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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태산에서 6박7일--천촉봉의 아름다운 풍경 댓글:  조회:2758  추천:89  2008-06-20
태산정상에서 3박2일을 보내고 5월9일 아침일찍 나는 북천문을 거쳐 东尧觀峰을 올랐으며 다시 天烛峰쪽으로 내려갔다.  북천문으로 내려가는 길. 이른아침에 배낭을 메고 이 길을 멋이 참 좋았다. 우중충한 뭇산들이 태산정상에 서서 보니 너무 낮아 보인다.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아보였다는게 아마도 이러한 모습이 아니였을가....  삼황중의 한분인 요황제가 봉선을 했다는 동요봉  동요관봉정상을 오르면서  동요관봉아래 원군묘-- 려동빈이 수행을 하던곳이라고 한다.  원군묘옆으로 아름다운 절벽이 이루어졌며 벼랑너머로는 옥황정이 아득히 보인다.  천주봉의 계곡이 아름다워 이틀간 묵으면서 나는 산넘어 계곡을 따라오르다  반대켠쪽으로 저 봉우리도 올랐었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이는 소나무들.  소천촉봉에서 내려다본 대천촉봉과 풍마간풍경-- 왼켠의 봉우리가 큰 천촉봉  천촉봉우로 이어진 산맥-- 저 산맥웃쪽에서 일출을 보기 가장 좋다고 한다. 하지만 지니고 온 음식도 다 떨어졌거니와 사진기 빠뜨리도 거이 떨어져  더 머무를수가 없었다.  대,소촉주봉소개: 천촉봉은 태산경구의 표지성적인 경관이다. 동서 두 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동쪽은 큰 천촉봉이고 서쪽은 소천촉봉인데 서래 대치되여 마치 큰 초불이 하늘을 떠바친듯한 모습이며 두 봉황이 춤을 추는듯하기도 하다. 명조의 오동춘은 이를 일컬어 쌍봉령이라하였으며 소천촉봉아래벼랑에 글을 새겼는데 속칭대소우심석이라 한다. 천촉봉의 북,구룡강동쪽은 마산인데 전해진데 의하면 선인들의 목지라고 한다. 우에는 오녀권석이 있으며 봉우리절벽에 오동춘이 쓴 "개구"라는 두 글자가 있으며 태산동쪽에서 일출을 보는 가장 좋은 곳이다.  천촉봉골짜기의 계곡.  천촉봉폭포  맑은 계곡  맑은 계곡.  천촉봉아래로 이어진 바위  아래서 쳐다본 천촉봉모습  정자위로 보이는 소천촉봉풍경  풍마간소개: 전하는데 의하면 일찍 어느 마녀가 여기서 좌화하여 흥봉작랑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산골짜기는 넓고 험하여 바라보기만해도 두 눈이 아찔해질 지경이다. 1987년 련합국교과문조직의 총간사인 노카스선생이 여기에 와서 고찰하였는데 풍마간을 성찬하여  미국의 科罗拉多大峡谷대협곡과 그 아름다움을 서로 비길정도라  찬탄하였다. 이 골짜기는 삼면에서 계곡이 모여 이루어졌는데 물이 백장높이의 절벽에 겹쳐떨어지면서 비폭을 형성하고 물소리가 우뢰소리방불케한다. 그리고 주위의 화산송송도와 서로 어울러져 현묘한 "하늘소리","우주음"을 형성하여 보는 사람의 흉금을 활짝열어놓는다. 이 벼랑으로 집채같은 폭포가 떨어진다고 상상해보라...  정자우로 보이는 아츨하면서도 멋진 벼랑    맑은 시냇물이 깨끗한 바위우로 흐르면서 아름다운 자연미를 창출했다. 계곡넘어 소천촉봉  바위에 발라놓은듯이 흐르는 계곡  여기 천촉봉골짜기에 이렇듯 아름다운 계곡이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돌계단을 따라 태산을 올라 태산에 물이 없다고 한탄했는데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티없이 맑은 시냇물.  계곡이 너무 아름다워 나는 근 두시간넘어 여기에 머물면서 많은 사진들을 남겼다.  보면볼수록 아름다운 계곡-- 물도 많지않아 나는 매끄러운바위를 타고 내려갔다가는 다시 올라오군하였다.   천촉봉을 떠나면서...    망천문에서 바라본 천촉봉골짜기전경-- 골짜기폭포흔적을 보아서 장마철에는 정말 가관이겠다.  망천문에서 바라본 태산 정상쪽    망천문소개: 일부당관 만부막개라는 말이 여기에 맞는 말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제왕들이 태산에 올라 봉선을 할때 문무대신들이 모두 여기에 엎드려 만세를 세번 불렀다고 한다.  철사슬을 따라 망천문아래를  내려오면서  아래 짜기에 철다리하나가 있었는데 회선교라 불렀다. 바라보니 천촉봉전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천촉봉풍경구길안내도  산을 거이 내려오니 천촉봉풍경구의 대문이 보였다.  골짜기끝에 계곡물이 모여 이루어진 비취색의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는데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호수물이 너무 맑고 푸르러 그대로 뛰여들고 싶지만 아래서 마시는 물이라 수영을 못하게 하였다.  나는 여기서 또 이틀밤을 묵게 되였다... 그리고 이 호수가에 맛집을 하는 농가원이 두집이 있었는데 나는 이틀동안 그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산동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이 너무 후덥게 느껴졌다...
295    태산에서 6박7일 -- 서마봉칼바위 댓글:  조회:2654  추천:75  2008-06-20
 西马峰전경--서마봉은 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중의 하나이다. 서마봉전체는 그 능선이 룡의 지느러미흡사해서 량쪽이 천길벼랑으로 되여 일명 도인산(刀刃山-칼바위산)이라기도 한다. 바위에 바위를 이어 이루어진 그 능선은 참으로 험요하고 자극적이여서 많은 전문적인 등반애호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관리원의 입에서 며칠전 한국등산팀이 저기로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해서 한번 다녀보기로 하였다....  내가 지나온 봉우리-- 왼쪽봉우리좌편으로 내려왔으며 돌아갈때는 가운데 골짜기길을 타고 관일대로 돌아갔다.  서마봉북켠의 깊은 골짜기--이틀후 나는 천촉호에서 계곡을 따라 골짜기깊이 들어왔으며 다시 북쪽으로 절벽을 타고 정상에 올랐는데 정말 자극적인 등반을 하였다. 다시는 그러한 무모한 짓을 하지않으리라 결심할정도로 후회스러웠던 그런 등반이였다. 하지만 고생을 하지않고서는 진정 아름다운 풍경을 볼수없다는게 내 신조다.... 그 덕에 나는 정말 멋진 태산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원래는 가운데 지느러미같은 저 칼바위를 타려고 했는데 그만 길을 잘못들어서서 뒷편의 골짜기를 따라 험요한 뒷산벼랑을 올랐다.어찌보면 더 멋진 등반이였고 또 내심적으로도 바라던 일인것같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서마봉-- 저 능선을 타고 나는 정상에 올랐다.  저 봉우리 뒤쪽으로 东御道에서 오르는 칼날같은 능선이 이어졌다.  서마봉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골짜기 가운데 기이한 바위는  서마봉의 노마마석  골짜기넘어는 중천문동쪽켠으로 이어진 마천령산맥이다.  서마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태산정상--가운데 봉우리가 곧 관일대봉우리이다. 그 뒤로는 瞻鲁台 그리고 관일봉에 이어 옥황정이다.  瞻鲁台와 관일봉은 가리워 보이지 않고 옥황정정상은 조금 보인다.  가까운데서 본 노마마석과 도인산  왜서 노마마석이라고 불렀는지는 알수없지만 바위가 참 기이하게 생겼다.  아찔한 서마봉골짜기  내가 지나온 서마봉바위능선  서마봉정상에 집채같은 반듯한 바위가 있었다. 비가올때는 자칫 미끄러워떨어지기 싶상.  말그대로 칼바위-- 사실 저 도인산도 오르고 싶었지만 시간도 문제거니와 오르기는 쉬워도 내리기는 어려운 위험한 곳이였다.  제일 뒷켠의 봉우리는 요황제가 봉선을 했다는 동요관봉.  도인산이 하도멋져 바위에 앉아 감상.  오른켠봉우리는 오전에 내가 올랐던 룡천봉이고 가운데 낮은 봉우리는 중천문봉우리이다. 그리고 왼켠으로 이어진 산맥은 마천령산맥.  바위에 앉아 휴식하면서 다시 바라보는 태산정상.  동쪽으로 바라보니 더욱 칼산이다.  저기로 내려가고싶었지만 짐을 관일대에 두고와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이틀후 천촉호에서 이틀밤 묵으면서 나는 저 봉우리도 올랐었다.  보고 보아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수가....    도인산넘어로 보이는 마천령산맥의 제일끝쪽-- 저 아래골짜기가 곧 동어도(东御道)이다.  서마봉을 내려가면서 내려다본 풍경-- 내가 지나야할 바위길  내리면서 만난 야생화.  서마봉에서 정말 말모양의 바위를 발견.  옆켠에서 바라본 서마봉측면.  골짜기 넘어 보이는 지느러미같은 웅장한 바위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서 뒤돌아본 서마봉전경.  렌즈를 당겨보니 더욱 멋지다. 무엇보다도 저 벼랑능선을 타보았다는게 무지 자랑스럽다.  관일대로 오르는 산맥에서 바라본(서쪽) 오전에 내가 내려왔던 관일대아래봉우리  그리고 동쪽켠으로 이틀후 내가 도전했던 벼랑. 가까이에 가서 렌즈를 당겨본다. 가운데 보이는 벼랑한가운데 나무가 무성한 저 벼랑틈을 타고 나는 저 정상에 올랐었다. 오직 오를수만 있고 내릴수 없는 저 벼랑은 하나의 큰 고험이였다. 올라야 될지 말아야 될지... 진퇴량난에 빠져 머뭇거리다가 간난신고를 거쳐 겨우내 올랐을땐 정말 두 다리가 후뜰거려 걸을수가 없었다.... 저 단계에서만 아찔한 세번의 난관을 돌파하였는데 마지막 난관에선 실수로 바위잡을곳이 없어서 3메터의 높이에서 뒤로 벌렁~ 다행히 아래에 나무가 있어서 .....  무릎팍은 바위에 쓰려 구멍이 났고 돌아왔을땐 두 다리가 상처투성이... 하지만 모두가 피부만 상했을뿐 걷는데 방해가 없었다.ㅋㅋㅋ  서마봉전경. 참으로 멋진 산이였다.    아래서 바라본 관일대전경.  관일대는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고 아늑하여 태산정상에서 어디보다도 좋은 곳이였다.... 나는 저기서 이틀밤을 묵었다.... 래일에는 북쪽后石坞를 거쳐 동요관봉을 오르고 다시 천촉봉을 거쳐 동쪽으로 태산을 내려가련다.... 
294    태산에서 6박7일 -- 관일대운해 댓글:  조회:2450  추천:80  2008-06-20
태산에서 일곱날보내면서도 그렇게 보고싶었던 일출은 끝내 보지못했다. 매일마다 바람과 안개가 몰려와서 아침저녁으로 개인날씨를 못봤다. 아마 일출을 보기에는 지금이 때가 아닌가 본다.  관일봉에서 3일채 머물면서 아침일찍일어나 일출을 감상하려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이 마지막날 사진에 보이는 붉은 점이 잠간 나타났었지만 일분도 않되여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일출을 보았다고 할수있다면서 자아위안을 할수밖에 없었다...ㅎㅎㅎ  아침노을도 조금 나타났다가는 태양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일출이라 아쉽기도 했으니 못난 일출이지만 여러각도로 사진에 담가보았다.  아침노을  관일봉새벽풍경.  동트기전의 관일대에서 바라본 태안시전경.  태산 오래봉  태산아침안개  일출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  세날동안 아침마다 일어나 태산운해를 감상.  오늘은 관일봉아래로 내려가서 골짜기를 넘어 왼켠의 봉우리에 올라보련다...  이만해도 태산운해가 그래도 멋지다.  내가 텐트를 친곳-- 엊저녁 관일봉아래로 어찌나 세찬 바람이 불었던지 텐트가 그대로 날려갈것같아 몇번이나 밖으로 나와 못이 빠지지 않았나 점검하고서야 잠을 잘수가 있었다.  관일봉아래벼랑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중천문전경 관일봉아래로 인적없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바라본 서쪽풍경--오른켠아래바위넘어로 보이는 골짜기의 길이 곧 태산십팔반의 시작이다.  기이한 바위  푸른소나무와 노란색꽃 그리고 멋진 바위가 어울려 선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언덕을 지나면서 만난 태산의 해당화꽃  벼랑을 내려서 바라본 너무 멋진 벼랑들  벼랑에 벼랑을 이어 봉우리에서 봉우리를 내리면서...  벼랑하나 내려서 봉우리에 올라보니 앞에 또 하나의 거대한 봉우리가 앞에서있다. 나는 저 봉우리를 지나 중천문까지 가려고 하다가 동쪽의 멋진 벼랑에 반하여 생각을 고쳐 저 봉우리까지 오르고 다시 내려와 깊은 골짜기를 가로타고 동쪽산맥에 올랐다.  바위틈새로 내려다보는 태산 돌계단옆 촘촘한 집들.  멋진 산맥들-- 태산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흰바위와 너무 어울렸다.  바위정상에 서서 내려다본 태산을 오르는 돌계단길  아무리보아도 멋지다. 푸르른 소나무가 있음으로 하여 벼랑바위가 더욱 멋지다.  오른켠의 낮은 턱이 곧 관일대이다.    저 벼랑을 타고 내려왔다니 내가 한심하지...  멀리 골짜기사이로 어슴프레 보이는 태산 십팔반돌계단길.  봉우리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운보교쪽 돌계단길-- 3일전 저녁에 오르다보니 저곳의 풍경을 감상못했다. 무엇보다도 운보교의 돌정자의 기둥에 박힌 글씨체가 너무 인상적이여서 나는 이틀후 태산정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자동차길을 따라 룡담을거쳐 중천문에 올랐으며 거기서 하루밤자고 이틑날아침 일찍 운보교를 향하였다.... 얼마나 멋진 글씨체였기에 내가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가...ㅎㅎㅎ 여기서 간단히 그 글씨체를 보여주고싶다.       글씨체가 아름다워 다시 올랐지만 나는 그 내용이 더 좋았다. 사진몇장이지만 나는 달갑게 그런 고생을 하였다...    골짜기를 지나면서 발견한 새둥지-- 새는 간곳없고 알만 남아있었다.  깊은 골짜기건너 맞은 켠 산맥에 오르니 누가 고이로 올려놓은듯 멋진 바위가 나타난다.  하나의 멋진 바위-- 바위가 크지는 않지만 뭔가 눈길을 끌만한 바위였다.  옆으로 보니 쌍둥이바위    바위뒤로 봉우리꼭대기에 서서 서남쪽을 바라보니 방금 내가 지나왔던 골짜기 아래로 폭포같은 벼랑이 이어져있었다.  아마 오랜세월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홍수에 씻겨 폭포수모양의 무뉘가 만들어 졌으리라...  다시 동쪽켠으로 바라보니 더욱 멋진 벼랑이 나타났다. 바로 며칠전 한국등산팀이 지나온 봉우리였다. 여기서 잠간 점심요기를 하고 나는 오후시간을 타서 저 봉우리에 올라보기로 하였다. 보이는것과 마찬가지로 저 봉우리풍경은 정말 멋졌다.  저 봉우리와 왼켠골짜기넘어 천촉봉풍경은 말그대로 선경이였는데 태산에 올라 동쪽켠의 풍경을 보지않고는 정말 태산의 아름다움을 알수없을것이다.... 흔히 여행하는 사람들은 걷기도 싫어 삭도를 타고 정상에 올라서는 주요한 몇곳만을 돌다 그대로 돌아가는데 어찌 산의 진미를 느낄수가 있으리...
