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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산시(山市).
역전에 멈추었던 기차가 떠나면서 긴 고동을 빼여 산간을 울리였다. 그러다 고동이 멎으면 산간은 다시금 정적이 깃들었다.
하늘을 집을 삼고 떠도는 신세
동서남북 찬바람에 갈곳이 없어
찬이슬 잔디우에 쓰러져 울면
어머님의 옛사랑이 다시 그립다
비오고 바람부는 들창밑에서
팔베개로 꿈을 꾸는 정든 전우야
어느날 어느 곳에서 꿈을 꾸느냐
귀뚜라미야 왜 우느냐
운다고 궂은비가 아니올소냐.
김좌진은 홀로 조용한 곳에 자리잡고 누워서 가없이 넓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불렀다. 기분이 울쩍하거나 마음이 상할때면 그는 늘 이 노래를 부르군했다.
요즘 그는 련며칠을 침묵으로 지내왔다. 한데 오늘은 류별나게 가슴속 깊이에 묻어두었던 추억을 파헤치고싶었다. 하많은 추억가운데서도 지금 정의부에 있는 백산 리청천(白山 李靑天)이와 몇 번 상면했던 지난일들이 어쩐지 선히 되새겨지게 되는 것이였다.
8년전, 그 장쾌한 청산리전투를 치르기전의 어느날이였다. 왕청현 서대파에서 김좌진은 문득 리청천이 보낸 사신을 맞이했다. 리청천은 그때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생각한 끝에 일제의 <<대토벌>>이 예상되니 안전지대로 대피할 시 여러 독립부대의 협동을 제기해왔던 것이다.
김좌진은 그 제이를 쾌히 받아들이여 후에 중국군의 독촉이 있게 되자 인차 장백산쪽으로 원정을 시작했다. 한편 그때 리청천은 무관학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최후까지 민족의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라.>>고 그들을 격려하고는 서로군정서의 400여명을 인솔하여 제2근거지인 안도현 밀림속으로 들어갔으며 곧 이어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합류했던것이다.
김좌진이 청산리전투를 끝내고나서 자기의 부대를 이끌고 밀산으로 간지 얼마안되여 리청천도 홍범도와 같이 밀산으로 왔다. 그리고 안무가 지휘하는 국민회군, 최진동의 도독부군, 의군부, 광복단 등도 밀산으로 이동하여 거의 대부분의 독립군은 밀산에 집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기 직전의 어느날이였다.
리청천이 옆꾸리에 찬 멋진 일본군도를 흔들거리면서 김좌진이 있는데로 다가왔다. 이때는 각 독립부대들의 련합문제를 갖고 소집했던 예비모임을 방금 끝내는 참이였다.
<<김장군도 내 엽초 한 대 피우지 않으시겠소?>>
<<감사하오, 리장군!>>
김좌진은 웃음으로 그의 호의를 받았다.
서울태생인 백산 리청천은 그보다 나이 한 살우다. 그해 김좌진은 32살, 리청천은 33세살. 김좌진은 박달같이 단단하고 날파람있게 생긴 리청천장군을 좋아했다. 그들은 다가 한때는 한국무관생이였던 경력이 있음으로 해서였던지 사이가 친근했다. 김좌진은 그가 7살나던해 제또래의 애들과 함께 경복궁앞을 지나다가 인력거를 타고가는 일본사람을 보고 <<조선을 빼앗으러 온 강도야!>>하고 소리치며 돌을 던졌던 일을 그한테들어 알고있다. 그 일본사람은 화가 동해서 권총을 꺼내 쏘려고 가슴을 겨누었다가 꼼짝도 않는 어린것의 당돌하고도 담대함에 놀라는 한편 오히려 감탄되여 돈 30전까지 주었던 것이다. 한데 리청천은 그 돈 30전 받고 어머님의 꾸지람을 톡톡히 들었다, 못난녀석이 제 나라 빼앗으러 온 왜놈의 돈은 왜 받았느냐고.
후에 리청천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배제학당에 다니다가 어머니한테 발각되였다. 그의 어머니는 신학문이 나라를 침략하는 외세에 협조하는 학문이라고 믿으면서 견결히 반대해 아버지를 잃고 과부자식이 된 리청천은 배제학당을 더 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후에 리청천운 한국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려다가 가지 못하고 추천받아 관비로 일본륙군사관학교에 가 공부하게되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어머니는 대노하여 너는 내아들이 아니라면서 운명할때까지 찾지도 않았다고한다. 어머니인들 아들의 심리를 어찌 다 알수 있으랴.
