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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시인 - 李箱 김해경
2015년 06월 08일 20시 31분  조회:4284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상(李箱) 김해경(金海卿)의 시 <거울>

 

 

    이상(李箱) 김해경(金海卿)의 너무나 냉소적(冷笑的)인

    그러나 냉소보다 깊었던 참사랑,
    금홍(錦紅)아 금홍아---

 

 

 우선 그의 얼굴과 심성이 그대로 보이는 듯한 시 한 수

 

    거 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져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닮았소.

 

 

 제목만으로 그 작품을 반(半) 이상을 느낌으로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뜻밖에 많습니다. 같은 맥락(脈絡)으로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스스로 지은 이른 바 자호(自號)의 경우에는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지요.

 이상(李箱). 일인들은 리노이제 상 아니면 리 상이라 불렀습니다.

 1929년, 오늘날 서울공대의 전신인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김해경(金海卿) 청년이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技士; 당시는 기수技手라 지칭했지요.)로 공사현장의 소장으로 감독관 노릇을 하고 있을 때 현장의 간이식당(그때에도 함바집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어원이나 개념에 정설이 없습니다.)에서 일본인 주인이나 종업원 등이 저들 부르기 쉬운 대로 ‘리 상, 리 상’ 이렇게 불렀지요. 그 소리가 몹시 아니꼬웠던 청년 김해경, ‘좋다 이놈들아 느그들에게 나는 이 상이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이것이 본명보다 백배 유명하고 이 이름을 빼 버리면 한국 현대문학사가 잘 씌어지지 않는 이름 이상(李箱)의 유래입니다. 물론 이설(異說)도 있으나 신빙성도 실감도 나지 않고 해서 오늘날 이것만이 정설(定說)로 굳어진 듯합니다.

 

 

 이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 언급하는 세 가지 전제 지식이 필요합니다.

 첫째, 친부와 양부 즉 아버지가 둘이었다는 것. 1910년 강릉 김씨인 아버지 김영창씨와 어머니 박세창씨 사이에서 서울토박이로 태어나 김해경이란 이름을 받았으나, 막 말을 배우던 세 살 적에 통인동 본가(本家) 호주이자 맏이, 김해경에게는 큰아버지인 김영필씨의 양자로 입적(入籍).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결되었으나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의 너무 어리고 여린 갈등. 양부모님인 큰아버지 큰어머니에 대한 어려움과 정성이 클수록 깊어지는 죄송한 마음. 결국은 친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이것이 천재소년 김해경을 자의식(自意識) 과잉(過剩)과 갈등(葛藤) 많은 청년으로 성장하게끔 했겠지요.

 둘째, 소년기와 더불어 찾아들어 이십대 초반에 이미 심심찮게 각혈(咯血)을 했을 정도로 심했던 폐결핵(肺結核), 그로 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상의 작품쓰기와 작품연보를 살피면 폐결핵이 심해진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이상한 가역반응>이란 당시로는 파격에 가까운 괴이한 제목의 시를 필두로 하여, 거의 매일 하는 각혈의 시대인 스물서너 살 즈음에는 시와 소설을, 죽음의 그림자가 완전히 그를 감싸고 있던 스물여섯과 일곱 사이 그리고 죽음 직전까지는 소설에 주력했던 점입니다.

결론은 이상은 죽음의 공포와 맞싸우면서 글을 쓰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영원히 사는 방법으로 소설을 쓴 것 같습니다.

 셋째, 어마어마한 천재성. 우리 시사(詩史)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단 한 분이 소월이라면 시와 소설 수필(수필에서 이상의 잠재의식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드러납니다)까지를 통틀어 딱 한 사람만의 천재를 지적하라고 명령하면 이의(異意) 없이 이상을 가리킬 것입니다. 모두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서구의 근대문학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이상만은 현대문학 중에서도 어려워 본토인 서구의 작가들도 접근이 쉽지 않은 초현실시(超現實詩 sur-realism) 시(詩)와 신심리주의(新心理主義) 소설(小說)을 유유히 써서 독자인 우리들을 두렵게 했으니... . 다시 한 번 요절한 천재에게 애도를 표할 수밖에.

