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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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오리무중속의 100년전의 가족사 (김광림)
2010년 07월 01일 13시 22분  조회:5979  추천:51  작성자: 김광림

                                                       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광림의 버클리통신14

 

      
나의 가족사 찾기(1)

오리무중속의 100년전의 가족사


           
  나는 중국조선족 5세이다. 나의 고조할아버지가 조선 함경도 六鎭 지역의 대기근을 피하여 1869년경에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이주하였다. 그로부터 나의 가족은 중국에서  7세대에 이르는 140년간의 가족사를 영위해왔다.

140년간의 가족사이면 국가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근현대사에 해당하고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그던데도 나의 가족사는 증조할아버지 이전의 역사는 약간의 구전만 남아있을뿐이다. 조선 함경도 회령군 鰲山洞에서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살았고, 1869년 기사(己巳)흉년 때 대기근과 돌림병에 마을사람들이 줄줄이 죽어가는 와중에 고조할아버지가 어린아이인 증조할아버지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달라자(大砬子)라고 불리우는 오늘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智信에 정착했다고 한다. 간도이민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니 달라자촌은 1870~90년대 간도로 이주한 초기 조선이민들의 주요집거지였고, 청나라에서 조선정부와의 협의에 의하여 1885년에 이 마을에 통상국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청나라가 간도에서 조선이민들을 관리한  시초였던 것이다.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달라자촌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우리 가문에는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구전에 의하면 고조할아버지는 달라자에서 살다가 고향인 조선 회령에 묘소를 두었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는 1869년경에 회령 오산동 같은 마을에서 이민온 裵씨성의 여인과 결혼했는데 이 증조할머니는 광복직후까지 생존해 계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가  과부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증조할아버지는 아마 달라자에서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1869년경에 두만강을 건너서부터  1885년에  청나라가 간도지역에 越墾局을 설치하여 조선이민들을 정식으로 받아들이까지 초기의 조선이민들은 불법월경자의 취급을 받았고, 조선에 쫗겨가거나 숨어서 사는 극히 불안한 생활을 해왔다. 고조할아버지의 묘소를 회령에 두었던 것을 보면 고조할아버지는  달라자에서 사망하여 고향인 회령에 매장했거나 또는 달라자에서 회령으로 귀환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문은 할아버지때에 아마 20세기 초기로 추정되는데 달라자에서 汪淸縣  百草溝村 鳳林洞으로 이사하였는데 할아버지대부터는 가문의 구전이 그래도 많이 남아있어 가족사의 모습을 그려볼수 있다.

  그런데 가족사를 찾아보면서 자꾸 생기는 욕구가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어떤 분들이었고, 그들이 간도로 건너오기전 회령에서 어떤 생활을 해왔고, 그 이전의 가족사는 어떠 했는가 알고 싶어진다.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그리고 그 이전의 가족사를 알수 있는 방법은 족보를 찾아보는 것과 함경도 회령과 간도 지역의 향토사와 호구관계 자료를 철저히 찾아보는 것이다.
우리가문은 김해김씨라고 알려져왔고, 함경도 회령군 鰲山洞이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고향이라는 것외에는 가족사를 알아볼수 있는 그렇다할 선색이 거의 없다. 구전에 의하면 함경도 청진지역인지 또는 다른 지역에서 관리를 하던 어느 선조가 19세기의 어느 난에 연루하여 다른 연류자들이 대부분 사형에 처해지는 와중에 함경도 무산지역으로 정배살이를 한 것 같고, 그러다가 회령에서 살게 된것 같다고 한다. 연대를 보면 그 선조는 나의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해당하고, 그 분이 연루된 난은 연대와 지역을 봐서 아마 ‘홍경래의 난’인것 같다.

부끄럽기도 우리 가문에서는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김해김씨라는 것 외에는 이름이 전혀 알려져있지 않고, 족보상의 돌림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1967년의 중국의 문화대혁명때까지  가문에 족보가 남아있어 가족사의 선색을 알수 있었는데  큰아버지집에 보관하고 있었던 족보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었던 사촌형이 불태워버리는 바람에 알길이 없어졌다. 

