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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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2장(9)
2015년 01월 05일 23시 38분  조회:233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9

 

   눈보라를 새보얗게 일쿠며 기승부리던 바람은 밤까지 울부짖고나서 맥이 지났는지 뚝 끊고말았다. 고요한 하루가 지난후 암회색 란층운이 덮이더니 이번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항간에서는 동지가 지나 세 번째 미일에 내리는 눈을 <<랍설>>이라 하면서 살충약이나 해독제로 쓴다고들 한다. 여기 손가장 사람들은 해방받은지 3일만에 내리는 이 눈도 <<랍설>>이 되어 손가네와 국민당의 독수를 씻어버리고 후환을 없애버리는 소독제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했다. 이것은 소박한 념원이였다. 독수를 씼어버리고 후환을 없애버리려면 실제적인 일들을 많이해야 했다. 준엄한 현실은 그어떤 환상이든 다 버리고 정신을 바싹 차리라고 경고하고있었다.

   부대는 말발굽산과 손가장에서 로획한 별동대의 말로 두 개의 기마련을 편성했고 로획한 무기로 자신의 장비를 보충한 후 원 작전계획에 좇아 1영만 남겨놓고 천지주무장대를 섬멸해버리러 인차 떠났다.

   주력부대가 손가장을 떠난후 마을안에서는 같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어떤 사람은 주력이 도시로 되돌아갔다했고 어떤 사람은 금성을 치러 갔다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남으로 나가 마희산을 친다는지 곰보방치를 친다는지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갖게 되는 근심은 이제 서쪽에서 사문동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호룡산에는 1만명도 넘는 중앙군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지 오랜데 도망친 손창유가 이제 그 1만명의 흉악한 무리를 끌고와서 보복하려 한다면 한 개 영의 병력으로 막아낸다는건 그야말로 대부등에 곁낫질격으로 어림도 없다는것이였다.

   손가장에는 별동대에 있던 기의련까지 합쳐서 인원이 모두 550여명이니 기실은 적은 병력이 아니였다. 거기에다 정찰련에서 정찰기능이 제일있다고 보여지는 1패를 남겨서 적정을 살피게끔 하였다. 백성들이야 무엇이라하든 군인들은 자기 할 일을 해야했다. 장원안에 있는, 별동대지휘부의 간판을 달았던 평천부(平天府)가 지금은 1영 영부로 되어 그안에서 밤낮으로 패주한 손창유를 대처할 금후의 작전들이 긴장히 연구되고있었다.

   려홍이 영부로 들어갔을 때, 집안에는 마참모장과 김영장을 비롯하여 영과 련의 간부들이 거진 다 있었고 장패장도 있었다.

   <<팔이 상했다던데 어떻소? 안되오, 치료받아야겠소.>>

   려홍이 자기에게 정찰임무를 주지 않는 장패장에게 의견이 있다고 하니 마참모장은 다가와서 아무말없이 먼저 상처부터 검사하더니 자기도 장패장의 처사에 동의한다고했다.

   <<이까짓거 뭘, 껍질이 약간 벗겨졌는데두요.>>

   려홍이는 상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동무에게는 정찰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고많소.>>

   하고 김영장이 말했다.

   <<정찰병이 정찰임무를 내놓고 또 뭐가 중요합니까?>>

   <<왜 그렇게 말하오?>>

   김영장은 눈을 치뜨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동무는 모르는구만!... 인민의 군인은 백성들 속에 있으면 할 일들이 많다는걸 이제 알게 될거요. 동무는 이 마을사람이니 나와 참모장을 많이 도와줘야겠소.>>

   그이상 더 말해볼 멋이 없게 된 려홍이는 머쓱한 기분으로 돌아서버리고말았다.

   <<잠간!>>

   마참모장이 그를 불러세웠다.

   <<방금전에 남천오 모친이 찾더구만. 김반장은 부대가 마을에 들어온지 사흘이 되도록 아직 가보지 않았다며? 혁명을 해도 늙은분들을 되도록 노엽히지는 말아야지... 저녁켠에 여기로 오우.>>

   하면서 그는 려홍이더러 남천오가 집으로 갔거든 영부로 보내라 했다.

