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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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전기 설한 (25)
2014년 03월 27일 19시 25분  조회:2611  추천:1  작성자: 김송죽
 

 

25.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의 중임을 걸머졌던 김좌진은 군정파와 민정파간의 알륵을 어떻게 하나 완화시켜보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9월초의 어느날 황학수가 그를 보고 다 깨진 독을 무슨 방법으로 땜질하겠느냐 하곤 화제를 돌려 이제 곧 열리게 될 3부통합회의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황학수역시 김좌진과 마찬가지로 정의부 김동삼이 3부통합을 위해서 무척 애쓰고는 있지만 너무나 주관독단하는데 대해서는 의견이 있었다.

<<시민부가 뭐 정의부의 슬하에서 놀게 돼먹었나 참.>>

<<글세요 우리를 어떻게 아는지. 나도 그분의 열정에는 탄복합니다만 남을 경솔히 다루는데는 좀 불쾌감이 나는구만요.>>

김좌진은 동감을 표시하고나서 아무튼 출발점과 목적만은 좋고 거룩한 것이니 그런것쯤은 개의치않는것이 좋겠다고했다.

그러나 황학수는 만약 정의부가 의연히 지배자의 자태로 나타나서 3부를 통합시키려한다면 좀 따끔히 일깨워주리라 했다.

김좌진은 자기보다 년장자인 이 대한제국의 무관출신 사나이가 벼르는 양을 보고 그저 웃기만했다. 그는 황학수역시 자기처럼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닌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황학수는 1907년에 조선군대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해산을 당하자 한동안은 육영사업(育英事業)에 종사했고 <<3.1운동>>이후에는 림시정부 군무부 군무국장을 지내다가 만주로 들어와서 서로군정서의 본부가 있는 액목(額穆)으로 가 거기서 서로군정서조직을 재정비하고 참모장으로 있었으며 그러다가김좌진을 찾아온건데 지금은 신민부의 중앙위원으로 사업하고있다. 김좌진은 경우바르고 활역적인 그와 의기상투해서 아주 가깝게 지내고있다. 그래서 중국도대 왕상덕과 담판할 때 그를 내세웠고 이번 3부회의에 참석할 군정파대표로도 그를 선거한 것이다.

마침내 정해놓은 기일이 되어 3부통합회의가 길림성 연길현 3구 은가촌내의 신안에서 열리였다. 적들이 독립운동진영의 동향을 탐지해내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고있는 이때에 회의장소를 어디에다 정하는가하는것은 자못 중요했다. 모든 회의들이 극비밀적으로 진행되여야했으니까.

신안은 리규동(李圭東)의 가촌(家村)으로서 그의 부친 5형제의 자손들만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모든 비밀이 보장 될 수 있는 곳이였다.

회의에 참석한 3부의 대표명단은 아래와 같았다.

 

정의부: 김동삼, 현익철, 최동오, 김이대, 김원식 (5명).

신민부: 김좌진, 김칠돈, 리 연, 손상하, 황학수, 여호림 (6명).

참의부: 심용균, 김소하, 림병무 (3명).

 

그런데 이번의 3부통합회의에서도 유일당조직을 위한 협의회의때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문제와 더불어 상호간의 알륵과 대립이 로정되여 처음부터 의견을 통일시키기 어려웠다.

첫째, 각파의 의견대립으로 신민부와 참의부특에서는 (1) 신민, 참의, 정의 3부를 완전히 해체할것. (2) 촉성회와 협의회지간의 대립적분규를 타파하고 전 만주일반의 대당주비(大黨籌備)를 실행할것. (3) 이주조선인의 귀화를 힘써 행하고 자치권을 획득할것 등을 주장한데 대하여 정의부측은 당시의 여러 단체를 그대로 두면서 유일당을 추진하자는 소위 단체중심조직론을 고수하여 량자가 끝내 타협을 보지 못했다.

둘째, 신민부에서는 군정파와 민정파 량측이 모두 이번회의에 각자의 대표를 파견했던바 이들은 서로 자기파가 신민부의 정식대표라고 주장하는 대표권항쟁이라는 시비가 일어났다. 민정파의 대표들은 정의부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군정파대표와 대립했고 또 <<빈주사건>>을 들고나와 군정파를 공격했다.

