATC) 고문02년~現在 우즈베키스탄 도스 트릭 깔리지 설립이사04.8~現在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 부총장 03.1~06.1 연우포럼 초대회장/06.1~現在 한국연우포럼 명예회장2005~現在 조글로포럼 명예회장2008~現在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저서 "윈윈 페러다임"출판 (중국사회과학원 번역판 "공생시대"출판)저서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출판(중국사회과학원 번역판 출판)
4    "사랑의 핵폭탄 만들기" 댓글:  조회:6457  추천:105  2006-09-04
"사랑의 핵폭탄 만들기" (Making Love Atomic Bombs) - 연우포럼 제2회 off-line 모임의 뒷풀이 소감 - 이승률 : 連友포럼 회장 Ⅰ최근의 국내 여론을 살펴볼 때 신정부가 감당해야할 가장 큰 현안문제는 「북한 핵」과「경제사활」에 달려있다고 본다. 미국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발언이후 전개된 북한의 핵문제는 남북한 및 북미간의 국제관계 (International Relations)를 최악의 긴장상태로 빠뜨리고 있다.그리고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지난 1월에 이어 4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할때는,「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가신용등급을 2단계 하향조정할 것 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는 IMF때보다 더 어려운 국면에 처할 수도 있게 된다.바야흐로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시킬 수 있는 폭탄의 뇌관 구실을 하고 있다.과연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는가? Ⅱ이제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이 시작됐다.한국시각 3월 20일 낮 12시 15분(이라크시각 새벽 6시 15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TV로생중계된 연설에서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고, 그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개시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세계 여론의 많은 비난과 저항을 무릅쓰고 미국은 드디어 그들의 국익을 위한 최후수단을 동원했다.「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을 위해 그들은 「Operation Iraqi Freedom」이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홍해․지중해․아라비아 해상에 떠 있는 미군함정 6척으로부터 40여기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마침내 「충격과 공포」의 전쟁(The war of the shock and awe)을 개시했다. 이 전쟁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가?「자유」인가? 아니면 「석유」인가? Ⅲ「그날」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 구약성경기록의 중심지이자 또한 “아라비안 나이트”를 비롯해서 수많은 아랍설화문학의 무대가 되어왔던 아랍세계의 중심도시인 바그다드가 미군의 공습으로 불타고 있을 때, 한국의 수도 서울 외교센타에서는 「핵문제와 국제정치의 대변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제2회 연우포럼 리더스클럽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참으로 「그날」은 특별했다.포럼 강사인 최관규 박사(파리10대학 국제정치학 전공,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의특강이 공교롭게도 이라크 전쟁 개시일과 맞물려 문자 그대로 대히트를 친 셈이 되었고, 이를 경청했던 연우포럼의 회원들(54명 참석)에게는 매우 실감나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물음이 솟구쳤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도시와 유정과 옥토가 불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즐겁고 느긋한 기분으로「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평화」의 잔을 건배하고 있다니!이 「전쟁과 평화」의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신(神)의 심사는 도대체 얼마나 고약한가? 이것이 과연 인류의 역사발전을 이끌어 가는 「정의」인가?이 시대 「정의」의 key word는 도대체 무엇인가? Ⅳ「그날」 최관규 박사는 이렇게 강의했다.21세기초 한반도를 기점으로 출발하는 러시아횡단철도(TSR) 완성의 현대적 의미를 먼저 개괄한 후 / 원자력과 국제정치 / 자본주의의 승리와 유라시아 대륙의 도전 한반도와 국제 정치의 대변혁 등을 심도 깊게 정리하고 나서 / 끝으로 변화와 갈등의 역사적 기로에 놓인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개인의 소견을 밝힘으로서 한시간 동안에 걸친 명강의를 마쳤다.(*추후 최관규 박사의 강의원고를 요약한 「칼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는 마지막 결론으로 “역사는 진보한다. 그리고 그 역사적 진보의 요체는「자유」이며, 특별히 「대중의 자유화」를 통하여 세계역사는 발전해 왔다.”고 단언했다.헤겔의 「역사철학」에 나타나는 「자유의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국제정치학의 궁극적 이슈가 되고 있음을 볼 때, 한때 헤겔에 심취되었던 한 철학도로서 나는 새삼스럽게 깊은 감회를 느꼈다.그러나 과연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전쟁과 평화」의 굴레는 원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형본질로 존속하여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자유작전」이라는 이름아래 자행되는 잔혹한 인간성 말살과 가치전도의 현장을 보고 있지 않는가?무기의 발달과 과학기술문명의 진보는 확인되고 있지만 인간의 역사를 대응하는 심리적 본질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역사는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다.결코 「자유」라는 이념은 현상학적으로 전개되는「전이」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내면세계에 「결단」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가치개념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 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묻고싶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 Ⅴ“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말씀이 있다.「자유」는 「진리」속에 있을 때만 비로소 정의로울 수 있는것이 아닌가?「진리」는 신(神)의 의지적 결단으로 주어진 「정의개념」이다.「진리」안에 있을 때만 「자유」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 「자유」는 도대체 우리들에게 있어 「실현 가능한 대안」인가? 이 대안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리고 그 「힘」을 부시는 갖고 있는가?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겠다고 「자유작전」을 명령한 부시는 과연 「진리」에 기초한 정의로운 「힘」의 소유자인가? 가공할 신무기와 28만명의 미․영 연합군을 앞세우고 「악의 축」을 소탕한다는 명분아래 이라크를 침공하고 잇는 조지W부시 미국 대통령 ― 그는 본시 기독교 원리주의자임을 자처해 왔는데, 그렇다면 더욱 그는 그가 믿고 있는 기독교의 성경말씀대로 과연 「진리」속에 거하고 있는가?