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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자료)
2015년 09월 07일 21시 03분  조회:4292  추천:0  작성자: 죽림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 

       /들우물 

◈ 이 글은 2000년 5월 26일, 중국 연길시 대우호텔에서 가졌던 문학세미나 
주제 발표문이다.
 
1. 들어가는 말 
솔직히 말해, 나는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한국 문단사회에서야 문단데뷰 이래 현재까지 15년 동안 시 창작과 문학평론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그동안 중국 조선족 시문학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어떤 구체적인 연구 노력을 기울여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찌기, 한국의 여러 문학 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학행사를 통해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차례 주어졌었지만 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격을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해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난 1998년 2월부로 격월간 문학 종합지 「동방문학」을 창간, 발행해 오면서 중국 조선족 문학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던 중 한춘․장지민․장정일․정세봉․석화 씨 등 몇몇 문학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허련순․류순호 씨 외 몇몇 시인․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작은 만남이 계기가 되어 문학 세미나를 함께 하는, 적극적인 문학 교류 차원의 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 동족의 일원으로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며, 동시에 동포로서의 이해와 사랑을 전제로 하는 화합과 대동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특히, 중국 조선족 시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약 3개월 동안에 걸쳐 월간 「연변문학」 11권(1999년 1월호부터 11월호까지)과 대표시인선집인 듯한 합동시집의 일부(21명의 110편), 그리고 격월간 「장백산」 1권(1999년 2월호)과 개인 시집 등을 통하여 전체 73명의 시인 작품 580여 편1) 정도를 정독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이 글을 쓰는 데에 용기가 되어 주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 조국광복(1945. 8. 15) 전에 태어난 시인군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곧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기(1910~1945)일 것이다. 이 시기를 청․장년기로 살던 우리 선대(先代)가 가장 고생을 많이 했을 터이고, 그 다음이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가슴 속에 ꡐ바위ꡑ(리 욱, 1935년 작) 같은 응어리를 품고 살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조국을 떠나 멀리 러시아, 중국, 일본 등지로 유랑하여 정착하기까지 갖은 고초를 겪었으리라. 

굶주린 창자 
헐벗은 알몸들 
지금 엄동설한 이 삼경에 
누구의 집 모퉁이에서 지낼가 
없나? 
누가 그들에게 
따스한 물 한모금 
김나는 밥 한숟갈 
그들에게 줄 사람 
없는가, 없는가…… 

모대기다 못해 
급기야 기한에 지는 
한 맺힌 이슬 
누구 탓일가? 
누구 탓일가? 

이 밤이 
왜 이다지 찰고? 
아, 
왜 이다지 찰고…… 

■ 설인의 작품 「한야에」 전문, 1940년 작 

오늘도 끝없이 
울부짖는 소리 들었나니 
언제나 
가시 덤불속에서 

아득한 지평선 너머의 
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순례자의 발끝에 
피방울이 맺힌 
서글픈 소식 

■ 설인의 작품 「소식」 전문, 1942년 작 

먼 지평선에 가뭇없이 사라진 
두가닥 수레길은 
벌겋게 입을 벌린 
황야의 어두운 추억 

젊음이 주름살에 옥매인 
홀로 난 어머니의 
기박한 운명을 끌고 가던 
달구지의 그 삐걱소리 

울어서 실성하던 산 
얼어서 그만 굳어진 하늘 
내 더벅머리우에 떨어지던 
오, 불쌍한 어머니의 눈물…… 
세월은 가고 
겨울뒤끝에 봄은 오고 
벌판 저 끝 어딘가서 
생명의 파란 곡선이 
수레길을 지우며 조용히 오건만 

내 서러운 가슴속에 
멀리 뻗어간 두가닥 수레길엔 
달구지의 그 삐걱소리 
오늘도 깊이깊이 패여온다. 