293    즐거운 사람중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 댓글:  조회:2038  추천:110  2008-06-20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존자 나가바라는 사슴 동산에 있었다. 그 때에 나이 늙은 어떤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존자 나가바라와 어릴 때부터 매우 친한 사이었다. 그는 나가바라에게 가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너는 즐거운 사람 중에 가장 즐겁구나." 나가바라는 물었다. "너는 무슨 이유로 '즐거운 사람 중에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가." "나는 이레 동안에 아들 일곱을 잃었다. 그들은 모두 용맹스럽고 재주가 많았으며, 지혜는 따를 이가 없었다. 엿새 동안에 일꾼 열 둘을 잃었다. 그들은 부지런히 일해 게으르지 않았다. 닷새 동안에 네 형제를 잃었다. 그들은 온갖 기술이 있어 모두 익숙하였다. 나흘 동안에 부모를 잃었다. 나이 백 세나 되었는데 나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셨다. 사흘 전에는 두 아내가 죽었다. 그들은 얼굴이 단정하여 세상에 뛰어났다. 또 집안에 보배 창고가 여덟이 있었는데 어제 간 곳이 없어졌다. 내가 만난 이런 고뇌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존자는 지금 그런 재앙을 아주 떠나 다시 근심, 걱정이 없이 오직 도로써 스스로 즐기고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즐거운 사람 중에서 가장 즐겁다'고 말한 것이다." 존자 나가바라는 말하였다. "너는 왜 어떤 방편을 써서라도 그만큼 사람을 죽지 않도록 하지 않았는가." "나도 그들을 죽지 않게 하려고, 또 재물을 잃지 않도록 많은 방편을 썼었다. 때를 따라 보시해 온갖 공덕을 지었고 하늘에 제사도 지내고 늙은 바라문들을 공양하였으며 온갖 귀신을 보호하였고 주술도 외웠다. 또 별을 보고 점도 쳤으며 온갖 약도 만들었고 또 맛난 음식으로 곤궁한 이들에게 보시하는 등 이런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 목숨은 건질 수가 없었느니라." 그 때에 존자 나가바라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온갖 약초와 모든 주술과 의복과 음식의 모든 기구로 보시하여도 소용이 없어 그 몸의 괴로움 가지고 있구나. 귀신 사당에 제사 드리되 향불과 꽃과, 목욕하면서 그 원인을 살펴보아도 그것을 능히 고칠 수 없었다. 온갖 물건을 널리 베풀고 정진하고 또 범행을 가지면서 그 원인을 살펴보아도 그것을 능히 고칠 수 없었다. 그 바라문은 물었다. "어떤 법을 행해야 이런 고뇌를 없앨 수 있는가." 존자 나가바라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은혜와 사랑은 무명의 근본 온갖 고뇌를 일으키나니 그것이 사라져 남음 없으면 곧 다시는 고통 없으리. 그 바라문도 이 말을 듣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록 늙었으나 아주 늙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 제자 같나니 원컨대 집을 떠나 도를 배워서 이런 재앙을 떠날 수 있게 하라. 그 때에 존자 나가바라는 곧 그에게 세 가지 법복을 주어 집을 나와 도를 배우게 하고 또 말하였다. "이제 너 비구여, 이 몸의 머리에서 발까지 관찰해 보라. '이 머리털과 손톱, 발톱과 이빨 따위는 어디서 왔는가'고. 또 '몸뚱이와 피부, 골수, 창자, 밥통 따위는 어디서 왔는가'. '만일 여기서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고. 그러므로 비구여, 세상의 고뇌를 너무 근심하지 말라. 또 낱낱의 털구멍을 관찰하고 방편을 구해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라." 존자 나가바라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잡된 생각 버리고 너무 근심 말라 오래지 않아 법눈을 얻으리라 덧없는 행은 번갯불 같거니 이런 큰 행복은 만나기 어렵다. 그 낱낱의 털구멍 관찰하라 나는 것은 죽는 것의 근본이니라 덧없는 행은 번갯불 같거니 마음을 돌려 열반으로 향하라. 그 때에 그 장로 비구는 이 분부를 받고 한적한 곳에서 그 이치를 생각하였다. 즉 '선남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이는 위없는 범행을 닦아,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胎]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고. 그 때에 그 비구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에 그 비구는 옛날 친구인 어떤 하늘은 그 비구가 아라한이 된 것을 보고 곧 나가바라에게 가서 허공에서 게송을 읊었다. 이미 구족한 계율을 받고 저 한적한 곳에 있어서 도를 이루어 집착이 없고 온갖 악의 근본 떨어 버렸다. 그 하늘은 다시 하늘 꽃을 존자 위에 뿌리고 공중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에 그 비구와 하늘은 존자 나가바라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二) 聞如是 一時。尊者那伽波羅在鹿野城中 是時。有一婆羅門年垂朽邁。昔與尊者那伽婆羅少小舊款。 是時。婆羅門往至那伽婆羅所。共相問訊。在一面坐 爾時。梵志語那伽婆羅曰。汝今於樂之中。最為快樂 那伽婆羅曰。汝觀何等義。而作是說。於樂之中。最為快樂 婆羅門報曰。 我頻七日中。七男兒死。皆勇猛高才。智慧難及。 近六日之中。十二作使人無常。能堪作使。無有懈怠。 近五日已來。四兄弟無常。多諸妓術。無事不閑。 近四日已來。父母命終。年向百歲。捨我去世。 近三日已來。二婦復死。顏貌端政。世之希有。 又復家中有八窖珍寶。昨日求之而不知處。 如我今日遭此苦惱。不可稱計。然。尊者。今日永離彼患。無復愁憂。正以道法而自娛樂。 我觀此義已。故作是說。於樂之中。最為快樂 是時。尊者那伽婆羅告彼梵志曰。汝何為不作方便。使彼爾許之人而不命終乎 梵志對曰。我亦多作方便。欲令不死。又不失財。亦復隨時布施。作諸功德。祠祀諸天。供養諸長老梵志。擁護諸神。誦諸咒術。亦能瞻視星宿。亦復能和合藥草。亦以甘饌飲食施彼窮厄。如此之比不可稱也。然復不能濟彼命根 是時。尊者那伽婆羅便說此偈  藥草諸咒術  衣被飲食具 雖施而無益  猶抱身苦行 正使祭神祠  香花及沐浴 計挍此原本  無能療治者 假使施諸物  精進持梵行 計挍此原本  無能療治者  是時。梵志問曰。當行何法。使無此苦惱之患 是時。尊者那伽婆羅便說此偈  恩愛無明本  興諸苦惱患 彼滅而無餘  便無復有苦  是時。彼梵志正聞語已。即時便說此偈  雖老不極老  所行如弟子 願聽出家學  使得離此災  是時。尊者那伽婆羅即授彼三衣。使出家學。又告之曰。汝今。比丘。當觀此身從頭至足。 此髮.毛.爪.齒為從何來。形體.皮肉.骨髓.腸胃悉從何來。設從此去。當至何所。 是故。比丘。勿多憂念世間苦惱。又當觀此毛孔之中。求方便成四諦 是時。尊者那伽婆羅便說此偈  除想勿多憂  不久成法眼 無常行如電  不遇此大幸 一一觀毛孔  生者滅者原 無常行如電  施心向涅槃  是時。彼長老比丘受如是言教。在閑靜之處。思惟此業。所以然族姓子。剃除鬚髮。以信堅固。出家學道者。欲修無上梵行。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胎。如實知之。 是時。彼比丘便成阿羅漢。 是時。有天是彼比丘舊知識。見彼比丘成阿羅漢已。便往至那伽婆羅所。在虛空中而說此偈  以得具足戒  在彼閑靜處 得道心無著  除諸原惡本  是時。彼天復以天華散尊者上。即於空中沒不現 爾時。彼比丘及天聞尊者那伽婆羅所說。歡喜奉行
292    태산에서 6박7일--옥황정에서 댓글:  조회:2775  추천:83  2008-06-17
 태산정상에서는 하루종일 귀맛좋은 종소리가 울려펴졌다. 다름아닌 홍덕루에서 울려나오는 종소리였다. 아마 종을 치는 관관객들이 많은가 보다.  구리종을 재차쳐 만리의 새길을 찍어둔다(점검)....  태산정상의 유명한 碧霞祠-- 태산여신인 碧霞元君의 사당이다.    碧霞祠는 송진종이 태산에서 봉선한 이듬해(1009년)에 칙하여 건립했다는데 철기와로 이름이 있다.    동신문  남천문으로 가는 길. 여기로 남천문을 가서 다시 북쪽을 에돌아 옥황정으로 올랐다.  태산정상의 옛건물들.    정상북쪽켠의 장인봉  공자묘뒤로 옥황정을 오르면서  태산정상에서 바라본 8.1호텔.  태산정상--옥황정  비석에 해발 1545메터라 씌여져있었다.  옥황정아래의 無字碑  오악독존이라는 글앞에는 태산기념을 남기느라 줄을 서서 서로 밀고닥치고 하였다.  그 옆에 만법유식이라는 글과 등봉조극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사진한장 남겼다.  옥황정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공자묘  공자묘아래풍경.    옛건물  8.1호텔  태산운해를 구경하기 좋은곳.  기이한 바위  사람이 올라못가게 둘레를 쳤지만 올라가사진기념을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골짜기넘어는 瞻鲁台   瞻鲁台로 가는 길    잠간 여기에서 태산석각을 소개한다.  태산석각이 집중된 唐摩崖  황제가 칙령하여 수건했다는 동악묘--대관봉  금박으로 새긴 오른켠 석각은 당조의 어느 황제가? 칙하여 쓴 천하대관--紀태산銘  登峰造极  광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사진찍는 저 친구는 나에게 주동적으로 자리를 찾아가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돌틈계단.  瞻鲁台와 기상대봉우리사이의 골짜기  내가 내려온 길-- 옥황정으로 가는 길  방금 지나온 태산기상대아래절벽길  태산기상대  2008년 5월 7일 태산정상에서
291    태산에서 6박7일 -- 十八盤 댓글:  조회:3047  추천:81  2008-06-17
5월6일 태산에 도착하여 섬서성 한중에서 놀러온 친구둘을 사귀였다. 한명은 광동에서 일본놀이감회사에서 출근하고 한명은 중국에서 가장큰 부동산회사인 万科회사에 출근하다가 현재는 전문 여행을 다니는 친구였다. 류조선이라 부르는 여행을 좋아하는 그 친구는 조용한 성격에 상냥한 모습이였는데 예술적인 감각이 뛰여난 친구였다. 내가 텐트를 지니고 여행하니깐 본인도 등산쪽으로 많이 생각했는데 마침 잘되였다면서 나와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태산에서 내려온후 그 친구는 정말 등산장비를 갖추었고 나의 소개로 백두산까지 올랐으며 북파에서 서파까지 홀로 종주를 하였다.... 그리고 압록강가의 집안까지 갔으며 심양을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두 친구는 어제 호텔에서 주숙하고 나는 텐트가 있으니깐 엊저녁 야행산행을 하여 태산정상에 먼저 올라왔다. 홍덕루옆 벼랑바위우에서 바라본 일관대--웃쪽벼랑길은 내가 지나온 길 점심때가 지나도 그 친구들이 오지않으니깐 나는 마중삼아 十八盤을 내려가보기로 하였다. 엊저녁 한밤중에 산을 오르면서 태산에서 가장 가파롭다는 그 계단을 구경못하였으니 못내 아쉽기도 했기때문이였다.    홍덕루에서 십팔반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저 아래 십팔반돌계단이 아득히 보인다.    내가 내려온 홍덕루쪽의 돌계단.  드디여 十八盤중턱에 도착-- 정상은 여기서 아득히 보였고 오른켠으로 내가 내려온 돌계단이 있다.      십팔반을 내려오면서 만난 태산의 짐군-- 저 무거운 짐에 비기면 나의 멜가방은 아무것도 아니지...ㅋㅋㅋ  태산十八盤소개: 십팔반은 태산반도가운데서 가장 험요한 한구역이다. 전체길이는 0.8키로이고 돌계단수는 1600여계단이다. 계단량옆은 칼로 깍가지른것같고  많은 제각(벼랑바위에 글을 새긴것)이 널려져있으며 멀리 바라보면 마치 하늘을 오르는 사닥다리가 걸려져있는것같다. 명조때사람인 증영은 태산의 십팔반을 보고 이렇게 시로 묘사하였다."땅우에서 5천장 솟구쳤으니 구름위로 솟아오른것이 십팔반이다."  십팔반비석을 보고있는 사람들  십팔반아래 길가의 가게  머리를 쳐들어 남천문을 바라보고 우불구불십팔반계단을 바라본다.  나무가 무성하여 십팔반전체가 잘 보이질 않는다. 조금 산우로 올라와서 바라본 십팔반전경. 점심때도 썩 지났고 나도 십팔반까지 내려왔지만  그 친구들은 아직도 종무소식이다. 전화통화를 하니깐 경각석(經刻石--당조때 개울바닥바위에 금강경을 새긴곳)에서 골짜기를 따라 오르다 길이막혀 다시 돌아오는데 중천문에서 아예 다른쪽으로 벼랑을 톱아 오르고 있었다. 아마 그 친구도 돌을 깐 딱딱한 계단이 싫었던 모양이다. 십팔반에서 중천문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십팔반깊옆의 가게지붕넘어로 바라본 아득한 동쪽벼랑    십팔반가게옆의 기이한 바위    그 친구들이 오지않으니 나는 다시 십팔반서쪽켠의 산을 올라 십팔반전경을 구경하였다.    골짜기사이로 아득히 보이는 남천문.  산능선에서 바라본 동쪽  우에서 내려다보니 개미같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광선이 너무 강하여 아득한 벼랑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벼랑에 자란 소나무  사진기렌즈를 당겨 겨우내 희미하게나마 남천문이 보인다. 내가 지금 서있는 산능선을 타고서도 정상을 갈수도 있을것같았다. 하지만 마지막벼랑이 험하여 올라갈수있을지는 나도 장담못함. 그보다도 지금 두 다리가 나른하여 더 산을 오르고 싶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다..ㅋㅋ  다시 십팔반을 오르면서  승선방돌대문  오늘은 무거운 짐이 없이 홀가분한 맨몸으로 계단을 오르니 누구보다도 빠르다.  얼마나 힘겨웠으면 남천문을 코앞에 두고서도 이들은 여기에 앉아 있는걸가...ㅎㅎㅎ  남천문  다시 내려다보는 십팔반전경.