하나님의 「정의」가 그를 지배하고 있는가?미국의 양심은 이 일방적이고도 무참한 전쟁을 과연 「역사의 진보」로 판단하고 있는가? Ⅵ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연우포럼 제2회 off-line 모임이 있었던 「그날」 세미나와 신규회원 소개 및 약간의 사무보고를 끝마친 후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포럼 운영단에서 뒷풀이의 장(일명 2차)을 마련하였다.양재역 로타리에 있는 「이화주막」에서 12명의 연우사도들(?)이 모였다.김세준사장/남지연회장/박경희사장/서승석사장/손석복사장/이승경대리/이승률회장이영란교수/이재민사장/최관규박사/최소영시인/한상훈사장/(가나다순)밤 10시 반에 시작한 뒷풀이가 결국 다음날 새벽 2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오고가는 술잔 속에 우정이 꽃피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 인정이 넘쳤다.연신 「진달래」가 제창되었고, 힘차게 부딪치는 건배 속에 사랑과 화합의 의기가 충만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이 되었다.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포럼회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마침내 마감해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한상훈 부회장으로부터 마지막 인사말을 한 번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술자리에서 무슨놈의 메시지인가?그러나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한다고 생각했다.그때 내가 「우리, 사랑을 위해 건배합시다. 사랑의 핵폭탄 화이팅」이라고 짧게 인사말을 끝내고 말았지만, 실은 그때 내 마음 속으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Ⅶ여러분!오늘 우리들은 북한의 핵문제와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최박사님의 명강의를 들었고 또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마 전에 내가 평양에 갔을때 만난 고위직 한분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이 핵 카드를 사용하려고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의 대답이 「터질때까지 가봐야 될 것 아니요?」라고 답변합디다. 그래서 내가 또 물었지요. 「그럼, 혹시 김동지께서는 남측에서 플라토늄이나 농축우라늄보다 더 위력이 센 핵폭탄을 최근 비밀리에 개발했다는 소식 듣지 못했습니까? 그걸 아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그양반이 그만 어찌나 크게 놀라며 눈을 부릅뜨고 되묻는지요. 「아니, 그런게 있소? 그게 정말이요? 그게 뭔데요?」 그래서 내가 조용히 굵은 목소리로 대답을 해 주었지요.「그건 사랑의 핵폭탄이라고 하는 겁니다.」상대방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만 껌뻑이며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지요.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그 어떤 물질보다도 힘이 셉니다. 사랑은 융통하고 화합하는 힘이 있지요. 그걸 우리는 흔히 Fusion Power라고도 표현하는데, 이 사랑의 핵폭탄이 한번 터지면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되살아날 수 있지요.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사랑의 힘에 의해서 다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 사랑의 힘에 의해서 진보되어 왔으며, 이 시대 정의의 key word는 바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숨을 몰아쉬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핵폭탄을 만드는데는 특별한 제조기술이 필요한데 그걸 제가 알려드리지요. 이걸 흔히 3C전략이라고 합니다. 한번 들어보시지요.」 하고 제가 제시해드린 사랑의 핵폭탄 만들기 X파일은 다음과 같습니다.첫째 : Communication둘째 : Cultivation셋째 : Creation우선 사람들간에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다보면 상대방을 웬만큼 이해하게 되지요.그리고 나서는 상대방을 돕는 겁니다. 물주고 약을 치고 지주목을 매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거름을 주고 기름을 쳐주듯이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고 지원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협력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수준에만 머물러 있으면 보통밖엔 안되지요. 그 다음에는 상대방이 창조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생산성과 Leadership이란 말은 바로 이 창조적인 능력에서 우러나오는 힘입니다.이걸 다른 말로 설명하면 바로 「나눔의 사랑」이 되지요.이 「나눔의 사랑」이 바로 「거듭나는 생명의 비결」입니다.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죽음으로서 비로소 많은 새생명의 열매를 얻는것과 같이, 우리 인간에게는 사랑의 나눔을 무한대까지 거듭나게 하는 창조의 능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핵폭탄」이지요.자, 여러분. 나는 평양에 있는 그분과 이런 대화를 하면서 짐짓 속으로 결심했습니다.“그래, 우리 서로 친하게 대화하며 삽시다. 그리고 내가 힘닿는데 까지 당신을 도와 드릴께요. 그런 다음 당신속에 숨어있는 창조의 능력을 스스로 계발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창조주이신 그분이 당신을 다시 한번 「사랑의 힘」으로 거듭나게 하실 때면, 당신은 아마도 북한주민 수십만명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 창조적 힘을 갖추게 될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을 사랑의 핵폭탄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좌우의 이념과 흑백의 논리를 떠나 나는 결국 사랑주의자이고 싶습니다. 변치 않는 우리의 사랑이, 우리와 우리의 조국을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Ⅷ한국의 신정부가 감당해야할 「북한핵」문제와 「경제 사활」의 궁극적 solution은 어쩌면 이 「사랑의 핵폭탄 만들기」로부터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북이 함께 승리할 수 있는 길, 남북이 서로 피흘림 없이 win-win으로 교류협력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찾아가야 한다.「길은 길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길이 된다.」대화와 협력과 창조적 거듭남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의 기술 「3C 전략」 ―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남북분단의 시대에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검토해야할 정의로운 대안의 길이 아니겠는가?신정부가 꿈꾸는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론과 남북통일문제도 여기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또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TSR-TCR의 진로도 이와 같은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정신으로부터 출발점을 잡았을 때 비로소 그 운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겠는가?