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mxclub 블로그홈 | 로그인
명상클럽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456 ]

316    행복에대해서 댓글:  조회:2607  추천:93  2008-09-05
갈증날때 물마시고 배고플때 밥먹고 졸릴때 자고 피곤할때 쉬고 기쁠때 웃고 슬플때 울고 이웃과 나누는것 이것이 행복 아닌가!
315    일곱가지 번뇌 댓글:  조회:2904  추천:98  2008-09-03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일곱 가지 번뇌를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잘 명심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일곱 가지 번뇌란 무엇인가. 첫째는 탐욕 번뇌요, 둘째는 성냄 번뇌며, 셋째는 교만 번뇌요, 넷째는 어리석음 번뇌며, 다섯째는 의심 번뇌요, 여섯째는 소견 번뇌며, 일곱째는 욕심 세계와 형상 세계의 탐욕 번뇌니라.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번뇌가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영구히 어둠 속에서 그 몸을 결박해 세상에 흘러 다니면서 쉴 새가 없게 하며 또 생각의 근본을 알지 못하게 하느니라. 마치 흰 소와 검은 소가 한 굴레에 매어 함께 끌면서 서로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탐욕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 결박되어 서로 떠나지 못한다. 그 밖의 다섯 가지 번뇌도 서로 따라 다닌다. 다섯 가지 번뇌가 일곱 가지 번뇌를 따라 다니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만일 범부로서 이 일곱 가지 번뇌에 묵이면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의 근본도 알지 못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이 일곱 가지 번뇌로 말미암아 곧 지옥, 축생, 아귀의 세 갈래 나쁜 길이 있다. 또 이 일곱 가지 번뇌로 말미암아 악마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이 일곱 가지 번뇌에는 또 일곱 가지 약이 있다. 일곱 가지 약이란 무엇인가. 탐욕 번뇌는 생각 각의(覺意)로 다스리고, 성냄 번뇌는 법 각의로 다스리며, 삿된 소견 번뇌는 정진 각의로 다스리고, 욕심 세계 번뇌는 기쁨 각의로 다스리며, 교만 번뇌는 쉼 각의로 다스리고 의심 번뇌는 선정 각의로 다스리며, 무명 번뇌는 보호 각의로 다스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일곱 가지 번뇌는 일곱 가지 각의로써 다스린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내가 이직 불도를 이루지 못하고, 보살 행을 행할 때에 보리 나무 밑에 앉아 생각하였다. '욕심 세계의 중생들은 무엇에 얽매여 있는가'고. 다시 '이 중생들은 다 일곱 가지 번뇌 때문에 생, 사에 흘러 다니면서 영원히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지금 이 일곱 가지 번뇌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때에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일곱 가지 번뇌는 일곱 가지 각의로 다스려야 한다. 나는 일곱 가지 각의를 생각하자'고. 그래서 일곱 가지 각의를 생각하였을 때 곧 번뇌가 없어지고 마음이 해탈하여 위없는 바른 도를 성취하였고, 이레 동안 가부하고 앉아 다시 이 일곱 가지 각의를 깊이 생각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일곱 가지 번뇌를 버리려고 하거든 일곱 가지 각의를 수행하기를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三) 聞如是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當說七使。汝等善思念之 諸比丘對曰。如是。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世尊告曰。云何為七。 一者貪欲使。二者瞋恚使。三者憍慢使。四者癡使。五者疑使。六者見使。七者欲世間使。 是謂。比丘。有此七使。使眾生之類。永處幽闇。纏結其身。流轉世間。無有休息。亦不能知生死根原。猶如彼二牛。一黑一白。共同一軛。共相牽引。不得相遠。此眾生類。亦復如是。 為此貪欲使.無明使所纏結。不得相離。其餘五使。亦復追從。五使適從。七使亦然。 若凡夫之人。為此七使所縛。流轉生死。不得解脫。不能知苦之元本 比丘當知。由此七使。便有三惡趣。地獄.畜生.餓鬼。由此七使。不能得度弊魔境界。 然此七使之法復有七藥。云何為七。 貪欲使者。念覺意治之。 瞋恚使者。法覺意治之。 邪見使者。精進覺意治之。 欲世間使者。喜覺意治之。 憍慢使者。猗覺意治之。 疑使者。定覺意治之。 無明使者。護覺意治之。 是謂。比丘。此七使用七覺意治之 比丘當知。我本未成佛道為菩薩行。坐道樹下。便生斯念。欲界眾生為何等所繫。 復作是念。此眾生類為七使流轉生死。永不得解。我今亦為此七使所繫。不得解脫。 爾時。復作是念。此七使為用何治之。 復重思惟。此七使者當用七覺意治之。 我當思惟七覺意。思惟七覺意時。有漏心盡。便得解脫。後成無上正真之道。七日之中結跏趺坐。重思惟此七覺意。是故。諸比丘。若欲捨七使者。當念修行七覺意法。如是。諸比丘。當作是學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14    행복경--세상에서 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댓글:  조회:2380  추천:90  2008-08-23
행복경258"많은 신과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259"어리석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고 어진이와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0분수에 알맞은 곳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고스스로 서원을 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1지식과 기술을 쌓고 그위에 말솜씨가 뛰어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2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3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적을 사랑하고 보호하는것,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4악을 싫어해 멀리하고 술을 절제하고 덕행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5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로는 가르침을 듣는 것,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6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고 수행자들을 만나고,때로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7수행을 하고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8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9이러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실패하지 않는다.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 숫타니파타에서 -
313    1162. 노부부경(老夫婦經) 늙은 따오기 댓글:  조회:2583  추천:94  2008-08-18
1162. 노부부경(老夫婦經)2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존자 아난도 세존의 뒤를 따라갔다. 그 때 두 늙은 남녀가 있었는데, 그 둘은 부부로서 나이가 많아 감각기관은 다 허물어지고 등은 휘어진 갈고리처럼 굽었다. 그들은 마을 뒷골목 쓰레기를 사르는 곳에서 불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그 늙은 부부를 보니, 나이는 많은데다 미련스럽고 갈고리처럼 등은 굽었으며 불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늙은 따오기가 욕심에 가득 차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두 늙은 부부를 보시고 나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이가 많은데다 미련스럽고 갈고리처럼 등까지 굽었으며, 불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늙은 따오기가 욕심에 가득 차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저 두 부부를 보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두 늙은 부부는 나이 젊어 건강한 몸이었을 적에 부지런히 재물을 모았더라면 사위성에서 첫째가는 부자 장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부지런히 닦아 익혔더라면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과(果)를 얻었을 것이다. 둘째로 왕성하고 건강한 몸이었을 적에 부지런히 재물을 모아놓았더라면 사위성에서 둘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였을 것이다. 셋째 저들이 중년의 몸이었을 적에 부지런히 재물을 모아놓았더라면 사위성에서 셋째 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이제 나이 많아 늙고 감각기능도 다 허물어졌으며 모아놓은 재물도 없고 방편도 없으며 감당할 능력도 없어, 재물을 구하려해도 능력이 없게 되었고 또한 사람의 세상을 벗어나는 법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범행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어서 재물을 얻지 못했고 지나간 옛 일을 생각하면서 땅에서 조는 모습 굽은 활 같네. 