   남천오의 기의행동은 부대와 마을사람들에게 대단한 기쁨을 주어 대절찬을 받았었다. 물론 손가장작전을 계획하면서 퇀부에서 그를 기의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했지만 결정적인 인소는 그 본인에게 있었던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았다.

   천오는 장패장과 려홍이 앞에서 기의하겠다고 제꺽 대답한 후 별동대 2련의 패장급이상의 골간들가운데서 부련장이였던 마름의 셋째아들과 담이 약하고 손가네를 진심으로 따르는 자 둘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제 손안에 넣고 비밀리에 기의할것을 공모했던 것이다. 행동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주밀했던지 하나도 탄로나지 않았거니와 인민무장부대의 지시대로 동대문을 열어 부대의 돌격로를 열어주었고 별동대의 기병들을 적지 않게 소탕하고 말들을 거의 로획하였기에 과연 자랑할만한 특공을 세웠던 것이다.

   <<참모장동지, 저를 부르셨습니까?>.

   성격이 씨억씨억한 남천오는 영부에 들어서자 별동대에서 하던 본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달아서인지 군인다운 멋이라고는 없이 허리를 굽석하고 인사를 하고는 자기를 지켜보는 눈들이 많으니 좀 어리둥절해하였다.

   <<거게 앉소, 집에 갔더랬소?>>

   마참모장은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나서 친절스레 물었다.

   <<포로된자 가운데 집이 여기에 있는 사람이 모두 몇이더라?... >>

   <<모두 스물아홉입니다.>>

   <<스물아홉이면 두 개반으로 편성하는게 좋겠구만. 내 생각에는 정문환에게 한 개 반을 맡기고... 그는 립장이 바로선 똑똑한 청년이여서 앞으로 한족청년들로 독립패를 내오면 패장으로 시킬수 있소. 다른 한 개 반은 천오동무가 보아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도록하는게 어떻소?>>

   <<참모장, 그런데... >>

   <<왜 무슨 고려가 있소?>>

   마참모장은 천오의 딱해하는듯한 표정을 주시하며 이렇게 다그쳐 물었다.

   <<마을에 참 괴상한 소문이 떠돌고있습니다. 이건 마음나쁜놈이 일부러 꾸며낸게 분명합니다!>>

   모두의 시선은 천오에게로 집중되였다. 누구의 표정도 모두 캐묻는듯한 그런 기색이였다.

   천오는 격분된 어조로 진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입니다. <손가네가 꼭 다시 돌아온다. 그때면 조선사람부대를 고와준 사람은 모두 목을 달아매서 죽인다> 하는게 하나고 다음 하나는 <아들을 인민무장부대에 보내는 집은 일가멸족하리라> 하는겝니다. 어느놈이 이따위 악독한 요언을 꾸며냈는지 제길!... 참모장, 당장 붙잡아서 각을 뜯어치웁시다!>>

   <<일어서지 말고 자리에 앉소. 덤빌필요없소. 그런 요언이 떠돌면 확실히 좋지는 않은데 조사하고 처리하는건 아주 심중해야 하오.>>

   마참모장은 미간을 그러모으고 사색에 잠겼다. 어느 악독한 녀석이 뒤구석에 숨어서 그따위 란설을 조작해내고있는가? 사람들이 그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듣고 마음이 황황해 하지 읺을리 있겠는가?...

   <<마참모장동무, 이건 보통요언이 아닙니다. 확실히 적대적인자가 숨어서 만들어낸것 같은데 조사해봅시다.>>

   하고 김영장이 입을 열었다. 마참모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그러다가 그는 머리를 쳐들었다.

