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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비극
신주(新酒)의 술통을 따는 봄의 대축제에는 비극을 상연하였고, 이것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찬가(디티람보스)가 토대이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테스피스가 BC 6세기 후반에 원형적(原形的)인 비극을 상연했다고 하나 비극의 창시자는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였다. 그는 90여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며 경연(競演)에서 13회(1회에 4편 상연)나 우승하였다고 하였는데 후세에 남아 있는 것은 7편에 불과하다.한 사람의 작가가 상연하는 4부작은 사티로스극(劇) 1편을 포함하여 모두 3편이다. 그 3부작이 완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것으로 《오레스티아》가 있고 각 부작의 이름은 <아가멤논> <코에폴로이(공양하는 여인들)> <에우메니데스(자비의 여신들)>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민족의식이 고양된 시기의 애국 시인이며, BC 6세기의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가득 찼던 그의 작풍은 성장기에서 뒤떨어졌던 극작술(劇作術)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에는 3대 비극시인 중 가장 낮게 평가되었으나 19세기 이후 그의 작가적 역량이 재발견되었다.소포클레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원숙한 시인이며 비극의 완성자로 같은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나, 르네상스 이후에 있어서나 그 성가(聲價)가 높다. 그는 123편의 작품을 써서 18회(일설에는 24회)나 우승하였으며, 3위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7편 중 세계 연극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왕(王)》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는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숙명과 싸우는 인간의 무력과 비참을 그리다가 마침내 영웅적인 죽음으로써 정화(淨化:카타르시스)되는 과정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가장 잘 실현하였다. 말년의 소포클레스에게 영향을 준 점도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92편 중 완전한 형태인 단 하나의 사티로스극(劇) 《키클로프스(외눈박이 도깨비)》와 17편의 비극, 위작(僞作) 1편이 전해진다.그의 작품에는 극작술상(劇作術上)의 여러 연구가 엿보인다. 그는 다채로운 작풍을 찾아볼 수 있는 그리스 비극에서 바로크적(的) 경향의 대표자이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전통 비판이 심판관의 비위에 거슬렸는지 우승 횟수는 그가 죽은 후 주어진 것을 합해서 5회에 불과하나 《메데이아》와 《트로야의 여인》이 후세에 남긴 비장미(悲壯美)는 유럽 근대 연극의 한 계보(系譜)이다. BC 386년 대(大)디오니시아제(祭)가 전기 3대 시인의 재연만을 상례로 하여 창작활동은 쇠퇴하고, BC 4세기의 관객층은 다른 스펙터클로 눈을 돌리게 되어 비극의 장르는 독서의 대상으로 고정되었다. 나중에 라틴문학으로 오비디우스나 세네카의 낭독을 위한 작품이 나온 것도 그 예이다.
그리스 3대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비극은 개인의식에 대해 출발하였으며 인간의 운명, 자연(신), 초월적인 것, 개인적인 심층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비극의 어원은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공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세계관은 자기완성을 향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로 인식하는대에 있다. 고전의 비극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신의 결정론적인 운명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이루어 졌다.
비극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BC 6세기에 디오니소스신(神)의 제사와 함께 행하여진 합창 ·무용과 관련하여 합창대에서 1명이 이탈해 나와 합창대와 대화하는 풍습이 생겨 거기서 비극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비극은 이 신의 제의(祭儀) 중의 한 행사였으며, 항상 이 신에 대한 봉납(奉納)과 경연(競演)의 형식을 유지하였다. 비극의 창조자는 테스피스인데 BC 543년 경연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비극은 겨울에서 이른봄에 결쳐 행하여진 3가지 디오니시아제(祭), 특히 3월의 대제(大祭)에서 상연되었다. 초기의 비극을 참된 연극으로 발전시킨 것은 아이스킬로스인데, 그는 한 사람이 하던 배우(俳優)를 2명으로 증원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개혁을 이룩한 것 같다. 그는 또 서정시 부분이 주였던 비극을 점차 회화 부분이 많은 긴밀한 구성의 연극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동시대의 서정시인 핀다로스와 같이 장대(壯大)하기는 하나, 구성보다는 정서를 북돋우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점에서 뛰어났다. 비극은 합창대 노래에서 주로 이암보스의 회화를 삽입한 형식을 최후까지 보존하고 있었는데, 아이스킬로스의 극은 특히 이 노래 부분이 좋다.