범행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젊어서 재물을 얻지 못했고 마치 저 늙은 따오기가 빈 못을 지키다 죽는 것 같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一一六二)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世尊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尊者阿難從世尊後 時。有二老男女。是其夫婦。年耆根熟。僂背如鉤。諸里巷頭。燒糞掃處。俱蹲向火 世尊見彼二老夫婦。年耆愚老。僂背如鉤。俱蹲向火。猶如老鵠。欲心相視。見已。告尊者阿難。汝見彼夫婦二人。年耆愚老。僂背如鉤。俱蹲向火。猶如老鵠。欲心相視不 阿難白佛。如是。世尊 佛告阿難。此二老夫婦。於年少時盛壯之身。勤求財物者。亦可得為舍衛城中第一富長者。若復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精勤修習者。亦可得阿羅漢第一上果。 於第二分盛壯之身。勤求財物。亦可得為舍衛城中第二富者。 若復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者。亦可得阿那含果證。 若於第三分中年之身。勤求財物。亦可得為舍衛城中第三富者。 若剃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者。亦可得為斯陀含果證。 彼於今日。年耆根熟。無有錢財。無有方便。無所堪能。不復堪能。若覓錢財。亦不能得勝過人法 爾時。世尊復說偈言  不行梵行故  不得年少財 思惟古昔事  眠地如曲弓 不修於梵行  不得年少財 猶如老鵠鳥  守死於空池  佛說此經已。尊者阿難陀聞佛所說。歡喜奉行  
  671. 사력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소경에서 설한 것과 같으며, 다만 그와 다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룩한 제자로서 이 네 가지 힘을 성취하거든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나는 살아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가? 만일 몸으로 깨끗하지 못한 행[行不淨行]을 행하고, 입으로 깨끗하지 못한 말[口不淨行]을 하며, 뜻으로 깨끗하지 못한 행[意不淨行] 등을 행하고, 온갖 삿된 탐욕을 일으켜 믿지 않고 게으르며, 정진하지 않고 뜻을 잃으며, 안정하지 않고 나쁜 지혜를 쓰며, 인색하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그는 마땅히 살아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네 가지 힘이 있나니, 즉 깨달음의 힘[覺力]․정진의 힘[精進力]․죄 없음의 힘[無罪力]․포섭하는 힘[攝力]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힘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살아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쁜 이름에 대한 두려움․대중 속에서의 두려움․죽음에 대한 두려움․나쁜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六七一)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如上說。差別者。聖弟子成就此四力者。當作是學。我不畏不活。我何緣畏不活。若身行不淨行.口不淨行.意不淨行。作諸邪貪。不信.懈怠.不精進.失念.不定.惡慧.慳不攝者。彼應畏不活。我有四力。謂覺力.精進力.無罪力.攝力。有此四力成就故。不應畏如不活畏。如是惡名畏.眾中畏.死畏.惡趣畏亦如上說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11    내가 머물고있는 수행처--보리수선원 댓글:  조회:5416  추천:79  2008-08-11
 2008년 7월2일 한국에 들어와서 어느덧 40일이 지났다. 그동안 절반한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선지식들을 만나보았다. 대전에도 가보았고 목포에도 부산에도 그리고 서울에서 ... 최종적으로 내가 자리잡은 곳은 바로 보리수선원이였다.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은 남방불교를 한층 접해보고싶은 생각에서였고 남방불교의 핵심인 아비담마를 배우면서 위빠사나수행을 하기위해서였다. 국내에서는 남방불교를 접할 인연이 없었으며 환경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위빠사나수행처에서도 보리수선원을 선택한 가장 강력한 이유는 보리수선원의 원장스님인 붓다락키타스님은 일찍 미얀마에서 두타행을 하셨던 선지식이였기때문이다.  보리수선원은 현재 과천시 선바위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선바위역에서 바라본 서남쪽 관악산정상이다.  선바위역 도로입구에서 바라본 동남쪽 청계산  선바위역에서 3번출구로 나와서 곧장 앞으로 가면 제로존 자동차보호개선점이 있다.  과천시도로전경  선바위역에서 나와서 뒤돌아본 전경  선바위광장  선바위래력    최사립효자정각    다시보는 관악산정상  제로존오른켠도로(뒷골5길)로 100여메터쯤 가면 보리수선원간판이 보인다.  보리수선원    선원의 앞마당에있는 이름모를 꽃  선원2층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농장풍경-- 삼면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선원이 자리잡고 있다. 보이는 뒷산 오른켠정상은 우면산이다.    설법수행처에 모신 석가모니상-- 불상은 천인의 형상인데 석가모니부처님이 도솔천에 올라 어머니인 마야부인에게 설법할때 나타낸 형상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천인의 신장은 사람의 신장보다 엄청나게 커서 삼매에 들어 천인과 동등한 모습을 시현하여야만 천인들이 부처님의 형상을 볼수가 있었다고 한다.  금을 씌운 화려한 불상    미얀마 우 냐니사라스님-- 왼켠의 스님이 붓다락키타스님이고 오른켠은 미얀마 비구니스님 우냐니사라스님의 설법  수인  미얀마불상  설법전전경  수행자들이 머무는 방      내가 머물고 있는 방  내가 공부하고있는 책들-- 수행처에서는 책을 못보게 한다. 수행일정은 아침 3시반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경행과 좌선을 겸한 수행을 바꾸어가며 하는데 점심에 1시간반 자유시간에만 책을 볼수가 있다. 저녁 열시에 수행을 마무리, 그리고 오후불식을 철저히 지킨다. 매주 토요일오후에 아비담마강의가 있고 간혹 한두번 설법이외 나머지시간은 전부 수행에 몰입해야 한다. 처음 원장스님을 만나서 위빠사나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더니 경전을 읽는것도 아니며 아비담마를 공부하는것도 아닌 직접 수행으로 들어가서 신심(身心)으로 직접 체험해야한다고 하셨다. 말그대로 리론을 떠나서 수행제일의 원칙이였다. 물론 수행을 하면서 매일 일대일상담으로 리론을 내몸에 실천증명하는것이였다. 책을 아무리 읽어보았자 그건 밖의 지식일뿐이 내 안의 참지식이 아니라는것이다. 참고로 위빠사나수행은 통찰지 즉 지혜를 개발하는 수행으로서 알아차림이 핵심이다. 한마디로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있음을 철저히 아는게 곧 위빠사나수행이다. 나의 몸의 움직임-- 즉 손,발의 움직임 지어는 눈의 깜작임까지 알아차려야 하며 내마음에서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심리활동을 절처히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너무 미세하고 미묘하여 그 정체를 알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라는 오온을 거쳐 나타나는 정신적인 마음의 활동을 일일이 알아챈다는건 바다물속에서 어느 강에서 흘러나온 물을 구분해내는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못할수있는건 아니며 그렇게 마음을 알아야만 우리는 수많은 번뇌에서 탈출하여 마음의 고요함을 찾을수가 있는것이다.  수행이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범행을 하지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번뇌의 시달림을 받아야 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이 번뇌에서 해탈하는 길은 오직 한가지 길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이 곧 사념처이다. 일승도라고도 하는데 세상의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가르치는 진리가 곧바로 사념처를 거쳐 증득하는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이다.         NAME : 다노 | 2008-08-11 명상님, 부럽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환히 명상님의 생활상을 들여다볼수 있어서 넘 좋습니다. 전혀 멀리 있다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가깝네요. 붓다락키타스님께도 문안인사 전합니다^^ 근데 이름 기억하기 힘드네유~~ 명상님은 거기가면 뭐라 불러유? 수행을 열심히하여 반드시 성불하리라 믿소이다~ () NAME : 목장 | 2008-08-11 명상님 좋은 선원을 찾았다하니 축하드립니다.앞으로 명상공부를 잘해서 우리들한테 좋은 명상의 말씀가르쳐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NAME : 바람 | 2008-08-15 한국땅에 같이 있으면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드네요 시간을 내서 찾아가 뵙겠습니다. NAME : 봄비 | 2008-08-15 오늘따라 명상님 하고 바람님이 많이 그립습니다.산도 같이 가고싶고 명상의 말씀도 듣고 싶어요.....연분이 되면 또 만나겠지요~~~^_^ NAME : 해 | 2008-08-15 명상님 오래만입니다.이국땅에서 좋은 나날 보내리라 보아집니다. 모두들 얼굴보기가 힘듭니다.하반년에는 합동등산할 기회가 있겠죠. 그때가서 좋은 소식 기대합니다.
