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곽말약, 그 배후...
2015년 04월 03일 20시 54분  조회:6180  추천:0  작성자: 죽림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곽말약은 처와 다섯 자녀를 일본에 두고 중국으로 돌아가 항일 전쟁에 참여한다. 7월25일 새벽 4시반,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제에 가서 처와 아이들에게 남기는 글을 썼다. 침실로 돌아오니, 처는 이미 깨어 있었고, 베개머리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처의 앞이마에 키스를 하였지만 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선은 그대로 책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 곽말약은 방문을 나서, 여름 밤의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전철역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 전날 밤, 처는 곽말약의 의사를 이해하고 있었으나 남편에게 경계의 말을 당부하였다: ‘당신이 가는 것은 좋다. 다만 당신의 성격은 불안정하고 어디에 잘 빠지기 쉽다. 다만 당신은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살면 된다. 여기에 있는 내가 설사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견디어 내겠다’. 이 새벽 이별이 그들의 인생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안나는 곽말약의 일본인 처 사토우 토미코(佐藤富子)의 중국명이다. 안나는 1895년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에서 기독교 목사 가정에 태어났다. 안나는 기독교학교를 졸업한 다음 1916년 동경 성누가병원에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중국인유학생 곽말약을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곽말약은 오카야마(岡山) 제6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으며,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곽약말은 심신양면으로 매우 쇠약하였을 때, 그는 안나를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곽은 안나의 얼굴에서 ‘불가사의한 순결한 빛’을 보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안나는 간호원의 일을 그만두고 오카야마로 가서 곽말약과 정식으로 동거하게 된다. 1917년, 안나는 동경의 이치가야(川谷)여자의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곧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학교를 한 달도 다니지 못하고 퇴학하였다. 안나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형제 자매로 호칭하기로 한 것이다. 안나의 집에서는 그가 중국인 유학생과 동거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호적에서 제거해 버렸다.

1923년 곽말약이 규슈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일가 5인을 데리고 상해로 귀국하였다. 상해에서 곽말약은 문학활동, 정치운동에 뛰어들어 수입이 거의 없었고, 안나와 3인의 자녀들은 천신만고의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안나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자녀 셋을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하여 몇 개월 동안 산부인과 실습을 해서 다시 상해에 돌아와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곽말약 등이 발행하던 잡지들도 모두 폐간하게 되어 곽도 그 이듬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다. 1924년 말에는 광동대학에서 초빙을 받아 다시 가족을 데리고 상하이에 갔다. 1928년 북벌이 실패로 돌아가자 곽일가는 일본으로 돌아와 동경교외의 이치가와(市川) 에 정주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곽은 중국 고대사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곽말약에게 있어서 안나는 첫사랑도 첫 결혼도 아니었다. 곽은 1892년 사천성 낙산현에서 태어나, 10살 전후에 이미 부모들이 그의 결혼 상대를 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 상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1912년 20세 되던 해에는 부모들이 장씨 가문의 장경화와 결혼을 시켜주었다. 매파가 속임수에 놀아나 마치 ‘흰 고양이를 사온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포대를 열어보니 검은 고양이’와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결혼 5일째 되는 날 成都로 공부하려 나와 26년이 지난 1939년에야 다시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또 성도에서 고등소학교에 다닐 때 곽말약은 동성애에 빠졌다. 후일 그는 ‘연애보다 더 엄숙한’ 것이였다고 자인하였다. 

