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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경행(經行)은 어떤 수승한 이익이 있는가? 댓글:  조회:1513  추천:69  2008-12-03
4) 경행(經行. 行禪)은 어떤 이익이 있나요? 경행을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이로움이 있다. 첫째, 먼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둘째, 생각을 가라앉힐 수 있다. 셋째, 병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음식을 소화시켜줄 수 있다. 다섯째, 오랫동안 선정에 머무를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움직이면서 삽니다. 가고 서고 눕고 구부리고 돌고 허리를 펴고 등등으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알아차림을 가지고 움직여야 수행입니다. 알아차림을 하면 몸과 마음이 가볍고 평온하며,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리는 수행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일상에서 어디를 갈 때, 마음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몸에 있지 않고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 마음이 현재를 놓치고 미래로 달아나버립니다. 그리고 도착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망상을 하면서 들뜨거나 근심걱정을 하면서 걸어갑니다. 이것은 불선심의 상태입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망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를 갈 때 걸어가는 자신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가면, 마음이 현재에 있는 것으로 마음이 들뜨지 않고 안정되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고 도착하여 일을 착오없이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상태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 저절로 가장 바르고 지혜로운 행위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움직일 때도 마음을 현재의 몸에 붙여 알아차림을 이어가야 합니다. 수행자가 선원에서 경행을 하면서 움직임에 대한 알아차림을 숙달하면 실제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일 때도 마음이 몸에 붙어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는 좌선과 경행을 1:1의 비율로 수행하도록 시간표가 짜여져 있어 그대로 수행을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비밀이 경행에 있다고 할 만큼 경행은 중요합니다. 경행은 움직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므로 순간순간의 집중력을 길러줍니다. 경행으로 생긴 집중은 좌선으로 생긴 집중보다 잘 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행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수행하게 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오직 경행으로 몸의 근력을 키우고, 소화를 돕고, 혈액순환을 돕고 체력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탁발이나 전법여행을 나갈 때도 알아차림을 가지고 경행을 하였답니다. 그만큼 경행은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행과정입니다. 선원에서 경행하는 법은,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바르게 서서 손은 마주 잡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현재 수행하려는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려 보고, 몸의 긴장을 풀고, 서 있는 자세를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죽 알아차려 내려가서, 마음이 발바닥으로 가면, 이제 한 발을 내밀면서 발에 마음을 기울여 발바닥의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잘 이어지면 한 발 전체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잘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들고 놓음으로 좀더 세밀하게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벽에 가까이 가서는 섬을 알아차리고, 또한 몸을 회전하면서는 돌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한 순간도 마음을 몸에서 떠나지 않도록해서 마음이 현재를 알아차리는 일을 계속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경행요령: 1.7 경행(걷기 명상) 부처님께서 경행할 때 생기는 사마디가 좌선에서 생기는 사마디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과정과 함께 머물 수 있다면 앎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걸을 때 느낌을 수행의 대상으로 하라. 마음속으로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근육에서 어떤 느낌이 느껴지는가? 또한 마음속에서는 어떤 느낌이 느껴지는가? 경행을 할 때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마음이 대상을 택하도록 하고, 그것을 알기만 하라.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마음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알기만 한다면 경행 중에 어떤 대상을 잡아도 좋다. 대상으로 가지 말고 대상이 나에게 오게 하라. 수행하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탐욕, 성냄, 기대 혹은 혐오가 있는가? 수행하고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이 수행하고 있음을 알면서) 그 마음 안에 있는 자신의 마음을 못 본다면, 그리고 자신의 마음가짐, 자신의 사고방식, 의견, 견해, 편견과 관념을 못 본다면,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주의의 50%를 몸에 그리고 50%를 마음에 두라. 점점 100% 마음 쪽으로 가라. 발바닥에 주의를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걸음을 주 대상으로 삼아라. 마음의 활동이 나타나면 주의를 마음으로 향하게 하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것을 잡고 있으라. 그것이 깨끗해질 때까지 그것을 다루어라. 그 다음에 마음에 무언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걸음으로 주의를 되돌려라. 그리고는 주의를 마음으로 돌려서 마음을 관찰하라. 어떤 강력한, 압도하는 마음상태가 나타나면, 멈추어서 그것을 다루라. 의자에 앉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앉아서, 그것을 다루는데 필요한 시간 동안 주의의 100%를 그것에 기울여라. 출처: 심념처 주: 경행은 좌선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말할수있다.앉기전에 경행부터 먼저 하라. 내가 얼마 앉아있을수있다면 적어도 그만치는 경행을 한다음 앉는 것이 좋다.경전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다.한가한 비구는 하루종일 경행하거나 좌선을 하면서.... 낮에도 밤에도 초저녁에도 늦은 밤에도 그리고 새벽에도....
335    경행(经行)은 이렇게 해보세요. 댓글:  조회:1523  추천:51  2008-12-03
  5) 경행은 이렇게 해보세요.   ** 경행 **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섬의 자세 몸의 자세를 바르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선다. 손은 앞으로 깍지를 끼거나,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는다. 혹은 뒤로 뒷짐 지듯이 잡는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가는 방향은 일직선으로 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섬을 한 뒤에 돌아서서 다시 그 길로 돌아온다. 섬의 자세에서는 먼저, (1) 마음이 머리에서 발까지 몸의 느낌을 죽 느끼면서 서있는 몸의 전체적인 느낌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긴장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2) 이제 마음이 발에 오면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2) 걸을 때 단계별로 나누어 한다. 이 경우에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만 알아차린다. (1) 한 발을 들어서 놓으면서 발바닥이 바닥에 "닿음"을 알아차린다.(1분절) 오른발 왼발이 닿을 때 닿는 것 하나만 마음이 직접 느끼면서 알아차린다. 이것이 잘 진행되면 그 다음은 좀 더 길게 한 발 전체를 알아차린다. (2) "오른 발, 왼발"의 나아감을 알아차린다.(1분절) 먼저 움직임을 알고, 다음 느낌을 알아차린다. (3)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린다.(2분절) 이 때에는 발을 들 때의 가벼움, 놓을 때의 무거움을 알아차린다. (4)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린다.(3분절) 시작과 중간과 끝의 전체를 알아차린다. 또한 발을 들 때의 화대, 움직일 때의 풍대, 내려놓을 때의 수대, 닿았을 때의 지대 등을 알 수 있다. (5) "뒤꿈치 들고, 들어서, 앞으로, 놓고, 누름"을 알아차린다.(5분절 알기) 더 집중을 하고자 할 때는 발의 움직임 하나를 5분절로 나누어서 할 수 있다. (6)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갈 때 가려는 의도, 설 때 서려는 의도, 돌 때 돌려는 의도를 알아차린다. (7) 집중이 잘 되어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차츰 발목, 무릎, 넓적다리, 허리의 움직임까지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경행을 여러 단계로 알아차리지만, 이것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자신의 알아차리는 힘만큼 알아차립니다. 수행자가 한번에 너무 많은 대상을 다 알려고 욕망을 일으키지 않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힘을 주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긴장하면 마음이 몸에 붙어있지 못하고 들떠서 달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려지는 만큼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입니다. 길을 빨리 걷거나 혹은 운동장에서 걷기 운동을 할 때에는 다리의 동선(풍대)을 주시하는 것이 알아차림의 연속에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집중이 되면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선원에서 경행을 할 때 시선은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2-3미터 전방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알아차리기에 알맞게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은 일정한 거리를 왕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섬과 도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상기의 위험이 있을 수 있으며, 마음에 힘을 너무 주었기 때문에 좌선하려고 앉으면 잠이 올 수도 있습니다.   3) 돌아 설 때 이 때에도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1)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모두 알아차린다. (2)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린다. 경행을 하면서 생긴 집중력은 좌선을 해서 생긴 집중력보다 강하여 집중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이익이 있습니다. 먼저 경행으로 어느정도 알아차림을 유지하다가 좌선에 들어가면 좌선에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잘 유지됩니다.   경행은 노력이 부족하여 게으르거나 졸음이 많은 수행자들에게 해태와 혼침을 극복하는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경행요령: 발바닥의 단단함 따뜻함 차가움 촉촉함을 알아차립니다.   발다닥을 떼었을 때의 가벼움을 알아차립니다.   발바닥을 떼었을 때 다른 발의 묵직함과 진동을 알아차립니다.   많이 알아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알아차립니다.   돌때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생각이 떠오름을 알아차립니다.   회전할 때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속도가 늦춰짐을 알아차립니다.   머리에 열감이 있을음 을 알아차립니다.   마음을 내어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알아차립니다.   마음을 전면에 내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름을 알아차립니다.   집중을 발바닥으로 부터 몸의 전면에 둠을 알아차리니다.   손에 따뜻함과 촉촉함을 알아차립니다.   발목의 굽혀짐과 진동과 종아리의 딱딱함을 알아차립니다.   경행을 끝내고 컴에 앉음을 알아차립니다.   경행을 끝내려는 생각과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생각함을 알아차립니다.     function showSideViewForScrapInfo(curObj, userid, planetUserid, targetNick) { var sideView = new SideView('nameContextMenu', curObj, userid, planetUserid, '\uBA85\uC0C1', targetNick, '15yIn', '', '\u6CD5\u6B78(\uBC95\uC758 \uADC0\uC758\uCC98)', "unknown"); sideView.hideRow("member"); sideView.hideRow("planet"); sideView.showLayer(); } function winPopup() { window.open('http://cafe.daum.net/_service/home?grpid=11bn7', 'DaumPlanet', 'width=936,height=672,resizable=yes,scrollbars=yes'); return; } 출처 :옥련암 원문보기 글쓴이 : 산빛노을(원광) //
334    화산 绝境 댓글:  조회:2431  추천:63  2008-11-25
                                           
333    98) 염처경(念處經) 7년동안 아니 잠간동안이라도 4념처를 .... 댓글:  조회:2367  추천:53  2008-11-25
第十 念处经 98) 염처경(念處經) 7년동안 아니 잠간동안이라도 4념처를   第十 念处经   北传中阿九八、念处经(大正藏一、五八二页。)巴利长部二二、大念处经(南传七、但其十八--二一本经缺,其他全合。)  本经为得一乘之究竟解脱涅盘而说四念处者。   如是我闻。  一时,世尊往库卢国康摩萨单摩之聚落。  尔时,世尊呼诸比丘曰:诸比丘!  彼等比丘应世尊言:世尊!   世尊乃曰:  诸比丘!于此,为有情之净化、愁悲之超越、苦忧之消灭、正道之获得、涅盘之作证,此有一法,即四念处也。  四者何耶?曰:  比丘!于此,于身随观身,热心而注意,甚深持念,于世间除去贪忧。  于受随观受,热心而甚注意,有持念,于世间除去贪忧。  于心随观心,热心而甚注意,有持念。于世间除去贪忧。  于法随观法,热心而甚注意,有持念,于世间除去贪忧。  [如是谓四念处]。   诸比丘!如何是比丘于身随观身耶?  诸比丘!于此,比丘或行于闲林、或行于树下、或行于空闲处,结跏趺坐,以身正直,当前丘念。彼念而出息,念而入息。或长出息,知予长出息;或长入息,知予长入息。或短出息,知予短出息;或短入息,知予短入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出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入息。又修观予令静止身行而出息。或修观予令静止身行而入息。  诸比丘!恰如精巧之辘驴工或辘驴工之弟子,或长旋转而知予长旋转,或短旋转而知予短旋转,  如是,比丘或长出息而知予长出息;或长入息,知予长入息。或短出息,知予短出息;或短入息,知予短入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出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入息。又修观予令静止身行而出息。或修观予令静止身行而入息。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则于身随观身也。   诸比丘!复次,  比丘或行,而知予在行;  或立而知予在立;  或坐而知予在坐;  或卧而知予在卧。  如彼身之所示,其知如是。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诸比丘!复次,  比丘是往、是归,善识之;  前观、后观,善识之;  欲屈、欲伸,善识之;  欲持大衣、衣钵,善识之;  在啖,饮、嚼、味,善识之;  大小便时,善识之;  在行、住、坐、眠、寤、言、默,善识之而住。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复次,诸比丘!  比丘善观此身,从头顶至足底止,皆为皮肤所覆,其中充满种种不净,即:于此身有发、毛、爪、齿、皮、肉、筋、骨、髓、肾、心、肝、肋、脾、肺、肠、肠系膜、胃、粪、脑、胆汁、胃液、脓、血、汗、脂、泪、膏、唾、涕、关节滑液、小便也。  诸比丘!恰如有两口之袋,以充[填]种种谷物,即:稻、粟、绿豆、豆颗、胡麻、米。以此,具眼者出而观察此是稻、此是粟、此是绿豆、此是豆颗、此是胡麻、此是大米也。  如是,比丘善观此身,从头顶至足底止,为皮肤所覆,其中充满种种不净,即:此身有发、毛、爪、齿、皮、肉、筋、骨、髓、肾、心、肝、肋、脾、肺、肠、肠系膜、胃、粪、脑、胆汁、胃液、脓、血、汗、脂、泪、膏、唾、涕、关节滑液、小便也。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复次,诸比丘!  比丘以此身,其如所置、如其所示,以观察界,即:此身有地界、水界、火界、风界。  诸比丘!恰如熟练之屠牛者或屠牛者之弟子,于衢屠牛,坐干路口,一分一分以割其体。  如是,比丘以界观察此身,其如所置、如其所示,以观察界,即:此身有地界、水界、火界、风界也。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复次,诸比丘!  譬如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或经一日、或二日、或三日,膨胀而变色青黑,分化腐烂,彼致念此身:观此身亦如是法,成为如是,难免如此之状况。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复次,诸比丘!譬如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或被鸟、兀鹰、鹫野狗、豺或被种种虫类啄啖,彼致念此身:观此身亦如是法,成为如是,彼难免如是之状况。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复次,诸比丘!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骸骨之连锁,尚带血肉,被筋连缚。又,连锁之骸骨(已经)肉隤血污,被筋连缚。又,血肉皆无,唯筋连缚。又,骨节解散,散乱诸方,手骨、足骨、胫骨、腿骨、腰骨、脊骨、头骸骨等,各于异处。彼致念此身:此身亦如是之法、成为如是,彼难免如此之状况。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复次,诸比丘!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其骨白似螺色,经年堆积,又腐烂而为碎,彼致念此身:观此身亦如是之法,成为如是,彼难免如此之状况。  如是,于内身随观身、于外身随观身、于内外身随观身而住。于身随观集法、于身随观灭法、于身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身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受随观受而住耶?  于此,比丘受乐受而知:予受乐受;  受苦受而知:予受苦受;  受不苦不乐受而知:予受不苦不乐受;  受物质之乐受而知:予受物质之乐受;  受非物质之乐受而知:予受非物质之乐受;  受物质之苦受而知:予受物质之苦受;  受非物质之苦受而知:予受非物质之苦受;  受物质之不苦不乐受而知:予受物质之不苦不乐受;  受非物质之不苦不乐受而知:予受非物质之不苦不乐受。  如是,于内受而随观受,于外受而随观受,于内外受而随观受。于受而随观集法、于受而随观灭法、于受而随观集灭之法而住。若彼现受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受随欢爱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心随观心而住耶?  于此,比丘有贪欲心而知:有贪欲心;  无贪欲心而知:无贪欲心;  有嗔恚心而知有嗔恚心,  无嗔恚心而知无嗔恚心;  有愚痴心而知有愚痴心;  无愚痴心而知无愚痴心;  摄心而知摄心;  散心而知散心;  高广心而知高广心;  非高广心而知:非高广心;  有上心而知:有上心;  无上心而知:无上心;  定心而知:定心;  非定心而知:非定心;  解脱心而知:解脱心;  非解脱心而知:非解脱心;  如是,于内心随观心,于外心随观心,于内外心随观心而住。于心而随观集法,于心而随观灭法,于心而随观生灭之法而住。彼现心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心随观心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法随观法而住耶?曰:  于此,比丘于五盖法随观法而住。  比丘如何于五盖法随观法而住耶?诸比丘!于此:  比丘内存有爱欲而知:予内存有爱欲;  若内无爱欲而知:予内无爱欲;  未生之爱欲生起者,其知之;  已生之爱欲舍离者,其知之;  所舍离之爱欲于未来不生者,其知之;  又,于内有嗔恚而知:予内有嗔恚;  内无嗔恚而知:予于内无嗔恚;  有未生之嗔恚生起者,其知之;  有已生嗔恚之舍离者,其知之;  所舍离之嗔恚于未来不生者,其知之;  于昏沉、睡眠、掉悔及疑,亦如是。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五盖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五取蕴之法随观法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五取蕴之法随观法而住耶?于此,  比丘于:有如是色、有如是色之集、有如是色之没;有如是受、有如是受之集、有如是受之没;有如是想、有如是想之集、有如是想之没;有如是行、有如是行之集、有如是行之没;有如是识、有如是识之集、有如是识之没。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五取蕴之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六内外处之法随观法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六内外处之法随观法而住耶?  