310    620. 원후경(猿猴經) 사냥군과 원숭이 댓글:  조회:2452  추천:93  2008-08-05
620. 원후경(猿?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큰 설산(雪山)9) 속, 차가운 얼음이 있는 험준한 곳에는 원숭이조차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있겠는가? 혹 어떤 산에는 원숭이는 살지만 사람은 없고, 혹 어떤 산에는 짐승과 사람이 함께 산다. 그런 산에다 사냥꾼은 원숭이들이 다니는 곳에 밀떡 아교를 풀에 발라둔다. 그러면 영리한 원숭이는 그것을 멀리 피해가지만, 어리석은 원숭이는 그것을 멀리 피하지 않고 손으로 건드리다가 그만 손이 붙어버리고, 다시 두 손으로 그것을 떼려 하다가 곧 두 손이 다 붙어버리며, 발로 떼려 하다가 다시 발이 붙어버리고, 입으로 풀을 물어뜯다가 곧 입도 붙어버린다. 그렇게 다섯 부위가 함께 붙어 땅에 쓰러져 누워 있으면 사냥꾼이 와서 막대기로 꿰어 짊어지고 갔다. 비구들아,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그 원숭이는 자기의 경계과 부모가 사는 영역을 버리고 다른 경계에서 놀다가 그런 고통을 당한 것이다. 그와 같이 비구들아, 어리석은 범부는 촌락을 의지해 살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그 몸을 잘 단속하지 않고 감관을 지키지 않아서, 눈으로 빛깔[色]을 보고는 곧 집착을 일으키고, 귀는 소리에, 코는 냄새에, 혀는 맛에, 몸은 감촉에 모두 집착하나니, 어리석은 비구는 안의 감관과 바깥의 다섯 대상에 묶여 악마의 욕망대로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이렇게 배워 자신이 다닐 곳, 부모의 경계에 의지해 살고 다른 영역, 다른 경계는 다니지 말아야 한다. 비구들아, 어떤 것이 자신이 다닐 곳, 부모의 경계인가? 이른바 4념처이니,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 팔리어로는 Himavanta라고 함. 인도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의 히말라야산을 말하는데, 일년 내내 눈이 항상 쌓여있는 데서 유래한 이름임.
309    관악산풍경 댓글:  조회:2397  추천:76  2008-08-05
2008년 8월 1일 보리수선원에 갔다가 남태령에서 관악산을 넘어 서울대로 내려왔다.  관악문  관악문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전경-- 한강넘어 남산타워와 제일 뒷쪽의 북한산과 도봉산이 어렴푸시 보인다.  인천방향-- 왼쪽으로 바다가 보였으며 인천빌딩도 보였다.  관악문과 이어진 바위  관악산정상--연주대  연주대에 오르기전 바위우의 한그루의 소나무아래에 한가하게 앉아있는 나그네        관악산 대표적인 기도도량--연주암  반대편에서 바라본 연주대전경  연주암넘어로 서울전경  멋진 바위들....      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관악산전경  이날따라 유난히도 맑은 하늘      이름모를 나무열매
308    사자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유달산에서 댓글:  조회:2771  추천:101  2008-07-29
  2008년 7월24일 남단의 목포에 있는 보현사를 방문하고 홀로 유달산에 올랐다. 유달산은 목포시의 해변가에 있는 작지만은 목포시를 대표할만한 멋지고 아담한 산이였다. 목포란 사람이 모인다는 뜻이 포함되였다고 하며 이순신장군 그리고 목포의 눈물 등등 유서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유달산 정문--깔끔하게 깔려있는 돌계단이 걷기가 너무 좋았다.  유달산 노적봉        이순신장군의 동상        유달산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목포시 동북쪽전경  서쪽 바다가전경  목포의 눈물 노래비  유달산정상--정자넘어로 보이는 일등바위  유달산정상    이등바위로 오르는 돌계단  이등바위우에서 바라본 목포전경--때는 비가오기직전이라 안개가 자욱하여 멀리 볼수가 없었다.  산을 내리면서 바라본 이순신장국동상--그 혼은 아직도 여기 목포시를 지키는듯....  유달산정상에서....  이번 목포행에서 가장 깊이 느껴온 한마디 귀중한 명언이다. 사자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않는다.... 유달산을 오르면서 신작로에서 발견한 명언이다.멜빈 죤스가 누구신지는 몰라도 참으로 뜻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사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307    대부도의 풍경 댓글:  조회:2253  추천:76  2008-07-29
                                       
306    도봉산풍경 댓글:  조회:2487  추천:67  2008-07-28
   우이암  투사모양의 바위          포대능선에서 만난 손바닥모양의 바위  포대능선을 걸으면서 바라본 자운봉  갑자기 소낙비가 와서 바위밑에서 한시간넘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자운봉  만장봉옆으로 보이는 의정부시  도봉산 만장봉  자운봉정상을 오르는 길    내가 지나온 능선--포대능선  도봉산정상--자운봉 해발 739.5메터  선인봉
305    계룡산 도덕봉산행 댓글:  조회:2569  추천:92  2008-07-26
2008년 7월 9일 대전의 자광사를 찾았다. 절 뒷켠으로 계룡산절벽이 한눈에 안겨와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유혹이 가는 일이다...ㅎㅎㅎ  계룡산은 2004년에 완번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문으로 동학사쪽으로 올랐지만 정상은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상이 저 봉우리도 아니였다. 참고로 보이는 벼랑정상은 도덕봉임.  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넘어로 계룡산벼랑이 한눈에 안겨온다. 오늘은 한가하게 할일이 없으니 아침밥을 먹고 천천히 저 계룡산이나 올라보아야지....여덟시가 되여 나는 늘쩡늘쩡 산책하는 마음으로 길을 따라 산아래를 향하였다..  계룡산입구전의 다리 가운데서 바라본 벼랑-- 물은 맑고 물고기들이 헤염쳐다니는것까지 보였다.  계룡산국립공원입구  산을 오르면서  뒷산에서바라본 계룡산  도덕봉정상에서 바라본 대전전경  벼랑턱에 걸린 계단  내려가는 길  계룡산입구의 샘물터
304    592. 급고독경(給孤獨經) 급고독장자이야기 댓글:  조회:2264  추천:89  2008-07-22
592. 급고독경(給孤獨經)2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있는 한림(寒林)21)의 묘지 사이에 머물고 계셨다. 20) 이 경은 『별역잡아함경』 제9권 26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21) 팔리어로는 S tavana라고 함. 죽은 시체들을 내다버리는 장소를 말함. 그 때 급고독(給孤獨) 장자는 조금 볼 일이 있어 왕사성(王舍城)으로 가서 어느 장자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밤에 그 장자는 그 처자와 종과 머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다들 일어나 장작을 쪼개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고 온 집안을 장엄하도록 하라. 급고독 장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장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딸을 시집보내던가 며느리를 맞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손님이나 왕이나 대신을 초청하기라도 한 건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그 장자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딸을 시집보내던가 며느리를 맞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손님이나 왕이나 대신을 초청하기라도 한 겁니까? 장자가 급고독 장자에게 대답했다. 나는 딸을 시집보내거나 며느리를 맞는 것도 아니며, 또한 왕이나 대신을 초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부처님과 비구스님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려고 할 뿐입니다. 그 때 급고독 장자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마음이 너무 기뻐 온몸의 털구멍이 다 느긋해져 그 장자에게 물었다. 어떤 이를 부처라고 합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사문 구담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석가 종족의 아들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없는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으셨습니다. 그 분을 부처라고 합니다. 급고독 장자가 물었다. 어떤 이를 스님이라고 합니까? 그 장자가 말했다. 만일 바라문의 종족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거나, 혹은 찰리종(刹利種)․비사종(毘舍種)․수다라종(首陀羅種)의 선남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없는 데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셨듯이 그를 따라 출가하면, 그들을 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부처님과 현재 그곳에 있는 스님들을 초청하여 모든 공양들을 베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급고독 장자가 그 장자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 세존을 찾아뵈어도 괜찮겠습니까? 