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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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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묻노라 정이란 무엇이길래
2014년 03월 08일 08시 29분  조회:7098  추천:2  작성자: 넉두리

하늘에 묻노라 정이란 무엇이길래
 

—경요의 애틋하고 눈물겨운 사랑이야기





 
 
대만의 저명한 작가 경요(琼瑶)는 원명이 진철(陈喆)이다. 경요외에 심여, 봉황 등 필명을 썼다. 1938년 4월 20일에 사천성 성도의 한 지식분자의 가정에서 출생한 그녀는 4남매중에 맏이로 태여났는데 큰 남동생과는 오누이쌍둥이였다. 아버지 진치평은 대학교수였고 어머니 원행서는 학자가문의 출신이였다. 경요는 어릴때부터 중국고전문학에 매우 큰 흥취를 가졌고 9살 때 처녀작 《불쌍한 소청》을 《대공보》아동판에 발표했다. 그녀는 1949년에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갔다.
경요는 18살 때 자신의 어문선생과 첫사랑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25살이나 년상인 선생님에게 빠졌고 선생도 재능있고 정열적인 녀학생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세속의 비난을 면치 못했고 부모의 견결한 반대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부모와 사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한다락의 첫사랑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학시험에서 세번이나 미역국을 먹은후 경요는 대학을 갓 졸업한 영어선생 경균을 알게 되였다. 문학에 공동한 애호를 가지고있은 그들은 서로 사랑하여 자그마한 세집을 맡고 결혼까지 하였다. 얼마 안되여 경요는 임신하였는데 해산할 림박에 남편 경균은 류학을 떠나게 되였다. 1961년에 경요는 아들을 낳았는데 남편이 곁에 없어서 늘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 장편소설을 쓰군했다. 그런데 외국에 가서 나쁜 습성에 물이 든 경균은 대만에 돌아오자 문학창작을 포기하고 도박에 빠져버렸다. 나중에 그는 가정의 생활비까지 모두 도박판에 밀어넣었다. 1963년 7월에 경요는 자신의 첫사랑이야기를 다룬 장편애정소설 《창밖》을 《환관》잡지에 발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경균은 경요가 이따위 소설을 써서 자신을 망신시켜 친구들앞에서 얼굴을 들수 없게 했다고 질책했다. 1964년 봄에 경요는 경균과 리혼함으로써 고통스런 혼인을 결속지었다.
리혼후 경요는 창작에만 전념하여 또 한부의 장편애정소설을 《련합보》부간에 련재했다. 그 당시 그녀는 《환관》잡지사 사장이며 《련합보》부간의 주필인 평흠도를 알게 되였다. 그녀의 재주를 알아본 평흠도는 그녀를 이름난 녀류소설가로 배양하리라 마음먹었다. 그해 36살인 평흠도는 명망 높은 사장이며 큰 신문의 부간의 주필일뿐만아니라 편집, 번역, 음악 등 다방면에 정통한 다재다능한 인재였다. 평흠도의 고무를 받고 경요는 륙속 장편애정소설을 발표했다.
경요와 평흠도는 작품을 토론하고 인생을 담론하는 가운데서 서로 사랑의 감정이 움텄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이 감정을 가슴속에 깊이 감춰둬야만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평흠도는 안해가 있는 세아이의 아버지였기 때문이였다. 경요는 남의 남편을 빼앗아 그 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싶지 않았다. 그녀와 평흠도는 모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이 소중한 감정을 묵묵히 가슴속에 묻어두고만 있었다.
몇년후 경요의 자서전 장편애정소설을 각색한 영화 《창밖》이 방영되였다. 이 영화엔 경요의 부모가 딸의 첫사랑을 반대하는 장면이 그대로 묘사되여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난 그녀의 어머니는 몹시 노하여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내가 왜 이런 딸을 낳았나? 네가 책을 써서 부모를 욕하고도 부족하여 또 영화까지 찍어서 부모를 욕하느냐?”하고 노발대발하면서 그녀를 질책했다. 깜짝 놀란 경요는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옷자락을 부여잡고서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곁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평흠도 역시 깜짝 놀라서 경요의 부모를 위안하는 한편 경요를 부축하면서 가슴아픈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괴롭고 서러우며 절망적인 복잡한 감정에 울먹이던 경요는 의지할 언덕을 만나듯 그의 몸에 얼굴을 묻었다. 그도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 시각 그들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졌다.
어머니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단식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마음을 괴롭히고 량심의 가책을 받게 했다. 어머니가 단식한지 닷새째 되자 온집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5일동안이나 음식을 들지 않은 어머니는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이제 더 음식을 들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지만 모두가 속수무책이였다. 이 위급한 시각에 평흠도가 왔다. 평흠도는 손자를 리용하는 묘한 방법을 썼다. 경요의 6살난 아들더러 외할머니께 우유를 권하게 하고 다 같이 어머니의 침대앞에 무릎을 꿇고 애걸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외손자가 권하는 우유를 마셨다. 평흠도가 아니 왔더라면 어머니가 정말 사망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근심했던 경요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긴장했던 경요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위해 평흠도는 그녀와 그녀의 녀동생, 그리고 녀동생의 남자친구를 데리고 도심에 놀러갔다. 