   <<물론 조사도 해봐야지만 우리는 군중에게 겁을 너무 집어먹지 말고 일떠서게끔 선전을 해야겠소. 자기 힘을 믿게 해야한단말이요! 천오동무, 그래 기의련에서 탈퇴하겠다는 사람은 없소? 다시말해서 총을 놓고 집에 들어앉아있겠다거나 어디에 피해버리겠다구 하는 사람은 없는가말이요?>>

   <<손창유가 쳐들어올가봐 근심하는 사람은 있어도 아직 그렇게까지 비겁한 사람은 없습니다.>>

   <<비겁한 사람이 없단말이지? 거참 반가운 소리군. 절대 비겁하지 말아야 하오. 비겁하지 않으면 용감성이 있게 되니깐.>>

   마참모장은 한시름 놓이는지 화기있게 웃으면서 코를 킁킁 거렸다.

   <<그런데 저... 참모장, 그네들을 어떻게 할가요? 스믈아홉명말입니다.>>

   <<그네들도 우리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하오. 아마 그러자고 할게요. 지금의 처지는 중국사람이나 조선사람이나 다가 꼭 같으니까.>>

   마참모장은 자기가 집접 포로된 한족청년 29명을 묶어세울 궁리를 하면서 침착한 태도로 정중히 말했다.

   <<남동무, 손창유는 가만있지 않을거요. 꼭 보복하자고 할게요. 이제 달려들면 몹시 흉악해질거란말이요. 이건 틀림없지. 그렇다고 겁낼건 없소. 우리에겐 뭐 힘이 없는가? 말해보오. 우리에게 힘이 없는가말이요? 우리가 여기에 남았고 동무네 기의련도 있소. 무장이 몇배자루 있단말이요.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조직하고 동원해야 하오. 뭉치면 곧 힘이 되는거요. 우리가 뭉쳐서 결사적으로 싸운다면 대적못할게뭐요.>>

   뭉쳐서 결사적으로 싸우면 대적 못할게 무엇인가? 남천오는 자기가 기의에 성공한것을 되새기면서 신심을 가졌다. 돌이켜보면 악마같은 손창유가 도사리고있는 장원을 드나들면서 그런 끔찍한 반역행위를 준비했으니 그것은 과연 꿈같기도 한 대담한 반역행위였다. 마음먹으니 성공하지 않았는가, 마음만 단단히 먹고 굳게 뭉친다면 과연 겁날게 없었다. 별동대의 총과 탄알을 빼앗은게 많겠다 이제 그것을 장년들에게까지 나눠주면 방어력이 적어도 천여명은 될것이다. 천오는 권토중래하는 손창유를 물리치는가 물리치지 못하는가 하는 관건은 군민이 굳게 단결하여 싸우는가 싸우지 않는가 하는데 있다는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다.

   순라병들이 마을서쪽 17밖에 있는, 지금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고 텅빈 일본인 이민단부락까지 갔더랬는데 거기서 말탄 적병 둘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마을서북쪽 이민단부락에서 말탄 적병을 만났다지? 그러니까 간밤에 정찰병들이 정찰한대로 손창유는 아직도 멀리 달아나지 않고 그 뒷부락에 수어있는게로군!>>

   마참모장은 보고를 듣고 자기의 예견이 맞음에 오히려 기뻐했다. 김영장이 여러 가지 부호표식들이 가득한 정찰략도에서 이민단부락뒤에 있는 한 마을을 찾더니 손으로 툭 쳤다.

   <<여기에 그냥있단말이지?... 류므허즈!>>

   류므허즈는 일본인 이민단부락과 약 5~ 6리 상거해있는데 호수가 불과 70여호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마을이였다. 이 산간마을은 농사를 하는 한편 벌통도 놓고 산나물도 따고 겨울철이면 목재부업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산간벽지에 있는 마을치고는 살기가 좋은 오붓한 곳이였으나 지금은 손가장에서 목숨붙여 도망간 한무리의 별동대가 굶주린 이리떼마냥 달려들어 백성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을 주고있을것이였다.

   <<그런테 참 이상스러운것은 손창유가 무엇 때문에 호룡산으로 가지 않고 거기에 가 숨어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고 1련 련장이 말하자 2련 련장이 제꺽 말을 받았다.

   <<것도 몰라, 그건 그자가 인츰달려들자는 야심을 품었기 때문이지.>>

   그러자 물의가 일어났다.