290    태산에서 6박7일-- 관일대에서 댓글:  조회:2400  추천:77  2008-06-17
  엊저녁(2008년 5월 6일)에 태산에 올라서 월관봉에서 하루밤 텐트를 쳤다. 아침일찍 天街를 지나 东神门을 거쳐 瞻鲁台에 올랐다. 瞻鲁台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눈앞이 탁티여 가슴이 개운해났다. 특히 동쪽골짜기에서 수시로 안개가 몰려와 중산을 덮어버리는 그 경관이 과연 기관이였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적어 나는 돌우에 방석을 깔고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입을 벌린채로 바라보기만하였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서로 사진을 찍고 야단법석이였다. 나의 등산장비를 보구 주동적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일일이 대답하기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아래에 보이는 저 봉우리뒤로 가보기로 하였다.  후에 알았지만 그곳은 관일대(观日台)였다.  사진은 瞻鲁台에서 관일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瞻鲁台를 내리는 돌계단.-- 아래에 보이는 길은 태산정문에서 중천문으로 오르는 신작로이며 가운데봉우리가 곧 중천문이다. 엊저녁 밤중에 산을 오르다보니 태산으로 오르는 돌계단 전부의 경관을 제대로 보지못해 조금 아쉬워났다.  벼랑이 가파로워 돌계단도 여러층차로 되여있었다.  관일대로 가는 골짜기  깍가지른듯한 봉우리사이로 뻗어있는 돌계단을 따라 걷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도 나 혼자 조용한  이 길을 걸을수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뒤돌아본 瞻鲁台    瞻鲁台아래 깍가지른듯한 벼랑    관일대로 넘어서는 돌틈  돌틈을 비집고 건너가니 世外桃源같은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름아닌 관일대이다. 하루치고 해를 잘 볼수있다하여 관일대라 이름지은것같다. 말그대로 여기는 따스한 해빛이 충족하였고 아침에 일출보기도 너무좋은 곳이였다. 오늘은 무작정 여기에 텐트를 치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관일대에서 바라본 내가 지나온 봉우리-- 저 벼랑아래에 돌집은 관일대를 관리하는 관리원집이다. 문이 열려져 있었고 불이 켜져있는것을 보았다. 그렇잖아도 사진기 빠뜨리가 걱정되여 충전할곳을 찾았는데 너무 잘 되였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찾아가 이말저말 건느다보니 결국은 너무 친한사이가 돼버렸다. 여기서 이틀묵으면서 나는 태산정상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관리원이 있는 집 앞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집웃쪽으로 올라가서 바라보니 더욱 경관이다.  관일대남쪽끝에서 바라본 중천문쪽풍경.  관일대뒤로는 태산 남천문쪽벼랑이 안겨왔고 그 아래 벼랑길과 서로 통하여있었다.  관일대동남쪽벼랑-- 관리원의 말로는 며칠전 한국등산대가 저 산맥을 타고 올라왔댔단다. 등산대가 코스를 잡을만하다면 이유가 있을것이다. 이틑날 나는 저 산맥을 타고 정말 멋진 태산풍경을 감상하였다.  관일대가운데 서서 바라본 동북쪽  내가 지나왔던 길.  관일대끝쪽에 당금 떨어질듯한 바위  관일대아래로 뻗은 산맥. 이틑날 나는 저 산맥을 따라 아래보이는 봉우리까지 올랐다.  관일대에서 동신문으로 통하는 길.  그 돌계단의 아늑한 풍경.  돌계단을 따라 걸으면서 내려다본 중천문  저녁이 가까우면서 관일대는 더욱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건 무슨 바위라고 불러야 좋을지...  내가 텐트를 친곳.
289    청정한 범행이란 무엇인가? 댓글:  조회:2442  추천:102  2008-06-16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생루 범지는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이 중에 혹 어떤 비구로서 어떻게 범행을 닦아야 이지러짐이 없이 청정하게 범행을 닦을 수 있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완전히 갖추어 범하지 않으면 그것이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것이다. 다시 범지야,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알음을 내거나 집착하지 않고 나쁜 생각과 좋지 못한 법을 버려 눈을 온전하게 하면 그 사람은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사람이니라. 또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닿임을 알거나 뜻으로 법을 알아도 알음이나 생각이 전연 없고 청정하게 범행을 닦아 그 뜻을 온전히 하면, 그런 사람은 범행을 닦되 이지러짐이 없느니라." 범지는 사뢰었다. "어떤 사람이 범행을 닦지 않아 청정한 행을 두루 갖추지 못하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함께 모이면 그것은 범행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번뇌[漏]가 있어서 행을 두루 갖추지 못하였나이까." "어떤 사람이 여자와 교접하거나 손, 발을 맞대거나 그것을 마음에 두어 잊지 않으면, 범지야, 이것은 행을 두루 갖추지 못한 것으로서 온갖 음탕한 마음을 흘려 내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알맞은 것이다. 또 범지야, 혹은 여자와 장난하거나 서로 말을 걸면, 범지야, 그 사람은 행을 두루 갖추지 못하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흘려 내며 범행을 갖추어 청정한 행을 닦지 않는 사람이니라. 다시 범지야, 어떤 여자가 음탕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고 거기서 곧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켜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내면, 범지야, 그는 범행이 깨끗하지 못하고 범행을 닦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시 범지야, 어떤 사람이 우는 소리나 웃는 소리를 멀리서 듣고 거기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으켜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내면, 범지야, 이것이 이른바 '그는 범행을 깨끗이 닦지 않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서로 알맞아 행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다시 범지야, 어떤 사람이 일찍 여자를 보고 뒤에 다시 생각이 나서 그 머리나 눈을 기억하고 거기서 그리움을 내어 그윽한 곳에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나쁜 행과 서로 어울리면, 범지야, 이것이 이른바 '그는 범행을 닦지 않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생루 범지는 세존께 사뢰었다. "참으로 희한하고 놀랍나이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범행도 알으시고 범행이 아닌 것도 알으시며, 흘리는 행도 알으시고 흘리지 않는 행도 알으시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여자와 손을 맞잡으면 곧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내나이다. 그 때에 저는 생각하나이다. '이 사람은 행이 깨끗하지 못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서로 어울린다. 닿음의 첫째는 여자다. 첫째 욕망은 눈과 눈이 서로 마주치는 것이다. 여자는 말과 웃음으로 남자를 얽어맨다. 혹은 말을 걸어 남자를 얽어맨다'고. 그 때에 저는 생각하였나이다. '이 여섯 사람은 모두 깨끗하지 못한 행을 행한다'고. 지금 여래님의 말씀은 너무 친절하십니다. 마치 장님에게 눈을 주고 헤매는 이에게 길을 보이며 어리석은 이에게 도를 들려주고 눈을 가진 이에게 빛을 보이는 것처럼, 지금 여래님 말씀도 그와 같나이다. 저는 지금 부처님과 법과 중에게 귀의하나이다. 지금부터는 다시 살생하지 않겠나이다. 원컨대 저를 우바새가 되게 하소서." 그 때에 생루 범지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聞如是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生漏梵志往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爾時。梵志白世尊言。 此中頗有比丘。云何得修梵行無有缺漏。清淨修梵行 世尊告曰。若有人戒律具足而無所犯。此名清淨修得梵行。 復次。梵志。 若有眼見色。不起想著。不起識念。除惡想。去不善法。得全眼根。是謂此人清淨修梵行。 若耳聞聲.鼻嗅香.舌知味.身知細滑.意知法。都無識想。不起想念。清淨得修梵行。全其意根。 如此之人得修梵行。無有缺漏 婆羅門白佛言。何等之人不修梵行。不具足清淨行 世尊告曰。若有人俱會者。此名非梵行 婆羅門白佛言。何等之人漏不具足 世尊告曰。若有人與女人交接。或手足相觸。接在心懷而不忘失。 是謂。梵志。行不具足。漏諸婬泆。與婬.怒.癡共相應 復次。梵志。 或與女人共相調戲。言語相加。是謂。梵志。此人行不全具。漏婬.怒.癡。梵行不具足修清淨行 復次。梵志。若有女人惡眼相視而不移轉。於中便起婬.怒.癡想。生諸亂念。 是謂。梵志。此人梵行不淨。不修梵行 復次。梵志。若復有人遠聞或聞哭聲。或聞笑聲。於中起婬.怒.癡。起諸亂想。 是謂。梵志。此人不清淨修梵行。與婬.怒.癡共相應。行不全具 復次。梵志。若有人曾見女人。後更生想。憶其頭目。於中生想。在屏閑之處。生婬.怒.癡。與惡行相應。是謂。梵志。此人不修梵行 是時。生漏梵志白世尊言。甚奇。甚特。此沙門瞿曇亦知梵行。亦知不梵行。亦知漏行。亦知不漏行。所以然者。我今亦生此念。諸有人民女人手足相加。起諸亂想。我時便生此念。此人行不清淨。與婬.怒.癡共相應。第一更樂者。女人是也。第一可欲者。所謂眼眼相視。 然彼女人或語.或笑。繫綴男子。或共言語而繫綴男子。是時。我便生此念。此六人盡行不清淨行。 如來今日所說甚過。猶如盲者得目。迷者見路。愚者聞道。有目之人見色。如來說法亦復如是。 我今自歸佛.法.眾。自今之後不復殺生。唯願受為優婆塞 爾時。生漏梵志聞佛所說。歡喜奉行
288    6월 14일 천불지산산행일지 댓글:  조회:2536  추천:84  2008-06-15
2008년 6월 14일 명상랑도네는  천불지산산행을 하였다. 천불지산은 언제 가보아도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이였다. 우리가 천불지산에 도착하였을때는 천불지산의 청신한 공기와 더불어 푸른 하늘이 유난히도 밝았으며 흰구름이 뭉게뭉게 하늘을 뒤덮어 보는 사람이 황홀해났다.... 입속으로는 연신 감탄 소리가 튀여나왔으니... 골짜기의 개울물도 특별히 귀맛좋았다. 흰구름 푸른하늘.     작은 벼랑아래로 흐르는 맑은 계곡. 첫시작부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개울물소리는 듣는사람을 흥분시켰다...    우리가 출발지점에 차를 세우고 천불지산쪽으로 바라보니 천불지산넘어로 흰구름이 정상과 이어져 설산을 방불케하는 모습이 정말아름다웠다. 하지만 사진기가 문제가 되여 그 모습을 담을수가 없었다. 산행을 하면서 근 5만여장의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기도 인젠 지쳤나보다.... ㅎㅎㅎ 하지만 내 심정을 알고 뿌리님이 제꺽 사진기를 넘겨주어 덕분에 오늘 더욱더 멋진 작품들을 만들었다... 전번 산행일지를 보고 내 사진기가 문제가 있다면서 언녕 준비해온 뿌리님이시다. 언제나 그렇게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큰 누님같은 자상한 뿌리님! 그리고 매번 산행시에 언제나 잊지않고 지녀오는 맛나는 干果...  개울을 넘는 바람님과 뿌리님.  그 뒤로 진장님과 남경리.  개울다리를 건는지 얼마 않되여 또 하나의 개울이 길을 막고 있었다. 남경리께서 먼저 신을 벗고 건너가더니 다시 돌아와서 우리들을 업어주신다...  그 덕에 바람님과 뿌리님 나까지 남경리등에 업혀보았다...ㅎㅎㅎ   길가에서 찍은  이 꽃으로 남경리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두번째개울-- 산행에 발벗고 개울건느는것도 별미라 이번에는 우리는 주동적으로 신벗고 건늘준비를 하였다. 바람님이 먼저 절반쯤 건느다 발이시려 엎어질듯 부랴부랴 건느지만 감히 달지를 못하고 발만 동동구른다...ㅎㅎㅎ  진장님은 에쿠 시원해라 하면서도 점잖게 늘쩡늘쩡...ㅋㅋㅋ  세번째개울을 건너서는 그대로 맨발바람으로 맨발랑도네를 하였다...ㅎㅎㅎ  남경리가 앞에서 산포도넝쿨을 발견하고 넝쿨채로 우리들에게 넘겨주면서 맛보라고 한다.