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구쏘련이 핵무기를 손에 쥔채 기세싸움을 벌리던 40여년 랭전기간중 가장 긴박했던 사건이 1962년의 “꾸바미사일위기”이다. 1962년은 미쏘간에 심각한 대립과 긴장관계에 처해있던 한해였다. 랭전의 전성기에 발생된 꾸바미사일위기는 미쏘간의 핵전쟁위험조차 포함한것이였다. 꾸바미사일위기는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의 11일동안 중거리핵미사일을 꾸바에 배치하려는 구쏘련의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구쏘련이 대치하여 핵전쟁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이다.
구쏘련이 미국을 겨냥한 중장거리핵미사일발사기지를 꾸바의 곳곳에 비밀리에 건설하고있음을 알아낸 미국이 이를 즉각 철거하라고 모스크바에 요구하고 관련장비와 인력을 실은 구쏘련배들이 더는 꾸바를 드나들지 못하도록 함정(舰艇)을 동원해 해상을 전격봉쇄했던 사건이다. 제3차세계대전, 그것도 두 강대국이 전면 핵전쟁직전까지 감으로써 온 세계가 숨을 죽였던 이 위기가 지난지 50년이 됐다.
1962년 10월 16일에 미국중앙정보국이 몇달전부터 첩보수준으로 떠돌던 문제의 핵미사일발사기지건설을 항공정찰을 통해 확인하고 이를 케네디(肯尼迪)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극비의 국가안전보장회의를 6일동안 잇달아 연 끝에 10월 22일에 케네디가 텔레비죤방송에 나섰다. 케네디는 그때까지 국민이 전혀 모르던 꾸바상황을 설명하고 “당장 해상봉쇄에 들어간다”는 중대발표를 했다. 당사자인 구쏘련에도 사전경고가 없던 돌연적인 발표였다.
그다음 날부터 미국학교와 직장은 민방공훈련에 들어갔다. 어린이들은 선생들의 지시에 따라 책상밑으로 숨고 팔로 머리를 감싸는 실습을 했다. 실제효과가 있을지 의심습지만.
케네디의 성명에 이어 핵무기를 관장하는 미군부대들은 전면적인 핵전쟁을 준비했고 구쏘련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있었다. 온 인류의 운명이 걸린 도박이였지만 어떤 나라도 개입하거나 중재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그저 전세계는 공포와 긴장속에서 숨죽이며 사태의 전개를 바라보고있었을뿐이였다. 긴장은 10월 24일에 미사일은 운반하던 16척의 구쏘련화물선이 해상봉쇄작전을 펼치고있던 미국해군함정에 다가서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미군에 비상이 걸린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비상은 처음 경계상태 3 단계에서 시작해 며칠뒤에는 전쟁직전에 발령되는 최고 단계인 2단계로 격상됐다. 그와 동시에 핵탄두를 싣고 갈 대륙간탄도미사일 145기가 발사대기에 들어갔고 핵폭탄을 실을 중(重)폭격기 23대, 핵폭탄을 장착할 요격기 161대가 출격준비를 마쳤다. 이런 핵무기목적지는 꾸바가 아닌 구쏘련이였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각각 한발씩 투하된 원자탄이 두 도시를 초토화했던 점과 그 뒤로 핵무기성능이 훨씬 강화된 점을 고려하면 이런 무기의 파괴력을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이와는 따로 재래식무기로 꾸바를 타격할 상황에 대비해 폭격기 1400대가 8개조로 나뉘여 1개조는 항시 공중에 떠있는 공중준비상태에 돌입했다.
꾸바미사일위기는 그 전해에 일어났던 피그스만사건(猪湾事件)과 련관되여있다. 꾸바는 미국 플로리다반도에서 140여킬로메터 떨어졌다. 1959년에 부패한 바티스타정권을 몰아낸 꾸바에 사회주의정권이 탄생하자 미국과 꾸바의 관계는 급속도로 랭각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바티스타정권의 든든한 뒤배였던 미국은 코앞의 나라에 새로 들어선 피델 카스트로(菲德尔·卡斯特罗)정권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겼다. 결국 미국중앙정보국은 이를 전복시킬 작업에 들어갔다. 꾸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난민 1500여명을 훈련시킨 뒤 꾸바 피그스만에 상륙시킨것이다. 이들이 현지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민중봉기가 일어날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공작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비밀이 루설되여 상륙대원들이 바로 제압당한것이다.