   <<기껏해야 백여명되는 병졸갖고 감히 달려들자고 할까?>>

   <<사문동에게 원병을 청했을거야.>>

   <<그자신이 왜 호룡산에 가서 직접 원병을 데리고 오지 않을가말이요?>>

   <<허참, 손창유가 창피스레 패망한 꼴을 보이러 가겠는가. 들어만가면 웃음거리로 될 판인데.>>

   <<웃음거리루야 이미 다 된게 아닌가.>>

   <<그래도 지금 당장 들어갈 비위는 없을거야.>>     

   <<그건 <백고프면 빼앗아먹지 빌어먹지는 않는다>는 마적의 공도(公道)가 있기때문일걸세.>>

   <<그놈의 공도가 이제 손창유를 발가벗고 칼춤추는 무술사로 만들어놓을거야.>>

   <<하하하!... >>

   <<그렇게 되면 꼴보기가 참 좋겠는데.>>

   <<하하하!>>

    웃음소리에 집안이 들썽했다.

    마참모장은 김영장과 함께 근처에 집이 있어서 장차 돌려보낼 예산으로 도시로 호송해자지 않고 남겨둔 70여명되는 별동대 개준자들에 대한 심사와 감독문제를 내놓고 연구하려다가 먼저 장패장을 가까이 불러놓고 류므허즈에 정찰을 보내여 적의 동태를 좀더 세심히 알아오게 하라고 명령했다.

   (생소한 곳이여서 안으로 들어가자면 힘이 들텐데 누굴보내면 좋을가?... )

   장패장이 적임자를 생각하며 망설이는데 마침 천오가 다가왔다.

   <<장패장, 우리가 도와드리지요. 여기 지형은 우리가 잘알고있습니다. 말씀만하시오, 요구대로 할수 있습니다. 용수, 철룡, 만덕이, 덕삼이... 그리구 나도 이고장 백리안은 손금보듯 눈에 환합니다.>>

   <<감사하오! 과연 그렇다면 우릴 도와줘야겠소!>>

   장패장은 기뻐하면서 길잡이할 사람 한명만 먼저 보내달라고 했다...

   남천오네 부모들이 사위될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남달리 극진했다. 1영 위생병들과 함께 마을에 남은 딸한테서 려홍이가 이번에 적탄에 팔이 상했다는 말을 말을 듣고 량주는 몹시 걱정하던 끝에 집에 데려다 간호하면서 치료받게 하자고 의합이 맞아 늙은량주는 지휘부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려홍이는 그들에게 상처가 경해서 아무렇지도 않으며 막상 중하다하더라도 부대에 지정해놓은 병실이 있으니 거기서 치료받아야지 제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자상히 여쭈었다. 그랬더니 혜옥의 어머니는 더럭 노염을 냈다.

   <<이 사람아, 통 모를일이네. 전번에 왔을적엔 손가네가 있었길래 가만히 들어와 그렇게 찍소리도 못하고 숨어있었네만 지금이야 뭬가 무서운가? 자네도 혜옥이처럼 규률이란걸 말할텐가?>>

   <<어머니, 제가 일찍찾아뵙지 못한건 아주 미안합니다만 어디 몸을 뺄수가 있어야지요. 모두들 바삐돌아쳤습니다. 전장을 수습해야지... 죽은 별동대놈들을 파묻자고 끌어내는데만도 품을 얼마나 넣었다구요. 하긴 저야 청가맡을수도 있었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군인이면 규률을 지켜얍지요. 규률을 지키지 않으면 백번싸워도 이길수 없습니다. ... 이렇게 말씀드리면 노엽지 않으시겠지요? 마을에 꽤 오래 있게 될텐데 시간있으면 되도록 자주다니겠습니다.>>

   혜옥의 어머니는 자주와서 봐주겠다니 속이 좀 풀리는 모양이였다. 하면서도 결혼잔치는 어느때가야 할건가고 들이대려다가 그것은 어쩐지 때가 맞지 않은것 같아 그만두고말았다. 딸년이 토비를 숙청하고 싸움이 끝나면 하리라했으니 보나마나 려홍이도 꼭같은 본새로 대답할것이였다. 그놈의 숱한 토비가 언제면 다 숙청되고 싸움은 또 언제가서 끝나겠는지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되였다.