于此,比丘知眼、知色、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耳、知声、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鼻、知香、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舌、知味、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身、知触、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意、知法、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已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六内外处之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七觉支法随观法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七觉支法随观法而住耶?诸比丘!于此,  比丘内有念觉支而知:予内有念觉支;  内无念觉知而知:予内无念觉支;  若未生念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念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内有择法觉支而知:予内有择法觉支;  内无择法觉支而知:予内无择法觉支;  未生之择法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之择法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精进觉支而知:予内有精进觉支;  内无精进觉知而知:予内无精进觉支;  若未生精进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精进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喜觉支而知:予内有喜觉支;  内无喜觉知而知:予内无喜觉支;  若未生喜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喜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轻安觉支而知:予内有轻安觉支;  内无轻安觉知而知:予内无轻安觉支;  若未生轻安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轻安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定觉支而知:予内有定觉支;  内无定觉知而知:予内无定觉支;  若未生定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定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舍觉支而知:予内有舍觉支;  内无舍觉知而知:予内无舍觉支;  若未生舍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舍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七觉支之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四圣谛法随观法而住。  比丘如何于四圣谛法随观法而住耶?诸比丘!比丘于此:  如实知:此是苦;  如实知:此是苦之集;  如实知:此是苦之灭;  如实知:此是致苦灭之道。  如是,于内法随观法而住、于外法随观法而住、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于法随观灭法、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四圣谛法随观法而住。   诸比丘!此等四念处如是修习七年者,彼于二果中可预期一果,即:  于现法得究竟智、又,若有依者,则不还位也。  虽不至七年、六年、五年、四年、三年、二年、或一年,修习此四念处者;  虽不至一年,于七个月修习此四念处者,彼于二果中可预期一果:  于现法得究竟智,若有依者,则不还位也。  虽不至七月,实于六月、五月、四月、三月、二月、一月,或半月!  虽不至半月,仅七日修习此四念处者,彼于二果中可预期一果:  即于现法得究竟智。又,若有依者,则不还位也。   如此说:诸比丘!于此,为有情之净化、愁悲之超越、苦忧之消灭、正道之到达、涅盘之作证,有此一法,即四念处也。是缘此而说之也。  世尊如是说已,彼等比丘欢喜信受世尊之所说。         98) 염처경(念處經) 7년동안 아니 잠간동안이라도 4념처를 닦는다면   (九八)中阿含因品念處經第二(第二小土城誦) 我聞如是 一時。佛遊拘樓瘦。在劍磨瑟曇拘樓都邑 爾時。世尊告諸比丘。有一道淨眾生。度憂畏。滅苦惱。斷啼哭。得正法。謂四念處。 若有過去諸如來.無所著.等正覺悉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若有未來諸如來.無所著.等正覺悉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我今現在如來.無所著.等正覺。我亦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 云何為四。觀身如身念處。如是觀覺心法如法念處。云何觀身如身念處。 比丘者。行則知行。住則知住。坐則知坐。臥則知臥。眠則知眠。寤則知寤。眠寐則知眠寤。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正知出入。善觀分別。屈伸低昂。儀容庠序。善著僧伽梨及諸衣鉢。行住坐臥。眠寤語默皆正知之。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生惡不善念。以善法念治斷滅止。猶木工師.木工弟子。彼持墨繩。用拼於木。則以利斧斫治令直。如是比丘生惡不善念。以善法念治斷滅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齒齒相著。舌逼上齶。以心治心。治斷滅止。猶二力士捉一羸人。處處捉旋。自在打鍛。如是比丘齒齒相著。舌逼上齶。以心治心。治斷滅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念入息即知念入息。念出息即知念出息。入息長即知入息長。出息長即知出息長。入息短即知入息短。出息短即知出息短。學一切身息入。覺一切身息出。學止身行息入。學止口行息出。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離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離生喜樂無處不遍。猶工浴人器盛澡豆。水和成摶。水漬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離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離生喜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見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定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定生喜樂無處不遍。猶如山泉。清淨不濁。充滿流溢。四方水來。無緣得入。即彼泉底。水自涌出。流溢於外。漬山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定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定生喜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無喜生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無喜生樂無處不遍。猶青蓮華。紅.赤.白蓮。水生水長。在於水底。彼根莖華葉悉漬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無喜生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無喜生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於此身中。以清淨心意解遍滿成就遊。於此身中。以清淨心無處不遍。猶有一人。被七肘衣或八肘衣。從頭至足。於其身體無處不覆。如是比丘於此身中。以清淨心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念光明想。善受善持。善憶所念。如前後亦然。如後前亦然。如晝夜亦然。如夜晝亦然。如下上亦然。如上下亦然。如是不顛倒。心無有纏。修光明心。心終不為闇之所覆。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善受觀相。善憶所念。猶如有人。坐觀臥人。臥觀坐人。如是比丘善受觀相。善憶所念。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此身隨住。隨其好惡。從頭至足。觀見種種不淨充滿。我此身中有髮.髦.爪.齒.麤細薄膚.皮.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猶如器盛若干種子。有目之士。悉見分明。謂稻.粟種.蔓菁.芥子。如是比丘此身隨住。隨其好惡。從頭至足。觀見種種不淨充滿。我此身中有髮.髦.爪.齒.麤細薄膚.皮.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觀身諸界。我此身中有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猶如屠兒殺牛。剝皮布地於上。分作六段。如是比丘觀身諸界。我此身中。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觀彼死屍。或一.二日。至六.七日。烏鴟所啄。豺狼所食。火燒埋地。悉腐爛壞。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骸骨青色。爛腐食半。骨璅在地。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離皮肉血。唯筋相連。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骨節解散。散在諸方。足骨.膞骨.髀骨.髖骨.脊骨.肩骨.頸骨.髑髏骨。各在異處。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骨白如螺。青猶鴿色。赤若血塗。腐壞碎粖。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若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身如身者。是謂觀身如身念處 云何觀覺如覺念處。 比丘者。覺樂覺時。便知覺樂覺。覺苦覺時。便知覺苦覺。覺不苦不樂覺時。便知覺不苦不樂覺。覺樂身.苦身.不苦不樂身。樂心.苦心.不苦不樂心。樂食.苦食.不苦不樂食。樂無食.苦無食.不苦不樂無食。樂欲.苦欲.不苦不樂欲。樂無欲.苦無欲覺.不苦不樂無欲覺時。便知覺不苦不樂無欲覺。如是比丘觀內覺如覺。觀外覺如覺。立念在覺。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覺如覺。若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覺如覺者。是謂觀覺如覺念處 云何觀心如心念處。 比丘者.有欲心知有欲心如真。無欲心知無欲心如真。有恚無恚.有癡無癡.有穢污無穢污.有合有散.有下有高.有小有大.修不修.定不定。有不解脫心知不解脫心如真。有解脫心知解脫心如真。如是比丘觀內心如心。觀外心如心。立念在心。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心如心。若有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心如心者。是謂觀心如心念處 云何觀法如法念處。 眼緣色生內結。比丘者。內實有結知內有結如真。內實無結知內無結如真。若未生內結而生者知如真。若已生內結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耳.鼻.舌.身。意緣法生內結。比丘者。內實有結知內有結如真。內實無結知內無結如真。若未生內結而生者知如真。若已生內結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內六處 復次。比丘觀法如法。比丘者。內實有欲知有欲如真。內實無欲知無欲如真。若未生欲而生者知如真。若已生欲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瞋恚.睡眠.調悔。內實有疑知有疑如真。內實無疑知無疑如真。若未生疑而生者知如真。若已生疑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五蓋也 復次。比丘觀法如法。比丘者。內實有念覺支知有念覺支如真。內實無念覺支知無念覺支如真。若未生念覺支而生者知如真。若已生念覺支便住不忘而不衰退。轉修增廣者知如真。如是法.精進.喜.息.定。比丘者。內實有捨覺支知有捨覺支如真。內實無捨覺支知無捨覺支如真。若未生捨覺支而生者知如真。若已生捨覺支便住不忘而不衰退。轉修增廣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七覺支。若有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法如法者。是謂觀法如法念處 若有比丘.比丘尼七年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置七年。六五四三二一年。若有比丘.比丘尼七月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置七月。六五四三二一月。若有比丘.比丘尼七日七夜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置七日七夜。六五四三二。置一日一夜。若有比丘.比丘尼少少須臾頃立心正住四念處者。彼朝行如是。暮必得昇進。暮行如是。朝必得昇進 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念處經第二竟(三千一百三十七字) 中阿含經卷第二十四(八千六百九字)(第二小土城誦)   98) 염처경(念處經) 제 2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檢磨瑟曇)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제도하며, 고뇌를 없애고 슬픔을 끊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도(道)가 있으니, 곧 4념처(念處)이니라.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 무소착(無所着) 등정각(等正覺)께서는 다 5개(蓋)1) 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覺支)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無上正盡之覺)을 얻으셨다. 또 미래의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도 다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으로서, 나도 또한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身]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이고, 이와 같이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며,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이니라. 어떤 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다니면[行] 다시는 줄을 알고, 머물면[住] 머무는 줄을 알며, 앉으면[坐] 앉은 줄 알고, 누우면[臥] 누운 줄 알며, 자면 자는 줄 알고, 깨면 깬 줄 알며, 자다 깨면 자다 깨는 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內身]을 몸[身]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外身]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明]이 있고 통달함[達]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고 남[出入]을 바르게 알고, 굽히고 펴거나 낮추고 우러르는 것을 분별하고 잘 관하여 몸가짐과 거동에 질서가 있고, 승가리(僧伽梨)와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머물거나 앉고 눕거나 자고 깨거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다 바르게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善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나니, 마치 목수나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나무에 퉁기고는 곧 날카로운 도끼로 쪼아 곧게 다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나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나약한 한 사람을 붙잡고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고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숨[入息]을 생각하되 곧 들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고, 날숨[出息]을 생각하되 곧 날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며, 들숨이 길면 곧 들숨이 긴 줄을 알고, 날숨이 길면 곧 날숨이 긴 줄을 알며, 들숨이 짧으면 곧 들숨이 짧은 줄을 알고, 날숨이 짧으면 곧 날숨이 짧은 줄을 알며, 온몸으로 숨을 들이쉬는 것을 배우고, 온몸으로 숨을 내쉬는 것을 배우며, 몸의 행[身行]을 그치고 숨 들이쉬는 법을 배우고, 입의 행[口行]을 그치고 숨 내쉬는 법을 배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목욕하는 도구를 만드는 어떤 사람이 그릇에 가루비누[?豆]를 담아 물과 섞어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물에 가져다 담그면 그 물이 윤택해지는데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산의 샘물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고 충만하게 흘러 넘쳐 사방의 물이 흘러들어갈 길이 없으면, 곧 그 샘 밑바닥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물은 밖으로 흘러 넘쳐 산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되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기쁨[喜]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樂]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밑에 있으면, 그 뿌리와 줄기와 꽃과 잎은 모두 촉촉하고 윤택하며 두루 충만하게 되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 속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뜻을 터득하여 두루 충만하게 성취하여 노닐면, 청정한 마음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7주(?)나 8주 되는 옷을 입으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그 몸을 감싸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청정한 마음이 온몸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생각하여 잘 받아 지니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여, 앞에서와 같이 뒤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뒤에서와 같이 앞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낮에와 같이 밤에도 또한 그러하고 밤에와 같이 낮에도 또한 그러하며, 아래서와 같이 위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위에서와 같이 아래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뒤바뀌지 않고, 마음에 얽매임 없이 광명심을 닦으면 마음은 끝내 어둠에 덮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觀相]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더러운 것으로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 털 손톱 이 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 가죽 살 힘줄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지라 밥통 똥 골 뇌수[腦根] 눈꼽 땀 눈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쓸개 오줌이 있다.' 마치 그릇에 몇 가지 종자(種子)를 담은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분명히 보나니, 곧 벼나 조의 종자나 갓 무우 겨자의 종자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고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한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 털 손톱 이 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 가죽 살 힘줄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지라 밥통 똥 골 뇌수 눈꼽 땀 눈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쓸개 오줌이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空界] 의식의 요소[識界]가 있다.' 마치 백정이 소를 잡아 껍질을 벗겨 땅에 펴고 그것을 여섯 동강으로 가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한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의식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저 송장이 하루 이틀, 혹은 엿새나 이레가 되어 까마귀나 소리개[?]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타고 땅에 묻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한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반쯤 남은 뼈사슬이 땅에 뒹구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이 가죽과 살과 피가 분리되어 오직 힘줄만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마디가 분리되어 여러 곳에 흩어져 발뼈 장딴지뼈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어깨뼈 목뼈 머리뼈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가 마치 소라[螺]처럼 희고 집비둘기처럼 푸르며, 피를 칠한 것처럼 붉고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면, 이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 안다. 즐거운 몸[樂身] 괴로운 몸[苦身]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不苦不樂身]과 즐거운 마음[樂心] 괴로운 마음[苦心]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不苦不樂心]과 좋아하는 음식[樂食] 괴로운 음식[苦食] 괴롭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음식[不苦不樂食]과 즐거운 무식[樂無食] 괴로운 무식[苦無食]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식[不苦不樂無食]과 즐거운 욕심 괴로운 욕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욕심과 즐거운 무욕각[樂無欲覺] 괴로운 무욕각[苦無欲覺]도 또한 그러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각[內覺]을 각 그대로 관하고, 바깥 각[外覺]을 각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각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성냄[?]