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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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리해못할 동창생(1)
2014년 08월 13일 14시 22분  조회:2707  추천:7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리해못할 동창생(1)

 

 

이 글은 가슴에  맺힌 원한을 생전에 풀지 못한채 그대로 저세상까지 가지고 간 나의 두 친인ㅡ 존경하는 어머님과 사랑하는 처의 유언에 좇아서 쓰게됨을 말하면서 독자는 내심하게 한번 읽어보고 사색해보기 바란다. 그런다면 과연 고맙겠다.

<<동창>>이라 하면 한학교에서 같이 공부를 하였거나 함께 졸업한 관계여서  상식적으로도 사이가 좋아서 자연히 가깝고 친하게 지내기 마련이건만 내가 초중다닐 때 벌리중학을 같이 다니고 같이 졸업했던 심군일(沈君日)이만은 왜 그렇지 않은지 지금까지도 그 영문을 모르니 답답하고 리해가 안된다.

그러니 아직도 적원(積怨)만이 쌓이여 <<너 이자식 아무때던 그저... >>하는 생각뿐이다. 가슴에 여적지 서려든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더욱 가슴아프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과연 속담그른데 없나보다. 짐승도 유정(有情)해서 아는 사이면 꼬리를 젖는데 사람으로서, 더구나 동창으로서 아무렴 어쩌면 그렇게까지야 지독하고 악독하게 놀아댄단말인가?...과연 귀신이 들어도 피똥쌀 일이다.... 딱친구는 못될지언정 그래도 우리는 동창생이 아닌가? 하건만 우리는 어찌하여 이같이 서로간 원쑤로되고 말았던가?

아무리 따져봐야 학교같이 다닐때는 물론 그후 사회에 나와 한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선생질을 하면서도 우리는 낯한번 붉힌적이 없는 사이가 아니였던가. 한데 왜서? 왜서 우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이런사이로 돼버렸냐말이다?

  

아래것은 <<문화대혁명>>이 끝나가면서 나를 평판하는 성화공사혁명위원회에다 내가 피해받은 상황을 간단히 써서 올려바치면서 보태진 <<보충자료>> 원본을 종근으로 남겼던것인데 오늘 그것을 그대로 베껴 대중앞에 내놓는다.


  << (1). 내가 처음 투쟁받기는 1968년 8월. 당시 소학교의 책임이였던 장동화가 와서 나의 일기책을 비롯한 학습필기장, 습작, 독후감필기 등 10여권을 가져갔는데 돌려받지 못한채 몽땅 잃어지고말았다.

     (2). 9월의 어느날, 중학교홍위병들이 갑자기 습격하여 집을 들부셨는데 우선 가장집물들을 전부 바깥에다 내던지고는 구들장을 발칵 뒤집고 바당을 한길 파번지고 천정을 전부 뜯어버렸다. ...커다란 체경이 산산조각났다. 옷견지들을 비롯한 창밖에 내던진 가장집물은 비를 맞고 진창에 딩굴어  전부 못쓰게 되었다. ....큰책장은 밖에 들려나가지 않았으나 탁상뻬랍속에 있던, 소학졸업사진과 중학졸업사진 등 나의 얼굴이 찍힌 사진 20여장은 쇠못으로 찔러놓아서 더는 남겨둘수 없게 되였다. ...손전지, 회중시계가 잃어지고 안해의 옷 호주머니에 있었던 돈가방이 잃어졌다. 그 속에는 그달의 월급돈 24원과 천표 9자 있었고....새 로동장갑 여러컬레와 싸진수건도 가져갔다.

     (3). 며칠후에는 홍광소학교의 교원홍위병들이... 서적을 몽땅 가져갔다....1,200여권. (아마 1년이 넘었을것이다) 그후 돌려주었는데 책은 이미 반나마 없어지고말았다.

     (4). 나는 최x x 와 심군일이한테 심한 구타를 당해 몰골이 형편없게 변해버렸다. 어느 한번 홍광소학사생들이 나를 끌어다 투쟁하고 돌려보냈는데 마당까지 뒷따라나온 심군일이가 나의 불통을 발로 걷어차 나는 당장에서 피오줌을 흘렸고 ....병은 지금도 완치되지 않았는바 만성요도염증상으로 번지고말았다.