   려홍이 부대로 돌아오자고 하는데 정문환이 헐헐거리며 달려왔다.

   <<아, 려홍이구만. 아침에 점도록 찾았는데 여기서 만났구만!>>

   북만 한고장태생이요, 어려서부터 같이 놀며 자라난 정문환은 몹시 반가와하면서 지금 석마간에서 마을사람들이 조률개를 달아매고 뚜드려패고있으니 가보자는것이였다. 려홍이는 인차 짚이는바가 있었다. 본성이 사사스러운 그자의 입에서 아마 같지 않은 요언들이 나왔는가부다하는 예감이 들었다.

   두 청년은 바삐 그리로 갔다. 석마간 앞마당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집안에서 지끈지끈 매질하는 소리가 났고 그럴때마다 사람살리라는 애처로운 맥빠진 소리가 밖으로 간신히 새여나오군했다. 누군가 려홍이 왔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문가에 섯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길을 내주었다. 석마간안에는 조률개를 증오하는 무수한 눈들이 번득이고있었다. 조률개는 두팔이  묶이여 대들보에 데룽데룽 매달리워있는데 얼굴에서 콩알같은 땀방울이 흐르고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솜옷을 벗기고 속옷만 입힌채 넙죽한 혁띠로 사정없이 때렸다.

   려홍이는 안으로 더 헤집고 들어갔다.

   <<잠간만!... 왜 사람을 이렇게 때립니까?>>

   신병호가 려홍이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다보더니 들었던 팔을 내리웠다.

   <<어, 려홍인가!... 보게나, 이자식이 끌세 손창유가 돌아오면 조선사람은 멸살하리라는지, 조선사람군대가 마을안에 있는 중국사람들을 멸살하리라는지 통나발 개나발을 불어댔다우. 제기, 조선사람은 중국사람을 무서워하고, 중국사람은 조선사람을 무서워하고.... 손가놈의 턱주가리에 붙어서 꼬리질하는 이따위 요언분자는 혀를 가로물게 만들어놔야지!>>

   <<그녀석을 더 때려라!>>

   <<그녀석도 청지기처럼 없애버려야 한다!>>

   여기저기서 분노한 웨침들이 련달아 일어났다. 려홍이는 아직 혀를 빼물지 않고 달려있는 조률개를 다시보았다. 그저께 손창유가 쫓겨 달아났는데 저자식이 제 죽을줄 모르고 허무한 요언을 날조했으니 그럴만도 하리라고 생각되였다. 려홍이는 이전에 가게방에서 털보와 게뚜더기를 비롯한 불청객들과 맞다들 때 조률개가 나서서 화해시키던 일이며 도시정거장에서의 상봉이며 혜옥이가 석냥사러 갔을 때 털보와 함께 술을 마시더라는 등등을 련상하고는 이자가 어쨌든 종은 인간은 아니니 단단히 잡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조률개는 손창유의 덕에 밑천을 장만하고 부자로 행세해온 충실한 졸개니 다시는 허튼소리 못하게 단단히 잡죄야한다고 윽윽했다. 하지만 그가 어제밤에 감쪽같이 토성을 넘어 류므허즈에 있는 손창유한테로 가서 인민무장부대 주력이 가버렸으니 마을로 얼른 쳐들어오라고 꼬여바치고 돌아온건 누구도 몰랐다.

   누군가 석마간 구석쪽에서 석쉼한 소리로 조선사람 부대가 마을의 한족들을 죽이려 한다는 그 무서운 소리가 정말 조률개의 입에서 나왔는가고 물었다.

   때마침 정지항의 처남인 장형풍이란 사람이 조선사람들 속에 끼여있다가 높은 소리로 말했다.