마찬가지였다. 김좌진이 치렁치렁한 머리태를 잘라버릴 때 그의 어머니도 아들이 그저 단발령을 곱게 받아들이여 배족적인 행위를 하는게 아니냐고 대단히 놀라면서 한때 영 아니꼬와했던 것이다.
결국보면 리청천의 어머니나 김좌진의 어머니나 다가 우국단충(憂國丹忠)의 렬녀고 현모라 하겠다. 그러한 어머님들이였기에 아들들을 이같이 애국투사로 길러낸게 아닐가.
이날 그들 둘은 한국무관학교시절을 회억하면서 민족의식이 결여하여 친일을 주장하던 학우들은 일본침략자의 노복장교질을 하고있을텐데 그네들은 언제가서야 잠을 깨고 민족혼을 갖겠느냐며 개탄했다. 그러다가 리청천이 민족혼이라는게 참 무서운것이라면서 도꾜에서 일본륙군창설기념사열식을 할 때 천황이 앞을 지나가는걸 보니 탄창에 총알만있으면 당장 쏴죽이고싶더라는 것과 제1차대전때 독일병을 물리치느라 청도에 가서는 내가 이 신식군사기술을 갖고 독립군을 훈련해내면 얼마나 좋으랴하는 생각이 나서 탈출하게 되었던 일을 말했다. 그때 김좌진은 그에게 아무튼 제 민족의 아들구실을 하니 반갑다고 말했던 것이다. 참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웠다.
차고동이 왜 다시울리지 않는가. 울리던 고동소리만 멎으면 이 작은 산간마을은 너무나 고요해진다. 김좌진은 자연의 이 적막이 싢어졌다. 그리고 맥없이 스러져가는 저녁빛이 싫어졌다. 밝고 찬란한 해빛속에 들끓는 세계가 좋았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혈관에 파도치는 애국의 기발
넓고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보아라 우리들의 힘찬 맥박을
가슴에 울리는 독립의 소리.
김좌진은 어제날 이 노래를 씩씩하게 부르면서 도도한 대렬의 흐름을 짓던 독립군의 모습이 그리워났다.
대포소리 울려퍼져 만방에 봄이 오니
청구 우리 땅에도 물색이 새롭구나
산영 달빛아래 칼을 가는 나그네
철채바람에 말고삐 잡고 섰네
하늘에 가린 정기 천리나 뻗쳤는데
진동하는 군악소리 사방으로 퍼져가네
섶에 누워 쓸개빨며 십년을 벼르던 뜻
현해탄 건너가서 원쑤를 무찔러야겠네.
그는 전에 자기가 지은 이 시를 다시금 음미했다. 10년이나 쓸개빨며 벼르던 뜻이 과연 무엇이였던가. 현해탄건너가서 원쑤 일제를 무찔러버리자던 웅지가 지금 여기 북만의 산골에 묻혀서 식어가는거나 아니냐? 길고 긴 세월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리라지만 그냥 묻혀만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뜻은 변함이 없어야 하고 용기는 식지 말아야하고 힘은 더욱자라나야 할 것이다.
한데 지금의 독립군은 너무나 쇠잔했다. 둔전양병의 본의와는 다르게 그네들에게서 용기마저 이젠 죽어가는것만 같아서 김좌진은 걱정이였다.
그는 은빛세루군복에 군도를 차고 청총말잔등에 앉아 군사를 거느리고 옛 근거지 왕청을 지나던 때의 일을 상기했다. 왕청사람들은 그와 독립군이 청산리에서 세운 전공을 생각해 그야말로 리왕이나 재상의 행차를 맞이하듯이 남녀로소가 뛰여나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백성들을 버리고 일제의 추격을 피해서 멀리로 가야만했던 그는 사실 눈물이 났었다. 일제 <<토벌대>>의 손에 왕청은 참혹하게 되지 않았던가. 복수를 품고 동산재기를 꿈꾸어왔건만 언제가야 실현이 되겠는지. 뜨르르했던 명성도 이젠 빛을 잃어간다.