 초현실시나 신심리소설이 추구하는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쉽게 풀이해 보면 인간의 의식의 세 단계인

 약속된 의식(오히려 도덕률에 가까운 것이어서 표현하는 당사자와 듣는 사람 양자가 서로 통하고 알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상적 심리임)과

 개인 각자의 의식(당사자만의 개인적 심리로 상대방은 짐작으로 짐작)과

 본인도 모르는 가운데 각자의 의식 속에 끝없이 흐르고 있는 짐작이 불가능하게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이지요. 칼 마르크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현대사를 변화시킨 삼대(三大) 인물이라는 프로이드(Freud)는 이 무의식은 꿈에서나 나타나므로 꿈의 연구를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면서 명저 <꿈의 해석>을 만들었지요.

 

 천재의 두 가지 속성인 자부심과 열등감의 갈등(葛藤 conflict)과 자의식 과잉. 먼저 자의식 과잉(過剩)을 가장 쉽게 해석하면 자신이 속해 있어 스스로 장 아는,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신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관련시키지 않으면 생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사고와 판단, 그러니 매 순간 갈등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제일 똑똑하고 잘난 듯 하고, 다른 측면에서 스스로를 보니 영 바보에다 못난이이고. 참고로 갈등이란 두 의지의 대립이라 정의되며, 내 속에서 두 의지가 대립을 일으키면 내적 갈등이고 두 사람 이상이 의지의 대립을 일으키면 외적 갈등이 되는 바, 천재의 갈등은 주로 내적 갈등이지요.

 

 개화기나 식민지시대 당시의 선각(先覺)들이 젊다기보다는 어린 나이로 완성작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 두 가지.

 하나는 마치 독립운동을 하듯 목숨을 걸고 썼다는 점이지요. 다른 하나는 비교적 일찍 한학(漢學)을 시작하여 동양적인 문학과 철학 등을 접하고 그 후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 에만 매진(邁進)할 수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이상의 간단한 학력과 경력과 문학 활동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37년 동경서 졸

부(父) 김영창, 모(母) 박세창

3세 때 서울 통인동 본가(本家) 집안 종가(宗家) 종손(宗孫)인 백부(伯父) 김영필 씨의 양자로 입양됨

1921년, 신명(新明)학교를 마치고

1926년, 보성고보(普成高普) 편입된 동광(東光)학교 입학

1929년, 오늘날 서울공대의 전신인 경성공업고등 건축과 졸업하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로 건축 현장에 투입됨

 

 

 화가로서의 이상(李箱) 김해경(金海卿)

1929년, 조선건축회 기관지인 <조선과 건축>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

1929년, 서양화인 <자화상>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백부님의 반대로 유년시절의 꿈인 화가의 꿈을 접고 아마추어임을 자처, 그러나 구인회(九人會) 회원 중 비교적 친했던 박태원(朴泰遠)의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丘甫)씨의 일일(一日)>의 삽화(揷畵)를 그릴 정도로 회화(繪畵)에 관한 한 인상파에 표현주의를 가미할 정도의 수준이었음

 

 

 이상이 스스로 밝힌 세 가지 좌절(挫折). 유아시절의 좌절, 건강상의 좌절, 화가로서의 좌절, 이것은 이상의 성격 형성과 잠재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듯 싶습니다.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여자로부터의 좌절이겠지요.

 

 모든 위대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문학작품 창작의 모든 갈래(장르 genre 分野)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던 이상의 문학적 편력

 전문성이란 미명(美名) 하에 장르의 노예상태로 글을 써온 지난날 우리의 신문학사를 깊이 반성하며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마 작자가 문학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는 발상과 인식의 올바른 전환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이상과 같이 처음부터 장르 파괴를 통하여 문학에 천착해온 선각(先覺)들에게는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작가로서의 이상 김해경

 1930년, 잡지 <조선>에 처녀장편 <12월 12일>을 연재한 것이 창작활동의 출발,

 그 후 모국어와 일본어 등 한글, 가나, Alphabet, 한자(漢子)에 이르기까지 언어 즉 말과 글은 사람을 위한 도구란 깨달음을 전제로 자신이 아는 만큼 또 쓰고 싶은 대로 골라서 쓴 듯합니다.