   <<틀림없소, 그것도 저놈 률개의 입에서 나온 말이요. 저자식이 글쎄 오늘 새벽에 집집이 쏘다니며 그런 말을 퍼뜨렸다오. 우리 집에 와서도 그런 얘기를 하고는 인츰 가버렸는데 온 가족이 글쎄, 그 말을 듣고 야단을 쳤다니까. 아닌게아니라 죽을바엔 한번 해보리라 모질게 마음먹고 칼을 갈고 도끼를 벼르기까지 했더랬소. 한참 이러고있는 판에 마침 매부가 오질 않았겠소. 매부도 내 소릴듣고 첨엔 깜짝 놀라더니 절대 그럴리 없다면서 이건 틀림없이 조률기가 딴심보를 품고 마을안에 있는 한족과 조선족이 원쑤처럼 서로 갈라지게 만들자고 일부러 꾸며낸 수작이라고 했소,>>

   <<면바루 생각했구만! 그래 정지항은 어델 갔나?>>

   누군가 높은 소리로 묻자 장형풍은 다른 집들은 어떤 꼴인가 살펴보러 갔다고 알려주었다. 모두들 정지항은 마음이 쉽사리 드놀지 않고 두 민족지간의 화목을 깨지 않으려 애쓰는 좋은 사람이라고들 했다.

   <<우리넨 여직 한마을에서 서로 형님동생하면서 화목하게 살아온 처지였소. 그런 우리가 지금 갑작스레 원쑤지간으로 될수야 없는 일이 아니요. 저 개같은 조률개가 리간질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래 서로 원쑤로 될수 있는가말이요?>>

   <<옳소! 절대 그럴순 없소이다!>>

   <<우린 살아도 함게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하오!>>        

   여러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호응하면서 조률개녀석의 간계에 빠진 사람들을 어서 깨닫게하자고 웨쳤다.

   <<여러분의 말씀이 옳습니다!>>

   려홍이는 마을사람들의 각성을 대견하게 여기면서 군인다운 단엄한 태도를 보였다.

   <<손창유나 사문동이나 중앙군토비들은 모두 백성들에게 재난만을 가져다주고있으니 공동의 원쑤입니다. 그러니 터무니없는 란설을 듣고 조선족과 한족지간의 사이가 벌어져서는 안되고 동요해서도 안됩니다. 서로서로 굳게 뭉쳐 싸우기만 하면 아무리 흉악스레 달려드는 놈이라도 물리칠수 있습니다. 단결합시다! 단결해 싸웁시다!>>

   몇분후에 영부에서 반영을 듣고 사람을 보내여 조률개를 끌어다 영창에 가두게 했다.

   려홍이는 마을 복판에 있는 학교를 지나서 례배당쪽을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자기를 칠성판에서 건져준 죽마구우 양운파의 행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서북쪽 토성귀퉁에 있는 포대가 보였다. 그 포대는 손가장을 둘러감고있는 기다란 토성 네귀퉁이에 있는 포대들중에서 제일큰것이였다. 그것은 서대문에서 얼마 멀지 않고 지형상으로 보아 좀 높은 둔덕에 있길래 서대문을 직접 봉쇄할수 있는 유일한 보루인데 전번날 전투때 더러 파손된것을 지금 70여명의 포로들이 수건하고있었다. 전번날 리홍석이한테 총을 앗겨 까마귀를 쏘게했던 전사가 어깨에 총을 잡고 포로들의 행동을 감시하고있었다.

   <<여기 포로들가운데 별동대지휘부를 경위했던 자가 어느놈이요?>>

   <<저기 저자요.>>

   포로들은 말을 알아듣지 모하니 그저 겁기있는 눈으로 감시병의 손가락끝이 향하는 사람을 보았다. 언 땅 두께를 곡괭이로 뜯어제끼고 그밑에서 모래를 파내여 마대에다 지고 가던자가 여러 사람의 눈이 자기에게로 집중되니 무르춤서버렸다.

