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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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 묻힌 비밀(47)
2011년 03월 30일 22시 36분  조회:3104  추천:18  작성자: 김송죽
                   음지에 묻힌 비밀(47)  

(1)진의가 문혁때 한 강연 “모주석, 림표 대단한것 없다”
   (2)싸움대장 괴대부     

진의가 문혁때 한 강연 “모주석, 림표 대단한것 없다”
   

진의(陳毅)는 “문화혁명” 때 태도가 아주 선명하고 관점이 매우 뚜렷하고도 첨예한 강연을 한적이 있다. 그것은 그당시 그가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기의 정치관점과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서 그의 고상한 성품과 원칙성을 잘 보여준 것이다. 
   

1967년, 홍위병들은 여러차례나 진의를 비판투쟁하는 대회를 열었다. 진의는 대공무사한 혁명정신으로 투쟁대회에 용감히 나서서 홍위병들에게 내심하게 당의 정책을 선전하면서 무리한 "극좌"의 작법을 실랄하게 통책했던 것이다. 무산계급혁명가의 숭고함과 높은 투쟁예술을 보여준것이다. 

그는 자기를 투쟁하는 대회장 즉석에서 특수강연을 했다. 표제가 없었다. 강연후 홍위병들이 <<내 이 외교부장>>이란 제목으로 그것을 정리해 냈다. 마음속에 구김이 없이 정정당당한 진의는 이 표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홍위병과 반란파는 그의 강연으로 재료를 두부 만들어 모택동에게 올리바치였다. 진의는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 그 자료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그의 당연한 견해를 표명한것이니까.       

진의는 강연에서 담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이제는 내가 발언해야겠다.... 내라는 사람은 매우 완고하고 락후해서 바람이 크게 불면 바람따라가고 비가 크게 내리면 비를 따라가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나는 준걸이 아니고 둔한 사람이다. 나는 문화인이니 문화인의 악습이 있는 것이다.    
나는 당내에서 40여 년을 사업해 왔다. 너희들에게 사실대로 말하겠다. 나는 두 번 로선방향착오를 범했다. 1949년에 한번 범하고 1952년에 한번 범하고는 원칙적인 착오를 범한적이 없다. 나는 불어댈줄을 모른다. 내 말은 활달하고 소탈해서 어떤때는 오해할 지경 바르지 않다. 나는 온실에서 자라난게 아니고 순풍에 돛단격으로 지낸것도 아니다. 나 역시 투쟁받았고 남을 투쟁하기도했으니 이중신분을 띈 셈이라 하겠다. 투쟁받은 경험도 있고 투쟁한 경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투쟁한 경험을 보면 너희들의 이것보다도 더 훨씬 맹렬했다. 무슨 무긴들 써보지 않았겠는가. 기관총, 박격포를 다 써봤다. 어떤 사람은 내가 시무(時務)를 모른다고 하는데 내가말하는건 진리인 것이다. 이것이 내 성격이다. 나의 이런성격이 좋은 일을 많이하게 했고 틀리게도 했다. 나는 그저 허허하고 지내는 사람이 아닌것이다. 
   
우리는 개인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에 대한 맹목숭배는 일종의 자유주이다. 나는 쓰딸린을 미신하지 않고 흐루쇼브를 미신하지 않으며 모주석도 미신하지 않는다. 그 몇이 모주석을 반대하지 않았는가? 듣자니 림부주석이 모주석을 반대하지 않았으니 아주 위대하지 않는가 한다! 모주석을 반대한다해서 다 반혁명인게 아니고 모주석을 옹호한다해서 다 혁명인것도 아니다. 내가보게는 모주석의 대자보도 붙일 수 있다. 모주석도역시 나사못이니까. 그가 전에 호남제1사범에서 공부할 때는 일개 보통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림표역시 그리 대단할 것 없다. 그가 지난때는 내 부하였다. 그래 이 큰 ‘문화대혁명’을 그 둘이 령도해낸단말인가? 그저 늘 위대하다, 만세, 만만세를 불러봐야 그들에게 좋은 점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매일 모주석을 만나는데 만날때마다 그래 ‘모주석만세’를 불러서야 되겟는가?
    
류소기는 나의 선생인데 수평이 매우높다. 우리 당내에는 지난때 쏘련류학을 다닌 중에 적잖은 사람이 나쁘게 변해버렸지만 류소기는 그렇지 않고 좋은 것이다. 너희들은 모주석저작을 학습해야하거니와 류소기저작도 학습해야 한다. 류소기가 ‘8대’에서 모택동사상을제기 하지 않은것이  그의 100가지 죄상중의 하나로 되였는데 그가 한 그 보고는 모주석이 정치국에서 결정한 것이다. 나는 그때 줄곧 그 자리에 있은것이다. 밖에서 만들어낸 류소기의 100가지 죄상을 보면 어떤건 꾸며 낸 것이고 어떤건 비밀이 새여나간 것이다. 이건 완전이 당과 모주석에게 먹칠을 한것밖에 되지 않는다. 
   