■ 임효원의 작품 「황야의 추억」 전문 

앞의 두 편은 1940년과 1942년에 창작된 설인의 작품이다. 일본인들의 칼날(가시덤불)과 가난을 피해 살고 싶어도(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살 수 없었던 절망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시적화자(話者)는 같은 상황에 있지는 않지만 당시 우리 선대(先代)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고발하고 있다. 
뒤의 작품은 임효원의 「황야의 추억」 전문으로 시적화자인 ꡐ내ꡑ가 어머니와 함께 꿈(봄)을 찾아 달구지를 끌고 어디론가 가야했던, 어린 시절의 눈물어린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나보다도 어머니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데, ꡐ어머니의 기구한 운명ꡑ이란 것이 겉으로 드러나기는 역시 배고픔과 추위이지만 그 진실은 ꡐ황야의 어두움ꡑ과 ꡐ내 서러운 가슴 속ꡑ에 숨어 있다. 
위에 거명한 시인들은 1907년으로부터 1944년도 사이에 중국․한국․일본․러시아 등에서 태어나 중국 대륙에 정착한 세대로, 일제 강점기를 유아기로만, 혹은 아동기까지, 혹은 청소년기까지, 혹은 청년기까지 보내야 했던 세대다. 따라서 이들의 부모세대보다는 고생을 덜했다고 판단되지만 역시 당대의 가난과 문화 풍속이 다른 중국이라는 나라의 낯선 사회제도에 의해 양육되고, 적응해야 했던 시련과 고통을 감당해내야만 했으리라. 
그러나, 조국이 해방되고 나서 50년이란 긴 세월이 이미 흘렀고,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 오면서 이들은 과거의 아픈 역사에 집착할 수만도 없었다. 가난과 적응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고, 미래 사회에 대한 꿈을 또한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ꡐ새 화원ꡑ(리 욱, 1940년 작)에 꽃씨를 뿌려야 했고, 땅속 깊이 뿌리박은 ꡐ질경이ꡑ(임효원, 1956년 작)처럼 억세게, 그리고 무성하게 자라나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이 터지고, 자의든 타의든 전쟁터에 나아가 싸워야 했다.(김철의 「통행금지」, 「생의 노래」 등) 그리고 3년 1개월 동안 지속된 그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죽어야 했던가를 뼈 아프게 반성하면서(임효원의 「아, 민들레……」, 1979년 작) 남북이 분단된 채 오늘날까지도 적대시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김철의 「동강난 지도 앞에서」 1989년 작) 또 그러면서 역사의식이 싹트게 되었으리라.(설인의 「호태왕비」 1995년 작) 
이들은, 줄곧 80년대 중후반까지 북한과 교류하면서 우리 말과 우리 글로 문학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한족(漢族)의 문화로 흡수되지 않고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정체성이 강한 자치주를 형성해 올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수교로 오늘날은 남한의 문학인들과 교류를 보다 왕성히 하면서 어느 정도는 남과 북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자신의 뿌리도 의식하게 되면서 비로소 마음 속의 고향인 조국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아가, 한민족의 대동단결과 화합을,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고 모색하는 새로운 바람이 일기도 했다. 

오, 고향의 언덕 마음의 탑아 
너는 말없이 내 가슴에 솟아있고 
나는 네 혈관을 흐르는 한방울 피 
너로 하여 내 가슴은 언제나 끓고 있다. 

■ 김성휘의 작품 「고향의 언덕 마음의 탑」 제11연 

고향이 고향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그런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나의 어머니를 있게 했던 우리의 뿌리로서의 고향이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선대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살던 곳, 바로 내 마음 속에나 있는 고향이고, 내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은 생명 그 자체로서의 고향이다. 

병든 마음 
무서운 설음 
바람에 덜라 
들국화 곱게 웃는 
저 벌로 산으로 
해의 문안을 가자 
남에서 북으로 
서에서 동으로 
거침없이 부는 바람 
가시를 뽑으며 
가슴을 헤치고 
바람타고 가자 
바람타고 오자 
동서남북 하나로 일어나 
백두의 존엄을 안고 
동해의 기량을 보이며 
갈매기도 가자 
수리개도 가자 
두 날개 한 몸뚱이 
흰옷 입은 사람아 
떳떳이 떳떳이 
하나로 가자. 

