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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66
2015년 02월 11일 16시 08분  조회:1886  추천:0  작성자: 죽림

 

651□통영 바다□최정규, 실천문학의 시집 113, 실천문학사, 1997

  문학은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양식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양식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시집도 보기 힘들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몰골부터 전면으로 드러나는 많은 운동권 시집들하고는 전혀 다른 시집이다. 통영이라고 하는 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거기 뿌리 내린 사람들의 표정을 아주 자세하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그려냈다. 문학이 삶에 뿌리내리기는 쉬워도 한 지역에 뿌리내리기는 어려운 법인데, 자신의 삶이 드리운 한 지역을 이만큼 고집스럽게 그리는 것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중요한 미학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다만 너무 설명조로 흐른 것 때문에 시가 곳곳에서 지루해지고 그 부분들이 그릴 전체의 모습이 선뜻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아쉬움이 남는다. 진정한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세부를 넘어선 어떤 전망까지 담아야 한다.★★☆☆☆[4337. 6. 16.]

 

652□먼 길을 움직인다□맹문재, 실천문학의 시집 112, 실천문학사, 1996

  시를 많이 써본 솜씨인데, 내용 때문에 시의 겉모습이 많이 일그러져 있다. 할 말이 이미지의 전체 모습을 흔들면서 생기는 일이다. 맹렬한 주제는 때로 시의 전체 균형을 허문다. 그리고 의도한 것이겠지만, 주변의 사물과 인물이 자기 중심으로 해석되어 좀 무리수를 둔다 싶은 구석도 있다. 시집 뒷부분의 회고조는 다른 부분과도 잘 안 어울린다. 그러나 서정성으로 사건을 끌어들이고 시의 관성 안에 주제를 묶어두는 능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어느 쪽이든 너무 경직되면 시가 볼품이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게 하는 시집이다.★★☆☆☆[4337. 6. 16.]

 

653□사과 향기가 만드는 길□이양희, 실천문학의 시집 111, 실천문학사, 1996

  섬세한 관찰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양식이 시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시집이다. 여린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시에서 도외시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엉뚱한 전통이 서는 바람에 그런 세상이 시의 본래 영역이라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혀진 이 시점에 이런 빼어난 시집이 나온다는 것은 한국시의 한 반성이자 거울이 될 법도 하다. 전혀 꾸밈이 없고, 정직한 감수성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한 아름다운 정신세계가 이론이나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발견된다. 이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서정시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설명조의 시상 전개와 군더더기를 끝내 청산하지 못한 미숙함이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그런 단점마저 덮어버릴 만큼 시의 영혼이 맑고 순결하다. 이 자세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 점만 유지된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뛰어난 서정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식이다.★★☆☆☆[4337. 6. 16.]

 

654□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오봉옥, 실천문학의 시집 116, 실천문학사, 1997

  전망을 잃고 영각 켜는 소리가 들리는 시집이다. 전망을 잃으면 주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고, 전망 없이 돌아보는 주변의 풍경들이 시집으로 형상화되었다.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생각의 간절한 부분을 수사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절실성 때문에 긴장이 느껴진다. 그러나 절실함만으로 쓰는 시는 한계가 있다. 체험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어 한 체험을 공공의 체험으로 만드는 것이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을 가볍게 보면 절대로 큰 시인이 될 수 없다. 한자는 몸에 박힌 가시이다.★★☆☆☆[4337. 6. 16.]

 

655□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강산, 실천문학의 시집 105, 실천문학사, 1996

  어조도 단조롭고 시상 전개 수법도 밋밋한 것이 흠이지만, 주제가 뿌리내린 대지가 든든한 것이 강점이다. 생활 주변에 꼼꼼한 관찰을 준 것이며, 이제는 한물 간 것처럼 여기지지만, 인류가 도외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의 의미를 거기서 읽어내려는 노력은 아주 값진 것이다.

  그러나 고민의 방향이 너무 전망을 잃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한다는 것이 중요한 단점이다. 이런 시의 경우 사소한 것에서 모순의 한 극점을 보아야 하지, 주변의 절망에 잠겨서 그 감성을 곱씹을 때가 아니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의 전망을 위해서도 그런 침잠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굳이 이쪽에서 하지 않더라도 슬픔과 절망을 곶감 빼먹듯 울궈먹으며 명성을 떨치고 돈을 버는 시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좀 더 냉정하게 역사와 현실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이 시인이 나아갈 방향인 셈이다. 한자는 그 길을 가로막은 장애이다.★★☆☆☆[4337. 6. 17.]