      (5). 당시 나의 어머니도 련루되여 심군일에게 숱한 매를 맞았는바 얼굴은 볼모양없이 됐고 머리를 깎이워... 발등을 쇠줄로 찔러 꿰구멍냈다.... 한쪽발이 병신이 된 어머니는 그 때문에 반년남아 드러누워 앓았는데 그에 든 치료비가 무려 7,8백원.... 원통한건 아무죄도 없는 어머니가 종신으로 되여버린 그것이다!

  이상 다섯가지 사실을 보충교대합니다.  

                                            김송죽    1978, 12, 28  >>

 

격강이 천리라지만 결국은 모두가 내탓이였다. <<문화혁명>>>때 자기혼자면 몰라도 죄없는 어머님마저 그같이 련루시켜 이루형언키어려운 곡경을 치르게 만들었던 이 불효자는 멀리떨어져있음을 빙자하여 이붓자식의 손에서 병을 앓고있은 어머니를 제때에 자주가보지 않았거니와 시간이 긴박한 사정이라지만 아무튼 돌아가신 어머님의 장례에마저 불참했으니 낯이 뜨겁기만하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서 세상뜨기 한해전 내가 문안을 갔을 때 어머니께서 내한테 토로한 원한에다 나의 처ㅡ노친의 유언까지 있었기에 나는 부득불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듣자니 심군일 그늠아는 너하구는 동창이라더구나.그런데도 사람의 새끼가 어떻게 돼서 그토록 지독하냐? 과연 알고도 모를일이다! 인간의 깝질을 쓰고 아무렴 그렇게까지야?... 지금도 생각하면 그저 복장이 터지고 이가 갈리는구나. 너의 아버지 <렬사증>을 그늠아가 찢어버렸네라.>>

   하면서 어머니는 같은날 8촌짜리 <<영평강전투희생렬사추도식>>사진을 찢어버린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심군일이였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앞에 무릎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 그저 이 아들이 너무나도 무능하고 못나서 무고한 어머니를 련루시켜 욕을 보게했거니와 국가에다 목숨바친 아버지마저 받아야 할 대접을 못맞게 만들었으니 그저 죽을 죄를 졌다고 했다. 그러고나서는 나는 어머니와 심군일 걔가 나하고 어느때 무슨일로  원쑤지간이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노라했다. 사실이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사실 나도 동창생인 그가 왜서 그같이 미친개같이 포악스레 행패부렸는지 그게 전혀 생각밖인 것이다. 그렇다는것을 솔직히 말하고나서 나는 어머니와 그 원인을 이제 아무 때든 살아서 꼭 밝혀내리라했던 것이다. 

   <<그자식을 아무 때건 내가... >>

   <<안된다! 넌 그래서는 안된다! 절대안된다!... 제발 미런한 짓은 하지 말거라! 여직까지두 참아왔을라니, 않그렇냐?>>

   내가 복수심을 품었고 복수를 하면 무자비하게 하리라는것을 잘알고있었던 어머니는 집요한 눈길로 쏘아보면서 절대그러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했던 것이다. 내가 세운 손날로 붉은벽돌 한장을 단번에 두동강내는것을 친히 본  어머니였다. 벌리중학에 붙기직전이니 그때 내나이 14살이였다. 

   <<네목숨을 네가 아껴야 한다. 그깟 하잘것없는 놈과 대바꿈해서야 무슨값에 가겠냐.>>

   하면서 어머니는 여지껏 용케 참고지냈을라니 이제와서 더 못참겠느냐 하면서 제발 미런한 짓은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어머님의 그 당부는 옳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그런식의 복수는 현명하지 못한것 같다.

   하여 나는 여지껏 어머님의 권유에 따른것이다.

   <<네 남편 이름이 김병념이 맞지?>>

   심군일은 그날 나의 어머니와 이렇게 따지고나서는 제 호주머니에 넣고있었던 “렬사증”을 꺼내여 흔들어 보이더란다.

   <<너 이년아, 이게뭐냐?>>

   <<열사증이다.>>

   <<네 남편이 그래 렬사맞냐, 이년아!?>>

   <<렬사아니고 그럼 뭐냐?>>

   어머니가 이렇게 나오니 심군일이는 그 렬사증을 갈기갈기 찟어버리고는 어머니의 얼굴에다 침을 뱉았다고 한다.  

   <<이 쌍년아, 네남편이 혁명렬사라구? 아니다. 네남편은 투기분자다, 투기분자!>>

   그 소리에 격분하여 어머니는 그를 쏘아보면서 맞받아 네놈이 지금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치는거냐했던 것이다.