곽말약이 항일전선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난 다음 안나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고, 여러 가지 육체노동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연일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고, 그 때를 연옥과 같은 생활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럼에도 착실하게 다섯 자녀들을 잘 양육하였다. 안나는 자식들을 일본 국적으로 바꾸라는 주위의 요구를 완강하게 물리쳤다. 언젠가는 이 자녀들을 데리고 남편 곁에 가서 일가 단란의 생활을 할 때가 올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한편 낭만주의자 시인 곽말약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 1927년 북벌 전쟁 시에도 같이 종군하였던 안림(安琳) 이라는 전우와 사랑에 빠졌다. 그가 이질에 걸렸을 때 정성스럽게 간호해 회복시켜 준 것도 안림이었다. 그리고 그가 일본을 떠나 1937년7월 중국에 도착하자 위리췬(于立群) 이라는 영화배우와 만나게 된다. 그는 막 21세가 된 위리췬과 사랑에 빠졌다. 그 후 위리췬은 40년 이상 곽말약의 여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1948년 봄 전쟁이 끝나고 안나는 신문지상을 통해서 곽말약이 중국에서 여전히 살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자녀들을 대동하고 짐을 싸서 타이완, 홍콩을 경유해서 중국 본토에 들어갔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다. ‘전쟁이 터진 다음 나는 지금까지 계속 ‘적국의 아내’로 간주되었고, ‘나라는 판 도적’이라고 불리웠다. 나의 생활이 어떠했던가는 가히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간장을 태우던 11년을 지난 지금 이제 남편 옆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쌓였던 근심 걱정이 마치 구름과 연기가 사라지듯 없어졌다.’고 감격스럽게 말하였다. 

안나가 북경 곽말약의 집에 도착하니 곽은 돌연 나타난 안나 앞에서 한편 놀라기도 하고 한편 기쁘기도 하였다. 11년이 지났으니 안나는 이미 늙었고, 얼굴에는 생활고를 반영하듯 적지 않는 주름이 있었다. 검은 머리는 나이에 비해 빠르게 흰머리가 많아졌다. 안나는 만면에 눈물을 흘리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 주위에는 낮 설은 젊은 여자가 한 사람 있었고, 다섯 아이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안나는 이제야 사정을 알 수 있었다. 11년 전 헤어 질 때 남편에 대해 걱정하던 일이 적중한 것이다. 진퇴양난의 선택에 직면한 안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안나의 기독교 신앙은 그로 하여금 자기 희생의 결정을 내리도록 하였다. 안나는 곽말약을 집을 떠나 친구의 도움으로 대련(大連)으로 가서 정주하게 되였다. 안나는 그 후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그 이름은 곽안나로 하였다. 안나는 몇 사람의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평소 다른 사람들과 왕래를 하지 않았으며 일체의 사회 활동, 기자들의 탐방을 거절하였다. 

한편 사천성에서 최초로 결혼식을 올린 장경화는 곽말약이 떠난 후에도 계속 곽의 부모를 정성껏 모시었다. 1939년 곽이 금의환향하였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어 앉아 불효를 용서해달라고 말하며 소리 내어 눈물을 흘렸을 때 아버지는 곽의 원처 장경화을 앞에 세워놓고 ‘너는 처에게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 30년 동안 그녀는 불효자식 너를 대신하여 두 노인을 섬겼다.’고 말하였다. 부친이 서거하였을 때, 곽말약과 위리췬은 다시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 장경화는 자기의 침실을 비워, 곽과 위리췬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장경화는 매년 북경의 곽댁에 남편이 좋아한다는 사천성 특산의 절임야채와 두반장을 보내왔다. 곽말약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때에는 안나에게 의지하였으나, 해방후의 영화로운 삶을 안나와 함께 향유하지 못하였다. 그 영화로운 시절에 함께 한 것은 위리췬이었다. 곽말약은 항상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랑의 상대를 바꾸었지만, 그의 아내들은 결코 남편을 바꾸지 않았다.

1974년 가을 안나는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함께 대련에서 북경으로 향했다. 병실에서 80을 넘긴 두 노인이 마지막으로 만났다. 안나는 최근 일본에서 가져온 이치가와의 구옥의 집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두 노인의 최후의 상봉이었다. 

1978년 6월12일 곽말약이 서거하였다. 위리췬과 장경화는 각각 1979년과 1981년이 서거하였다. 안나는 1983년 중국정부로부터 중일우호관계에 공헌했다는 공적으로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 평화상을 받았고, 동년 전국정치협상위원회의 위원으로 피선되었다. 그리고 1994년 8월15일 곽안나는 서거하였다. 향년 101세.