1932년, 드디어 이상(李箱)이란 필명으로 <조선과 건축>에 초현실시에 속하는 난해한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발표

1934년, <월간 매일>을 주 발표 무대로 작품 발표

1934년, 7월 24일에서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烏鑑圖>를 발표하여 문학의 주체와 객체인 작자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다가 연재 중단

1936년, 단편소설 <날개> <지주회시 蚳蛛會豕>

1937년, 단편소설 <동해(童孩)> <봉별기(逢別記)>

이 중 날개와 봉별기는 이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준 여자인 기생 금홍(錦紅)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도 못 잊고 다시 만나 사랑하고, 일반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둘의 처절했던 사랑을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는 일종의 실화소설입니다. 금홍은 조선적 기생인 예기가 아니고, 술과 몸을 같이 파는 일본식 하급 기생인작부(酌婦)였다 합니다.

기타 연대미상의 소설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수필 <산촌여정(山村旅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1957년, 드디어 시, 소설, 수필 등 80여 편의 작품을 망라(網羅)하여 <이상전집> 1. 2. 3.권을 발간합니다.

 

자연인과 화가와 작가가 혼재된 이상의 일상과 삶

 

 1933년 각혈 상태에 이른 폐결핵으로 당시 최고의 직업이었던 건축과 기사(技士) 직을 사직하고 황해도(黃海道) 배천 온정(白川 溫泉으로 표기)에 요양을 감. 거기서 기생 금홍을 만나 아주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나 이상으로서는 최초최후의 질실한 사랑을 합니다. 침고로, 당시에는 기수(技手)란 일본식 명칭이 있었으나 이하 기사로 통일합니다.

 두 사람 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금홍을 데리고 상경, 몇 주 후 이상의 백부이자 양부이며 호적상으로는 친부모 이상인 김영필 씨가 영면(永眠)합니다. 나름대로 맺힌 한이 많으신 분이었죠. 이상을 통해 집안의 대를 이으려 했으나 실패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픈 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상을 결혼시키기 위한 김영필 씨의 노력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한 가지 그런 상황에서도 구식결혼을 강요하지 않은 개화인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상의 맞선 보기에 얽힌 일화들. 자유연애가 뭔지 짐작이라도 하는 신여성과의 제법 여러 번의 맞선이 단 한 번도 성사된 것이 없었던 이유는 이상의 상상을 절하는 게으름 때문인 듯, 안 씻고, 안 깎고, 안 갈아입고, 이상의 외모와 차림새였지요.

 당시로는 크다 정도가 아닌 육 척에 육박하는 길고 긴 키, 장작개비 같이 마른 몸, 폐결핵으로 인하여 창백하였으나 이상에게 유일하게 깨끗한 곳이었다는 얼굴, 거기에 구레나룻, 팔꿈치 무릎이 다 튀어나온 골덴 양복에 목이 긴 검정색 티 샤스. 이것이 앞으로 언급할 화가 구본웅(具本雄)과 같이 팔짱끼고 다니면 서커스단원인 줄 알고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녔다는 이상의 전문 복장이자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모양새로 다방이나 카페에서 처자와 맞선이라도 볼라치면, 곽설탕 등 손에 닿는 물건은 무조건 주물럭거려 땟물을 들이고, 눈은 어디 둘 줄 몰라 안절부절, 길고 가는 다리는 달달.