이와같은 관점이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이제「악의 축」의 심장부로 진격하고 있는 부시의「Operation Iraqi Freedom」작전도 마침내 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쟁 이후의 상황을 이와같은 사랑의 전략을 바탕으로 세계가 인정하는「정의」를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사랑의 창조적 능력이 이라크를 「진리」속에서 다시 한번 거듭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원리주의자인 부시의 십자군전쟁은 검은 황금「석유」의 유혹을 벗어나 인류역사의 보편적 가치인「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최관규 박사가 소망하는 「역사 진보의 요체」로서의 「자유」가 지평위로 태양처럼 아름답게 솟아오를 것이다.우리 연우포럼의 생명력도 바로 이와 같은 「지혜와 사랑의 나눔」(off-line)이 「칼럼」과 「토론 문화」(on-line)속에 깊이 내재화 될 때 (Fusion Power)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Ⅸ「그날」이화주막에서 비록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났지만 각자 아무 격의 없이 출신과 입장과 성별차이의 벽을 넘어 밤이 늦도록 우정과 인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사랑의 핵폭탄 만들기」고백이 바로 나와 우리의 삶을 연우(連友)되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자유」이며 또한「진리 속에 거하는 정의」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사랑하는 연우의 친구들이여!이제 우리 진하고 달콤한 내일의「진달래」를 심는 마음으로 오늘을 또 하나의 「사랑의 핵폭탄」을 만드는 위대한 기회로 삼아보지 않으시겠는가?4월이 오면 진달래는 온 산에 봄이 되어 다시 피어나겠지만, 저 북녘 영변에도 언젠가「죽음의 재」가 씻겨진 그 땅 위에 새시대의 「생명의 싹」이 트지 않겠는가?새길을 열어가는 역사의 여정 위에서, 우리 연우포럼「사랑의 기술단」이 저 헐벗은 강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으로 만들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봄이 좋아 봄을 찾아가는 봄의 구도자가 되고 싶어진다.
3    를 위하여"" > "<봄의 승리>를 위하여" 댓글:  조회:5905  추천:112  2006-09-04
"를 위하여" 이승률 I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올해는 더욱 유난스럽다. 신정부가 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 묻혀 있었던 이름들이 새싹처럼 일어서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새로운 꿈과 비전이 제시되고, 새로운 정책과 대안이 논의된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 위에 새봄이 찾아왔다. Ⅱ 「연우포럼」의 들녘에도 새봄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off-line모임이 태동했고, 김연우 포럼장에게는 「글로벌 네트워크 포럼장」이라는 새 임무가 주어졌다. 조만간 미국에서도 「미국판 연우포럼」이 곧 시작될 모양이다. 또한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사이버 포럼으로 연결하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리더쉽 네트웍(on-line)이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연우포럼」은 참여정부의 새 시대를 맞이하여 참여문화의 새로운 기회 앞에 그 「새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III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분들이 많다. 「春來不似春」이라는 문자를 써 가며 그들은 곳곳에서 수군댄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그 빛깔이 너무도 어둡기 때문이다. D-day를 눈앞에 둔 미국의 이라크 침공설/ 터질 때까지 가봐야 해결이 날 것 같은 북핵 문제/ 주한미군 철수론과 한미간의 외교갈등/ 특검 대상이 될 남북정상회담의 전말과 더욱 골이 깊어지는 보수-진보간의 남남갈등/ IMF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설/ 코스닥이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리는 소리/ 파란과 항명으로 점철되는 인사파문/ 중소기업은 재정과 인력난으로 아우성을 치는데/ 불야성을 이루며 거래되는 성매매 총액이 30조원에 이르고/ 세상을 온통 포르노천국으로 만들 작정으로 무차별 방사하는 스팸메일/ 마침내 혼자 죽기 싫다며 생을 포기한 한 정신질환자의 방화로 인해 수백명의 생명이 생화장 되어버린 이 어처구니없는 혼돈의 시대/ 이 미친놈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직도 봄은 찾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Ⅳ 그러나 친구여! 그래도 다시 한번 눌러 앉은 방바닥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라. 남쪽으로 난 그 창가에 심어놓은 목련의 검은 가지에 어느덧 눈망울이 움트고 있음을 볼 것이다. 멀리 남도의 섬진강가에서는 매화의 꽃잎을 따서 술잔에 띄우고 오랜 친구를 초대하여 밤이 맞도록 춤추며 노래하는 시인들의 잔치가 한창이라고 한다. 굳이 핵문제로 말썽 많은 그 영변의 약산을 다녀오지 않아도,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진달래는 오늘도 우리 한반도의 산야에서 붉은 봄기운을 터뜨릴 채비를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V 「연우포럼」의 친구여! 우리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자. 우리 귀를 기울여 강을 들어보자. 우리 마음을 열어 저토록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꿈이 있다. 생명이 있다. 미래가 있다. 결코 오늘의 어두운 현실에 묻혀 밝은 내일이 있음을 잊어버리지 말자. 설사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도적질한다고 해도 우리는 내일을 위해 이 「새봄」에 또 한그루의 희망의 나무를 심어보자. Ⅵ 이제 나는 열린 마음으로 새봄과 함께 출범하는 신정부의 미래를 축복해주고 싶다. 또한 연우포럼의 off-line모임에도 「진달래」가 만발하기를 원한다. 봄이 오면 봄을 타는 심정으로 봄을 노래하고 싶어진다. 「박노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들 중의 젊은 한 분이다. 그분이 쓴 「봄의 승리」를 노래하며 이 봄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싶어진다. 비록 참여정부의 사람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라도, 또한 그들의 새로운 정책과 대안이 우리를 실망시킨다고 해도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사회생활로부터 오는 많은 아픔이 우리를 우울하게 해도 나는 결코 울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 찬연한「봄의 승리」를 위해 부를 수 있는 한 편의 시가 있고, 그 속에 살아있는 나눔의 정신이 나의 새봄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줄 것임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VII 봄의 승리 박 노 해 아무리 뛰어난 머리도 가슴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어떤 경륜도 젊은이들의 순수함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빠른 것도 뿌리 깊은 것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잘 나가도 正道를 걷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강하고 굳센 것들은 결국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한다 거대하고 빛나는 것들은 작은 것들의 아름다운 평화에 이르지 못한다 투쟁은 아무리 승승장구해도 나직한 사랑 하나 끝내 이기지 못한다 작고 눈물겹고 부드러운 것들이 말없이 피어나는 봄 그리고 나눔 (2003. 3.12)