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과 어리석음[癡]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더러움[穢]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것과 모임이 있고 흩어짐이 있는 것과 낮춤이 있고 높임이 있는 것과 작음이 있고 큼이 있는 것과 닦고[修] 닦지 않음과 정[定]하고 정하지 않은 것도 또한 그러하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해탈한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마음[內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바깥 마음[外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마음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눈은 색을 연(緣)하여 안의 번뇌[內結]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結]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약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은 법을 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안의 6처(處)이니라.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욕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성냄[瞋?] 수면[睡眠] 들뜸[掉悔]도 또한 그러하며, 안에 진실로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의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5개(蓋) 이니라.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염각지(念覺支)가 있으면 염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없으면 염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염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택법(擇法) 정진(精進) 기쁨[喜] 쉼[息] 정(定)도 또한 그러하며, 비구는 안에 진실로 사각지(捨覺支)가 있으면 사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사각지가 없으면 사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사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7각지(覺支)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7년 동안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念處)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現法)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餘]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7년 6년 5년 4년 3년 2년 1년은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7개월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7개월 6개월 5개월 4개월 3개월 2개월 1개월은 그만두고,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이레 낮 이레 밤이나 6 5 4 3 2일은 그만두고 하루 낮 하룻밤도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물러, 아침에 이렇게 행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승진(昇進)하게 될 것이요, 저녁에 이렇게 행하면 아침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염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137자이다. 『중아함경 』 제24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609자이다.]       1) 범어로는 pannca varan ni이며, 5장(障)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심성(心性)을 장애하여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하는 5법(法)을 말함. 첫째 탐욕개(貪欲蓋)로서 5욕(欲)에 집착하기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둘째 진에개(瞋?蓋)로서 성냄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로서 마음이 흐려지고 몸이 둔해짐으로 인하여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넷째 조희개(調戱蓋)로서 마음이 들뜨고 희동함 때문에 심성을 장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의개(疑蓋)로서 결연한 의지가 미약하여 법에 후퇴함으로써 심성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한문출처 : 중화전자불전협회(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국역출처 : 동국역경원 전자불전연구소 한글대장경 ----------------------------------------------------------------------------------  
332    대비사의 하루 댓글:  조회:2431  추천:66  2008-11-23
대비사에서의 사흘은 나에게 너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대비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두타행을 할수있는 신성한 수행도량이다.  스님들이 돈을 받아서는 않된다는 등 여덟가지 엄격한 규율은 불교수행의 참다운 도량이다. 아직도 세상에 이러한 신성한 도량이 있다는게 참으로 충격적이다. 두타법이 있는한 정법은 이 세상에 머물수 있다는 한마디가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大悲寺常住要求    1、 不捉金钱戒。    2、 日中一食。    3、 行脚。    4、 乞食。    5、 不接客僧礼。    6、 一切供养归常住。    7、 三衣钵不离身(十八种物齐备)。    8、 不化缘、不求人。      注:在本道场修行者,要求做到,听话、干活!                      大悲寺住持释妙祥法语:     修行容易受戒难  不受戒律魔一般   守住戒相心坦然   提木叉保解脱船    愿汝成真出家汉  清静无为虚空般   高尚品德如青莲   行解渡众大法船상세한 정황은 인터넷에서 대비사를 검색해보면 알수있다.  http://www.suyuan.org/
331    대비사의 아침 댓글:  조회:2365  추천:69  2008-11-13
                         
二九. 清净经 17. 청정경(淸淨經) --我所制衣 불설장아함경 제 十二권제 二분 청정경(淸淨經) 제 十三이렇게 내가 들었다.어느 때 부처님은 가비라국의 면기(緬祇) 우바새의 동산에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계셨다.때에 사미(沙彌) 주나(周那)는 파파(波波)국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가사와 바루를 가지고 가비라국의 면기 동산으로 나아가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서서 아난에게 사뢰었다.“저 파파성 안에 있는 니건자(尼乾子)는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각각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서로 맞대고 헐고 욕하면서 상하의 분별도 없고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그 지견(知見)을 다투어 ‘나는 이것을 아는데 너는 그것을 모른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하여 앞의 것으로써 뒤에 붙이고, 뒤의 것으로써 앞에 붙이며, 뒤바뀌고 어지러이 얽히어 어떤 일정한 법칙이 없어 서로 ‘내가 하는 것은 묘하고 네가 하는 말은 그르다. 너에게 의심이 있거든 마땅히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대덕(大德) 아난이여,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나라 사람들은 이 다투는 것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아난은 주나 사미에게 말했다.“우리는 할 말이 있어 세존께 여쭈려 한다. 이제 너와 함께 나아가 이 사실을 세존께 여쭈어 보자. 만일 세존께서 어떤 가르침이 계시거든 우리는 다 같이 받들어 행하자.”그 때 사미 주나는 아난의 말을 듣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아난은 세존께 여쭈었다.“이 사미 주나는 파파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친 뒤 가사와 바루를 가지고 이곳에 와 제 발에 절하고 제게 말했습니다. 파파국에 있던 니건자는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각각 서로 다투고 있다 합니다. 그들은 서로 맞대고 헐고 욕하면서 상하의 구별도 없답니다.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 그 지견을 주장하고 있답니다. ‘나는 이것을 아는데 너는 그것을 모른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앞의 것으로써 뒤에 붙이고 뒤의 것으로써 앞에 붙이어, 뒤바뀐 소견이 어지러이 얽히어 어떤 일정한 법칙이 없답니다. ‘내 말은 옳고 네 말은 그르다. 너는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물으라’고.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파파 국민들은 이 다툼을 듣고 걱정을 한다고 합니다.”세존은 주나 사미에게 말씀하셨다.“그렇다. 주나야, 저 그른 법 가운데는 족히 들을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삼마아삼붓다[三耶三佛]의 하신 말씀이 아니다. 마치 썩은 탑에 색칠하기 어려운 것처럼, 저들에게는 스승이 있다고 하지만 그는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또 그들에게는 법이 있다고 하지마는 그것은 다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족히 들을 것이 못되고, 그것으로는 번뇌를 떠날 수가 없다. 그것은 삼마아삼붓다의 하신 말씀이 아니어서,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저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따르지 않고 삿된 소견을 버리며 바른 소견을 행할 때, 주나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의 스승의 법은 마땅히 그 가운데서 행할 만한데 왜 버리느냐.’하고, 그 때 그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도(道)를 잃어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는 비록 법이 있지마는 그것은 진정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족히 들어 행할 만하고 또 번뇌를 떠나게 할 수 있으면 그것은 삼약삼붓다의 말씀일 것이다.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저 모든 제자들이 이 법 가운데 있어서 부지런히 닦지도 못하고 성취하지도 못해 평등한 도를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갈 때,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들에게 와서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마땅히 그 가운데서 행할 만한데 왜 그것을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느냐.’하고, 그 때 그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진정한 도를 보아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주나야, 저들에게는 스승이 있어도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다시 법이 있다 하지마는 그것은 다 진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은 족히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또 그것은 번뇌를 떠나게 하지도 못해 삼약삼붓다의 말씀이 아닌 것은 마치 썩은 탑은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제자로써 법 중의 법을 성취하고 그 행을 순종하면서 모든 삿된 소견을 일으킬 때 주나야,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말하기를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은 옳다. 이제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 이러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道果)를 성취하리라’ 하고, 만일 그 제자가 그 말을 믿어 받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함께 도를 잃고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이 진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은 진정하여 족히 들을 만하고 또 번뇌를 떠날 수 있으면 그것은 삼약삼붓다의 말씀으로써 마치 새 탑은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제자로서 법 중의 법을 성취하고 수순(隨順)하고 수행하여 바른 소견을 낼 때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너의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너의 행하는 것은 옳다. 이제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 이러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의 세계에서 도과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자. 만일 그 제자가 그 말을 믿어 받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다 바른 소견으로서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혹 어떤 도사(導師)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있게 하고 혹 어떤 도사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없게 한다. 어떤 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있게 한다고 하는가. 주나야, 도사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 한지 오래지 않았는데 그 법은 구족하고 범행(梵行)은 청정하다. 여실한 진요(眞要)를 펴서 나타내지 못하고 그러나 도사는 어느새 멸도(滅度)에 든다. 그 때 그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어 다 근심스리 말한다. ‘우리 스승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 한지 오래지 않았는데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은 구족했다. 그러나 여실한 진요는 끝내 펴서 나타내지 못하고 이제 도사는 갑자기 멸도에 드셨다. 그래서 우리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타나 그 제자를 걱정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없게 하는 것이라 하는가. 도사가 세상에 나오매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은 구족하며 여실한 진요를 널리 편 뒤에 도사가 바야흐로 멸도에 들므로 그 제자들은 다 수행할 수 있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스승은 세상에 나와 성도 한지 오래지 않다.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은 구족 하여 여실한 진요를 널리 펴셨다. 이네 도사가 갑자기 멸도 하시더라도 우리 제자들로 하여금 다 수행하게 한다.’ 이것을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오매 제자가 걱정이 없다 하는 것이다.”부처님은 다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주나야, 범행을 성취하는 지(支)라는 것은 이른바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지 않으면 이것을 범행지(梵行支)의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면 이것을 범행지의 구족만(滿)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으면서도 모든 제자가 이직 그 훈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범행을 구족하지 못하고 안락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아직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아직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異論)이 있어 일어났을 때에는 법다이 가서 그것을 멸하지 못하고 아직 그 변화로 신통증(證)을 이루지 못했으면 이것을 범행지의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그 이름도 널리 퍼지어 모든 제자는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이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이미 자기의 이익을 거두었고 또 법을 받아 분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있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다이 가서 그것을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이루었으면 이것을 범행지의 구족만이라 한다.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또한 오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비구니가 그 교훈을 받지 못하고 편안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며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이 있어 일어났을 때 능히 법으로써 실답게 멸하지 못하며 변화가 없어 신통증을 이루지 못하면 이는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도 오래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면 모든 비구니가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이 구족하며 안온한 곳에 이르러 자기의 이익을 거두며 또한 능히 법을 받아 분별하고 연설하며, 이론이 있어 일어나면 능히 법다이 멸하며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증을 이루었으면 이를 범행지의 구족만이라 한다. 주나야, 모든 우바새, 우바이가 널리 범행을 닦고 내지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성취함도 또한 이와 같다.주나야,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지 않고 그 명문(名聞)이 없고 이양(利養)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의 구족만이 아니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으면서 명문과 이양이 다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의 구족만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문과 이양이 다 구족하더라고 모든 비구의 명문과 이양이 구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문과 이양이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고 모든 비구 중도 또한 구족하면 그것은 범행지의 구족만이다. 비구니 중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주나야, 나는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이름은 널리 퍼졌으며 나의 모든 비구들은 이미 나의 가르침을 받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얻었고 다시 능히 법을 받아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다이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이루었다. 모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도 또한 그러하다. 주나야, 나는 그로서 널리 범행을 유포하고, 내지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이루었다. 주나야, 일체 세간의 모든 도사로써 그 명문과 이양을 얻는 것이 나 여래, 지진, 등적각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다. 주나야, 모든 세간의 모든 무리들로서 그 명문과 이양이나 무리들과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 ???????????????????????????????????????????????????????????????????????????????????? 주나야, 만일 바로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하고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그 때 세존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울두람자(鬱頭籃子)는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한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다는 것과 같다’고. 모든 비구들이여, 저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을 끌어 비유로 하는 것이 이와 같다. 주나야, 만일 바로 말하고자 한다면 보고도 보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인가. 너는 마땅히 바로 말하라. 일체 범행은 청정구족하여 펴서 보이고 흘러 퍼지는 것이니 이것을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주나야, 저 서로 계속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여 하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가운데의 범행은 낙(酪)과 소 가운데서 제호이니라.” ??????????????????????????????????????????????????????????????????????????????????