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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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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력사상 위대한 시 中 몇수, 그리고 력사는 력사로...
2015년 02월 04일 14시 12분  조회:2927  추천:0  작성자: 죽림
 
 
 
중국 력사상 위대한 시  中  몇수

 
靜夜思(정야사)
 
-       이백
 
床前明月光     머리맡에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땅에 내린 서리인가.
擧頭望明月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低頭思故鄕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고향’을 떠올렸을 때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백의 명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외우는 시이기도 하다. 독음과 뜻이 모두 명려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향수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 때문에 천 년이 넘도록 중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시로 자리잡은 작품. 복잡한 사상이나 화려한 수식 대신, 가장 담담하고 소박한 필체로 풍부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묘사한 시.
 


遊子吟(유자음)
 
-       맹교
 
慈母手中線     인자하신 어머니 손에 실을 드시고
游子身上衣     떠나는 아들의 옷을 짓는다
臨行密密縫     먼 길에 해질까 촘촘히 기우시며
意恐遲遲歸     돌아옴이 늦어질까 걱정이시네
誰言寸草心     한 마디 풀 같은 아들의 마음으로
報得三春暉     봄 볕 같은 사랑을 어이 갚으랴.
 
 

모정을 읊은 송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인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고 있다.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봄 볕에 비유한 마지막 두 구는 지금도 널리 쓰이는 비유. 화려한 시어는 없지만 담백하고 소탈한 어투 속에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진하다.



 

賦得高原草送別(부득고원초송별)
 
-       백거이
 
 
離離原上草     우거진 언덕 위의 풀은
壹歲壹枯榮     해마다 시들었다 다시 돋누나.
野火燒不盡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春風吹又生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
遠芳侵古道     아득한 향기 옛 길에 일렁이고
晴翠接荒城     옛 성터엔 푸른빛 감도는데
又送王孫去     그대를 다시 또 보내고 나면
萋萋滿別情     이별의 정만 풀처럼 무성하리라.
 



 

백거이의 이 시는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시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또한 한 구절 한 구절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七步詩(칠보시)
 
-       조식
 
煮豆燃豆萁     콩을 삶는데 콩대를 베어 때니
豆在釜中泣     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은 조조의 셋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출중해 아버지인 조조에게서 총애를 받고, 형인 조비에게서는 심한 질시와 견제를 받았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조식을 견제하며 해치울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만약 그 동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말한다. 이 때 조식이 지은 시가 바로 ‘칠보시’로, 조비는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登鹳雀樓(등관작루)
 
-       왕지환
 
白日依山盡     눈부신 해는 서산에 기대어 지려하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를 향해 흘러 간다
欲窮千裏目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어
更上壹層樓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르노라.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층 더 누각을 올라가는 것’이다. 더 멀리 보고 싶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시.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
 
-       왕유
 
獨在異鄕爲異客     홀로 타향서 나그네 되니
每逢佳節倍思親     명절 때마다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遍插茱萸少壹人     산수유 꽂으며 놀 적 한 사람이 적음을 알 것이니
 
 



고향과 가족을 향한 떠도는 이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반복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게 곱 씹히는 시. ‘명절만 되면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네’란 구절은 천여 년 간 나그네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명언으로 쓰였으며,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명절 때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중국인 특유의 문화가 배어있는 시.



 
 關雎(관저)
 
-       시경 중 제 1수
 
關關雎鳩,在河之洲。     꾸우꾸우 물수리새 모래섬에 정답듯이
窈窕淑女,君子好逑。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參差荇菜,左右流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헤쳐찾듯
窈窕淑女,寤寐求之。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 깨나 구하고저
求之不得,寤寐思服。     구하여도 얻지 못해 자나 깨나 생각하니
悠哉悠哉,輾轉反側。     아득하고 아득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參差荇菜,左右采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따노라니
窈窕淑女,琴瑟友之。     아리따운 아가씨 금을 타면 나는 슬을 타리
參差荇菜,左右毛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골라내니
窈窕淑女,鍾鼓樂之。     아리따운 아가씨 종을 치면 나는 북을 치리
 
 
 중국 최초의 시가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시경은 수천 년 전의 시구임에도 아직까지 전해지는 명구가 많다. 시경 중 제 1수로 가장 유명한 <관저>는 중국 애정시 중에서도 후대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시.