가문의 구전에 의하면, 회령의 鰲山洞에 같이 살던 김해김씨 종친중에 현재의 조선의 지도자 김 정일장군의 어머니인 김 정숙도 들어있어, 김 정숙의 가계를 잘 찾아보면 우리 가문의 족보도 추적할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김 정숙 가계를 찾아보았는데 조선이 혁명가족에 족보를 들이대는 일도 없거니와 김 정숙 가문도 극히 가난하고 간도에 이주하여 부모가 일찍히 돌아가면서 부모의 성함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하여 2007년 여름에 연구차 서울에 갔던 김에  김해김씨중앙종친회를 찾아 가문의 족보에 대하여 자문을 구했고, 그들의 조언으로 부천에 있는 족보전문도서관을 찾아 1910~30년대에 함경도지역에서 발간된 김해김씨 족보 10여종을 조사했고, 함경도 회령과 간도 지역의 향토사, 호구관계 자료를 철저히 찾아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이전의 가족사를 명확히 밝히지는 못했지만, 가족사 차원을 넘어 간도에 이주한 초기조선이민의 토지, 호구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많이 발굴하게  되었고, 조선반도 내에서의 함경도지역으로의 이주사, 간도지역으로의 이주사에 대하여서도 족보를 통하여 많은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족사찾기가 결국 나의 학문적인 지평을 넓혔다고 할수 있다. 


   족보가 알려주는 사실

   나는 2007년 여름에 부천의 족보전문도서관에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들여 1910~30년대에 함경도지역에서 발간된 김해김씨 족보 10여종을 조사했다. 나의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1869년경에 함경도 회령에서 간도로 이주했기에 이시기에 함경도 지역에서 발간된 김해김씨 족보를 조사하면 혹시나 나의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들의 명함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선색으로 하여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명함을 찾아내고 그 이전의 선조들까지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1910~30년대에 함경도지역에서 발간된 김해김씨 족보들에서는 간도로 또는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가족관계가 수두룩하게 나와 있었다. 

  특히 내가 새삼스레 감탄한 것은 1930년에 회령에서 발간된 『金海金氏王山世家璿源世譜』에 김해김씨의 세 가문이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강원도 통천으로 이주해 오랜기간 정착했다가 다시 함경도 갑산, 무산을 경유하여 간도로, 또는 양주에서 함경도 명천, 경성을 거치면서 간도로 이주한 사실이다. 이 세 가문이 경기도 양주에서 또는 강원도 통천에서 함경도로 이주한 것이 대체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엽이고, 함경도에서 다시 간도로 이주한 것이 19세기 중엽이다. 그들이 양주에서 또는 통천에서 함경도로 이주한 이유는 족보의 기록을 보면, 관리로서 파견을 받았거나 또는 유배를 받은 것이고 그 후손들이 또 다시 간도로 이주했던 것이다. 이 세 가문의 족보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내가 보기엔 기록이 거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18세기 중엽부터 20세기 30년대의 거의 200년이 되는 세 가문의 이주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족보를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족보의 기록이 때로는 역사적인 사실을 밝히거나 어떤 학문적인 연구에 굉장히 도움이 될때가 있다. 조선반도의 기록물들가운데서 아마 장르로서는 제일 많은 것이 족보인 것 같은데 이 족보들은 조선 또는 한국의 아주 중요한 문화적인 유산이라 볼 수 있다. 

