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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 관한 시 모음> 신석정의 '산으로 가는 마음' 외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에서·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 등산과 삶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 발 내딛으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오르다 지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라.
팔 다리에 힘이 솟고
의지는 되살아나리라.
산을 즐기며
산과 대화를 나누라
바람소리 새의 노래에
산과 하나가 되라.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시인)
+ 동반자
산을 오르다 바위를 만났다
자일도 없이 올라야 하는 바위
가능과 불가능을 잠시 생각한다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가능에다 동그라미를 친다
바위를 눈으로 더듬는다
그의 빈틈과 상처가 보인다
빈틈의 크기와 상처의 깊이를
마음에 새긴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확실하게
그의 틈에 손을 넣는다
바위의 지문과 내 지문이 섞인다
온몸을 그의 상처에 댄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의 틈과 상처를 내 것으로 품는다
두 몸이 하나가 된 마음
가파른 길을 통과해 간다
(유봉희·시인)
+ 산길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시인, 1952-)
+ 등산 길
짙푸른 물결 속 뚫고
햇살 굴러 이는
고운 숨결 일렁이는 산골
땀흘려 헐떡이다
산새들 몰려가는 길섶에 앉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 누벼온 보람인가
짜릿이 감도는 수액의 몸살 파고들어
찌든 도시의 찌꺼기 사라지고
영혼의 눈시울에
가득히 출렁이는 순수의 날개
훨훨 깃을 친다.
(곽병술·시인, 1929-)
+ 산행법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박철·목사 시인)
+ 산행·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시인, 1939-)
+ 도반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행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시인)
+ 산을 오르며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천양희·시인, 1942-)
+ 북한산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 산행
하얀 세계
어느 누가 당신을
먼저 정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손 기다리는
소리 없는 침묵
겨울
그리고
산
그 가운데 멈춰진 자리
바람만 인다
야호∼
소리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는 분화구처럼
내 몸에서 번지는 하얀 열기
우주 어느 공간 머물 때
나는 정상에 서 있었다.
(노태웅·시인)
+ 산행기
때로는 시원한 때로는 절실한
울음을 쏟아내던 매미가
아이들에게 채집되고 있었다
울음으로 서까래 삼고
눈물로 등을 달았던
지난날 내 詩 또한,
표본 될 저 울음주머니처럼 간직할 가치가 있는가
묻고 물으며 산을 오를 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절벽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 잔의 술도 한 숟갈의 밥도 아니었던 행간들,
나는 산 중턱에서 오름을 접고
철 늦은 울음을 울어야만 했다
(원무현·시인, 1963-)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시인, 1954-)
◆<등산 시모음> 이성선의 ´하늘 악기´ 외
+ 도봉산
생각한다.
각 산마다 정상이 있다.
정상에 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열심히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어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그게 끝은 아니다.
+ 산으로 가는 마음
+ 산에서·4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 산행법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 북한산에 올라
+ 산행기
쉴 때마다 계획하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 등산계명
+ 등산
+ 등산
+ 등산
아주 진하게
겸손하고 조용한 자세로
신선한 공기를 통째로 들이마시며
나는 조용히 산이 된다
|
산을 오르며
- 도종환 -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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