-- 새콤새콤한 그 맛이 잔뜩이나 상쾌한 기분에 더욱 정신을 분발시킨다. 오늘 산나물 전문가인 남경리덕분에  황계 등을 비롯한 많은 산약재들을 알게 되였다...  개울뒤이어 이어진 멋진 벼랑..  뒤로는 엄청나게 큰 벼랑들이 정상까지 이어졌다.  벼랑을 배경으로.... 돌아올때 저 벼랑을 올라봐야지...바람님은 두손 들어 찬성! ㅋㅋㅋ  한시간쯤 걸어서 첫번째 큰 골짜기를 만나면서 굽인돌이를 돌았다. 이 골짜기로 천불지산의 최고봉은 쿵스레(해발 1345메터)를 에둘러 올라갈수가 있다. 지도를 보면 이 골짜기속에 멋진 벼랑들이 꽉 차있다...  아까 출발지점에서 보았던 산우의 흰 구름-- 정상의 안개와 흰구름은 완연일체가 되여 하늘을 오르는 길이 저 산정상에 있지않을가 의심난다..ㅋㅋㅋ 천불지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이였다.  이번엔 또 개발이라는 산나물을 발견...어릴때 많이 보았지만 먹을수있는줄은 오늘에야 알았다. 진장님이 솔나무를 가리키더니 잣나무라한다.  잣나무꼭대기에 대여섯송이의 잣송이가 바람결에 한들거렸다.  원시림속에서의 명상랑도네-- 오랫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 전체는 수풀로 무성. 깊은 골짜기에서 조잘거리는 시냇물.  목도 컬컬한지라 뿌리님이 먼저 달려가서 목을 추킨다...  내물가에서 만난 어여쁜 하얀꽃.  조금 더 가서 두번째로 만나게 된 벼랑.  그 오른켠으로 엄청난 크기의 골짜기가 눈앞에 펼쳐졌고 그 위에로 역시 흰구름과 안개가 휩싸여 신비감을 더해준다. 이 골짜기가 곧바로 직접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하지만 정상은 아득히 저 하늘가에 있으니 오늘 시간상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이미 두시간넘어 걸었었다. 그리고 현재는 수풀이 무성하여 자칫 길을 잘못들어섰다가는 수림속에서 헤매고 말것이다... 그래서 길을 따라 그대로 계속 더 가보기로 하였다.  오늘 세시간동안 걸으면서 아홉개나되는 개울을 건넜다...  수림속의 무성한 고사리밭.  때는 이미 점심시간도 되였으니 배도 촐촐하고 다리도 맥이없으니 소리를 따라 개울가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수림속의 개울-- 개울물에 발이 쩡쩡 시려났니만 뿌리님과 바람님은 싫은 소리하지않고 제법 개울에서 장난친다.ㅎㅎㅎ  티없이 맑고 시원한 개울물...  점심준비.  채는 간소하였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더우기 작년 가을에 불구었던 천불지산오미자술을 가져와서 남경리와 진장님께서 너무너무 좋아하신다. 그 덕에 나까지도 기분이 덩덩하여 평소에 않마시던 술을 련속 석잔을 마시고나니 뒷골이 핑핑~ ㅋㅋㅋ  맛나게 점심을 들고 오손도손 모여앉아 재미나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바람님이 뭘 얘기하는지 셋은 귀를 가시고 경청-- 진장님의 얼굴에 밝은 미소로 엿보아 정말 구수한 옛말을 들려주는듯...  이번에는 손까지 쳐들어 뭘 말하는걸가?  뿌리님은 놀라서 뒤로 번저지는듯? ㅎㅎㅎ   우리가 앉았던 개울옆 귀맛좋은 물소리...  너무 청신한 수림속이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여기서만 놀고 싶은데....  돌아오는 길 -- 울창한 수림속길을 걸으면서...  수림속의 오미자넝쿨-- 아까 점심에 마신 오미자술에 취해 지금 눈까풀이 천근무게로 짓누른듯...  다시 골짜기를 지나면서... 산넘어 흰구름도 저쪽으로 많이 사라졌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렀다.  나 혼자만 잠자고싶었나 했더니 조금 가다말고 다들 그대로 길가에 누워 잠간 눈을 붙혔다.  어느새 뿌리님께서 잠자는 나까지도 ...ㅎㅎㅎ 매번 일지에서 내 모습을 볼수없다고 하면서 뿌리님께서 주동적으로 사진을 찍어주신다...  정말 보고보고 보아도 싫지않는 천불지산의 아름다운 저 풍경... 나는 꿈속에서 신선이 된듯한 기분...  잠간 휴식하고 다들 일어나 떠날준비.  나물캐는 남경리.  아까 지나왔던 멋진 벼랑을 다시 지나면서...  벼랑을 보자 갑자기 등반을 해보구싶은 충동이 일어나서... 그대로 수풀을 헤치고 벼랑아래까지 다가가서 시늉이라도 해보았다.ㅎㅎㅎ 오늘은 시간이 허락되지를 않는다... 아침 아홉시에 출발하여 이미 여섯시간이나 걸었으니... 집까지 갈려면 또 적어서 세시간은 걸려야 한다. 아쉬운대로 오늘은 이만하자! 흑흑흑....  길가의 못에서 만난 개구리.  원점-- 흰구름은 보일듯말듯 저 산넘어로 사라졌다.  마지막개울 넘으면서 동심을 못이겨 그대로 신을 신은채로 맑은 개울물에 뛰여들었다...  뿌리님도 그리고 진장님도...ㅎㅎㅎ  찬물에 두 다리가 찡찡 저려났지만 여섯시간의 랑도네로 지친다리가 금방 새기운을 얻어 다시 활기를 찾았다.  서녘해도 뉘엿뉘엿 산을 넘으면서 울창한 삼림을 더욱 찬란하게 비춘다...  오늘도 역시 멋진 산행였다! 이제 언제 다시 천불지산으로 산행할수있는지는 미결이다!  다음주일이면 바람님이 한국을 떠나고 그 뒤로 나도 떠나게 된다.(봄비님도 장춘에 가서 몇달동안 출장중이여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참석못한다.) 그동안 남경리하고 진장님과의 천불지산산행은 너무너무 뜻깊었다.  일생을 두고 회억할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겼으니 두 분한테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 그리고 많은 산행을 다녀왔지만 그래도 다시 가고싶은 곳은 천불지산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산행은 천불지산에서 시작되였고 산행의 진미도 천불지산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2008년 새해일출을 비롯한 명상랑도네의 획기적인 산행은 그 대부분이 천불지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어찌 천불지산을 잊을수 있으리...... 비록 잛은 한해동안이였지만 결코 잊을수 없는 .... 잘 있거라 천불지산이여~ 후에 다시 만나자!     
287    태산에서 6박7일--瞻鲁台에서 댓글:  조회:1972  추천:85  2008-06-14
안개자욱한 태산정상.  엊저녁 태산정상은 세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었다. 그리고 새벽부터 몰려오는 안개가 아침까지 계속되였는데 원래는 일출을 보려고 계획했지만 도저히 볼것같지를 못했다. 어제저녁 일곱시간을 가파른 산을 오르다보니 지칠대로 지쳤으니 차리리 잘되였다고 늦잠을 잤다. 하지만 새벽부터 올라오는 여행객들의 왁짜지걸한 소리에 도저히 잘수가 없어 나는 텐트를 그대로 두고 아침구경을 하였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남천문.  缆车(케이블)을 기다리는 사람들.  관월봉에서 바라본 서쪽풍경.  그 아래 이어진 산맥들  월관봉아래골짜기로 안개가 수시로 피여오르고 있었다.      태산 케이블  태산정상의 동북쪽풍경  天街를 오르면서 바라본 내가 머물렀던 월관봉--저 질오른켠숲속에 엊저녁 부랴부랴 텐트를 쳤었다.   天街--하늘거리  엊저녁 기여올랐던 십팔판돌계단.  케이블쪽으로 가는 길  줄을서서 향을 사르는 사람들.  홍덕루  홍덕루에서 바라본 남천문쪽풍경  금종을 한번 치면 천고에 품었던 옛꿈을 실현한다고 한단다....  태산정상의 공자묘쪽의 전경.  瞻鲁台쪽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태산정상의 거리  자연적인 돌로 이루어진 天桥  산동반도를 한눈에 바라볼수있다는 瞻鲁台  瞻鲁台에서 바라본 동쪽 골짜기  日观台뒷쪽의 멋진 봉우리  수시로 안개가 몰려와 산봉우리를 덮었다가는 사라지고 또 몰려오군 하였는데 그 풍경에 사로잡혀 나는 여기서 반나절이나 머물렀었다.  瞻鲁台에서 태산정상인 옥황정으로 가는 벼랑길.  瞻鲁台 관일석우에서...
286    태산에서의 6박7일-- 天外村 공원 댓글:  조회:2362  추천:95  2008-06-14
2008년 5월 6일 나는 꿈에도 오르고싶었던 태산여행을 하였다. 이번의 여행은 다른때와 달리 배낭에 텐트와 침낭을 지니고 다녔던 멋진 여행이였다. 태산은 내가 이전부터 가장 오르고 싶었던 명산이다. 사나이가 이세상에 태여나서 뭔가 해볼려면 우선 태산정상에 올라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이 있다. 아마 그 말은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를 보니 천하가 작아보였다는 말에서 기원된것이 아닌지 혼자 추측해본다...    태산정문앞은 룡주와 돌조각으로 멋지게 장식되였고 그 뒤로 태산지질공원이 이어졌고 뒤로는 태산주위의 산맥들이 우중충 눈에 띄게 솟아올랐다.  전부 태산의 돌로 가공한 정교한 조각판.  태산 지질공원의 계곡을 오르면서.    공원끝쪽의 멋진 다리-- 저 다리로 차를 타고 태산 중천문까지 오른다.  다리를 넘어 태산풍경구에 속하는 룡담이 있었다.  룡담풍경.  룡담골짜기에서 바라본 태안시쪽  신혼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다.  공원우에 꽤나 큰 호수가 있었다. 룡담저수지라고 한다.  바다우의 신기루같은 태안시--룡담저수지에서 바라본 태안시  태산정문넘어 보이는 태안시거리.  태산공원을 내려올때 본 공원가운데 세워놓은 태산수석-- 태산은 자연석으로 이름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 특히 정문쪽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나는 수많은 예술적인 돌무늬들을 감상할수가 있었다.... ......................... 무더운 날씨에 때는 이미 오후시간이 다 갔고 나는 저녁시간을 타서 태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그래서 태산공원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우선 며칠먹어야 할 음식을 준비해야하므로 나는 부랴부랴 시내로 내려왔다. 이날저녁 날이 어둡기시작해서야 나는 슬렁슬렁 홍문쪽으로 이동....  하지만 태산정상이 거리가 꽤나 되는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멀줄은 너무나 상상밖이였다. 이날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거이 일곱시간을 거쳐 새벽 한시반에 태산의 남대문에 도착하였다. 2년간 백여차례의 산행을 하면서 체력단련을 하지않았더라면 나는 정녕 포기하고 말았을것이다. 특히 태산의 가장 가파른곳인 십팔판중의 룡문에 이르렀을땐 정말 그 자리에 쓰러져 자고만 싶었다.... 1월에는 천불지산 2월에는 백두산을 거쳐 이번 태산여행은 내가 가장 힘들었던 .... 말 그대로 강훈련의 산행이였다...    이 사진들은 태산정문의  홍보용으로 쓰는 사진들을 담은것이다.  태산을 오르기전에 눈요기나 먼저 해보자...ㅎㅎㅎ                    
285    교하 라법산산행일지(2008 6. 7 8) 댓글:  조회:2963  추천:64  2008-06-14
2008년 6월 7일 단오절을 앞두고 명상랑도네는 1박2일 라법산산행을 하였다. 작년 5월4일 랑도네첫코스를 구룡바위로 할가 라법산으로 할가 생각하다가 상의끝에 구룡바위로 하였었다. 그래서 2007년여름에는 꼭 다녀오겠다고 계획했지만 벼른도끼 무든다고 이일저일  미루어 일년시간이나 흘렀다. 그리하여 이번 라법산산행은 결국은 일년후인 명상랑도네가 두번째해를 맞이하면서 첫코스가 되여버렸다. . 멀리서 바라본 라법산전경. 라법산국가풍경구대문앞에서-- 라법산은 국가4A급 地質공원이였다.   대문을 거쳐 태극동정상에서 바라본 라법산대문-- 현재는 缆车를 건설하고 있었다.  첫번째봉우리에서의 야호~  산맥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서 바라본 돌계단골짜기  비록 힘들었지만 즐거워하는 청산님. 이번 산행에 청산님의 차를 갖고가서 거리와 시간제한이 없이 시름놓고 마음껏 구경할수가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산행을 하면서도 항상 산나물을 뜯어서는 대원들에게 맛보게 하는 청산님.  자매봉뒷쪽켠에 아득히 보이는 벼랑한가운데의 통천동-- 많은 비둘기가 저 굴에서 살고 있었다.  도가의 여덟신선중의 하나인 장과로가 술에 취해 누워있었다는 醉仙台우에서...    목마를때 만난 얼음과자  조금 휴식하고 계속 앞으로 전진.  오불고불 벼랑길을 오르다 갑자기 눈앞을 가리운 엄청난 벼랑이 나타나더니 그 아래로 엄청난 동굴(穿心洞)이 나타났고 대원들은 뒤질세라 포즈를 취하는데.... 사진을 찍어주는 송도님의 멋진 포즈.    穿心洞동굴속의동굴  穿心洞내부--이 동굴에 천여명이나 들어갈수있다니....  穿心洞서쪽문을 빠져 통천동으로 오르는 칠보험-- 일곱발작걷기가 힘들고 험하다하여 七步险이라 부른것같다.  동굴천정이 하늘과 통한 通天洞 -- 통천동내부에 많은 산비둘기가 있었다.  칠보험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주봉과 이어진듯한 棋盘峰  통천동에서 바라본 우리가 올랐던 첫번째봉우리  다시 돌아와서 棋盘峰을 오르면서...  