뒤에 나온 소포클레스는 아테네 고전기의 대표자로서, 엄정한 형식미와 긴밀한 구성에 있어서 비할 데 없는 업적을 남겼는데, 그는 배우를 3명으로 증가하여 구성상의 진행도 더욱 복잡화시켰다. 소포클레스보다 10세 정도 아래인 에우리피데스는 이미 소피스트의 새로운 견해의 영향을 깊이 받아, 벌써 아르카이크(archaique)한 시대의 최후의 정점에 선 고전적인 차가운 미(美)에는 만족할 수 없었고, 인간을 연극에서 추구하였다. 따라서 비극의 소재인 신화와 영웅전설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해석하려 하였고 낡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려고 하였다. 또한 새로 나타난 웅변술을 무대에 내놓으려 하였으며, 심리를 분석, 마음의 추이를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노래만으로 구성되어진 극을 창시하고 완성하며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플롯을 만들어 갈등을 한층더 고조시키고 짜임새 있는 극으로 만들었다. 그리스의 비극 구조는 5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prolrgos - 독백, 극중 인물이나 해설자에 의해 진행된다. 2) parodos 3) epeisodion - 삽화 (코러스 노래 사이에 삽입된 대화) 4) stasimon - 막간 놀이로 나중에 변질, 감정성찰 5) exodos - 코러스나 오케스트라가 퇴장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아이스 퀼로스가 노래와 시로만 있던 초보적이던 극을 한층 발전시켜 대사와 행동을 무대위해서 보여주었고, 보통이 이인극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소포클레스는 더 많은 배우들과 코러스등을 등장시켰고 에우리피데스로 넘어오면서 오늘날의 연극의 기초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리스의 3대 작가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동시대에 살았고, 초보적인 극을 한층 발전 시켜나갔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의 스승이였고,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의 아끼는 후배였다. 디오니소스제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등이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떨쳤다. 아주 유명한 일화로 에우리피데스가 죽자 소포클레스는 디오니소스제에서 상복을 입고 슬퍼하였고 코로스와 배우들에게 관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 아이스킬로스
BC 525/ 524~BC 456/455 쯤 태어났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의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조국인 아테네는 당시 페르시아와 전쟁중이였으며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3대 비극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 아이스킬로스가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지고, 소포클레스가 전쟁에 승리를 위해 소년 합창단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당시 에우리피데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아이스킬로스는 당시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비극을 쓰게된 계기는 정치인들의 생각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살았던 당시 아테네는 외부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르고 난후, 정치인들 사이에 양분화되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자들간의 팽팽한 갈등 관계에서 자신과의 생각이 충돌되어지자 그는 비극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아이스킬로스는 당시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을 노래와 대사,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으로 발전시킨다. 아이스킬로스의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 중앙에 정치적 존재인 한 남자가 서 있어서, 극작가의 관심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했다. 아이스킬로스는 그의 모든 극에서 신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지극히도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비극으로 신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 이유는 아테네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됨으로써 믿기 어려운 행운에 신들에게 감사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전쟁에 몸소 참가한 그로써는 더욱 그러했을 꺼라 보여진다. 그는 신들의 최후의 정의를 믿고 언젠간 정의가 신의 정의와 일치한다는 것을 항상 그의 비극에서 노래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웅 전설로 유명한 에디프스의 두 아들의 싸움을 다룬 <테베 공격 7장군>, <구원을 바라는 여자들>, <포박된 프로메테우스>, < 오레스테이아>등인데 특히 <오레스테이아>는 최대의 걸작으로 완전히 남아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3부작으로 , <아가멤논>, <코에포로이>, <에우메니데스>등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정확히 누구의 아들이며 그의 일가는 확실하게 전해오는 것은 없지만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다른 문헌들에서 아이스킬로스와 형제라고 불린 사람을 팔레네 주민으로 기록했으며, 이는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정말로 거기에 살았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에우포리온이라는 이름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 소포클레스