2    "나무를 심는 사람들" 댓글:  조회:6768  추천:97  2006-09-04
"나무를 심는 사람들" 이승률 : 連友포럼 회장 Ⅰ 며칠 있지 않아 「식목일」이 다가온다. 연례행사로 찾아오는 이날을 맞을 때마다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반성과 회오의 감정이 진하게 일어난다. 이 날이 되면 지방의 정부기관이나 관련 사회단체에서 삽과 괭이를 들고 헐벗은 산야에 나무를 심는 장면이 저녁 TV뉴스에 방영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현수막을 내걸고, 머리에는 대회명을 새긴 수건을 질끈 동여맨 채, 구호를 제창하며 「보란듯이」 나무를 심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나무를 심는다기보다 「행사」를 치루는 일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높은 분이 뜨면 심던 나무를 팽개치고 그에게 먼저 달려가 인사하기에 급급하다. 또 높은 분은 취재진 앞에서 나무 심는 포즈를 잠깐 취해주고는, 주위의 관계자들에게 몇마디 격려의 말씀을 하신 후 얼른 그 자리를 떠나게 마련이다. 일정상 또 다른 행사장으로 가봐야 하기 때문이다. 「식목일 행사」는 대충 그렇게 끝이 난다. 우리 인생의 산야에 심는 「식목의 작업」도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Ⅱ 앙드레 말로가 “20세기의 프랑스 작가 가운데 세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지오노, 몽떼를랑, 그리고 나 자신인 말로를 꼽고 싶다”고 말한 그 세 사람중 한분인 장 지오노(1895~1970)가 지은 아주 작은 책이 하나 있다.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한국에서는 김경온 박사(연세대 불문학과 교수)가 번역하여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제목으로 발간한지 벌써 2판 3쇄를 거듭한 책이다. ‘어린이의 동화책 보다 얇은 이 책이 왜 그토록 여러나라 말로 옮겨져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기주의를 벗어나 공동의 선(善)을 위해 일하는, 그러나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사람의 불굴의 정신과 실천이 이 땅에 기적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기와 물과 땅과 나무와 그밖에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오늘의 병든 물질 문명의 시대에, 이 위기의 시대에, 생명을 사랑하며 그것을 가꾸는 숭고한 한 인간을 통해 오늘의 절망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편집자는 풀이한다. 그러면, 대체 「나무를 심은 사람」그는 누구인가? Ⅲ 장 지오노(JEAN GIONO)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은 알프스 산맥이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어내린 해발 1,200-1,300미터의 고산 산악지대 황무지에 혼자 살면서 35년동안이나 계속 나무를 심어왔던 한 평범한 농부 「엘제아르 부피에」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뒤이어 아내마저 잃은 후에도 30여마리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던 골짜기에는 원래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의 마을이 있었으나 과도한 벌목으로 인해 숲이 사라지고 나무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샘이 마르고 헐벗은, 죽은 마을로 변모해 있었다. 그는 달리 해야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하고 떡갈나무 도토리를 심기 시작했다. 52세가 된 그는 자신의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 황무지에 홀로 생명의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지오노가 엘제아르 부피에를 처음 만난 당시(1913년) 그는 3년동안에 이미 십만개의 도토리를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십만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고,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태풍의 피해를 입는다 해도 최소한 절반 가량인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살아남아자라게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신념」과 「노력」이 그 황무지를 변화시켰다. 그 후 지오노가 부피에를 만난 지 30여년이 지나는 동안에 (그 동안에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지나갔지만) 그 골짜기는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죽은 마을너머 멀리 회색빛 안개 같은 것이 융단처럼 산등성이를 덮고있는” 숲으로 되살아났다. 단 한사람의 「의로운 신념」과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생명의 숲으로 바뀐 기적같은 이야기 ― 한 늙은 양치기의 이야기가 바로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Ⅳ “마침내 그가 살고 있었던 베르공 마을에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공동체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중략) 1913년에 보았던 폐허의 땅 위에는 잘 단장된 아담하고 깨끗한 농가들이 들어서 있어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와 눈이 숲 속에 스며들어 옛날의 말라버린 샘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샘물로 물길을 만들었다.(중략) 마을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 주었고,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밝은 웃음을 터뜨리며 시골 축제를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길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즐겁게 살아가게 된 뒤로 몰라보게 달라진 옛 주민들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합쳐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알제아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장 지아노는 또 이렇게 그를 회고하며 기록했다. “한 사람이 오직 육체적․정신적 힘만으로 홀로 황무지에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던들 이러한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神)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장 지아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인 역사」의 시작이 