하늘로 우뚝 솟아오른 棋盘峰  棋盘峰에서 바라본 穿心洞입구  穿心洞서쪽동굴입구에 텐트를 치고 있는 님들... 호기심을 못이겨 나혼자 여기를 올라왔지...ㅎㅎㅎ  텐트를 치고 저녁준비를 하고있는 님들.  저녁을 먹고 밤산행-- 가파른 계단을 기다싶이 하여 밤중에 정상을 올랐다.  새벽세시반에 일어나 기반봉으로 오르니 어느새 바람님이 먼저 올라가 있었다.  바람님은 뭘 바라보나? ... 주봉을 오르면서 안개낀 자매봉앞에서...  주봉을 오르는 바위틈새의 길  일선천사이에 이어진 돌계단.  천교  주봉산맥에 올라서면서...  탑동으로 내려가는 길.  신비한 탑동-- 누군가 돌을 쌓아 불상을 덮어 보호하였다고 한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봄비님--탑동에서 산맥을 따라 내려갔더니 끝쪽에 라법산에서 가장 멋진 풍경이 나타났다.  맞은켠 벼랑한가운데의 동굴어구에 사람이 있는걸보구 야호를 부르는 봄비님과 바람님-- 그러더니 대방이 손짓한다.  탑동골짜기벼랑에서 즐거워하는 바람님.    하강등반  우리가 내려온 길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겁도 없고 무서운줄도 모르고...ㅉㅉㅉ  나리꽃과 바람님.  바위우에 피여난 나리꽃  맞은켠 자매봉중턱의 穿心洞이 정면으로 보였다.  탑동에서 주봉쪽으로 오르는 돌계단.  탑동우에서 바라본 안개자욱한 자매봉.  주봉으로 오르는 길  주봉을 오르다 뒤돌아본 풍경.    塔峰  명조때 어느 고승이 수행처였다는 탑봉-- 世外桃園이라고도 불렀는데 환경이 아늑한 곳이였다.  아침준비  穿心洞북쪽동굴입구에서 바라본 기반봉  아침먹고 자매봉등반    자매봉정상에서  발아래는 천길낭떠러지-- 벼랑높이만 800여메터라고 한다.  맞은 켠 벼랑은 탑동에서 이어진 산능선이다.  오전이 되니 수많은 유람객들이 올라와 기반봉부터 오르면서 갑자기 조용하던 유람구가 떠들썩하였다.    왁자지껄한 유람객을 피해 원시삼림으로...      라법산서남쪽봉우리에서 바라본 전경.  나무잎사이로 바라본 주봉.  라법진뒷켠의 산    수림속에서 만난 바람꽃  우리의 등산장비를 보구 호기심에 못이겨 만나는 유람객들마다 말을 건너는 바람에 시끄러워 길을 피하여 길없는 삼림을 꿰뚫어 내려왔다.  가파른 산을 내리면서...      만약 다음번에 또 다시 라법산에 갈수있다면 저 벼랑을 톱고 다시 산을 넘어 정상에 오르리라....   NAME : 가을 남자 | 2008-06-11 산행일지 잘 보았습니다... 청산님은 내가 처음 보는 분 잇네요.... 신벗님이 명년 10.10일에 주무랑마봉에 도전하려고 건의 하였던데요... 우리 명상랑도팀에서 꼭 도전해 봅시다... NAME : 바람 | 2008-06-11 다시 한번 추억하면서 .......야행이 없었더라면 추억이 적었을 거고 자매봉 등반을 안 했더라면 가슴이 뛰는일 없었을 것이고 위험한 하산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재미있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너무너무 좋았습니다. NAME : 다노 | 2008-06-11 ㅋㅋ 라법산벼랑들이 가파롭군요~ 다행히 천길낭떠러지에선 청산님의 모습을 볼수없어서 기쁩니다. 위험하지요 위험... 잘하셨습니다^^ 멋진 곳을 다녀와서 멋진 사진 보여줘서 감사합니다~ NAME : 별* | 2008-06-12 산행일지 보노라니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것 같습니다 함께 햇더라면 영원한 추억이 되였을 텐데~~ 이번에도 명상님 얼굴 없네 다음번에 가면 꼭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ㅎㅎ 송도야 다리는 괜찬구?조심하라 아직도 할일이 많은데 ^^ 봄비님은 장춘으로 가신다더니 하여튼 잘 같다 오십시오 그리고 히말리야원정은 한번 진지하게 토론하여 봅시다 명년은 좀 빠른것 같구요 한 2년정도 시간가지면 어떻겠습니까 (2010년 10월?!) 일단은 간다고 공포해버리고 나머지는 하나하나 준비하면 될것같습니다 생각박에 복잡한 일이 이외로 간단할수도 잇는거죠 NAME : 청산 | 2008-06-13 등산4차만에 오른 너무나 가파롭고 아찔한 산행이였지만 명상랑도네팀원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기쁘게 다녀왔습니다. 등산의 즐거움을 찾게해준 명상랑도네팀여러분 그동안 많은 관심고맙구요 앞으로 더 험한 산이라도 꼭 오를겁니다 NAME : 다노 | 2008-06-13 ㅋㅋㅋ 오르지말라니까 기어나 오르시겠다네~ 청산님, 벼랑 장난아닌데유~~^^ NAME : 봄비 | 2008-06-13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한번 하면서....... 행복~~또 행복 합니다~~~ 이 행복을 함게할수 있었던 여러분들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284    세상에 고칠수 없는 다섯종류의 사람이 있다. 五人不可療治 댓글:  조회:2209  추천:96  2008-06-11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고칠 수 없는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종류인가. 첫째는 아첨하는 사람이니 고칠 수 없고, 둘째는 간사한 사람이니 고칠 수 없으며, 셋째는 입이 나쁜 사람이니 고칠 수 없고, 넷째는 질투하는 사람이니 고칠 수 없으며, 다섯 째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니 고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다섯 종류의 사람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간사한 사람, 입 나쁜 사람, 아첨하는 사람 질투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 이 다섯 사람은 고칠 수 없나니 지혜로운 이 그를 버리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바른 뜻으로 질투를 버리고 위의를 닦으며 법답게 말하고 은혜를 알아야 한다. 만일 은혜를 안다면 작은 은혜도 잊지 않겠거늘 하물며 큰 은혜이겠는가.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또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않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聞如是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今有五人不可療治。云何為五。 一者 諛諂之人不可療治。 姦邪之人不可療治。 惡口之人不可療治。 嫉妒之人不可療治。 無反復之人不可療治。 是謂。比丘。有此五人不可療治 爾時。世尊便說此偈  姦邪惡口人  嫉妒無反復 此人不可療  智者之所棄  是故。諸比丘。常當學正意。除去嫉妒。修行威儀。所說如法。當知反復。 識其恩養。小恩尚不忘。何況大者。勿懷慳貪。又不自譽。復不毀他人。 如是。比丘。當作是學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283    별님~ 댓글:  조회:1392  추천:76  2008-06-10
포토샵 혼자 끄적거리다가~ ㅋㅋ
282    태항산 와룡풍경 댓글:  조회:2370  추천:71  2008-06-06
 4월 15일 나는 와룡산으로 향하였다. 원래는 랑아산으로 가자던 생각이였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부근의 와룡산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랑아산보다 와룡이라는 이름이 더 가슴에 와닿았고 또 어제 동타정상에서 바라본 와룡산의 모습이 너무 멋졌기때문이다.  차를 타고 손가툰에서 내려 나는 직접 마을뒷산을 타고 와룡산쪽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사진은 마을한가운데 있는 강물에 씻겨 드러난 바위바닥이였다. 여기사람들은 이런것을 룡담이라 하였다.  손가툰마을에서 바라본 멋진 바위-- 손가타라하였다. 타란 돌무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옥황타 손가타 동타 이렇게 불렀다.  산능선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와룡산옆면.  가까이 갈수록 더욱 웅장해보이는 와룡산.  이렇게 남쪽켠에서 바라보니 서쪽과 또다른 모습이다. 첫번째협곡이 한눈에 안겨온다.  무더운 날씨에 산을 걷기가 힘들었다. 코앞에 보이는 와룡산이 당금 닿을것같았지만 아직도 거기까지가기는 너무 멀었다.  송신탑정상에 서서 동쪽으로 바라보니 랑아산전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삐쭉삐쭉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정말 승냥이의 이빨같아 보였다. 얼마나 험한 벼랑이였으면 승냥이의 이빨에 비겼을가... 나혼자 감탄하면서 방금까지 지쳐서 더 가고싶지않던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다시 랑아산으로 가고픈 충동도 일어났다. 사실 련 사흘동안 정신없이 산을 헤매다나니 오늘은 정말 지쳤다... 그래서 여기에 그대로 털썩주저앉아 한시간넘어 멍하니 랑아산의 삐쭉삐쭉 돋아난 봉우리들만 바라보았다... 헤여보니 크고작은 봉우리가  40여개나 되였다..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룡거촌. 산이름이 룡이 엎드려있다는 의미이니 마을이름도 룡이 거주하는 촌이라 부른다.  마을에 내려서 여기서 랑아산으로 갈수있는가 물어보았더니 갈수없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멀다고 한다... 이미 반천의 시간을 허비하였으니 랑아산행은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이는 마을 뒷산을 올라 와룡산전경을 보기로 하였다.  마을에 들어서니 와룡산을 바라볼수있다는 작은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마을사람들이 여행의 편리를 위하여 돌을 쌓고 있었다.  장성같은 그 계단을 따라 올라보기로 하였다. 가까이에 갈수록 산봉우리는 하나의 보루같아 보였다.  보루꼭대기에서 바라본 와룡산.  다시 마을을 내려와서 보게된 매돌.  마을뒷산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바라본 풍경.  산등성이에 흩어져 있는 바위들...산은 생각보다 너무 가파로웠다.  산등성이를 오르면서 내려다본 풍경.  정상은 보이질않고 풀숲만 무성하다.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고... 오늘 왜 이렇게 힘들가...ㅋㅋㅋ  드디여 고생끝에 봉우리세개를 겨우 지나 정상에 올라 바라본 와룡산전경. 산이 가파로워 오르는 차길도 우불구불...  마을아래에 와룡산을 홍보하는 간판도 있었는데 아마 와룡산에는 호텔도 있고 오락시설도 구전한 풍경구였다. 그렇다고 그런걸구경하고싶은 생각은 없어 이렇게 맞은켠 봉우리에 올라 전경을 바라본다.  정상의 마른수풀-- 멀리서 보면 승냥이털같아 보였다.  산을 내리면서 바라본 연화산.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것같다.  마을가까이에 있는 벼랑.  멋진 바위  올라올때 바라본 풍경  마을어구에 이르러...  아까내가 올랐던 성벽쌓은 봉우리. 왼쪽골짜기를 타고 나는 주막집에 돌아갔다.  골짜기를 걸으면서 찍은 풍경.  머리만 쳐들고 길을 걷다가 길에 놓인 올가미에 걸려 허망 앞으로 엎어졌다. 참 여기사람들도 산짐승을 잡는가 보다.  우중충한 바위들... 저 산넘어 곧 옥황타이다.  산넘어 보이는 와룡산.  홀로선 봉우리가운데 동굴하나 있음을 발견. 그 봉우리를 올라 동굴속으로 들어가보았다. 한사람이 앉을수있는 크기의 동굴이였는데 안에는 말벌들이 윙윙 날아다녔다.  봉우리에 올라 바라본 동타의 두 정상. 어제 저 두 봉우리를 올랐었다. 내가 동타를 거쳐 협곡가까이에 갔다고 하니 주인장이 놀라 나보구 담도 크다고 한다. 마을사람들도 거기는 너무 험해서 조만에 가지 않는데 와룡산협곡에는 승냥이 세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ㅋㅋㅋ 승냥이가 있을줄은 내가 어찌 알리....   험악한 와룡산 협곡   옥황타의 정상도 보인다.  서남쪽풍경.  산을 내려올때 만난 산새. 내가 다가가도 달아날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흘동안 옥황타와 와룡산주위에 있으면서 정말 멋진 풍경들을 마음껏 구경하였다. 아마 여기는 나처럼 혼자다니는 여행자가 적은지 마을을 지날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이 일제히 나의 몸에 집중되였다. 그리고 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썬머런? 하고 직통적으로 질문하는데 때론 농촌사람들이 싱거워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대답하지 않을수는 없고 그래서 간단히 등산한다고  대답하고는 나혼자 씨엉씨엉 지나기도 했다...ㅎㅎㅎ.   이 며칠동안 사진도 너무 많이 찍어 인젠 용랑이 넘어나 더 찍을 방법이 없다. 래일은 현성에가서 카드도 더 마련해야지....  