   나의 부친은 성명이 김병념(金丙念)인데 위만때 징병에 뽑혀 석두하자(石斗河子)에 가 훈련을 받은 후 돌아와 쟈므스철로경호대에 배치되여 근무를 했다. 그러다가 1945년 8.15광복을 맞은건데 광복직후 동북민주련군 합강성정부 조선독립영이 생기자 거기에 가입해 교련이 되어 의란(依蘭)에서 부대의 정편훈련을 맡아 지도했고 그것이 끝나자 이어 토비숙청에 나선건데 참모장 김해정과 함께 자기의 정찰반을 거느리고 화남현경내에 있는 영평강금광을 보위하러 갔다가 1946년 11월 17일, 전투에서 희생되였던 것이다.

(관련글: <<에세이 내 사유와 잊을수 없는 일>>, <<동철부대토비숙청기>>)

     

나의 아버지 김병념(金丙念)이 렬사가 옳으냐 아니냐는 국가정부가 판정하고 <<열사증>>을 내준건데 일개 소학훈장질이나해먹은 보잘것 없는 녀석이  제밸대로 그것을  찢어버렸으니 뭐라했으면 좋을가? 제가 대체 뭔데? 이래서 무지하면 야만이 된다고 내가 늘 말하는것이다.  

1964년도여름,“4청”때의 일이다. 화천현성화공사교육계의 공청단선전위원에다 소선대총보도원이였던 내가 당시 공청단중앙서기 호요방의 문건을 절달할 때였다. 그 문건에 호요방이 <<우리는 미제국주의를 반대해야한다>>고 한 구절이 있어서 그것을 내가 그대로 읽어내려간건데 심군일이가 문화혁명이 오니 나보고 <<너 이새끼, 어째서 미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는 하지 않고 반대하자했느냐?>> 걸고들면서 나의 불통을 차놓았던 것이다.

이건 악한이 아니고는 하지 못하는 짓이다.

홍광대대위원회 판공실은 모두 세칸이였는데 맨서쪽칸에서 내가 xxx에게 얼굴을 맞아대고 맨 동쪽칸에서 어머니가 심군일에게 구타를 당했던 것이다.

xxx는 

<<네가 공산당을 반대했다는걸 승인하라. 그런다면 더 때리지 않을테다.>>하면서 주먹으로 얼굴을 그냥 때렸다. 그래서 나는 머리가 붓고 얼굴이 퉁퉁부어 호박같이 된건데 나중에는 눈을 뜰수없어서 앞을 제대로 보기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지경이 되면서도 나를 때리는자의 그 요구를 절대들어줄수는 없었다. 나도 공산당에 가입하려 애썻을 뿐 반당심이란 꼬물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서 기어코 반대한다고 대답하라는건가? 나는 그가 내 입에서 한사코 그 한가지 대답을 받아내려드는것을 보고 명백히 깨달은것이다. 매를 못이겨 그렇다고 말만하면 그건 승인하는 것이니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는것이요 자기에 대해서 자진 사형선고를 내리는 꼴이 되고마는 것을!.... 정장송, 장동화, 심군일 이들 셋은 짜고서 나와 내집식솔들을 한꺼번에 멸살하려들었던 것이다. 이 일은 훗날 인간성이 부활해서 스스로“我看错人了"하면서 내앞에서 머리숙여 자기를 뉘우친 그 사람이 토로한 것이다.

<<네년이 송죽의 자료들은 왜 숨겨줬냐?>>하는 심군일의 질문에 나의 어머님은  <<내가 그것들을 숨겨준게 뭐가 잘못됐냐? 자료를 빼앗겨 잃으면 그 사람이 글을 어떻게 쓰는가? 그래 내가 건사해줬다.>>했더니 심군일이가 <<이 쌍년이 반혁명짓을 하고서두 떳떳하냐?>> 하면서 귀뺨을 때리더란다. 그래 어머니가 격분해서 <<아주 되지못하게 자라먹은 놈이구나. 넌 그래 부모도 없냐?>>고 힐란했더니 그가 <<이 쌍년이!>>하면서 두 주먹으로 량볼을 마구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통에 머리가 헝클어져 내렸다. 그것이 손에 감겨드니 심군일은 싸그쟁이같은 그 중학생계집애를 시켜 가위를 가져오게해서는 그것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반남아 마구깎아버렸다. 그리고는 계속 때렸던 것이다. 이러는 판에 중학교의 김용일과 오상국교장 등 몇이 거기에 나타났던 것이다.

