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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인 - 심훈
2015년 04월 17일 22시 10분  조회:4367  추천:0  작성자: 죽림
심훈의 문학과 인생 

우리문학의 정통성을 노래한 저항시인 
- 심훈의 문학과 인생 

[월간 문학세계 발행인 칼럼] 金 天 雨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의 생애와 문학의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진 시내에서 아산만 쪽으로 줄곧 달리다 보면, 아산만을 한 등성이너머에 둔 송악면 부곡리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농로 어귀에 '필경사'라고 쓰인 안내판 하나가 쓸쓸히 서 있다.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작은 전설이 묻어 있는 곳이다. 부곡리는 논둑길을 사이에 두고 전형적인 농가 형태를 갖춘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언덕에 부곡교회당-심훈이 쓴 [조선의 영웅]이라는 글이 있는데, 위치상으로 보아, '야학당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리다'라는 구절의 그것으로 보인다. 심훈이 이곳에 내려온 것은 그의 말년인 1932년(32세)이다. 당시 소설가이자, 감독자이자, 미남 배우로도 인기가 높았던 심훈의 낙향은 그 자신의 개인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행보였다. 

그러니까 심훈의 부곡리 행은 그동안 이채로웠던 이력에 한 획을 긋고 창작에만 전념하고자 하는 확고한 각오에서 실행된 것이다. 그의 장편[영원의 미소][직녀성], 단편 [황공의 최후]가 이곳에서 쓰여졌으며 [직녀성]의 고료를 받아서 설계하여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였다. 이 필경사에서 저 유명한 [상록수]가 탄생한 것이다. 

심훈은 감성적이고 즉흥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자유주의적 경향을 지닌 낭만적인 인물이었다. 당대의 유명한 혁명가들과 조우했는가 하면 한때 카프의 창립멤버로 활동을 하다가, 최승희 등 여러 신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영화에 열중하기도 했다가, 갑자기 모든 도시적인 이방의 것들과 작별을 하고 농촌으로 낙향하는 그의 행로가 이러한 끼 있는 자질이 아닌가 한다. 심훈의 일생에 맨 처음으로 크나큰 전기가 된 사건이 있으니, 바로 3.1운동이다. 경성고보시절에 만세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심훈이 감옥에서 쓴 [어머님께 드리는 글월]이다. "어머니!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처음 자동차에다 보호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그 글 중 일부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일제의어두운 그늘 속에 자신을 묶어 두기에는 열혈청년이자 자유주의자인 그의 피는 너무나 뜨거웠다. 출옥 후 곧바로 중국망명길을 떠났던 것은 자유주의자의 운명적인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심훈은 [상록수]를 집필한 후에 그것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던 것같다. 강흥식, 심영, 윤봉춘 등의 배우로 출연진까지 짰지만 일제의 방해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소설에 비하여 효과가 훨씬 직접적이다. 읽고 상상하고 감상하는 소설과는 달리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바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심훈 문학을 대표하는 [상록수]는 흔히 계몽주의 소설로만 알려져 있다. 물론 계몽이 작품의 주된 흐름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가 계몽을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흙]이 무지한 농민들을 계몽하여 한글은 깨우치게하고 청결하지 못한 생활을 청산할 것을 요구하는 등 정치,경제적 요소를 배제한 것이었다면 [상록수]에서 그런 점들은 부차적으로 처리된다. 채영신에 의해 한글운동과 생활개선운동이 강조되긴 했지만 주인공 박동혁은 그와는 달리 경제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농우회 회장으로 고리대금업자 강기천을 앉히고 고리대 탕감을 요구하는 장면이나, 진흥회 회장을 뽑는 자리에서 작인들이 소작권 유지와 소작료의 동결을 주장하는 대목등은 이 작품이 이광수 류의 계몽소설과는 본질을 달리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심훈이 시인이라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유치환, 윤동주, 등과 함께 일제치하에서 손꼽히는 저항시인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 이르면 더더욱 그렇다. 이육사가 30여 편의 시를 남겼다면 심훈은 수적으로 훨씬 많은 항일시를 남겼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쓰기 위해서 시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여 수가 되기에 한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심훈의 유일한 시집[그날이 오면]은 원래 1933년에 발간하려 했었다. 
그런데 수록된 시의 반 이상이 검열에 걸려 붉은 줄이 그어지자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사후 13년이 지난 시점에서 둘째형 심설송에 의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시집 한 권은 전체가 열렬하고 직정(直情)적 호소력에 충만한 시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집의 마지막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는 심훈이 급작스레 병을 얻어 세상을 뜨기 전 쓰여졌는데, 이 시는 그의 영결식장에서 낭독되어 좌중을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심훈은 분명 우리 문학의 정통성을 확인케하는 시인임에도 틀림이 없다. 진정한 저항문학은 민족문학의 정도와 아울러 문학의 정도를 밝히는 지표가 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문학의 미래를 구체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도는 칼로 이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라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날이 오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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