281    태항산 동타(东坨)풍경 댓글:  조회:3135  추천:90  2008-06-05
 4월 14일 아침에 일어나서 마을뒷쪽켠 언덕을 올라보았다. 새벽부터 보슬비가 내려 동쪽산전체는 짙은 안개로 싸여있었다.    언덕우에서 내려다본 지란구촌마을.  아침시간을 타서 나는 천천히 벼랑길을 산책하였다. 오늘은 동타로 올라볼 생각에서였다. 지금 동타정상은 안개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다. 벼랑과 벼랑사이의 오솔길은 벼랑따라 오불고불 끝없이 이어졌다. 길이 있음을 확인하고 나는 저쪽벼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밥을 먹고 짐을 챙겼다.  내가 지나온 벼랑-- 저 낮은 벼랑한가운데 오솔길이 있었다.  비가 그치면서 안개도 서서이 사라졌고 동타의 산봉우리들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어제 내가 올랐던 옥황타의 전경. 이렇게 보니 옥황타정상의 평평한 언덕은 경사도가 심한 평원이였다.  가다가 길이 막혀 다시 작은 산을 넘으면서 보게된 바위.  산맥하나 가로 지나 동타쪽으로 갈수록 산은 더 험했다. 보이는 저 봉우리가 동타의 정상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저 벼랑을 올라갈수있었는지 상상이 가지를 않는다... 사실 오를때는 저게 정상인지를 모르고 편리한 골짜기만 찾아 오르다보니 오르게 되였던것이다. 몇번이나 벼랑을 만나서 서슴거리다가 용기를 내여서 등반절반 산행절반 된셈이다. 나 혼자 올랐을망정이지 옆에 사람이 있었다면 언녕 제지시켰을것이다.ㅎㅎㅎ  내가 지나온 성성이 바위-- 저 봉우리사이로 내가 지나왔다. 여기까지 올려면 엄청난 골짜기를 지나와야 했다.  아래로 내려다본 골짜기. 사실 신작로를 따라 걷다가 이 골짜기를 타고 직접 오를수도 있었다.  다시 바라본 내가 처음시작을 띤 벼랑길있는 벼랑. 저 산 넘어로 마을이 있다.  아침보슬비에 다분히 습기를 머금은 지란화. 돌틈에 자라서 더욱 신기했다.  오른켠 산등성이를 따라 여기까지 올라왔다.  마을 뒷쪽켠의 높은산--지금 내 발아래에 있다.  산밖은 산이라 아까보았던 병풍같은 산만 오르면 앞이 훤할줄을 알았는데 사실 웃쪽으로 더욱 더 엄청나게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옆으로 삐쭉삐쭉 바위들이 서있었다.  앞을 가로막은 병풍같은 벼랑.  벼랑은 저쪽으로 이어졌고 동굴이 있었다. 참 여기의 산은 동굴이 너무 많다. 매일마다 산행할적에 두세개는 무조건 만나게 된다.  저 동굴로 가려면 가시덤불을 헤쳐야 한다. 인젠 너무 가시덤불에 시달려 보기만 해도 두려워났다. 그래서 포기할수밖에... 산은 멋있지만 나무가 적다. 대부분이 사람키높이의 관목인데 가지마다 가시가 배여있어 옷을 입지않고는 전혀 지날수가 없다. 련 이틀 가시덤불을 헤쳤더니 내 손바닥에 가시가 들어박혀 아직도 아파난다...  위험을 무릅쓰고 방금 만났던 동굴이 있는 병풍같은 벼랑을 겨우내 올라서 첫번째 고봉에 올라서보니 저쪽으로 더욱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보이는 저 봉우리가 곧 동타의 정상이다. 저기까지 갈려면 아직 고생은 더 해야할것같다. 여기까지 오르는데 반나절 걸렸으니 배도 촐촐한지라 주인집에서 준 빵과 우유로 대충 요기를 하였다..  정상엔 바람이 세서 간식을 먹다말고 벼랑아래에 가서 조금 휴식한다음 나는 계속 길을 다그쳤다.  보이는 산맥은 내가 지나온 길이다.  드디여 동타정상아래로 왔는데 가까운데서 보니 아득히 높다. 문제는 저 벼랑을 또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가보아야 알수있는것이다...  지금 내 발아래로는 서북쪽켠으로 험악한 골짜기가 이어져 보는 사람이 아찔할정도이다. 저 대포같이 삐쭉이 나온 바위도 타고 싶지만 우선 정상을 올라보고 내려올때 다시 보자...  또하나의 벼랑에 가시덤불을 헤치고 간신히 정상에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확 티였다. 정상 동북쪽켠으로 엄청난 대협곡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아닌 와룡산전경이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방불케하는 와룡산의 대협곡을 보고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한층한층 쌓여놓은듯한 저 협곡사이의 벼랑들... 무엇이라 형용할수없는 감탄이 연신 입에서 뿜겨나왔다...  엄청난 벼랑이다. 벼랑저쪽산아래는 어딜가... 거기서 바라보면 더욱 험준한 벼랑일것이다.  세마리의 거대한 룡이 나란히 앞으로 엎드린 모양의 산체. 사진기로 이리대고 저리대면서 전체를 담아보려했지만 전혀 불가능했다.    협곡아래쪽  이어진 골짜기           동타정상아래의 바위모양  언덕넘어로 옥황타의 산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다시 그 왼쪽으로 저 산맥은 내가 지나온 산맥이다. 사실 산행에서 저런 능선을 걷는 재미가 가장 흥겹다.  동타정상에서 실컷 구경을 하고 나는 아쉬운대로 산을 천천히 내렸다. 하지만 지금 심정은 올라올때의 급한 그런 심정이 아닌 여유작한 모습이다. 정상까지 올라서야 볼것은 다보고 이젠 산책하듯 미세한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는 산행의 진미를 마음껏 향수하였다.  벼랑사이로 삐쭉이 나온 바위아래로 보이는 옥황타.  그리고 돌틈에 어여쁘게 피여있는 지란화  나는 여유작하게 가던길을 다시 돌아왔다.  발아래는 아까 내가 위험을 무릎쓰고 올랐던 병풍벼랑이다.  다시 벼랑을 타고 내려오다가 발견한 금전이 박힌듯한 바위  그리고 혹달린 바위  이번에는 나무물통같은 바위.  당금 떨어질것만 같은 바위.... 바위모양도 각양각색이라 현란하기만 하다...  벼랑아래 동굴로 내려가볼려고 시도 했지만 너무 가파로워 어찔방법이 없었다. 이럴때 등산용바줄이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ㅎㅎㅎ  칼로 베여놓은듯한 바위들.  다시보는 험악한 골짜기  저 벼랑가운데 끼여있는 언덕은 아까 내가 올랐던 언덕이고 오른켠벼랑뒤로 정상을 올랐었다.  오똑 선 바위.  산맥을 따라 마을뒷산밑까지 갔다가 너무도 험하여 포기... 오르는것도 문제지만 내리는건 더욱 큰 문제이다. 위험을 무릎쓰고 올랐으니 그길로 다시 내려갈수는 없어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만만해 보이는 골짜기를 선택해 조심조심 산을 내렸다.  절반 내려와서 내려다본 그저께 걸었던 황룡사로 가는 신작로. 다시 아침에 출발하였던 벼랑길을 걸으면서 쳐다본 바위.   저 골짜기는 내가 어제새벽에 올랐던 옥황타로 올라가는 골짜기였다. 련사흘채 매일매일 너무 멋진 산행을 하였다. 비록 몸이 피로해서 천근무게가 짓누른듯 지긋지긋해났지만 심정만은 너무 즐겁다.  태항산에서 일주일있으면서 나는 너무 지쳐 입술이 헤졌고 혀에 쓸까지 돋았다... 하지만 산행이 락이라고 생각하니 대수롭지를 않았다. 산은 고행을 해야만 즐거움을 느낄수가 있는것이다..  저녁에 피곤하였지만 나는 마을주변의 벼랑길을 산책하였다. 저녁노을에 불타던 산봉우리들이 서서히 어둠속에 사라지는 모습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리고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하였다....   산은 때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아침해빛에 찬란한 황금색을 발산하는 옥황타는 더욱더 멋졌다.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고도 숭고한 산이다..... 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때론 웅장하기도 아름답기도 쓸쓸하기도 환락에 젖기도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모두가 제 나름이겠지만 산은 여전히 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래일은 다시 남쪽켠으로 와룡산을 올라보고 싶다.
280    태항산 옥황타의 정상에서 댓글:  조회:2607  추천:92  2008-06-05
 4월13일 아침일찍 나는 옥황타로 올라가는 골짜기에 들어섰다. 골짜기를 얼마 올라가지않아 저수지하나가 있었다. 저수지넘어로 보이는 저 높은 산봉우리는 곧 동타의 정상이다. 래일은 저쪽 산을 올라보련다.  골짜기를 절반도 오르지못했는데 동녘하늘에 아침노을이 지기시작했다. 원래는 정상에서 일출을 보자던 계획이였지만 아침에 너무 늦게 떠나 산중턱에서 일출을 볼수있다면 다행이였다.  아침노을에 우중충한 산들이 더욱 신비하게만 보인다.  해는 이미 떠올랐으나 산에 가리워 찬란한 노을만 보인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곳에서 일출을 보려고 전력을 다해서 우로 뛰였다. 숨이차면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동녘하늘만 바라보았다. 심장은 쿵쿵 뛰였고 목구멍에선 겨불내가 확확~ 그러다가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면서 산을 톺았다. 드디여 작은 산봉우리 넘어로 보이는 찬란한 아침해살.....이만큼 볼수있는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ㅋㅋㅋ  해가 떠오르고 높게 올라갈수록 주위는 완전히 환해지면서 아침기운이 충만됐다. 멋진 바위하나가 홀로 산을 지켜서있었다.  길을 지키는 호랑이바위였다.  골짜기를 겨우내 빠져나와 다시 작은 산봉우리를 올랐을땐 주위의 산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오른켠 산맥을 따라 맞은켠산으로 직접 건너갈수 있을것같았지만 돌아올수있다면 다시 보자~  벼랑가의 오솔길-- 발아래는 천길벼랑. 이런길을 걷는 일이 가장 흥겨웠다.  산아래에서는 그렇게 높아보이던 저 봉우리가 지금 내 발아래에 있다.  옥황타언덕에 오르자마자 눈에 보이는게 불에타서 페허가 된 황량한 벌판이다. 하지만 새봄이라 파릇파릇 풀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백거이의 시가 생각난다. 离离原上草,一岁一枯荣, 野火烧不尽,春风吹又生... 언덕우의 저 풀들은 해마다 피였다가 시드는구나, 들불이 세다하지만 다 태울수가 없으니 봄바람이 불면 또 다시 재생하네.....  옥황타언덕을 걸으면서 바라본 동북쪽켠희미한 산맥들... 옥황타언덕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불타버린 재허에 가득 피여있었다.  언덕에는 키높이의 관목이 꽉 배여있어서 조금 올라서야 평평한 땅이 나타나면서 뒤로 산야가 한눈에 안겨온다. 저 두산사이 골짜기가 곧바로 내가 올라왔던길이다.  옥황타의 평평한 언덕은 불에 탔었지만 봄을 맞으며 배꽃들이 활짝피여있어 그래도 생기발랄하였다. 옥황타의 정상을 가자면 아직도 한동안의 거리가 되였다. 보이는 봉우리가 곧 정상이 된다.  활짝핀 배꽃들.  옥황타의 서쪽풍경. 옥황타에 올라서야 옥황타가 주위의 산보다 얼마나 높은지를 느낄수가 있었다. 해발 1008메터임.  정상에 있는 허스름한 옥황묘. 안에는 옥황상제를 모셨는데 술,과일들이 있었으며 담배를 향으로 대체한 흔적도 있었다.  옥황타의 뒷쪽은 험준한 벼랑이였고 두 봉우리사이에 험한 골짜기가 패워져 있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저 골짜기를 내려가서 호랑이굴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험하고 길을 잃기 십상인가 본다. 예전에 어떤 청년이 길을 잃어 보름만에 그 동굴에서 시체를 찾았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집주인이 절대 그쪽으로 내려가지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벼랑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가 인상적이다.  골짜기를 조금 내려가서 우로 쳐다보니 벼랑한가운데 동굴이 있었다. 안들어갈수는 없지...  벼랑가에 활짝핀 지란화.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한사람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만한 돌 틈새였다. 실한 사람은 절대 들어갈수가 없었다.  동굴아래에서 바라본 동굴웃쪽  동굴안에서 바라본 풍경. 웃쪽에 한사람이 누울만한 평평한 자리가 량쪽에 있었고 가운데는 방금 올라왔던 돌틈이 가로놓여져 있었다. 여기서 도를 닦을수있다면 좋겠다. 마침  여기는 사람이 오르지 못하게 하니 이처럼 풍경이 아름답고 한적한 곳은 아마 찾기 힘들것이다.우선 주위의 산들을 한고패 둘러본다음에 다시 생각해보자... 산에 왔을바에는 한곳에 조용하게 며칠을 묶고 싶은 생각도 없지않았다...  다시 골짜기 반대편으로 내려 낮은 언덕에서 동굴을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자칫 주의여겨보지않으면 절대 동굴이 있음을 알지 못할것이다.  옥황묘가 있는 봉우리.  옥황묘에서 동북쪽으로 또하나의 언덕이 이어졌고  그쪽켠에도 또 하나의 험한 골짜기가 있었다.  언덕을 지나 길에 놓여진 반석하나-- 가운데는 인위적으로 가쯘한 원형구멍을 뚫었는데 무엇을 할라고 저랬을가...  옥황타 동북쪽벼랑에서 내려다본 황룡사마을-- 옥황타정문이 있는곳이다. 어제 저 마을길목에서 관리원에게 제지당하여 산을 오르지 못했었다... ㅋㅋ 지금 내가 여기 정상에 있을줄은 생각못하겠지....ㅎㅎㅎ  정면쪽의 험준한 산맥들. 저 골짜기사일로 오불고불 오르는 길이 있다.  오른켠 산우의 평평한 언덕은 어제 내가 올랐던 산마루였다. 가시밭을 헤쳐 무지 힘들게 올랐던 산이다. 실은 오르는 길이 많았는데...  두번째 골짜기-- 정면에서 오르는 유일한 길이다. 사실은  여기로 올라왔더면 훨씬 멋진 일이였는데... 그리고 반대쪽으로 다시 맞은켠 산을 오르고... 어제 관리원이 산을 오르지 못하게 하여  부득불 오늘 새벽시간을 타서 남몰래 올라왔으니 여기로 정문을 내려가면 누가 지키지 않을가 걱정도 되였다. 하지만 산을 내리는 사람을 보구 뭐라 하겠나....ㅎㅎㅎ  무더운 날에 정상에는 해빛이 강하여 피할곳이 없어 이마엔 땀만 송골송골...그래서 조금 돌다말고 이내 골짜기를 따라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골짜기험한벼랑길을 다내려와서 우로 쳐다본다. 무더운 날이지만 골짜기안은 시원한 기운이 감돌아 한결 거뿐하였다.  아찔한 벼랑이 량쪽으로 쭈욱 하늘에 닿은 듯하였으니 말그대로 여기가 바로 진정한 일선천(一线天)이였다.  정상은 아득해보였고 역광에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그대로 형체를 드러냈다.  골짜기를 내려갈수록 벼랑이 더욱 넓어지면서 시야도 넓어져 천하가 한눈에 안겨오는듯.  또 하나의 길을 지켜서있는 호랑이바위.  이 봉우리 량쪽으로 두개의 험한 골짜기가 있었다.  웅장하고 깍가지른듯한 벼랑들.  옥황타와 이어진 산맥들.  산아래로 내려올수록 옥황타의 정상은 더욱 웅장해보였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풀들이 무성했고 배꽃들도 더욱 만발하였다.  다시 뒤를 돌아보면 ... 여기까지 내려와 다시 올라가려고 생각하였지만 다리가 후둘거려 단념할수밖에 없었다. 여기 산들은 너무 가파롭고 높아 정말 힘들었다. 산을 하나 넘는다는게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새벽 일어날때 사지가 쏴나고 근육이 아팠지만 그래도 흥이 도도...  태산에서는 밤중에 아래다리에 쥐가 올라 며칠 고생했었다.... 활짝 핀 무명꽃이 태양광선에 더욱 찬란하다.  옥황타정문에서 관리일군을 만날가봐 나는 산중턱에서 오솔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갔다가 결국은 또 가시덤불을 헤치게 되였다. 어제 가시덤불을 헤치고나니 옷이 찌져졌고 손과 팔이 가시에 상처투성이였다.  겨우내 덤불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면바로 어제 올랐던 그 평평한 산언덕이였다. 그래서 다시 옥황타벼랑아래로 길을 따라 순리롭게 산을 내렸다.  마을에 들어서기 직전.  마을어구에서 활짝핀 복숭아꽃사이로 보이는 산봉우리들.  저녁해는 뉘엿뉘엿... 해가지는 저 골짜기는 바로 아침에 내가 몰래올랐던 골짜기였다.  저녁기운에 산들은 더욱더 우중충보여 웅장함을 더 하였다.  이건 또 무슨 꽃일가... 보름후 내가 태산에 올랐을때 태산에도  무수한 이런꽃들이 피여나 산을 장식해주고 었었다.  노을진 서쪽 하늘은 우중충한 산봉우리에 가리워 더욱더 아름다웠다... 래일은 동타에 오르리라....