■ 김성휘의 작품 「하나로 가자」 전문 

우리는 비록 남북이 갈라져 있고, 또 중국에, 일본에, 러시아에, 저 남미에,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서 똘똘 뭉쳐 하나로, 당당하게 살자는 것이다. 

조국이란 
내 잠들었을 때에도 
후둑후둑 뛰는 내 심방 가까이에 앉아 
맥박을 세여보는 보모입니다. 

■ 김성휘의 작품 「조국, 나의 영원한 보모」 제1연 

이처럼 ꡐ고향ꡑ에 대해 눈을 뜸으로써, 바꿔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의식하면서 ꡐ조국ꡑ이 나를 키워주고, 지켜주는 보모로서 다가오는 것이리라. 허룡구의 「먼동」, 리임원의 「동해바다」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같은 세대라 해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주의․주장이 다르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정서를 중심으로 노래하는 시인들(강효삼․김문회․한춘)도 있고, 자연적 요소나 현상을 통해서 인간 삶의 지혜나 진리 혹은 아름다움을 유추해 내는 시인들(김응준․리삼월․리상각)도 있다. 또한 인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노래하는 시인(김태갑)도 있고, ꡐ대중적 정서ꡑ 읽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시인(석화)도 있고, 대자연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김경석)도 있고, 인간 존재나 현실적인 삶에 대한 관심을 보이되 사유세계 속의 주관적 언어표현을 즐기는(?) 시인(박화․한춘)들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3. 조국광복 후에 태어난 시인군 
1945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는 그 앞 세대보다는 고생을 덜했음에 틀림없다.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게 방황하지도 않았고,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직접적인 압제와 수탈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생이 있었다면, 5, 6, 70년대의 가난과 중국내 정치 사상적 변화와 함께 ꡐ적응ꡑ해야 했던 시행착오와 그 시련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80년대 전까지 비교적 제한된 국가들과만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과 허탈감을 크게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상의 여건 때문인지 조선족 시인들은 자국내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소재로 취하여 시를 쓰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앞 세대들이 가졌던 역사나 뿌리 의식이 또한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일상 생활속에서 부딪치고 경험해야 하는 데에서 갖게 되는 개인의 솔직한 느낌이나 감정, 생각이나 사상 등을 드러내는 시들이 흔치 않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 문제를 비판하거나 간접적으로 풍자하는 작품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소리의 「고무풍선」 「자멸」 「방황」이라든가, 리송주의 「멀고도 가까운 별」이라든가, 전홍일의 「온실효과」 「참새들」 「시골의 설」 등은 그 내용과 표현 방법면에서 미숙하긴 하나 사회비판의식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천편 일률적으로 자연현상이나 그 구성물에 대한 외양묘사나 감정이법으로 사회적 목적성을 띠는 객관화된 인간 삶의 유형을 환기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시인들이 점점 솔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를 쓰는 근본 목적과 관련된 문제인데, 이해하기 쉽게 빗대어 말하면, 지금 붓나무를 소재로 시를 쓴다 할 때 붓나무의 모양새나 빛깔 그 밖에 생태학적 특징 등을 중심으로 묘사하기 마련인데, 이 때 붓나무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어떤 특성 자체를 들어낼 목적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만약, 그것이 목적이라면 ꡐ식물학ꡑ이라는 과학에서나 해야 할 일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끌어들여진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 시들이 대체로 어떤 대상 자체를 표현 목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면 오늘날의 시들은 그 대상들을 통해서 다름아닌 시인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고, 또 그럼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적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속으로 끌어들여지는 다양한 대상들은 시인의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잠시 빌려 쓰이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바꿔 말해, 시를 쓰는 근본 목적이 어떤 대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위한다는 시각과 태도 변화가­ 6, 70년대 출생한 김경희․허련화․리해룡․김충 등 적지 아니한 젊은 시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광산 봄 푸를 때 
강건너 높은 산 불타오르데 
두만강 물에 나래 적셔 
저 불 사그릴 
큰 새는 없는가? 
내 사랑 토끼와 사슴들이여 
내 마음 무성한 숲에 몸을 숨겨라 
아, 진달래 스러진 산 
산은 타도 여름은 오려나 
끌 수 없다면 
차라리 불산이 되거라 