수천수만의 로간부들이 다가 짓밟히고 유린당했다. ‘중앙문혁’의 어떤 젊은 사람들은 ‘좌’가 너무심하다. 이런 젊은수재들은 반란파내에 나쁜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척본우(戚本禹)동지를 지금 좌파라하는데 내보게는 다 옳은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권리가 클수록 도리를 따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따라하라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검은무리라는거다. 어떤 사람은 뒤에 숨어서 어린아이들을 추겨 대자보를 쓰게한다. 이것이 무슨 품질인가? 류소기를 타도한다면서 왜서 등소평, 진운, 주덕, 화룡을 한데다 세우는가? 각자는 자기 몫이 있는 것이다.....     
   
지금 보아하니 사람을 해치는 대자보가 날이갈수록 거리에 많이 나붙고있다. 사람을 점점 더 놀라게 하고 수평이 저렬하며 글자도 커진다!  ‘개자식’, ‘쌍놈의 새끼’, ‘개대갈을 까부신다’ .....투쟁하자! 끝까지 하고, 점차승급하고, 꼭 반혁명으로 만들고, 검은무리로 만들고, 검은무리는 특무로 만들고, 특무는 머리를 까부시고, 까부신 머리는 떼버린다! 붙잡아내서는 놓지 않고, 잡아가면 돌려보내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면 무릎꿇기고해서 수많은 로간부가 자살했다. 그들이 어쨌다고? 수천수만의 간부들이 유린당하고 모욕받았다. 공작조의 사람만도 40만이 되니 기찬일이 아닌가! 나는 화를 입어 죽을지언정 그냥 참고 보지 못하겠다. 나의처가 전에 제네바회의에 갈 때였다. 치포를 입지 않고 스카트를 입었다고 치포를 꼭 입어야한다면서 치포를 입지 않으면 투쟁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려니 넌 물러서거라 그러지 않으면 녀편네를 감싸는걸로 치겠노라했다. 그래 치포를 입은건데 이제와서는 부화타락했다면서 투쟁하니 머리가 숙어지겠는가? 우리 노친네한테 고깔모자를 씌워 끌고 거리돌림을 하는데 그한테 그래 무슨죄가 있단말인가, 공작조 조장질을 한것밖에? 
   
나는 이번에는 보호했다. 보호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번에는 많은 외교부간부를 너희들이 처리하는 판이다. 너희들이 어떻게 투쟁하기싶으면 어떻게 투쟁하니 간부들의 생명이 너희들의 손에 달린것이다. 문제가 가장 엄중한건 너희들이 흑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간부를 ‘반혁명수정주의분자’라면서 배척하는 그것이다. 아닌것을 억지로 꾸밀건 그래 뭔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의 비위를 건드릴테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내가 무참히 죽는다해도 무섭지 않다!    
       
너희들이 전에도 나를 좀 참혹하게 투쟁했거니와 무정하게 타격하면서 나의 사장직무를 걷어갔다. 나는 부장질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류신권(劉新權ㅡ당시의 외교부부부장)의 뒤에 내가있다면서 나를 잡아내는데 나는 무섭지 않다! 나는 오랜 운동원이 돼서 천천만만의 풍랑을 다 겪어냈는데 이제 배를 번질까? 북경의 59개 대학에서, 전국의 1,2백개 대학에서 나를 잡아낸다해도 나는 무섭지 않다! 내가 그렇게 골기없단말인가?  이번에는 내가 뛸쳐나왔다고 할 수 있다. 너희들이 뛸쳐나오는데 내라고 왜서 뛸쳐나오지 못한단말인가? 
   
나는 견결하다. 어떤 사람이 나를 참혹하게 족쳐 예측못할 죽음을 준다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 너희들은 지금 나를 끌어내갈 수 있다! 며칠전에 내가 외교부에 가서 회의를 하는데 나더러 머리숙이고 죄를 승인하라는것이였다. 내한테 무슨죄가 있단말인가? 내한테 죄가 있다면 그래 외교부장질을 할 수 있었을가?  
      
 나의 검사는 할 수 없어서 한것이고 핍박에 의해서 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다 틀린게 아니라고 여긴다. 너희들은 무단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먼저 고깔모자를 씌우고, 그 다음에는 허리를 굽히고, 세 번째는 꿇어 엎디우고, 네 번째는 패쪽을 거는데 너무도 미쳐 날뛴다. 하늘이 높고 땅이 두꺼운걸 모른다. 너무 날뛰지 말아야 한다, 너무 미쳐날뛰면 좋은 끝장이 없는 것이다. 
    