279    태항산 옥황타의 신비한 얼굴 댓글:  조회:2504  추천:87  2008-06-04
 4월 12일 황룡사에 갔다가 산중턱에서 비를 맞고 급히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에서 잠간 비를 그치고 주숙한곳으로 돌아갈려고 했지만 비온뒤의 풍경이 하도 멋져 다시 산하나를 더 오르기로 하였다. 비록 반나절 험한 산을 톺고나니 지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흥이 도도했다. 웃사진은 다시 낮은 산을 올라 바라본 동북쪽켠풍경이다.  산맥을 따라 길쪽으로 내려가니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우에서 바라본 남쪽켠 풍경. 이틀후 나는 저 벼랑가운데의 오솔길을 따라 험준한 동타를 등반하였다. 여기의 벼랑들은 대부분이 층차분명한 직선벼랑이였고 그 벼랑아래 잡초가 우거진곳으로 사처에 오솔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길이 막히면 부득불 가시가 돋은 관목을 헤치고 가고싶은 곳을 헤매야 했다.  우뚝솟은 선바위. 아래쪽 벼랑아래로 오솔길이 있었다.  바위에서 다시 서쪽으로 바라보니 웅장한 옥황타가 한눈에 안겨온다. 방금 비가와서 정상은 안개가 자욱하여 더욱더 신비감을 보여주었다.  이 멋진 풍경을 눈앞에두고 사진한장 남겨야지...  오늘 나의 가이드를 해주느라 수고했으니 애에게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찍다말고 아래를 보니 바지가랭이가 찢어진것을 보고 나혼자 키득키득 웃으니 무슨 일인줄 모른다. 오늘 내 뒤를 따라다니기가 무지 힘들었던 모양이다.바지가랭이가 찢어질 정도로...ㅎㅎㅎ  내가 그곳을 가리키며 뭐가 보인다고 했더니 그제야 알아차린듯 잽사게 두 다리를 꼬고는 배를 끓어안고 웃는다. 그 기회를 잡아 사진을 찍어 참으로 즐거운 한순간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영원한 기억속에 남겼다...  서로 재밋게 웃다말고 옥황타정상을 바라보니 삽시에 짙은 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짙은 구름은 다시 왼쪽으로 쏠리고 그 뒤로 태양빛이 비추어 아름다운 황혼을 연출하고 있었다. 구름이 한쪽으로 밀치는것을 보아 아마 정상은 세찬 바람이 부는듯.  다시 구름이 옅어지더니 석양빛에 하늘이 더욱 환하다.  석양은 하늘 가운데의 구름을 비추어 천천히 황혼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있었다.  구름이 옅어지다가도 다시 몰키는데 이번에는 저쪽 하늘에서 왼켠을 에돌아 다시 정상쪽으로 기여가는듯.  동쪽켠의 산정상은 석양을 맞아 황금색을 연출했다.  카메라를 당겨보니 정상의 보일듯말듯한 안개가 더욱더 신기하기만 하다.  다시 옥황타의 정상은 더욱 짙은 구름에 쌓였고 왼쪽으로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불타고 있었다.  참으로 보는사람의 넋을 빼앗아가는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성하기도 한 모습이다.  불타는 노을  옥황타북쪽의 노을정경.  바위우에 새겨진 뱀이 둥지를 튼듯한 화석.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 사로잡혀 나는 그대로 바위에 우두커니 앉아서 한껏 감상하였다.  한참 기다려 다시 정상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한마리 룡이 산을 타고 내려오는듯한 모습....  룡은 바로 저 골짜기사이의 황룡사를 찾아가는게 아닐가....  황룡사쪽의 풍경  다시 반대쪽인 남쪽풍경.  동쪽벼랑  남쪽켠벼랑넘어로 한줄기의 노을이 비춘다.  360도를 돌면서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는데 갑자기 북쪽하늘에 한가닥의 밝은 빛이 화살처럼 옥황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게 무엇일가... 놀랍기도 신비하기도 하여 두눈이 놀란 표정을 지면서 멍하니 바라보니 빛이 움직인다. 분무식비행기였다.  비행기는 옥황타정상을 빛을 그으며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냈다.  하늘에 그린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 대자연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연출에 인위적인 저 비행기의 연기는 태양빛을 받아 더욱더 광채를 부여했다. 나 만이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수 있었다는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만약 내가 사진기로 이 한시각을 남겨두지않았더라면 영원히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다시 재현시킬방법이 없었을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언어는 영원히 자신의 내심세계를 그대로 방영할수가 없다.  언어는 단지 비유를 들어 뜻을 가리킬뿐 뜻 자체의 진면모는 영원히 나타낼수없는것이다. 역사적으로 장자나 석가모니같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두가 그 비밀으 알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49년동안 설법을 했지만 자기는 한마디의 법도 설한것이 없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의 뜻에 또 다른 의미가 섞여있지만 말과 뜻의 차이점에서 좋은 례제가 된다. 장자도 언어에 대해서 한편의 기록을 남겼는데 한번 읽어볼필요가 있다...  비행기는 옥황타정상을 완전 그대로 곡선을 그으며 지나가는데.... 후에 한생각이지만 사진을 두장찍어 합성했더라면 사람의 얼굴도 선명하게 나왔을텐데...  비행기는 옥황타정상을 지나 서남쪽으로 류성처럼 사라진다... 하늘이 나를 도왔을가 아까부터 사진기 빠뜨리가 신호를 울리더니 이 사진을 찍고 더 찍을수가 없었다.... 노을은 지고 대지는 서서히 어둠이 다가왔다... 멋진 작품을 찍었다는 생각에 산을 내려 돌아오는 내내 흥분되여 연신 감탄소리만 나왔고 애의 어깨를 도닥이며 오늘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더니 그 애도 자기는 여기에서 살면서도 처음 이렇듯 아름다운 정경을 보았다면서 자랑스런 표정을 지었다....  래일새벽은 옥황타정상을 오르고 모레는 동타의 저 정상을 올라보리라....
278    태항산 황룡사의 풍경 댓글:  조회:2024  추천:64  2008-06-04
사진에 보이는 농가원간판은 엊저녁 내가 머물렀던 주인집이였다. 여름철엔 玉皇坨로 유람오는 사람들이 무지 많단다. 그래서 이 마을엔 세집이나 농가원을 꾸리고 있었다. 말그대로 농촌사람들이 먹는 토종음식이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아침(4월12일)에 일어나니 간밤에 비가 왔었다. 청신한 기운에 멋진 풍경에 기분이 상쾌하기만 하다. 원래는 새벽에 옥황타로 올라갈려고 했는데 피곤해서 늦잠을 자다보니 오늘은 일정을 다시 계획해야 했다. 낮에는 방화기간이라고 옥황타를 일률로 오르지못하게 길목마다 방화원이 길을 지키고 있었으니 새벽에 몰래 올라갈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의 말로는 얼마전 옥황타정상에 큰 불이나 백여년이 된 아름드리소나무를 모조리 태워버렸단다. 혹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을가봐 신경을 곤두세워 입산히는 자에게는 무조건 200원 벌금이란다... 하지만 고생끝에 찾아온 나에게 그 말이 들릴리가 없었다. 그래서 엊저녁 주위를 한바퀴돌아 올라갈수있는 길을 이미 정탐해놓았었다. 그런데 어제 하루종일 걷다보니 너무 지쳤고  또 이른새벽 어슴프레 비소리도 들었으니 차라리 늦잠이나 자보자해서 하루일정을 미룰수밖에 없었다. 마침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집에 초중다니는 애가 있어 오늘 나의 가이드로 하여 황룡사로 가보기로 하였다. 거기에 옥황타의 정문이 있는곳이기도 했다.  황룡사로 가는 신작로-- 간밤에 비가와서 촉촉한 길을 걷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도 주위에 엄청난 높이의 산들이 우중충 서있어서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선경이 따로 없었다.  산등성이의 보루같은 바위.  굽인돌이 몇개를 지나 마을이 하나 나타났으며 마을어구의 골짜기쪽으로 괴상한 바위들이 사처에 널려있었다. 그래서 길을 가다말고 낮은 언덕으로 산을 가로타기로 하였다. 신작로를 걸어보았자 굽인돌이에 아득한 산봉우리밖에 없으니 조금 높은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는게 더욱 좋았다.  산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풍경.  내가 지나온 굽이굽이 신작로.  동쪽켠의 산정상에는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였다.  산을 오르면서 만난 멋진 바위.  언덕넘어 보이는 옥황타정상.  다시 산을 내려 룡담을 지나 곧 황룡사에 도착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상속의 정경과는 너무나 달리 황룡사는 인적없는 황페한 민간절이였다.  황룡사의 쓸쓸한 정경. 사람이 없다는 말은 미리 들었지만 정작 와보니 사람욕심이 그렇지를 않았다. 스님한분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만.... 옛날엔 스님 한분이 계셨다고 했다.  황룡사를 지나 조금 더가서  또 하나의 마을이  나타나면서 웅장한 옥황타의 정면이 한눈에 안겨왔다. 가운데 골짜기사이 비좁은 일선천을 따라 가파른 정상까지 오른다는데 무지 자극적일듯...  활짝 핀 복숭아꽃과 배꽃사이로 보이는 옥황타정상  황룡사마을 북쪽풍경. 마을입구에도 호림방화인이 길을 지키고 있어 산을 오르지못하게 하였다. 사진 몇장찍는다는 이유를 대고 조금 가보기로 허락받고 호기심에 못이겨 가만히 산을 조금 오르다가 아래에서 발견하고 우리보고 고함치는 바람에 부득불 다시 내려올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다가 바위아래 돼지굴을 지날때였다. 바위가 조금 높아 둔중한 등산신을 신은채로 쿵하고 내리 뛰였더니 돼지가 놀라 멱따는 소리와 함께 한키높은 울타리를 화다딱 뛰여넘어 정신없이 달아났다.....하하하...개가 급하면 담장을 뛰여넘는다는 말이 맞다. 그리고 동물들의 심성은 너무 예민하고 연약하여 불안함을 알수있었다. 사람에게도 서로 부동한 심성의 차이가 있다. 인생을 살아도 불안한 사람이 있고 고요한 사람이 있다. 나의 조카 하나가 한때는 특수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에는 지력이 조금 차한 애들이 모였는데 매번 갈때마다 느끼는 점이 원시부락에 전혀 보지못한 외계의 사람들을 보고 놀라서 아우성치는듯한 그러한 정경이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늘 불안과 근심에 싸여 산다. 조금만 사건이 일어나면 정신이 황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한편 그게 무슨 큰 일이냐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 이것이 마음의 定力차이리라... 불경에 이르기를 세상에 우뢰소리를 들어도 놀라지 않는 두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도를 성취한 아라한이고 하나는 사자의 왕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가지자면 불교명상에서의 선정공부가 아마 가장 최상의 약일것이다.... 돼지사건이 너무 뜻밖에 이러난 일이라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 걱정이 앞섰다. 큰일 났구나! 돼지주인이 발견하면 큰 일날텐데...여기는 방언이 많아 말도 잘 통하지않는데....어찌할가? 그렇다고 돼지를 붙잡을수는 없었다.  36계 줄행랑이라고 우선 피하자. 그래서 급기야 슬금슬금 뒤를 돌아다보면서 마을 변두리를 통해 오던길쪽으로 빠져나왔다. 멀지않는곳에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다행히 눈치는 못차렸다... 가슴이 쿵덩쿵덩 뛰였다. 나를 따르면 애도 기겁해서 내뒤를 급히 따른다.... 얼마안되여 저쪽에서 돼지쫓는 아우성소리가 났는데 그땐 이미 멀리 왔으니 내가 상관할바가 아니였다.... ㅋㅋㅋ 나도 이럴때가 있나보다....ㅎㅎㅎ  오늘 황페한 황룡사를 보았고 옥황타도 올라갈수가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황룡사웃쪽으로 길을 택해 옥황타옆면을 올라보기로 하였다. 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을지도...  산언덕을 하나 넘으면서 바라본 우리가 걸었왔던 쪽 풍경.  우불구불신작로와  아래쪽 마을이 한눈에 안겨온다.  옥황타의 옆면. 가까이 갈수록 산이 험해지면서 옥황타의 정상이 아득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가시덤불을 헤치며 무작정 올랐다. 