그 때 세존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나는 이 법 가운데서 몸소 스스로 증명을 얻었다. 이른바 四념처(念處), 四신통, 四의단(意斷), 四선(禪), 五근(根), 五력(力), 七각의(覺意), 현성, 八도(道)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다툼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정법에 있어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히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었다 하자.  ‘저이가 말한 구절은 옳지 않고 그 뜻도 옳지 않다.’고 하면 비구는 그 말을 듣거든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여러분,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한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내 뜻은 이러하다. 너의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그래서 너의 글귀가 이겼고 너의 뜻도 이겼다’고 한다면,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그르다고도 말고 옳다고도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고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그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다툼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바른 법 가운데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히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할 때 그 중에 어떤 비구가 있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자. ‘저이가 말한 글귀는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그 뜻은 바르다’고. 비구는 그 말을 듣거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그리고 마땅히 그 비구에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만일 그 비구가 곧 대답하되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네 글귀는 이러하다. 네 글귀가 낫다.’그 비구는 이렇게 말할 때 비구는 또한 말하기를 ‘이것은 옳다고 할 수 없고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하고,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연구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할 것이요, 서로 싸움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한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할 때에 그 중에 어떤 비구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하자. ‘저이가 말하는 글귀는 바르지마는 뜻은 바르지 않다.’고 한다면 비구는 그 말을 듣거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너의 뜻이 이겼다’고 하거든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고 그치게 하고 또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비구는 다 함께 화합하여 싸움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한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 또 어떤 비구가 설법할 때에 그 중에 어떤 비구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하자. ‘저이의 말하는 글귀도 바르고 뜻도 또한 바르다.’고 하거든 비구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그르다고 하지 말고 마땅히 그를 칭찬해 말하라.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다’고.그러므로 비구들이여, 十二부경(部經)에 대하여 자기 몸소 진리를 얻어 마땅히 널리 흘러 퍼뜨리라. 一은 관경(貫經) 二는 기야경(祇夜經) 三은 수기경(手記經) 四는 게경(偈經) 五는 법구경(法句經) 六은 상응경(相應經) 七은 본연경(本緣經) 八은 천본경(天本經) 九는 광경(廣經) 十은 미증유경(未曾有經) 十一은 비유경(譬喩經) 十二는 대교경(大敎經)이다. 마땅히 이것을 잘 받아 가지고 헤아리고 관찰하여 널리 펴서 분포하라.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옷이 혹은 무덤 사이의 옷, 혹은 장자의 옷, 혹은 추하고 천한 옷, 이 옷들은 추위와 더위 모기나 등에를 막기에 넉넉하고 몸뚱이를 가리기에 넉넉하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음식이 혹은 빌어먹기, 혹은 거사의 음식, 이 음식이면 스스로 족하다. 만일 몸이 괴로워 여러 가지 병이 부닥쳐 와서 드디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음식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족한 줄 알면 그만인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주처(住處)가 혹은 나무 밑에 있고 혹은 한 데 있으며 혹은 방안에 있고 혹은 누각 위에 있으며 혹은 굴속에 있고 혹은 그 밖의 여러 곳에 있다. 이 주처들은 추위 더위와 바람 비와 모기 등에를 막기에 족하며 한적하고 게으를 때 쉴 곳이 된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약은 대소변, 소, 유, 흑석밀(黑石蜜) 등이니 이런 약이면 스스로 족하다. 혹은 몸의 고통이 생기고 뭇 병이 닥쳐와서, 드디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약을 쓰는 것이다.”부처님은 말씀하셨다.“혹 어떤 외도(外道)의 범지가 와서 ‘사문 석자(釋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라.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사문 석자는 온갖 즐거움으로서 스스로 즐긴다. 무슨 까닭인가.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즐기는 데는 여래의 꾸짖는 것이 있고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즐기는 데는 여래의 칭찬하는 것이 있다’고 하라. 만일 외도 범지가 다시 묻기를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고오타마는 꾸짖는가’ 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대답하라. ‘五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바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을 본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안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 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이여, 五욕의 인연은 희락(喜樂)을 낸다. 이것이 여래, 지진, 등정각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어떤 사람이 중생을 죽이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 지진, 등정각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가만히 도둑질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梵行)을 범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행이 아닌 다른 고행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모든 비구여, 여래는 사람의 탐착하는 바의 五욕의 공덕을 꾸짖으시는 것이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을 본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써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안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 한 것으로써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즐거움에도 사문 석자에게는 이러한 즐거움이 없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으나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공공연하게 도둑질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지만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을 범하는 것으로서 스스로 즐거움을 삼지만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거니와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 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되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고행을 행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이 있지만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사문 고오타마는 칭찬하시는가.’고 묻거든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대답하라. ‘여러분, 五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의 탐착하는 바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을 알고 내지 마음은 법진(法塵)을 알아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 五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한다. 마치 그것은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임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이 있어 공공연히 도둑질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이 있어 범행을 범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외도의 고행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탐욕을 버리고 다시 악법이 없어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으면서도 이생희락(離生喜樂)으로 초선(初禪)에 들어가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각(覺)과 관(觀)을 없애고 안으로 기쁜 한 마음이어서 각도 없고 관도 없어 정생희락(定生喜樂)인 제 二선(禪)에 들어간다면 그런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기쁨을 버리고 사(捨)에 들어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이 구하는 바의 호념일심(護念一心)인 제 三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 즐거움도 다하고 괴로움도 다하고 걱정과 기쁨이 먼저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호념청정(護念淸淨)인 제 四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고 하라.만일 외도 범지가 있어 묻기를 ‘너희들은 그 즐거움에서 얼마 마한 공덕의 과(果)를 구하느냐.’고 하거든 마땅히 그들에게 대답하라. ‘이 즐거움에는 七과(果)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七인가. 현세에서 도증(道證)을 이룰 것이다. 만일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면 목숨을 마칠 때 이룰 것이요, 만일 목숨을 마칠 때에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五하결(下結)을 다해 중간반열반(中間般涅槃), 생피반열반(生彼般涅槃), 행반열반(行般涅槃),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 상류아가니타반열반(上流阿迦尼咤般涅槃)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 즐거움의 七공덕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학지(學地)에 있어 위로 안온처(安穩處)를 구하고자 하나 아직 五개(蓋)를 없애지 못했다 하자. 어떤 것이 五인가. 탐욕개(貪慾蓋), 진에개, 수면개(睡眠蓋), 도희개(掉戱蓋), 의개(疑蓋)가 그것이다. 저 학지에 있는 비구로서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면서 아직 五개를 없애지 못하고 四념처(念處)에 정근하지 못하고 七각의(覺意)에 정근하지 못하고는 상인(上人)의 법과 현성의 지혜의 증성(增盛)을 얻으려 하여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여러분, 학지 비구로서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여 능히 탐욕개, 진에개, 수면개, 도희개, 의개 등의 五개를 없애고 또 四념처에 있어서 능히 정근하고 七각의에 있어서 여실히 수행하여 상인의 법과 현성의 지혜의 증성을 얻고자 하여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혹은 어떤 비구가 있어 번뇌가 다한 아라한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의 번뇌를 다하고,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九사(事)를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것이 九인가. 一은 생생하지 않고 二는 도둑질하지 않으며 三은 간음하지 않고 四는 거짓말하지 않으며 五는 도(道)를 버리지 않고 六은 욕심을 따르지 않으며 七은 성냄을 따르지 않고 八은 두려움을 따르지 않으며 九는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의 번뇌를 다해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고 九사(事)를 멀리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고 하여라.또 어떤 외도 범지가 있어 말하기를 ‘사문 석자(釋子)는 머무르지 않는 법이 있다’고 하거든 너희들은 대답해 말하라. ‘여러분,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사문 석자는 부주법이 있다고. 무슨 까닭인가. 사문 석자는 그 법이 항상 머물러 동전(動轉)할 수 없다. 마치 그것은 문지방은 항상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문 석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 법은 항상 머물러 이동하지 않는다’고. 또 어떤 외도 범지가 있어 말하기를 ‘사문 고오타마는 과거 세상의 일은 다 알지마는 미래의 일은 모른다’한다면, 그 이학(異學) 범지는 지혜도 다르고 지혜의 관(觀)도 또한 달라 그의 말은 허망한 것이다. 여래는 과거 세상의 일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미래 세상에 있어서도 도(道)의 지혜를 낸다. 또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님은 곧 기억하지 않으신다. 혹은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기도 하나, 이익 되는 바가 없으면 부처님은 또한 기억하지 않으신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며 또 이익되는 바도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그리고 기억하신다. 미래와 현재에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마땅히 시어(時語), 실어(實語), 의어(義語), 이어(利語), 법어(法語), 율어(律語)로서 허망함이 없다.부처님은 초저녁에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시고 새벽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말씀하신 것은 다 여실하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다시 여래의 말씀은 사실과 같고 사실은 말씀과 같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어떤 이유로 등정각(等正覺)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의 알고 보는 바 멸한 바 깨달은 바를 부처님은 다 깨달아 알으신다. 그러므로 등정각이라 이름한다.또 어떤 외도 범지가 있어 말한다. ‘세간은 항상 있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외의 것은 허망하다’고. 혹은 또 말한다. ‘세간은 항상 있기도 하고 항상 됨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고.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항상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 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은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고.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邊]이 있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이 없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이 있기도 하고 갓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이 있는 것도 아니요 갓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고.혹은 말한다. ‘이 목숨과 이 몸은 이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도 아니요 몸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다른 목숨도 아니요 다른 몸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도 아니요 마치지 않음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이러한 모든 소견이 있는데 이것을 본생본견(本生本見)이라 이름한다. 이제 너를 위하여 기록한다. ‘이른바 이 세상이 항상 있다. 내지 여래는 마침도 아니요 마치지 않음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는 것은 본견본생인데 너를 위해 기록한다. 이른바 미견미생(未見未生)도 나는 또 기록하나니 어떤 것이 미견미생으로서 내가 기록하는 것인가. ‘색(色)은 <나>다. 상(想)을 쫓아 마침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색이 없는 것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또 색이 있기도 하고 또 색이 없기도 한 것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색이 있지도 않고 색이 없지도 않은 것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갓이 있다. <나>는 갓이 없다. <나>는 갓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갓이 있는 것도 아니요 갓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있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한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갖가지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적은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무량한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는 이것이 삿된 소견의 본견본생으로써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항상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내지 무량한 상(想)은 <나>로서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또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는 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에게 대답하라. ‘너는 참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은 항상 있으며 그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하는가. 그러한 말을 부처님은 허락하시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소견 가운데에는 각각 번뇌가 있다. 나는 이치로써 미루어 볼 때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는 나와 짝할 이가 없다. 하물며 거기서 지나가고자 함이랴. 이 모든 삿된 소견은 다만 말이 있을 뿐 족히 함께 의논할 것이 없다. 내지 무량한 생각이 <나>라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런 말을 한다. ‘이 세간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라고.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 세간은 남이 만든 것이다’고. 혹은 다시 말한다.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한다’고. 혹은 또 말한다.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요 남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있어진 것이다’고. 