나는 혁명을 40년간하면서도 이 지경에까지 이를줄은 몰랐다. 죽는다해도 두렵지 않다. 절대 굴복하고십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내 목숨을 내걸고 싸워볼 테다. 반란을 할테다. 오늘 이같이 분을 토한다! 나의 이 말은 우파언론이다. 오늘은 여기서 말을 맺으련다. 가능하게 틀릴 수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나의 이런말이 우파언론이라해도 꿈만하다.  착오를 범할까봐 검나말아야 한다. 일일이 착오를 범하지 않기는 불가능한 것이니까. 너희들은 착오를 범한게 내보다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 말은 검은 말인게 아니라 흰 말이다. 아니, 붉은말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 강화를 꼬리잡자고 할 것이다. 잡겠으면 잡아라지.  흥흥!”
                      


싸움대장 괴대부
    

괴대부(蒯大富). 1945년 9월 13일, 강소성 빈해현에서 출생. 조부는 신사군전사였고 부모는 다가 40년대 공산당원이다. 괴대부는 1963년에 청화대학공정화학계 학생이였다.         
1966년 6월 1일, 중앙방송은 섭원재(聶元梓) 등의 대자보 전문을 방송함으로써 전국에 반란운동을 일으키게끔 촉동했다. 괴대부는 다른 대학들에 가서 대자보를 보고는 청화대학에 들어와있는 공작조의 책임자와 공개변론을 했고 1966년 6월에는 학교공작조를 향해 정권을 내놓으라고 포격했다. 공작조는 괴대부가 “가짜좌파, 진짜우파”라 하면서 그를 우파학생으로 몰았다. 괴대부는 이에 절식하는 것으로 반항했다. 공작조는 그가 그런다하여 그의 공청단적을 박탈하고 18일간 가두었다. 
   
7월 21일, 진백달(陳伯達)은 중앙문혁소조의 왕력(王力)과 관봉(關鋒)을 청화대학에 보내여 갇혀있는 괴대부를 만나보고 위로하게 했다. 
   
7월 29일, 공작조를 철소했다. 
  
8월 4일, 진백달 등은 청화대학에 가서 왕광미(王光美)을 위수로 한 공작조의 “자산계급반동로선”을 비판하고 괴대부를 평판하는 대회에 참가했다. 석방된 괴대부는 이때로부터 “좌파”대학생으로 유명해졌다. 강생의 지시에 따라 괴대부는 북경시위가 인민대회당에서 여는 “문화혁명적극분자”대회에 참가했다. 회의가 끝나자 괴대부는 잇따라 청화대학에서 “정강산병단”을 창건하고 두목이 되었다. (“괴사령”이라 불렀다.) 그리고는 수도대전원교홍위병혁명반란총사령부(간칭三司) 부사령이 되었다. 
   
1966년 11월, 괴대부와 그의 수하 몇은 만화식의 <<군추도>>를 그려 국가, 군대와 지방정부의 100명지도자들을 추악하게 만들었는데 국가주석 류소기로부터 그 아래의 등소평, 팽진, 라서경, 륙정일, 양상곤, 화룡, 왕광미, 리유한.... 등이였다. <<군추도>>는 인쇄되여 전국에 널리퍼졌다. 
   1966년 12월 18일, 중앙문혁소조 부조장 장춘교는 중남해의 서쪽문에서 단독으로 괴대부를 접견하고는 그의 회보를 들은 후 그한테 류소기와 등소평을 타도할 임무를 맡기였다.    

괴대붕은 청화대학에 돌아 온 후 정강산총부회의를 열고 주앙문혁소조의 정신을 전달했다. 12월 25일, 괴대부는 5000여 명의 청화대학학생들을 휘동하여 천안문광장에 가 시위행진을 했는데 가는 도중에 큰길에서 내내 “류소기를 타도하자!”, “등소평을 타도하자!”고 구호를 높이웨쳤다.  
   
천안문에 이르러서는 “류, 등을 대표로 하는 반동로선을 철저히 타도하는 선서대회”를 열었다. 그리고는 왕부정, 서단, 북경정거장, 등을 향해  다섯갈래로 갈라져 행진하면서 구호를 웨치고 삐라를 뿌리면서 선동연설을 했다. 이를 “12.25대행동”이라 부른다.   
       