저 불길 어느새 옮았는가 
나도 뜨겁게 불타고 있네 

■ 허련화의 작품 「산불」 전문 

위 작품에서, 강건너 높은 산이 불타오른다는 말이 진달래 꽃이 만발하여 이루어진 붉은 물결을 빗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봄에 산불이 난 것인지 모호하게 표현되고 있다. 물론, 시제와 앞뒤 문맥상으로는 후자일 것이라는 판단이 앞서지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산불을 소재로 하여 시를 썼지만 결국은 시적 화자인 시인 자신의 몸속에서 일고 있는 불, 곧 넓은 의미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체내의 생화학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애욕인지 아니면 어떤 목표 달성에 대한 의욕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산불이라는 자연현상이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되더라도 그것은 결국 시인 자신을 드러내는 종속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시작(詩作)에 있어 그만큼 시인 자신 곧 인간을 우선시 여긴다는 증거다. 바꿔 말해, 대상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을 위해 쓴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시인들의 시적 관심이 인간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겠다. 또 그것은 시인이 처해 있는 현실적 여건의 변화, 곧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환경의 변화와 함께 시인의 관심․미의식․언어 등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 다른 하나의 희망은, 다양한 형식 실험과 함께 다양한 주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시가 꼭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묘사하고, 또 그것과 관련해서 시인이 갖는 감정과 사상을 정서적이고 음악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다양하게 바뀔 뿐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 또한 여러가지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해, 달, 흙, 곰 등과 같이 대자연을 구성하는 대상들이 저마다 정령을 가지고 있고, 그들간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호흡함으로써 생명현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물활론적(物活論的) 사고를 바탕으로 해서 시를 쓰고 있는 남영전의 ꡐ토템ꡑ시라든가, 다양한 꽃들의 모양과 빛깔과 생태학적 특징들과 관련하여 인간의 삶이나 존재를 유추해 내는 리해룡의 꽃 연작시라든가,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특정 이야기를 구성해 냄으로써 시에 재미라는 기능을 배가시키고 있는 김성우의 산문시라든가, 일상생활 속에서 직간접으로 경험하는, 또는 의식되는 사유세계의 단편들을 그대로 진술하는 박화의 모더니티 등이 그것이다. 
물론, 세계의 시가 실험, 실습되고 있는 한국 현대시의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고려한다면 미미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실험적인 노력이 진지하게 지속되는 과정에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이 좀더 다양하고 좀더 풍성하게 발전해 나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나오는 말 
90여 명 내외가 되는 중국 조선족 시인들 가운데에서 일부 시인의 일부 작품을 읽고 시문학의 위상이나 그 성격을 운운하는 것은 극히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시인이란 개인의 사사로운 느낌이나 감정, 생각이나 사상 등을 정서적이고 함축적이고 음악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한다 해서 모두가 시인인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그저 시 몇 편, 시 비슷한 글 몇 십 편 썼다해서 시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적어도 시인이란, 인간의 본질과 그 인간들이 엮어가는 사회와, 그리고 인간의 삶(생명)과 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자연과, 그것들이 어우러진 세계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 눈에 비쳐진 진실을 자신의 감정이 배인 정서적이고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일과 관련하여 일정한 질서와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바로 그랬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 시인의 탄생과 그 존재를 기억하고, 그를 우러러 보는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인이란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73명의 작품 580여 편을 읽으면서 이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소재이자 제재가 되기도 하는 단어(key word)를 10개 정도로 정리한다면 이렇다. 곧, ①그리움 ②고향 ③조국 ④별 ⑤달 ⑥산 ⑦강 ⑧나무 ⑨바람 ⑩바위 등이 그것이다. 이들 중요 단어들로 시를 짓고 있는 시인들의 정서를 색깔로 친다면 두루미나 백학으로 대표되는 흰색일 것이고, 계절로 친다면 생명력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봄일 것이다. 