 자기는 별로 말을 하지도 않으면서 여성이 이야기하면 무조건 실실 웃으니, 진보(進步)와 전위(前衛)를 생명으로 여기는 신여성(新女性), 강심장을 자랑하는 개화여성(開化女性)이라도 견딜 도리가 없었겠지요. 게다가 일차관문이 지나면 이차로는 술친구들이 기다리는 술판으로 옮겨 술 담배 요설(饒舌)과 독설 마침내 난분분한 주정(酒酊)으로 이어지니, 결혼은 이미 글러 버린 거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심신이 건강한 순진무구(純眞無垢)의 여성에 대한 이상의 잠재된 열등감이라 쉽게 해석할 수밖에 없겠지요.

 

 1933년, 백부(伯父)의 유산인 통인동 집을 매각한 돈으로, 종로에서 다방(茶房) <제비> 운영합니다. 이 시기가 속칭 제비시대라 하여 이상의 생애에서 전성기 중의 전성기였지요. 꽤 많은 유산과 예쁘기만으로 따지면 최고인 애인이자 아내이며 동업자인 금홍과 제비에 모이는 조선의 문화예술인들.

 재미있는 사실은 문학적 선각이자 천재인 이상에 대한 숱한 몰이해자(沒理解者)들과 이상의 생활자체에 반감을 가짐 사람들이 돈 되는 손님이었답니다. 드물기는 해도 이상의 메니아 급 추종자들과 문화예술계의 참새들은 공짜손님이었고요.

 1934년, 제비시대에 힘입어 구인회(九人會) 조직합니다. 이상을 비롯하여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윤태영, 조용만, 김유정 등이 들락거린 이 단체는 문학적 연대나 에콜이 있어 모인 필연성 있는 단체가 아니고 술과 사람과 분위기가 좋아 제비를 드나든 사람들의 자연발생적 모임으로 입퇴(入退)에 별다른 제약이 없는, 문학적 친목단체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1935년, 다방 제비 폐업 즈음하여 금홍의 가출과 돌아옴 더욱 빈번해짐

1936년, 1935년 이후, 카페 쓰루(鶴), 다방 무기(맥 麥) 등을 개업했으나 애초 놀이 삼아 멋 삼아 벌인 일들이라 수익성이 있을 수 없었으므로 망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지요.

1936년, 모든 사업 다 망하고 주변의 문인들도 사라지고 등이 굽은 천재화가 구본웅(具本雄)의 부친이 경영하는 창문사(彰文社)에 취업, 인간으로서 동종(同種) 격인 구본웅만 확실하게 사귀고 퇴사하여 그 후 룸펜생활을 합니다.

 

 1936년 유월, 친구라고만 알려진 사람의 여동생인 신여성(新女性) 변동림(卞東琳)과 돈암동 흥천사(興天寺)에서 도둑결혼을 하나, 그 이상 알려진 것이 없어 결혼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있음

1936년, 결혼 후 잠시잠깐 아내의 도움을 잠시 받았으나 적빈(赤貧)과 투병(鬪病)의 참혹한 나날을 보냅니다. 결혼과 거의 동시에 결혼생활이 끝난 듯.

 구본웅의 도움으로 폐결핵 치료차 도일(渡日). 그러나 일본이 이상에게 구원의 땅일 수는 없는 것, 그곳에서 행려병자(行旅病者)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가 사상불온자로 의심을 받고 일경(日警)에 체포당함. 그것이 오히려 중증 폐결핵환자이자 행려병자이던 이상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동경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약간의 휴식 가능했다.

 1937년 4월,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했으나 사망 당시와 그 후의 모습은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전성기 그의 후원을 받았던 어떤 사람도 얼씬거리지 않았던 만리타국(萬里他國)에서의 참혹한 죽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화가로서 작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이상에 대한 정의

 화가, 인상파(印象派)에다 표현주의(表現主義)가 가미(加味)된 화풍(畵風)

 작가, 시인으로서 잠재의식(潛在意識)을 자동기술(自動記述)한 초현실시(超現實詩), 소설가로서 잠재의식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의 기법으로 구성

 수필가, 그의 잠재의식과 문학적 표현과 일상적 삶의 연결고리인 수필 <권태>에서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의 오줌줄기 길이와 배설물의 크기 겨루기에서 억압된 성욕과 식욕의 문학적 표현의 단서(端緖)가 숨어 있다 합니다.