그 장자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일단 여기에 계십시오. 제가 세존을 청해 우리 집으로 오시면 여기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급고독 장자는 그 날 밤에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인데 갑자기 환하게 밝은 형상이 보여 그는 날이 밝았다고 생각하고, 그 집을 나와 성문으로 달려가서 성문 아래 이르렀는데, 밤의 2경(更)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므로 아직 성문은 열리지 않을 시간이었다. 왕가의 일상적인 법도에서는 멀리서 오고 가는 사신들을 기다리기 위하여 초저녁〔初夜〕이 지나야 비로소 성문을 닫고, 한밤중이 지나면 곧 다시 문을 열어 행인들로 하여금 일찍 오가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급고독 장자는 성문이 열린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밝은 형상을 따라 성문을 나왔는데 성문을 나오자, 그렇게 밝던 형상은 온데 간데 없고 도로 깜깜한 밤으로 되돌아갔다. 급고독 장자는 마음에 문득 두려움이 생겨 온몸의 털이 곤두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무위(無爲)를 증득한 사람이나 귀신 혹은 간교한 사람이 나를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곧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 때 성문 옆에 어떤 천신이 서 있었다. 그 천신은 몸에서 광명을 발하여 그 성문에서부터 한림의 묘지까지 광명을 두루 비추었다. 그는 급고독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는 우선 앞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뛰어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물러나 되돌아가지는 말라. 그 때 그 천신이 곧 게송으로 말했다. 백 필의 좋은 말에 백 근의 황금을 가득 실은 노새가 끄는 수레와 말이 끄는 수레 각각 백 대가 있네. 거기다가 갖가지 진기하고 값진 보물들을 실어다 주리니 과거에 착한 종자 심은 사람은 이런 복된 과보 얻으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면 앞에 말한 사람의 복은 그의 16분의 1도 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마땅히 앞으로 나아가고, 부디 물러나 되돌아가지 말라. 그리고 그는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설산(雪山)의 큰 용상(龍象) 순금으로 장식되고 거대한 몸집에 크고 긴 어금니 지녔는데 이런 코끼리를 보시한 사람도 부처님을 향한 복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어서 앞으로 나아가 저와 같이 큰 이익을 얻어야 한다. 다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 그는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금보사국(金菩?國)22)에 있는 수백 명의 여자들은 갖가지 묘한 보배와 영락으로 잘 꾸몄네. 비록 그들을 남에게 준다 해도 부처님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그 공덕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장자여, 어서 앞으로 나아가 저와 같이 뛰어난 이익을 얻어야 한다. 다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 그 때 급고독 장자가 천신에게 물었다. 현자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천신이 대답하였다. 나는 마두식건(摩頭息?)이라는 큰 마나바(摩那婆)로서 옛날에 장자의 좋은 벗이었는데, 존자 사리불(舍利弗)과 대목건련(大目?連)에게 믿고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그 공덕의 인연으로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고 지금은 이 성문을 맡고 있다. 그래서 장자에게 '다만 앞으로 나아가고 부디 물러나 되돌아가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면 이익을 얻을 것이니 다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급고독 장자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심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른 법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작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천신은 내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권한 것이다. 나는 어서 가서 세존을 뵈어야겠다.' 그리고 급고독 장자는 곧 그 광명을 따라 한림의 묘지로 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방에서 나와 한데를 거닐고 계셨다. 급고독 장자는 멀리 부처님이 보이자, 곧 그 앞으로 나아가 속인의 예법대로 공손히 안부를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십니까? 기거하심이 편안하십니까?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열반은 언제나 안락하나니 애욕에 물들지 않고 해탈해 영원히 남음이 없다. 일체의 희망을 끊고 마음의 불길을 억눌렀으니 마음은 이제 고요히 쉬게 되어 편안하고 아늑하게 잘 수 있노라. 그 때 세존께서는 급고독 장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모은 뒤에 그를 위해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모든 법은 무상한 것이라는 것과, 보시라는 복된 일과, 계를 잘 지키는 복된 일과, 하늘에 태어나게 하는 복된 일에 대한 것과, 탐욕의 맛․탐욕의 근심․탐욕에서 벗어남과 멀리 여읨이라는 복된 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급고독 장자는 법을 듣고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에 들어가고 법을 알아 모든 의혹에서 벗어났고, 남의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남의 제도에 힘입지 않고 바른 법과 계에 들어가,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단정하게 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다음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구제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구제되었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부디 저를 증명하소서. 그 때 세존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물으셨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 이름은 수달다(須達多)이며, 늘 고독하고 빈곤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해 준다고 하여, 요새 사람들은 저를 급고독(給孤獨)이라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그대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구살라국 사람인데, 그 성의 이름은 사위성(舍衛城)이라고 합니다. 원하옵건대 부디 세존께서는 사위성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저는 마땅히 목숨이 다하도록 의복․음식․방․침구와 병에 따른 탕약을 모두 공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물으셨다. 사위성에 정사(精舍)가 있는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거기에 정사를 세워 여러 비구들이 오고 가면서 머물게 하라.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세존께서 사위성에 오시기만 한다면 저는 마땅히 정사와 승방(僧房)을 지어, 여러 비구들이 오고 가면서 머물게 하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들어주셨다. 장자는 불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들어주신 줄 알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서 떠나갔다. 22) 팔리어로는 Ka oja라고 함. 인도 16대국 가운데 하나로서 의역하여 가애(可愛)라고 함. 인더스 강 서쪽에 위치한 나라로 원래는 과일 열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임. 그 나라 사람들의 얼굴이 과일 열매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려지게 되었고, 유난히 미녀(美女)들이 많았다고 함. 지금은 대략 아프가니스탄 지방으로 추정됨.
