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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完의 천국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절망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고통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독수리가 제 비행을 멈춘다.
열망의 빛이 흘러나오고,
유령들까지 한 잔 들이켠다.
빙하시대 스튜디오의 붉은 짐승들,
우리 그림들이 대낮의 빛을 바라본다.
만물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수백씩 무리지어 햇빛 속으로 나간다.
우리들 각자는 만인을 위한 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
발밑엔 무한의 벌판.
나무들 사이로 물이 번쩍인다.
호수는 땅 속으로 통하는 창(窓).
/ 이경수 번역
기억이 나를 본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서곡(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
숨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하강한다.
사물이 확 불붙는다. 퍼덕이는 종달새의 시점에서
여행자는 나무들의 거대한 뿌리 체계를,
지하의 샹들리에 가지들을 본다.
그러나 땅 위엔 녹음,
열대성 홍수를 이룬 초목들이 팔을 치켜들고
보이지 않는 펌프의 박자에 귀 기울인다.
여행자는 여름 쪽으로 하강하고,
여름의 눈부신 분화구 속으로 낙하하고,
태양의 터빈 아래 떨고 있는
습기 찬 녹색 시대들의 수갱(竪坑) 속으로 낙하한다.
시간의 눈 깜빡임을 관통하는
수직 낙하 여행이 이제 멈추고,
날개가 펼쳐져
밀려드는 파도 위 물수리의 미끄러짐이 된다.
청동기시대 트럼펫의
무법의 선율이
바닥없는 심연 위에 부동(不動)으로 걸려 있다.
햇볕에 따뜻해진 돌을 손이 움켜잡듯,
하루의 처음 몇 시간 동안 의식은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다.
여행자가 나무 아래 서 있다.
죽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돌진 후,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인가?
정오의 해빙/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아침 공기가 타오르는 우표를 붙인 자기 편지를 배달했다. 눈(雪)이 빛났고, 모든 집들이 가벼웠졌다.
일 킬로그램은 칠백그램 밖에 나가지 않았다.
태양이 빙판 위로 높이 솟아, 따뜻하면서도 추운 지점을 배회했다.
마치 유모차를 밀듯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나왔다.
가족들이 밖으로 나왔고, 수세기 만에 처음인 듯 탁 트인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마음을 아주 사로잡는 이야기의 첫 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꿀벌 위의 꽃가루처럼 모피모자마다 햇살이 달라붙었고, 햇살은 겨울이라는 이름에 달라붙어,
겨울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 위의 통나무 정물화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는 물었다.
'내 유년시절까지 따라올래?' 통나무들이 대답했다. '응'
잡목 덤불 속에는 새로운 언어로 중얼거리는 말들이 있었다.
모음은 푸른 하늘, 자음은 검은 잔가지들, 그리고 건네는 말들은 눈 위에 부드러웠다.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 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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