   <<네가 별동대지휘부 경비를 섰댔냐?... 겁나말어.>>

   한족이나답잖게 중국말에 능란한 려홍이는 눈이 둥그래진 그를 안심시키느라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네가 너희들의 양마관을 알고있겠지?>.

   <<양마관을 말이지. 전, 전, 면목을 잘 모릅니다. 잘아는 사람은 저기 저... >>

   그자는 포대와 거리를 좀 사이둔 토성가에서 날라온 모래를 마대안에 채워 은페된 화력지탱점을 고쳐만들고있는 한자를 가리켰다.

   려홍이는 그리로 갔다. 그자는 승급과 벼슬은 부자로 되는 밑천이라여기고 적극 힘스고 잘보여 패장으로까지 되었다가 그만 운수사납게 포로로 된 자였다.

   <<네가 운파를 아느냐? 양마관을 말이다.>>

   <<예? 저, 알기는 압지요만.... >>

   그자는 웬 일인지 눈치를 살살 살폈다.

   <<알기는 아는데 어쨌단말이냐? 왜 꾸물거리는거냐?>>

   려홍이는 그자의 행동거지가 얄미워서 툭 쏘아붙였다.

   <<저, 헤헤, 그건... >>

   <<자식이 왜 이 모양이냐? 잡생각은 말고 대답이나 해라. 양마관이 어떻게 됐냐?>>

   <<난 정말 모릅네다.>>

   하고 그는 거짓말을 했다.

   <<덮어놓고 모른다말고 잘 생각해봐. 네가 장원안에서 맨 나중에 붙들렸으니 손가네가 도망치는것도 보았게지? 그래 양마관이 죽었느냐 살았느냐? 그것만 말해.>>

   그자는 처음에 손가네를 탈출시킨 완고분자를 붙잡는줄로 알고 겁을 집어먹었다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눈알을 판들거리더니 갑자기 생각나는양을 했다.

   <<그렇지, 인제야 생각나는구만요! 그때에 어른님네들은 담을 막 마스고 들어오기 시작했더랬지유. 우린 혼비백산을 해서 오금이 졸아드는통에 꼼짝못하고 손들었지유. 정말입니다, 대항도 못하구. 그때내가 피뜩 볼라니 양마관은 어느새 말타구서 손대장이네와 함께 북문으로 달아나는것 같습디다.>>

   <<그러니까 죽진 않고 달아났단말이지? 헌데 왜 첨엔 모른다고 잡아뗐느냐? 이제보니 너도 솔직한 인간은 아니구나.>>

   다가오는 어둠속에서 그자는 려홍의 매서운 눈살을 느끼자 벌벌 떨었다.

   포대수건을 지도하고있던 1련의 부련장이 다가와서 웬일인가 묻고나서 려홍이보고 오늘오후에 포로병들의 일하는 열의가 낮아졌는데 어느놈이 내부에서 악선동을 한것같다고 귀띔했다.

   <<군중속에 있던 선동분자는 잡아냈습니다. 이 마을 가계방주인인데 이름이 조률개고... >>

   려홍이가 말을 채 끝맺지도 않았는데

   <<저기 어느놈이 달아난다!>>

   하고 누군가 갑자기 소리쳤다. 려홍이 얼핏 토성밖을 보니 방금전에 말하던 투항병녀석이 털모자를 벗어 동댕이치고 메주덩이같은 대가리를 흔들어대면서 마을서쪽에 있는 강변을 향해 죽어라고 냅다뛰였다. 지금의 사태는 점점 위급해가고있었다. 패주한 원쑤들이 손가장을 탈환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므로 투항병속에서 탈주자가 생기는 것은 허용할수 없는 일이였다.

   <<제깐놈이 뛰면 어디로 뛴다구, 내 총구멍은 벗어나지 못할걸!>>

   려홍은 자기의 모젤권총을 뽑아들고 겨누었다가 한방 갈겼다. 달아나던 자는 뒤뚝하더니 눈우에 폭 꼬끄라지고말았다.

   이틑날 저녁켠에 순찰병들이 달려와서 적이 서쪽으로부터 쳐온다고 보고했다. 긴급령이 내렸다. 몇분안되여 서쪽 내가의 다리를 건너 백마탄자가 하나 달려왔다.