303    보르헤스의 佛敎강의 댓글:  조회:2086  추천:86  2008-07-18
보르헤스의 佛敎강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0세기 서구지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작가다. 문학가로 사상가로 명망 높은 그가 타계 10년 전에 <불교강의>를 저술, 자신의 사상 근저에 불교가 뒷받침됐음을 알게 한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보르헤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자기화’시켰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불교강의>를 연재한다.                                             <현대불교신문 편집자 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899-1986) 189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08년「나시온 Nacion」오스카 와일드의 단편「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 1914년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스페인판 아방가르드인 '최후주의' 운동을 주도 1921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잡지 「프리즘」을 창간 1921년「노소뜨로스」에 울뜨라이스모강령 발표 1923년 첫 시집「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출간 1930년「수르 Sur」에 주요 필진으로 참여 1935년「불한당들의 세계사 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이후 단편소설에 주력 1937년 시립 미겔 카네 도서관 수석 사서직, 시장검열관,영미문학교수,국립도서관장,한림원 위원 역임 1942년 비오이 까사레스와 단편 추리소설집「이시드로 빠로디의 여섯 개의 문제」공동 집필 1945년 아르헨티나 문인 협회 특별상 수상 1950년 아르헨티나 문인 협회 회장으로 선출  1955년 페론의 실각 후 국립도서관장에 임명(1955-1973) 195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대학 영문학 교수직 겸임, 아르헨티나 국민 문학상 수상, 시력 상실 1961년 사무엘 베케트와 국제 출판인 협회가 수여하는 포멘터상 공동 수상 1980년 세르반테스상 수상 1986년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한 뒤 간암으로 사망   * 편역자 : 김홍근 1957년 부산 生. 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同 대학원 수료(문학석사).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원 수료(문학박사, 중남미문학 전공). 서울대 대학원, 고려대 대학원 강사. 현 한국외국어대 강사·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문학평론가.     1. 연재를 시작하며      ‘20세기의 창조자’라고 불리는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1976년 <불교강의>를 저술했다. 20세기 후반에 활동하는 전세계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후기구조주의와 해체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등 최근 서구사상사 상의 큰 반전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흐름의 사상적 기초와 인식의 맹아(萌芽)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보르헤스가 불교강의를 직접 저술할 정도로 불교에 깊은 애착과 정통한 이해를 가졌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연재가 진행됨에 따라, 작금 서구사상가들이 맞고 있는 ‘인식의 전환’에 불교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단초가 드러날 것이다. 보르헤스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그의 대표적 단편소설인 <알레프>를 보자. 이 소설에는 보르헤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귀던 애인이 죽고난 뒤 기일을 맞아 그녀의 집에서 가족과 친지들의 추모 모임이 열렸을 때 그도 참석한다. 그곳에서 죽은 애인의 사촌오빠를 만나는데, 이 사람은 반쯤 실성한 것 같은 시인이었다. 왜냐하면 취중에 “지구 표면 전체를 묘사하는 시를 쓰겠다”는 호언을 보르헤스에게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보르헤스에게 시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市) 외곽에 있는 자신의 고택 지하실에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물체가 있는데 그것은 동전만한 크기의 발광체(發光體)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외면했던 보르헤스는 여러날이 지난 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집을 찾아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 집 지하실에서 보르헤스는 ‘알레프’라고 불리는 발광체를 보게 된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때 나는 알레프를 보았다. … 그 거대한 순간에 나는 수백만 가지의 황홀하거나 잔혹한 장면들을 보았다. 정말 놀라운 일은, 그 많은 장면들이 한 점에서 보이는데도, 서로 겹쳐지지도 않고, 투명한 실루엣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본 것은 한 번에 보았는데, 글로 쓰자니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할 수 밖에 없다. …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우주 전 공간이 축소되지 않고 거기 있었다. 각각의 사물의 갯수는 무한했는데,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달이 복수가 되는 것처럼) 나는 우주의 모든 지점에서 그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으며, 너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울고 말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그 이름을 남용하지만 결코 본 일이 없는 玄玄한 가상의 대상, 즉 불가해한 우주를 내 두 눈이 보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전집 Ⅰ, 625쪽. 이하 보르헤스 글은 원문에서 필자가 직접 번역) 보르헤스의 서술은 평범한 소설속의 묘사를 뛰어 넘는 직관이 담겨 있다. 그것은 마치 번개같이 짧은 순간에 우주의 신비를 깨달은 어느 각자(覺者)의 체험담같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그 무한 시공간체(時空間體)의 이름을 <알레프>라 불렀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 알파베트의 첫글자로, 흔히 문명의 기원을 상징하며 또한 신성(神性)을 담고 있는 글자로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알레프>는 희랍어에서는 알파로 발음된다. 보르헤스는 그의 <불교강의> 중 붓다에 관한 전설을 설명하는 곳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오랜 수행 끝에 보리수 아래 앉아 정각(正覺)을 이루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홀로 나무 아래 정좌한 싯타르타는 순간적으로 자신과 모든 중생의 수많은 전생을 보았다. 한눈에 우주 구석구석의 수없는 세계를 전관(全觀)했다. 그뒤, 모든 인(因)과 과(果)의 사슬들을 직관했다. 새벽녘에는 사성제(四聖諦)를 관(觀)하였다.” (보르헤스, <불교강의> 10쪽) 보르헤스 자신이 묘사한 이 글을 보면, 그의 단편 <알레프>의 모티브가 바로 붓다의 정각 장면이고, 자신이 지하실에서 본 광경은 붓다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직관한 공(空)을 관통한 진리의 모습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세히 풀어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르헤스는 그의 단편을 통해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을 밝혀보고 싶어 했던 것이고, 또 그 작업을 통해, 그도 붓다처럼 우주의 비의(秘義)를 엿보았다는 체험을 작품화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불타가 성도한 깨달음의 내용을 정밀하게 표현한 <화엄경>의 핵심인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善財) 동자가 오랜 순례 뒤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전관한 장엄세계의 모습은 보르헤스가 <알레프>에서 묘사한 놀라운 체험의 장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알레프는 탑으로 상징된다. “숫자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 모든 탑들이 전혀 따로따로의 방식대로 서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탑들은 나머지 모두와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그 나름의 개별적 존재성을 보유하고 있다. … 젊은 순례자 수다나(善財)는 각개의 탑 하나하나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탑들 속에서, 즉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각각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런 곳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범양사출판부, 343쪽에서 재인용) 의상대사가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을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칠언절구의 시로 노래했듯이, 보르헤스도 그것을 <알레프>라는 소설속에서 작품화한 것이다. <알레프>는 1949년 발표된 작품이다. 따라서 보르헤스는 매우 일찍부터 불경(佛經)을 읽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는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알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14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거주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그가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읽은 시기는 독일어를 배워 독일 문학과 철학을 원문으로 읽었던 1918년(19세) 때였기 때문에 불교는 이때 이미 상당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불교강의>를 쓰면서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다이세즈 쓰지키(D. T. Suzuki), 파올 도이센(Paul Deussen), 아더 윌리(Arthur Waley) 등 수많은 불교학자와 중국문학가들의 책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또한 노장사상(老莊思想)에 정통했고, 주역(周易)의 서문을 쓴 일도 있다. 