나를 따르는 애도 산에서 자랐지만 종래로 이런 길을 걸어본것 같지 않았다....ㅎㅎㅎㅎ  벼랑에 피여있는 芝蘭花. 여기에는 사처에 지란꽃이 피여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마을이름이 곧 芝蘭溝였다.아마 지란화가 많아서 그렇게 부른것같다.  벼랑을 오르다 발견한 말벌둥지.  벼랑중턱에 바위가 패워 길이 나져있었다. 그 벼랑중턱에서 바라본 옥황타의 전경. 절반은 오른것같은데 아직도 아득한 저 정상.  작은 산봉우리에서 만난 신기한 바위.  마지막봉우리를 오르니 조금 경사진 평지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라 밭도 일구었는데 아마 산골안이라 땅도 귀한곳일것이다. 밭둘레에는 복숭아나무가 봉우리를 한창 터뜨리고 있었다.    저 골짜기사이로 우불구불신작로가 에돌면서 만성현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만성현까지는 60키로.  옥황타옆벼랑아래로 폭포도 있었지만 흔적뿐 물은 없었다. 아마 장마철에는 무지 굉장할듯.   폭포가 떨어지는 골짜기. 물살에 바위가 씼겨 하얀 옥돌이 그대로 드러났다.  골짜기넘어로 보이는 동쪽켠의 높은산.  아마 저 산꼭대기도 올라가야 할듯-- 이틀후  나는 정말 저 산꼭대기를 올라 와룡산의 옆모습을 마음껏 감상하였다.   폭포아래서 옥황타정상이 아득히 보인다.  오늘 나의 가이드-- 新毅라고 부르는 아이인데 참으로 착한 애였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니 벼랑가로 다가서는 내 뒷모습까지 찍어줬다.  벼랑끝에 서서.  아찔한 벼랑아래로 하얀 돌들이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산을 내리는 길-- 오래동안 사람발길이 닿이지 않아 그대로 수풀이 우거졌는데 걷기가 너무 흥겨웠다.  산을 내리면서 담근 제비꽃.  지란화도 만발한 봄.  삼형제바위. 생각같아선 저 벼랑도 오르고 싶었지만 너무 지쳐서 그저 생각뿐이다.  다시 작은 산봉우리를 톱으면서 발견한 동굴어구의 괴상한 돌.  새끼호랑이 한마리가 집을 지키는듯.  산을 내리면서 뒤돌아본 옥황타옆벼랑-- 내가 한심도 하지 어찌 저 가파로운 벼랑을 오를수가 있단 말인가... 아래쪽 하얀돌들이 있는곳이 곧 폭포가 있는 곳이다. 거이 닿았다고 생각했던 폭포는 결국 옥황타절벽의 절반이나 되나말가....  옥황타왼켠 벼랑-- 왼쪽으로 산맥하나가 이어진듯했는데 거기로 오르기도 힘겨울것이다.  옥황타왼쪽과 이어진 산맥. 우중충 산봉우리들 기복을 이루고 있었다.  산맥을 타고 가자면 저 봉우리들을 지나야 하니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아니 거이 불가능한 일이다....  만발한 복숭아꽃을 보고 흥에 겨워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몰키면서  비방울을 떨어뜨렸다.  비가 온다고 사진을 아니 찍을수는 없지....  꽃은 산을 더 랑만적인 기분을 만들어주는듯.  비가 온다고 애가 나를 급히 부른다. 빨리 내려가자고....  비가 오면서 산은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참이나 달려서 마침내 마을가에 도착. 이마을에 애의 친척이 있다고 거기에가서 비를 피하자고 한다.  밭을 가는 농부-- 아마 저 집은 아들없이 딸만 둘인듯. 여기서는 소로 밭갈이를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보습을 끈다. 비방울이 떨어지는데도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듯 여유작하게 밭을 간다. 아니 바로 옆에 집이 있으니 근심할리가 없지...  마을에 들어서서 지붕넘어로 보이는 우중충산봉우리들. 집울안에서 바라본 풍경. 여기는 문을 나서면 보이는게 산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너무나 순박했다. 외지에서 왔다고 하니 열정적으로 맞이했고 밥을 먹었느냐 어디를 갔댔느냐 물어보더니 애의 입에서 아침에 나와서 대충 우유에다 팔보죽을 먹었다는 말을 듣고 다짜고짜 만두에 채를 꺼내놓았고 라면까지 끓여주었다.... 참 이번 40일 여행에 이러한 마음고운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그래도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더 많은것같다.  그 마음고운 집에서 라면 한그릇 게눈감추듯 먹고나니 비도 그쳤고 해님이 방긋  산을 비춰 찬란한 금황색을 반사하였다. 나는 급기야 하던 말을 마치고 빨리 나가보자고 애를 재촉했다....  방금 비가 그친 주위의 풍경. 청신한 공기가 기분좋게 얼굴을 스친다...  비를 맞은 과일나무들이 더욱 더 싱그러워 참신한 풀냄새와 흙냄새를 풍겨 기분이 정말 상쾌하였다.  그 나무사이로 빠금히 보이는 저 산벼랑은 더욱 정겨워보였다.  비를 맞아 수줍은듯 물기를 함뿍 머금은 복숭아꽃. 활짝핀 복숭아꽃을 보니 사랑에 도취되여 얼굴이 도화색같다는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ㅋㅋ  멋진 풍경을 눈앞에 두고 시골길을 걷는 재미란 이루 말로 형용할수가 없었다.....  내가 머물렀던 집을 가려면 아직도 가로지난 산맥두개는 넘어야 하고 우불구불 긴 굽인돌이도 세개는 더 지나야 했다. 아직은 시간도 이르니 차라리 아까처럼 산을 가로타고 풍경하나라도 더 감상하고 싶어 지쳐서 싫어하는 애들 억지로 달래서 다시 산을 오르기로 했다. 길떠날때 절대 않떨어진다고 그 애의 다짐을 받았지만 여기서 집도 멀지않으니 혼자서 먼저 집을  가라고 하니 싫다고 한다. 아마 그 넘도 나를 따라다니는게 싫지는 않는가 본다. ㅋㅋㅋ 결국은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진 자연의 신비함을 볼수있었던 행운을 가졌다. 노력끝의 보람이라고 할가 아니면 즐겨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찾아오는 것일가....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 그 멋진 사진은 따로 올리련다....
277    복숭아의 고향 -- 하북성 만성현과 태항산풍경 댓글:  조회:2734  추천:83  2008-06-03
태항산산행: 만성현에서 옥황타로 4월 11일 오전 나는 만성현에서 태항산맥의 옥황타로 향하였다.    만성현에서 본 길쓰는 기계. 길가는 사람에게 먼지를 뒤집어쓰게 했지만 기계를 만든사람이 머리도 잘썼다...ㅋㅋ    만성현을 조금벗어나니 고속도로와 남수북조(南水北調)라는 어마어마한 공정이 한창 진행중이다. 남수북조란 남쪽의 물을 북쪽으로 옮긴다는 말로 아마 하북성북쪽켠은 물수요량이 턱없이 부족한듯하다.  공정주위에는 뽀얀 돌가루들이 사처에 휘날려 앞을 분간하기 힘들정도였다. 여기서부터 족히 십여리는 돌을 캐서 자갈을 만드는 작업이 사처에서 진행되였는데 대부분의 산은 저렇게 뭉청뭉청 잘리워 나가고 있었다. 인간이 생활의 편리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면 결국은 그 해가 자신한테 돌아올련만.... 기어코 자연을 파괴하여야만 잘 사는것일가....  휘날리는 돌가루를 먹으며 십여리달려서야 맑은 하늘이 조금 보이는듯했다. 여기의 산들은 대부분이 저렇게 돌산이였다.   마을을 하나 지나게 되는데 길량켠에 시장으로 붐샜고 짐을 꽉 채운 중형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을 메우고 있었다. 이 길은 하북성과 산서성을 이어놓는 유일한 교통로로서 항상 이렇게 붐빈다고 한다. 그리고 산서쪽에 광산이 많으니 대형트럭이 쉴새없이 오가서 보는사람이 불안해났다....   길가에 앉아 남새파는 로인.  차가 많으니 교통사고도 많이 나는곳. 이틀전 대형트럭이 길가의 저 집을 들이박았다고 한다. 다행히 집에 사람이 없어서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저런것이 맑은 하늘 청천벼락이 아닐가.... 여행초기부터 이러한 사고가 눈에 들어와 조금은 불안했고 또 각별히 신경을 써서 사고가 없도록 하였다..... 여행초기 작은 사고로부터 돌아오기 얼마전 사천성 지진소식도 접하고보니 이번 여행은 사실 인생의 무상함을 철저히 느껴보았던 인상깊은 여행이였다... 그리고 태산에서의 봉변은 다시는 그러한 위험한 짓을 하지않으리라 결심도 하게 되였다...   무상한 인생-- 이 사진은 늘 오만한 나 자신을 귀띰해주는 가장 좋은 작품이였다.  태항산은 일제때 유명한 항일근거지로 수많은 열사들을 배출시켰다. 소학교때부터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랑아산다섯용사의 사적지인 랑아산은 여기서 30키로밖에 되지않는다.  여기사람들이 메고다니는 독특한 모양의 광주리.  만성현은 전국에서 유명한 복수아고향이다. 4월은 마침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계절이였다. 길량옆부터 산등성이까지 여기는 전부 복숭이밭이였다.    복숭아뿐만아니라 감의 고향이기도 하다.  감나무골짜기가 18키로라고 했으니 볼만도 하겠다....  그리고 마반감의 고향이라....  복숭아밭에서 꽃분을 옮기는 농민  감골짜기에서 계속 북쪽으로 갈수록 드문드문 낮은 산들이  점점 높아지기시작하면서 유람구간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산은 련화산이라고 하는데 역시 유람구였다.  생각같아선 당장 오르고 싶었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였다. 돌아올때 들러보기로 하고 나는 계속 앞으로 달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또 와룡산이란 간판까지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본 와룡산. 저 깍가지른듯한 벼랑들을 보자부터 가슴이 뛰였고  당장 뛰여가보구 싶었다. 이번 산길에 저 산도 무조껀 올라보리라...  산골짜기를 꺽거 반시간쯤 걸으니 골짜기속으로 마을이 나타났고 복숭아꽃도 만발하였다.  다시보는 길가의 복숭아밭.  후에 지도를 찾아보니 이 산은 와룡산에서 뻗은 산맥의 꼬리였다. 말그대로 룡의 꼬리부분이였다.  손가타라는 마을옆에 멋진 벼랑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험한 산세들이 줄줄이 이어졌는데 길을 걸으면서 보는것만으로 만족했다. 아니 저산 하나하나를 다 오르다보면 지쳐죽을것이다....ㅎㅎㅎ  얼마안가서 해가 쫙 비추면서 우중충한 바위들이 금빛을 뿌리고 있었다.  하늘만 쳐다보니 뒤덜미가 뻗뻗해났다.  또 마을 하나가 나타났고 길가에 선바위가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내물이 흘러 작은 호수를 이루었는데 맑은 물에 고기들이 노는것까지 볼수가있었다. 사람이 와도 피하지 않는걸보아서 여기사람들은 고기를 잡지않는 모양이다. 후에 알았지만 정말 그랬다. 어린애들이나 간혹 잡는듯했지만 연변의 사람들처럼 고기잡이에 흥이 없었다...  못가에 작은 묘 두개가 보였는데 적어놓은 시가 인상적이다. 천평산우에 백운천이라  구름은 무심하고 물은 한가하기만하다. 하필이면 산을 내려 세속에 달려가서 파도만 보태주는가... 또 하나는    不觉鸟声喧,岂知人事静.城外桃李园, 山中兰叶径. 새소리의 떠들썩함을 모르고 어찌 인간사의 조용함을 알수있으리, 성밖에는 도리원이고  산중에는 란초잎길이다. (도리원은 桃李满天下 라는 의미같다. 란초는 군자를 이미하니 산중에 군자가 산다는 의미겠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까치들이 겂도 없이 가까이에서 날고 있었다.  무더운날에 해빛을 쬐이며 걷기란 참 힘들었다. 그것도 혼자몸이 아닌 삼사십근되는 짐을 지고... 반천을 걸으니 잔등에도 이마에 땀도 송골송골... 지칠대로 지쳐 가다가는 앉고 조금 쉬다가는 또 가고... 어쩌다 도로옆에서 샘물을 만나면 그것보다 더 기쁜일이 없었다. 산이 멋있고 말고 그저 보는것만으로도 만족이였으니 산을 오를 념은 하지 못하였다. 발이 뜨거워서 신끈을 풀고 물속에 발을 담구니 쩡 하고 시려난다....  여기 산골짜기의 시내물은 대부분이 말랐는데 한구간한구간씩 땅속을 솟구쳐 흐르다가 간곳없이 사라지기도 하였다.  굽인돌이 하나 돌아서 어마어마한 벼랑이 앞을 막고 서있었다.     산등성이에 돌을 쌓아 집을 지어살고 있었다. 걸어온 뒷쪽을 바라보면....  마을 하나를 지나면서 우중충 하늘을 찌른 뒷산풍경.    그 옆으로 우중충 하늘을 찌른 산봉우리.      길은 그 산봉우리를 에돌아 굽이굽이 돌았는데 갈수록 장관이였다. 나는 여기에 머물어 더 가고싶지않았다. 마을사람들과 물어보니 옥황타는 여기서 멀지 않단다. 하지만  현재 방화기간이라서 산을 못오르게 한단다....  앞 굽인돌이를 돌면 산을 오르는 뒷길이 있는데 림장원에서 파견한 사람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제야 아까 대통로에서 골짜기를 들어오는 길어구에서 문을 지키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어찌하면 될가?.... 차라리 여기서 머물자. 우선 눈앞의 풍경에 이미 만족했으니 옥황타는 래일 방법을 대여 돌아보면 될것이다....       옥황타전경--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있었다... 이틑날 아침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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