표현 수단은 한글이지만 조국이 해방되면서 중국내 조선족으로서 정착, 30여 년 동안 줄곧 북한과 교류해 왔기 때문에 북한의 언어와 가깝다. 그리고 80년대 개방화 물결에 따라 그 후 15여 년 동안은 남한과 교류를 적극적으로 해오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런 탓인지 그들은 남한이나 북한의 시문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시문학을 다듬어 가고 있다 할 것이다. 인구 200만 가운데 시인 90여 명이 중국 조선족 시문학이란 나무를 가꾸어 오고 있는 셈인데2), 50년이란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중국의 정치 체제와 관련, 극히 제한적인 교류와 감시의 눈 탓으로 흐른 세월에 비하면 그 나무가지와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나진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그동안의 중국만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한다면 그 시문학이라는 나무를 키워올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시인들의 각고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시문학은 인간의 주관적인 정서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예술형태이므로 대사회적 대인간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뿌리 깊고, 잎 무성하고, 열매 또한 상큼한 우람한 나무로 키워 나가아야 할 것이다. 
이 일을 돕기 위해 굳이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모방이나 흉내내기가 시문학에서의 능력이고 진실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모방은 어디까지나 습작기에 있을 수 있는 과정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표이어서는 안 된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빛깔과 향기와 열매를 위해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하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영양분도 공급해 주어야 함에 틀림없지만, 철저하게 내가 서 있는 토양과 그 기후에 잘 자랄 수 있는 수종(樹種)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 
1) 필자가 읽은 중국 조선족 시인 명단--- 
리 욱․임효원․설 인․김 철․김성휘․리삼월․리상각․김경석 
김응준․김태갑․허룡구․박 화․김문회․김동진․남영전․리성비 
석 화․리임원․주성화․신현철․박설매․김응룡․리근영․리해룡 
마송학․최진성․리 중․박성훈․김 충․남철심․김 욱․허련화 
전홍일․강효삼․윤청남․김경희․남상수․허창열․김창영․리 복 
박천교․박은호․정 철․김동석․한 춘․채택룡․황장석․전경업 
최정수․김기덕․리범수․김철호․한소리․김영수․김해룡․신창수 
현규동․전광훈․황춘옥․김승종․양용철․리동권․리송주․한수봉 
한동해․한석윤․김성우․류전영․황령향․장련춘․림 철․심정호 
송정환 외(이상 73명의 580편) 
2) 월간 「연변문학」 1999년 1월호에 실린 중국 조선족 문학인 주소록에 의하면 전체 문학인 375명 가운데 시인이 약 90명 내외가 되지 않을까 추산된다. 그 근거로는 연변지구에만 268명의 문학인 가운데 24%인 64명이 시인임을 감안한다면 나머지 북경․흑룡강․료녕․길림․장춘․통화 지구도 같거나 비슷하다고 전제,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26명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명단에는 작고한 문인도 몇 분 포함되어 있고, 필자가 이미 읽었지만 현재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은 흑룡강 신문 지상에 발표된 상당수의 시작품 등은 포함시키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73명 580편이란 숫자는 편의상의 숫자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연변작가협회는, 金浩根씨에 의하면 2000년 4월 현재, 505명의 회원에 87명의 이사, 주석 1명, 상무 부주석 1명, 겸직 부주석 11명으로 구성되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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