그가 만년에 이르러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시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일곱가지 주제를 7일간에 걸쳐 강연을 했을 때도 불교를 포함시켰다. 불교는 보르헤스가 젊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집착했고, 그의 사상이 변화를 맞을 때마다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중요한 테마였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변호사인 아버지과 영문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된 책이 무한히 꽂혀있었던 도서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할머니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집안에선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이 영향으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많은 영국소설을 읽게 되었다. 보르헤스는 15세 되던 해인 1914년에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럽식 교육을 받으며 불어와 독어를 익히게 되었다. 이어 라틴어도 마스터하게 된다. 1921년 조국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문예사조를 반영하는 문학잡지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초기에 당시 유행하던 아방가르드 풍의 시를 썼다. 그러나 곧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성향을 표현하기 위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해인 1938년 시립도서관에 취직하였다. 같은 해 성탄절날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까지 빠진다. 의식이 돌아온 뒤,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실험해보기 위해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1944년 출판한 단편집 <픽션>과 1949년 출판한 <알레프>에 수록된 소설들이다. 그가 처음 이 작품들을 발표했을 땐 당시 문학계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고 단지 소수의 지식인 작가들만이 그의 글을 읽었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던 그는 1961년 베케트와 유럽출판인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67년 하버드 대학 찰스 엘리엇 노른 렉취에서 강의하고 계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등 1986년 죽을 때까지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였다.      2. 보르헤스의 불교사상    20세기가 저무는 지금 보르헤스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서구의 지성들에게 끼친 영향력 때문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헬레니즘과 계시를 중시하는 헤브라이즘 사이에서 사상적 변전을 거듭해왔던 서구사상의 흐름이 18세기 이후 계몽주의와 과학주의에 의해 이성 중심의 극단적 지적 편향을 보였을 때, 편협한 이성주의의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극복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보르헤스이다. 20세기 후반부에 세계 지성계를 리드하는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 쥬네트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존 가드너, 토마스 핀천, 존 바스 등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사상적 원천으로서, 정신적 아버지로서 보르헤스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그들에게 끼친 공통된 영향은 그가 보여준 ‘이성주의적 이분법-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아(他我) 등-의 붕괴’이다. 보르헤스의 이런 사상은 물론 불교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불교에 대한 보르헤스의 관심은, <알레프>에서 보여준 불타가 깨달음에 도달한 순간에 직관했던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모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깨달음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불타가 녹야원(鹿野苑)에서 처음 법륜(法輪)을 굴렸을 때의 설법이 그 ‘깨달음’의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고, 집, 멸, 도의 사성제(四聖諦)와 그 바탕이 되는 삼법인(三法印)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석가가 깨달은 내용의 핵심을 전하는 사성제와 삼법인은, 현실의 실상(實相)을 직시한 결과로 보게 된 인간 존재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五蘊)은 실체가 없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苦)이며, 고의 원인[集]은 인간의 집착에서 오며, 집착은 인간의 무지에서 온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서구의 이성주의가 안고 있는 고를 깨닫고 그것이 신, 로고스 혹은 제일원인 같은 ‘근원’과 ‘중심’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이라고 보았다. 보르헤스는 근원과 중심을 추적해 보았다. 그것은 형이하학적ㆍ공간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티칸에도, 예루살렘에도, 메카에도 없었다.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중심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그때 그가 만난 세계의 중심은 ‘한 권의 신성한 책’ 혹은 ‘도서관’이었다. 이때부터 보르헤스에게는 ‘도서관’의 이미지가 항상 따라다녔다. 그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고, 도서관에 묻힌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추구했던 책과 도서관을 영원히 만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담고 있고 모든 것의 근원을 담보하는 한 권의 신성한 책을 상정하면, 그 순간 그 책은 이미 다른 ‘책’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즉 어떤 책도 고유의 실체를 가진, 자성(自性)을 지닌 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책이 성립하려면, 언어의 체계가 사전에 필요하고, 언어의 체계는 인간의 사회가 형성되어야 하고… 즉 모든 책은 끊임없이 이전의 다른 책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가 깨달은 것은 ‘제법무아’였다. 모든 책은 고유한 자성을 가질 수가 없다. 모든 책은 다른 책들과의 인연소기(因緣所起)의 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중심이 해체되고, 근원이 부정되자,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텍스트들의 관계성이었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론인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다. 현상적인 모든 사물은 모두 인(직접원인)과 연(간접원인)에 따라 생긴다고 보는 연기론에 텍스트를 대입하면 그대로 상호텍스트성 이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상(事象)이 서로 관계되어 성립하는 것처럼, 모든 책은 이전과 이후의 다른 책들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근원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는, 오리지날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심의 부정은 ‘다원(多元)’을 낳고, 실체의 부정은 ‘상호관계성’을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개념 중의 하나인 ‘다원주의’는 이렇게 ‘상호텍스트성’과 동전의 앞뒤면같은 관계를 가진다. 한편 한 권의 책이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된다면,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作家)라는 개념도 의심받게 된다. 과연 그만의 오리지날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제법무아는 ‘작가’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작가도 연기법-상호텍스트성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개념인 ‘작가의 죽음’이 탄생한다. 색(色)과 공(空)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연기성(空性)을 깨달아 진공정도(眞空正道)의 정관을 얻는다는 용수(龍樹)의 <중론(中論)>이 이룩한 ‘부정의 극복을 통한 대긍정’의 가르침대로, 작가의 죽음이라는 부정적 성격은 ‘독자의 탄생’이라는 긍정적 창조를 낳는다. ‘소아(小我: 작가)’의 죽음 뒤에 따르는 해방된 ‘대아(大我: 독자)의 탄생은 문학행위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즉 한 텍스트에 대한 모든 권위와 도그마는 사라지고, 모든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앞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 것이다. 모든 책은 자기만의 완고하고 허위투성이의 자성(유일한 해석)을 버리고, 다른 텍스트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종교다원주의적 발상이 싹트게 된다. 제법무아의 시각에서 세계가 공이라고 하는 사상은, 객관적 현상을 실체로 인정하고 그 드러난 모습에 충실하려는 리얼리즘 문학과는 양립하기가 어렵게 된다. 보르헤스는 리얼리즘 작가들과는 달리 현실을 공(空)으로 보았다. 그는 ‘공’을 서구적인 용어 내에서 ‘환상(幻想)’ 혹은 ‘환영(幻影)’으로 표현했다. 만일 현실 자체가 환영(마야)이라면, 그 현실을 충실하게 그려낸 문학작품은 ‘환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면 할수록, 그 작품은 더욱 환상적이 된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환상적 사실주의는 ‘색즉시공’의 문학적 표현이기도 하다. 제법이 무아라는 것, 제행이 무상이라는 것, 세상의 중심이 없다는 것 등의 생각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직시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무상(無常)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세계의 중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들은 서구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의 씨앗을 제공했다.