곽말약 고가의 전시실에는 안나와 그 일가가 일본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장경화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남성 중심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남자들의 배후에서 바쳐진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97 <<락서문화>>을 반대한다?!... 찬성한다?!... 2016-11-10 0 3944
596 기계가 詩를 못쓴다?... 쓴다!... 시를 훼멸시킨다!!! 2016-11-10 0 4083
595 詩人은 갔어도 노래는 오늘도 가슴 설레이게 한다... 2016-11-10 0 3594
594 "로신론"을 알아보다... 2016-11-10 0 4392
593 로신을 욕한 시인이 "로신문학상" 못수상한다?... 수상했다!... 2016-11-10 0 4011
592 로신과 녀인들 2016-11-10 0 4197
591 이륙사는 로신을 만나 보았을까?... 2016-11-10 0 4234
590 중국 대문호 로신 학력은?... 로신의 문장 교과서에서 삭제당하다?!... 2016-11-10 0 3903
589 "동양평화론"은 오늘도 빛난다... 2016-11-10 0 3798
588 [록색문학평화주의자]= 구두쇠의 "감방"에서 해방된 그림 2016-11-09 0 4829
587 [알아둡시다] - 엇허, " 술권장"해도 죄를 범한다?! ...주의보! 2016-11-09 0 4497
586 [쉼터] - 당근아,- 참 고맙다 고마워... 2016-11-09 0 3915
585 [록색문학평화주의자]= 백두산호랑이야, 어서 빨리 용맹을 떨쳐라... 2016-11-09 0 4218
584 [쉼터] - 뿌리, 싹, 꽃, 열매... 2016-11-08 0 6134
583 [쉼터] - 책을 보고 시집 간 처녀 2016-11-07 0 4388
582 [쉼터] - 48가지 별자리로 보는 당신의 성격은?... 2016-11-07 0 4396
581 중국에서 시를 가장 많이 쓴 시인은 누구?... 2016-11-06 0 4569
580 [시문학소사전] - 모더니즘시란? 2016-11-06 0 4555
579 [시문학소사전] - 모더니즘이란? 2016-11-06 0 4942
578 [시문학소사전] - 포스트모더니즘이란? 2016-11-06 0 5193
577 [려행] - 중국 內 대불 모음 2016-11-06 0 6195
576 山이 佛, 佛아 山 = 발등에 100여명이 올라설수 없다?... 있다!... 2016-11-06 0 3899
575 [려행] - 러시아인 술 가장 많이 마신다? 아니다!... 2016-11-06 0 5065
574 [려행] - 중국 "유리 공중 화장실" 처음 눈을 뜨다... 2016-11-06 0 4377
573 조선어 새 규범; - 띄여쓰기 규범에 가장 큰 변동 있다... 2016-11-06 0 4461
572 [시문학소사전] - 트루베르 = 궁정 짝사랑 노래가수 2016-11-05 0 4869
571 [시문학소사전] - "트루바두르" =새로운 시를 짓는 사람 2016-11-05 0 5474
570 [시문학소사전] - 음유시인이란? 2016-11-05 0 4624
569 [쉼터] - 침묵은 언어 너머의 세계로 다가가는 마음의 운동이다. 2016-11-05 0 4006
568 [쉼터] - 말 한마디가 금값이 아니다?... 옳다!... 2016-11-05 0 3682
567 [쉼터] - 동물들의 줄무늬 어떻게 생길가?... 2016-11-05 0 3634
566 [쉼터] - 민족의 뿌리를 알아보다... 2016-11-03 0 4519
565 [고향문화소식] - 연변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 고고성을... 2016-11-03 0 4150
564 [려행] - 건축물에 매료되다... 2016-11-03 0 5346
563 파랑, 연두, 초록과 빨강, 주홍, 노랑과 함께 하는 2026 2016-11-03 0 6143
562 건축성자의 大서사시, 감동은 오늘도 솟아 오른다... 2016-11-02 0 3951
561 최대, 최고, 최소, 최하... 2016-11-02 0 5358
560 소나무 한그루를 살리기 위해 건축설계도를 수정하다... 그리고 재활용하기... 2016-11-02 0 4430
559 미친 놈과 천재와의 경계선에서 망치를 들다... 2016-11-02 0 5503
558 현대 건축의 아버지, 자연곡선을 살리며 색채미학으로 발산하다... 2016-11-02 0 3963
‹처음  이전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