신민부도 역시 초창기의 그 으리으리하던 형상과는 다르게 벌써 파철더미나답지 않은 군함으로 변해버리였음을 그는 절감하고있다. 젊고 총명하던 젊은이들은 적지 않게 좌익으로 넘어가버리였다. 청산리싸움때 공이 있는 강화린 역시 조공만주총국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데의 사람이 되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세계 약소민족의 혁명을 위하여 몸바쳐싸워 공을 세우기만하면 고마운일이다. 그러나 그러지는 못하고 그런 사람이 옛동지를 원쑤처럼 대하면서 당쟁에만 지혜를 소모한다면 그건 무서운 일이다. 문우천같은 사람은 김좌진의 사랑을 받았건만 지금은 민정파로 넘어가 공공연히 적대행동을 하면서 배신자가 돼버린것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풍(英風)을 숭상하고 따르지만 김좌진을 위해 진정 맥을 쓸만한 측근으로서는 북로군정서때부터 휴척을 같이하던 정신과 근로인민의 출신 권화산, 족질되는 민무외 몇명밖에 없다. 민족주의진영은 리론이 빈곤해졌고 풍미(豐美)해오는 세계사조에 대처하여 순응할만한 인물이 너무나부족했다. 거세찬 풍랑을 헤쳐나가자면 든든한 함선이 있어야할게 아닌가. 갈 사람은 다 가버리고말았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복새통에 사분오렬이 되어버린 신민부!....
어느날 홀연 한 녀인이 나타나 자기는 일부러 찾아왔노라 인사하고는 각근히 굴었다.
김좌진은 그녀가 풋면목이 아니였다. 이름이 라애자(라혜국). 그 녀인은 이렇게 산시에 나타나더니 자진하여 그를 적극돌보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얼굴이 그닥 밉지 않게 생긴 이 녀인은 전부터 김장군을 지긋이 따르면서 짝사랑을 해왔던 것이다.
김좌진은 석두하자에 계시는 어머님을 의연히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님앞에 죄스러웠고 더구나 고령의 로모를 모시느라 수고하는 아우보기 참 미안했다. 이럴수록 그는 독립운동에 더욱 헌신함으로써 죄스러움과 미안함을 좀이라도 미봉하리라했다.
이러는 사이 김기철은 조선에 갔다와서 같은 <<8로>>중 한사람인 김기석로인과 함께 만주를 떠나 조선에 가서 금광에 들어가 일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총독부를 까부셔놓을 계획을 짰다. 그들은 성동사관학교에 가서 파괴력이 상당한 작탄을 연구제작하려고 애썻지만 결국 성공못했다. 그래서 조선진입계획을 그만두고 김기철은 신안진에다 대종교에서 신일시교당(新一施敎堂)짓는 일을 도와나섰다.
북만주의 서늘한 8월하순이 돌아왔다. 산간을 울긋불긋 아름답게 장식했던 단풍잎들이 떨어지려고 할 때 순방답사를 나갔던 김종진이 길고 긴 8개월간의 원거리려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그는 해림에서 며칠간 로독을 풀고나서 각지의 정세를 보고하러 백야장군을 찾아서 산시로왔다.
김좌진은 그이 보고를 주의깊게 들었다. 그의 보고를 보면 지금 각지동포들의 상태가 좀씩 다르기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생활이 궁핍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얻지 못한 관계로 반야인(半野人)적인 미개상태에 놓여있거니와 어떤 동포들은 지어는 기아선에서 헤매면서 방황하고있다는 것이다.
<<형님, 그네들이 이렇게 되는 원인을 캐보면 바로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와 수탈우에 지방관청의 박해가 크기때문이라 보아집니다.>>
김종진의 말이였다.
한심했다. 망국민이라 깔보고 중국지주와 관헌들이 무한정 세도를 부리니 무서운세상이였다.
만주의 지주들은 갑자기 부라퀴가 되어버렸는지 걸신들린 돼지처럼 탐욕스럽기가 그지없었다. 그자들은 전에는 거들떠보지도않았던 소택지가 지금은 조선이민들의 신근한 로동으로 하여 황금낟알 쏟아지는 옥토로 변해가니 <<이건 본래 내 땅이였다.>>면서 중뿔나게 튀여나와 마구빼앗거나 아니면 소작료를 높여 피땀을 악착스레 빨아먹는다. 거기다가 일제의 사촉하에 줄곧 조선독립군을 탄압해온 악독하기 그지없는 그 토비출신의 봉건군벌 장작림은 <<조선사람을 고용하여 농사짓는데 대한 관리법>>을 비롯한 조선농민들을 구축하는 훈시령과 비밀령을 내리기까지했다. 그래서 지주들은 마음놓고 제멋대로 착취하거니와 반동적인 지방관리들도 그자들의 보호산이 되어 한몫보면서 조선동포들을 박해하고있었다.