 
夏日絶句(하일절구)

 
-       이청조
 
生當作人傑     살아서는 당연 사람들 중 호걸이었고
死亦爲鬼雄     죽어서도 역시 귀신들 중 영웅이리라
至今思項羽     지금도 항우를 그리워함은
不肯過江東     그가 강동으로 후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중국의 여류시인 이청조의 작품으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사람은 살아서는 사람들 중의 호걸이 되어 국가를 위해 업적을 세우고, 죽어서도 국가를 위해 몸바쳐 귀신들 중의 영웅이 되라는 애국의 격정이 절제된 시어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소부지임촉주)
 
-       왕발
 
城闕輔三秦     삼진이 둘러싸고 있는 장안 성궐에서
風煙望五津     바람과 안개 아득한 오진을 바라본다.
與君離別意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각별함은
同是宦遊人     나 또한 벼슬살이로 떠돌기 때문일 터.
海內存知己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天涯若比隣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
無爲在岐路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兒女共沾巾     아녀자같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 마세.
 

 
중국 송별시의 걸작. 시 속에 이별 당시의 슬픔이 절절히 전해진다.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는
지금도 쓰이는 명구.///



 

 

1989년 6월 5일, 텐안먼 광장에서 전진하는 18대의 전차 행진을 가로막는 남성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텐안먼 사건을 상징하는 장면, 나아가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남게 됩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의해 19세의 왕웨이린이라고 보도했지만 정확히 그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처형설, 망명설 등이 있었으나 2017년 신원을 숨긴채 중국에서 은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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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텐안먼 광장의 "탱크맨"

A Chinese protestor blocks a line of tanks heading east on Beijing's Changan Blvd. June 5, 1989 in front of the Beijing Hotel. The man, calling for an end to the violence and bloodshed against pro-democracy demonstrators at Tiananmen Square, was pulled away by bystanders, and the tanks continued on their way.

1989년 6월 5일, AP통신의 사진기자 제프 와이드너는 중국 비밀경찰들의 눈을 피해 텐안먼 광장이 잘 보이는 호텔 6층 객실 발코니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탱크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쇼핑백을 들고 천천히 걸어오더니 탱크를 가로막고 섰습니다.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4대의 탱크는 그의 앞에 멈춰 섭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그 순간을 와이드너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는 필름을 함께 있던 유학생을 통해 AP통신으로 보냈고, 일명 ‘탱크맨(Tank Man)’으로 이름 붙은 이 사진은 텐안먼 민주화 시위를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탱크맨’은 지금도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쓰입니다.

배우 김의성씨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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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콜이 찍은 ‘탱크맨’ 사진. 월드프레스포토 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찰리 콜이 찍은 ‘탱크맨’ 사진. /월드프레스포토 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집안군의 탱크 행렬을 가로막은 중국 남성 ‘탱크맨’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미국인 사진기자 찰리 콜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19년 9월 13일(현지시간) 콜이 지난 15년간 거주해온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난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콜은 1989년 6월5일 톈안먼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베이징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남성의 모습을 포착했다. 사진에는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채 홀로 탱크와 맞서는 남성의 모습이 담겼다. 콜 외에 제프 와이드너 등 당시 4명의 기자가 같은 장소에서 이 시민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은 미 시사잡지 뉴스위크를 통해 보도됐고, 탱크맨은 텐안먼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남성이 누구인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에서 이 이미지는 여전히 금지돼있다.

콜은 이 사진으로 1990년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찰리 콜은 생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탱크맨)의 행동은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순간을 정의했다고 생각한다”며 “그 이미지(사진)을 만든 것은 그이고, 나는 사진기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찰리 콜은 이 사진을 찍은 뒤 필름을 비닐봉지에 넣어 화장실 변기 물탱크 안에 숨겼다. 중국 공안이 호텔 방에 들이닥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공안은 그의 필름들을 훼손했지만 숨겨둔 필름은 AP통신 도쿄 지국으로 보내졌고, 마감시간에 맞춰 뉴스위크로 전송될 수 있었다.

콜은 1980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프리랜서 사진기자로서 아시아의 민주주의 현장 곳곳을 취재했다. 1985년 필리핀 민주화 운동과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 등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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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을 맨몸으로 막아서고있는 홍콩 시민

2019년 8월 25일 일요일

홍콩 시민들은

홍콩 송환법의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홍콩 경찰은 실탄을 공중에 사격하며 시위대를 진압했는데

격해지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막으며

총을 쏘지 말아달라 말하며

경찰을 막아선, 우산을 든 중년의 남자.