되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Ⅴ 「나무를 심은 사람」은 1953년 미국 잡지 「Reader's Digest」지에 처음 발표된 후 1954년 미국의 「Vogue」지에 의해 「희망을 심고 행복을 가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처음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이 책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의 많은 지성인들과 정책입안자들과 환경운동가들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 지오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시청되어 왔는데, 세계적인 화가 「프레데릭 바크」가 그림을 그리고, 캐나다 국영방송(CBC)이 제작한 동명의 이 영화는 제60회 아카데미상에서 단편상을 받을만큼 유명한 작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환경보호운동, 지구 재녹화운동과 청소년들의 정신(도덕)교육자료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무엇보다 더 큰 의미와 가치는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와 같이, (농부인 자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고결하고 거룩한 생각을 품고 굽힘없이 목표를 추구해 나간다면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희망의 나무」를 심어 주었다. 그리고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계를 아름답게 바꾸어 놓는 것은 권력이나 부나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위해, 공동의 선(善)을 위해 침묵속에서(고독속에)서두르지 않고 속도를 숭배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는 아름다운 혼을 가진 사람들이며, 굽힘없이 선하게 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었다.(편집자의 말 참조) 오! 이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 일인가!  Ⅵ 이제 엘제아르 부피에도 떠났고(1947년) 그를 기록했던 장 지아노도 갔지만(1970년) 우리에게 「희망」의 숲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거룩한 분노와도 같은 자기 자신을 향한 반성과 결단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희망의 나무」를 심어야 겠다. “창조란 꼬리를 물고 새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지아노는 본문에서 가르친다.우리 한국사회 속에 이와 같은 창조적 생명의 역사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각 분야와 각 계층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신바람이요 생수의 물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여정부의 각종 정책적 대안들이 이러한 개척적인 창조정신의 기반 위에 뿌리내리는 「희망의 나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그 나무들이 마침내 거대한 「생명의 숲」으로 자라나 한반도의 골짜기를 덮을 때, 그때 그 속에 생존해 있는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로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며 거듭날 때, 그때 이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새시대의 금수강산이 되지 않겠는가? 신정부가 처음 맞이하는 이번 「식목일」행사가 바로 이와 같은 꿈과 희망의「나무를 심는 사람들」로 꽉 찼으면 좋겠다. 1970년대 이후 난개발의 악순환으로 매년 여의도 크기 20개 가량의 숲이 훼손되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엄청난 산림훼손의 실태를 눈앞에 두고서, 이제 또 한번의「식목일」을 맞는다. 현수막을 내걸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채 「보란듯이」요란을 떠는 행사요원으로서의근무태도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외롭고 힘들지만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오늘 심는 이 한 그루의 도토리 같은 작은 나무가 내일의 국운을 떠받치는 동량의목재로 자라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각 계층에서 열심히 수고하며 노력하는 「엘제아르 부피에」와 같은 일꾼들의 「식목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선한 일꾼들을 찾아내고, 키워 주고, 도와드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숨은 일꾼들이 우리들의 생각보다 더 많이 실존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Ⅶ1999년 10월, 미국 L.A.의 흑인폭동사태 때 희생당한 한국교민 「홍정복」아줌마의 미담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만하다. 미국으로 이민간지 15년동안 그는 「South Central」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며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자신이 가졌던 「소유와 소득」을 함께 나누며 살았던 아줌마다. L.A.흑인들로부터 「Mama」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당시 폭동사태 때 흑인들이 오히려 그를 보호하고 지켜주었던 아줌마다. 그런 아줌마가 불행하게도 Hispenic계의 강도로부터 총을 맞아 죽었을 때, 그때 비로소 미국의 언론과 시민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알고 대서특필하며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와 애도의 뜻을 보여주었다. 당시 52세였던, 한 이름 없는 평범한 소시민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는 미국의 각계 저명인사들과 지역사회 리더들이 수없이 몰려들었다. 미국이라는 다인종사회로부터 오는 갈등과 알력을 극복하는데 있어 「홍정복」아줌마가보여준 「사랑과 희망의 나눔」은 미국의 양심을 새롭게 되살리고, 곤경에 처한 한국이민사회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2,000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는 한국교민들이 세운 교회가 800개가 넘었고, 또 거기에 1,300여명의 목회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인기독교사회가 이룩해온 모든 노력의 결과보다 이 한 여인의 희생적인 「나눔의 실천」이 더 큰 역사를 이루었다는 고백을 나는 그때 LA에 살았던 한 목회자로부터 직접 들어본 적이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이민 100년사를 통하여 한인사회가 결코 얻어내지 못한 「미국으로부터의인정」을 이름 없는 한 분의,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고결한 인격과 올바른 신앙을 기초로 한 진실된 이웃 사랑의 실천이 그것을 얻도록 이끌어 내준 셈이 되었다. 한 영혼의 위대한 승리는 이와 같이 「보란듯이」행하는 외식에 있지 않고, 숨겨져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그 속에 내재하는 강한 생명력의 확신을 갖고 꾸준히 「사랑과 희망의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신념을 통하여 달성된다는 것을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위대한 신념을 우리는 따라갈 수 없는가? 