 

656□메나리 아리랑□안용산, 실천문학의 시집 102, 실천문학사, 1995

  말로 이끌어가는 시는 이미지가 만드는 상호연관성의 긴장이 없기 때문에 주제의 선명도가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된다. 따라서 시가 어떤 의미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하는 것이 시의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또렷해야 하고 그 또렷함이 시 전체를 이끄는 방향타의 구실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 시집의 경우에는 같은 말들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고 어조까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시가 지루하다. 따라서 그 지루함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난제이다. 한자는 어떤 면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4337. 6. 17.]

 

657□몽유 속을 걷다□김신용, 실천문학의 시집 118, 실천문학사, 1998

  특이한 체험이 시에 무리 없이 아주 잘 녹아들어서 한 독특한 세계를 이루는데 성공한 시집이다. 문학에서 체험의 다양성은 중요한 재산인데, 유독 시에서는 그것이 명작으로 승화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시가 워낙 단순한 양식인 데다가 굳이 특별한 체험을 통하지 않더라도 시가 전할 수 있는 내용이 어떤 전제된 가정 위에 서있어서 그 가정만 받아들여진다면 특수한 체험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이 얼마든지 잘 소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문답처럼 이미 어떤 전제된 긴장 위에서 진행되는 화법이기 때문에 시에는 굳이 특별한 체험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그 변한 모습이 새로운 전제가 되어야만 전할 수 있는 내용이 생긴다. 그것이 근대의 사회 구조이고, 그 구조 속에 깃든 인간의 영혼이다. 이 부분을 전하려는 노력이 많은 시인들에게서 나타났고, 그런 노력의 역사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데, 그런데도 아쉬운 부분이 남는 것은 그런 다양한 변화를 시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구석이 여전히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별한 체험은 자칫 일반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의 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특수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시집의 경우는 바로 이 특수함이 시를 살리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미 이런 화법이 통할 만큼 우리 사회가 변했고, 그 변화 위에서 특수함이 받아들여질 만큼 필요한 어떤 전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이기에 이 시집은 시의 한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한자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동원된 장황한 이미지들이 문제가 된다. 좀 더 단정하고 날카롭게 될 수 있을 법한데, 다변으로 하여 산만해졌다.★★★☆☆[4337. 6. 17.]

 

658□정신은 아프다□이용한, 실천문학의 시집 107, 실천문학사, 1996

  주제를 싣고 거침없이 상상력을 펼치는 패기가 아주 좋다. 시들이 이리저리 빠지는 듯하면서도 할 말을 향해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솔해서 끌고 가는 것이 활달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다소 경솔해 보이고, 그 경솔함은 주제의 흐름을 두어 가지로 갈라버리기 때문에 시집 전체로는 약점이 된다. 상상력이 활달하면 그 활달함 때문에 진지한 주제를 다루기 어렵다. 그래서 정작 진지해져야 할 곳에서도 톡톡 튀는 경향은 이 시인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큰 단점이다. 한자는 그런 경향과 상관없이 장애이다.★★☆☆☆[4337. 6. 17.]

 

659□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조용미, 실천문학의 시집 106, 실천문학사, 1996

  시집의 앞부분 절반이 습작의 냄새를 못 벗어났다. 전체를 꾸미는 재주는 있는 것 같은데, 시각이 너무 작은 것에 집착을 하고 있어서 정작 큰 것을 볼 때 방해가 되는 이미지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모든 이미지나 구조가 시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그런 방향을 방해하는 것들부터 걷어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의 양과 일정 정도 비례한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시집 뒷부분으로 가면서 시가 아주 안정된 어조와 구조를 보이고 있지만, 앞부분의 단점은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다. 한자는 백해무익이다. 실천문학사에서 이런 시집을 낸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4337. 6. 17.]

 

660□어떤 청혼□정기복, 실천문학의 시집 123, 실천문학사, 1999

  시에서 묘사는 아주 중요하고, 그 위치에 따라 시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지만, 자칫 잘못 쓰이면 묘사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묘사는 아주 냉정한 방법이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듯하면서 내면의 감정을 일거에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묘사다. 그런 만큼 그 방법도 내용도 철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넋두리만도 못한 방법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묘사가 절실한 방법이 되어서 성공하도록 하려면 묘사되는 그 그림의 밑바닥에 맨틀처럼 꿈틀거리는 거대한 감정이 고여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이라고 할 수 있는 뿌리깊은 것일수록 좋다. 어쩌다 발견하는 조그만 감정 가지고는 실패하기 딱 좋은 것이 묘사라는 방법이다.

  이 시집에서는 묘사가 그럴듯하게 잘 된 것 같은데 그 묘사가 드러낼 내용물이 너무 얕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공들인 것들도 그냥 겉돌고 만다. 게다가 앞부분에서는 상황에 적절치 못한 이미지들까지 등장해서 흠을 더욱 키우고 있다. 요컨대 너무 서둘러서 시집을 낸 것이다. 그리고 실천문학사에서 나올 시집도 아닌 것이다.★☆☆☆☆[433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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