저 사문 바라문이 세간은 스스로 지어진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모두 촉(觸)의 인연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만일 촉의 인연을 떠나 말한다면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六입(入)을 말미암기 때문에 촉을 내고, 촉을 말미암기 때문에 수(受)를 내고, 수를 말미암기 때문에 애(愛)를 내고, 애를 말미암기 때문에 취(取)를 내고, 취를 말미암기 때문에 유(有)를 내고, 유를 말미암기 때문에 생(生)을 내고, 생을 말미암기 때문에 노, 사, 우, 비, 고, 뇌(老, 死, 憂. 悲, 苦, 惱)의 환(患)의 덩어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六입이 없으면 촉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가 없고, 유가 없으면 생이 없고, 생이 없으면 노, 사, 우, 비, 고, 뇌의 큰 환의 음집(陰集)이 없을 것이다. 또 말하기를 ‘이 세간은 남이 만들었다’하고, 또 말하기를 ‘이 세간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요 남이 만든 것이 아니다. 갑자기 있는 것이다’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 촉을 말미암아 있는 것으로서 촉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부처님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만일 이러한 모든 사악(邪惡)한 소견을 없애려고 하거든 四념처(念處)에 있어서 마땅히 三행(行)을 닦아라. 어떤 것이 비구가 모든 악을 없애려고 四념처에 있어서 三행을 닦는 것인가. 비구여,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또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또 내외신신관을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수, 의, 법(受, 意, 法)의 관(觀)도 또한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악법을 멸하기 위하여 四념처에 있어서 三종의 행을 닦는 것이다. 또 八해탈(解脫)이 있다. 어떤 것이 八인가. 색(色)이 색을 관(觀)하는 것은 초해탈이요, 안에 색상(色想)이 있어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은 二해탈이요, 정(淨)해탈은 三해탈이요, 색상을 건너 건넜다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르는 것은 四해탈이요,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머무르는 것은 五해탈이요, 식처를 버리고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은 六해탈이요,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은 七해탈이요, 멸진정(滅盡定)은 八해탈이다.”그 때에 아난은 세존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곧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손을 깍지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청정하고 미묘하기 제일입니다.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고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하겠나이까.”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이 경은 청정(淸淨)이라 이름하고 너는 마땅히 청정하게 이것을 가져라.”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환희 하여 받들어 행했다.     쭌다여, 이러한 그대들이 모두가 조화롭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분쟁을 하지 않으며 공부지을 때 어떤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잘못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D29. 18)   쭌다여, 또 다른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잘못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D29. 19)   쭌다여, 또 다른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바르게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D29. 20)   쭌다여, 또 다른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바르게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뻐한 뒤 그에게 '도반이여, 우리가 이처럼 뜻을 갖추고 문장을 갖춘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만났으니, 우리는 참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佛說長阿含經卷第十二     後秦弘始年佛陀耶舍共竺佛念譯   (一七)第二分清淨經第十三 如是我聞 一時。佛在迦維羅衛國緬祇優婆塞林中。與大比丘千二百五十人俱 時。有沙彌周那在波波國。夏安居已。執持衣鉢。漸詣迦維羅衛緬祇園中。至阿難所。頭面禮足。於一面立。白阿難言。波波城內有尼乾子。命終未久。其諸弟子分為二分。各共諍訟。面相毀罵。無復上下。迭相求短。競其知見。我能知是。汝不能知。我行真正。汝為邪見。以前著後。以後著前。顛倒錯亂。無有法則。我所為妙。汝所言非。汝有所疑。當諮問我。大德阿難。時。彼國人民事尼乾者。聞諍訟已。生厭患心 阿難語周那沙彌曰。我等有言欲啟世尊。今共汝往。宣啟此事。若世尊有所戒敕。當共奉行 爾時。沙彌周那聞阿難語已。即共詣世尊。頭面禮足。在一面立。爾時。阿難白世尊曰。此沙彌周那在波波國夏安居已。執持衣鉢。漸來至此。禮我足。語我言。波波國有尼乾子。命終未久。其諸弟子分為二分。各共諍訟。面相毀罵。無復上下。迭相求短。競其知見。我能知是。汝不能知。我行真正。汝為邪見。以前著後。以後著前。顛倒錯亂。無有法則。我所言是。汝所言非。汝有所疑。當諮問我。時。彼國人民事尼乾者。聞諍訟已。生厭患心 世尊告周那沙彌曰。如是。周那。彼非法中不足聽聞。此非三耶三佛所說。猶如朽塔難可汙色。彼雖有師。盡懷邪見。雖復有法。盡不真正。不足聽採。不能出要。非是三耶三佛所說。猶如故塔不可汙也。彼諸弟子有不順其法。捨彼異見。行於正見。 周那。若有人來語彼弟子。諸賢。汝師法正。當於中行。何以捨離。 其彼弟子信其言者。則二俱失道。獲無量罪。所以者何。彼雖有法。然不真正故。 周那。若師不邪見。其法真正。善可聽採。能得出要。三耶三佛所說。譬如新塔易可汙色。然諸弟子於此法中。不能勤修。不能成就。捨平等道。入於邪見。若有人來語彼弟子。諸賢。汝師法正。當於中行。何以捨離。入於邪見。其彼弟子信其言者。則二俱見真正。獲無量福。所以者何。其法真正 佛告周那。彼雖有師。然懷邪見。雖復有法。盡不真正。不足聽採。不能出要。非三耶三佛所說。猶如朽塔不可汙色。彼諸弟子法法成就。隨順其行。起諸邪見。周那。若有人來語其弟子言。汝師法正。汝所行是。今所修行勤苦如是。應於現法成就道果。彼諸弟子信受其言者。則二俱失道。獲無量罪。所以者何。以法不真正故。 周那。若師不邪見。其法真正。善可聽採。能得出要。三耶三佛所說。譬如新塔易為汙色。又其弟子法法成就。隨順修行而生正見。若有人來語其弟子言。汝師法正。汝所行是。今所修行勤苦如是。應於現法成就道果。彼諸弟子信受其言。二俱正見。獲無量福。所以者何。法真正故 周那。或有導師出世。使弟子生憂。或有導師出世。使弟子無憂。云何導師出世。使弟子生憂。 周那。導師新出世間。成道未久。其法具足。梵行清淨。如實真要而不布現。然彼導師速取滅度。其諸弟子不得修行。皆愁憂言。師初出世。成道未久。其法清淨。梵行具足。如實真要。竟不布現。而今導師便速滅度。我等弟子不得修行。是為導師出世。弟子愁憂。云何導師出世。弟子不憂。 謂導師出世。其法清淨。梵行具足。如實真要而廣流布。然後導師方取滅度。其諸弟子皆得修行。不懷憂言。師初出世。成道未久。其法清淨。梵行具足。如實真要而不布現。而今導師便速滅度。使我弟子不得修行。如是。周那。導師出世。弟子無憂 佛告周那。此支成就梵行。謂導師出世。出家未久。名聞未廣。是謂梵行支不具足。 周那。導師出世。出家既久。名聞廣遠。是謂梵行支具足滿。 周那。導師出世。出家既久。名聞亦廣。而諸弟子未受訓誨。未具梵行。未至安處。未獲己利。未能受法分布演說。有異論起不能如法而往滅之。未能變化成神通證。是為梵行支不具足。 周那。導師出世。出家既久。名聞亦廣。而諸弟子盡受教訓。梵行具足。至安隱處。已獲己利。又能受法分別演說。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是為梵行支具足滿 周那。導師出世。出家亦久。名聞亦廣。諸比丘尼未受訓誨。未至安處。未獲己利。未能受法分布演說。有異論起不能以法如實除滅。未能變化成神通證。是為梵行支未具足。 周那。導師出世。出家亦久。名聞亦廣。諸比丘尼盡受教訓。梵行具足。至安隱處。已獲己利。復能受法分別演說。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是為梵行支具足滿。 周那。諸優婆塞.優婆夷廣修梵行。乃至變化具足成神通證。亦復如是 周那。若導師不在世。無有名聞。利養損減。則梵行支不具足滿。 若導師在世。名聞利養。皆悉具足。無有損減。則梵行支為具足滿。 若導師在世。名聞利養。皆悉具足。而諸比丘名聞利養。不能具足。是為梵行支不具足。 若導師在世。名聞利養。具足無損。諸比丘眾亦復具足。則梵行支為具足滿。比丘尼眾亦復如是   周那。我出家久。名聞廣遠。我諸比丘已受教誡。到安隱處。自獲己利。復能受法為人說法。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皆亦如是。 周那。我以廣流布梵行。乃至變化具足成神通證。 周那。一切世間所有導師。不見有得名聞利養如我如來.至真.等正覺者也。 周那。諸世間所有徒眾。不見有名聞利養如我眾也。   周那。若欲正說者。當言見不可見。云何見不可見。一切梵行清淨具足。宣示布現。是名見不可見 爾時。世尊告諸比丘。鬱頭藍子在大眾中而作是說。有見不見。云何名見不見。如刀可見。刃不可見。諸比丘。彼子乃引凡夫無識之言以為譬喻。如是。周那。若欲正說者。當言見不見。云何見不見。 汝當正欲說言。一切梵行清淨具足。宣示流布。是不可見。 周那。彼相續法不具足而可得。不相續法具足而不可得。周那。諸法中梵行。酪酥中醍醐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히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울두람자(鬱頭藍子)6)가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6) Uddaka Rmaputta로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여 도를 배웠던 두 선인(仙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로 비유를 들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무엇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네가 바로 일체 범행을 청정하게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여 흘러 퍼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이니라. 주나야, 저 인과가 계속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인과가 계속되지 않는 법은 구족하여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범행(梵行)은 비유하면 낙(酪)과 소(?) 가운데 제호와 같은 것이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是法躬自作證。 謂四念處.四神足.四意斷.四禪.五根.五力.七覺意.賢聖八道。 汝等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得安樂已。 若有比丘說法中有作是言。彼所說句不正。義理不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 當語彼比丘言。云何。諸賢。我句如是。汝句如是。我義如是。汝義如是。何者為勝。何者為負。 若彼比丘報言。我句如是。我義如是。汝句如是。汝義如是。汝句亦勝。汝義亦勝彼比丘說此。亦不得非。亦不得是。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受同一師同一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是言。彼所說句不正。義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比丘。我句如是。汝句如是。何者為是。何者為非。若彼比丘報言。我句如是。汝句如是。汝句亦勝。彼比丘說此。亦不得言是。不得言非。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是言。彼所說句正。義不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比丘。我義如是。汝義如是。何者為是。何者為非。若彼報言。我義如是。汝義如是。汝義而勝。彼比丘說此已。亦不得言是。亦不得言非。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比丘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如是言。彼所說句正。義正。比丘聞已。不得言非。當稱讚彼言。汝所言是。汝所言是。是故。比丘。於十二部經自身作證。當廣流布。 一曰貫經。二曰祇夜經。三曰受記經。四曰偈經。五曰法句經。六曰相應經。七曰本緣經。八曰天本經。九曰廣經。十曰未曾有經。十一曰譬喻經。十二曰大教經。當善受持。稱量觀察。廣演分布   諸比丘。我所制衣。若塚間衣。若長者衣.麤賤衣。此衣足障寒暑.蚊虻。足蔽四體。 諸比丘。我所制食。若乞食。若居士食。此食自足。若身苦惱。眾患切已。恐遂至死。故聽此食。知足而已。諸比丘。我所制住處。若在樹下。若在露地。若在房內。若樓閣上。若在窟內。若在種種住處。此處自足。為障寒暑.風雨.蚊虻。下至閑靜懈息之處。諸比丘。我所制藥。若大小便。酥油蜜.黑石蜜。此藥自足。若身生苦惱。眾患切已。恐遂至死。故聽此藥   佛言。或有外道梵志來作是語。沙門釋子以眾樂自娛。若有此言。當如是報。汝等莫作此言。謂沙門釋子以眾樂自娛。所以者何。有樂自娛。如來呵責。有樂自娛。如來稱譽。若外道梵志問言。 何樂自娛。瞿曇呵責。設有此語。汝等當報。五欲功德。可愛可樂。人所貪著。云何為五。 眼知色。可愛可樂。人所貪著。耳聞聲.鼻知香.舌知味.身知觸。可愛可樂。人所貪著。 諸賢。猶是五欲緣生喜樂。此是如來.至真.等正覺之所呵責也。 猶如有人故殺眾生。自以為樂。此是如來.至真.等正覺之所呵責。 猶如有人私竊偷盜。自以為樂。此為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為樂。此是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故作妄語。自以為樂。此是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放蕩自恣。此是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行外苦行。非是如來所說正行。自以為樂。此是如來之所呵責 諸比丘。呵責五欲功德。人所貪著。云何為五。 眼知色。可愛可樂。人所貪著。耳聞聲.鼻知香.舌知味.身知觸。可愛可樂。人所貪著。 如此諸樂。沙門釋子無如此樂。 猶如有人故殺眾生。以此為樂。沙門釋子無如此樂。 猶如有人公為盜賊。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故作妄語。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放蕩自恣。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行外苦行。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若外道梵志作如是問。何樂自娛。沙門瞿曇之所稱譽。 諸比丘。彼若有此言。汝等當答彼言。諸賢。有五欲功德。可愛可樂。人所貪著。云何為五。 眼知色。乃至意知法。可愛可樂。人所貪著。諸賢。五欲因緣生樂。當速除滅。 猶如有人故殺眾生。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公為盜賊。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故為妄語。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放蕩自恣。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行外苦行。自以為樂。有如是樂。應速除滅。 猶如有人去離貪欲。無復惡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如是樂者。佛所稱譽。 猶如有人滅於覺.觀。內喜.一心。無覺.無觀。定生喜.樂。入第二禪。如是樂者。佛所稱譽。 猶如有人除喜入捨。自知身樂。賢聖所求。護念一心。入第三禪。如是樂者。佛所稱譽。 樂盡苦盡。憂.喜先滅。不苦不樂。護念清淨。入第四禪。如是樂者。佛所稱譽   若有外道梵志作如是問。汝等於此樂中求幾果功德。應答彼言。此樂當有七果功德。云何為七。 於現法中。得成道證。正使不成。臨命終時。當成道證。 若臨命終復不成者。當盡五下結。中間般涅槃.生彼般涅槃.行般涅槃.無行般涅槃.上流阿迦尼吒般涅槃。諸賢。是為此樂有七功德。 諸賢。若比丘在學地欲上。求安隱處。未除五蓋。云何為五。 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戲蓋.疑蓋。 彼學比丘方欲上求。求安隱處。未滅五蓋。於四念處不能精勤。於七覺意不能勤修。欲得上人法.賢聖智慧增盛。求欲知欲見者。無有是處。 諸賢。學地比丘欲上求。求安隱處。能滅五蓋。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戲蓋.疑蓋。於四意處又能精勤。於七覺意如實修行。欲得上人法.賢聖智慧增上。求欲知欲見者。則有是處。 諸賢。若有比丘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自獲己利。盡諸有結使。正智解脫。不為九事。 云何為九。一者不殺。二者不盜。三者不婬。四者不妄語。五者不捨道。六者不隨欲。七者不隨恚。 八者不隨怖。九者不隨癡。諸賢。是為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自獲己利。盡諸有結。正智得解。遠離九事   或有外道梵志作是說言。沙門釋子有不住法。 應報彼言。諸賢。莫作是說。沙門釋子有不住法。所以者何。沙門釋子。其法常住。不可動轉。 譬如門閫常住不動。沙門釋子亦復如是。其法常住。無有移動。 或有外道梵志作是說言。 沙門瞿曇盡知過去世事。不知未來事。彼比丘.彼異學梵志智異。智觀亦異。所言虛妄。 如來於彼過去事。若在目前。無不知見。 於未來世。生於道智。過去世事虛妄不實。不足喜樂。無所利益。佛則不記。 或過去事有實。無可喜樂。無所利益。佛亦不記。若過去事有實.可樂。而無利益。佛亦不記。.. 若過去事有實.可樂。有所利益。如來盡知然後記之。未來.現在。亦復如是。 如來於過去.未來.現在。應時語.實語.義語.利語.法語.律語。無有虛也。 佛於初夜成最正覺。及末後夜。於其中間有所言說。盡皆如實。故名如來。 復次。如來所說如事。事如所說。故名如來。 以何等義。名等正覺。佛所知見.所滅.所覺。佛盡覺知。故名等正覺   或有外道梵志作如是說。世間常存。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說言。此世無常。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世間有常無常。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此世間非有常非無常。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此世間有邊。唯此為實。餘者為虛妄。 或復有言。世間無邊。唯此為實。餘者虛妄。或復有言。世間有邊無邊。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世間非有邊非無邊。唯此為實。餘者虛妄。或復有言。是命是身。此實餘虛。 或復有言。非命非身。此實餘虛。或復有言。命異身異。此實餘虛。 或復有言。非異命非異身。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終。此實餘虛。 或復有言。如來不終。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終不終。此實餘虛。 或復有言。如來非終非不終。此實餘虛。諸有此見。名本生本見。今為汝記。 謂。此世常存。乃至如來非終非不終。唯此為實。餘者虛妄。是為本見本生。為汝記之 所謂未見未生者。我亦記之。何者未見未生。我所記者。 色是我。從想有終。此實餘虛。無色是我。從想有終。亦有色亦無色是我。從想有終。非有色非無色是我。從想有終。我有邊。我無邊。我有邊無邊。我非有邊非無邊。從想有終。我有樂。從想有終。我無樂。從想有終。我有苦樂。從想有終。我無苦樂。從想有終。一想是我。從想有終。種種想是我。從想有終。少想是我。從想有終。無量想是我。從想有終。此實餘虛。是為邪見本見本生。我之所記   或有沙門.婆羅門有如是論.有如是見。此世常存。此實餘虛。乃至無量想是我。此實餘虛。 彼沙門.婆羅門復作如是說.如是見。此實。餘者虛妄。當報彼言。汝實作此論。 云何此世常存。此實餘虛耶。如此語者。佛所不許。所以者何。此諸見中各有結使。我以理推。 諸沙門.婆羅門中。無與我等者。況欲出過。此諸邪見但有言耳。不中共論。 乃至無量想是我。亦復如是 或有沙門.婆羅門作是說。此世間自造。復有沙門.婆羅門言。此世間他造。 或復有言。自造他造。或復有言。非自造非他造。忽然而有。 彼沙門.婆羅門言世間自造者。是沙門.婆羅門皆因觸因緣。若離觸因而能說者。無有是處。 所以者何。由六入身故生觸。由觸故生受。由受故生愛。由愛故生取。由取故生有。由有故生生。 由生故有老.死.憂.悲.苦惱。大患陰集。若無六入則無觸。無觸則無受。無受則無愛。無愛則無取。無取則無有。無有則無生。無生則無老.死.憂.悲.苦惱。大患陰集。 又言此世間他造。又言此世間自造他造。又言此世間非自造非他造。忽然而有。亦復如是。 因觸而有。無觸則無 佛告諸比丘。若欲滅此諸邪惡見者。於四念處當修三行。云何比丘滅此諸惡。於四念處當修三行。 比丘謂內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 內外身身觀。憶念不忘。除世貪憂。受.意.法觀。亦復如是。 是為滅眾惡法。於四念處。三種修行。有八解脫。云何為八。 色觀色。初解脫。內有色想。外觀色。二解脫。淨解脫。三解脫。度色想滅有對想。住空處。四解脫。捨空處。住識處。五解脫。捨識處。住不用處。六解脫。捨不用處。住有想無想處。七解脫。滅盡定。八解脫 爾時。阿難在世尊後執扇扇佛。即偏露右肩。右膝著地。叉手白佛言。甚奇。世尊。此法清淨。微妙第一。當云何名。云何奉持 佛告阿難。此經名為清淨。汝當清淨持之 爾時。阿難聞佛所說。歡喜奉行   二九 清净经   本经相当于汉译长阿含卷第一七之清净经(大正藏一)。世尊住缅只之庵罗林时,新比丘周陀由波婆城阿难之处来,奉告尼干子之死后,其学徒间之分裂、斗争、固执排他主张之状态。阿难与周陀同诣佛处,以告其事由,佛教诫弟子等之将来,所说的就是本经。先对于师、法、弟子,说示师之死,在弟子们为忧悲及不忧悲之情形;其次说清净梵行之成就,及说四种之安乐行和其果报,最后为远离诸种谬见,而敬示身、受、心、法之四念处。   如是我闻。 一   尔时,世尊与释迦族人暂住于缅只若人之庵罗林中。其时,尼干子于波婆[城]命终,彼命终时,尼干子则分成二派,生起争议、斗争、相斗而互相以锐舌交锋而住。言:“汝不知此之律、法,我知此之律、法;汝何能知此之律、法耶?”汝是依邪行,我是从正行。”我言与[理]相应,汝之言与[理]不相应。”应去于前汝说于后,应说于后而云于前。”“汝之言论反反覆覆而无熟虑。”汝之言论堕于负处。”“如果可以者,放弃汝自己之言论,使汝自己解脱!”尼干子之徒中,想行杀戮。尼干子之在家弟子等,对尼干子生起厌恶、坏情绪、反对,其状态,如非正说、误说、非导[出离]、非至寂静、非依正觉者所说之法、律,又如不得为依止处之破塔。 二   时,沙弥周陀于波婆安居已,[彼]于舍尔村,诣具寿阿难之处,诣已,礼拜具寿阿难,却坐一面,坐于一面之沙弥周陀向具寿阿难言:  “大德!尼干子今于波婆[城]命终,彼命终后,尼干分为二派……又如不得为依止处之破塔。”  如是言时,具寿阿难如是言沙弥周陀曰:“友,周陀!此值得白世尊之话。友,周陀曰我等诣世尊之处,诣已,以此事奉白世尊。”  沙弥周陀答应具寿阿难:“然,大德。” 三   于此,具寿阿难与沙弥周陀诣世尊前之处,诣已,礼拜世尊,却坐一面。坐于一面之具寿阿难如是白世尊言:“世尊!此沙弥周陀如是言:“尼干子今于波婆[城]命终,彼命终后,尼干分为二派……如不得为依止处之破塔。”  [世尊:]“周陀!实如是,此非正说,是错误之说,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所说之法、律也。 四   周陀!于此,世有导师而非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正觉者之所说。而且其弟子于此[恶]法中,不成就法随法行而住,不真正成就,不随法行,逸脱其法。若入向彼等如是言:“友!此是汝之善得,此是汝之善利。汝之师非等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汝于其法,不成就法随法行前住,非真正成就,不随法行,逸脱其法。”周陀!如是,其师于此被侮蔑,其法于此被侮蔑,其弟子于此受称赞。周陀!若有人如是对其弟子言:“尊者!凡汝师所说示之法,汝如是行之!”则劝导者,受劝与者及受劝导而如实奉行者,此等皆生非福。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之法、律,非是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也。 五   复次,周陀!于此,世有导师而非等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其弟子于此[恶]法中,成就法随法而住,真正成就,随法行,以行其法。某人向彼如是言:“友!此非汝之善得,此非汝之 利益;汝之师非等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汝于其[恶]法,成就法随法而住,真正成就,随法行,以行其法。”如是,周陀!于此其师被侮蔑,其法被侮蔑,其弟子亦如是受侮蔑。周陀!若有人如斯对弟子言:“尊者!趣向正理者,将成就正理。”则称赞者,受称赞者及受称赞而努力精进者,此等一切皆生非福也。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法、律,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等正觉者之所说也。 