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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는 벗들에게> 시모음
2015년 09월 06일 20시 59분  조회:4261  추천:0  작성자: 죽림

+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 교사 퇴임 축시

세상 풍경도 바꾸어 놓는다는
십 년의 세월

그런 십 년을 
세 번이나 지나고서도

두 해를 더 보탠
그 오랜 시간 속에  

말없이 당신께서 흘리셨을
수많은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세상 명예를 탐하지 않고
묵묵히 교직의 한 길을 걸어오신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고스란히 사랑의 역사입니다. 

동심(童心)의 아이들과
함께 나눈 숱한 기쁨과 아픔 속에    

어쩌면 당신께선
삶의 진실에 가 닿았을 테지요.

당신과 인연 맺었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선생님'으로 살아 있을 
참 아름답고 복된 당신,

그런 당신이 곁에 있어
우리의 삶도 사랑도
한 치는 키가 자랄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 별 - 전역 축시

만 삼십 육 년
백 마흔 네 번의 계절이 바뀌는
긴 세월 동안

오직 한길
군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참 자랑스러운 그대

햇살같이 따스한 부하 사랑
달빛 예지를 겸비한 너는
덕장(德將)이며 또 지장(智將)이었지.

그 동안 갈고닦은 인품
강인한 정신, 강철 체력으로

이제 새롭게 펼쳐지는 생
거침없이 내달려 

견장에서 반짝이던 그 별 너머
더욱 빛나는 별이 되리라.

네가 있어 
세상의 한 구석이 밝아지는

말없이 아름다운  
별이 되리라.


+ 아름다운 사람 - 전역 축시

꽃같이 피어나는
스물 한 살 청춘의 날부터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만 삼십 칠 년 
기나긴 세월 동안
투박한 푸른 제복 입고

세상 부귀영화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빛도 없이 자랑도 없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길 
묵묵히 걸어온
그대, 아름다운 사람아.

그대는 윗사람의 신뢰를 받는 
실력 있고 유능한 군인이었으되
한순간도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

그대는 절도 있는 군인이었으되
비바람 눈보라 속 생사고락 같이하는 
부하들에게 엄마같이 자애로웠다

그대는 박봉의 살림살이에도
기죽거나 흔한 불평 한마디 없이
가족사랑 또한 끔찍하여
1남2녀 자녀들을 훌륭히 길렀다.

계절이 수없이 바뀌어도
군문(軍門)에 들어설 때의
그 순결했던 첫 마음 변치 않고

우직한 황소걸음으로
달려갈 길 다 달려
오늘 전역을 맞이하는 그대

그 동안 남몰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결실 맺어

이제 우리의 마음속
영원히 빛날 별 하나로 뜬다.


+ 퇴직하는 벗에게 

대학 졸업이 코앞이던 어느 날 술집에서
은행에 취직했다며 장난 삼아 어설피 
배춧잎 돈다발 세는 모습 보여주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어느새 만 스물 아홉 해가 지나
자네가 퇴직을 했다니 꿈만 같아

백 열 여섯 번의 계절이 바뀌는
긴 세월 동안 근무지 따라 
가족들 데리고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힘든 일도 적지 않았을 텐데
'직장은 내게 밥을 주는 곳'이라며
늘 진심으로 고마워했지.

복스럽던 머리숱에 흰 서리 내린 지 오래지만
슬퍼하거나 기죽지 말게
자네의 반백(半白) 은빛 머리카락은
세월의 훈장처럼 오히려 참 보기 좋지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던 말처럼
자네는 백 살을 너끈히 살고도 남을 것 같애  

그렇다면 이제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을 뿐
앞으로 남은 날들 창창(蒼蒼)하니
이름 없는 섬 마을 선생이 되고 싶다던
갓 스무 살 무렵의 소박했던 꿈
어쩌면 자네가 능히 이루었을 듯도 싶은
그 추억 속의 꿈에 모닥불 지펴

이제 급할 것 전혀 없는 황소걸음에
동심(童心)의 눈으로  
세상 풍경 차근차근 구경하며
하루하루가 소풍놀이같이 흥분되고
하는 일마다 창의(創意)와 재미와 보람 넘치는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맘껏 펼치게나.

지금껏 채송화처럼 겸손히 살아온 
자네에게 아무래도 신께선 민들레 홀씨의 
자유로운 영혼 하나 선물하실 것이니
남은 세월엔 자네가 되고 싶은 
뭐든 되어 보게나. 


+ 퇴직하는 벗에게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30년 2개월 동안
그야말로 성실히 한 우물을 파고
이윽고 퇴직하는 친구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눈 팔거나
괜한 욕심 부린 적 한번도 없이
씨 뿌린 만큼 거두는
그저 우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강산도 바뀐다는 십 년
그 긴 세월이 세 번이나 흐르도록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내며
숱한 인내의 땀방울 흘렸을 테지만

윗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유능하고 꼭 필요한 사람,
또 아랫사람들을 따뜻이 보살피는
자상하고 참 인간적인 상사였을 너는
아마 직장의 보물이었을 게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생활의 거처였던 정든 직장을 떠나
이제 새롭게 펼쳐지는 삶이
조금은 낯설고 어색할지 몰라도
틀림없이 너는 뭐든 잘해낼 거다

통트는 햇살 더불어 선물로 주어지는
하루 스물 네 시간의 조각조각 
알뜰살뜰 엮어
사랑하는 아내와 더욱 가까워지고   
아들딸이랑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나누는 
소박한 행복 맘껏 누리렴  

산과 들과 바다로 여행을 떠나
자연을 벗삼는 그윽한 기쁨도 맛보고
나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색의 여유도 네 것으로 하렴.    

인생 전반전을 잘 마무리했으니
너의 후반전은 더욱 기대되는구나

지상의 길벗으로 만난
참 믿음직스럽고 소중한 사람

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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