이 남자를 "피스톨맨"이라 부르고 있다.

"피스톨맨" - 앤서니는

과거 중국의 천안문 사태 때

탱크를 막아섰던 "탱크맨"과 비교되고 있다.

 

 
홍콩 경찰을 막고 있는 피스톨맨. 사진=트위터경찰이 물대포와 실탄을 이용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등 격해진 홍콩 시위 현장에 천안문 사태의 ‘탱크맨’을 연상시키는 ‘피스톨맨’(pistol man)이 등장해 현지인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CNN 등 외신들은 25일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눈 경찰을 맨몸으로 막아선 중년 남성의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 속 민소매 차림의 남성은 별다른 방어나 공격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양손에는 각각 휴대전화와 비닐우산 하나가 쥐어져 있을 뿐이다.

이날 홍콩에서는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을 쫓는 등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경찰은 처음으로 실탄 사격을 하고 물대포를 동원하며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이 상황에서 시위대 앞에서 경찰의 총구와 맞선 남성은 “저들을 쏘지 마라!”고 연신 외친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의 사진이 보도를 통해 공개되자 홍콩 시민들은 “1989년 베이징 탱크맨이 2019년 홍콩 피스톨맨으로 돌아왔다”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천안문 사태서 맨몸으로 탱크를 저지하고 있는 시민. 사진=바이두
탱크맨은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서 중국 정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은 남성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홍콩 가수 데니스 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홍콩 남성에게 큰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그는 7월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과 관련해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이사회에 중국의 회원국 퇴출을 요구한 바 있다.
피스톨맨을 발로 차서 진압하는 홍콩 경찰. 사진=트위터
반면, 이날 홍콩 경찰은 자신을 맨몸으로 막은 이 남성을 발로 차는 등 과도한 진압으로 비난을 받았다. 홍콩 경찰 대변인은 이러한 과잉진압 논란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며 경찰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홍콩 시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요란다 위 대변인은 “경찰은 저항에 맞서 영웅답게 행동했다”며 “그 상황에서 무력 진압은 필수였으며 합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함나얀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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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은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악몽의 1989년 6월 3일 밤부터 6월 4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혈진압이 마무리되고, 탱크가 천안문 광장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당연히 겁에 질려 도망쳤으나, 수십 미터 밖에서 진격해오는 59식 전차들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 손에는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어떤 사람이 단신으로 막아냈다. 영상을 보면 저 사람이 막은 전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차 조종수들이 차마 저 사람을 깔아뭉개고 갈 수 없었는지 옆으로 피해서 지나가려하자, 이번에는 전차가 피하는 방향으로 뛰어가면서 그야말로 몸을 던져 막았다. 그런가 하면 전차 위로 올라가서 조종사석에다 대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몇몇 시민들이 달려와 데려가면서 위험한 상황이 끝난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주변에 포진해있던 사복 공안들이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달려와서 떼어놨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공개된 6.4 항쟁 관련 사진 중에 동료로 보이는 자신과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고있는 사람과 함께 몸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이른바 탱크맨으로 불리는 왕웨이린은 대만으로 건너가 살아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는 중화권 언론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100% 밝혀진 바 없고 오히려 진압 직후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복역중이라거나 이미 처형당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1990년 미국 ABC 방송의 유명 베테랑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가 강**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월터스가 대놓고 당시의 사진을 제시하며 왕웨이린을 언급하자 강**은 너털웃음을 짓는 등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월터스의 질문에 중국어영어를 번갈아쓰며 답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사진 속 장면 자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서 말을 돌리다가, 갑자기 영어로 "그 사진이 증명해준다. 그는 탱크에 깔려죽지 않았다."는 답변을 한다.

그러자 월터스는 좀 더 직설적으로 체포 혹은 처형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에 표정이 굳어진 강**은 중국어로 "그 사람이 체포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한다. 재차 질문을 받은 강**은 마침내 "하지만 내 생각에는...죽지 않았다.(But I think...never killed.)"라고 영어로 답변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월터스를 향해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시 한 번 똑같은 답변을 한다.