기원전 7~6년 아테네에서 부유한 무기 제조업자 소필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당시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로 민주주의가 한창 꽃피던 시기였으며 당시 그리스 문화의 최전성기였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을 타고났고, 집안이 기사(騎士)신분에 속하였으므로 작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명예로운 일생을 보냈다. 음악을 란푸로스에게, 비극을 아이스킬로스에게서 각각 사사하였다.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축제 때는 그는 디오니소스제에서 스승인 아이스 퀼로스를 여러번이나 이기고 무려 24번이나 승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테네를 너무도 사랑하여 평생을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의 작법은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이스퀼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화려하고 장중했다면, 두 번째는 엄밀하면서 기교적이였고, 세 번째는 원숙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비극적인 작시의 스승은 아이스킬로스였기에 그의 영향을 초기에는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가 신의 위대함을 노래하며 비극의 주인공을 신으로 했다면, 소포클레스는 신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고 공경하면서도 인간에게 비극의 주인공 자리를 내어 주면서 인간 자신의 내부적인 고통에 많은 치중을 두었다. 신이 주는 숙명적인 운명에서 인간 자신의 내부적인 갈등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조적인 고통을 극에서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는 연극에서 소도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아이스킬로스의 극에서 두명이던 배우를 여러명으로 늘리며 코러스도 12명에서 15명으로 늘렸으며 배우들을 통하여 그들의 갈등관계와 각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고 한다. 소포클레스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개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이스킬로스가 그리스 연극의 창시자였다면,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라고도 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높은 관직에 자주 취임했고 나중에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10인의 장군에 선출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후에 10인의 국가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종교에도 깊숙이 관여해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자신의 집에다 모시고 찬가를 바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90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123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썼다고 하나 제목만 전해질 뿐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7편이다.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엘렉트라>,<아이아스>,<필로크테테스>,<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트라키스의 여인들>등이다.
★ 에우리피데스
기원전 484?∼기원전 40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의 한사람. 살라미스(Salamis)에서 태어나 아테나이(Athenai)에서 활동하가가 마케도니아(Makedonia)의 궁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우리피데스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인 비극 작가의 한 사람이다. 아테네 태생이며 그의 부모는 야채 장수라고 알려져 있다. 그도 역시 디오니소스제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포클라스가 정치정인 문제로 디오니소스제를 참여하지 않자, 그해 <히폴리토스>로 우승을 거머쥔다.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청년 시대를 궤변 사상의 새로운 경향과 동요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당시의 다른 비극 시인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과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전통과 종교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항상 비판적인 입장에서 고쳐 표현하였다 한다. 그는 3대 비극 작가중에서는 가장 근대적인 작가였다. 그의 희곡들은 윤리적·사회적인 논평으로 가득 차 있으며, 후세의 작가와 연설가들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논평들을 원래의 극적 문맥에서 쉽게 떼어내 도덕론이나 문집, 심지어는 그리스도교 설교문에까지 원용했다. 인간의 정념(情念)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여성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에서는 고대작가들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킬로스에 비하면 그의 삶은 비교적 불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명성은 다른 비극 대가를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며,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도 절대적이다. 아이스킬로스가 신에 대해 절대적이였고, 소포클레스는 신을 공경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다루며 신에 대한 절대적인 것을 소심하게 드러내지 않고 피해갔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작품수는 98편에 이른다고는 하나 소포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제목만 전해지고, 존재하는 것은 19편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히폴리토스><메데이아><알케스티스><박코스의 여신도들><퀴클롭스><엘렉트라><트로이아의 여인들>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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