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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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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아들 모안룡의 생사비밀
2015년 12월 12일 09시 51분  조회:5967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모택동의 아들 모안룡의 생사비밀
 
(번역)



 
 
양개혜는 1927년에 모택동의 셋째아들 모안룡(毛岸龙)을 낳았다. 1930년 11월 14일에 양개혜가 국민당반동파에게 살해된후 모안룡은 두 형인 모안영(毛岸英), 모안청(毛岸青)과 함께 모택동의 큰 동생 모택민의 집에 가서 살게 되였다. 거기서 모안룡은 상해지하당이 령도하는 대동유치원에 다녔다. 1931년 봄에 상해지하당은 엄중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모택동의 세 아들은 류랑아로 되여 상해의 거리에 떠돌아다니게 되였다. 그때 모안영, 모안청은 동생 모안룡을 잃었는데 지금까지 모안룡의 생사는 수수께끼로 되고있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설도 있고 세균성리질로 상해광자병원(지금의 서금병원)에서 사망되였다는 설도 있다.
텔레비죤극 《모안영》을 촬영하는 현장에서 총고문이 취재를 접수할 때 이렇게 말했다.
“병원의 한 간호사가 모안영을 보고 모안영의 동생이 독성리질에 걸려 사망되였다고 했습니다. 후에 모안청의 부인 소화가 그 병원에 와서 모안룡의 병력서를 찾았는데 없었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1931년 5월말이거나 6월초의 어느날에 모안룡은 갑자기 설사를 하고 고열이 났다. 그래서 보육원의 진봉영(리구실렬사의 미망인)이 모안룡을 안고 부근의 광자병원으로 달려가 구급을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날밤에 사망되였다. 유치원에서 행정사무사업을 책임진 요아부가 관을 사서 장례식을 치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광서에서 모안룡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공지하조직에서는 전문 사람을 파견하여 찾아보았으나 결과를 보지 못했다. 20세기 80년대에 저명한 특형배우 고월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가 모택동이 잃어버린 셋째아들 모안룡이 아닐가 하고 추측했다.
《모택동의 아들 모안룡》이라는 책에는 사회상에 생사불명이라고 전해졌던 모안룡이 세상에 살아있다고 했다. 모안룡은 어느 집에 양자로 들어갔다가 후에 강남항일부대에 참가했으며 항미원조전쟁까지 나갔다고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모택동이 모안룡이라는 신분을 승인하지 말라고 부탁했다는것이다. 이에 대해 모안영의 부인 류사제는 믿을만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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