이와 같은 선한 일꾼들을「연우포럼」이 찾아내서 모델링을 하고, 격려하고, 협력하며 함께 동역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Ⅷ 벌써「4月」에 접어들었고 이제 며칠후면 「식목일」이다. 「엘제아르 부피에」의 불굴의 정신과 신념을 본받아 나의 인생이라는 산야에도 한그루「희망의 나무」를 정성스럽게 심어보고 싶다. 또한 「참여문화」의 비전을 갖고 기경하는 우리 「연우포럼」의 대지에도 왕성한 식목의 작업이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칼럼」나무들이 심어지고, 그들이 자라나서 이루는 「連友」의 숲 속에 도란도란 「토론 문화」가 꽃피고, 메말랐던 샘에서터져 나온 물길이 숲 속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나눔의 정신」으로 새로운 생명을 일깨우는 일이 왕성하게 생겨났으면 좋겠다. 우리 한국 사회를 위하여, 남북한 및 한민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위하여,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우호적인 연대를 위하여 이「나무를 심은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본받아 우리도 이번 「식목일」에는 다시 한번 푸른 희망의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다 되어보자. 장기전으로 치닫는 이라크전쟁과 「반전」여론의 소용돌이 속에 하루도 편할날이 없는이 지구촌의 언덕에 「자유」와 「평화」의 꿈나무를 심어보자. 불의와 부패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물질만능시대의 동산에 「정의」와 「양선」과 「자비」의 꿈나무를 심어보자. 세상은 끝없이 변화되어가고 있지만, 그러나 변하는 세상속에서도 결코 변치 않는 하나의 복음(?)이 있다. 그것은 이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는 한, 그 생명을 섭리하는 보이지 않는 힘(Unvisual Power)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통하여 드러나고, 우리의 헌신과 희생을 통하여 달성되는 가치개념이다. 그것을 파악하고 기획하고 실천할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옛 철학자의 신앙고백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생명의 숲으로 바뀐 기적 같은 이야기 ― 한 늙은 양치기의 전설같은 식목의 이야기를 「4月의 복음」으로 믿고 묵묵히 실천하는「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찬란하다.미래는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2003. 4. 3)
1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7가지 특질』 댓글:  조회:7069  추천:97  2006-09-04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7가지 특질』 (The 7 Characteristics of Highly Effective Modern People) 이승률 : 連友포럼 회장 Ⅰ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다 읽고 나면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어서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 있어서 이 책은 「과거의 늪」으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끄집어내는데 많은 도움을 준 지침서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최근에 스티븐 코비의 책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친 좋은 소재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소재는 순수한 우리말 쌍기역(ㄲ)이 들어가는 외자 낱말 7자를 골라내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격과 기질을 알아 맞추는 퀴즈인데, 이미 인터넷과 인구(人口)를 통하여 약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단순히 우스개 낱말 알아맞추기 정도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어, 오늘 제가 연우포럼의 「칼럼」을 통하여 상당한 수준(?)의 미래지향적 의미를 담아 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호를 다소 거창한 말로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7가지 특질」로 잡았는데, 이는 우리 한글이 갖고 있는 묘미를 스티븐 코비의 책에 한번 견주어 보겠다는 선한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 그러면 처음 이 퀴즈에 참여하시는 분들께서는 한번 알아 맞춰 보시지요. 과연 어떤 낱말(쌍기역으로 된 외자낱말)이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특질 (Characteristics)을 잘 나타내는 일곱가지 단어가 될까요? Ⅱ 첫째 :「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꿈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이「꿈」이 없이는 결코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꿈」은 우리에게 희망과 소망을, 이상과 환상을, 야심과 기대를 일깨워 줍니다. 「꿈」은 Dream이고 Vision입니다. “I have a dream" 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의 메시지는 미국사회의 흑백갈등을 뛰어넘어, 전 세계 인류사회에 끝없는 자유와 평등의 진보를 이끌어가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시대와 역사의 변화를 이끌어가는「꿈」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꿈」을 통하여 「꿈」을 실현하는 「꿈꾸는 사람들」이 됩시다. 둘째 : 「깡」입니다. 「깡」은 열정(Passion)입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보면 그 마지막 장에서 “세계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Passion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귀하고 소중한 「꿈」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추진하고 밀어나갈수 있는 Power 즉「엔진」과 같은「깡」이 없이는 현실화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깡」은 믿음이고 배짱입니다. 「깡」은 용기이며 도전이고 투쟁하는 박력입니다. 「깡」은 결코 조폭과 깡패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깡」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힘의 원천(Power Source)이 됩니다. 우리 모두 「깡」이 있는 강한 사람들이 됩시다. 셋째 : 「끼」입니다. 우리는「끼」를 매우 부정적으로 말할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 끼가 있어. 끼 있는 사람이야.”라고 할 때는 마치 사람을 나쁜 쪽으로 유혹하는바람둥이의 소질을 탓할 때나 「날라리」같은 천박한 예능기질을 빗댈 때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끼」는 참으로 소중한 자산입니다. 「끼」는 곧 재능(Talent & Gift)이요, 능력(Ability)입니다. 무대 위에 선 배우가 「끼」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드라마나 쇼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강단에 선 정치인이 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재능(끼)을 구사하지 못한다면과연 그는 얼마나 많은 득표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참으로 중요한 개성미(Individual Virtue)요, 그만이 가지는 독특한 자질(Temperament)이 됩니다. 