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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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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의 집안래력
2014년 01월 19일 13시 21분  조회:5911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등소평의 집안래력


 
 
본적이 사천성 광안현인 등소평은 집안도 아주 훌륭한 편이였다. 조상들중에 진사에 합격한 인물도 있고 대리사정경(지금의 사법부 부장)을 력임한 사람도 있다.

1989년에 사천성 광안현 협흥향 패방촌(등소평의 고향)에 있는 등소평의 사촌집에서 “등씨가보”라는 족보가 발견되였다. (이 족보에는 적장자 직계혈통만 있기때문에 방계인 등소평집안의 직접적인 족보는 아님)

“등씨가보”와 “광안주신지”의 기록에 의하면 등소평의 집안은 명대초기부터 시작되였다. 그의 조상은 명대초기의 병부원외랑 등학헌이고 원적은 강서성 길안부(吉安府) 여릉현이다.

명태조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였을 때 사천 등 서남지역은 여전히 평정되지 않고있었다. 등학헌은 홍무13년(1380년)에 황명을 받들고 사천지역에 들어갔다. 전란이 평정된 후에 사천지역의 인구는 줄어들고 토지는 피페하여 주원장은 많은 사람들을 사천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이에 등학헌도 가족들을 데리고 사천으로 이주하여 광안의 요평리(지금의 광안현 패방촌)에 정착하였다.

등소평의 딸 등용이 지은 《나의 아버지 등소평》에서는 상술한 “등씨가보”와 “광안주신지”
를 고증한 결과 명대에 등씨집안조상중 8대조 등사렴과 그의 형제 등사창이 진사출신이라 밝혔다.

등사렴은 명조말기 숭정년간에 진사에 합격하여 광동해양령과 리부시랑을 력임하였으며 명조말기에 청나라군대가 중원을 점령하여 명나라의 잔존세력이 서남으로 갔을 때에는 주계왕을 따라 운남으로 갔다. 18년후 그는 다른 41명의 대신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등사창은 명대 만력년간에 진사에 급제하여 남경호부주사를 력임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절강처주부의 지부로 승진되였다. 그후 다시 호광안찰사부사로 발탁되였다가 탄핵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청대에 이르러 등씨집안은 극도로 기울어졌다. 건륭원년에 진사에 급제한 등시민외에 벼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등시민은 진사에 급제한 후에 한림원에 들어가 편찬을 맡았다. 그후 그는 시강학사, 통정사부사를 거쳐 건륭10년에는 대리사정경에 올랐다가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마도 명청시기를 통털어 등씨집안에서 관직이 가장 높았던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후로 등씨집안은 점점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더욱 기울어져갔다.

등소평의 아버지 등소창은 두명의 소작농을 거느린 소지주였다. 등소창은 일찍이 사천의 비밀단체 “가로회”의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지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는데 항상 마을사람들의 어려움과 근심을 해결해주군 하였다. 당시에 사천지역에서 일어난 많은 반청운동은 그곳의 최대세력이였던 “가로회”가 주동하였으므로 등소창도 단장의 한사람으로 그 운동에 가담하였을것이다.

등용의 기록에 의하면 등소창은 1914년에 광안현 단련국장을 력임하였다가 사직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향장을 력임하였다고 한다. 등소창은 등씨집안의 3대독자였기때문에 4명의 안해와 결혼하여 9남매를 두었으나 4남 3녀만 살아남았다. 등소창은 13세때 첫째부인 장씨와 결혼하였으나 장씨가 병사하여 후손을 보지 못하였다. 15세때 다시 둘째부인 담씨와 결혼하였는데 이 담씨가 바로 등소평의 생모이다. 담씨는 모두 3남 2녀를 낳았는데 첫째가 장녀 선렬, 둘째가 큰아들 선성(즉 등소평), 셋째가 둘째딸 선진(10여세 때 병사했음), 넷째가 둘째아들 선수(즉 등간), 다섯째가 셋째아들 선치(즉 등촉평)이다.
 
1926년에 등소평이 프랑스로 간 뒤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담씨는 자식생각에 세월을 보내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등소창의 셋째부인 소씨는 등씨집안의 여섯째인 넷째아들 등선청을 낳은 뒤에 병사하였다. 그후 등소창은 다시 넷째부인 하백근과 결혼하여 3명의 딸을 낳았는데 일곱째가 셋째딸 선부, 여덟째가 넷째딸 선용(10여세 때 병사했음), 아홉째가 다섯째딸 선군이다.

하백근은 49년부터 줄곧 등소평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그녀가 바로 등소창자녀의 실질적인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등소평의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각급 정부나 군대에서 요직을 맡았다.

등소평의 동생 등간은 1937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기자를 력임하였고 49년이후에는 중경시 부시장, 무한시 부시장, 호북성 부성장을 력임하였다.

등소평의 녀동생 선부는 국가기관의 기밀사업에 종사하다 퇴직한 후에는 사천성 정협위원을 력임하였다. 그녀의 남편 장중인은 사천성당안국 국장을 력임하였다. 등용의 말에 의하면 그는 충직하면서도 근면성실하여 장모 하백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등소평의 막내 녀동생 선군은 할빈군사공정학원을 졸업한 후에 줄곧 군대에서 근무하면서 해방군총정치부 공작부 부장을 력임하였다. 그녀는 몇명 안되는 녀자소장중의 한 사람으로 남편 률전명과는 할빈 군사공정학원의 동기생이다. 률전명은 해방군 제2포병부대의 부사령관을 력임한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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