 인간, 천재성이 준 자의식 과잉(過剩)으로 인한 자부심과 신체적 열등감의 교차(交叉)와 양자(養子) 입양 후의 정신적 분열로 인한 반어본능과 냉소주의(冷笑主義 cynicism)이 혼재. 결국은 삶과 글, 자신과 타인, 모두에 대한 장난꾸러기의 나날이 그의 인생이었지요.

 

 

 소설가 김유정(金裕貞)과의 이상한 교우

 이상 보다 만 2년 햇수로는 3년 연상이면서 같은 해인 1937년에 죽은 김유정과의 교우는 기이(奇異)합니다. 구인회 후발회원인 김유정을 이상은 후배나 아씨동생 대하듯이 했고, 거기에 대해 김유정은 오히려 감지덕지(感之德之) 때로는 선배로 때로는 형으로 모셨으니. 거기에다 매사 냉소적인 이상은 구인회마저도 우스꽝스럽게 여겼으나 김유정은 구인회 말석(末席)에 자신이 끼어있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선입회원 모두를 하늘같이 모셨다 합니다.

 이상의 특기 중 하나가 회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감언이설(甘言利說)과 이간(離間)질로 회원들끼리 싸움을 붙여 놓고 자신은 낄낄거리며 그 광경을 즐기는 것이었다 합니다. 이상의 궤변, 내 말이 정말이든 거짓말이든 저희들끼리도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거나 미안하다 하는 놈 한 놈도 없더라. 라는 것이었으니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특기고 성격이었지요.

 같은 폐결핵 환자이면서도 이상 자신은 전혀 아닌 양, 유정이 저 친구는 세상이 아는 폐병쟁이 아니감 하고 비웃던 이상. 먼저 각혈을 시작하고 정도가 심해지자, 김유정은 이상에게 나중에 원고로 그것이 아니 되면 몸으로 때우겠다면서 약값과 보약 값을 호소합니다. 이상은 낄낄거리며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었다 합니다. 당신도 적빈(赤貧)의 상태이면서 말이지요.

 같은 해에 유정은 조국에서 이상 김해경은 이국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니, 박제된 천재의 말로는 다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식민지(植民地) 시대 나라 잃은 올곧은 백성은 운명이 그런 것이었는지요?

 

 

 화가 구본웅(具本雄)과의 절실하고 진실한 교우

 주로 도움을 주며 산 이상의 짧은 인생에, 이상을 가장 많이 도운 분으로 알려진 유일한 분이 부유한 천재화가이면서 신체적 결함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산, 그러나 그것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구본웅님이었습니다.

이상은 병이 깊어진 말년 구본웅에게 경제적 도움뿐 아니라 화가로서의 이루지 못한 꿈까지를 심리적 대리만족으로 보상받은 듯합니다. 누구와도 같이 다니기를 꺼리고 두려워한 두 사람이었지만 둘이서는 어느 때 어느 장소이든 활개치고 다녔다 합니다.

 두 분 사이의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 키가 장대같이 크고 비쩍 마른 데다 봉두난발(蓬頭亂髮)의 이상과 키가 아주 작고 등이 굽었으나 얼굴은 크고 잘 생긴 구본웅이 시골길을 걸으면, 동네아이들이 사까스단(서커스 曲馬團) 공연이 있어서 단원들이 선전하러 다닌다고 뒤를 졸졸 따랐다합니다. 둘은 더욱 유쾌하게 그런 돌발사고나 해프닝에 속하는 그 상황을 즐기고.

 

 처음부터 타인(他人)으로 만나 타인으로 사랑하고 타인으로 잠시 헤어지고 다시 타인으로 만나고, 영원한 타인임을 미리 알고서도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상과 금홍 두 분께 삼가 명복을 빌며, 다음 세상에서는 오늘도 한 몸 한 마음으로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상과의 만남을 끝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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