<<잡아치울 까마귀들!>>
격분된 장군은 부르짓고나서 의지가지없는 류랑동포들의 참담한 경상을 눈앞에 그려보며 한숨쉬였다.
신민부의 세력이 뻗히고있는 여기 중동로를 중심으로하는 북만과 정의부의 세력권내에 들어있는 길림일대, 그리고 참의부의 세력권내에 들어있는 봉천성의 집안현과 관전현일대는 그래도 어느정도 자치가 실시되여 괜찮지만 그 외의 독립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들에서는 어디나 다가 그러하다니 김좌진은 독립운동자들의 책임이 중함을 한층 더 절감하면서 무장투쟁을 중시하는것만큼 동포민중에 대한 보호를 중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직해야지! 조직하지 않고서야 류리된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
<<그렇지요. 내가 이번의 순회에서 느낀바역시 그러합니다.>>
김종진은 백야장군의 말 끝에 감정을 맞추고나서 자기가 친히 목격했던바를 계속헤 설토했다.
<<우리네 동포들이 그같이 기아에 헤매이고 구축되여 방황하건만도 지도적지위에 있다는 인사들은 물론 운동단체들마저 속수무책이 돼서 포기해버리니 농민들은 더욱 악독한 지주의 착취의 대상으로 되고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무서운 세상인데 제 동포들을 야수무리에다 양새끼처럼 내여던진단말인가?>>
<<바로 그러한가봅니다. 그리고도 그 정도뿐아니라 그런곳에 있는 동포들은 왜놈들의 앞에는 또한 무방비적인 롱락대상으로도 되고있습니다.>>
김좌진은 사색에 깊이 잠기였다. 동포들이 정착하여 마음놓고 살아가게하자면 지주와 동포류랑민사이에 독립운동 지도자층의 사람들이 들어서서 대변자의 역할을 해야 하거니와 중국의 현지당국과 교섭하여 보호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는다면 동포들은 박해를 받다못해 일본령사관에 호소할것이며 그렇게 되는 날이면 일제는 조선동포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진 대변자로 가장해 나서서 동포들을 자기쪽으로 끌어갈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립운동진영을 분렬, 와해시키고 나중에는 독립운동자들의 근거지마저 분렬하고 박탈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부터 울바자가 헐면 이눗집의 개가 맘대루 드나든다했네라.>>
혼자소리로 뇌이고있는 김좌진은 독립혁명진영들이 요란하기만 할 뿐 너무도 무력함에 통탄했다.
재종제 김종진은 독립운동이 만주에서 기복을 이루고있는 이때에 원쑤들도 가만있지 않고 경찰을 동원하여 탄압하는 한편 주구를 풀어놓아 친일세력을 부추기느라 무척 애쓰고있다고 보고했다. 그 구체적인 표현으로서는 바로 조선인회를 비롯해서 이러저러한 무슨 회(會)니 무슨 단(團)이니 하는 복면단체들을 수태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형님, 그다음은... >>
김종진은 웬 일인지 말꼭지를 떼여놓고는 재종형의 낯색만 살폈다.