년세많은 오교장은 젊은놈이 제에미벌되는 사람에게 마구행패질이니 보기가 너무안돼서 <<요원도우 뿌요우도우(要文斗 不要武斗)>>라 지시했는데 너무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심군일이가 그를 향해 <<어째 보황파돼서 같이 뚜드려맞고푼가?>> 고 눈을 부라렸다고한다.

중학교의 그 싸그쟁이 홍위병계집애가 우리집 탁상뻬랍에서 들춰낸 8촌짜리 커다란사진ㅡ 영평강전투에서 희생된 17명렬사추도식장을 찍은 사진을 가져다 바쳤다. 심군일은 받아 보고는 이를 앙물더니 그것마저 갈기갈기 찢어서 어머니의 낯에다 뿌렸던 것이다.

어머니는 격노하여 그를 욕했다.

<<인제보니 네놈은 악한 개놈의 새끼구나!>>

그랬다고 심군일이는 중학생홍위병총지휘였던 김용일이가 손에 들고 꺼들거리는 굵은쇠줄꼬쟁이를 채듯이 가져다가 그것으로 어머니의 왼쪽발등을 찔렀는데 기술을 어떻게 부렸는지 꿰구멍이 났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까무라쳤다..... 여기까지는 어머님이 나에게 들려준 사실 진술이다.

 

바로 이때 서쪽방에서 머리에 혹이 나도록 되게 얻어맞은 나는 하라는대로 목에다 <<反黨分子>>란 패쪽을 건채 밖에나와 서쪽의 대대혁명위원회판공실과  우리 집 사이의 큰길복판에 사원들이 실컷 구경하게 서있었기에 어머니가 문짝에 들리여 집으로 옮겨지는 장면을 목격한건데 검정고무신에 차고 넘치는 피가 길에 점점이 줄을 그으면서 떨어졌다.

오상국교장이 따라가면서 <<에,에, 원!... 쯧, 쯧!...>> 혀를 찼다.

<<어느새끼 그랬냐?!>>

나는 격분이 끓어 부르짖었다.

어머니는 내목소리를 잡아듣고 신음소리를 냈다.

<<송죽아, 제발! 송죽아, 제발!>>

나를 덤비지 말고 꾹 참으라는 당부였다.

나는 구곡간장이 끊어지는것만 같았으나 별수없었다. 네녀석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부모를 우롱하고 손을 댄단말인? 달려가 심군일이를 당장 각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수없어서 원통했다.

나는 눈에서 불이 일었다. 벌레나답잖은 하찮은 놈이 눈깜짝새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혁명자>>로 둔갑한것에 나는 적이 놀랐거니와 가슴에 증오와 저주가 부글부글 괴여올라 속으로 부르짖었던 것이다.

<<이놈의 세상! 이놈의 나라! 어서 콱 망해버리라!>>

 

나의 어머님 역시 일개농촌부녀였다. 하지만 그이와 같은 농촌부녀는 아마 썩 드믈것이다. 어머님의 생평을 보면 결코 보통이 아니였다. 나의 어머니 최정순(崔正順)은 시집오기전 어릴때 의란, 화남일대에서 발생한 토룡산폭동(土龍山暴動)을 겪었거니와 폭동 후 항일련군 8군의 항일때도, 동북민주련군의 토비숙청때도 자기가 갖고있는 손재간ㅡ 재봉기술로 헌신했거니와 토지개혁시기에 들어와서는 주둔부대재봉소의 일을 맡고 있으면서도 마을 빈농회의 부녀주임을 겸하여 지내기도했던것이다. 그같은 나의 어머님은 정직하고 대바르고 의지굳은 것으로 하여 이 아들의 거울이 되고 귀감이 된 것이다. 내가 문학의 길에서 이만큼이라도 성공을 보게되였음에는 어머님의 공이 큰 것이다.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용감한게 아니라 넘어졌다가 다시뛰여일어나는 사람이 용감하네라.>> 어머니가 나에게 여러번이나 일깨워준 말씀이다.

인생이 한번뿐인데 사람은 리상이 있어야한다면서 무엇에든 성공하자면 노력을 끊지도 잃지도 않는 견강한 투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나를 격려했고 분발하게끔 이끌어주었던 어머니인 것이다. 하기에 나는 마음속에 어머님 하나만을 우상으로 모시고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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