구쏘련은 이 사태를 앞세우며 카스트로를 설득해 문제의 핵미사일발사기지건설에 들어갔다. 미국에 한참 뒤처진 핵전력상황때문에 압박을 느끼던 크레물리궁은 이 기회에 미국에 린접한 곳에 핵을 배치하면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미국대통령 케네디의 대국민발표직전까지 미국국가안보회의에서 론의된 대응방안은 다양했는데 구쏘련에 대한 외교적압박, 전투기를 활용한 꾸바내에 있는 문제의 기지를 폭격, 미군상륙을 통한 카스트로정부를 무너뜨리기 등이였다. 합참회의쪽 사람들은 꾸바에 대한 전면침공이 최선이라는 강경론을 내세웠다. 반면에 미국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罗伯特·纳马拉)는 “이번 사태를 모르는척하고 그냥 넘어가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핵폭탄보유량이 미국은 5000개, 구쏘련은 300개에 불과한 상황에서 꾸바에 핵미사일 몇십기가 추가된다고 해도 힘의 비례에는 변동이 없을테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는것이였다.
케네디대통령의 대국민발표후 첫 나흘동안 량국정상간에 전보를 리용한 몇차례의 교신이 있었다. 하지만 구쏘련의 최고지도자 흐루쑈브(赫鲁晓夫)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쏘련선박은 미국의 해상봉쇄를 묵살할것이라 밝혔다. 실제로 그사이에 미사일과 관련된 구쏘련선박 수십척이 봉쇄선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있었다.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주전파의 목소리가 커가고 일촉즉발의 충돌위험이 높아질무렵에 구쏘련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미국이 꾸바를 더는 침공하지 않을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미국이 구쏘련을 겨냥해 토이기에 배치해놓았던 미사일을 철수할 경우 구쏘련도 꾸바내의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내용이였다.
이 타협안을 받은 미국은 곧바로 수정안을 구쏘련에 보냈다. 수정안은 “미국이 꾸바불침공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되 토이기내의 미국미사일철수는 두 정상간의 비밀약속으로 덮어뒀다가 꾸바내의 미사일이 철수된 직후 미국의 자발적조치형식으로 리행한다”는 내용이였다. 이는 미국의 체면을 세워줄 눈가림으로서 미국국무장관 데이비드 딘 러스크(迪安·拉斯克)가 낸 고안이였다.
1962년 10월 28일에 흐루쑈브가 이 수정안을 받아들였다. 미국의 첫 국가안전보장회의 이후 13일간 이어진 련속극은 이렇게 일단락을 맺았다. 사람들은 숨을 다시 내쉬였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 사태를 망각했다.
꾸바미사일위기를 일단락한 직후 가장 단순화된 평가는 “케네디의 배짱이 구쏘련을 꺾었다”였다. 이는 세월이 지나면서 정론으로 굳어졌다. 미국의 다른 한가지 양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런 평가가 나올만도 했다.
카나다군사대학 교수 도언은 먼지가 쌓인 문서보관소를 뒤진 끝에 꾸바미사일위기의 해결과정에서 케네디와 흐루쑈브외에 또 한명의 주역을 발굴해 최근에 한 학술잡지에 발표했다. 당시에 제3대유엔사무총장 우탄트(吴丹)가 막판 며칠간에 눈부신 구실을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에 미국과 구쏘련의 대표부는 뉴욕유엔본부건물 38층에 각각 자리잡았다. 도언교수는 “우탄트가 두방을 숨가쁘게 오가며 중재한끝에 타협이 이뤄졌다”고 했다. 한번은 미국대표가 심야에 우탄트를 깨워서 미국이 최소한의 체면을 세울수 있도록 구쏘련측을 설득해달라고 간청했다는 일화도 찾아냈다.
꾸바미사일위기에 관해 훨씬 뒤에 밝혀진 또 하나의 섬뜩한 사실이 있다. 당시에 꾸바에는 문제의 전략핵무기와는 따로 전술핵폭탄 100여개와 이를 운용할 구쏘련군병력도 주둔해있었다는것이다. 전략핵무기란 대형핵폭탄 혹은 이를 실어나를 미사일을 말한다. 이는 실전에 사용하기보다 힘을 과시해 상대로 하여금 공격할 엄두를 못내게 하는것이 주목적이다. 이에 비해 소형인 전술핵폭탄은 실전에서 사용할것을 전제로 배치된다. 전략핵무기는 군통수권자만이 발사명령을 내리지만 전술핵폭탄은 일선의 지휘관도 발사명령을 내릴수 있다.
만약 당시에 미국이 꾸바를 상대로 군사행동에 들어갔더라면 꾸바주둔 구쏘련군이 방어를 위해 전술핵무기를 썼을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는 생각하기조차 아찔한 상황으로 치달았을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안전보장전문가 앨리슨교수는 최근에 외교안전보장분야의 전문잡지에 발표한 글에서 “만약 당시에 전면핵전쟁으로 갔더라면 미국인 1억명, 구쏘련인 1억명이상이 사망됐을것”이라고 추산했다.
군사전문가들은 당시에 케네디의 대응에 칭찬할만한 점이 있다면 벼랑끝전술을 들고나온 담력보다 강경론자의 큰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균형을 잘 잡은 점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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