302    서울 남산풍경 댓글:  조회:1614  추천:65  2008-07-16
 남산을 오르는 입구의 대통로    남산오르는 길  남산성벽    남산탑  봉수대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서쪽전경  정약용선생의 동상  대부도에서의 조개사랑   한국에 온지 보름되여도 인터넷에 오를 기회가 적어 오늘에야 사진 몇장을 올립니다. 가을남자님과 바람님과 함께 산행 한번이라도 하고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가 않네요~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꼭 가봐야지....ㅎㅎㅎ
563. 니건경(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국(毘舍離國) 미후지(??池) 가에 있는 중각강당(重閣講堂)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니건(尼?)5)의 제자 무외 리차(無畏離車)6)와 아기비(阿耆毘)의 제자 총명동자(聰明童子) 리차가 존자 아난의 처소로 함께 찾아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무외 리차가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우리 스승 니건자(尼?子)는 불타는 법[熾然法]을 끄고 청정하고 뛰어나시어, 제자들을 위해 이러한 도를 설하셨으니, '숙명(宿命:前生)의 업은 고행(苦行)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다 없애고, 몸의 업[身業]을 짓지 않음으로써 연결다리를 끊어 미래 세상에서는 모든 번뇌가 다시는 없고 모든 업이 아주 다하며, 업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이 아주 다하고 온갖 고통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고통을 완전히 벗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이 뜻은 무엇입니까? 존자 아난이 리차에게 말했다.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는 방법과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과 슬픔을 여의며,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가지를 설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5) 팔리어로는 Niga ha라고 함. 계박(繫縛)을 여읜다는 뜻으로 사람의 이름임. 6) 팔리어로는 Abhaya Licchavi라고 함. 리차(離車)의 이름으로, 리차는 중인도 비사리국 찰제리(刹帝利) 종족의 이름임. 7) 팔리어로는 p timokkha이며, 한역하여 별별해탈(別別解脫) 혹은 별해탈계(別解脫戒)라고도 함. 그릇되고 잘못됨에서 따로따로 해탈한다는 뜻. 즉 계행(戒行)을 지켜 능히 따로따로 몸과 입의 잘못을 방지함으로써 점차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된다. 승단 가운데 비구․비구니라면 마땅히 지속적으로 지켜야 할 계율의 근본조문. 이러한 거룩한 제자는 깨끗한 계에 머물러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7)를 받고 위의(威儀)를 구족하며, 모든 죄를 믿어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렇게 받아 지니고서 깨끗한 계를 구족하면 전생의 업[宿業]이 점점 없어져 현세에서 불타는 법[熾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바른 법을 얻게 되어, 통달하고 밝게 보고 관찰하여 지혜로써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리차 장자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없애며,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리차여, 이와 같이 깨끗한 계를 구족하고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4선(禪)에 구족하게 머물면,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불타는 법을 여의고  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삼매정수(三昧正受)가 있어,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跡聖諦]를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마음을 구족하여 업을 다시 짓지 않으면, 전생의 업이 점점 끊어져 현세에서 바른 법을 얻어 모든 불타는 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통달하고 밝게 보아 스스로 깨닫는 지혜가 생깁니다. 리차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여의고 근심과 슬픔을 없애 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번째로 설하신 것입니다. 그 때 니건의 제자 리차 무외는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아기비 제자 리차 총명은 리차 무외에게 거듭 말했다. 이상하구려. 무외여, 왜 잠자코 있소? 여래․응공․등정각의 말씀과, 알고 보신 바와 좋은 설법을 듣고도 왜 기뻐하지 않소? 리차 무외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 이치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잠자코 있었을 뿐이오. 세존이신 사문구담의 설법을 듣고 누군들 기뻐하지 않겠소? 만일 누군가 구담의 설법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의롭지 못하고 이익이 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오. 그 때 니건 제자 리차 무외와 아기비 제자 총명은 부처님 설법과 존자 아난의 말을 거듭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五六三) 如是我聞 一時。佛住毘舍離獼猴池側重閣講堂。尊者阿難亦在彼住 爾時。無畏離車。是尼犍弟子.聰明童子離車。是阿耆毘弟子。俱往尊者阿難所。共相問訊慰勞已。於一面坐。時。無畏離車語尊者阿難。我師尼犍子滅熾然法。清淨超出。為諸弟子說如是道。宿命之業。行苦行故。悉能吐之。身業不作。斷截橋梁。於未來世無復諸漏。諸業永盡。業永盡故。眾苦永盡。苦永盡故。究竟苦邊。尊者阿難。此義云何 尊者阿難語離車言。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三種離熾然清淨超出道。以一乘道淨眾生.離憂悲.越苦惱。得真如法。何等為三。 如是。聖弟子住於淨戒。受波羅提木叉。威儀具足。信於諸罪過。生怖畏想。受持如是具足淨戒。宿業漸吐。得現法。離熾然。不待時節。能得正法。通達現見觀察。智慧自覺。離車長者。 是名如來.應.等正覺說所知所見說離熾然。清淨超出。以一乘道淨眾生.滅苦惱.越憂悲。得真如法 復次。離車。如是淨戒具足。離欲.惡不善法。乃至第四禪具足住。是名如來.應.等正覺說離熾然。乃至得如實法。復有三昧正受。於此苦聖諦如實知。此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迹聖諦如實知。具足如是智慧心。業更不造。宿業漸已斷。得現正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生自覺智。離車。是名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第三離熾然。清淨超出。以一乘道淨眾生.離苦惱.滅憂悲。得如實法 爾時。尼犍弟子離車無畏默然住 爾時。阿耆毘弟子離車聰慧重語離車無畏言。怪哉。無畏。何默然住。於如來.應.等正覺所說.所知.所見.善說法。聞不隨喜耶 離車無畏答言。我思惟其義。故默然住耳。誰聞世尊沙門瞿曇所說法不隨喜者。 若有聞沙門瞿曇說法而不隨喜者。此則愚夫。長夜當受非義不饒益苦 時。尼犍弟子離車無畏.阿耆毘弟子聰慧重聞佛所說法。尊者阿難陀所說。歡喜隨喜。從座起去 //
300    백년우정 다지며~ 댓글:  조회:2473  추천:99  2008-06-29
2008년 6월 29일~
299    랑도네에서의 마지막산행 댓글:  조회:2295  추천:90  2008-06-22
                                                                                                                   
298    395.一切諸法之本--일체 법의 근본 댓글:  조회:2090  추천:93  2008-06-22