<<무슨 얘긴데?>>
<<형님, 지금 어떤데서는 공격이 심합니다. 형님을 <마왕>이지 <독재자>니 합니다.>>
<<음ㅡ >>
김좌진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몇해간 그는 국내진입전을 수행키위한 예비공작을 했고 때로는 국민장군대와 련합군을 조직해 독립전쟁을 저개하려고도 하면서 재만조선인사회에 침투해있는 밀정과 왜놈의 어용단체인 조선인민회, 조선인회. 거류민회, 보민회, 신교회, 청림교 및 재우교의 간부와 두목들을 적잖게 색출하여 국청해버렸다. 그랬으니 첫째는 적들이 그를 <<마왕>>으로 락인하고 소문을 펴놓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독립혁명자진영내에서 그러한 반영이 생기게 된데에는 그 자신도 찾아볼바가 있는것이다. 신민부초창기부터 문우천같은 자들이 같은 진영내의 사람들에게까지 폭행을 감행하여 자기대오의 성망을 더렵혀놓은 것이다. 한데도 김좌진은 그것을 제때에 제지시키지 못했다. 신민부는 그를 숭배하는 자들이 제멋대로 무도의한 행위를 자래우는 온상으로 되고말았다. 김좌진은 총잘쏘고 담대하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을 편애했다. 그의 총애를 받는자들의 몸에서 개인영웅심이 자라나고있었으며 장군의 명성을 턱대고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대는 극히 불량한 행위들이 종종 나타나고있었던 것이다. 하건만 김좌진은 그것을 제때에 제지시키지 않았거니와 그로인하여 빚어진 악과가 자기 일신에 집중되는것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하면서 방임해두는 상태에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적수로 되어버린 민정파나 이전부터 불화했던 적기단을 비롯하여 급진파세력인 조공만주총국 사람들이 요언을 날조하여 음으로 양으로 그를 해치고있었다. 자기들의 주의, 주장만이 옳다고 극구 선양하면서 남의 주의나 주장은 무턱대고 낡은것이라느니 시대의 역물이라느니 반동이라느니 하면서 비난하고 공격하는 그자체부터 자세가 바른것이 못되는것이다.
대종교도인 김좌진은 자기는 철두철미한 민주주의자라 인정하고있으며 이로 하여 오히려 자부하고있다. 한생을 애국자로 살며 광복을 맞아오기 위해 투쟁하며 국위선양하다가 죽을것이요 죽어서도 령혼만은 조국땅에다 묻으리라는 그였다. 하길래 그가 항시 부르짖고있는 것은 <<일체는 민족해방과 독립에 바치자>>는 것이다.
민족유일당운동이 일어나고 김좌진도 나서서 이젠 모두들 제민족간에 공격은 그만하고 뭉쳐보자고 주장하자 <<우리는 우선 계급부터 타파하고보련다!>>면서 이에 맞서는 파들이 있었다. 그러한 파들에서 줄곧 김좌진을 독재라 비방하면서 제멋대로 헐뜯었다.
<<좀 그러지들말았으면.... 그저 남을 집어뜯으면서 고약한 짓들이구나.>>
김좌진은 격분하면서 침묵했다. 그는 본래부터 사유재산제도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였다. 계급타파는 누구보다도 앞서서 실천까지 한터였다. 지금은 당장 나라까지 빼앗기고 없으니 국토부터 먼저 찾아놓은 뒤에 동족끼리의 게급혁명을 실천하자. 아니,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하여도 그것은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참으로 필요한 계단이라면 민족은 누기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그것을 성취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무엇보다도 먼저 전부 한덩어리가 되어서 잃어진 나라부터 찾아서 세우자. 왕조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유로 언제든지 제 손으로 제 나라를 향상시킬수 있는 그런 국가를
세우자. 이런 목적을 위해서만 우리는 통일해야 하고 끝까지 손잡고 싸워야 한다. 나라도 없는 민족으로서 계급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은 선후당착이요 혼란을 조장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주의주장의 차이를 불문하고 먼저 한덩어리가 되어 왜적의 손에서 빼앗긴 내 조국부터 찾아오자.ㅡㅡㅡ이것이 김장군의 주장이였다. 이 하나의 주장을 갖고 그는 모두를 관용하면서 포옹하려고 하건만 어쩐지 엇서면서 갈리기만 하니 암담한 느낌뿐이였다.
<<오오, 조선사람들의 이 경멸할 당파심!>>
김좌진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자기의 리론을 정당화하기위한 궤변이나 늘이고 말다툼이나 일삼으면서 사람들을 자기 편에 무원칙하게 끌어당기려고 온갖 모략과 술책을 다 쓰고있는 당파쟁이들이나 민족개량주의를 들고나오면서 제 민족의 량심과 얼을 팔아먹는 사이비한 혁명가들을 김좌진은 싸잡아 쓸개빠진놈들이라고 욕하면서 증오했다.