그러나 도중에 차사고가 나서 평흠도는 오른 쪽 발이 골절되여 오래동안 지팽이신세를 지게 되였다. 이 차사고로 하여 생명의 취약함을 느낀 두사람은 더는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경요는 기쁨과 고통의 모순속에서 늘 괴로와했다. 어느 한번 평흠도는 긴 사랑의 편지를 썼다면서 종이를 돌돌 말아서 경요에게 주었다. 그녀가 돌돌 만 종이를 풀어보니 종이의 길이가 3메터는 되였는데 종이에 아무런 글도 없었다. 다만 제일 아래끝에 서캐만큼 “평흠도”라고 썼을뿐이였다. 그녀는 하고싶은 말이 많고 많지만 쓸수 없는 그의 심정을 읽을수 있었다. 그녀는 해서는 안될 이 사랑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평흠도는 차를 몰고 경요를 데리고 대만의 저명한 풍경구인 우래로 놀러갔다. 차가 우래의 환산길을 천천히 달릴 때까지 묵묵히 앉아있던 경요는 긴 침묵을 깨뜨리며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영원히!”하고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그러자 평흠도는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즉시 차를 급정거했다. 그리고 차문을 열고 “어서 내려가!”하며 그녀를 떠밀었다. 그녀는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에게 떠밀려 차에서 내려왔다. 길 량옆은 모두 낭떠러지고 절벽이였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흠도는 시동을 걸고 미친듯이 절벽을 향해 차를 몰려고 시도했다. 대경실색한 그녀는 황급히 달려가 팔을 벌리고 차를 막아섰다. 그러자 평흠도는 식은 땀을 흘리며 재빨리 차를 급정거시켰다. 차는 절벽의 끝에 가서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후날 경요는 그때의 정경을 자신의 수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 창문유리를 사이두고 얼마나 오래동안 서로를 주시했는지 모른다. 내 의식속에서 그것은 100세기는 될 그렇게 오래고 긴 시간이였다. 그 순간 하늘도 없고 땅도 없고 세계도 없고 우주도 없었다. 오직 우리 둘만이 세상에 남아있을뿐이였다. 한 사람은 차안에서 내다보고 다른 한사람은 차밖에서 마주보고… 그리고 삶과 죽음만이 있을뿐이였다. 다음순간 그는 번개같이 차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이미 힘을 잃고 더는 몸을 지탱할수 없었다. 한발작만 더 뒤걸음치면 나는 절벽에 떨어질수 있었다. 그 시각 나는 아무런 고려도 없었다. 그가 절벽으로 차를 몬다면 내가 떨어져 그와 함께 죽은들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찰나에 그는 힘있게 내 손을 잡아당겼고 나는 그의 품에 와락 안겨버렸다… 낭떠러지에 서서 우리는 몸을 떨며 울었다. 그는 ‘당신이 없이 못살것 같았어. 차라리 죽는것이 낫다고 생각했지. 고통도 없이…’하고 말했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서야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 그는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사랑으로 죽고 살고 하다가 경요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눈물을 흘리며 정을 끊어버렸다. 두 사람은 각자의 책임을 생각하고 래세에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헤여졌다.
몇년이 지났다. 의연히 혼자 살고있는 경요앞에 양씨가 나타났다. 미국에 거주하고있는 양씨는 가문이 호화롭고 사람됨됨이가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경요가 리혼한지 얼마 안되였을 때 양씨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경요가 심정이 불쾌하여 의식적으로 그를 피했기에 그는 유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었다. 지금까지 양씨는 미혼으로 있었는데 다시 대만으로 왔다가 경요가 혼자사는것을 보고 용기를 내여 또 한번 그녀한테 사랑을 고백했다. 경요는 그의 진지한 사랑에 감동되였다. 그녀도 조용히 의탁할 곳을 갈망하고있었다. 양씨가 대만을 떠나려 할 림박에 그녀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이 결혼하려고 서두르고있을 즈음에 갑자기 평흠도가 나타났다. 평흠도는 안해와 성격이 맞지 않아 리혼했다고 경요에게 알려주었다. 평흠도를 다시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꿈을 꾸고있는것 같았고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기억들이 일시에 되살아나면서 자신들이 종래로 혜여진적이 없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그들이 절벽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스럽게 헤여진지 8년이나 되는 해였다. 그들의 진지한 사랑에 감동된 양씨는 그들의 사랑을 축복해주고는 묵묵히 혼자서 미국으로 떠났다.
3년후 이미 41살인 경요와 50살을 넘긴 평흠도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 되였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마침내 결합된것이다!
결혼후 그들은 늘 함께 있으며 그림자처럼 떨어질줄 몰랐다. 꿈을 찾는 소녀처럼 오래동안 헤매던 경요는 이제야 자신의 꿈을 찾은것만 같았다. 따라서 문학창작에서도 령감이 용암처럼 솟구쳐서 수많은 애정소설을 써냈다. 2002년에 평흠도는 백내장수술을 했는데 경요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를 보살펴주었다. 2003년에 평흠도는 재차 병으로 앓아누웠는데 병독이 신경을 침입하여 안면신경이 마비되고 오른쪽 얼굴이 비뚤어지고 왼쪽 눈을 뜰수 없게 되였으며 입안이 부어서 음식을 먹기도 어려웠다. 그를 구하기 위해 경요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손수 얼굴에 붕대를 감아주기도 하고 눈에 약을 넣어주기도 하면서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녀의 정성어린 간호가 있었기에 평흠도의 병세는 안정되였고 몸도 점차 회복되였다. 병세가 호전된 남편이 그녀에게 《당신이 있길래》란 노래를 불러줄 때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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