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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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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5
2015년 02월 09일 13시 03분  조회:2157  추천:0  작성자: 죽림

 

41□내 마음의 솔밭□황명걸, 창비시선 141, 창작과비평사, 1996

  사람이 특별한 어려움을 모르고 곱게 늙으면 화사하고 편안한 모습이 된다. 이 시집 속에는 많은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들이 나이를 들어서 특별히 주목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그런 풍경을 하고 있다. 마치 잘 진열된 옷장 속의 옷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시인에게 치열한 정신을 요구할 수도 없고 치열한 실험의식도 요구할 수 없다. 살아가는 대로 구경할 뿐이다. 시가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있다.★★☆☆☆[4336. 10. 22.]

 

42□어느 별에서의 하루□강은교, 창비시선 154, 창작과비평사, 1996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시각으로 특별한 생각을 노래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특수성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불안해서 결국은 다 설명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애써 찾은 특수함의 값이 많이 떨어진다. 특수함과 참신함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일치시키는 것이 시인의 능력인데, 이 시집에서는 그런 능력이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다.

  특수함이 참신함으로 연결되려면 그 특수함을 감정이라는 보편성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특수함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곧 일반성 내지는 보편성의 인식으로 연결시켜주어야 한다. 바로 그 연결하는 법이 서투르다. 그래서 우연히 성공하는 작품은 절묘한 영상을 보여주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기괴하다. 이것은 시를 빚는 재주가 아직 서투르다는 이야기다. 서투른 시인에게 그 이상의 명성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거나 작전이다.

  수수께끼를 만들어서 숙제를 줄 것이 아니라면 마음속에서 생활 속으로 나오는 길을 좀 더 닦아야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시 전체의 밑그림까지 바꾸는 그 간결한 방법 중에 하나는 한자표기도 섞여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산책 나온 독자들에게 허들경기를 시킬 필요가 없다.★★☆☆☆[4336. 10. 22.]

 

43□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박형준, 창비시선 160, 창작과비평사, 1997

  이미지를 조합하는 수완이 아주 탁월하다. 오랜만에 보는 재주꾼의 시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은 시와 시집 안에서 독특한 상징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의미 소통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그리고 해독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추억을 구성하는 독특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가 되려면 그의 과거와 체험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현란한 이미지들의 조합은 끝내 독자들에게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시인의 과거는 전혀 독자들 앞에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서 독자는 시에 제공된 이미지들을 통해서 시인의 과거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재구성한 그의 과거는 여전히 시인만의 독특한 과거사실로만 남아있다. 그것이 독자의 체험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을 갖지 못한다. 말하자면 닫힌 시이다. 시가 닫힌 것은 그의 체험이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동떨어지게 만든 어떤 원인이라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지들은 아름답게 빛난다.

  심리학이 문학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장비라면 바로 이런 곳에서 유효적절하게 쓰일 것이다. 화법도 독특하고 이미지도 독특하다. 그 조합법 역시 독특하다. 독특함은 시인의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시인이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에 머물러 즐긴다면 그 시는 울림을 갖지 못한다. 울림을 갖지 못하는 시는 발표하지 않은 시와 같다.★★★☆☆[4336. 10. 23.]

 

44□야간산행□이성부, 창비시선 147, 창작과비평사, 1996

  이 시인은 언어의 간결성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느낌을 허풍선이 표현으로 과장하려 하지 않고, 평범한 말로 그려서 간결한 맛을 독자에게 주는 방법을 안다. 그만큼 농익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바위 연작으로 거의 꾸며진 이 시집의 내용물은 그 간결성의 맛을 못 따라간다. 어떤 사물에 너무 빠져들면 자신이 정작 해야 할 말을 잊는다. 자신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독자에게 전해지는 내용은 다소 황당한 내용들이다. 자신의 체험이 너무 확고하여 독자들도 수긍을 해주리라고 전제를 하고 도사처럼 말을 뱉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는 냉정하다. 아무리 자신의 깨달음이 절실해도 그 깨달음이 인류가 도달한 절정의 그것이 아니면 수다스러움으로 듣는다. 산이 주는 깨달음은 언제나 울림이 클 수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산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보편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신만의 특수한 체험에 갇혀있기 때문에 산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세월 속에 늙어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이 담길 뿐이다. 산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집이다.★★☆☆☆[4336. 10. 23.]