김종진의 순방보고를 들어보면 각지에 조직체가 제대로 서지 않았고 독립운동자들의 지적(知的)수주이 낮으며 계다가 훈련조차 없는건 물론 자각도 없고 리지적이 못되며 즉흥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처리하니 자그마한 문제를 갖고서도 마찰이란다. 그래서 동지간에 분리가 생기여 대사를 망쳐버리는것이 각지 독립운동진영내의 보편적인 상황이라 한다.
그렇다면 여기 신민부는 어떠한가?
신민부는 지도자들이 지적수준이 그리 낮은 형편도 아니건만 량파는 분렬되였고 그로 인하여 토풍와해의 경지에 이르었다. 암담해진 이 국면을 무엇으로 타개한단말인가?
김좌진은 생각을 더듬었다. 이제 분렬된 진영을 자체로 강화하자면 먼저 동지들중에서 중견으로 될만한 핵심분자들로부터 리념적으로 새로 결성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그것은 공통되는 리념이여야 할것이고 검토하고 수립된 새 강령과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김좌진이 자기의 이러한 생각을 내비치였더니 뜻밖에도 김종진이 낯색이 밝아지면서 그에 알맞는 리념은 자기에게 있노라면서 곧 무정부주의가 좋지 않으냐 하는것이였다. 이제 알고보니 그가 바로 무정부주의자였다.
김좌진은 낯선 사람을 대하듯 재종제를 이윽토록 쳐다보았다. 흥미가 동했던 것이다.
김종진은 그의 앞에서 자기가 무정부주의자로 되어버린 연유와 그 경과를 죽 말하고는 자신은 직접적인 행동파에 속한다고 하면서 무정부주의라하여도 남들이 비방하는것처럼 극단의 자유주의가 아니고 조직을 부인하는것도 아니라 했다. 그와 그의 지기들인 무정부주의자들은 독재적인 강권을 반대하고 권력의 집중을 거부하며 자치적인 련합적합의로서 자유련합조직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리념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위를 존중하고 생명의 존엄을 확인하며 사회는 사람마다 서로 부조하는 협동체로서 각자의 자주적인 창조와 협력으로써만 발전하는것이라고 리해하면서 독립운동자들의 조직도 그들자신의 창의와 협동을 할수있는 이 자유련합의 조직리론으로써 정돈되여야 한다는 주장이였다.
김종진은 계속해서 자기들의 리념을 공통의 기조(基調)로 하여 동포들로 하여금 안착하여 살아가도록 보호해야한다는 것, 그런후에야 그네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착수할수 있다는것 등등을 말했다.
김좌진은 곰곰이 듣고있었다.
김종진은 마지막으로 조심해서 그간 분렬이 심해서 동포대중과 융합이 못되고있는 신민부를 만주동포들 자신의 조직으로 되게끔 재조직해보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충고의 의견을 내놓았다.
김좌진은 생각에 깊이 잠긴채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신민부의 재조직을 서두르고싶었던 그였다. 그 원인이라면 바로 신민부가 군정파와 민정파로 분렬된 후 진영이 정비되지 않아 바라지도않은 외세가 내부로 스며들고 밖에서는 백야와 신민부에 대한 모략과 중상이 로골화되고있으며 장시기를 끌던 민족유일당운동이 실패됨으로 하여 내부적으로 긴장이 풀리면서 해이해져 이제 오라잖아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석두하자, 산시, 해림, 신안진, 밀산 등 몇곳에는 김종진이 여기로 오자마자 맺어놓은 무정부주의자가 여럿 있었는데 그네들이 가끔 산시로 찾아오군했다.
김좌진은 그네들을 허물없이 따뜻이 대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러는 과정에 그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리해를 한층 더 깊이할수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대부분은 이전에 자강주의(自强主義)만이 일제를 조선으로부터 구축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강주의를 선택한다면 결국은 일제와 마찬가지로 조선도 약소국을 침략하고 지배해야한다는 모순에 빠지게됨을 그들은 깨달았다. 따라서 자강주의는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와 동일한것이므로 이를 부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창도된것이 바로 무정부주의리론이였다. 그들은 일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항일민족독립운동의 세력을 확대시켜야한다는 것을 절감하였고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소수의 민족지도자들에 의한 독립운동을 지향하고 독립운동의 전변을 확대하여 다수의 민중을 이에 편입시키고 동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을 신봉하는 주요인물로는 리회영, 신채호, 리을규, 리정규, 백정기, 정화암, 리강훈, 류자명, 류림과 김종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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