즉, 왕웨이린에 대한 서방측의 의구심을 분명하게 부정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의 수반이 구태여 사망설을 부정했다는 것은 결국 해당 인물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never라는 표현을 쓴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never는 일반적인 부정문에도 쓰이지만, 결코 혹은 절대로 등의 강조형으로도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 강**이 영어에 매우 능통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6월 탱크맨이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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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맨

최근 수정 시각: 

 
나무위키+유도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탱크맨(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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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탱크맨(坦克人, Tank Man)
이름
왕웨이린(王維林) 또는 장웨이민(張爲民)
국적
중국
관련 사건
생몰년도
? ~ ?
생존 여부
2017년 기준 생존.
1. 개요2. 상세3. 생존 여부
3.1장쩌민의 발언3.2. 2017년 보도
4.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5. 기타6. 갤러리

 

1. 개요[편집]

1989년 천안문 항쟁 직후 인민해방군 전차를 막아선 시위대 측 남성을 가리키는 말. 일명 '탱크맨'. 이 사람은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오늘날도 회자되고 있다.

1998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20세기의 지도자들 & 혁명가들[1] 20명 중 한 사람으로 등재되었다. #

2. 상세[편집]

악몽의 6월 3일 밤부터 6월 4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혈 진압이 마무리되고, 6월 5일 탱크가 천안문 광장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당연히 겁에 질려 도망쳤으나, 수십 미터 밖에서 진격해오는 59식 전차들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손에는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어떤 사람이 단신으로 막아냈다. 영상을 보면 저 사람이 막은 전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차 조종수들이 차마 저 사람을 깔아뭉개고 갈 수 없었는지 옆으로 지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그 방향으로 달려가 그야말로 몸을 던져 막았다. 

그런가 하면 전차 위로 올라가서 조종사석에다 대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몇몇 시민들이 달려와 데려가면서 위험한 상황이 끝난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주변에 포진해있던 사복 공안들이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달려와서 떼어놨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공개된 6.4 항쟁 관련 사진 중에 동료로 보이는 자신과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과 함께 몸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한편 중국 CCTV에서는 당연히 탱크맨을 맹비난하면서도, '그대로 짓밟고 갈 수도 있었지만 정부의 자비심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3. 생존 여부[편집]

이른바 탱크맨으로 불리는 왕웨이린은 대만으로 건너가 살아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는 중화권 언론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100% 밝혀진 바 없고, 오히려 진압 직후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복역 중이라거나 이미 처형당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3.1. ***의 발언[편집]


위 영상은 1990년 미국 ABC 방송의 유명 베테랑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가 장쩌민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월터스가 대놓고 당시의 사진을 제시하며 왕웨이린을 언급하자 장쩌민은 너털웃음을 짓는 등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월터스의 질문에 중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답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사진 속 장면 자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서 말을 돌리다가, 갑자기 영어로 "그 사진이 증명해준다. 그는 탱크에 깔려죽지 않았다."는 답변을 한다.

그러자 월터스는 좀 더 직설적으로 체포 혹은 처형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에 표정이 굳어진 장쩌민은 중국어로 "그 사람이 체포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한다. 재차 질문을 받은 장쩌민은 마침내 "하지만 내 생각에는... "확실히" 죽지 않았다.(But I think never... never killed.)"라고 영어로 답변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월터스를 향해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시 한 번 똑같은 답변을 한다.

즉, 왕웨이린에 대한 서방 측의 의구심을 분명하게 부정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의 수반이 구태여 사망설을 부정했다는 것은 결국 해당 인물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never'라는 표현을 쓴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never는 일반적인 부정문에도 쓰이지만, '결코' 혹은 '절대로' 등의 강조형으로도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 장쩌민이 영어에 매우 능통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3.2. 2017년 보도[편집]

결국 장쩌민이 단언한 대로, 2017년 6월 탱크맨이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홍콩에 있는 중국 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 창립자인 '프랭크 루(盧四淸)'의 인터뷰에 따르면, 탱크맨은 망명하거나 감옥에 가지 않고 중국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왕웨이린이 본명도 아니고 굳이 해외에서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정말 중국에 있다면 신변의 안전 때문에 자신이 진짜 탱크맨이라고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며, 공산당 1당독재가 끝나야 비로소 탱크맨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감옥에서 복역 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뉴시스의 보도와 달리 복역 중인 장웨이민이 탱크맨이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한다.[2]#

4.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편집]

6.4 항쟁 당시 인민해방군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고로 군인들이 별 생각 없이 탱크맨을 진짜로 밟고 지나가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3] 혹은 짓밟지 않더라도 탱크에서 나온 군인이 총으로 쏴버리고 옆으로 지나갔을 수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국내에서는 반발이 더욱 거세져 시위 진압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탱크맨은 죽으려고 그 무서운 곳에 혼자 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차 부대가 본인을 밀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 탱크맨 본인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컬러 사진으로 보면 길이 로 물들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서있던 바로 그 길은 몇 시간 전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곳이었다. 같은 위치를 몇 시간 전에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을 보면 미처 수습되지 못한 수많은 시신들과 부서진 자전거들이 널려있다.