6.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우가라 대숲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해 이제 묘한 법을 설명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다. 그 이치는 깊고 그윽하며 범행을 청정히 수행하는 것이다. 이 경 이름은 '일체 법의 근본'이라 한다. 너희들은 잘 명심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일체 법의 근본'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범부들은 성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여래의 말씀을 지니지 못하며 좋은 벗을 친하지 않고 좋은 벗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땅을 관찰하여 여실히 안다. '이것은 땅이다. 이것은 분명히 땅이다. 또 이것은 여실히 땅이다. 또 이것은 물이다. 또 이것은 불이다. 또 이것은 바람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합해서 사람이 된 것이니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즐겨 하는 것이니라. 하늘은 스스로 하늘인 것을 알아 하늘 가운데 하늘임을 즐겨 하고, 범천은 스스로 범천인 것을 알며 대범천은 스스로 대범천인 것을 알아 자기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광음천들은 스스로 광음천으로 말미암아 된 줄을 서로 알며 변정천은 스스로 변정천인 것을 알고 과실천은 스스로 과실천인 것을 알아 착란하지 않느니라. 또 아비야타천은 스스로 아비야타천인 것을 알고 공처천은 스스로 공처처인 것을 알며 식처천은 스스로 식처천인 것을 알고 불용처천은 스스로 불용처천인 것을 알며 유상무상처천은 스스로 유상무상처천인 것을 아느니라. 보는 이는 스스로 보는 줄을 알고 듣는 이는 스스로 듣는 줄을 알며 하고자 하는 이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줄을 알고 지혜로운 이는 스스로 지혜로운 줄을 알며 한 가지 무리는 스스로 한가지 무리인 줄을 알고 여러 가지 무리는 스스로 여러 가지 무리인 줄을 알며 모두 갖춘 이는 스스로 모두 갖춘 줄을 알고 열반한 이는 스스로 열반한 줄을 알아 그 안에서 스스로 즐긴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지혜로운 이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성인의 제자는 성인을 가서 뵈옵고 그 법을 받으며 좋은 벗을 섬기고 좋은 벗을 친한다. 이 땅의 요소를 관찰하고는 그것을 모두 분명히 알고 그것의 온 곳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서 물드는 마음이 없다. 물, 불, 바람의 요소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사람, 하늘, 범왕천, 광음천, 변정천, 과실천, 아비야타천, 공처천, 식처천, 불용처천, 유상무상처천과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것과 한 가지, 여러 가지 내지 열반에 있어서도 그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또 열반이라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을 모두 잘 분별하고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그 비구가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으로서 할 일을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생, 사의 근본을 알아 평등이 해탈한 이라면 그는 능히 땅의 요소를 분별하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는 생각을 전연 일으키지 않는다. 사람, 하늘, 범왕천 내지 유상무상처천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열반에 이르렀어도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열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모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는 땅의 요소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다 애욕의 그물을 부수었기 때문이다. 존재[有]로 말미암아 생(生)이 있고 생으로 말미암아 늙음과 죽음이 있는데 그것을 모두 없앴기 때문에 여래는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비구들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러냐 하면 악마 파아피야스가 그들의 마음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경 이름을 '일체 법의 근본'이라 한다. 나는 이제 자세히 설명하였다. 모든 부처, 세존의 수행할 바를 나는 이제 완전히 실행하였다. 너희들은 부디 조용한 곳이나 나무 밑에서 뜻을 바로 하고 단정히 앉아 이 묘한 이치를 깊이 생각하라. 지금 하지 않으면 뒤에 후회하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聞如是 一時。佛在優迦羅竹園中。與大比丘眾五百人俱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與汝當說妙法。初善.中善.竟善。義理深邃。清淨修行梵行。此經名曰。一切諸法之本。汝等善思念之 諸比丘對曰。如是。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佛告之曰。彼云何名為一切諸法之本。於是。比丘。凡夫之人不睹賢聖之教。亦不掌護如來言教。不親近善知識。不受善知識言教。彼觀此地如實知之。此是地如審是地。如實是地。亦復是水。亦復是火。亦復是風。四事合以為人。愚者之所娛樂。天自知為天。樂於天中天。梵天自知為梵天。大梵自知為大梵。無能出者。光音天還自相知由光音天來。遍淨天自知為遍淨天。果實天自知為果實天而不錯亂。阿毘耶陀天自知為阿毘耶陀天。空處天自知為空處天。識處天自知為識處天。不用處天自知為不用處天。有想無想處天自知為有想無想處天。見者自知為見。聞者自知為聞。欲者自知為欲。智者自知為智。一類自知為一類。若干類自知為若干類。悉具足自知為悉具足。涅槃自知為涅槃。於中而自娛樂。所以然者。非智者之所說也 若聖弟子往覲聖人。承受其法。與善知識從事。恒親近善知識。觀此地種皆悉分明。知所來處。亦不著於地。無有污染之心。水.火.風亦復如是。人.天.梵王.光音.遍淨.果實.阿毘耶陀天.空處.識處.不用處.有想無想處。見.聞.念.知。一種.若干種。乃至於涅槃。亦不著於涅槃。不起涅槃之想。所以然者。皆由善分別.善觀察。若彼比丘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盡生死原本。平等解脫。彼能分別地種。都不起想著。地種.人.天.梵王。乃至有想無想處。亦復如是。 至於涅槃。不著涅槃。不起涅槃之想。所以然者。皆由壞婬.怒.癡之所致也。 比丘當知。如來.至真.等正覺善能分別於地。亦不著於地種。不起地種之想。所以然者。 皆由破愛網之所致。因有有生。因生有老死。皆悉除盡。是故如來成最正覺。 佛說此語時。是時諸比丘不受其教。所以然者。由魔波旬閉塞心意故 此經名曰。一切諸法之本。我今具足說之。諸佛世尊所應修行。我今已具足施行。汝等當念閑居樹下。端意坐禪。思惟妙義。今不為者。後悔無益。此是我之教誡也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297    태산에서 6박7일--서마봉계곡 댓글:  조회:2627  추천:86  2008-06-20
아름다운 천촉호풍경. 태산동쪽켠의 아름다운 천촉호에 반해 나는 여기서 이틀밤묵었다. 첫날은 계곡을 두루 구경하고 동쪽켠으로 다시 서마봉을 올랐으며 이틑날에는 계곡을 따라 서마봉아래골짜기깊이 들어가서 다시 북쪽켠의 관일봉아래정상을 올랐다.  천촉호계곡의 맑은 시냇물.  깨끗한 바위우로 흐르는 물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계곡은 전체가 바위밑바닥이여서 바위사이에 물이 고였다가는 다시 흐르고 하였다.  바위우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  태산의 독특한 무뉘바위.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풍마간골짜기와 서마봉골짜기가 합치는 곳에 깨끗한 고인물이 있었다.  물이 맑아 밑바닥이 그대로 보였다.  푸르른 비취색을 띠는 저 물이 너무 좋아 그대로 뛰여내렸다가 물이 키를 넘어 봉변을 당했다.ㅎㅎㅎ  계곡에서 만난 야생화  계곡에서 하루밤 텐트를 치고 아침일찍 나는 계곡탐험길에 올랐다. 이날따라 날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푸르른 하늘에 백색구름과 나무와 바위가 어울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태산정상에서 볼수없었던 아름다움이였다.  산 전체가 바위.  대자연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것이였다.  계곡 멀리 보이는 서마봉끝쪽  저 계곡끝쪽봉우리는 내가 이틀전 서마봉에서 관일대로 올랐던 골짜기봉우리다.  계곡한가운데 엄청난 바위를 발견했고 그 바위틈새로 자연적인 동굴이 생겨났고 동굴속에는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바로 이 바위우로 해서 나는 골짜기를 따라 관일봉아래 봉우리로 올랐다.  간난신고를 거쳐 골짜기를 오르면서 바라본 풍경.  나는 무작정 봉우리를 목표로 산을 올랐다.  여기는 누구도 감히 오지 못하는 인적없는 골짜기이다.  집채같은 바위들이 깊은 골짜기를 패우며 일어섰는데 정말 멋졌다.  벼랑중턱 돌틈새로이루어진 동굴속에서-- 사실 여기까지 오기가 정말 쉽지않았다.  벼랑중턱에서 바라본 정상-- 아마 관일대아래산맥으로 보인다.  몇곳의 난관을 무릎쓰고 벼랑을  올라서니 그제야 태산정상이 눈앞에 안겨온다.  절벽은 말그대로 칼로 깍가지른듯한 천길벼랑이였다.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동요관봉  바위틈새로 이름모를 노란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정상 아래쪽의 봉우리  봉우리를 오르면서 만난 바위  태산정상전경. 가운데 봉우리가 瞻鲁台  봉우리동쪽켠으로 왼켠은 천촉봉풍마간이고 아래봉우리뒤로 천촉호가 어렴푸시보인다.  천촉봉골짜기  동요관봉아래로 보이는 천촉봉골짜기  다시 우로 바라보는 태산정상  태산 북천문능선-- 가운데 정자가 后石坞삭도이다. 독특한 태산소나무껍질  산을 내려오면서 발견한 돌틈에 꼬리가 집혀 죽은 가련한 양시체  인적없는 원시림을 꿰뚫고...  태산 옛길.  길흔적  내려오면서 만난 옥돌  골짜기 계곡물에 씻긴 이끼  내가 짐을 두었던 곳에 도착하니 마침 한무리양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양들의 꼬리는 잘라버렸는지 아주 짧았다. 아마 아까산속에서 발견한 양의 신세를 생각해서 고이적으로 짜른것같다.      나는 다시 천촉호에 돌아와서 하루밤 이 호수가에서 텐트를 쳤다.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