셋째, 참의부에서마저 내부가 온정치않아 파견대표전원을 소환하겠다면서 참의부대표인 김소하를 처단하라고 정의부에 의뢰했다.

그래서 회의장은 그만 살벌한 변론장으로 변해버리고말았다. 이에 김동삼을 비롯한 정의부측은 서로간의 대립을 조정해보려는데서 대책안으로 <<재길운동자간담회(在吉運動者懇談會)>>를 열어 타협을 시도하였으나 이도 실패하고말았다.

그러니 3부통합회의가 진전이 있을리 만무였다.

원쑤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회의는 신안촌내에서도 자주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극비밀리에 진행되였다. 하건만 종래 동립운동가들이 자주 집합하군 하는 이 독립운동책원지에 눈을 박고있던 길림의 일본령사관경찰서에서는 여기서 3부통합회의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회의내용을 탐지하기 위해 일본인 정보원 3명과 조선인 밀정 2명을 자리잡이로 가장시켜 동상수구촌(東晌水溝村)에 잠입시켰다.

헌데 이자들은 그만 마을을 지키던 청년들 손에 잡히웠다.

김동삼은 후일을 고려해서 그자들을 돌려보내라했다. 그랬음에도불구하고 경비를 섰던 청년들은 말을 듣지 않고 그자들을 죽이여 논에다 묻어버리고말았다.

일제의 길림령사관경찰당국에서는 파견했던 정보원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동상수구일대를 조사하게 됐고 그래서 첩자들이 피살되였음을 알아내고는 중국측 길림경무청에다 전말을 통지하여 조선인들이 일본량민을 살해했다는 리유로 신안촌을 수색할것을 의뢰했다. 이 사실을 그때 길림경무청에서 근무하고있던 오인화(吳仁華)란 조선인경관이 마침 알게되여 비밀리에 통지했기에 3부의 대표들은 사전에 피하여 위험을 모면했다.

결국 3부통합회의는 중단되고말았다.

<<돌덩이에서 병아리가 까 나올리있나.>>

김좌진은 돌아오자 말했다. 근본 단합할 대상이 못된 민정파를 여직껏 관용하고있은 자기가 어리석었다는 것이다.

<<수화상극이구서야 될리가 있나! 아예 철저히 갈라지고말자니까.>>

정신이 하는 말이였다. 시초부터 민정파의 실랄한 공격대상이 되어온 이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은 집단에 파괴만을 초래하는 악의적인 사람들과는 한지방에서 같이 지낼수 없다면서 아예 멀리 구축해버리자고했다.

황학수역시 이번의 회의까지 지내고보니 도저히 융합될수 없다면서 서로 낯도 대하기싶지 않다는 리유로 정신의 주장에 맞장구쳤다.

그러나 김좌진은 생각이 달랐다. 그네들이 아무리 악의적이라해도 일제처럼 원쑤로까지는 대해줄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칠돈, 여호림, 최호, 박관해 등은 스스로 동빈현에 자리를 튼튼히 잡은것이다. 이는 신민부가 실제상 하나가 아님을 표명하는것이다.

<<각자는 자기 의사대로.... 종래로 행동을 말리지는 않으니까.>>

김좌진은 갈 사람은 가라고 했다. 그리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마음에 늘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게 되므로 사람됨을 높혀주는 구실을 한다는 말 한마디를 내뱉고는 장차 3부의 군사를 통합하여 새롭게 군정부(軍政府)를 세워볼 타산을 했다.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정부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간에 결국은 일제의 침략정책에 정복되여 그자들의 통치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괴뢰로 되고말것이라고 그는 여겼다. 그래서 항일무장을 첫 자리에 놓고있는 김좌진은 늘 효과적인 무장투쟁과 대결을 촉구하게 되었고 그러한 촉구로부터 모색되는것이 새형의 군정부수립이였던 것이다.

번연한바 3부통합회의가 최초의 의도와는 달리 각 단체들내의 분렬만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독립운동단체들의 재편성을 촉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좌진은 이럴바하고는 하루속히 군정파의 립지를 실천에 옮기려고 작심했다.

한편 김동삼 역시 김좌진과 접촉이 잦은 가운데 그의 주장에 수긍되였던 터로 그의 설계를 달갑게 접수하고 마음에 넣어두는 한편 자신도 정의부에서 탈퇴하여 이제는 뜻이 상통하는 이들만으로 독립운동진영을 묶어세우려고 서둘렀다.