시민들이 학살된 바로 그 자리에서 탱크맨 자신도 "날 죽여 봐라"는 마음을 가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선 것이다. 군인들도 차마 시민을 눈앞에서 전차로 짓밟지 못할 양심[4]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전차 앞에 서는 데만에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며, 죽음을 무릅쓴 자세가 가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땅이 울리도록 자신을 압도하며 서있는 몇십 톤짜리 살상무기를 상상해보자. 탱크라는 건 보통 무게가 아니기에 빠른 속도로 움직일때 바로 근처에 서있으면 진짜 지진이 느껴지고 넘어질 수도 있다. 그냥 서 있는 것만도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살벌했던 당시의 상황과 거대한 폭력 앞에 단신으로 서서 막아내는 그의 용기가 인상깊게 표현되어 위 사진은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5. 기타[편집]

천안문 6.4 항쟁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독일의 라이카 카메라가 자사 홍보 영상도(한글자막영상) 올렸는데, 탱크맨을 묘사한 장면이 있어 중국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

천안문 6.4 항쟁 당시 탱크맨을 촬영했던 찰리 콜 CNN 기자는 2019년 별세하였다. 향년 64세. 기사.

여러 스마트폰 제조사들 중에 화웨이의 스마트폰은 화질이 남다르다.

레고도 이 상황을 구현했다(A man has been spotted protesting in Lego city).

스타크래프트의 커스텀 중에 이를 반영한 것이 있다.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유즈맵)라는 이름이다.

6. 갤러리[편집]

tank man wide sh...
넓은 화각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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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가 다가오기 전 근거리에서 찍은 것. 페이로더 왼쪽에 있다.

위 사진은 AP통신의 사진기사 제프 와이드너가 찍은 사진이다. 그는 3일에서 4일을 기점으로 무력 진압이 거세지자 기록을 남기려 창안제가 내려다 보이는 베이징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경비가 삼엄했고, 가까스로 6층 호텔방에 투숙 중이던 미국 대학생 커크 마첸을 설득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 촬영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사용하던 니콘 F3 카메라는 2일 전 장안대로에서 취재 중 날아온 돌에 맞아 부서져서 니콘 FM2로 촬영을 진행해야 했고, 와이드너 본인도 뇌진탕에 걸려서 당일에도 두통에 시달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필름도 촬영 중 떨어져서 호주인 여행객에게서 간신히 한 롤을 빌려 촬영했고, 그래도 화각이 나오지 않자 사용하던 400mm 렌즈에 2X 컨버터를 급히 끼워 찍었다고 한다. 필름 자체도 사진 촬영용 고감도 필름이 아닌 ASA100짜리 필름이라 1/60~1/30까지 셔터 속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간신히 세 장을 찍었다고. 손떨림 보정 기능이 있는 현대적 DSLR로도 핸드헬드 상태에서 저 정도 셔터 속도를 유지하면서 800mm 장망원 렌즈로 흔들리지 않게 촬영하는 것이 매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적으로 나온 사진이었다.
사건 당시 CNN 스탭이 촬영한 영상. 주변 기자와 시민들의 반응을 들을 수 있는데,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놀라고 난 뒤에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1] 탱크맨 이외에도 블라디미르 레닌호찌민넬슨 만델라윈스턴 처칠요한 바오로 2세등이 있다.[2] CP/IFC has no professional ability to assess the media’s report about the Tank Man, nor can we confirm if Zhang Weimin is indeed real. But the purpose of our Finding Tank Man campaign is to seek truth, which we believe is the critical basis to clear the name for the 1989 pro-democracy protests and to achieve transitional justice. To resolve the mystery of the Tank Man once and for all, CP/IFC calls all our friends to provide Mr. Zhang Weimin's information or give any clues that may help reveal the truth of the Tank Man.[3] 훗날 자칭 이슬람 국가 ISIL은 실제로 포로를 탱크로 뭉개서 처형했다.[4] 근데 이것도 확실하게 장담할 순 없다. 상부에서 시위 계속하면 죽이라고 시켜서 하는 거라 탱크사건 전에도 여러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인 것이므로, 탱크맨 역시 사실 탱크를 운전하던 군인이 그냥 죽인다 해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평범한 사람이 그런 무서운 용기를 내는 걸 본적이 없을 것이고(전설에는 이런 사건들이 꽤 있지만, 20세기부터 증거가 남는 인류의 영상기록 역사가 시작되고는 이렇게 혼자 신념만으로 생명을 건 사건이 매우 적다.), 몇명만 쏴도 나머지가 도망가는 걸 많이 봐왔을테니, 당당한 모습에 탱크맨이 들고 있는 것이 자폭용 폭탄인가 생각하고 당황해서 일단 멈춘 것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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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민주화시위 상징 '탱크맨',
아직 중국에 살아있다