우리 모두 「끼」있는 사람들이 되어봅시다. 넷째 : 「꾀」입니다. 과거 유학의 군자(君子)시대에는 어리석음(愚)을 「仁」에 이르는 예(禮)의 한 덕목으로삼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영특하여 남의 약점이나 틈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利)를 취하는것을 삼가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Digital Network시대에는 「꾀」라고 하는 영특한 재치(Wit)와 영악스러울정도의 임기응변 능력(Extemporaneous)이 없이는 판판이 당하고 뒤질때가 많습니다. 「꾀」라는 것은 결코 남을 해치거나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슬기롭고 재미있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기민성과 스마트한 지력(Mental Power)을 일컫는 말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또 하나의 지적자산(Intellectual Resources)이며 지혜(Wisdom & Sense)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리 우리가 전통적인 Analog방식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고 해도, 우리들앞에 닥쳐오는 수많은 「정보」와 「사건」과 「사람들」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꾀」많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꾀주머니」를 꿰차는 「꾀」많은 사람들이 됩시다. 다섯째 : 「꼴」입니다. 우리는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지식과 실천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태도」가 불량하거나 원만치 못하면 그를 「사람축」에 끼워주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생활을 통하여 그 사람이 나타내는 태도(Attitude)는 참으로 중요한 인간관계의 한 척도(A standard of Human Relations)가 됩니다. 중세 일본열도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의 초기생애를 살펴보면, 한 사람이 갖추고 있는 「태도」라는 덕목이 그의 성장과 출세를 위해 얼마나중요한 Solution을 제공해 주었는지에 대한 귀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가난하고 체구가 유난히 작은 이 소년은 당시 도요토미 구니(현재 시즈오까縣)에 있는 다이묘(大名)의 한 가신의 시종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의 지극히 겸손한 매너와 쾌활한 성격, 그리고 윗사람에 대한 철저한 복종의 자세로 말미암아 그를 발탁한 모든 상관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물평가의 과정을 거쳐 그는 드디어 「오미구니 나가히마」의 영주가 되었고, 나아가 다이묘 연합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이 「무인세력의 연합」이 일본전국을 장악하는 정부를 구성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일본열도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태도」의 가치는 예의(Courtesy)와 성실성(Sincerity)과 온유한 마음을 유발하는 처세술(The Art of living)의 기초가 되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이「태도」는 남을 기쁘게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신비한 묘약(?)이 되기도 합니다. 자,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성실한 「태도」를 갖춤으로써 이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을 부드럽게 이겨나가는 「매너」의 달인이 되어봅시다. 여섯째 : 「끈」입니다. 「끈」이라고 하니까 웃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한마디 하고싶습니다. 「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만일 허리끈이 없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어떻게 바지와 팬티를 입고 다닐수 있으며 또한 바지와 팬티가 없는 그 몰골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허리끈」이 이렇게 중요한데 하물며 그 「허리끈」뿐이겠습니까? 「끈」은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고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관계구조의 요체」가 바로「끈」(Relationship)이지요. 여러분께 제가 한마디 질문해보겠습니다. 「끈」없이 출세한 사람 봤습니까? 왜 세상사람들은「끈」을 달지 못해 그렇게 안달이지요? 그렇습니다. 「끈」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왜냐면, 그「끈」을 통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힘」이 전달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혈연」,「학연」,「지연」을 포함한 모든 「인연」도 「끈」의 연결고리에 불과하며, 또한 중국사람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꽌시」라는 말 즉 인간관계(Human Relations)라는 말과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풍미하는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란 말도 결국은 「끈」의 사회화, 국제화 현상의 한 산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정부에 들어와서 노대통령께서 정권인수위원회나 측근들에게 「줄」곧 「끈」을 대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패가망신 시키도록 하라”고 엄명을 했던것도 다 이「끈」의위력을 아시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그 측근들 중 몇 분이 과거에 「끈」을 맺고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얻어먹은(?) 돈 때문에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이것도 「끈」으로 이어지는 정경유착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또 노대통령께서 직접 국회를 방문해서 여야 국회위원들에게 「이라크 파병」을 승인하도록 요청하기까지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신정부 이전의 혈맹관계수준으로 원상복구 시켜놓으려고 애를 쓴 이유도, 다 이와 같이 미국의 지원을 계속 공급받아야 살 수 있다는 논리의 「끈」과 「힘」의 관계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다시 한번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될「끈」은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저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인간관계」도 중요하고 「국제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 인생을 통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끈」은「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성공하면 모든 것에 성공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끈」들을 잘 정리하여 추하고 냄새나는 「끈」들은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진실한 우정과 인정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 사회속에 정의와 평화를 깃들게 하는 그런 깨끗한「끈」들만 남겨두도록 합시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하여 천국으로 연결되는 「영생의 끈」을 붙잡는 복된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일곱째 : 「꾼」입니다. 