1910~30년대에 함경도지역에서 발간된 10여종의 김해김씨 족보들을 조사하면서  많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경도 지역의 여러갈래의 김해김씨의 파조가 이 지역에 이주하고 정착한것이 15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초반에 걸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조선왕조가 함경도 지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던 시기와 맞물린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회령에서 발간된『金海金氏王山世家璿源世譜』이외의 다른 김해김씨 족보들에는 파조가 김해김씨의 어느 파계라는 기록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현재의 남한의 족보들과 현저히 다른 점이다. 각 파조들이 새로운 개척지인 함경도로 이주하고 그 후세들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족보를 만든 경우가 다수이니 김해김씨라고는 알고있어도 구체적으로  어느 파계의 누구의 후손이라는 것은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가문의 경우, 김해김씨라고는 전해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파계인지는 전혀 전해지지 않은 것이 아마 함경도 지역의 족보의 특성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함경도 지역의 김해김씨 족보를 통하여 초기에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서 많이 이주한 사실, 초기에 간도로 이주한 이민들은 주로 함경도 六鎭지역 출신들이라는 사실, 족보에 나오는 간도의 지명에 「○○洞」, 「○○坪」,「 ○○里」라는 중국에서는 보기드문 조선식의 지명과 「가마골(釜洞)」, 「애기골(子洞)」등 우리 민족 고유어에서 유래한 지명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경도 지역의 김해김씨 족보를 찾은 조사한 이유는 나의 가족사를 찾자는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는데, 대량의 족보를 조사한 결과 학문적인 사실을 적지않게 발견하게 되었고, 그 조사연구를 토대로 하여 2008년 10월에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개최된 제1회두만강국제학술포럼에서 논문발표를 하게 되었다.

 (2010년6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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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허준
날자:2010-07-04 18:28:57
드라마 "허준" 에서 허준의 스승인 유인태역을 맞아 명연기를 보여주었던 한국의 유명 탈랜트 이순재 선생님이 함경북도 회령 태생입니다.
3   작성자 : 니가타
날자:2010-07-04 18:10:35
김광림선생의 일본 거주 지역인 니가타 지역에도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함경도 지역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동해바다를 건너 그곳으로 가서 정착한 것같다는 한 한국 원로학자의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읍니다, 니가타 지역이 일본 최고급 쌀 농사지역이 된게 우연이 아니라 이들 함경도출신 유민들이 개척한 것같담니다. 니가타 사람들을 보면 이전 함경도사람들처럼 키도 크고 뼈가 굵은게 골격도 비슷하담니다. 혹시 니가타에서도 오래전 함경도 회령지방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2   작성자 : 김 광림
날자:2010-07-04 16:42:42
정 인갑선생님, 선생님의 존함을 많이 들어왔고, 조글로에 올리는 글들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의 변변치 않은 글에 대하여 조언을 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족보에 관계되시는 사업을 하고계신다니 반갑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제가 찾아본데 의하면 함경도 지역의 족보는 남한의 족보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김해김씨 족보의 경우를 보면 대체 어느 파인지 잘 모르고 있는데 수백년전에 함경도지역을 개척하면서 남쪽 지역에서 이민으로 올라가면서 가족관계 기록을 잘 남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한의 족보들처럼 파계가 잘 정리되지 못했으나 족보의 기록들을 보면 후세에 조작해서 만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저는 김해김씨중앙종친회이면 조선반도의 김해김씨의 줄거리를 다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거기서도 결국 남한내의 족보밖에 모른고 있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1   작성자 : 鄭仁甲
날자:2010-07-01 17:32:53
김광림 선생님에게 조언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추진하던 차 금년 6월 중순에 한국 인천에 와서 황하문화원을 차리고 주요로 한국의 족보를 연구,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의 처외숙부를 찾은 예를 들겠습니다. 저의 처외숙부는 리상백이라고 하는데 조선전쟁 때 북조선 온성으로부터 남조선에 간 사람입니다. 1982~1991년간 10년 동안 찾아도 못찾았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에 안악리씨(리상백은 안악 리씨)종친회에 전화를 걸어 반시간 만에 찾았습니다. 광림선생님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1, 김해김씨는 인구가 너무 많아 파를 모르면 찾기 어렵습니다. 2, 구한 말에 많은 본관을 잘 모르는 김씨를 김해김씨로 몰아부쳤답니다. 말하자면 지금의 김해김씨 안에 사실은 김해김씨가 아닌 김씨가 아주 많지요. 혹시 김회김씨라는 한계를 벗어나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의 족보 전문가 신종우 선생과 동업하고 있는데 혹시 기회가 닿으면 일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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