2017-06-05 10:47

 

톈안먼사태 28주년 웨이보 해외사용자 사진·영상 포스팅 금지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의 6·4 톈안먼(天安門) 시위사태의 상징적 인물이 된 '탱크 맨'이 여전히 중국에서 이름을 숨기고 생존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중앙통신은 당시 베이징(北京) 창안제(長安街)에서 시위진압을 위해 진입해오던 탱크 4대의 행렬을 맨몸으로 막아섰던 사진 속의 청년이 지금도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그간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청년의 행방은 알려진 바 없었다. 당일 탱크에 깔려 숨졌다는 말도 있었고 당국에 체포돼 수감 중 사망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통신은 홍콩에 있는 중국 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를 인용해 이 청년이 중국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채 여전히 안전하게 생존해 있으며 왕웨이린이 그의 본명도 아니라고 전했다.

정보센터 창설자인 프랭크 루(盧四淸)는 왕웨이린이 탱크 행렬과 대치한 사진으로 자신이 해외에서 유명해진 것을 알고 있었으며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단지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왕웨이린이 자신의 본명도 아니라면서 중국을 떠나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유명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고도 했다.

프랭크 루는 "그는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단지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고 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보센터가 지난 1999년 5월 톈안먼 시위진압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뒤로 왕웨이린의 안전과 근황을 묻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개인이 국가의 폭력에 항거하는 이미지의 이 사진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진 중 하나로 꼽혀왔다. 프랭크 루는 "지난 수년간 각종 채널을 통해 이 청년의 소재를 파악해왔다"고 전했다.

톈안먼광장에 진입하는 탱크 행렬을 맨몸으로 막아선 청년
톈안먼광장에 진입하는 탱크 행렬을 맨몸으로 막아선 청년

 

미국 워싱턴에 설립된 중국 민주화 단체인 '공민역량'(Citizen Power)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탱크 앞에 선 왕웨이린과 그를 밀어붙이지 않고 피해 움직였던 탱크 조종사를 두 '탱크 영웅'이라며 이들의 소재를 전 세계에서 찾는 운동을 시작한 바 있다.

이 단체는 그러면서 시...중국 국가주석에게 탱크맨 2명의 행방을 묻기로 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공원에 왕웨이린과 함께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등 인권 공헌자 25명의 조각상 공원이 들어서기도 했다. 최근 재미 중국교포들은 이곳에서 톈안먼시위 28주년을 기념하는 추도 집회를 열었다.

톈안먼 사태 28주년이었던 전날 중국 당국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의 해외 사용자들이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전했다.

웨이보가 이날 오전 돌연 시스템 업그레이드 통지를 올리며 5일까지 일부 기능이 제한받을 것이라고 통지한 뒤로 웨이보 해외사용자들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거나 댓글을 붙이고 자신의 프로필을 수정하는 것도 제한받았다.

아울러 인터넷엔 톈안먼 사태와 관련된 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6·4'(六四) 등이 금지 검색어로 지정됐으며 민감한 정치 평론을 해왔던 학자나 블로거가 웨이보, 웨이신에 올리는 댓글이 삭제되기도 했다.

홍콩의 톈안먼시위 추모 거리행진[AP=연합뉴스]
홍콩의 톈안먼시위 추모 거리행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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