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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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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키스칸의 관을 열어본 유일한 사람
2014년 02월 23일 11시 06분  조회:6706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칭키스칸의 관을 열어본 유일한 사람
 
 

칭키스칸(칭기즈칸—成吉思汗)은 몽골족의 걸출한 정치가, 군사가이며 원나라를 건립한 민족영웅이다. 그는 기원 1277년 서하로 진격하던 도중 65세를 일기로 돌연 병사했다. 칭키스칸이 죽은 뒤 부하들은 몽골족의 풍속에 따라 그의 시신을 밀장했는데 오늘날까지도 칭키스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후 사람들은 력사기록에 따라 여러군데를 조사하다가 오늘날의 성릉(成陵)을 칭키스칸릉으로 정했다. 항일전쟁시기 중국공산당은 칭키스칸릉이 일본 침략군에게 도굴될것을 우려하여 칭키스칸의 릉침을 성릉으로부터 꺼내어 유림, 연안 등지를 거쳐 섬북고원남측에 위치한 황제릉에 암장해놓자는 비밀결정을 내렸다. 이 작업은 치밀한 안배끝에 극비리에 안전하게 진행되였다.






 

칭키스칸 릉침은 그후 몇년동안 황제릉에 암장돼있다가 항일전쟁승리후에야 다시 오늘날의 성릉으로 옮겨오게 된것이다. 이는 당시 국가 최고기밀의 하나로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50년대 초, 우란후(울란부—乌兰夫)국무원 부총리(몽골족)가 칭키스칸릉을 참배하던 중 문뜩 릉을 지키고있는 수위에게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위는 부총리의 부탁이면 모두 들어줄수 있다고 깎듯이 말했다. 이때 우란후부총리는 잠깐 망설이다가 “칭키스칸의 관을 열어봐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불의의 질문에 흠칫 놀란 수위는 조금 주저하다가 “물론 볼수 있습니다. 오늘날 당신도 역시 몽골인의 칸이니깐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우란후부총리는 관이 안치된 밀실로 들어갔다.




 

칭키스칸릉 밀실내의 관에 칭키스칸본인의 유골이 담겨져있는지, 아니면 단지 칭키스칸의 의관뿐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민간에서는 또한 칭키스칸 관내에 두개의 말등자가 놓여있다는 소문도 떠돌고있었으나 이 모든것은 단지 세인들의 추측일뿐이지 실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우란후부총리는 관을 연후 무엇을 보았을가? 정말로 칭키스칸의 유골은 존재했을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수위가 밝힌데 따르면 밀실에서 걸어나오는 우란후부총리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다고 한다. 무엇이 있었는가 하는 수위의 질문에 우란후부총리는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았고 수위도 더이상 감히 묻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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