六   复次,周陀!于此,世有导师是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其弟子于彼[善]法,非成就法随法行而住,非真正成就,非随法行,逸脱其法。有某人向彼如是言:“友!此非汝之善得,非汝之善利。汝之师是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汝于其[善]法,非成就法随法行而住,非真正成就,非随法行,逸脱其法。”如是,周陀!于此,师被称赞,于此,法被称赞,而且弟子于此被侮蔑。周陀!若有人如斯对弟子言…“尊者!如师所说示之法,汝应成就之。”则劝导者,受劝导者及受劝导而如是奉行者,其等皆生福。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 七   复次,周陀!世有导师是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于其[善]法之弟子,成就法随法而住,真正成就,有随法行,以行其法。有某人同彼如是言:“友!此是汝之善得,此是汝之利益。汝之师是应供、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汝于其法,成就法随法行前住,真正成就,有随法行,以行其法。”如是,周陀!师于此受称赞,法于此受称赞,弟子于此受称赞。周陀!若有人如斯对弟子言:“尊者趋向正理者,将成就正理。”则称赞者,受称赞者及受称赞而努力精进者,彼等更生多福。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法、律,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 八   复次,周陀!于此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而且对于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然而其弟子非善知妙法,未成就纯粹圆满,彼等之导师灭度时,未得明了一切句身,未有不可思议之梵行,不能于人中说示。周陀!如是导师灭度时,于弟子有忧苦也。何以故?不论如何:“我等之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对于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然而,我等不善如妙法,未成就纯粹圆满,彼等之导师灭度时,既未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而于人中说示。”周陀!如是之导师灭度时,于弟子有忧苦。 九   复次,周陀!于此,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彼之弟子善如妙法,又成就纯粹圆满,彼等之导师灭度时,既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能于人中说示。周陀!如是,导师之灭度时,弟子无忧苦。何以故?不论如何:“我等之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我等善如妙法,成就纯粹圆满,我等之导师灭度时,已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能于人中说示。”周陀!如是,导师之灭度,于弟子无忧苦。 十    周陀!若具备此等支之梵行者:此导师虽是耆宿,出家行道已久,已达晚年之老境而非长老;如是,彼非依此梵行支而圆满成就。然,周陀!具备此等支之梵行者,而且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已达晚年老境之长老者,如是,则成就圆满此等支之梵行。 十一   周陀!若具备此等支之梵行。而且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达晚年老境之长老也。然而彼之长老弟子比丘,非到达完全者、学行者、无畏者、涅槃,实不堪宣示妙法;不能以法制伏已生之异论,不能说示不可思议之法,如是,此非成就圆满其等支之梵行。 十二   复次,周陀!若具备此等支之梵行;而且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已达晚年老境之长老;而彼之长老弟子比丘[已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非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已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非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已达……)……乃至……  彼之长老弟子比丘尼(非达……)……乃至……  彼之长老弟子比丘尼(已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尼(非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尼(已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尼(非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尼(已达……)……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不能……)……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能……)……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不能……)……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不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不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能……)……乃至……  然,于彼无梵行、无丰富、无繁荣、无名声广布……而,于彼有梵行、有丰富、有繁荣、有名声广布……于人人之中善实说;但非达最胜之利养、称扬。如是,此非成就圆满其等支之梵行。 十三   复次,周陀!有具此等支之梵行者,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已达晚年老境之长老,而且彼之长老弟子比丘到达完全者、学行者……乃至……说不可思议之妙法,  且彼之中年弟子比丘……  且彼之新弟子比丘……  且彼之长老弟子比丘尼……  且彼之中年弟子比丘尼……  且彼之新弟子比丘尼……  且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  且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  且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  且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  且于彼有梵行、有丰富、有繁荣、名声广布,乃至于人人之中善宣说,到达最胜之利养、称誉。如是成就圆满此等支之梵行。 十四   然,周陀!我今是应供、等正觉者为世之导师而出现;且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我弟子善知妙法,成就纯粹圆满,已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能于人中实说,周陀!我今为长老、耆宿,出家修道已久,达晚年老境之导师。 十五   复次,周陀!我今有到达完全者,学行者、无畏者、涅槃之长老弟子比丘,实是宣说妙法,若有生起异论者,能以法制伏之,制伏已而说不可思议之法。然而,周陀!我今有……中年弟子比丘。又周陀!  我今有……新弟子比丘。又周陀!  我今有……长老弟子比丘尼。又周陀!  我今有……中年弟子比丘尼。又周陀!  我今有……新弟子比丘尼。又周陀!  我今有……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又周陀!  我今有……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又周陀!  我今有……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又周陀!  我今有……优优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又周陀!于我有梵行,有丰富,有繁荣,有名声广布,乃至善说于人人之中。 十六   然,周陀!今虽诸导师出现于世,但不见其他一导师,如我得如是最胜利养、名誉。周陀!而且今僧伽或宗派众团出现于世,周陀!不见其他一僧伽,如我比丘僧伽得如是最胜利养、名誉。周陀!凡正说之时:“具足一切相、一切相成就圆满,无灭、无增、纯粹圆满之梵行,已明显善说示。”此谓正说:“具足一切相……乃至……已明显善说示。”周陀!郁头蓝弗曾作如是言:“视而不见。”如何是视而不见耶?虽见彼剃刀善磨之面而不见其刃也。周陀!此云:“视而不见。”周陀!依此郁头蓝弗所说之事,是凡夫卑劣、非圣、无义相应,以就剃刃而言也。周陀,正说时,云:“视而不见,”应去正说是:“视而不见。”如何为视而不见耶?如是具足一切相,一切相成就圆满,无减、无增,纯粹圆满之梵行,已明显善说示。实若彼想此应除去,如是思惟:“如斯会更清净。”则是不见。若彼想此应增加而思惟:“如此会更清净,”则不见,是谓:“视而不见”也。然,周陀!正说之时,谓:“具足一切相……乃至……之梵行,已明显善说示。此正说应谓:“具足一切相,一切相成就圆满,不减、不增,纯粹圆满之梵行,已明显善说示。” 十七   周陀,是故于此,由我证偏知法,对汝等开示。于此处,即一切者共来,共会集,以义理对义理,以字句对字句,应宣说、等调、不诤也。此梵行则永远久住:乃为众人之利益、众人之安乐、慈愍世间、人天之义利、利益、安乐也。周陀!如何法是由我证偏知而宣说?于此,即一切者其来,来会集,以义理对义理,以字句对字句,应宣说、等诵、不诤,即此梵行永远久住,乃为众人之利益、众人之安乐、慈愍世间、人天之利义、利益、安乐者,即:四念处、四正勤、四神足、五根、五力、七觉支,八支圣道也。周陀!此法是依我之知解而说:于此即一切者共来,一切者共会集,义理对义理,字句对字句,应宣说、等诵、不诤。即此梵行永远久住,乃为众人之利益、众人之安乐、慈愍世间、人天之利义、利益、安乐也。 十八   周陀!汝应当学斯M合、喜欢、不诤者。有其他之之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于义理实是误解,于字句实是误说”时,不应赞成,不应诤论。不应赞成、不应诤论,汝等应如是对彼云:“友!对此义理,由其字句?或此字句?与何相应耶?或对此字句,是其义理?或此义理?与何者相应耶?”于彼若如斯云:“友!对此义理,由其字句始为相应,对此文句,由其义理始相应”者,不应排斥彼,亦不应拒否。不应排斥彼,不应拒否;其义理及其字句,应小心善示知之。 十九   复次,周陀!有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对义理 虽实误解,但对字句是正述”时,不应赞成,不应诤论;不赞成、不诤论而汝等应如是对彼云:“友!对此字句,是其义理?或此义理?与何者相应耶?”彼若如斯云:“友!对此字句,是由其义理始为相应”者,不应排斥彼、不应拒否;不排斥、不拒否而其义理,应小心善示知之。 二十    复次,周陀!有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对义理虽实正解,对字句是误述”时,其不应赞成,不应诤论;不赞成、不诤论而如是对彼云:“友!对此义理,是其字句?或此字句?与何者相应耶?”彼若如是一的:“友!对此义理,其字句,比此更相应也。”不应排斥彼,不应拒否;不排斥、不拒否而对其字句,应小心善示知之。 二一   复次,周陀!若有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正解义理,正述字句”时,应言:“善哉!”而赞成、喜欢。对彼言:“善哉!”而赞成、欢喜,应如是对彼言:“友!如我具寿,如是通达义理、字句,得见此同梵行者,乃我等之利益,我等之利得也。” 二二   周陀!我非唯为制伏现法之有漏而对汝等说法1;周陀!亦非唯为坏灭现世之有漏而对汝等说法;周陀!我是为令制伏现法之有漏、坏灭来世之有漏而对汝等说法也。然,于此,周陀!我为汝等所制之衣,实为防汝等之寒、防汝等之暑,为防虻、蚊、风、热、蛇虫之所触,而且覆裈裆,我为汝等制立之托钵,实为令安住汝等之身体,为防伤害,为养活,为修梵行:“如是,我灭除故痛,令新痛不生,又我之生活无过且安稳。”我为汝制立居住,实为防寒、防暑、防虻、蚊、风、热、蛇虫之所触,而且消除时节之厄,为好闲居、独坐也。我为汝等制立疾病之资具、药品、资粮,实为防苦恼、痛之生起,为令离苦也。 二三   复次,周陀!有此事;外道之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专心于安乐行而住。”周陀!外道普行者如是言时,应如斯答彼:“友!何者为安乐行耶?安乐行亦有多种多样。”周陀!于此,有四安乐行,卑劣、凡夫、非圣、非义相应,非导远离,非导离欲,非导于灭,非导于寂静,非导于智,非导于正觉,非导涅槃也。四者何耶?周陀!于此,或愚痴者,自喜乐杀害有情,此为第一安乐行。复次,周陀!于 此,有自喜乐取不与物者,此为第二安乐行。复次,周陀!于此,自喜乐为妄语者,此为第三安乐行。复次,周陀!于此,满足、具足、耽着于五欲乐者,此为第四安乐行也。周陀!此等四安乐行,是卑劣、凡夫、非圣、非义相应,非导远离,非导离欲,非导于灭,非导于寂静,非导于智,非导正觉,非道涅槃也。 二四   复次,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专心于此等四安乐行而住!应回答彼等:“非然!”彼等以非正语、非然、非事实诽谤汝也。周陀!于此,有四种安乐行,必导远离,导离欲,导于灭,导于寂静,导于智,导于正觉,导于涅槃也。四种者何耶?周陀!于此,有比丘离诸欲,离不善法,有寻有伺,而由离生喜乐,达初禅而住,此为第一安乐行。复次,周陀!有比丘灭寻伺,内心安静,得心一境相,无寻无伺,由定生喜乐,达第二禅而住,此为第二安乐行。复次,周陀!比丘脱喜……乃至……为第三安乐行。复次,周陀!比丘舍离乐……乃至……此为 第四安乐行也。周陀!此等四种安乐行,必导于远离、离欲、灭、寂静、智、正觉、涅槃也。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而住?”应回答彼等:“然!”彼等以语正语,不以非然、非事实之诽谤。 二五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又,友!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而住者,可期行如何之果[报]、如何之利益耶?”外道普行者如是言,应如是回答彼:“友!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前住者,可期待四果、四利益。四种者何耶?友!因克断三结之比丘成为预流、不堕恶处,决定向正觉,此为第一果、第一利益。又,友!克断三结之比丘成为一来,消灭贪、嗔、痴,唯一度来此世间作苦之边际,此为第二果、第二利益。又,友…克断五下分结之比丘成为化生,于彼处般涅槃,更不由其处再还世间,此为第三果、第三利益。又,友!比丘漏尽,无漏心解脱、慧解脱,于现法中自知解、实证而住,此为第四果、第四利益也。友!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而住者,可期待此四果、四利益。” 二六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不住法而住。”周陀!外道普行者如是言者,应如是回答彼:“依彼知者、见者、阿罗汉、等正觉者、世尊,说声闻法,令知消尽命数。友!犹如因陀罗柱及如铁柱善依据深根底而不震不动。友!如是,依彼知者、见者、阿罗汉、等正觉者、世尊,说声闻法,令知消尽命数。友!彼阿罗汉诸漏已尽、[梵行]已立、所作已辨、舍负重担、获利、尽有之结使、正智解脱之比丘,得成九事。友!漏尽之比丘,不可能故意夺生物之生命;漏尽之比丘,不可能以盗心取不与之物;漏尽比丘,不可能行邪淫;漏尽比丘,不可能以正如语妄语;漏尽比丘,不可能如前在俗时,蓄财富享受欲乐;漏尽比丘,不可能行欲道:漏尽比丘,不可能行嗔道;漏尽比丘,不可能行痴道;漏尽比丘,不可能行怖畏道。友!彼阿罗汉诸漏已尽、[梵行]已立、所作已办、舍负重担、获利、尽有之结使,正智解脱之比丘,不可能行此九事。” 二七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沙门瞿昙令知关于过去无涯之智见;然而不令知关于未来无涯之智见,其究竟如何?其究竟如何?”彼外道普行者以无智所扰之智见,认为不应不令知无智所扰之智见;此犹如愚者之无知。周陀!世尊对过去有随念智,彼凡限于随愿意之忆念。有关于未来世尊是生起菩提生智:“此为最后生,今后无再生也。” 二八   周陀!对于过去,若虚妄、不真实、非义利相应者,如来不说也。周陀!对于过去,若真实,于义利相应者,如来知是时而答彼问。周陀!对于未来,若虚妄、不真实、非义利相应者,如来不说也。周陀!对于未来,若真实、于义利相应者,如来如是时,略述回答彼问。周陀!对于现在,若虚妄、不真实、非义利相应者, 如来不说也。周陀!对于现在,若真实、而非义利相应者,如来亦不说也。周陀!对于现在,若真实、于义利相应者,如来知是时而回答彼问。如是,周陀!于过去、未来、现在之法,如来是时语者、实语者、义语者、法语者、律语者,故名为如来。 二九   周陀!含括天、魔、梵之世界及沙门、婆罗门、众生、天、人之见闻觉知、未达、依意思惟彼等之一切,如来现正觉,故名为如来。周陀!如来于夜分正觉无上等正觉,于夜分无余涅槃界般涅槃。于此二之间,说语教示,一切真实而无其他,故名为如来。周陀!如来之所说如其所行,如其所行而如其所说。如是行如所说,说如所行,故名为如来。含括天、魔、梵之世界及沙门、婆罗门、众生、天、人[之世界],如来征服之而不被征服。一切物之见者、调御者,故名为如来。 三0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友!如来死后存在耶?而此为真实,其他为虚伪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问,应如斯答彼:“友!世尊不说:“如来死后存在,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如来死后不存在,而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又世尊不说:“如来死后不存在,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如来死后存在又不存在……乃至……如来死后非存在又非不存在耶?而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世尊不说:‘如来死后非存在,又非不存在。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 三一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者而如是言:“何故,沙门瞿昙不说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不论如何,于此义利不相应,于法不相应,非根本梵行,非导远离,非导离贪,非导于灭,非导寂静,非导于智,非导正觉,非导涅槃。故如来不说也。” 三二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沙门瞿昙以何为说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世尊说:“此是苦。”友!世尊说:“此是苦之集。”友!世尊说:“此是苦之灭。”友!世尊说:“此是导苦灭之道也。” 三三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沙门瞿昙何故说此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此实于义利相应,于法相应,是根本梵行,决定导远离、离贪、灭、寂静、智、正觉、涅槃也。是故世尊宣说此也。” 三四   周陀!凡有关此等过去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2说耶?周陀!凡有关此等未来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周陀!如何关于此等过去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耶?3  周陀!某沙门、婆罗门有斯说、有斯见:“我及世间是常。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复次,周陀!某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  “我及世间是无常……乃至……  我及世间是亦常亦无常……乃至……  我及世间是非常非无常……乃至……  我及世间是自造……乃至……  我及世间是他造……乃至……  我及世间是亦自造亦他造……乃至……  我及世间是非自造亦非他造,乃忽然而生,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乐与苦是常。  乐与苦是无常。  乐与苦是亦常亦无常。  乐与苦是非常非无常。  乐与苦是自造。  乐与苦是他造。  乐与苦是亦自造亦他造。  乐与苦是非自造非他造,忽然而生。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三五   于是,周陀!彼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我及世间是常住,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我至彼等处而如是言:“友!汝言我及世间是常住是事实耶?”凡彼等如是言:“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世间有一类有情之异想者,周陀!于智我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我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者也。 三六   周陀!彼沙门、婆罗门有斯说、有斯见:  “我及世间是无常。  我及世间是亦常亦无常。  我及世间是非常非无常。  我及世间是自造。  我及世间是他造。  我及世间是亦自造亦他造。  我及世间是非自造非他造,忽然而生也。  乐与苦是常住。  乐与苦是无常。  乐与苦是亦常亦无常。  乐与苦是非常非无常。  乐与苦是自造。   乐与苦是他造。  乐与苦是亦自造亦他造。  乐与苦是非自造非他造,乃忽然而生。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我至彼等处如是言:“友!汝云乐与苦是非自造非他造,乃忽然而生是事实乎?而彼等如斯言:“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世间有一类有情之异想者,于智我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而且我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者也。于是,周陀!凡有关过去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三七   周陀!凡有关未来见解之低处,其当说者,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周陀!某沙门、婆罗门有所说、有所见:“我是有色而死后为无病,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复次,周陀!某沙门、婆罗门有斯说、有斯见:  “我是无色……  我是亦有色亦无色……  我是非有色非无色……  我是有想……  我是无想……  我是非有想非无想……  我将被消灭、破坏,死后不存在,唯此为真实,其他是处伪。” 三八   于是,周陀!彼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我是有色而死后为无病,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我至彼等处,如是言:“友!汝云我是有色而死后为无病,是事实乎?”于彼等如是言:“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我于智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而且周陀!我对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也。 三九   于此,周陀!彼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  “我是无色……乃至……  我是亦有色亦无色……乃至……  我是非有色非无色……乃至……  我是有想……  我是无想……  我是非有想非无想……  我将被消灭、破坏,死后不存在,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  我至彼等处,如是言:“友!汝云我将被消灭、破坏,死后不存在,是事实耶?”周陀!彼等云:“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凡世间有一类有情之异想,周陀!我于知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而且我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者也。周陀!凡有关未来见解之依处,其当说者,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四十    周陀!为舍有关此等过去见解之低处及有关未来见解之依处,为令知超越如是,我说示四念处。四[念处]者何耶?周陀!于此,有比丘于身观身而住,热诚而有正念正知,以断世间之贪、忧。于受……于心……于法观身而住,热诚而有正念正知,以断世间之贪、忧。周陀!为舍有关此等过去见解之依处及有关未来见解 之处,为令知超越如是,我说示此等之四念处。” 四一   其时,具寿宇拔越那立于世尊之后,以扇为世尊煽风,而且具寿宇拔越那,如次白世尊:  “稀有哉!世尊!未曾有哉!世尊!世尊!此法门实是清净也;世尊!此法门实甚清净。世尊!应何名此法门耶?”  “然者,宇拔越那!此法门名为清净,汝当受持之。”  世尊如是言已,具寿宇拔越那闻世尊之所说,欢喜、[受持]。 注:1 .原本为navam,于暹罗本有na vo从此而译之。2 .如何云云,于原本kim no aham……应订正为而读。3 .原本于次有“对汝等不该说”一句,今依异本除去此句,下于第三七节之初处亦然。  
329    여래는 왜서 이 세상에 출현하는가? 댓글:  조회:2524  추천:69  2008-10-29