11월중순이 되자 김좌진은 황학수, 정신과 김종진을 신민부의 대표로하여 데리고 반석현으로 향했다. 회의장소는 그 현내에 있는 호란양창자(呼蘭梁廠子)였다. 정의부탈퇴파인 김동삼을 비롯해 같은계렬인 김상덕, 김원식과 참의부의 참의장인 김승학, 그리고 공산주의계통의 재중국한인청년동맹(在中國韓人同盟)대표도 함께 모였다. 그들은 거기서 유일당의 이름으로 동맹규약을 내오고 발표했다.

일은 비교적 장애없이 순리로왔다.

그때로부터 한달만인 12월하순에 이르러 신민부의 군정파와 정의부의 촉성회(促成會), 참의부의 주류는 길림에 다시모여 동맹규약에 기초해서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혁신의회의 명의로 신민부와 참의부의 해체를 선언했다.

이 신민부와 참의부의 해체선언에 대하여 신민부의 민정파측과 참의부의 지룡준(池龍俊)계는 이를 거부, 그대로 량부의 존속과 활동을 지지하였다.

한편 신민부의 군정파는 혁신의회가 나옴으로하여 해체되고말았다.

혁신의회는 실제상 전민족유일당협의회(全民族唯一黨協議會)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이면서 1년을 기한으로하는 과도기적인 단체로서 최종목적은 군정부를 세우는것이였다. 이를 위해 혁신의회는 임원을 선정했는바 김동삼이 의장이되고 김원식이 집행위원장이 되었으며 김승학, 황학수, 정신, 리청천 등 16명이 위원으로 선임되였다. 그리고 군사위원장을 황학수. 위원은 리청천. 민정위원장은 김승학이 각각 맡았다.

혁신의회는 원래 3부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잠정적인 통치구역으로 설정하여 1, 2, 3구로 이름지었다. 혁신의회가 이제 수행해야 할 주요과제로는 첫째, 대당촉성(즉 유일당촉성)의 적극적인 방조. 둘째, 군사선후(軍事善后) 및 적세침입방지. 셋째, 중국지방에서의 합법적기관조직과 잔무처리였다.

혁신의회는 자체의 조직이 결성됨과 함께 첫과제의 실현을 위하여 민족유일당재만촉진회(民族唯一黨在滿促進會)를 설립했다.

 

중앙집행위원장: 김동삼

중앙집행위원: 김좌진, 김성호    

 

이들은 혁신의회와 표리일체가 되어 유일당촉성에 주력하였다.

모두들 희망에 벅찬 심정으로 새해인 1929년을 맞이했다. 김좌진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것은 혁신의회가 활약적이기만하면 이제 계회한 5월전으로 군정부를 설립 할 희망이 보이기때문이였다. 그렇게만 되면 뜻은 이루어진다. 그는 광활한 만주땅에서 자기의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면서 보무당당히 행진하는 독립군대렬과 다시한번 청산리전투와 같은 장쾌한 싸움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웃음지었다.

그런데 예상치않았던 돌발적인 사건이 그의 상념도 웃음도 무자비하게 앗아갈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김동삼이 할빈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였고 김소하, 김승학, 박창식 등도 통하현에서 중국경찰과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였던 것이다.

그리고 김좌진을 비롯한 신민부의 령수급들도 봉천경찰총서에서 체포하려는 대상이였다.

<<中華民國十八年一月五日奉天全省警務處訓令第三一九號令>>에 밝혀진 명단은 다음과 같다.

 

軍事部 

委    員    長 : 金佐鎭

副  委  員  長 : 崔  旭

軍  事  部  長 : 黃鶴秀

副          官 : 金  寬

總          理 : 鄭  信(鄭一再)

副總理 兼 隊長 : 閔  武

隊          長 : 朴亨俊

別  支  隊  長 : 張世華

別  支  委  員 : 金吉錫, 崔昌瑞

募  捐  委  員 : 朴亨德, 朴斗熙

                 金伯永, 延炳熙

民事部

部   長 : 申  淑

委   員 : 吳  煥, 文應天, 朱伯完

          秀範錫, 崔金光, 趙鳳錫

 

그야말로 총망하고도 불안한 세월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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