1967년 1월 6일 밤, 괴대부는 왕광미에게 전화로 왕광미의 딸 류평평(劉平平)이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차에 치여 인민병원에서 구급중인데 가장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류소기와 왕광미는 그 말을 곧이듣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차에 치였다는 아이는 없고 아들과 다른 딸애를 붇잡아 인질로 삼아 그들을 유괴한 것이다. 그들은 왕광미를 청화대학에 끌고 가 투쟁하려했다. 이 일을 주은래가 알고 간여하여 완광미는 3일만에 풀려 돌아왔던 것이다. 
   며칠만에 괴대부는 중앙문혁소조의 파견을 받아 상해의 “1월탈권폭풍”에 참가했고 3월에는 “2월역류”비판대회에 대오를 이끌고 참가했다.    
1967년 4월 10일, 청화대학의 홍위병들은 만명대회를 열고 왕광미, 팽진, 륙정일, 박일파, 장남상(張南翔)을 함께 비판투쟁했다. 
   
1967년 4월 20일, 북경시혁명위원회가 성립되였는데 괴대부가 북경시혁명위원회상위, 수도대전원교홍위병대표대회핵심조의 부조장이 되었다. 
   
1967년 6월상순, 북경반란파로 조직된 “류소기를 잡아내는 화선지휘부”는 중남해를 둘러싸고 구호를 웨치고 표어를 붙이며 고음스피카로 방송하고 지어는 절식하는 방법으로 류소기는 검사서를 쓰고 머리숙여 죄를 승인하라고 강요했거니와 투쟁을 받으라고 했다. 주요한 각색자는 물론  괴대부와 그가 휘동하는 전강산반란패였던 것이다. 
   
1967년 7월 25일, 림표가 홍위병들을 접견했는데 괴대부가 천안문에 올랐다. 27일, 무한에서 “730사건”이 발행한 후 왕력의 뜻에 따라서 괴대부의 수하는 “서향전을 타도하자”는 커다란 표어를 붙이였고 28일에는 청화대학의 정강산병단에서 찍어내는 작은 신문이 서향전을 타도하자는 성명을 냈던 것이다. 29일밤에 괴대부수하의 한무리 졸개들은 서향전의 집에 달려들어 무리하게 수색했다. 30일에 괴대부는 청화대학의 정강산단총부회의를 소집하여 회의에서 3, 4방면군의 간부는 “총을 가진 류등로선”이라면서 “서향전을 타도하자”고 선동했다. 그는 또 각지의 홍위병들이 참가한 “당전의 형세분석”회의에서 “군대내의 한줌도 못되는 자”를 붙잡아내자는 구호를 내놓았던 것이다. 
   
1967년 10월 17일, 괴대부는 <<정강산>>신문에 <<무산계급대탈권만세>>라는 글을 내여 “탈권경”을 굉장히 떠벌이였다. 
   
1968년 5월, 괴대부는 청화대학 정강산단의 문공무위지휘부(文攻武衛指揮部)를 조직하여 청화대학의 두파투쟁을 벌리였다. 그것이 이름난 “청화대학100일간 패싸움”인 것이다. 30일 이른새벽에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반대파군중조직을 공격하였는데 18명이 죽고 1,100명이 넘어 부상당했다. 종신잔페가 된 사람만도 30명이 넘는다. 직접입은 경제손실이 그때 돈으로 1,000만원이 더 된다. 청화대학의 무단적인 투쟁은 북경대학, 북경사범대학에 까지 파급되여 대규모적인 패거리싸움을 일으켰던 것이다. 
   
7월 27일, 수도의 공인모택동사상선전대(간칭 “공선대”)가 청화대학에 진주하려다가 괴대부수하의 저항을 받아 5명 공선대원이 총에 맞아 죽고 수백명이 부상당했다. 
   
이틑날인 7월 28일 새벽에 모택동이 섭원재, 괴대부를 비롯한 한애정(韓愛晶), 담후란(潭厚蘭), 왕대빈(王大賓) 등 북경홍위병반란파의 “5령수”를 불러다 접견하고는 괴대부를 비평했다. 그제야 그 다섯우두머리는 각기 제 학교에 돌아가 무기를 거두고 패거리싸움을 중지했던 것이다.   
   
괴대부는 1968년 12월에 녕하에 있는 야금부304공장에 기술원으로 분배받아 갔다가 1970년 11월에 청화대학에 와 심사를 받았고 1973년에 심사가 끝난 후에는 북경석화총장 동풍화학공장에 배치되여 감독로동을 했다.
    
1978년 4월 19일, 괴대부는 청화대학의 전교사생대회에서 북경시공안국에 의하여 체포되여 옥에 갇혔다. 1983년 3월 10일에 북경시중급인민법원은 괴대부를 반혁명선전선동죄, 살인죄와 무함죄로 유도형 17년에 언도하고 정치권리를 4년간 박탈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북경과 청해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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