   <<가만ㅡ 쏘지 말어, 련락병이요!>>

   김영장이 명령했다.

   적련락병은 담대한 자였다. 그자는 불과 백여메터도 안되는 토성밑까지 박근해서 말을 세우더니 총대신 갖고 온 활에다 살을 먹여 힘껏 쐈다. 화살은 <<피르륵ㅡ >>소리내며 날려와 바로 토성안에 떨어졌다.

   흰종이를 탱탱 감은 화살인데 실을 끊고 펼쳐보니 종이장에 연필로 획을 갈겨 쓴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있었다.

 

     <<예로부터 아무리 강한 손일지라도 주인을 깔보지 못하고 자리를 감히 빼앗지 못한다 했거니 너희들은 신의 섭리를 믿고 행동함이 어떠냐? 우리 중앙군은 일취월장하고있다. 너희들 부대가 남아서 우리를 당해낼만 하냐? 무모한 짓은 그만두고 물러가라. 대자대비로 충고하니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래도 불복한다면 이제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피바다로 만들어버릴테다.

                    중앙선견군별동대 대장 손창유

                                            즉일 >> 

 

   <<하하하, 이건 우리하고 흥정을 하는게로군!>>

   마참모장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어서 껄껄 웃었다.

   <<저 늙다리 악마가 어쩌누라 이런 궤변을 부리는걸가?>>

   김영장은 화가 동해서 종이장을 빡빡 찢어던지고 침을 퉤퉤 뱉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권총을 빼여 <<탕탕!>> 하고 두방 공중에다 갈겼다. 이쪽의 답복이였던 것이다. 적련락병은 총소리를 듣자 황황 질겁하여 달아났다.

   적들은 그야말로 굶주린 이리떼모양으로 흉악하게 달려들었다.

   손자량은 미친것같이 칼을 휘두르며 졸병들더러 고함을 지르게 하면서 마구휘몰아갖고 왔다. 하지만 그 사나운기세가 토성밑에 와서는 완강한 반격에 여지없이 꺾이여 물러가고말았다. 꼴을 보니 조률개가 마을에 한 개 영이 남았다 한것을 한 개 련이 남았다는 것으로 잘못들었거나 아니면 조률개가 잘못 알려주어 감히 접어든것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시체만 남기고 보람없이 퇴각한 적이 실패를 달가와하지 않고 다시달려들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였다. 그래서 마참모장은 전사들에게 경각성을 늦추지 말라고 명령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원쑤들은 과연 다시금 달려들었다. 놈들은 어둠을 리용하여 아득바득 기여들었다. 기여드는 적을 한놈도 빼워버리지 않고 섬멸해버릴 작정으로 모두 토성에 붙어서 밖을 노리였다. 그런데 이때 마을안에서 갑자기 <<불이야!>>하고 웨침소리났다.

   <<불이라니, 웬 불이야!?>>

   돌아다 보니 과연 뉘 집에 불이 났는데 바람에 불려 불길은 인차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것이 다른집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아우성소리 울음소리로 마을안은 갑자기 수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졌다. 부대는 적의 습격을 막는 한편 백성들과 함께 불을 끄지 않으면 안되였다. 두억시니같은 원쑤들은 이 틈을 타서 토성 한곳에 돌파구를 내려고 악착스레 달려들었다.

   정찰병들을 쥐휘하여 적을 반격하고있던 장패장이 불행이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가까이에 있었던 려홍이는 달려가서 그를 얼른 끌어안았다.

   <<장패장! 장패장!>>

   그러나 장패장은 대답을 못했다. 저주로운 탄알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간것이다. 려홍이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다른 전사들도 뛰여왔다. 장패장은 얼른거리는 화광에 눈을 뜨더니 권총쥔 손을 움직였다.

   <<적을! 적을!>>

   <<장패장! 적을 막았습니다! 저것보시오, 우린 반돌격합니다!>>

   <<아!>>

   장패장은 미약한 탄성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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