1240. 삼법경(三法經)8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바사닉왕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온 세상에서 좋아하지 않는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늙음․병듦․죽음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은 온 세상 누구나 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세상이 좋아하지 않는 이 세 가지 법이 없었더라면 모든 불세존께서는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을 것이요, 또 세상 사람들도 모든 불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을 사람들을 위해 널리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좋아하지 않는 세 가지 법인 늙음․병듦․죽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불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셨고, 또 세상 사람들도 모든 불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을 널리 연설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사닉왕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 쪽에 물러나 앉아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부처님께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대왕이여,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좋아하지 않는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나니, 그것은 늙음․병듦․죽음입니다.……(내지)……세상 사람들도 여래가 깨달은 법을 사람들을 위해 널리 연설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 타고 다니는 보배 수레도 결국에는 낡아 부서질 것이니 이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변하고 바뀌어 마침내는 늙고 말 것입니다. 오직 여래의 바른 법만은 쇠하거나 늙는 모양 없나니 그 바른 법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안온한 곳으로 가게 되리. 다만 범부들은 쇠하고 늙어져 추하고 더러운 나쁜 모습으로 변하리니 쇠하고 늙음을 밟고 또 밟는 것은 도깨비에 홀린 어리석은 범부의 마음이라네. 사람이 비록 백 살을 살더라도 죽음이 닥칠까 언제나 걱정하고 늙고 병듦을 다투어 좇으면 틈을 엿보다가 곧 해를 끼치리.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바사닉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85)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4권 5번째 소경과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18권 제26 사의단품(四意斷品) 6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一二四○)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時。波斯匿王獨靜思惟。作是念。此有三法。一切世間所不愛念。何等為三。謂老.病.死。如是三法。一切世間所不愛念。若無此三法世間所不愛者。諸佛世尊不出於世。世間亦不知有諸佛如來所覺知法為人廣說。以有此三法世間所不愛念。謂老.病.死故。諸佛如來出興於世。世間知有諸佛如來所覺知法廣宣說者。波斯匿王作是念已。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以其所念。廣白世尊 佛告波斯匿王。如是。大王。如是。大王。此有三法。世間所不愛念。謂老.病.死。乃至世間知有如來所覺知法為人廣說。爾時。世尊復說偈言  王所乘寶車  終歸有朽壞 此身亦復然  遷移會歸老 唯如來正法  無有衰老相 稟斯正法者  永到安隱處 但凡鄙衰老  醜弊惡形類 衰老來踐蹈  迷魅愚夫心 若人壽百歲  常慮死隨至 老病競追逐  伺便輒加害  佛說此經已。波斯匿王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
1238. 불방일경(不放逸經) ① 83) 83)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4권 3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바사닉왕은 혼자 고요히 사색하고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의 바른 법은 현재 세상에서 모든 번뇌를 여의고, 시절(時節)을 기다리지 않고, 통달하여 밝게 보고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증지(證知)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좋은 벗이고 좋은 짝이요, 나쁜 벗이 아니고 나쁜 짝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리고는 한 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조용히 사색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세존의 바른 법은 현재 세상에서 모든 번뇌를 여의고,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통달하여 밝게 보고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좋은 벗이고 좋은 짝이요, 나쁜 벗이 아니고 나쁜 짝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세존의 바른 법은 현재 세상에서 모든 번뇌를 여의고,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통달하여 밝게 보고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좋은 벗이고 좋은 짝이요, 나쁜 벗이 아니고 나쁜 짝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나는 좋은 벗이 되어 태어나는 법이 있는 중생들에게는 태어나는 법에서 해탈하게 해주고, 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고통이 있는 중생들에게는 그런 것에서 다 해탈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나는 어느 때 왕사성 어느 산 골에 있는 정사에 있었습니다. 그 때 아난다 비구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범행(梵行)을 하는 것에 있어 절반은, 좋은 벗․좋은 짝과 사귀는 것이요 나쁜 벗․나쁜 짝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내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조용히 사색하다가 (범행을 하는 것에 있어 절반은 좋은 벗․좋은 짝과 사귀는 것이요, 나쁜 벗․나쁜 짝과 사귀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 때 '아난아, (범행을 하는 것에 있어 절반은 좋은 벗․좋은 짝과 사귀는 것이요, 나쁜 벗․나쁜 짝과 사귀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런 말은 하지 말라. 왜냐하면 순일하고 원만하게 청정해지는 범행의 청백(淸白)함을 아주 순수하고 완전하게 깨끗해지도록 하는 것이 이른바 좋은 벗․좋은 짝과 사귀는 것이요, 나쁜 벗․나쁜 짝과 사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나는 언제나 모든 중생의 좋은 벗이 되기 때문이니, 저 중생들에게는 생겨남이 있기 때문에 세존의 바른 법을 알면 현재 세상에서 그들로 하여금 생겨남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고통이 있으면, 그 모든 번뇌를 여의게 하여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 세상에서 그 고뇌를 벗어나게 해주어서 보고 통달하고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곧 좋은 벗․좋은 짝과 사귀는 것이요, 나쁜 벗․나쁜 짝과 사귀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방일하지 않음을 찬탄하는 것 그것은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이다. 선정을 닦아 방일하지 않으면 모든 번뇌 밝게 알아 증득하게 되리.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바사닉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一二三八)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時。波斯匿王獨靜思惟。作是念。世尊正法。現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自覺證知此法。是善知識.善伴黨。非是惡知識.惡伴黨。作是念已。往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獨靜思惟。作是念。世尊正法。現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自覺證知。是則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佛告波斯匿王。如是。大王。如是。大王。世尊正法.律。現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緣自覺知。是則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所以者何。我為善知識。眾生有生法者。解脫於生。眾生有老.病.死.憂.悲.惱苦者。悉令解脫 大王。我於一時住王舍城山谷精舍。時。阿難陀比丘獨靜思惟。作是念。半梵行者是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作是念已。來詣我所。稽首我足。退坐一面。白我言。世尊。我獨靜思惟。作是念。半梵行者是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我時告言。阿難。莫作是語。半梵行者是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所以者何。純一滿淨。梵行清白。謂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所以者何。我常為諸眾生作善知識。其諸眾生有生故。當知世尊正法。現法令脫於生。有老.病.死.憂.悲.惱苦者。離諸熾然。不待時節。現令脫惱苦。見通達。自覺證知。是則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爾時。世尊即說偈言  讚歎不放逸  是則佛正教 修禪不放逸  逮得證諸漏  佛說此經已。波斯匿王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
327    1166. 수족유경(手足喩經) 손이 있어 잡고 발이 있으니 걷는다. 댓글:  조회:2129  추천:97  2008-10-25
1166. 수족유경(手足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이 있기 때문에 잡고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발이 있기 때문에 가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며, 관절(關節)이 있기 때문에 굽히고 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배가 있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눈이 있기 때문에 눈이 사물과 접촉함을 인연해 생기는 안에서의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이 생긴다.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비구들아, 만일 손이 없으면 취하고 버림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발이 없으면 가고 옴을 알지 못할 것이며, 관절이 없으면 굽히고 폄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배가 없으면 배고프고 목마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만일 눈이 없으면 눈이 사물과 접촉함을 인연해 생기는 안에서의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이 없을 것이다. 귀․코․혀․몸․뜻도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一一六六) 如是我聞 一時。佛住拘睒彌國瞿師羅園 爾時。世尊告諸比丘。有手故知有取捨。有足故知有往來。有關節故知有屈伸。有腹故知有飢渴。如是。比丘。有眼故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耳.鼻.舌.身.意亦復如是 諸比丘。若無手則不知取捨。若無足則不知往來。若無關節則不知有屈伸。若無腹則不知有飢渴。如是。諸比丘。若無眼則無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耳.鼻.舌.身.意亦復如是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26    충남 대동면 백룡암풍경 댓글:  조회:2673  추천:90  2008-10-17
 2008년 10월 11일 동대구를 거쳐 충남 대동면에 있는 백용암으로 가게 되였다.  대동에 도착하여 바라본 신어산-- 오른켠 골짜기 한 중턱에 백용암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중턱의 울창한 수림속 한가운데 사찰이 있는데 유래깊은 사찰의 토굴암이다.  우불구불 가파로운 산길  돌아다 보면.... 보통승용차는 오르기 어려운 가파로운 산길이다. 걸어서 올라오는 것도 발목이 경사도에 꺽여 무지 힘든 산길.  산을 오를수록 하늘은 더욱 맑아....  드디여 백용암프랑카드가 보이는데-- 마음을 맑게 세상을 향기롭게....  울창한 참대숲  인젠 여기도 서서히 가을단풍이 들기시작  토굴앞마당에서 바라본 낙동강너머 대동면 시가지  저녁해는 뉘엿뉘엿지고 즐비한 고층건물들이 서서히 저녁노을에 불타고 있었다.      대웅전내부--대웅전은 비가새여 다시 중건할 계획이다.  삼신각  산신각내부  백용암의 유래-- 불기492년으로 보아 한반도에 최초로 불교가 들어온 예가 되겠다.   이틑날아침 아침안개가 끼여 대동시가지를 덮어버려 몽롱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고요한 산속 토굴앞마당을 한가히 걸으면서....    백용암에서 본 대동시가지야경-- 저 산넘어 도시(부산)의 불빛이 하늘을 희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325    1108. 득안경(得眼經)若人懺而不受者。是愚癡人 댓글:  조회:2176  추천:81  2008-10-16
1108. 득안경(得眼經)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시고 정사(精舍)에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니사단(尼師壇)을 오른 어깨에 메고 안다림(安陀林)으로 들어가, 니사단을 펴고 어떤 나무 밑에 앉아 낮 선정에 들어가셨다. 그 때 기원(祗園)에서 두 비구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는데 한 사람이 꾸짖어도 한 사람은 잠자코 있었다. 그 꾸짖던 사람은 곧 뉘우치고 그에게 사과하였다. 그런데 그 비구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절 안에 있던 비구들이 서로 권하고 충고하느라고 고함을 치며 시끄러웠다. 그 때 세존께서는 사람 귀보다 뛰어난 깨끗한 천이(天耳)로 기원에서 시끄럽게 고함소리가 오가는 것을 들으셨다. 그 소리를 들으시고는 선정에서 깨어나 정사로 돌아와 대중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이른 아침에 걸식하고 돌아와 안다림으로 들어가 낮 선정에 들었다가 정사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누가 그렇게 하였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정사에서 두 비구가 싸웠는데, 한 비구는 꾸짖었으나 한 비구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 때 꾸짖던 비구가 이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였으나, 그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권하고 충고하느라 큰 소리가 나고 시끄러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어리석은 비구가 상대방이 뉘우치고 사과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상대가 뉘우치는데 그것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 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유익하지 못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비구들아, 과거 세상에 석제환인은 33천에서 싸움이 있었을 때, 이렇게 게송으로 가르치고 훈계하였다. 다른 사람을 해칠 마음 없으면 성냄도 또한 얽어매지 못하나니 원한을 품고 오래 두지 말고 성내는 마음에 머물지도 말라.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그 때문에 추한 말을 하지 말라. 구태여 남의 흠을 애써 찾아내어 그의 허점과 단점을 들추지 말고 항상 마땅히 스스로 단속하여 정의로써 안으로 반성하고 살펴라. 성내지도 말고 해치지도 말며 언제나 성현들과 함께 하여라. 악한 사람과 함께 있게 되더라도 마치 돌산처럼 강하고 굳세어라. 울화가 치밀어도 잘 참아내라 달리는 마차를 제어하는 것처럼 내가 말하는 훌륭한 마부란 고삐 잡은 이를 말하는 게 아니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석제환인은 33천의 자재왕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성내지 않는 것을 찬탄하였다. 너희들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있으니 성내지 않는 것을 찬탄하는 공부를 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一一○八)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乞食已。還精舍。舉衣鉢。洗足已。持尼師壇。著右肩上。至安陀林。布尼師壇。坐一樹下。入晝正受 爾時。祇桓中有兩比丘諍起。一人罵詈。一人默然。其罵詈者。即便改悔懺謝於彼。而彼比丘不受其懺。以不受懺故。時。精舍中眾多比丘共相勸諫。高聲鬧亂 爾時。世尊以淨天耳過於人耳。聞祇桓中高聲鬧亂。聞已。從禪覺。還精舍。於大眾前敷座而坐。告諸比丘。我今晨朝乞食。還至安陀林。坐禪人晝正受。聞精舍中高聲大聲。紛紜鬧亂。竟為是誰 比丘白佛。此精舍中有二比丘諍起。一比丘罵。一者默然。時。罵比丘尋向悔謝。而彼不受。緣不受故。多人勸諫。故致大聲。高聲鬧亂 佛告比丘。云何。比丘。愚癡之人。人向悔謝。不受其懺。若人懺而不受者。是愚癡人。長夜當得不饒益苦。諸比丘。過去世時。釋提桓因有三十三天共諍。說偈教誡言  於他無害心  瞋亦不纏結 懷恨不經久  於瞋以不住 雖復瞋恚盛  不發於麤言 不求彼開節  揚人之虛短 常當自防護  以義內省察 不怒亦不害  常與賢聖俱 若與惡人俱  剛彊猶山石 盛恚能自持  如制逸馬車 我說為善御  非謂執繩者  佛告諸比丘。釋提桓因於三十三天為自在王。常行忍辱。亦復讚歎行忍者。汝等比丘正信.非家.出家學道。當行忍辱。讚歎忍者。應當學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24    995. 아련야경(阿練若經) 아련야비구는.... 댓글:  조회:2570  추천:75  2008-10-01
995. 아련야경(阿練若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얼굴이 아주 잘생긴 어떤 천자(天子)가 새벽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는데, 그의 온몸에서 나오는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그 때 그 천자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련야(阿練若)의 비구8)는 텅 비고 한가한 곳에 머물면서 고요한 가운데 범행(梵行)을 닦고 하루 한 끼만을 먹고 있는데도 무슨 까닭으로 그 얼굴빛이 그리도 선명합니까?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지나간 일에 대해 근심이 없고 다가올 일에 대해 반겨하지 않으며 현재에는 얻는 그대로 따르고 바른 지혜로 생각을 매어 두며 먹는 것에도 생각을 거두었기에 얼굴빛이 언제나 곱고 밝다네. 다가올 일에 마음이 치달려 생각하고 지나간 일을 돌아보고 근심하고 뉘우치며 어리석음의 불로 제 자신을 태우는 것 마치 우박이 초목을 때림과 같네. 그 천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오래 전에 바라문을 보았는데 그 바라문은 반열반을 얻어 모든 두려움에서 이미 벗어났고 세상 은애까지 모두 벗어났네. 그 때 그 천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곧 사라지더니 나타나지 않았다. 7)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8) 아련야를 팔리어로는 ara a라고 한다. 번역하여 한림(閑林)․한정처(閑靜處)라고 하는데, 아려야 비구란 대중들과 떨어져 산 속의 굴이나 숲 속의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는 비구를 말한다. (九九五)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時。有一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時。彼天子而說偈問佛  阿練若比丘  住於空閑處 寂靜修梵行  於一坐而食 以何因緣故  顏色特鮮明  爾時。世尊說偈答言  於過去無憂  未來不欣樂 現在隨所得  正智繫念持 飯食繫念故  顏色常鮮澤 未來心馳想  過去追憂悔 愚癡火自煎  如雹斷生草  時。彼天子復說偈言  久見婆羅門  逮得般涅槃 一切怖已過  永超世恩愛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
323    창밖의 감은 익었네 댓글:  조회:3569  추천:113  2008-10-01
  보리수선원 앞마당의 홍시나무  감은 납작한 반면 홍시는 길쭉~   사진은 래일이면 당장 따 먹을수 있는 홍시!  홍시보다 감이 먼저 익었고 달기는 감이 더 단것같았지만 사람들은 홍시를 먹기를 더욱 좋아한다. 특히 홍시는 아침 공복에 먹으면 심장에 좋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닿일 정도로 아주 낮게 달린 주렁주렁 홍시들...  잘 익은 홍시    감나무는 키가 컸고 감은 대부분이 높은 곳에 달려있었다. 가지끝에 달린 잘 익은 감은 어찌 뜯을 방법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깐 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선원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을 몇개 따서 조심스레 스님방을 노크했다... 스님께서 감을 보시더니 반갑게 웃으면서 손으로 살짝 눌러 보시고 잘 익었구나 하고는 이내 말씀하셨다. 주인하고 얘기를 하고 뜯었는냐고... 감은 무르익어 땅에 떨어지도록 뜯는 사람이 없어 제가 대신 몇개를 뜯어 아래집아저씨한테도 드렸다고 얘기했다....스님께서 창밖을 내다 보시더니 이후에는 저 앞마당의 할머니하고 얘기를 하고 뜯으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는 감을 사양했다. ... 내가 방에 두고 드시라고 하니 출가자는 방에다 음식을 두지 않는다고 상냥히 말씀하신다...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당황해났다. 출가자로서 철저히 계를 지키는 스님께 비긴다면 나는 아직도 너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지금 내 방에는 먹을것이 있지 않는가... 물론 어느 보살님이 갖다 놓은것이게겠지만....  스님은 하루일식외에 군음식을 절대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미얀마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한국에 돌아오셔서 환경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두타행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지금 할수 있는 일은 하루일식밖에 없다면서 그것만은 철저히 지키는 스님이시다.... 