여기서 「꾼」은 전문가(A Professional)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아마추어가 아니고 프로페셔널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자기 분야를 성취하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전문가적 소양과 조건을 갖추고,「선택과 집중」의 논리기반 위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주어진 「일」을 해치우는 능력을 가져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세상에서는 이「꾼」이란 말이 썩 좋은 말 같지는 않습니다. 술꾼, 바람꾼, 노름꾼, 사기꾼, 삯꾼.... 같은「꾼」들을 보면 말이죠.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꾼」은 이런 분들이 아닌, 남이 보던 안보던 간에 자신의 일을 정당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선한 일꾼」으로서의 인물을 뜻합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전문가로서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될 때 우리사회는 한층 더 유능하고 윤택한 선진사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 모두 선한 일꾼이 되어 「성공하는 현대인의 모범」이 되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Ⅲ 이상으로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7가지 특질」을 다 살펴보았습니다. 꿈/깡/끼/꾀/꼴/끈/꾼 하나같이 모두 쌍기역(ㄲ)으로 된 외자낱말들입니다. 저는 이 퀴즈를 알고 나서 우리 한글이 가지는 신묘한(?) 의미기능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낱말 하나 하나의 뜻풀이가 참으로 귀합니다. 그런데 제가 깊은 묵상 끝에 발견한 두가지 더욱 새로운 내용이 있어 부연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대부분 이 퀴즈를 풀 때, 사람들이 낱말들의 순서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되는 대로 알아 맞춘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실은 제가 이미 그「낱말들의 순서」를 잘 배열해 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해되었을 줄로 압니다만) 한번 더 설명을 드리자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꿈」을 가져야하고, 그것을 실천하기위해서는 「깡」으로부터 나오는 열정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깡」도 좋지만 본인만이 갖고있는 재능으로서의「끼」와 영특한「꾀」도 긴요합니다. 또한 이들을 아우르는 성실한 태도 즉「꼴」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아무리 이런 것들이 다 있어도 「끈」이 없고서야 어떻게 필요한「힘」을 공급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꾼」이 되어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우리가 꿈꾸어왔던 그 「꿈」을 현실의 지반 위에 보란듯이 성공적으로 실현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 일곱가지의 외자 낱말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순서를 잡아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뭇 그 의미와 맛이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제가 배열해 놓은 순서대로 한번 그 의미를 이어 나가시면 많은 도움이 될줄로 여겨집니다. 둘째로, 저는 이 일곱가지 외자 낱말들의 뜻을 깊이 생각하다가 문득 새로운 착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독자적으로 이끌어낸 결론입니다.)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7가지 특질」이 모두다 이 시대에 합당한 필요 조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것들이 충분한 조건이 되는가? 라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때 섬광처럼 또 하나의 새로운 쌍기역(ㄲ) 외자 낱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무릎을 탁 쳤지요. 자, 여러분도 다시 한번 알아 맞춰 보시지요. 끝으로 외자 낱말 하나만 더 첨가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격으로 「성공하는 현대인들의7가지 특질」을 완벽하게 정립할 수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여덟 번째 외자 낱말,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이미 여러분께 「힌트」를 드렸는데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끝으로” 할때의「끝」자입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게 다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어떤 주어진 일이 여태껏 아무리 잘 진행되어왔다 하더라도, 만일 마지막 「끝」에 가서그 일이 뒤틀리고 비뚤어지면 어떻게 그「일」을 온전히 완성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한마디로 「끝」이 좋아야 모든게 다 완전해진다는 뜻이지요. 우리 일생도 이와 같아서 “끝이 좋아야 정말 좋아지는 것” 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인생의 과정을 아무리 뜻한 바대로 잘 살고 성취해왔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 자신의영혼을 구원받지 못하고 영생의 삶을 놓쳐버린다면, 그동안 누려왔던 인생의 열락이 다 무슨 소용이 된단 말입니까? 오늘, 이 「성공하는 현대인들의 7가지 특질」을 음미하다가 제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끝이 좋아야 다 좋다”라는 「Happy Ending」으로서의 세계관 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결론에 동의해주신다면, 저는 참 행복해질 것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일은 생각과 뜻과 행동에 있어서 동역자(Fellow Workers)를 만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연우포럼」의 친구 여러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못지않는 순수한 우리말 꿈/깡/끼/꾀/꼴/끈/꾼 의 특질을 양식으로 삼아 우리 한번 이 시대를 멋지게 살아봅시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 일회적인 삶의 마지막 「끝」을 함께 잘 준비해 가는 진정으로「성공하는 현대인들」이 다 되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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