 

45□날랜 사랑□고재종, 창비시선 134, 창작과비평사, 1995

  시골의 현실이 시골 생활이라는 관념성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묘사가 풍경으로 많이 치우쳐있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농촌 현실의 준엄함보다는 몰락해가는 농촌의 현상에 머물러 있어서 그러한 현실의 모순을 절절하게 느끼기 어렵다. 어려운 주문이기는 하지만 농촌 문제가 시에서 제대로 다루어지려면 현재 농민들이 하는 고민과 그 고민이 어떻게 좌절하는가 하는 것을 노래해야 한다.

  그런데 시인 자신이 농촌에 있을 뿐, 묘사된 농촌의 모습은 개개인의 삶에 머물러있다. 농촌을 묘사하는 데 그쳐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 농촌 사람들 사연만 담아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좌절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그 원인을 노래해야 한다.★★☆☆☆[4336. 10. 23.]

 

46□인간의 시간□백무산, 창비시선 152, 창작과비평사, 1996

  시를 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냉정을 유지할 수 없는데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때이다. 냉정을 잃으면 시는 감정을 남발하게 된다. 그러면 시는 선언문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면서도 냉정한 이성의 편을 들 수 없는 경우가 없지 않다. 현장의 뜨거운 상황을 도외시할 수 없을 때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될수록 정신을 단련시켜서 터져 나오는 말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이 시집에서는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때로 위험한 곡예를 하기도 하고, 시의 바깥으로 뻗쳐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본능이 담금질한 정신을 붙들고서 말을 아끼려고 하는 바람에 그나마 선언문까지 나아가지 않았으니,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시인의 탓이 아니라 시대의 탓이다.★★★☆☆[4336. 10. 23.]

 

47□당신은 누구십니까□도종환, 창비시선 111, 창작과비평사, 1993

  자신이 어렵게 찾아낸 화두를 가지고 설명을 하려 들기도 하고 설득을 하려 들기도 한다. 그래서 찾아낸 이미지보다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말들을 남발하는 것이 흠이다. 느낀 그 만큼 생각한 그만큼,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줄 때 뭉클한 감동이 온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말을 많이 하면 도덕군자가 된다. 듣는 쪽에서는 잔소리로 들린다는 뜻이다. 시가 빛나는 것은 말을 많이 할 때가 아니라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버리는 절약을 할 때이다. 이 평범한 진리로 한 번 되돌아가야 할 때이다.★★☆☆☆[4336. 10. 23.]

 

48□최대의 풍경□심호택, 창비시선 135, 창작과비평사, 1995

  시가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 나온 시집이다. 무언가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은 개인의 노래에 그치고 있고, 그것을 따라 부를 사람이 없다. 그래도 시라면 시라고 하겠지만, 그 시가 담고 있는 세계는 지극히 사사로운 체험과 세계여서 남에게 보여주잘 것도 없는 것이다.★☆☆☆☆[4336. 10. 23.]

 

49□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조태일, 창비시선 131, 창작과비평사, 1995

  시가 긴장을 잃고 말로 전락했다. 무언가 한 바퀴만 더 구르면 시가 될 듯한데, 그 마지막 재주를 부리지 않거나 못 부리거나 하고 있다. 감동이나 느낌을 적는 방법은 꼭 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로 쓰려면 시가 지닌 긴장이나 상징 수법을 지켜줘야 하는데, 거기에도 못 미치고 있다. 시어는 다른 의미를 함축하거나 정서를 안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이미지들이 너무나 많다. 이래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4336. 10. 23.]

 

50□유사를 바라보며□민영, 창비시선 153, 창작과비평사, 1996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자신의 신변잡기를 꼼꼼하게 기록한 시집이다. 그러나 옛날 방식대로 영탄조 일색이어서 무언가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형상법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것도 줄 수 없다. 다만 나름대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여기저기 엿보여서 그나마 시집의 꼴을 만들고 있다.★☆☆☆☆[4336.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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