322    업으로 보는 상업의 성공과 실패 댓글:  조회:2737  추천:83  2008-09-27
9 - 상업을 설한 경 79∥ 그때에 사리뿟따 존자께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께 예배한 뒤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실패에 이르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넘어서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과 바라문을1)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공양 올리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실패에 이른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과 바라문을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원하는 것만큼 공양 올리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과 바라문을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원하는 것만큼 공양 올린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는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 바라문을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원하는 만큼 보다 많이 공양 올린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넘어선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실패에 이르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넘어서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아홉 번째 경
321    상인이 재물을 증장시키는 방법 댓글:  조회:2657  추천:87  2008-09-25
9 - 첫 번째 상인과 연관된 경 19∥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1)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또는 얻은 재물을 증장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어떤 상인은 오전에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하지 않는다. 낮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하지 않는다. 저녁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하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또는 얻은 재물을 증식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善을 얻고 또는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이 가르침에서 빅쿠는 오전에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물지 않는다. 낮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물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이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을 얻고 또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또 얻은 재물을 증장시키기에 적합하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어떤 상인은 오전에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한다. 낮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한다. 저녁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한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혹은 얻은 재물을 증식시키기에 적합하다. 빅쿠들이여! 이와 같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을 얻고 또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빅쿠는 오전에 사마디의 대상에2) 훌륭히 머문다. 낮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문다. 저녁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문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이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을 얻고 또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다.[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아홉 번째 경 10 - 두 번째 상인과 연관된 경 20∥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물이 증장하고 번창하게 된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어떤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다. 노력이 있다.3)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훌륭한 상인은 ‘이 물품은 이같이 사서 이같이 판다면 기본 투자와 이익은 어느 정도일 것이다’라고 팔아야하는 물건을 잘 안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상인은 노력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훌륭한 상인은 팔아야하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능숙하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상인은 노력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의지처를 구족하였는가? 빅쿠들이여! 어떤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소유물을 지닌 장자 혹은 장자의 아들들이 ‘이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고 노력하고 있다. 처자식을 부양하며 또한 우리들에게 적절한 때에 이자를 줄만한 능력이 있다’라고 안다. 장자 혹은 장자의 아들들은 그 상인에게 ‘친구 상인이여! 나에게서 이 물품들을 가져가서 처자식을 부양하게나! 나에게도 적절한 때에 이자를 주게나!’라고 팔 물품을 권한다.4)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상인은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이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물이 많아지고 번창하게 된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세 가지의 법을 구족한 빅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善이 증가하고 번창하게 된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이 가르침에서 빅쿠는 지혜의 눈이 있다. 노력이 있다.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빅쿠는 지혜의 눈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빅쿠는 ‘모든 삼계의 법은 고통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이 갈애는 고통이 일어나는 근원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이 열반은 고통이 소멸한 곳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팔정도의 법은 열반에 이르게 하는 행도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빅쿠는 지혜의 눈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빅쿠는 노력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이 가르침에서 빅쿠는 불선을 제거하고 선을 완성시키기 위한 힘과 굳건한 정진력과 선을 행하는 의무를 포기하지 않는다.5)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빅쿠는 노력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빅쿠는 의지처를 구족하였는가? 빅쿠들이여!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많은 견문을 지녔고 경을 능숙하게 암송하며 경논經論 율을 보유한 빅쿠들에게 적당한 때마다 친견하여 “존자시여! 이 경은 무엇입니까? 이 경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6) 숙고하여 검토한다.7) 많은 지식을 가진 존자들은 그 빅쿠에게 열려있지 않은 것도 열어서 보인다.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자리 역시 선명히 드러내 보인다. 갖가지 의혹을 가진 법에서도 의혹을 제거시킨다. 빅쿠들이여! 이와 같이 빅쿠는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법을 구족한 빅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이 증가하고 번창하게 된다.[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열 번째 경 (두 번째 마차를 만드는 장인과 연관된 경) 첫 번째 바나와라는8) 끝났다. 강종미역 <앙굿따라 니까야> 에서 발취.
320    영인산에서 도토리밤따기 댓글:  조회:2979  추천:89  2008-09-24
   추석에 영인산을 올랐었다. 한국은 도토리와 밤이 무지 많았다. 어릴때부터 도토리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옛날에 어르신님들이 많이 먹었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지 도토리가 무슨 맛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몸소 몇개 따서 먹으니 텁텁하고 쓰겁기도 했는데 간혹 먹을만한것도 있기는 있었다..... 북한산을 오르면서 길옆 마차에서 도토리묵을 파는 것도 보았다. 한번 먹어보구싶은 충동도 있었지만 혼자라서 ....ㅎㅎㅎ      영인산정상에서 애들과 함께 밤을 뜯고있는 단란한  한가족식구  고슴도치처럼 가시로 싸여있어 어찌 손을 댈 방법이 없었다. 개와 여우가 고슴도치를 어찌할 방법이 없음이 느껴졌다.ㅎㅎㅎ  그것을 발로 짓개여 따개보니 아직 물이 들지 않는 밤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시에 손을 찔리가봐 조심조심 꺼내서 먹어보니 참 구수하다.... 밤을 많이 먹어보았지만 이렇게 생긴것인줄은 오늘에야 알았다....ㅎㅎㅎ
319    북한산 백운대에서 본 서울야경 댓글:  조회:2683  추천:99  2008-09-17
                 
318    769. 바라문경(婆羅門經) 대승이란.... 댓글:  조회:2983  추천:77  2008-09-13
769.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5) Giribbaja라고 하며, 왕사성(王舍城)의 옛 성을 말함. 그 때 존자 아난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려고 하였다. 그 때 흰 마차를 탄 어떤 생문(生聞) 바라문이 있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좌우에서 그를 따랐다. 그는 늘 흰 말․흰 수레․흰 고삐․흰 채찍을 사용하였고, 머리에는 흰 모자를 쓰고 흰 일산을 썼으며, 손에는 흰 총채를 잡고 흰 옷을 입고 흰 영락(瓔珞)을 걸쳤으며, 흰 향(香)을 몸에 바르는 등 모두 흰 빛깔을 선호하였다. 가르침을 듣고 읽고 외우기 위해 사위성을 나와 숲 속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말하기를 '훌륭한 수레구나, 훌륭한 수레구나. 범천의 수레[婆羅門乘]6)라고 할만하구나'라고 하였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바라문의 권속들과 모든 차림들이 온통 흰 빛깔인 것을 보고는,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 정사로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이른 새벽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사위성으로 들어가다가 생문 바라문이 흰 마차를 탔는데, 그 권속들과 모든 차림들이 온통 흰 빛깔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훌륭한 수레구나, 훌륭한 수레구나. 범천의 수레라 할만하구나'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우리는 바른 법(法)과 율(律)에서는 그런 것을 세속 사람의 수레라고 합니까, 아니면 범천의 수레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세속 사람의 수레요, 우리의 법과 율이나 범천의 수레는 아니다. 아난아, 우리의 바른 법과 율의 수레는 하늘 수레․범천 수레․큰 수레[大乘]로서 번뇌의 군사를 능히 항복 받는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아난아, 어떤 것을 우리의 바른 법과 율의 수레․하늘 수레․범천 수레․큰 수레로서 번뇌의 군사를 능히 항복 받는다고 하는가? 그것은 이른바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니, 즉 바른 견해와 ……(내지)……바른 선정을 말한다. 아난아, 이것을 '바른 법과 율의 수레․하늘 수레․범천 수레․큰 수레로서 번뇌의 군사를 능히 항복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믿음과 계율로 법의 굴레를 삼고 부끄러워함[?愧]으로 긴 고삐를 삼아 바른 생각으로 잘 지켜 가지면 그를 일러 훌륭한 제어자라고 하느니라. 평정과 삼매로 멍에를 삼고 지혜와 정진으로 바퀴를 삼으며 집착 없음과 참음으로 갑옷을 삼으면 안온하고 법답게 행할 수 있다. 바로 곧게 나아가 물러나지 않고 근심 없는 곳으로 아주 가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싸움의 수레 탔더라도 지혜 없는 원수를 무찔러 항복 받네. 6) brahmay na라고 함. Brahma는 통상적으로 범(梵) 즉 범천으로 번역되며, br hma a는 바라문(婆羅門) 즉 바라문 종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brahmay na는 범승(梵乘)으로 번역해야 마땅하다. 고대 인도인들은 범천(梵天)에 올라갈 수 있는 법을 범행(梵行) 또는 범승(梵乘)이라고 하였다. (七六九)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尊者阿難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 時。有生聞婆羅門乘白馬車。眾多年少翼從。白馬.白車.白控.白鞭。頭著白帽.白傘蓋。手執白拂。著白衣服.白瓔珞。白香塗身。翼從皆白。出舍衛城。欲至林中教授讀誦。眾人見之咸言。善乘。善乘。謂婆羅門乘 時。尊者阿難見婆羅門眷屬.眾具一切皆白。見已。入城乞食。還精舍。舉衣鉢。洗足已。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今日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見生聞婆羅門乘白馬車。眷屬.眾具一切皆白。眾人唱言。善乘。善乘。謂婆羅門乘。云何。世尊。於正法.律。為是世人乘。為是婆羅門乘 佛告阿難。是世人乘。非我法.律婆羅門乘也。阿難。我正法.律乘.天乘.婆羅門乘.大乘。能調伏煩惱軍者。諦聽。善思。當為汝說。阿難。何等為正法.律乘.天乘.婆羅門乘.大乘。能調伏煩惱軍者。謂八正道。正見。乃至正定。阿難。是名正法.律乘.天乘.梵乘.大乘。能調伏煩惱軍者 爾時。世尊即說偈言  信戒為法軛  慚愧為長縻 正念善護持  以為善御者 捨三昧為轅  智慧精進輪 無著忍辱鎧  安隱如法行 直進不退還  永之無憂處 智士乘戰車  摧伏無智怨    //
317    727. 구이나갈경(拘夷懦竭經) 정진 댓글:  조회:2079  추천:69  2008-09-12
 727. 구이나갈경(拘夷懦竭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역사(力士)라고 하는 마을을 유행하시다가 구이나갈성(拘夷那竭城)과 희련하(希連河) 중간에 머무시면서, 그 마을 옆에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 울다라승(鬱多羅僧)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아라. 나는 지금 등이 아파 잠깐 누워서 쉬어야겠다.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곧 울다라승을 네 겹으로 접어 깔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울다라승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았습니다. 세존께서는 때를 아시옵소서. 그 때 세존께서 승가리(僧伽梨)를 두텁게 접어 머리에 베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시고 생각을 밝은 모양에 두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깨달음의 생각을 가지신 뒤에,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7각지를 설명해보아라. 그러자 존자 아난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염각지는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신 뒤에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욕심 없음에 의존하며, 소멸에 의존하고, 버림으로 회향한다[向於捨]'고 말씀하신 바로 그 것입니다. 택법각지․정진각지․희각지․의각지․정각지․사각지도,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을 이루신 뒤에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욕심 없음에 의존하며, 소멸에 의존하고, 버림으로 회향한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정진을 설명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정진을 설명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정진을 설명하였습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정진만이라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몸을 바르게 하시고 단정히 앉아 삼매에 드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곧 게송으로 말했다. 아름답고 묘한 법 즐겨 들으시려고 병환을 참고 남을 시켜 말하게 하자 비구는 분부 받고 곧 법을 설하여 7가지를 하나하나 설명하였네. 장하여라, 존자 아난이여, 밝은 지혜와 묘한 말솜씨와 훌륭하고 깨끗한 법을 가지고 더러움을 여의는 미묘한 말씀이었네. 염각지․택법각지․정진각지와 희각지․의각지․정각지․사각지 이것이 바로 7각지[覺分]로서 미묘한 좋은 진리의 말씀이라네. 7각지에 대한 설명 듣고 바른 깨달음의 맛 깊게 알게 하고자 몸은 비록 큰 고통을 더하더라도 아픔을 참고 단정히 앉아 들으셨네. 바른 법을 관하여 법의 왕 되어서도 언제나 남을 위해 연설하시고 그리고도 남의 설법 즐겨 들으시거니 하물며 그 법 듣지 못한 다른 사람이겠느냐. 비록 으뜸가는 큰 지혜 있고 열 가지 힘 가지고 존경을 받는 사람 그도 또한 마땅히 빨리 서둘러 여기 와서 바른 법 들어야 하리. 많이 들어 아는 것 많은 사람으로서 경전과 아비담을 환히 알고 법과 율에 깊이 잘 통달한 이도 이 법을 들어야 하겠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느냐. 참다운 그 법의 연설을 듣되 오롯한 마음과 지혜로써 들으면 부처님 말씀하신 그 법 안에서 탐욕을 여의고 기쁨을 얻으리라. 기쁨을 얻으면 몸도 편히 쉬게 되고 그와 같이 마음도 스스로 즐거우며 마음이 즐거우면 선정을 얻게 되어 바르게 관찰하여 일을 행하리라. 세 가지 세계 싫어하고 미워하면 탐욕을 여의어 마음이 해탈하고 모든 존재의 세계 싫어하고 미워하면 인간이나 천상에는 태어나지 않으리니 등불이 꺼진 듯 남음이 없어 마침내 반열반(般涅槃)에 들리라. 가장 훌륭한 진리 말씀하시는 그 법을 들으면 복과 이익 많으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오롯한 생각으로 이 대사(大師)의 말씀을 들어라. 그 비구는 이 게송을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728. 설경(說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7각지[覺分]가 있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염각지와 …… (내지)……사각지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七二七) 如是我聞 一時。佛在力士聚落人間遊行。於拘夷那竭城希連河中間住。於聚落側告尊者阿難。令四重襞疊敷世尊鬱多羅僧。我今背疾。欲小臥息 尊者阿難即受教敕。四重襞疊敷鬱多羅僧已。白佛言。世尊。已四重襞疊敷鬱多羅僧。唯世尊知時 爾時。世尊厚襞僧伽梨枕頭。右脅而臥。足足相累。繫念明相。正念正智。作起覺想。告尊者阿難。汝說七覺分 時。尊者阿難即白佛言。世尊。所謂念覺分。世尊自覺成等正覺。說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擇法.精進.喜.猗.定.捨覺分。世尊自覺成等正覺。說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 佛告阿難。汝說精進耶 阿難白佛。我說精進。世尊。說精進。善逝 佛告阿難。唯精進。修習多修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說是語已。正坐端身繫念 時。有異比丘即說偈言  樂聞美妙法  忍疾告人說 比丘即說法  轉於七覺分 善哉尊阿難  明解巧便說 有勝白淨法  離垢微妙說 念.擇法.精進.  喜.猗.定.捨覺 此則七覺分  微妙之善說 聞說七覺分  深達正覺味 身嬰大苦患  忍疾端坐聽           嬰   ying1   頸飾也 觀為正法王  常為人演說 猶樂聞所說  況餘未聞者 第一大智慧  十力所禮者 彼亦應疾疾  來聽說正法 諸多聞通達  契經阿毘曇 善通法律者  應聽況餘者 聞說如實法  專心黠慧聽 於佛所說法  得離欲歡喜 歡喜身猗息  心自樂亦然 心樂得正受  正觀有事行 厭惡三趣者  離欲心解脫 厭惡諸有趣  不集於人天 無餘猶燈滅  究竟般涅槃 聞法多福利  最勝之所說 是故當專思  聽大師所說  異比丘說此偈已。從座起而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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